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과 문 / 천양희 벽과 문 천양희 이 세상에 옛 벽은 없지요 열리면 문이고 닫히면 벽이 되는 오늘이 있을 뿐이지요 새로울 것도 없는 이 사실이 사실은 문제지요 닫아걸고 살기는 열어놓고 살기보다 한결 더 강력한 벽이기 때문이지요 벽만이 벽이 아니라 때론 결벽도 벽이 되고 절벽 또한 벽이지요 절망.. #시/詩 2012.04.19
물 / 임영조 물 임영조 무조건 섞이고 싶다 섞여서 흘러가고 싶다 가다가 거대한 산이라도 만나면 감쪽같이 통정하듯 스미고 싶다 더 깊게 더 낮게 흐르고 흘러 그대 잠든 마을을 지나 간혹 맹물 같은 여자라도 만나면 아무런 부담 없이 맨살로 섞여 짜디짠 바다에 닿고 싶다 온갖 잡념을 풀고 맛도 .. #시/詩 2012.04.19
눈보라 / 황지우 눈보라 황지우 원효사 처마끝 양철 물고기를 건드는 눈송이 몇점, 돌아보니 동편 규봉암으로 자욱하게 몰려가는 눈보라 눈보라는 한 사람을 단 한 사람으로만 있게 하고 눈발을 인 히말라야소나무숲을 상봉으로 데려가버린다 눈보라여, 오류 없이 깨달음 없듯,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는 .. #시/詩 2012.04.19
참 빨랐지 그 양반 / 이정록 참 빨랐지 그 양반 / 이정록 신랑이라고 거드는 게 아녀 그 양반 빠른 거야 근동 사람들이 다 알았지 면내에서 오토바이도 그중 먼저 샀고 달리기를 잘해서 군수한테 송아지도 탔으니까 죽는 거까지 남보다 앞선 게 섭섭하지만 어쩔 거여 박복한 팔자 탓이지 읍내 양지다방에서 맞선 보던.. #시/詩 2012.02.25
성냥/김남조 성냥 성냥갑 속에서 너무 오래 불붙기를 기다리다 늙어버린 성냥개비들 유황바른 머리를 화약지에 확 그어 일순간의 맞불 한 번 그환희로 화형도 겁 없이 환하게 환하게 몸 사루고 싶었음을 #시/詩 2012.02.22
그대에게/최영미 그대에게 / 최영미 내가 연애시를 써도 모를거야 사람들은, 그가 누군지 한 놈인지 두 놈인지 오늘은 그대가 내일의 당신보다 가까울지 비평가도 모를거야. 그리고 아마 너도 모를거야. 내가 너만 좋아했는 줄 아니? 사랑은 고유명사가 아니니까 때때로 보통으로 바람피는 줄 알겠.. #시/詩 2012.02.20
두보초당에서 두보초당에서 이 승 하 4월의 바람은 여기서도 부드럽구나 연못에는 연잎 연못가에는 기암괴석 꾸며놓은 정원이야 후대 사람들의 것 대나무 숲 그늘 아래서 땀을 닦는다 다리 건너니 나타나는 초막 한 채 서재도 만들고 응접실도 꾸며놓았다 두보가 이런 좋은 집에서 살았을 리 .. #시/詩 2012.02.08
이화중선의 마지막 노래 /이승하 이화중선의 마지막 노래 부모 형제 시방도 굶주리고 있는 고향 땅이 너무 먼 조선의 남정네야 내 현해탄 푸른 물결 넘실 넘어와 쌓이고 쌓인 그대 이야기 보따릴랑 그대 울음보 다 들어주고 싶었으나 어쩌면 이 지지리도 못난 조선 사람들은 늑대도 운다 하고 새도 운다 하고 벌레.. #시/詩 2012.02.08
박송암의 범패 /이승하 박송암의 범패 이리로 오게 태평소도 자바라도 태징도 이 도량에 와 잡가락을 올리게 천년을 넘게 내려온 소리* 흐으아에 흐흘 加 십 년을 익혀 오십 년을 공들이니 이제는 조금 맑아진 듯 좀 더 깊어진 듯 열아홉에 산에 와 머리 깎은 뒤 뜻도 모른 채 부른 홋소리가 침묵하는 저 .. #시/詩 2012.02.08
개 같은 놈 여우 같은 여인/ 김복수 언제부터 개 같은 놈이 여자들 입에 올려 졌는지 모른다. 우리 민박집에 사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쌍이 사나흘 묵어간다고 찾아들었다 어찌나 다정한지 비둘기도 선배님하며 고개 숙일 정도다. 삼 일째 되는 날 우연히 사내 전화를 엿듣고 말았다 ~ 아무래도 오늘 오후 늦게 세.. #시/詩 2012.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