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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주/ 권선희

경호... 2015. 7. 30. 03:40

 

탁주/ 권선희

 

제수씨요, 내는 말이시더. 대보 저 짝 끄트머리 골짝 팔남매 오골오골 부잡시럽던 집 막내요. 우리 큰 시야가 내캉 스무 살 차이 나는데요. 한 날은 내를 구룡포, 인자 가마보이 거가 장안동쯤 되는 갑디더. 글로 데불고 가가 생전 처음으로 짜장면 안 사줬능교. 내 거그 앉아가 거무티티한 국수 나온 거 보고는 마 바로 오바이트 할라 했니더. 희안티더. 그 마이 촌놈이 뭐시 배 타고 스페인꺼정 안 갔능교. 가가 그 노무 나라 음식 죽지 몬해 묵으면서 내 구룡포 동화루 짜장면 생각 마이 했니더. 생각해 보믄 울행님이 내 보고 샐쭉이 웃던 이유 빤한데 내는 그 촌시럽던 때가 우예 이리 그립겠능교. 마 살믄 살수록 자꾸 그리운기라요. 그기 첫사랑 고 문디가시나 그리운 것에 비할라요. 내 품은 가시나들 암만 이뻐도 울 행님 그 웃음 맨키야 하겠능교. 뭐시 이리도 급히 살았는지 내도 모르요. 참말로 문디 같은 세월이니더. 제수씨요, 무심한 기 마 세월이니더. 우예든동 한 잔 하시더…….

 

- 시집『구룡포로 간다』(애지,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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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도 사투리라도 지역마다 다 다르고 같은 경북이라도 대구를 기준으로 위아래와 동서의 사투리가 조금씩 차이가 난다. 어떤 말은 경상도 안에서도 서로 못 알아듣는 경우까지 있다. ‘대보’라 하면 구룡포 호미곶 일대로 지금의 행정구역으로는 포항시 남구 대보면을 일컫는다. 그러니까 여기서 구사된 말은 전형적인 경상도 동부지역 포항 사투리인 셈이다. 하지만 ‘~이시더’ ‘~니더’ 따위는 경북 북부지방에서도 쓰는 말이고, ‘~능교’는 대구를 포함해 경상도 거의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방언이다.

 

 이 텁텁한 탁주 같은 넋두리들을 들어주고 있는 청자는 아마 권선희 시인 자신으로 짐작되는데, 가만 보면 시인의 주변엔 이런 인적자원(?)들이 꽤나 풍부한 것 같다. ‘덕수씨’를 비롯해 그녀의 시집에는 어디를 펼치더라도 구룡포 바닷가 사람들의 삶이 진하게 녹아있고, 그 애환의 신산스러운 곡조들로 빼곡하다. 아무리 둘레에 부존자원이 많이 있어도 아무나 그 이웃들을 생명력 있는 언어로 밀도 있게 그려내지는 못한다. 권선희 시인을 '구룡포 시인'이라 부르는 이유는 그 그림들을 우리에게 선명히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의 원래 고향은 강원도 춘천이라 들었다. 그런 그녀가 구룡포에 살면서 르포작가마냥 구석구석 바닥을 훑으며 써내려간 다큐멘터리가 독자에게 큰 재미와 감동을 준다. 그들과 함께 부대끼고 호흡하면서 전해주는 서정적 진술은 마치 ‘인간극장’을 보는듯하여 때로는 눈시울을 적시기도 한다. 이 시에서도 한가한 어촌의 팔남매 오글오글한 집의 막내로 태어난 화자가 스무 살이나 차이가 나는 맏형을 그리워하며, 그 형이 지난 세월에 사준 다 불어터진 ‘동화루 짜장면’의 입맛을 다시며 풀어내는 곡절들을 다 듣자면 필시 눈물이 찔끔 나오지 싶다. 그러니 그걸 급 수습하려면 ‘마카다’ ‘우예든동’ 탁주 한 사발씩 들이키며 울대를 미리 적실 도리밖에...

 

 

권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