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두보초당에서

경호... 2012. 2. 8. 15:00

두보초당에서

  이 승 하

 

 

 

 

 4월의 바람은 여기서도 부드럽구나
 연못에는 연잎 연못가에는 기암괴석
 꾸며놓은 정원이야 후대 사람들의 것
 대나무 숲 그늘 아래서 땀을 닦는다
 다리 건너니 나타나는 초막 한 채
 서재도 만들고 응접실도 꾸며놓았다
 두보가 이런 좋은 집에서 살았을 리 없다

 부모 형제 일찌감치 뿔뿔이 흩어지고
 처자식 굶는 꼴 보다 못해 집 떠났던
 두보,
그대 깡마른 얼굴의 동상이 나를 보고
 더 서러워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닷새를 굶어본 적이 있냐고
 굶어 죽은 딸자식이 있냐고
 폐병에 중풍, 학질에 당뇨병
 여기에 한쪽 귀까지 먹은 사람이 있냐고

 도토리 줍고 마를 캐어 먹여 살린 식구
 거적 지붕 낡은 배 한 척이 집이었던
 두보,
 약초를 캐면서도 내다 팔면서도 시 생각하고
 동정호에 가서도 악양루에 가서도 시를 썼던
 오래 아파 아름다웠던 이여
 영광은 언제나 고난 뒤에 오는 것
 나 돌아가 많이 아파보아야 한다.

'#시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냥/김남조  (0) 2012.02.22
그대에게/최영미  (0) 2012.02.20
이화중선의 마지막 노래 /이승하  (0) 2012.02.08
박송암의 범패 /이승하  (0) 2012.02.08
개 같은 놈 여우 같은 여인/ 김복수   (0) 2012.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