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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김현옥

경호... 2015. 7. 30. 03:38

 

 

음악/ 김현옥

 

어떤 음악은 내 속에 들어와 떠날 줄 모르고

어떤 음악은 내 밖에서 머뭇대고

어떤 음악은 아예 내 곁으로 오지 않는다

어떤 음악은 애인처럼 잠드는 순간까지 듣고

어떤 음악은 잊혀졌다 문득 생각나면 듣고

어떤 음악은 우연히 거리에서 스치듯 듣고 잊어버린다

어떤 음악은 기억의 물감을 풀어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어떤 음악은 마음의 빛바랜 사진들을 들춰보게 하고

어떤 음악은 가슴의 수화기를 내리게 한다

어떤 음악은 마음으로 듣고 어떤 음악은 온몸으로 듣고

어떤 음악은 귀로만 듣는다 어떤 음악은 햇빛이고

어떤 음악은 소낙비고 어떤 음악은 바람이다

어떤 음악은 내 속으로 흘러와 그리운 길이 되고

꿈꾸는 산이 되고 건널 수 없는 강이 된다

어떤 음악은 내 밖으로 흘러가 기도하는 나무가 되고

침묵하는 섬이 되고 떠도는 구름이 된다

 

어느 순간, 내가 음악이 되는 때가 있다

그때 나는 그대에게 나를 들려주고 싶어진다

 

- 시집『그랑 블루』(문학세계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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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시인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시 없이는 살아도 음악을 삶에서 도려내고는 삶이 온전히 지탱될 것 같지 않다. 음악 없는 인생은 니체의 말마따나 착오 그 자체로 고장 난 인생이다. 음악은 인류 공통의 언어이면서「광장」의 작가 최인훈의 말처럼 ‘가장 순수한 영혼의 데생’이며, 그것으로 듬뿍 마음의 힘을 얻는다. 다양한 음악을 통해 자신의 정서를 표현하고 고통과 슬픔을 다스리며 살아가고 있다. 음악은 단순한 소리나 리듬이 아니다.

 

 미국의 한 연구팀이 시공간 추리력과 음악 간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려주었던 그룹 학생들 간의 시공간 추리력은 단 10분 만에 8~9점이나 향상되었다. 이 현상을 ‘모차르트 이펙트’라 부른다. 그리고 음악의 힘은 치료의 역할도 해낸다. 한국음악치료 학회에서는 ‘음악치료는 음악활동을 체계적으로 사용하여 사람의 신체와 정신기능을 향상시켜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음악의 전문 분야’라고 정의를 내렸다.

 

 ‘어떤 음악은 기억의 물감을 풀어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어떤 음악은 마음의 빛바랜 사진들을 들춰보게 하고, 어떤 음악은 가슴의 수화기를 내리게 한다’ ‘어떤 음악은 햇빛이고 어떤 음악은 소낙비고 어떤 음악은 바람이다’ 음악에 따라 사람의 정서반응이 달라지고 감정도 다양해진다. 그때그때의 감정과 어울리는 음악이 있고, 그 감정을 바꾸어 줄 수 있는 음악이 있다. 음악은 야만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는 힘이 있다. 암석을 연하게 하고, 떡갈나무를 휘게 하는 힘이 있다.

 

 ‘어떤 음악은’으로 반복되는 이 시의 나열적 질서는 시도 음악임을 암시하고 있다. 박용래의「저녁눈」이란 시가 있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이렇게 시가 음악이 되어 내 가슴 한구석에서 저미어올 때, ‘그때 나는 그대에게 나를 들려주고 싶어지’기도 할 것이다.

 

 

권순진

  

시를 위한 시/ 이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