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臨濟義玄禪師의 禪思想 1

경호... 2013. 2. 17. 16:36

臨濟義玄禪師의 禪思想 1.

 

석해운 (해인선원 원장)

 

 

1. 서 론

 

임제의현선사(臨濟義玄?~866)는 선종의 五家宗 가운데 두 번째에 해당하는 종가이다. 현재까지 임제의현을 연구한 학자가 많이 있다. 임제의현선사를 연구한 분은 해인사 방장 성철스님의 『禪門正路』에서 임제스님의 삼현삼구 가 있다. 불광출판사. 백양사 고불총림방장 서옹스님의 『臨濟錄』이 있다. 동국대학교 종오스님의 『임제선연구』(경서원출판)가있다. 금강선원 慧炬스님의『臨濟錄』번역이 있다. 성본스님의 『선의 역사와 사상』(불교시대사출판) 속에 임제종성립과 선사상이 있다. 해인사 백련암에서 간행한 선림고경총서12『臨濟錄』(장경각출판)등이 있다. 지면 관계상 두 번 발표하겠다.

 

 

2. 임제의현선사의 생애

 

臨濟義:玄?~866은 臨濟宗의 黃龍派와 楊岐派를 형성시킨 선종의 宗匠이다.
그는曹州南華인 황하 남하인 현재 山東省?州府의 單縣離狐省사람이다. 俗姓은 邢氏이다. 臨濟의 이름은 그가 禪匠으로 하북성 진주지역 臨濟院이름이다.
臨濟가 태어난 출생 년대는 미상이다. 대략 9세기 초반인 元和년간의 810년부터 820년 사이로 보고 있다. 『臨濟錄』에서 仰山화상과 대화에서 알 수 있다. 즉 임제가 黃蘗으로 심부름을 갈 때 ?山의 靈祐선사를 뵌 후 위산이 仰山으로부터 북방으로 가라고 한다.1)
1.) 『大正藏』 卷47, P504, b. ?山黃蘗師兄亦不少,師辭?山仰山送出云, 汝 向後北去, 有箇任處.

 

중국스님들은 보통 20歲에 具足戒를 받게 된다. 臨濟선사가 3년 동안 黃壁禪師회상에서 3년 간 시봉을 하게된다. 임제와 앙산이 대화를 나눈 시기가 대략 25세 전후라고 볼 수 있다.
필자는 臨濟禪師가 언제쯤 출생하였을까 다음 세 가지를 들어 추측으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 臨濟禪師와 仰山禪師의 만남에서이다.
臨濟禪師의 출가를 宗浩스님은『臨濟禪연구』에서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仰山이 臨濟를 만난 것은 仰山의 출가 년도인 825년과 여러 선지식들과 參問期間과 그리고 耽源선사 회상에서 몇 년 동안과, 臨濟를 만날 당시 知客의 신분으로 14~5년 중 10여 년 안 박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생각하고 있다."2)

2)宗浩,『臨濟禪硏究』P205, 경서원. 서울.

 

이것을 생각하면 대략 840~845년 정도로 보면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臨濟의 나이가 25세 전후였지 않았을까? 필자도 여기에 동감한다.

 

둘째는 臨濟禪師와 德山宣監禪師와의 만남이다.
臨濟는 德山:780~865을 참문하게 된다. 德山을 참문하는 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德山은 會昌破佛시기에 그의 나이68세 때 대중2년(848)에 덕산에 머물고 있을 때다. 臨濟가 德山을 참문한 것은 848년 이후이다.

 

셋째는 宰相裴休가 黃壁禪師를 모시고 계셨을 때, 黃壁禪師는 洪州에서 黃蘗禪院(841~846)을 개창하고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그때가 會昌法難일 때이다. 臨濟가 黃蘗을 찾아 문안 인사를 올린 때가 바로 이 무렵이다.

이것을 보아도 臨濟가 태어난 년대를 대략 알 수 있다. 그러므로 臨濟義玄이 태어난 년대는 815~820년 전후로 생각하고 싶다.

 

필자는 臨濟義玄禪師가 언제 태어났는지 년대는 그다지 중요하게 보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그의 제자들이 臨濟禪師를 더욱 부각 시켜주기 위하여 고의적으로 빼 노을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중요한 것은 그의 사상과 제자들의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3. 臨濟錄의 改版과 構成

 

『臨濟錄』은 대략 다섯 가지 本으론 분류할 수 있다.
①,『四家語錄』과 ②,北宋時代의 宣和2年(1120) 宗演이 重刊한 宣和本이 있다. ③,南宋時代 제5代의 理宗 嘉熙2年(1238)에 간행된 續開古尊宿語要가 있다. ④古尊宿語要本은 南宋時代 제6代 度宗 咸?3年(1267) 覺心居士가 福州 鼓山에서 重刊했다. ⑤明時代의 毅宗 崇禎3년(1630)에 郭凝之가 『五家語錄』간행 하였다.

『四家語錄』은日本에서 慶安 元年(1648) 中野五郞左衛門씨가 木版에 발간한 하였다. 거기에 宋時代의 元豊8年(1085) 11월 1일 朝散郞尙書外郞 輕車都尉 楊傑 찬술한 序文이 첨부되어 있다. 『臨濟錄』은 현재까지 오래된 本은 楊傑이 序文을 기록한 『四家語錄』이다.3)

 

『臨濟錄』을 三聖慧然禪師가 편찬하고 興化存?이 校勘을 하였다고 『五家語錄』에서 기록하고 있다. 『四家語錄』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宣和2年刊本에는 卷頭와 卷末에 參學嗣法小師慧然集 및 參學嗣法小師存?校勘으로 기록하고 있다. 4)

3) 柳田聖山, 『四家語錄』『五家語錄』P2~36참조, 中文出版社. 경도.

延康殿學士 金紫光祿大夫 眞定府路安撫使兼 馬步軍都總管兼 知成德軍府事馬防, 撰으로 기록되어 있다.

현재 河北省 西南正定縣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 宋時代에는 眞定府라고 불렀다. 唐中期이래 藩鎭(軍閥政權)이 활약한 威德軍의 지역이다. 北宋時代 高官으로 부여된 최고의 영예로룬 호칭이다. 원래는 瑞明殿學士였는데 徽宗政和4年 (1114) 8월에 이 명칭으로 개조되었다. 金紫란 말은 金印과 紫綬를 찬 宮中 顧問官이다. 이것도 영예로운 호칭이며 실제로는 궁중에서 봉사하지는 않았다.

眞定府의 按撫使는 중앙정부로부터 파견한 地方巡察官으로 兵事와 民事를 총괄하는 監察官이다. 河北按撫使는 北方의 遼나라를 경계하기 위한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었다.
馬步軍都摠管은 騎馬부대와 步兵부대를 지원한다. 都摠管은 그 부대의 총사령관이다. 정식으로는 都指揮使로 호칭되었다.
馬防은 그 당시 중요한 인물인데 傳記나 史書에 기재되어 있지 않다.

4)『臨濟及臨濟錄의 硏究』, 陸川堆雲, 喜久室書店, 昭和27年. 『語錄의 歷史』柳田聖山, P372,

東方學報, 京都.

 

 

『臨濟錄』의 서문은 4言60句로 되어있다. 『大正藏』卷47에는 馬防의 서문이외에 林泉老人 從輪(1296), 前監察史 郭天錫(1297), 五峯普秀 霽沐의 서문이 있다. 普秀霽沐은 退堂襲祖의 20세 孫으로 기록되어 있다.5)
5)『大正藏』卷47, P469, a..

 

『臨濟錄』의 구성은 四家本과 宣和本이 있다. 현재 유포되고 있는 宣和本은 序文, 上堂, 示衆, 勘辨, 行錄, 略傳의로 구성되어 있다.

『四家語錄』은 일본의 柳田聖山博士가 편집하고 있는데, 출생 년도 行錄이 먼저 나오고 있다. 그리고 悟道, 上堂, 勘辨,이 나오면서 行錄이 끼어서 얽혀져 있다. 示衆이 나오면서 다시 行錄으로 구성되어 있다. 『四家語錄』 宣和本의 내용은 거의 같다.

『臨濟錄』을 더욱 뒷받침 해주고 있는 禪語錄은 『祖堂集』卷19『宗鏡錄』卷98『景德傳燈錄』卷28, 『宋高僧傳』卷12,『天聖廣燈錄』卷10, 11等이 있다. 『天聖廣燈錄』卷제10은『四家語錄』과 流布本의 『臨濟錄』을 명확히 뒷받침해주고 있다.

 

 

"스승이 遷化할때에이르러 上堂에서 말하기를,
"내가 죽은 뒤에 正法眼藏이 없어지지 않도록 하라."
三聖스님이 나와서 말하였다.
"어찌 감히 큰스님의 正法眼藏을 잃을 수 있겠습니까?
스승이 말하기를, 이다음에 누가 너에게 질문을 하면, 어떻게 말 하겠는가?  三聖이 할(喝)을 하자
스승이 말하기를,
나의 正法眼藏을 눈먼 나귀에게 잃을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곧 偈頌에서 말하기를
흐름을 따라 그치지 않으면 어떻게 묻겠는가?
진실한 것은 원만하게 비추고 자기와 타인에게 설할 수 있고,
모양을 버리고 이름도 버리고 사람은 받지 않으니
취모(吹毛)를 써서 빨리 돌아와서 갈아라.

설법을 하고 법좌(法座)에서 편안히 시적(示寂)하셨다.…6)

6)『卍字續藏經』卷『天聖廣燈錄』卷10, P345, 上, 下.
臨濟遷化時. 上堂云.

吾滅後不得滅却. 吾正法眼藏.

三聖出云.

爭敢滅却和尙正法眼藏師云. 已後
有人問?. 向?道什?.

三聖便偈 師云.

誰知吾正法眼藏. 向者?驢邊滅却.

 

乃有頌曰.

沿流不止問如何 眞照無偏說自他
離相離名人不? 吹毛用了急還

 

言訖於法座上瑞然示寂. 時咸通七年丙戌四月十日. 勅謚慧照禪師 塔號澄靈.

 

『天聖廣燈錄』에서 偈頌을 삽입시켰다. 傳法偈라고는 볼 수 없다. 전반부와 遷化의 上堂과 三聖慧然禪師 問答이 새로 추가되었다. 正法眼藏의 유촉과 三聖慧然禪師의 제자를 후계자로 인정하고 있다. 三聖은 一喝을 하므로 臨濟禪師의 正法眼藏을 이어받는다. 『四家語錄』은 臨濟의 偈文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臨濟禪師의 一喝은 馬祖禪師로부터 내려왔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니다. 선사가 喝을 사용한 것은 馬祖이다. 그의 제자百丈에게 喝을하여 삼일동안 귀가 먹어서 들리지 않았다.(三日耳聾)고 百丈이 黃壁禪師에게 전해주고 있다. 臨濟禪師는 또 德山의 棒과 黃蘗의 棒을 초월하여서 棒사용하였다.

 

臨濟禪師는 喝과 棒을 겸하여 사용하고있고 三聖은 臨濟의 上堂 법좌에서 一喝을 하여 臨濟禪師가 인정을 해준다. 여기서 주의 할 점은 임제선사는 불교의 모든 『經論』 다 섭수 하였다. 『祖堂集』은 臨濟가 大愚禪師앞에서 『唯識』을 날이 새도록 혼자 말하여도 大愚禪師는 눈 하나 끔적하지 않았다. 아침이 되자 大愚禪師는 臨濟가 밤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방귀만 뀌었다고 오히려 꾸중을 한다.7)

 

7)『高麗大藏經』卷19, P10, 後. 『인도불교학』卷9-2, 柳田聖山, P216.
종래, 임제선의 교학적 배경으로 화엄사상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는데, 또 하나는 玄?(600~664)의 唯識교학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임제의 示衆의 1절에 대덕, 外發聲語業, 內表心所法, 以思有念, 皆悉是衣. 이 문구는 玄?이 번역 한 世親의 『大乘成業論』의 偈「由外發身語, 表內心所思, 譬彼潛淵魚, 鼓波而自表」(大正藏31권, P781, b.)句를 답습하고있다. 以思有念은 唯識家의 독자적인 思業을 생각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4. 臨濟禪師의 깨달음(悟道)

 

臨濟義玄禪師의 깨달음(悟道)에 관한 내용은『祖堂集』. 『景德傳燈錄』, 『天聖廣燈錄』,『 臨濟錄』에 기록되어 있다. 『祖堂集』은 臨濟의 스승을 黃蘗과 大愚로 연결시켜 주고 있다. 黃蘗과 大愚는 가장 가까운 道伴이다. 도반은 출가자 입장에서 보면 형제보다 가까운 관계이다. 황벽을 대신해서 제자를 잘 길러준 분이 大愚禪師이다. 黃蘗이 大愚를 믿었기 때문에 臨濟를 大愚禪師에게 보낸 것이다.

臨濟는 10여년 동안 大愚를 곁을 떠나지 않고 시봉한다. 黃壁禪師는 臨濟를 처음 만날 때에 이글거리는 불덩이만큼 좋았다고 표현을 한다. 8) 그러나 臨濟는 깨닫기 전까지 黃蘗禪師의 마음을 모르고 黃壁禪師가 시키는 대로 大愚禪師에게 참배를 한다.
大愚禪師는 黃蘗이 무슨 말을 하던가? 묻는다.

"제가 세 차레 불법의 적적한 大意를 물었다가 세 번 다 棒으로 얻어맞았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저에게 허물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大愚스님은 "黃壁禪師가 그토록 간절한 노파심으로 너 때문에 고생이 심하셨는데, 다시 여기까지 찾아와서 허물이 있는가 없는가를 묻느냐?"  臨濟는 그 말에 크게 깨친다.

大愚禪師가 臨濟를 깨닫게 한다.9)

臨濟는 원래 黃蘗의 불법도 별개 아니었구나! 하고 말을 할 때 大愚禪師는 臨濟의 멱살을 잡고 혼을 내준다.

臨濟는 잘못을 뉘우친다. 臨濟는 깨닫고 나서 黃壁禪師에게 돌아가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8)『高麗大藏經』卷19, P10, 後. 黃蘗聞已. 稽首曰作者. 如猛大燃喜子遇人.

9)『高麗大藏經』卷19, P11, 前.

 

 

"한 방망이에 부처님의 경지에 들었습니다.

설사 백겁 동안 뼈를 갈고 몸을 부수도록 수미산을 머리에 이고 끝없이 돈다 하여도 이 깊은 은혜는 보답하기 어렵습니다."10)

10)『高麗大藏經』卷19, P10,

後. 如此師曰. 於一棒下入佛境界.

假使百劫?骨碎身.頂擎?須彌 山經無量?. 報此?恩莫而酬得.

 

 

黃蘗선사는 臨濟를 인정해준다. 臨濟에게 당분간 쉬라고 한다.

臨濟는 다시 大愚에게 간다. 大愚는 이렇게 말을 한다.

 

"내가 혼자 초막에 살면서 일생을 헛되이 보낸다고 하였는데 뜻밖에 한 아들을 얻었구나!"11) 라고 말을 한다. 이 내용이 『祖堂集』에서 黃壁禪師와 大愚禪師가 臨濟를 길러낸 내용이다.

臨濟禪師는 黃壁禪師보다 大愚禪師곁에서 시봉을 많이 하고 정진을 하였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臨濟는 처음부터 黃壁禪師에게 법을 물으러 갔고, 大愚는 눈 밝은 제자가 있으면 보내달라고 黃蘗에게 약속을 한다.12)

臨濟는 黃壁禪師를 20년 간 모시게된다.

『景德傳燈錄』卷12,에서 黃壁禪師가 臨濟에게 전법제자의 후계자를 임명하기 위하여 "侍者에게 안석과 禪板을 가져오라고 한다. 臨濟는 시자가 불을 가지고 왔습니다. "라고 傳法의 증거를 무시해버린다. 黃蘗禪師는 "그렇지않거든 그대가 가져가거라. 이후에는 천하사람들이 혀끝에 자리잡고 앉게 된다." 13) 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景德傳燈錄』은『祖堂集』보다 세련되게 임제선사를 부축시키고 있다.

 

11)『高麗大藏經』卷19, P11, 前. 曰吾獨居山舍將. 謂空過一生不期. 今日却得一子.

12)『高麗大藏經』卷19, P10, 前. 後或逢靈利者. 拾一人 來相訪.

13)『大正藏』卷51, P300, a. 黃蘗遂喚侍者. 把將?安禪板. 師曰侍者把將火來. 黃蘗曰. 不然子但將去 已後坐斷天下人舌頭在.

 

 

5. 자유롭게 사는 참 사람(無位眞人)

 

臨濟禪師가 주장하는 것은, 禪은 자유롭게 사는 참사람이다. 그는 법상(上堂)에서 이렇게 말을 한다.

"붉은 살덩이 위에 지위 없는 참사람 하나가 있어서 항상 그대들 모두의 얼굴 앞에 나타나는데 증거를 잡지 못하는 자는 살펴보아라."14)

참 사람은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인이고, 위대한 사람을 말한다. 六祖慧能禪師는 「本來面目」이라고 하고,15) 南嶽懷讓선사는「설사 한 물건이라 해도 맞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16) 趙州禪師는 「無」라고 말하고, 근래 한국의 田剛禪師는 「板齒生毛」라고 말하고, 性徹禪師는「麻三斤」이라고 주장하였다.

물론 이 화두가 스승으로부터 전수 받기도 하고 자기가 만들어서 제자들에게 주기도 하였다. 이 화두를 간절하게 참구하면 깨닫게되고 깨달으면 자유로운 참사람(無位眞人)이 된다.

 

14)『大正藏』卷47, P496, c. 上堂云 赤肉團上有一無位眞人. 常從汝等諸人 面門出入. 未證據者看看.

「一無位眞人」은 道敎에서 사용한 말이다.
佛性, 法性, 自性, 本性, 精神, 人格等 때와 장소에 의해서 여러 가지로 부르고 있다. 그것을 개념화하고 실체화시키고 있다. 無位는 그러한 개념화를 거부하고 있다. 『禪語錄』柳田聖山 P198, 中央公論社. 眞人은 삶을 기뻐하지도 않으며, 죽음을 싫어하지도 않는다. 태어남을 기뻐하지도 않고, 죽음을 거역하지도 않는다. 무심히 자연을 따라가고 무심히 자연을 따라 올뿐이다.『壯子』安東林譯註, P280, 현암사.

15)『大正藏』卷48 P349, b. 慧能云. 不思善不思惡. 正與?時那箇是明上座. 本來面目.

16)『大正藏』卷51, P240, c. 祖曰. 什?物恁?來. 說似一物卽不中.
講座 禪제3卷, 『禪의 歷史』―중국―오오쯔 레기도우(大津?堂), P211, 筑摩書房, 東京.

 

 

학인이 臨濟禪師에게 "무엇이 지위없는 참사람입니까?" 라고 질문을 할때, 臨濟禪師는 법상에서 내려와 멱살을 움켜잡고 "말해라" "말해"라고 말하였다. 학인은 범부이기 때문에 臨濟禪師의 법을 알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그때 臨濟禪師는 학인의 멱살을 놓으면서 다시 학인을 깨우쳐주기 위해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지위 없는 참사람은 이 무슨 마른 똥 막대기냐?"17) 라고 말하면서 " 방장실로 돌아갔다." 수좌스님들은 대 분심과 대 의심과 대 신심을 일으켜서 주간과 야간을 가리지 않고 一念으로 정진을 한다.

17)『大正藏』卷47, P496, c. 師托開云. 無位眞人. 是什?乾屎?.

 

臨濟禪師는 어디서나 주인이 되라고 강조하고 있다. 주인이 되면 서 있는 그 자리가 참되어서 어떠한 어려움이 나타나도 모든 일을 잘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출가자는 올바른 견해를 가져야 부처와 마구니를 구분할 수 있고,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고, 범인과 성인을 구분할 수 있어야 진정한 출가자라고 말하고 있다."18)  출가자의 바른 생각 초심자의 바른 노력과 정진을 말 할 수 있다. 그리고 "눈 밝은 道人이 마구니와 부처를 모두 쳐버릴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19)

18)『大正藏』卷47, P498, a..

夫出家者. 須辨得平常眞正見解. 辨佛辨魔. 辨眞辨爲. 辨凡辨聖. 若如是辨得. 名眞出家.

19)『大正藏』卷47, P498, a.. 如明眼道流. 魔佛俱打.

 

또 학인은 부처와 마구니를 구분하지 못하여 "무엇이 부처이고 무엇이 마구니 입니까? " 질문을 한다.

臨濟禪師는 깨달음 즉 부처와 중생에 관해서 확실한 답을 내려주고 있다. 즉 청정함과 오염된 두 가지를 말하고 있다.

 

臨濟禪師는 깨달음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고, 옛날도 없고 지금도 없고, 〈근본자리를〉얻은 이는 곧 〈본래부터〉이미 얻음이 있어, 오랜 세월을 거칠게 없고, 닦을 것도 없고 깨칠 것도 없으며, 얻을 것도 없고, 잃을 것도 없으며, 어느 때 이든 다시는 다른 어떤 법도 없다.…" 20)

20)『大正藏』卷47, P498, b. 問如何是佛魔.…若山僧見處.

無佛無衆生. 無古無今. 得者便得. 不歷時節. 無修無證. 無得無失. 一切時中 更無別法.
『임제록』慧炬,譯. P36, 금강선원.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다.」는 말은 『宛陵錄』에 나온다.

問佛度衆生否. 師云. 實無衆生如來度者. 我尙不可得. 『大正藏』48, P385, c.

 

고 논술하고 있다. 깨치고 나면 닦을 것도 없고 부처와 중생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잇다. 도는 "찾으면 도리어 멀고, 구하면 어긋난다." 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활발하게 살아 있어야 한다." "歷歷"해야하고,"昭昭靈靈"해야하고, "孤明"해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面前」을 대신 사용하는「目前」「卽今」「現今」「今」이란 말은 구체적인 현실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언어는 空間과 時間을 초월하여 활발하게 살아가는 祖師와 佛의 경지를 參禪의 실천과 행동으로 대중들에게 잘 가르쳐 주고 있다.

 

臨濟禪師는 解脫을 하려면 제방에서 누더기를 기워 입으면서 시간을 보내되, 반드시 善知識을 친견해야 하고, 시간을 아껴 쓰고 諸行無常을 강조하였다. 境界에 부딪치면 말려들지 말라고 후학들에게 가르쳐 주고있다. 21) 일을 처리 할 때 능수능란하게 法답게 如法하게 잘 처리해야 한다.

 

21)『大正藏』卷47, P498, c.

所以覓着轉遠. 求之轉乖. …活撥撥地…覓箇什?作解脫. 補?過時. 且要訪尋知識.…光陰可惜. 念念無常. …免被境擺撲.
이박에 臨濟는 平常無事, 無事是貴人, 出格見解人의 말을 사용하고 있다.『선의역사와사상』鄭性本,P414. 『印度學佛敎』卷30―2, 須山長治, P824. 참조.

 

 

6. 삼현삼요.(三玄三要)

 

임제선사가 법상에 올라가서 법문을 할 때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제 一句 입니까?"
스님께서 말했다.
"삼요(三要)의 도장을 찍으니 붉은 점이 뚜렷하고, 말하기 전에 주인과 객이 분명하다."

"무엇이 제2구입니까?"
"무대에(棚頭)에 희롱하는 꼭두각시를 보라. 〈줄을〉 당기고 끎이 모두 속에 있는 사람에게 있노라."

"일구(一句)의 말에는 반드시 삼현(三玄)의 문에 갖추어 있어야하고, 일현(一玄)의 문에는 반드시 삼요(三要)를 갖추어야 하니, 권도(權道)도 있고 활용(活用)도 있다."고 말을 하였다.22)

22)『大正藏』卷47, P496, a.

僧 問如何是第一句.

師云 三要印開朱點側. 未容擬議朱賓分.

問如何是第二句.

師云. 妙解豈容無着問. ?和 爭負截流機.

問如何是第三句. 師云 看取棚頭弄傀儡. 推牽都來裡有人.

師又云. 一句語 須具三玄門. 一玄門須具三要 有權有用.

 

 

性徹禪師는 三玄三要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三玄三要는 臨濟宗風인 大機大用의 骨髓여서, 垂示語句中에 三玄三要가 구비하지 않으면 正眼宗師가 아니다. "23)라고 말하고 있다. 三玄三要를 눈먼납승이 一句가운데 三玄을 갖추고 一玄가운데 三要를 갖춘 이 大機大用을 悟入次第로, 法門의 深淺으로 오인하는 바 있으니 可悲可痛이다고 말하고 있다. 三玄三要는 臨濟宗風인 大機大用이고, 柳田聖山博士는 大機圓應, 大用全彰, 機用齊施이라고 말하고 있다. 24)

入矢義高博士도 柳田聖山博士 설에 同意하고있다.
宗浩博士는 「三玄三要」를 그의 저술『임제선의 연구』에서 잘 기술하고 있다. 25) 여기에 대해서 더 이상 손을 대고 싶지 않다.

23)『禪門正路』성철, P236, 불광출판부.

24)『臨濟錄』柳田聖山, P81. 『臨濟錄』入矢義高, P28~29. 岩波文庫.

25)『임제선 연구』宗浩, P425~432. 경서원.

 

 

임제종스님과 조계종 스님들은 三玄三要를 중요시하였고, 깨달음의 순서로 보아서는 안되고 법문의 깊고 얕은 것으로 보아도 안 된다.임제의 이 三句說은 모든 사람의 本源인 無位眞人을 깨우쳐 平常無事人으로서 活祖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한 그의 方便說이다.

 

또 상당법문에서

 

"입을 벌리면 그것과는 관계가 멀다고 하였다.…부처님 말씀에 법은 문자를 여의고 인(因)에도 속하지 않고, 연(緣)에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대들은 믿음이 약하기 때문에 오늘 갈등이 생긴 것이다."

 

라고 왕상시(王常侍)와 여러 관원들에게 법을 묻지 말고, 법을 말하지도 말라고 하면서, 입을 열면 법(法)과는 관게가 멀다고 말한다. 臨濟禪師는 믿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26)
열심히 정진하라는 말이다.

26)『大正藏』卷47, P496 .b.

爾?開口 早勿交涉…釋尊云. 法離文字 不屬因 不在緣故. 爾信不及 所以今日葛藤.

 

 

임제는 법을 위해서는 몸과 목숨을 아끼지 말고 정진하라고 당부한데,
"스승인 황벽선사 회상에서 20년을 있으면서 佛法의 적적한 큰 뜻을 세 차례 묻다가 세 번 다 그의 주장자를 얻어맞았으나, 마치 쑥대로 스치는 것과 같았다. 지금 다시 한 차례 몽둥이를 얻어맞으려 생각하니, 나를 위해 이를 행하겠는가? 그때 한 스님이 대중가운데서 나와 '제가하겠습니다.'하니, 스님이 주장자를 건네주자 그 스님이 받으려는 순간, 스님은 곧바로 내려쳤다."27) 고 말을 한다.
27)『大正藏』卷47, P496, c.

師乃云. 大衆 夫爲法者 不避喪身失命. 我二十年 在黃壁禪師處 三度問佛法的的大意. 三度蒙他賜杖. 如?枝拂着相似.…

 

臨濟는 黃壁禪師 회상에서 20년 동안 스님을 모시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자가 佛法을 물을 때 스승은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지켜보면서, 언어와 문자로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이 禪이다. 그렇다고 禪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누구나 話頭를 간절히 참구하면 見性할 수 있는 것이 禪이다.

黃蘗禪師는 ?杖子로 얻어맞았으나 그것이 병든 환자가 치료를 받은 것만큼 스승에게 감사의 뜻을 표현하고 있다. 臨濟禪師가 上堂法問을 한 것은 8회 밖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후학들이 열심히 정진할 수 있는 교육지침을 세워 놓았다. 그는 또 "불법을 배우는 이들은 진실하고 바른 견해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 마약 진실하고 바른 견해를 얻으면, 태어나고 죽음에 물들지 않고, 가고 머무름에 자유로워서 수승함을 구하지 않아도 수승한 경지에 저절로 도달할 것이다."28) 고 말하고 있다.

28)『大正藏』卷47, P497, b. 若得眞正見解. 生死不染. 去住自由. 不要求殊勝. 殊勝自至.

 

臨濟禪師는 조사와 부처는 둘이 아니다는 祖師禪의 확고한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自由人이 되라고 말하고 있다. "생각과 생각이 달리는 마음을 모두 쉬면, 조사와 부처가 다를바가 없다." 29) 고 말하고 있다.
29)『大正藏』卷47, P497, b. 爾若能歇得念念馳求心. 便與祖佛不別.

臨濟錄』入矢義高, P34, 岩波文庫.

『大正藏』卷48, P944. c.『宗鏡錄』卷 98.에서 大梅和尙께서「 마음 밖에 다른 부처가 없습니까? 조사와 부처는 너의 마음에서 나온다.」고 기록하고 있다.

 

번뇌 망상을 모두 쉬고 大圓鏡智에 도달하기 때문에 조사와 부처가 같다고 말하고 있다. 대승불교에서는 즉 禪宗에서 祖師와 부처(佛)의 위치를 같이 보고 있다. 중국선종은 깨달으면 우리도 부처가 될 수 있고, 조사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을 말하고 있다. 臨濟禪師는 좌선을 하면서 如法한 見解를 얻고 싶으면, 남에게 현혹 당하지 말고, 안에서나 바깥에서나 마주치는대로 죽이라고 후학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즉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 죽여야만 해탈을 얻어 사물에 구애받지 않고 투철히 벗어나 자유자재 할 것이다."30)

30)『大正藏』卷47, P500, b. 奉佛殺佛. 逢祖殺祖.…逢父母殺父母.…始得解脫 不與物拘. 透脫自在.

 

고 말하고 있다. 경계에 부딪칠 때 이러한 일을 잘 처리하면 解脫을 하고, 자유인이 될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는 해탈과 자유인을 강조하고 있다.

 

임제선사의 사법(嗣法)관계는 『祖堂集』에서 전법제자를 잘 말해주고 있다. 馬祖-百丈-黃蘗-臨濟禪師로 전하는 4대의 전심계傳心系譜)로 내려오고 있다.

 

 

결 론

 

『臨濟錄』의 서문은 4言60句로 되어있다. 임제록의 구성은 四家本과 宣和本이 있다. 현재 유포되고 있는 宣和本은 序文, 上堂, 示衆, 勘辨, 行錄, 略傳의로 구성되어 있다. 『四家語錄』은 출생 년도 行錄이 먼저 나오고 있다. 그리고 悟道, 上堂, 勘辨,이 나오면서 行錄이 끼어서 얽혀져 있다. 示衆이 나오면서 다시 行錄으로 구성되어 있다. 『四家語錄』 宣和本의 내용은 거의 같다.

 

大愚禪師는 黃壁禪師를 대신해서 臨濟를 잘 길러준 분이다. 臨濟는 10여년 동안 大愚를 곁을 떠나지 않고 侍奉을 한다. 黃壁禪師는 臨濟를 처음 만날 때에 이글거리는 불덩이만큼 좋았다고 표현을 한다. 大愚禪師는 臨濟에게 "黃壁禪師가 그토록 간절한 노파심으로 너 때문에 고생이 심하셨는데, 다시 여기까지 찾아와서 허물이 있는가 없는가를 묻느냐?" 臨濟는 그 말에 크게 깨친다.

『景德傳燈錄』卷12,에서 黃蘗禪師가 臨濟에게 전법제자의 후계자를 임명하기 위하여 "侍者에게 안석과 禪板을 가져오라고 한다. 臨濟는 侍者가 불을 가지고 왔습니다."라고 傳法의 증거를 무시해버린다.

 

臨濟는스승인 黃蘗禪師 회상에서 20년을 있으면서 佛法의 적적한 큰 뜻을 세 차례 묻다가 세 번 다 그의 ?杖子를 얻어맞았으나, 마치 쑥대로 스치는 것과 같았다고 후학들에게 호평을 하게된다.

 

臨濟禪師가 주장하는 것은, 禪은 자유롭게 사는 참사람이다. 참 사람은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인이고, 위대한 사람을 말한다.

어디서나 주인이 되라고 강조하고 있다. 주인이 되면 서 있는 그 자리가 참되어서 어떠한 어려움이 나타나도 모든 일을 잘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 활발하게 살아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三玄三要는 臨濟宗風인 大機大用이라고 말하고 있다. 臨濟宗禪師와 조계종선사들은 三玄三要를 중요시하였고, 깨달음의 순서로 보아서는 안되고 법문의 깊고 얕은 것으로 보아도 안 된다.임제의 이 三句說은 모든 사람의 本源인 無位眞人을 깨우쳐 平常無事人으로서 活祖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한 그의 方便 說이다.

 

좌선을 하면서 如法한 見解를 얻고 싶으면, 남에게 현혹 당하지 말고, 안에서나 바깥에서나 마주치는 대로 죽이라고(殺佛殺祖) 후학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경계에 부딪칠 때 이러한 일을 잘 처리하면 解脫을 하고, 自由人이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요약

 

臨濟禪師의 사법(嗣法)관계는 『祖堂集』에서 전법제자를 잘 말해주고 있다. 馬祖-百丈-黃蘗-臨濟禪師로 전하는 4대의 전심계傳心系譜)로 내려오고 있다.

大愚禪師는 黃壁禪師를 대신해서 臨濟를 잘 길러준 분이다. 黃壁禪師는 臨濟를 처음 만날 때에 이글거리는 불덩이만큼 좋았다고 표현을 한다. 그러나 臨濟는 깨치기 전까지 黃蘗禪師의 마음을 모르고 黃壁禪師가 시키는 대로 大愚禪師에게 참배를 한다.

大愚禪師는 黃蘗이 무슨 말을 하던가? 묻는다.

"제가 세 차레 불법의 적적한 大意를 물었다가 세 번 다 棒으로 얻어맞았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저에게 허물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大愚스님은 "黃壁禪師가 그토록 간절한 노파심으로 너 때문에 고생이 심하셨는데, 다시 여기까지 찾아와서 허물이 있는가 없는가를 묻느냐? " 臨濟는 그 말에 크게 깨친다. 『景德傳燈錄』卷12,에서 黃蘗禪師가 臨濟에게 전법제자의 후계자를 임명하기 위하여 "侍者에게 안석과 禪板을 가져오라고 한다. 臨濟는 侍者가 불을 가지고 왔습니다. "라고 傳法의 증거를 무시해 버린다.

臨濟는스승인 黃蘗禪師 회상에서 20년을 있으면서 佛法의 적적한 큰 뜻을 세 차례 묻다가 세 번 다 그의 ?杖子를 얻어맞았으나, 마치 쑥대로 스치는 것과 같았다고 후학들에게 호평을 하게된다.

 

臨濟禪師가 주장하는 것은, 禪은 자유롭게 사는 참사람이다. 참 사람은 어느 곳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인이고, 위대한 사람을 말한다. 時間과空間을 초월하여 활발하게 살아가는 祖師와 佛의 경지를 參禪의 실천과 행동으로 대중들에게 잘 가르쳐 주고 있다.

 

六祖慧能禪師는 「本來面目」이라고 하고, 南嶽懷讓선사는 「설사 한 물건이라 해도 맞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趙州禪師는 「無」라고 말하고, 임제는 「隨處作住無位眞人」이라고 말한다. 근래 한국의 田剛禪師는 「板齒生毛」라고 후학들에게 가르치고, 性徹禪師는「麻三斤」이라고 주장하였다. 물론 이 화두가 스승으로부터 전수 받기도 하고 자기가 만들어서 제자들에게 주기도 하였다. 이 화두를 간절하게 참구하면 깨닫게 되고 깨달으면 자유로운 참사람(無位眞人)이 된다. 어디서나 주인이 되라고 강조하고 있다. 주인이 되면 서 있는 그 자리가 참되어서 어떠한 어려움이 나타나도 모든 일을 잘 해결할 수 있다.

 

道는 "찾으면 도리어 멀고, 구하면 어긋난다." 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道 "활발하게 살아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三玄三要는 臨濟宗風인 大機大用이라고 말하고 있다. 臨濟宗禪師와 曹溪宗禪師들은 三玄三要를 중요시하였고, 깨달음의 순서로 보아서는 안되고 법문의 깊고 얕은 것으로 보아도 안 된다.

임제의 이 三句說은 모든 사람의 本源인 無位眞人을 깨우쳐 平常無事人으로서 活祖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한 그의 方便 說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