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 스님, 대우 스님의 한마디에 몰록 깨닫다
▲임제 스님은 황벽 스님의 말씀을 따라 대우 스님에게 가서 한마디 말에 깨달음을 얻었다. 사진은 종광 스님의 강의 모습.
首座先到和尙處云, 問話底後生이 甚是如法하니 若來辭時에는 方便으로 接他하소서 向後穿鑿하야 成一株大樹하야 與天下人作?凉去在리이다 師去辭한대 黃檗이 云, 不得往別處去요 汝向高安灘頭大愚處去하라 必爲汝說하리라.
首座先到和?處云。
問話底後生。甚是如法。若來辭時。方便接他。
向後穿鑿成一株大樹。與天下人作??去在。
師去辭黃蘗。蘗云。
不得往別處去。汝向高安灘頭大愚處去。必?汝說。
해석)
목주 스님이 먼저 황벽 스님의 처소에 이르러 말했다.
“법을 여쭈러 왔던 후학은 아주 여법합니다. 하직 인사를 하기 위해 스님께 들으면 방편을 써서 후학을 잘 맞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잘 깎고 다듬어서 한그루의 큰 나무가 된다면 천하 사람들을 위한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게 될 것입니다.”
임제 스님이 가서 하직인사를 드리자 황벽 스님이 말했다.
“다른 곳으로 가지 말고 반드시 고안의 여울목에 있는 대우 스님을 찾아가도록 하라. 반드시 너를 위해 말씀을 해 주실 것이다.”
강의)
1978년 송광사 선방에서 정진을 한 적이 있습니다. 송광사 선원에 앉아 있으면 앞으로 법당과 도량이 한 눈에 들어오고 그 뒤로는 또 조계산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하루는 선원에서 열심히 참선을 하고 있던 중 갑자기 법당과 도량, 그 앞의 조계산까지 전부 사라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아! 이것이 깨달음이로구나.” 그리고는 당시 방장 스님이셨던 구산 스님께 부리나케 달려갔습니다.
“스님 제가 깨달았습니다.” 그러자 구산 스님이 묻습니다. “그래, 무엇을 깨달았는고.”
“일체가 탕연공적(蕩然空寂)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자 구산 스님이 슬며시 제 손을 붙잡더니, 방석 밑에 숨겨둔 몽둥이로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아프냐.” “아픕니다.” 그러자 구산 스님이 말씀하십니다.
“방금 탕연공적하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주관과 객관이 모두 사라졌을 터인데 어떻게 아플 수 있겠는가. 너는 진실하지 않다.”
제가 오래된 기억을 들려주는 이유는 바로 황벽 스님과 임제 스님의 관계를 통해 선문(禪門)에서 말하는 스승과 제자의 아름다운 인연을 엿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때 구산 스님께서 저를 제대로 지도를 해주지 않으셨다면 저는 미혹을 깨달음으로 착각하고 살았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공부는 반드시 지도해주시는 눈 밝은 스승이 계셔야 하는 것입니다. 황벽 스님의 회상에서 수좌로 있는 목주 스님은 스스로의 역할을 참으로 잘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보는 안목 또한 탁월합니다. 만약 임제 스님이 목주 스님이라는 좋은 선배를 만나지 못했다면 향기로운 이름을 세상에 전하지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목주 스님의 말을 듣고 하직인사를 하러 온 임제 스님에게 황벽 스님은 고안의 여울목에 있는 대우 스님의 처소로 가라고 말합니다.
탄두(灘頭)의 탄(灘)은 ‘여울’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탄두는 강의 여울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고승전’에도 대우 스님은 여울목에서 사공노릇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아마 강가에서 사공을 하며 수행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師到大愚한대 大愚問, 什?處來오 師云, 黃檗處來니다 大愚云, 黃檗이 有何言句오 師云, 某甲이 三度問佛法的的大意라가 三度被打하니 不知某甲이 有過닛가 無過닛가 大愚云, 黃檗이 與?老婆하야 爲汝得徹困이어늘 更來這裏하야 問有過無過아
師到大愚。大愚問。什?處來?。
師云。黃蘗處來。
大愚云。黃蘗有何言句?。
師云。某甲三度問佛法的的大意。三度被打。不知某甲有過無過?。
大愚云。黃蘗與?老婆?汝得徹困。更來這裏問有過無過?
해석)
임제 스님이 대우 스님에게 이르자 대우 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오는 길인가?”
임제 스님이 말했다. “황벽 스님의 처소에서 왔습니다.”
대우 스님이 다시 물었다. “황벽 스님은 어떤 말을 하시던가?”
임제 스님이 대답했다. “제가 세 번이나 불법의 대의를 물었다가 세 번을 얻어맞았습니다. 저에게 어떤 허물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저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대우 스님이 말했다. “황벽 스님이 이렇게 노파심을 내며 너를 위해 정말로 정성을 다해 가르쳤건만 너는 나에게까지 와서 허물이 있는지 없는지 묻는가?”
강의) 노파(老婆)는 노파심(老婆心)을 말합니다. 정성을 다하여 손자를 걱정하며 보살피려는 할머니의 마음입니다. 황벽 스님이 임제 스님을 때린 것은 이런 자애로운 할머니의 마음이었음을 대우 스님은 일깨우고 있습니다. 황벽 스님이 너를 너무나 사랑해서 손자를 보살피는 할머니의 심정으로 정말 정성을 다해 가르쳤는데 너는 이곳에 와서 허물이나 따지고 있느냐며 핀잔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선어록에는 노파선(老婆禪)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황벽 스님이 임제 스님을 가르쳤던 그런 정성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스스로 알아야 할 것을 불필요하게 너무 자세히 가르치는 것에 대한 비판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師於言下에 大悟云, 元來에 黃檗佛法이 無多子니다 大愚?住云這尿牀鬼子야 適來에는 道有過無過러니 如今에 却道黃檗佛法이 無多子라하니 ?見箇什?道理오 速道速道하라 師於大愚脅下에 築三拳한대 大愚托開云, 汝師는 黃檗이요 非干我事니라
師於言下大悟云。元來黃蘗佛法無多子。
大愚?住云。這尿床鬼子。適來道有過無過。如今?道黃蘗佛法無多子。爾見箇什?道理?。速道 速道。
師於大愚脅下築三拳。
大愚托開云。汝師黃蘗。非于我事。
해석)
임제 스님이 이 한마디 말에 크게 깨달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아 원래 황벽 스님의 불법이 이런 것이었군요.”
그러자 대우 스님이 멱살을 움켜쥐며 말했다. “이 오줌싸개 같은 놈아. 조금 전에 허물이 있는지 없는지 말하더니, 이제 와서 도리어 황벽 스님의 불법이 이런 것이었군요 라고 하다니, 너는 도대체 무슨 도리를 보았느냐. 빨리 말해라. 어서 빨리 말해봐.”
그러자 임제 스님이 대우 스님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세 번 쥐어박았다.
대우 스님이 움켜쥐었던 손을 놓고 밀치면서 말했다. “너의 스승은 황벽이다. 내가 간섭할 바가 아니다.”
강의)
임제 스님은 대우 스님의 한마디 말에 깨달았습니다. 이미 황벽 스님 회상에서 푹 익어서 개화의 시기만을 남겨두고 대우 스님에게로 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임제 스님이 몰록 깨달은 다음에 “황벽불법(黃檗佛法)이 무다자(無多子)”라고 말합니다.
“황벽 스님의 불법이란 것이 바로 이것이군요.” 이런 뜻입니다.
전통적으로는 “황벽 스님의 불법이라 해봐야 별 것 아니군”이라고 해석해 왔습니다. 그러나 동의 할 수 없습니다. 스승인 황벽 스님의 불법이 별 것이 아니라면 황벽 스님의 불법을 이은 임제 스님의 불법은 별 것이겠습니까?
사실 ‘무다자(無多子)’라는 말은 중국 당나라 때의 속어입니다. 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렸다가 우연한 기회에 다시 찾게 되면 우리는 어떻게 말합니까? “아! 여기에 있었구나.” 이렇게 말합니다.
무다자(無多子)는 그럴 때 쓰는 말입니다. “아! 황벽 스님의 불법이 바로 이것이었군요.” 이런 감탄사입니다.
물론 무다자(無多子)를 많은 말이 필요 없는 간단명료한 것으로 풀이해도 크게 어긋나지 않습니다.
師辭大愚하고 却回黃檗하니 黃檗이 見來하고 便問, 這漢이 來來去去에 有什?了期리요 師云, 祇爲老婆心切이니다 便人事了하고 侍立하니 黃檗이 問, 什?處去來오 師云, 昨奉慈旨하야 令參大愚去來니다 黃檗이 云, 大愚有何言句오 師遂擧前話한대 黃檗云, 作?生得這漢來하야 待痛與一頓고 師云, 說什?待來오 卽今便喫하소서 隨後便掌하니 黃檗이 云, 這風顚漢이 却來這裏?虎鬚로다 師便喝하니 黃檗이 云, 侍者야 引這風顚漢하야 參堂去하라
師辭大愚。?回黃蘗。
黃蘗見來便問。這漢來來去去有什?了期?。
師云。??老婆心切。
便人事了 侍立。黃蘗問。什?處去來?。
師云。昨奉慈旨。令參大愚去來。
黃蘗云。大愚有何言句?。
師遂?前話。
黃蘗云。作?生得這漢來。待痛與一頓。
師云。說什?待來。?今便喫。隨後便掌。
黃蘗云。這風?漢。?來這裏?虎鬚。
師便喝。
黃蘗云。侍者引這風?漢參堂去。
해석)
임제 스님이 대우 스님을 하직하고 다시 황벽 스님에게 돌아갔다.
이를 본 황벽 스님이 말했다. “이놈, 왔다 갔다 하기만 하면 무슨 깨달음을 기약할 수 있겠느냐.”
이에 임제 스님이 말했다. “다만 스님의 노파심이 간절했음을 제가 알았기 때문입니다.”
임제 스님이 인사를 하고 나서 곁에 서자 황벽 스님이 물었다. “어디 갔다 왔느냐?”
임제 스님이 말했다. “지난번에 자비로운 가르침을 받들어서 대우 스님을 참배하고 왔습니다.”
그러자 황벽 스님이 말했다. “대우 스님이 무슨 말을 하던고.”
이에 임제 스님은 앞서 대우 스님의 처소에서 있었던 일들을 모두 이야기했다.
황벽 스님이 말했다. “어떻게 하면 대우 이놈을 기다렸다가 따끔하게 한방 먹일 수 있을까?”
임제 스님이 말했다. “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뭐가 있겠습니까. 지금 바로 한방 먹이시지요.” 그리고는 바로 손바닥으로 뺨을 후려쳤다.
황벽 스님이 말했다. “이 미친놈이 도리어 이곳에 와서 호랑이 수염을 뽑는구나.”
그러자 임제 스님이 곧바로 고함(喝)을 질렀다.
황벽 스님이 말했다. “시자야, 이 미친놈을 끌고 가서 선방에 들이도록 해라.”
강의) 행장 첫 대목에서의 임제 스님의 모습은 순수함과 순박함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대우 스님을 만나고 돌아온 임제 스님은 스승의 뺨을 후려치는 호랑이로 변해버렸습니다. 어떤 깨달음을 얻었기에 이렇게 변했는지 공부가 부족한 우리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그 유명한 임제의 할(喝)이 등장합니다.
흔히 선문에서는 임제 할(喝), 덕산 방(棒)이라고 합니다. 가장 치열하게 제자들을 가르치는 방편입니다. 그래서 뛰어난 선지식들은 방할(棒喝)이 자재합니다. 누구나, 그리고 아무에게나 고함치고 몽둥이를 휘두르면 안 됩니다. 사량분별(思量分別)과 편견(偏見)을 부셔야하는 절묘한 때를 맞춰 방과 할을 사용해야 합니다. 새끼가 알 속에서 나오기 위해 안에서 껍질을 쪼는 그 시점에 밖에서 어미닭이 함께 알을 쪼아주는 바로 줄탁동시(?啄同時)의 때를 말합니다. 이렇듯 선문에서 스승과 제자의 만남은 중요합니다. 선(禪)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 속에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선에 드라마틱한 활력과 반전이 있는 것은 이런 생명력 때문입니다.
임제 스님의 말을 들은 황벽 스님은 대우 스님을 한방 먹여야겠다고 말합니다. 쓸데없이 여러 말을 했다는 것이 이유이지만 내심 대우 스님이 스스로의 역할을 참 잘해줬구나 하는 칭찬과 고마움의 표시일 것입니다. 임제 스님의 반응이 재미있습니다. 대우 스님을 지금 바로 때려주자며 황벽 스님의 뺨을 올립니다. 아마도 쓰다듬은 수준이겠지요. 황벽 스님이나 대우 스님이나 임제 스님에게는 같은 스승입니다. 곧 황벽 스님이 대우 스님이고 대우 스님이 황벽 스님입니다. 따라서 임제 스님이 황벽 스님의 입장에서 황벽 스님을 대우 스님으로 보고 한 방 먹인 것입니다.
..
40-2 황벽의 불법이 별것이 아니다
38.2 대우(大愚)에게 가다
首座 先到和尙處云,
수좌가 먼저 황벽스님의 처소에 가서 말하였다.
수좌는 먼저 황벽에게 가서 말했다.
수좌스님이 먼저 조실스님 처소에 와서 말씀드렸다.
問話底後生이 甚是如法하니 若來辭時에는 方便으로 接他하소서
“법을 물으러 왔던 후배가 대단히 여법(如法)합니다. 만약 와서 하직 인사를 드리거든 방편으로 그를 이끌어 주십시오.
“이번에 법을 물은 젊은 스님은 대단히 순수하고 진지하오니, 만일 와서 하직인사를 하거든 잘 지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법을 묻던 후배가 매우 법답습니다. 만약 와서 하직 인사를 드리거든, 방편으로 이끌어 주십시오.
向後穿鑿하야 成一株大樹하야 與天下人作蔭凉去在리이다
앞으로 잘 다듬으면 한 그루의 큰 나무가 되어 천하 사람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드리울 것입니다.”
장차 제 스스로 단련하면821] 한 그루의 큰 나무가 되어서 천하의 모든 사람을 위하여 시원한 그늘을 이룰 인물입니다.”
정진해서 뒷날 한 그루 큰 나무가 되어 천하 사람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드리울 것입니다.”
師去辭한대 黃檗이 云,
임제스님이 가서 하직 인사를 드리니 황벽스님이 말씀하였다.
임제 스님이 방장에 들어와 하직인사를 드린 즉, 황벽 스님은 말했다.
스님이 가서 하직 인사를 드리자 황벽스님께서 말씀하셨다.
不得往別處去요 汝向高安 灘頭大愚處去하라 必爲汝說하리라
“다른 곳으로 가지 말고 자네는 고안의 물가에 사는 대우스님 처소에 가도록 하여라. 반드시 너를 위하여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그대는 다른 곳으로 가지 말고 고안탄두(高安灘頭)의 대우(大愚)822] 스님에게 가게. 반드시 그대를 위해 유익한 법(法)을 설해 주실 것이네.”
“다른 곳으로 가지 말고, 고안(高安) 여울가의 대우(大愚)스님 회하로 가도록 하여라. 너에게 반드시 무어라고 말해 줄 것이다.”
821]천착(穿鑿) : 구멍을 뚫음. 여기서는 스스로를 단련하여 원숙하게 성장시키는 것.
822]고안탄두대우(高安灘頭大愚) : 고안(高安)은 홍주(洪州) 서주부(瑞州府)에 있다. 탄두(灘頭)란 격류(激流)가 흐르는 물가. 아마도 강서(江西)의 서주부(瑞州府)에 있는 금강(錦江)의 북안(北岸)인 듯하다.《전등록》10의 목록에는 대우(大遇)가 귀종지상(歸宗智常 ;〈14-28〉참조)의 법을 이은 사람으로 나와 있다. 상세한 전기는 불명(不明 ; 본서의 해제〈임제의현의 생애와 사상〉을 참조하기 바람.〉
【무비스님 강설】
임제의 그릇됨을 알아보고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시는 목주스님의 안타까워하는 마음과 그 노력이 눈에 선하다. 선정후교(先情後敎)라고 했던가. 사람을 제도함에 있어서 먼저 뜨거운 애정을 가지고 그 뒤에 가르쳐야 한다는 뜻이다. 임제라는 걸출한 선지식을 만들기까지 황벽스님 못지않은 목주스님의 밝은 안목과 후배를 위한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임제를 논한다면 반드시 목주스님을 잊어서는 안된다. 누군가가 있어서 사람을 이렇게 이끌어 주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목주스님에게 모든 것을 다 동원해서 공양, 공경, 존중, 찬탄해 드리고 싶다.
師到大愚한대 大愚問, 什?處來오 師云, 黃檗處來니다
임제스님이 대우스님에게 이르자 대우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황벽스님의 처소에서 왔습니다.” 임제 스님은 대우 스님에게 갔다. 대우 스님은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임제 스님은 말했다. “황벽 스님의 문하에서 왔습니다.”
스님이 대우스님에게 이르자 대우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황벽스님의 회하에서 왔습니다.”
大愚云, 黃檗이 有何言句오
“황벽스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던가?”
“황벽 스님에게 무슨 지도를 받았는가?” 823]
“황벽스님이 무슨 말을 하던가?”
師云, 某甲이 三度問佛法的的大意라가 三度被打하니
“저가 세 번이나 불법의 분명한 대의를 물었다가 세 번 얻어맞기만 했습니다.
임제 스님은 대답했다. “제가 세 번 불법(佛法)의 적실한 대의(大意)를 물었다가 세 번 모두 얻어맞았습니다.
“제가 세 번 불법의 긴요한 뜻을 묻다가 세 번을 다 얻어맞았는데
不知某甲이 有過닛가 無過닛가
저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저에게 허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저에게 무슨 잘못이라도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저에게 허물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大愚云, 黃檗이 與?老婆하야 爲汝得徹困이어늘 更來這裏하야 問有過無過아
“황벽스님이 그토록 노파심이 간절하여 그대를 위해 뼈에 사무치게 하였거늘824] 여기까지 와서 허물이 있는지 없는지를 묻는가?
대우 스님은 말했다. “황벽 스님이 그렇게도 간절하신 정성으로825] 피곤하심을 무릅쓰고 그대를 위하여 수고해 주신 것이다. 그런데 여기까지 와서 ‘저에게 잘못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고 묻는단 말이야?”
“황벽스님이 그토록 간절한 노파심으로 너 때문에 수고하였는데 다시 여기까지 와서 허물이 있고 없고를 묻느냐?”
823] 황벽유하언구(黃檗有何言句) :「황벽에게서 무슨 가르침을 받았는가?」언구(言句)는 언교(言敎).
824]? 얻어맞는 순간 아픔을 안다는 분별이 있었겠는가? 사량분별할 틈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황벽이 사무치도록 친절하고 자세하게 가르친 것이다.
825]황벽여마노파(黃檗與?老婆) 운운 :「황벽 스님은 할머니 같은 친절함으로 너에게 일러주었거늘.」철곤(徹困)은 뼈가 부러지도록 힘든 모양.《조당집》7 설봉(雪峰)의 장,《전등록》9 위산의 장,《현사광록(玄沙廣錄)》에 같은 구절이 보인다.
【무비스님 강설】
임제는 이렇게 착하고 순수하고 선량한 사람이다. 불법에 대해서 있는 정성을 다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자신을 화반탁출(和盤托出)하여 선지식에게 드러내는 사람이다.
“단지 불법을 물었을 뿐인데 저를 그토록 때리니 저에게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이러한 마음의 청정무구하고 순일무잡하며 더없이 순수한 임제를 한번 상상해보자.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가을 하늘이요, 이른 봄의 여리고 여린 새싹이다. 갓 태어난 어린 아기다.
그런데 대우스님의 대답은 너무나도 기상천외하다. 그렇게 두들겨 맞고도 아직 그 잘못을 몰라 마냥 죄송한 마음으로 전전긍긍할 뿐인데, “황벽스님이 그렇게도 노파심절로 그대를 위하여 뼈에 사무치는 사랑을 베풀었단 말인가?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여기까지 와서 잘못이 있고 없는 것을 묻는가?”
참으로 어느 정도 정진을 한 사람이면 여기서는 눈을 뜨게 될 곳이다. 어찌 임제뿐이겠는가?
師於言下에 大悟云, 元來에 黃檗佛法이 無多子니다
임제스님이 그 말끝에 크게 깨달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황벽의 불법이 간단하구나.”
임제 스님은 이 말을 듣고 크게 때달아 이렇게 중얼거렸다. “황벽의 불법(佛法)은 원래 단순하구나.” 826]
스님은 말 끝에 크게 깨치고 말하였다. “황벽스님의 불법이 원래 별 것 아니군요.”
大愚 ?住云 這尿牀鬼子야 適來에는 道有過無過러니
대우스님이 멱살을 움켜쥐며, “이 오줌싸개 같은 놈! 방금 허물이 있느니 없느니 하더니
이 말을 들은 대우 스님은 임제 스님의 멱살을 움켜쥐고 말했다. “이 오줌싸개 같은 녀석! 827]방금 잘못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고 징징 짜던 녀석이
대우스님은 멱살을 움켜쥐고 말하였다. “이 오줌싸개야. 아까는 허물이 있느니 없느니 하더니,
如今에 却道黃檗佛法이 無多子라하니 ?見箇什?道理오 速道速道하라
이제 와서는 도리어 황벽스님의 불법이 간단하다고 하느냐? 그래 너는 무슨 도리를 보았느냐? 빨리 말해봐라, 빨리 말해!” 하였다.
이제는 황벽의 불법이 단순한 것이라고 큰소리 치니 너는 무슨 도리를 보았느냐? 빨리 이르라, 일러!”
이제 와서는 다시 황벽의 불법이 별 것 아니라고 말하는데, 그래 너는 무슨 도리를 보았느냐? 빨리 말해라. 빨리 말해!”
師於大愚脅下에 築三拳한대 大愚托開云, 汝師는 黃檗이요 非干我事니라 이에 임제스님이 대우스님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세 번이나 쥐어박았다.828] 대우스님이 임제스님을 밀쳐 버리면서 말하였다. “그대의 스승은 황벽이다.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다.” 이에 임제 스님은 대우 스님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세 번 쥐어박았다. 대우 스님은 그를 밀쳐 버리면서 말했다. “그대는 황벽 스님을 스승으로 모셔야 한다. 그런 일은 내게 아무 관계가 없다.”
스님은 대우스님의 옆구리를 세 번 주먹으로 쥐어박자, 대우스님은 밀어젖히면서 말하였다. “너의 스승은 황벽이니, 나와는 상관이 없다.”
826]원래황벽불법무다자(元來黃檗佛法無多子) :「황벽의 불법은 원래 단순하구나, 조작이 없는 것이구나」라는 뜻. 종래의 해석으로는,「황벽의 불법은 원래 많은 것이 아니구나」라고 읽었는데 이것은 맞지 않다. 무다자(無多子)라는 말은 수량이나 가치(價値)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불교의 간명직재(簡明直裁)한 진리를 뜻하는 것.
827]요상귀자(尿牀鬼子) : 오줌싸개. 귀자(鬼子)는 어린아이를 꾸짖는 말.
828]? 여기서 임제스님이 평생 천형(天刑)처럼 지고 다니던 짊, 진정한 불법의 과제를 풀었다. 임제스님이 황벽스님에게 사정없이 얻어맞았을 때 피아가 없고 자타가 없고 아픈 사람과 아픔을 느끼는 사람이 몰록 끊어진 그 순간의 경계를 드디어 깨닫게 된 것이다.
【무비스님 강설】
“황벽의 불법이 간단하구나.” 그렇다. 황벽의 불법만 간단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불법도 간단하다.
엉터리 부연 설명을 하면, 아무런 조작이 없다는 뜻이다.
닦은 것도 아니고 깨달은 것도 아니고 증득한 것도 아니다. 오랜 세월동안 육도만행을 닦아서 이루어 진 것이 아니다. 본래 그 자리에 그렇게 있는 것이다. 전혀 손을 댈 것이 없는 물건이다. 그저 사물을 보고 소리를 듣는 일이다. 느끼고 아는 일이다. 식사하고 대소변 보는 일이다. 웃을 때 웃고 울 때 우는 일이다. 즐거우면 즐거워하고 아프면 아파하는 일이다. 세존이 꽃을 드니 가섭이 미소하는 일이다. 그 사실 외에 다른 별 것은 아니다.
대우스님이 다그치는 질문에 임제의 대답이 또한 걸작이다. 대우스님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세 번 쥐어박았다. 임제스님의 불법은 더 간단하다. 스승에게서 간단하게 깨달아서 일까? 본래로 불법은 간명직절하다. 시끄럽지 않고 매우 고요하다. 저절로 그러하다. 그러면서 유현하다. 고고하다. 선문답에서 이처럼 철두철미하게 맞아 떨어진 일은 보기 드물다. 황벽스님에게서 흠씬 얻어맞은 값을 이렇게 멋지게 하였다. 참으로 총명하고 열리한 사람이다. 영혼이 밝은 거울처럼 환한 사람이다. 가을 하늘처럼 끝없이 툭 트여있는 사람이다.
40-3 호랑이 수염을 뽑는 구나
38.3 임제, 호랑이 수염을 만지다
師辭大愚하고 却回黃檗하니 黃檗이 見來하고 便問,
임제스님이 대우스님을 하직하고 다시 황벽스님에게 돌아오자 황벽스님께서 보고는,
임제 스님은 곡 대우 스님과 작별하고 황벽 스님에게로 돌아갔다.829] 황벽 스님은 임제 스님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물었다.
스님은 대우스님을 하직하고 다시 황벽스님께로 돌아오자,
這漢이 來來去去에 有什?了期리요
“이놈이 왔다 갔다 하기만 하니 언제 공부를 마칠 날이 있겠느냐?”
“너는 이렇게 늘 왔다갔다만 하니830] 어느 때 깨달아 마치겠느냐?”
“이 놈이 왔다갔다 하기만 하니 언제 마칠 날이 있겠느냐?”
師云, 祇爲老婆心切이니다
“오직 스님의 간절하신 노파심 때문이옵니다.”
임제 스님은 말했다. “오직 스님의 정성이 간절하시기 때문입니다.”
스님이 말하였다. “오직 스님의 간절하신 노파심 때문이옵니다.”
便人事了하고 侍立하니 黃檗이 問, 什?處去來오
인사를 마치고 곁에 서 있으니 황벽스님이 물었다. “어디를 갔다 왔느냐?”
그리고는 바로 문안인사를 드리고서 시립(侍立)해 섰다. 황벽 스님은 물었다. “어디 갔다왔느냐?”
인사를 마치고 곁에 서 있으니, 황벽스님이 물었다. “어디를 갔다 왔느냐?”
師云, 昨奉慈旨하야 令參大愚去來니다
“지난번에 스님의 자비하신 가르침을 듣고 대우스님을 뵙고 왔습니다.”
임제 스님이 대답했다. “지난번 스님의 자비하신 가르침을 받아서 대우 스님을 뵙고 왔습니다.”
“지난번에는 스님의 자비하신 가르침을 듣고, 대우스님을 뵙고 왔습니다.”
黃檗이 云, 大愚有何言句오
“대우가 무슨 말을 하더냐?”
황벽 스님은 말했다. “대우 스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던가?”
“대우가 무슨 말을 하더냐?”
師遂擧前話한대 黃檗云, 作?生得這漢來하야 待痛與一頓고
임제스님이 지난 이야기를 말씀드리니 황벽스님이 말하였다. “어떻게 하면 대우 이놈을 기다렸다가 호되게 한 방 줄까?”
임제 스님은 거기서 있었던 이야기를 모두 아뢰었다. 황벽 스님은 이를 듣고 난 뒤에 말했다. “이 사람 대우를 어떻게든 붙잡아서 한 방망이 단단히 먹이지 않으면 안 되겠군.” 831]
그리하여 앞의 이야기를 말씀드리니 황벽스님이 말씀하셨다. “어떻게 하면 이 놈의 작자가 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호되게 한 방 줄까?”
師云, 說什?待來오 卽今便喫하소서 隨後便掌하니
“무엇 때문에 기다린다 하십니까? 지금 바로 한방 잡수시지요.” 하며 바로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임제 스님은, “무엇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까? 지금 바로 한 방망이를 먹이시지오.” 하고는 즉시 손바닥으로 갈겼다.
“오기를 기다릴 것까지야 있으십니까? 지금 곧 잡수십시오.” 하고는 바로 빰을 올려붙이니
黃檗이 云, 這風顚漢이 却來這裏?虎鬚로다
황벽스님께서 “이 미친놈이 다시 와서 호랑이의 수염을 뽑는구나.” 하였다.
황벽 스님은 말했다. “이 미친놈! 여기 돌아와서는 호랑이 수염을 만지는구나.”
황벽스님이 말씀하셨다. “이 미친 놈이 다시 여기 와서 범의 수염을 만지는구나.”
師便喝하니 黃檗이 云, 侍者야 引這風顚漢하야 參堂去하라
그러자 임제스님이 “할”을 하였다. 황벽스님이 “시자야, 이 미친놈을 데리고 가서 선방에 집어넣어라.” 하였다.
임제 스님은 바로 “할” 했다. 황벽 스님은 말했다. “시자야, 이 미친놈을 선방으로 데리고 가거라.”
스님이 ‘악!’ 하고 할을 하자 황벽스님이 말씀하셨다. “시자야. 이 미친 놈을 선당으로 데려가서 참례하게 하여라.”
829]각회(却回) : 물러나서 돌아옴.
830]저한래래거거(這漢來來去去) 운운 :「이 녀석, 이렇게 왔다갔다만 하니 언제 깨달아 마치겠느냐?」라는 뜻.
831]작마생득저한래(作?生得這漢來) 운운 :「어떻게든 이 사람을 붙잡아서 한 방망이 먹여야겠군.」
득(得)은「붙잡다」라는 뜻. 래(來)는 득(得)에 붙는 일종의 조동사(助動詞). 득은 미래형의 원망(願望)을 나타내는 조동사. 욕(欲), 요(要)와 같은 용법.
【무비스님 강설】
임제는 태산의 무게 같은 불법의 대의라는 짐을 짊어지고 대우스님에게로 가서 거기서 그 짐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돌아왔다. 얼마나 즐거웠겠는가. 아마도 발이 땅에 닫지 않고 날듯이 왔을 것이다. 불법을 물으러 갔다가 호되게 얻어맞은 황벽스님에게 보란 듯이 돌아와 “이 미친놈이 다시 와서 호랑이의 수염을 뽑는구나.”라는 멋진 인가를 받았다. 거기에 더하여 임제는 “할”로써 쐬기를 밖아 버렸다. 너무나 간단하게. 황벽스님의 불법이 보래로 간단하기[無多子] 때문이다. 이렇게 대장부의 할 일을 다 마치고 선방에 앉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底 밑 저, 이를 지,【동사】이르다. 도달하다.그치다. 정지하다. 정체(停滯)하다.
【대명사】1 어떤. 무엇.2 이. 이것. 여기. 3. 이와 같다. 이렇다.
【명사】 1 (∼?, ∼子) 밑. 바닥. 2. (∼?, ∼子) 속사정. 속내. 내막. 내정(內情). 저의(底意). 6. 말(末). 끝. 8. (∼子) 나머지.
甚是 : 대단히
如法 ①법령(法令) 또는 법식(法式)에 맞음. 합법(合法) ②여래(如來)의 교훈(敎訓)에 맞음 .마땅히 지키고 따라야 할 법령이나 규범에 맞음,
方便 ①그때그때의 경우(境遇)에 따라 일을 쉽고 편하게 치를 수 있는 수단(手段)과 방법(方法) ②불보살(佛菩薩)이 중생(衆生)을 제도(濟度)하기 위(爲)해 쓰는 묘한 수단(手段)
[형] 편리하다. . (형편에) 알맞다. 적당하다. 적합하다.(돈이) 넉넉하다. 푼푼하다.
[동]편의를 꾀하다[도모하다]. [명]편의. 수단. 방편. 방법.
?? : 陰? 【형용사】그늘지고 서늘하다. 【명사】그늘지고 서늘한 곳.
? 덮을 음 1. 덮다 2. 보호하다(保護--), 감싸다 3. 그늘 4. 음직(蔭職)
去在 : 예언을 가리키는 문장 끝에 사용.
去 : “去”(“去也”/“去在”)는 문장 끝에 위치하여 動作 行爲가 곧 발생함을 표시하는데,“去”는 助詞로 역시 虛詞에 속한다.
不得 [동사] 얻을 수 없다. 얻지〔터득하지〕 못하다. [동사] (어떤 압력이나 제한 때문에) 불가능하다. …할 수 없다. …해서는 안 된다.
[접미사] (동사·형용사 뒤에 쓰여) …해서는 안 된다. …하면 안 된다. …할 수가 없다. / 1. (…해서는) 안 된다. 2. 할 수가 없다.
別處 다른 곳.
灘頭 : 하천·호수·해안의 모래사장, 하천, 호수
與? : = 與沒 與摩 異沒 伊沒. 이와 같은, 이처럼.
老婆 : 老婆心 남의 일에 대(對)하여 지나치게 염려(念慮)하는 마음
徹困 :진실로 사무치도록 애쓰는 것.
這裏 【대명사】이곳. 여기.
元來 ①본디 ②전(前)부터 ③원판(原板) . 原?。本?。一向
無多子 많지 않음.
鬼子 : 놈. [사람을 욕하는 말] 외국의 침략자에 대한 욕설.
? . 물리치다 2. 물러나다 3. 피하다(避--) 4. 돌아가다 5. 그치다, 쉬다, 멎다 6. 사양하다(辭讓--) 7. 뒤집다 8. 도리어 9. 반대로(反對-) 10. 어조사(語助辭) 11. 발어사 12. 틈 .
却의 본자. 却不是 그러나 그렇지 않다, 본래부터 그렇지 않다. 却不道 …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설마…는 아니겠지?, 뜻밖이다
了期 [명사][문어] 일이 끝나는 시간.
? (?) 다만 지 [부사] 단지. 다만. 오직. 겨우. 한갓. [‘??(j?nj?n)’에 상당함] [동사] 오직〔단지·겨우〕 …밖에 없다. 오직 …이다.
對於這個公案,我們且提出三個問題來探究:
第一、?什?義玄三度問法,三度?打?
第二、何以大愚禪師反贊歎說:?黃檗老婆心切也?
第三、義玄開悟後,何以謂:佛法無多子?
現首先看第一個問題:?什?義玄三度問法,三度?打?
如果我們多看禪宗公案,便知道黃檗禪師的道風一向非常峻烈,
不是出手棒,便是斥口喝,而不是慈悲溫柔的這一套。
所以三次問法三度?棒,何止對於義玄?眼相待而已!
想必在黃檗禪師座下,習如家常便飯。
但各位想想,如果是?,能?得了幾頓打?
想必還在打別人時,便自個已??了。然而更奇怪的是:
大愚反說他老婆心切,非常慈悲。
而現在要慈悲的話,就得噓寒問暖、滿嘴關懷,
其何相應於禪家的本色。最後何以謂:
佛法無多子
套 씌울 투 1. 씌우다 2. 겹치다 3. 크다 4. 덮개 5. 버릇 6. 씌우개 7. 전례 8. 모퉁이 9. 짐승의 우리
一套 : 一襲. 일조 (one set) . 하릴없이 / 1. 한 세트. 한 조(組). 2. 일련(一連). [하나로 연계된 것] 4. 수단. 방법. / 有一套 비법이 있다, 일가견을 가지다, 일가견이 있다
何止 [동사] 어찌 …에 그치겠는가. 어찌 …뿐이겠는가.
?眼看待 :달리하다. ?眼相看영안상간. 딴눈으로 서로 본다는 뜻으로, 특별히 대우함을 이르는 말, 특별히 대우하다 [성어] 다른 눈으로 바라보다.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다. 다시 보다. 새삼 높이 평가하다.
家常便飯 :가상다반【家常茶飯】<가상(家常)의 다반(茶飯)> 보통 가정요리, 있는 재료로 만든 음식. 어떻다 할 것도 없는 것. 송대(宋代)에서는 「家常便飯」이라고도 했다.大慧語錄8, 是這老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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