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 갈 대/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 #시/詩 2012.04.27
가난한 사랑노래 가난한 사랑 노래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며 머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 #시/詩 2012.04.27
어떤귀로 어떤귀로 -박재삼- 새벽 서릿길을 밟으며 어머니는 장사를 나가셨다가 촉촉한 밤이슬에 젖으며 우리들 머리맡으로 돌아오셨다 선반엔 꿀단지가 채워져 있기는 커녕 먼지만 부옇게 쌓여있는데, 빚으로도 못갚는 땟국물 같은 어린 것들이 방안에 제멋대로 딩굴어져 자는데 보는 이 없는 .. #시/詩 2012.04.27
상한 영혼을 위하여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동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에서나 개울.. #시/詩 2012.04.27
오늘, 쉰이되었다 오늘, 쉰이 되었다. -이면우- 서른전, 꼭 되짚어 보겠다고 붉은줄만 긋고 영영 덮어버린 책들에게 사죄한다 겉핥고 아는체 했던 모든 책의 저자에게 사죄한다 마흔전, 무슨일로 다투다 속맘으로 낼, 모래쯤 화해해야지, 작정하고 부러 큰 소리로 옳다고 우기던 일이 아프다 세상에 풀지 못.. #시/詩 2012.04.27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정호승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 견디는 일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내리면 눈길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속을 걸어라 갈대 숲 속에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 #시/詩 2012.04.27
공존의 이유 조병화 공존의 이유 깊이 사귀지 마세 작별이 잦은 우리들의 생애 가벼운 정도로 사귀세 악수가 서로 짐이 되면 작별을 하세 어려운 말로 이야기하지 않기로 하세 너만이라든지 우리들만이라든지 이것은 비밀일세라든지 같은 말들은 하지 않기로 하세 내가 너를 생각하는 깊이를 보일 .. #시/詩 2012.04.27
사랑 / 안도현 사랑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죄 짓는 일이 되지 않게 하소서 나로 하여 그이가 눈물 짓지 않게 하소서 사랑으로 하여 못 견딜 두려움으로 스스로 가슴을 쥐어뜯지 않게 하소서 사랑으로 하여 내가 쓰러져 죽는 날에도 그이를 진정 사랑했었노라 말하지 않게 하소서 내 무덤에는 그리움.. #시/詩 2012.04.19
오래된 잠버릇 /함민복 파리는 내가 덮고 자는 공간을 깔고 잔다 날개 휘젓던 공간밖에 믿을게 없어 날개의 길밖에 믿을 게 없어 천장에 매달려 잠자는 파리는 슬프다 추락하다 잠이 깨면 곧 비행할 포즈 헬리콥터처럼 활주로 없이 이착륙하는 파리 구더기를 본 사람은 알리라 왜 파리가 높은 곳에서 잠드는가.. #시/詩 2012.04.19
신 벗고 들어가는 그곳/황지우 신 벗고 들어가는 그곳 - 황지우 아파트 15층에서 뛰어내린 독신녀, 그곳에 가보면 틀림없이 베란다에 그녀의 신이 단정하게 놓여 있다 한강에 뛰어든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시멘트 바닥이든 시커먼 물이든 왜 사람들은 뛰어들기 전에 자신이 신었던 것을 가지런하게 놓고 갈까? 댓돌.. #시/詩 2012.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