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송암의 범패
이리로 오게
태평소도 자바라도 태징도
이 도량에 와 잡가락을 올리게
천년을 넘게 내려온 소리*
흐으아에 흐흘 加
십 년을 익혀
오십 년을 공들이니
이제는 조금 맑아진 듯
좀 더 깊어진 듯
열아홉에 산에 와 머리 깎은 뒤
뜻도 모른 채 부른 홋소리가
침묵하는 저 산을 깨울 수 있음을
깨닫는 데 한 생이 걸렸으나
나는 아직도 미혹을 못 벗었으니
이리로 오게
짓소리에 사심이 들어 있는지
이 도량에 와 가르쳐주게
길게 끌면서 굴곡 이루게
한없이 되풀이하면서 그윽하게
산을 향한 소리가 소리를 낳지
내 마음이 네 마음을 닦지
조부님 죄 씻자고 애비가 머리 깎아**
애비의 만류에도 내가 머리 깎아
소리로 번뇌 다스린 이 산에서
내가 부른 회심곡에
몇 겁의 시간이 실려 있을까
다 부처께 귀의하기 위한
아니, 부처가 되기 위한 정진이었네
나무극락도사아미타불
다 나를 버리고 내가 되기 위한
몸부림이었네
길게 끌면서 사흘 낮밤
한없이 되풀이하면서 101번의 절차
홋소리에서 시작해 짓소리로 끝낼 터이니
와서들 듣게.
* 범패(梵唄)은 신라 흥덕왕 2년(830년) 당나라에 유학하였던 진감국사(眞鑑國師)에 의해 들어왔다고 한다.
** 박송암(朴松庵)의 조부는 친일 정치가 박영효(朴泳孝)로, 갑신정변 실패 후 일본으로 망명했다가 귀국하여 내무대신을 지냈으나 아들은 평생토록 찾지 않았다. 송암의 조모는 갑신정변으로 귀양을 가던 중 갑곶진 나루터에서 자살하였다.
범패: 절에서 주로 재(齋)를 올릴 때 부르는 노래. 범패는 '인도[梵]의 소리[唄]'라는 뜻이며, 범음(梵音)·어산(魚山)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는 노래로서 불교 이전의 브라만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한국의 범패에 관해서는 830년(太和 4) 당나라에서 돌아온 진감선사(眞鑑禪師)가 많은 제자들에게 범패를 가르쳤다는 기록이 있고, 《삼국유사》 권5의 월명사(月明師) 도솔가조(兜率歌條)에는 이보다 앞선 시기인 760년(경덕왕 19)에 범패를 언급한 내용이 보인다. 또 진감선사와 동시대 일본 승려가 쓴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 중국 범패를 당풍(唐風), 신라 범패를 향풍(鄕風),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간 범패를 고풍(古風)으로 언급한 것으로 미루어 8세기 무렵에 이미 한국에 범패가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절에서 각종 재(齋)를 올릴 때 써 왔으며, 가곡·판소리와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불가는 절에서 재를 올릴 때 부르는 노래와 절 밖에서 시주를 걷으며 축원하는 노래로 나뉘는데, 재를 올릴 때 부르는 노래는 다시 안채비소리와 겉채비소리로 나뉜다. 안채비소리는 절 안의 병법(秉法)이나 법주(法主)와 같은 학식이 많은 승려가 부르는 노래로, 유치(由致)나 청사(請詞) 같은 축원문을 요령(搖鈴)을 흔들며 낭송한다. 흔히 염불이라고도 하며 <착어성(着語聲)> <창혼(唱魂)> <유치성(由致聲)> <청문성(請文聲)> <편계성(?界聲)> <소성(疏聲)> <축원성(祝願聲)> 등이 있다. 겉채비소리란 범패를 전문으로 하는 외부 범패승의 노래로 큰 재를 올릴 때 초청하여 부르게 한다. 이 겉채비소리는 세련되고 복잡하여 음악적으로도 높이 평가되는데, 대개 리듬과 화성이 없는 단성선율이며 유장한 느낌을 준다. 이는 다시 그 음악적인 스타일에 따라 홋소리·짓소리·화청(和請)·회심곡으로 분류되며 다음과 같다.
① 홋소리: 범패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독창 또는 합창으로 부른다. 음악적 형식은 완전4도 위에 단3도를 쌓아올린 5음음계 구성으로 경상도민요와 비슷한 유형이다. 선율은 메나리목의 음구조와 비슷하며, 자유리듬인데 ‘자르러 드는 소리’ ‘새쫓는 소리’와 같은 특이한 가락이 삽입된다. 흔히 불리는 곡목으로 <사방찬(四方讚)> <도량게(道場偈)> <할향(喝香)> <합장게(合掌偈)> <개계(開啓)> <복청게(伏請偈)> <쇄수게(灑水偈)> <헌좌게(獻座偈)> <가영(歌詠)> <등게(燈偈)> 등이 있다. 사설의 대부분이 5언이나 7언의 한시이며, 앞의 2구는 뒤의 2구와 음악적으로 같거나 비슷하다.
② 짓소리: 홋소리를 다 배우고 난 범패승(梵唄僧)이 배우는 노래로, 한문으로 된 산문이나 산스크리트(Sanskrit)의 사설로 되어 있다. 반드시 합창으로 부르며 리더격인 장부(丈夫)가 입모양을 과장하거나 손가락으로 지휘하고, 중간에 허덜품(전주 또는 간주에 해당하는 독창 부분)이 있어 합창하는 이들을 쉬게 한다. 음악적으로 가장 중요시되는 부분이기도 한데, 선율은 자유리듬이며 5음음계의 구성이고, ‘자출이는 소리’ ‘잣는 소리’ ‘회향성(回向性)’ 등의 특유한 선율이 삽입된다. 짓소리의 종류가 예전에는 70여 곡이 넘었다고 하나 요즈음은 불교의식의 간소화 및 곡조 자체가 부르기 어려워서 대부분 사라지고 약 13곡 정도만이 전해지고 있다. 즉 <인성(引聲)> <거령산(擧靈山)> <관욕게(灌浴偈)> <목욕진언(沐浴眞言)> <단정례(單頂禮)> <보례(普禮)> <식령산(食靈山)> <두갑(頭匣)> <오관계(五觀界)> <영산지심(靈山至心)> <특사가지(特賜加持)> <거불(擧佛)> <삼남태(三?太)> 등이다. 사설은 산문으로 되어 있고, 홋소리에 비하여 억세고 꿋꿋한 발성법을지녔으며, 가사 한 자를 가지고 길게 끄는 특성이 있다.
③ 화청과 회심곡: 재를 올리는 여러 절차의 사이에 어장(魚場)에 모인 회중을 축원하기 위하여 부르는 노래이다. 대중이 잘 아는 선율에 불교의 교리를 사설로 쓴 노래로 포교의 한 방편이기도 하다. 선율은 경기도민요조, 특히 창부타령과 비슷하며 사설도 한국말로 쉽게 풀어서 쓰고 있다. 범패는 1973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되었는데 홋소리와 짓소리가 그 대상이다. 보유자로는 박희덕(朴喜德:법명 松庵)·장태남(張泰男:법명 碧應)·김명호(金明昊:법명 耘空)가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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