집의 내력 / 김남극 집의 내력 / 김남극 위아래가 잘 맞아야 되는 거다 물푸레나무를 슥슥 깎아 탕탕 공이를 박아넣고 그놈 공이가 윗구멍에 척 맞아떨어져 오른쪽으로 슬슬 돌아가야 되는 거다 마른 강냉이를 타갤 땐 몸이 덜 달아 덜덜거리거나 써러럭 거친 소리룰 내서 삭지 않은 강냉이쌀을 내뱉는 거고 .. #시/영상시 2012.11.05
유리 이야기 / 문정희 유리 이야기 / 문정희 잠시 반짝이다 결국 깨어지는 유리가 사랑을 닮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모래를 끓여 유리를 만드는 동안 천 도의 불꽃으로 타오르던 사랑이 거짓말처럼 얇은 한 조각 파편으로 남을 때 신을 향해 돌거나 해를 향해 돌거나 결국 어딘가를 향해 돌고 도는 작.. #시/영상시 2012.11.05
결빙(結氷)의 아버지 / 이수익 결빙(結氷)의 아버지 / 이수익 어머님, 제 예닐곱 살 적 겨울은 목조 적산 가옥 이층 다다미방의 벌거숭이 유리창 깨질 듯 울어 대던 외풍 탓으로 한없이 추웠지요, 밤마다 나는 벌벌 떨면서 아버지 가랭이 사이로 시린 발을 밀어 넣고 그 가슴팍에 벌레처럼 파고들어 얼굴을 묻은 채 겨우 .. #시/영상시 2012.11.05
춘향의 노래 / 복효근 춘향의 노래 복효근 지리산은 지리산으로 천 년을 지리산이듯 도련님은 그렇게 하늘 높은 지리산입니다 섬진강은 또 천 년을 섬진강이듯 나는 땅 낮은 섬진강입니다 그러나 또 한껏 이렇지요 지리산이 제 살 속에 낸 길에 섬진강을 안고 흐르듯 나는 도련남 속에 흐르는 강입니다 섬진강.. #시/영상시 2012.11.05
그대에게 가는 길 / 박시교 그대에게 가는 길 / 박시교 가장 낮은 바다에 이르기 위해서 물은 쉼없이 흐르고 또 흐른다 하지만 사랑도 그럴 수가 있을까 너무 멀고 아득한 바다 'The Last of the Mohicans' 중 Main Title 곡 #시/영상시 2012.11.05
네가 앉은 그 자리가 꽃자리다 ...... 구상 (오상순) 꽃자리 구상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다.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다.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묶여 있다. 앉은 자리가 꽃자.. #시/영상시 2012.11.05
지나간다 /천양희 지나간다 /천양희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고 벼르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세상은 그래도 살 가치가 있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지나간 것은 그리워 진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사랑은 그래도 할 가치가 있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절망은 희망으로 이긴다고 믿.. #시/영상시 2012.10.17
가을 하늘에 띄우는 편지 편지 / 고은 지금 나는 넓은 후면(後面)을 돌아다 본다. 길들이 재회(再會)한다. 하나의 길이 굽이친다. 누가 저 길로 반짝이며 올 것인가, 새가 잘못 날을 때 죽음이 여기저기서 메아리 친다. 가장 멀리까지 들릴 새 소리 밑으로 나는 가야 한다. 그리하여 상회(上廻)하는 하늘에서 편지를 .. #시/영상시 2012.10.17
이별 / 오탁번 이별 / 오탁번 이제는 친구들을 만나는 일이 그전 같지 않아 삼겹살 곱창 갈매깃살 제비추리 두꺼비 오비 크라운 아리랑 개나리 장미 라일락 비우고 피우며 노래했는데 봄 여름 지나 가을 저물도록 얼굴 한 번 못 보다가 아들딸 결혼식장에서나 문상 간 영안실에서나 오랜만에 만나 인사.. #시/영상시 2012.10.17
가을편지 / 고정희 가을편지 예기치 않는 날 자정의 푸른 숲에서 나는 당신의 영혼을 만났습니다. 창가에 늘 푸른 미루나무 두 그루 가을 맞을 채비로 경련하는 아침에도 슬픈 예감처럼 당신의 혼은 나를 따라와 푸른색 하늘에 아득히 걸렸습니다. 나는 그것이 목마르게 느껴졌습니다. 탁 터뜨리면 금세 불.. #시/영상시 2012.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