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祖堂集을 통해 본 중국어 피동문의 변천 機制 / 張皓得

경호... 2013. 2. 7. 03:08

-  논문에 결자가 많아 임의로 넣었습니다.-

 

 

 

祖堂集을 통해 본 중국어 피동문의 변천 機制

 

張 皓 得

 

Ⅰ. 서론
Ⅱ. 피동 형태소의 용법에 대한 분석
   1. '被'의 용법
   2. '爲'의 용법
   3. '見'의 용법
Ⅲ. '着'과 '穿'의 용법에 대한 분석
   1. '着'의 용법에 대한 분석
   2. '穿'의 용법에 대한 분석
Ⅳ. {祖堂集} 피동문 어휘-의미틀 및 변천 기제
Ⅴ. 결론

 


Ⅰ. 서 론

 

{祖堂集}은 중국 五代 때인 남당 保大 10년(서기952년)에 간행된 불교문헌이다. 이 책의 편자는 당시 중국 남방지방에 있던 招慶寺의 선사였던 靜과 筠 두 사람이다. 이 책은 모두 20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도의 7불 및 중국 선종 초기부터 오대 시기까지의 주요 禪師에 대한 생애와 언행을 기록하고 있다. {조당집}은 중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해인사 팔만대장경본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전해져 오고 있는 판본이다.

이 책은 당말오대 시기의 구어체가 많이 남아 있어 근대한어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언어자료가 될 뿐 아니라, 여러 사람에 의해 집필된 것이 아니라 두 사람에 의해 집필된 선종어록으로 시대적 혹은 지역적으로 다양한 요소가 덜 가미되어 있으므로 분석의 자료로 삼는 데도 매우 적절한 연구자료가 된다. 중국의 유명한 언어학자인 董同 교수도 고대한어를 연구하는 데는 한 권의 책을 독립적으로 연구해야만 서로 섞이지 않아 비교적 정확한 사실을 도출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이런 독립적인 작업들을 수행한 후 비교하고 종합해야 고대한어의 자의에 대한 올바른 연구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볼 때 {조당집}에 나오는 자료를 이용하여 언어나 어법분야의 각 주제에 대한 일차적인 연구를 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언어와 마찬가지로 중국어에 있어서도 '능동'과 '피동'은 '진술'.'의문' 및 '긍정'.'부정'처럼 아주 요긴한 어법범주 중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어법연구에 있어서 '피동'의 개념을 표현하는 문장을 연구하는 것은 단순히 피동문에 대한 분포나 그 분포에 대한 해석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인간 혹은 인간의 사유방식에 대한 탐구도 겸할 수 있으므로 아주 중요한 과제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중국어의 '피동문'에 대한 연구는 많은 학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근대한어 시기 귀중한 어학자료의 하나인 {조당집}의 '피동문'에 대한 연구는 단 한편으로 그치고 있다. 이 논문의 제목은 [{祖堂集}被字句硏究]로 중국 어법학자인 袁賓이 썼다.

그는 {조당집}에서 피동문으로 쓰인 '被'자를 분석하는 동시에 {世說新語}·{百喩經}·{文選}·{敦煌變文} 등에 나오는 '被'자 피동문을 비교하여 남북조 시기에서 송·원 시기에 이르기까지의 '被字句'의 역사적인 발전과 지역적인 차이를 규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원빈의 논문은 근대한어의 중국어 피동문 중 '被字句'의 변천에 대한 발전궤적을 밝힘으로써 근대한어 연구에 새로운 실마리를 제공해 주고 있을 뿐 아니라 역사언어학에 있어서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논문은 통시적인 측면에서는 폭넓은 연구를 했지만, '被字句'의 분석에 한정되어 있어 그 당시 피동문에 사용된 모든 글자의 용법에 대한 분석을 통한 피동문에 대한 공시적인 측면의 종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이런 피동문의 분포 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고찰을 통하여 중국어 피동문의 변천사에서 당시 피동문이 점하고 있는 위치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며 동시에 중국어 피동문의 변천 機制를 밝힐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본 논고에서는 먼저 {조당집}에서 피동문에 쓰인 '被'·'爲'·'見'에 대한 용법을 분석하고 이 분석을 토대로 '着'·'穿'을 비교·분석하여 그 의미 항목들이 어떻게 전이되어 가는가에 대한 변천 기제를 규명하고자 한다. 바꾸어 말하면 {조당집}의 피동문에 대한 연구는 이미 나와 있지만, 원빈의 논문은 언어의 외적인 부분, 특히 한어발전사적 측면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에 본 논고에서는 특정 시기 언어의 유기적인 내부구조관계에 대한 共時的인 분석을 통해 그 通時的인 변천 機制를 탐구하여 이에 대한 언어학적인 해석을 가해 종합적인 결론을 도출하고자 한다.

 

 

Ⅱ. 피동 형태소의 용법에 대한 분석

 

1. '被'의 용법

형태론적인 측면에서 볼 때 {조당집}에 나오는 '被'의 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가 명사 용법으로 쓰인 경우이다. {조당집}에 나오는 '被'가 명사로 쓰인 예는 총 4번 출현한다. 그 중 대표적인 예문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1) 六月臥,去被衣
유월에 누웠으면 이불도 옷도 필요 없고 (358b1)

 

(2) 師云:「夏天赤骨身,冬天須得被 」
선사께서 가로되:{여름은 알몸으로 자고 겨울은 이불을 덮느니라.}(325a9-10)

 

(3) 阿難則下法座,復本身,諸菩薩等,知是世尊加被,衆疑悉遣
아난은 곧 자리에서 내려와 본래의 몸으로 돌아가니 보살들은 그것이 세존의 가피력이었음을 알고 모든 의혹이 풀렸다.(15b8-9)

(1)과 (2)에서는 '被'가 '이불'이라는 뜻으로 쓰였으며, (3)에서는 '부처나 보살이 중생에게 자비를 베푸는 힘'이라는 뜻의 '가피력'이라는 명사로 쓰였다.

두 번째로는 동사 용법으로 쓰인 경우이다. 동사의 용법으로 쓰인 경우를 의미에 따라 분류해보면 '입다, 걸치다' 등의 의미로 쓰인 경우, '퍼지다'의 의미로 쓰인 경우, 그리고 '당하다'의 의미로 쓰인 경우가 있다.

먼저 '입다, 걸치다' 등의 의미를 지닌 동사로 쓰인 예문은 총 34회 출현한다. 대표적인 예문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4) 遂被??甁,栖雲枕水  ?于長慶五年,投入朝使,告其宿志,許以同行

마침내 누더기를 걸치고 병을 들고는 구름에 안기고 물을 베개삼아 지냈다. 장경 5년에 이르러 조사들 일행을 찾아가 묵은 포부를 이야기하니 동행해 줄 것을 허락했다.(330b11-13)

 

(5) 問:「被三衣卽這邊人,那邊人事作摩生?」師云:「那邊人被什摩衣服?」學人不會

물었다. {삼의를 입은 것이 이쪽 사람이라면. 저쪽 사람 일은 어떠합니까?} 선사께서 대답했다. {저쪽 사람은 어떤 옷을 입었는가?} {학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153a5-6)

 

(6) 「如何是沙門行李處?」曹山云:「頭上戴角,身上被毛 」

{어떤 것이 사문의 행리입니까?} 조산이 가로되:{머리에 뿔을 이고 몸에는 털을 입었느니라.} (299a9-10)

 

(4)는 '걸치다'의 의미로 쓰였고 (5)와 (6)은 '입다'의 의미로 쓰였다. 그러나 (4)는 '입다'라는 뜻으로도 번역할 수 있으니 이 예문들은 앞뒤 문맥에 따라 '입다'의 유의어인 '걸치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입다'는 뜻으로 표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7) 又問:「於天下如何?」由曰:「則時無也,他一千年外,聲敎被於此土 」

다시 물었다. [천하가 어떠하겠는가?] 소유가 대답했다. [당장에는 없사옵고 1천년 뒤엔 그의 교법이 이 땅에 퍼질 것입니다.](10a4-6)

 

(8) 朕聞如來以心之法付囑摩訶迦葉,如是相傳,至於達摩,敎被東土,代代相承,至今不絶

짐이 듣건대 여래께서 마음의 법을 마하가섭에게 전하셨고 그렇게 다시 차츰차츰 전하여 달마에 이르러 그 가르침이 동토에 퍼져(전해져서) 대대로 이어받아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46b13-14)

 

 

(7)과 (8)은 모두 '퍼지다'라는 의미로 쓰인 예문들이다. 이 의미로 쓰인 경우는 4회 밖에 출현하지 않는다. (7)은 뒤에 개사 '於'가 출현하고 있지만 (8)은 뒤에 개사가 출현하지 않고 있다. 이는 동사의 동작방향에 기인한 것이다. 즉 전자는 '動作의 內向性'의 의미가 강하며 후자는 '動作의 外向性'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전자는 동작을 받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며 후자는 동작을 전해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예문들에 나오는 '被'의 의미는 모두 '입다'라는 의미에서 파생된 의미로 볼 수 있다. '입다'는 '몸'이라는 물체에 어떤 물체가 더해지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므로 '덮다' 혹은 '덮어쓰다'로, 심지어는 '퍼지다'라는 의미로 쉽게 파생될 수 있다. 그러나 {조당집}에서의 출현 빈도는 아주 낮아 출현 비율로 본다면 원래의 의미인 '입다'라는 의미가 '퍼지다'라는 의미로 완전히 전이되고 있지 못함을 알 수 있다.

 

(9) 師曰:「汝得入處更作摩生?」僧無對,被棒

선사께서 가로되:{그대가 (깨달아) 들어간 곳은 또 어떤가?} 중이 대답이 없자 선사의 방망이를 맞았다. (146a11)

 

(10) 問:「惺惺爲什摩 被熱惱?」

묻기를:「성성하였는데 어째서 도리어 뜨거운 괴로움을 당합니까?」(196b4-5)

 

(9)와 (10)은 '맞다' 혹은 '당하다' 등의 의미로 쓰인 예이다. {조당집}에서는 2회 밖에 출현하지 않는다. 이 예문에 쓰인 의미도 기본적으로는 '입다'라는 의미에서 파생되어 쓰인 용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상을 종합해 볼 때 {조당집}에서 동사로 쓰인 용법은 기본적으로 '입다'라는 의미와 이에서 파생된 의미가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입다'라는 의미는 기본적으로 '내향적인 동작'에 쓰이는 용법이다. 즉 어떤 동작이나 행위가 객체 쪽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 쪽으로 향할 때 이를 '피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인간을 중심으로 파악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을 다른 말로 바꾸면 인간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동작.행위.사건 등 제 현상을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을 중심으로 해서 동작이나 사물이 자신에게로 향하는 경우에는 동작을 받는 것으로 '被動'이 되고, 동작.행위나 사물이 자신에게서 밖으로 향하는 경우에는 동작을 일으키는 것으로 '能動 혹은 使動'이 된다. 이를 중국어라는 언어형식에 적용시켜보면 동사 앞에 오는 것이 주체에 해당되는 주어가 된다.

 

이렇게 볼 때 동작이나 행위가 주체 쪽으로 향하게 되면 '內向'이나 '被動'이 된다. 그 반대는 '外向'이나 '능동'이 된다. 그러므로 {조당집}에서 동사 용법으로 사용된 '被'가 '입다'.'퍼지다'.'당하다'.'맞다' 등의 용법으로 쓰인 것은 위의 관점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세 번째는 '被'가 '피동'의 용법으로 쓰여 일종의 기능사인 표지(marker) 역할을 하고 있는 경우이다. 즉 {조당집}에서 동사가 아닌 일종의 기능사로 쓰이면서 '피동문'을 만드는 용법으로 쓰인 예는 모두 81회 출현한다. 그 예문을 문장 구조에 따라 구분해보면 아래와 같다.

 

(11) 師云:「三十年學騎馬,今日被驢撲 」

조사께서 말씀하시길 : {내가 삼십 년 동안 말타기를 익혔는데 오늘 아침 당나귀에게 채였구나!}(333a14-333b1)

 

(12) 汝若秀過祖佛不得,則被祖佛

그대들이 만일 조사와 부처님의 경지를 초월하지 못하면 조사와 부처님의 속임을 당하리라(169a4-5)

 

(13) 安國和尙拈問雲居:「魯祖過在什摩處,被南泉呵??」雲居便呵,安國出聲啼哭

안국 화상이 이 일을 들어 운거에게 묻기를 :{노조에게 어떠한 허물이 있었기에 남전의 꾸지람을 들었습니까?} 이에 운거가 꾸짖으니 안국이 소리를 높여 곡을 했다. (277a2-4)

 

(11)에서 (13)까지는 '被' 기능사 뒤에 '主動'을 표시하는 낱말인 명사가 오고 그 뒤에 다시 동사가 출현하는 문장구조이다. 즉 [M+N主動+V]이다. 앞에서 분석한 결과에서 보듯이 '被'가 동사 용법으로 쓰일 때는 '주동'을 표시하는 낱말이 문장에 출현하지 않았다. 그러나 위의 문장은 '被' 뒤에 '주동'을 표시하는 낱말이 출현하고 다시 주요동사가 출현하고 있다. 이로 볼 때 '被'는 이미 {조당집} 시대에 순수한 동사의 기능에서 '피동'의 기능만 하는 기능사로 전이되었음을 알 수 있다.

 

 

(14) 告惠可曰:「吾自到此土,六度被人下藥,我皆拈出;今此一度,更不拈出,吾已得人付法 」

혜가에게 말했다. {내가 이 땅에 온 뒤에 여섯 차례 사람들에게서 독약을 받았으나 모두 집어냈는데 이제 한 차례는 집어내지 않으려 하나니 나는 이미 사람을 만나 법을 전했음이니라.}(38a1-2)

 

(15) 他無語,便被師與三? 

그가 말이 없으니 선사에게 주먹 세 대를 맞았다.(140a9-10)

 

(14)와 (15)는 [M+NP主動+V+NP] 구조로써 위의 예문과 비교할 때 다시 뒤에 명사나 명사구가 추가된 문장이다. 이를 두고 왕력(1980:247)은 당대에 새로 나타난 '被字句'의 구조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통사구조는 {조당집}에서 12회 출현하고 있다.

 

 

(16) 於彼殿角,有一銅鈴被風搖響,師曰:「彼風鳴耶?銅鈴鳴耶?」

그 절 처마 끝에 풍경이 있어 바람에 흔들리면서 소리를 내거늘 조사께서 물었다. 바람이 우는가 풍경이 우는가?(26a13-26b1)

 

(17) 羅漢和尙拈問僧:「當此之時,作摩生免得被他喝出?」

나한 화상이 이 일을 들어 어떤 중에게 물었다. {이럴 때에 어찌하여야 그에게서 꾸지람을 면할 수 있었겠습니까?} (315b12-13)

 

(16)과 (17)은 [M+NP主動+V+C] 구조로 주요동사 뒤에 다시 보어가 추가된 문장이다.

(11)에서 (17)까지는 모두 '被' 뒤에 동사의 동작이나 행위를 유발시키는 즉 '主動'의 개념을 나타내는 '명사구'가 따르고 있다. 이 점은 원빈이 지적했듯이 고대한어와 근대한어를 구분하는 특징 중의 하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왕력도 단음절 동사가 뒤에 홀로 남으면 외롭기 때문에 다른 '使成式'이나 보어와 결합한다고 하였다. 즉 주요동사 뒤에 보충어가 추가되는 것은 피동문의 초기 형식이 아니라 상당히 발전된 이후의 어법형식임을 알 수 있다. 이로 볼 때 {조당집}에 출현하는 [M被+NP主動+VP]의 피동구 구조는 근대한어의 '被'자 피동문이 초기 형태가 아니라 이미 상당히 성숙한 형태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위의 예문은 근대한어의 피동문의 발전단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문들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18) 師歎曰:「我是沙門,被尼衆所笑,濫處丈夫之形,而無丈夫之用 」

조사께서 탄식하여 가로되:{나는 명색이 사문이면서도 비구니의 웃음거리가 되었도다. 외람되게도 장부의 형상은 갖추었으나 장부의 작용이 없구나!} (368a13-368b1)

 

(19) 時薛簡聞師所說,豁然便悟,禮師數拜曰:「弟子今日始知佛性本自有之,昔日將謂太遠,今日始知至道不遙,行之卽是……今日始知佛性常而不變易,不被諸境所遷 」

이 때 설간이 조사의 설법을 듣자 활짝 깨닫고 몇 번 거듭거듭 조사께 절을 한 뒤에 말했다. "제자가 오늘에야 비로소 불성은 본래부터 있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지난날에는 아주 멀다고 여겼었습니다. 오늘에야 비로소 지극한 도는 멀지 않고 행하면 곧 이를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오늘에야 비로소 불성은 영원하여 변치 않고 모든 경계에 끌리지 않는 것임을 알았습니다."(48a4-10)

 

(18)과 (19)는 [M+NP+Ms+V] 구조로 일반적으로 말하는 [被…所…] 구문이다. 이 구문은 그 이전의 피동문 구문 중 하나인 [爲…所…]에 의해 類化된 구문이다.

 

 

(20) 云:「若被搭,則不是沙門相 」

가로되:{만일 붙들린다면 사문의 모습이 아니니라.}(164a2)

 

(21) 後國師入三昧,心不涉境,三藏覓國師意不得,被呵云:「這野狐精!」

나중에 국사께서 삼매에 드시어 경계를 지나지 않는 마음을 (삼장에게 찾으라고 했으나) 삼장이 국사의 뜻을 찾지 못하자 꾸지람을 듣기를:[이 돌 여우의 혼신아!] 하였느니라. (349a3-5)

 

 

(20)과 (21)은 [M+V] 구조로 기능사인 '被' 뒤에 바로 동사가 오는 문장이다. 이런 구조는 고대한어의 피동구문인 [見+VP]나 [爲+VP]의 구조와 비슷하다. 그러므로 이는 '피'자 피동문의 초기 형태라 할 수 있다. {조당집}에서는 총 11회 출현하여 비교적 낮은 빈도수를 나타내고 있으며 이는 사용빈도가 점차 약해져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22) 登時神會喚作本源佛性,尙被與杖,今時說道達摩祖師將經來此,是糊達摩,帶累祖宗,合喫其鐵棒

오를 때 신회는 본원 불성이라는 이름을 붙이고도 몽둥이를 맞았거늘 지금 달마께서 경을 가지고 이곳에 왔다 하니 이는 달마를 가리우는 짓이며 조종에 누를 끼치는 짓이니 무쇠 방망이를 맞아야 될 것이다. (350a8-11)

 

(23) 石門拈問明眞:「作摩生道,卽得免被喚作半個聖人?」

석문이 이 일을 들어 명진에게 물었다. {어떻게 말했어야 반 토막의 성인이란 말을 듣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269b7-8)

 

 

(22)와 (23)은 [M+V+N] 혹은 [M+V+NP] 구조로 '被' 자 뒤의 동사가 다시 목적어를 취하는 문장이다. {조당집}에는 총 4회 출현한다.

 

 

(24) 有人問師:「瑞和尙爲什摩 被打殺?」師云:「爲伊惜命 」

어떤 사람이 선사께 물었다. {서 화상께서는 어찌하여 죽음을 당하였습니까?} 선사께서 대답했다. {그가 목숨을 아끼기 때문이니라.} (336b3-4)

 

(25) 又須向伊道,若道,又被撲殺;不道,違於他問 汝此時作摩生指他,自免喪身失命?」

또 그에게 대답을 해야 되는데 대답을 하면 밀쳐 떨어져 죽을 것이요 대답치 않으면 그의 물음을 외면하는 것이니 이럴 때엔 어떻게 그에게 지시해야 생명을 잃지 않겠는가?}(355a8-10)

 

 

(24)와 (25)는 [M+V+C] 구문으로 주요동사 뒤에 다시 보어가 오는 문장이다. {조당집}에는 총 6회 출현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피'자의 피동문 용법을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다.

'피'자 피동문 어법형식은 크게 [M+NP+VP]와 [M+VP]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총 60회 출현하여 74.1%를 차지하고 있으며, 후자는 총 21회 출현하여 25.9%를 차지하고 있다. '피'자 피동문이 [M+VP]의 통사구조에서 [M +N主動+VP]의 구조로 발전했다는 한어의 역사언어학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피'자 피동문이 당시 피동문의 주요 용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M+NP+V+C]가 19회, [M+NP+V+NP]가 12회, [M+NP+V]가 25회(그 중 단음절 동사가 16회), [M+NP+MS+VP]가 4회, [M+V+C]가 6회, [M+V+NP]가 4회, [M+V]가 11회이다. 여기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M+NP+V] 구조에서 단음절 동사가 16회나 사용되어 아직도 단음절 동사가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은 현대 중국어에서 단음절 동사가 피동문에서 사용되지 못한다는 점과 비교해 볼 때 매우 대비적이다. 이를 통해 근대 중국어의 피동문이 현대 중국어의 피동문으로 변천되어 가는 과정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조당집}에 출현하는 '被'의 용법을 도표화하면 아래와 같다.

위 표를 통해 볼 때 '被'는 {조당집}에서 총 125회 출현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 '피동문'을 만드는데 사용된 용법이 전체의 64.8%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조당집} 시대에 '被'의 피동 용법이 가장 대표적이면서도 보편적인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 현대 중국어에 있어서는 동사 용법이 사라지고 '피동' 용법이 이 글자의 주요한 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로 볼 때 당시 '被'의 용법은 원래의 용법인 동사 혹은 명사 용법에서 현대 중국어의 '피동' 용법으로 변천해 가는 과도기적 상태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 '爲'의 용법

 

{조당집}에 사용된 '爲' 자의 출현횟수는 총 1033번으로 그 용법은 명사, 의문사, 동사, 기능사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명사의 용법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26)  諡寶智大師無爲之塔

시호는 보지대사요 탑호는 무위였다.(165a8-9)

 

(27) 若能一生 心如木石相似 不爲陰界 五欲八風之所漂溺,則生死因斷,去住自由,不爲一切有爲因果所縛,他時還與無縛身同利物,以無縛心應一切,以無縛慧解一切縛,亦能應病與藥

만일 한 평생 동안 마음이 목석과 같아서 오음.십팔계.오욕.팔풍에 흔들리지 않으면 생사의 원인이 끊어져서 가고 옴에 자유로와 일체 유위의 인과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며 다른 날엔 도리어 속박 없는 몸과 같아서 중생을 이롭게 하되 속박 없는 마음으로 할 것이며 일체 사물에 응하되 속박 없는 지혜로써 할 것이며 일체 속박을 풀되 역시 병에 맞추어 약을 주게 되리라.(275a3-7)

 

 

{조당집}에서 출현하는 '爲'자 가운데 명사에 속하는 글자로 쓰인 예는 총 35회이다. (26)은 선사의 탑호로 쓰인 명사이고 (27)은 불교용어로 쓰인 명사이다. 어법적인 구조를 살펴보면 이들은 모두 형태론에서 다루어야 하는 하나의 낱말이지만 의미론의 관점으로 보면 '함' 혹은 '하다'라는 의미소를 내포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이들 명사들은 모두 '爲'자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의미인 '하다' 혹은 '만들다'라는 뜻의 의미소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아래 (29) 등에서 출현하는 '동사'에서 전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8) 保福曰:「昔日雲 又奚爲?」慶云:「養子方知父慈 」보복이 가로되:

{옛날의 운암은 또 어찌하겠습니까?} 장경이 가로되:{자식을 길러야 부모의 은공을 아느니라.} (100b6-7)

 

(28)은 '奚爲'라는 일종의 의문사로 출현한 예문이다. {조당집}에서 '爲'가 이렇게 의문사로 쓰인 예는 모두 8회 출현하는데 '奚爲'가 3번 출현하는 것 외에도 '若爲'가 4회, '何爲'가 1회 출현하고 있다.

 

(29) 藥出在一處坐,師問:「 在這裡作什摩?」對曰:「一物也不爲 」

약산이 앉았는데 선사께서 물었다. {여기서 무엇을 하는가?} 약산이 대답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77a6)

 

(30) 謂識此相者,名爲聖人,迷此相者,名爲凡流

이 형상을 아는 이는 성인이라 하고 이 형상에 미혹한 이는 범부라 한다.(370b12-13)

 

(31) 紹承王位,號爲遮王,又云鬱摩王,亦曰懿摩王也

왕위를 계승하게 하였으니 차왕(遮王)이라 부르기도 하고 또는 울마왕(鬱摩王)이라 이르기도 하고 또는 의마왕(懿摩王)이라 말하기도 한다.(7a12-14)

 

 

(29)는 동사의 용법으로 쓰인 예문 중 '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문장이다. 이 '하다'의 뜻을 가진 문장은 모두 22회 출현한다. (30)과 (31)은 '부르다'라는 의미를 지닌 '名', '號', '呼' 등의 동사 뒤에 와서 보어 역할을 하는 경우이다. 이런 예문은 '하다' 혹은 '만들다'에서 파생된 의미소 '되다'를 지니고 있다. 총 73회 출현한다.

 

 

(32) 年十一,出家於南嶽,年十八, 爲沙彌,問津於大寂, 領心要

십일 세에 남악에서 출가하여 십팔 세에 사미가 된 뒤에 대적에게 법을 물어 심요를 가만히 깨달았다. (287b1-2)

 

(33) 俗姓金氏,武烈大王八代之祖

속성은 김씨이다. 무열 대왕이 팔대 손이 된다.(322a3)

 

(34) 雲問山,山云:「諸法空座 」

운암이 다시 위산에게 물으니 위산은 이렇게 대답했다. {모든 법이 공으로써 자리를 삼는다.} (104b8-9)

 

 

(32)는 '되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로 쓰인 예이다. 이 예문은 앞의 (30)이나 (31)이 보어로 쓰인 것과는 달리 '주요동사'로 쓰이고 있다. {조당집}에서 '되다'라는 의미를 표현하면서 '주요동사'로 쓰인 예는 모두 198회 출현한다. 보어로 쓰인 용법과 합한다면 '되다'라는 의미소를 지닌 '爲'는 모두 271회가 된다. (33)과 (34)는 '삼다'라는 의미를 지닌 예문들이다. '삼다'라는 용법으로 쓰인 예문은 총 113회 출현한다.

 

(35) ?多三藏,嗣六祖 師,天竺人也 行至大原定襄縣曆村,見秀大師弟子結草爲庵,獨坐觀心,師問:「作什摩?」對曰:「看靜 」

굴다 삼장은 육조의 법을 이었다. 조사는 천축 사람이다. 대원의 정양현 역촌까지 왔을 때 신수 대사의 제자가 풀을 이어 초막을 만들고 홀로 앉아서 마음을 관하는 것을 보고 물었다. {무엇을 하는가?} 중이 대답했다. {고요함을 지켜봅니다.} (65b2-4)

 

(36) 以貞元三年五月五日誕生, 有童心,便知佛事,每汲水以供魚,常聚沙而爲塔,年至壯齒,志願出家 정원 3년 5월 5일에 탄생하였는데 어릴 적부터 불법을 좋아하여 매양 물을 길어다가 물고기에게 주었고 모래를 모아서 탑을 만들더니 장년이 되자 출가할 뜻을 갖게 되었다. (318a12-14)

 

(35)와 (36)은 모두 '만들다'라는 의미소를 지닌 동사로 쓰인 예들이다. {조당집}에서는 총 5회 출현한다. 갑골문에 따르면 '위'는 사람이 코끼리를 끌고 노동에 종사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서 본의는 '하다'라는 뜻이 된다. 이렇게 본다면 {조당집} 시대의 '위'는 이미 본래의 의미를 거의 잃고 대부분 전성된 의미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7) 答曰:「正傳禪根,不求法故,師亦不餉,是爲無舌土也 }

대답하기를:{선법을 바르게 전하는 근기는 법을 구하지 않기 때문에 스승도 필요치 않나니 이것이 혀 없는 국토이니라. }(322b13-14)

 

 

(37)은 '이다'의 의미에 가까운 예문이다. 이런 예문은 '되다'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는데 이런 '되다'라는 의미와 '이다'라는 의미를 공유하고 있는 예문은 모두 20회 출현한다. 이것은 '爲'가 본래의 의미인 '하다'나 '만들다'에서 '되다'라는 의미로 바뀐 후 다시 '이다'라는 의미로까지 파생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8) 百丈 起拂子對,師云:「只這個,爲當別更有?」

백장이 불자를 세움으로써 대답하니 선사께서 다시 물었다. {다만 이것뿐인가? 아니면 따로 있는가?}(265a5)

 

(39) 國師云:「只者個,爲當別更有不?」

국사께서 말했다. {이것뿐인가 아니면 또 있는가?}(280b3-4)

 

(40) 問:「三乘十二分敎體理得妙,是祖師意?爲復不是祖師意?」

묻기를:{삼승 십이분교의 진리를 체험하여 묘를 얻는 것은 조사의 뜻입니까 아니면 조사의 뜻이 아닙니까?} (317a10-11)

 

(41) 又問:「一切人佛性爲復一種?爲復有別?」師曰:「不得一種 」

또 물기를:{모든 사람들의 불성은 한 종류인가? 아니면 차별된 종류인가요?} 국사께서 대답했다. {똑같을 수가 없느니라.}(64a3-4)

 

 

(38)에서 (41)까지는 '爲'가 '當' 혹은 '復'과 결합하여 의문문을 만드는 표지(marker)로 쓰이고 있다. 이는 '爲'가 본래의 의미를 지닌 '동사'와 같은 실사에서 '허사' 기능까지도 겸하는 역할로 바뀌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예는 {조당집}에 모두 79회 출현하는데 그 출현빈도를 보더라도 당말오대 시대에 이미 보편적인 용법의 하나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第三問曰:「其所修者,爲頓爲漸?漸則忘前失後,何以集合而成?頓卽萬行多方,豈得一時圓滿?」{그 닦는다는 것은 돈(頓=단박)입니까? 점(漸=점차)입니까? 점이라면 앞의 것과 뒤의 것을 잊으리니 어찌 한데 모아 이룰 수 있겠습니까? 돈이라면 萬行이 여러 방법인데 어찌 한꺼번에 원만해지겠습니까?} (114b3-4)"와 같은 예문에서처럼 단독으로 쓰여도 의문문을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42) 某甲是和尙侍者,若不與某甲說,爲什摩人說?

저는 스님의 시자입니다. 저에게 이야기를 못하시면 누구를 위해(누구에게) 말하시겠습니까?}(273a9-10)

 

(43) 師曰:「不會無眼耳鼻舌身意,請和尙爲某甲說 」

선사께서 가로되:{눈.귀.코.혀.몸.뜻이 모두 없다는 구절을 모릅니다. 화상께서 저를 위해(저에게) 설명해 주십시오.} (117b5-6)

 

 

(42)에서 (44)까지는 [爲+NP+V]의 구조로 '위하여'라는 의미소를 가진 '개사(介詞)'로 쓰인 예문이다.

 

 

(44) 師曰:「海師兄一日十二時中爲師僧說什摩法?」

선사께서 가로되:{회해 사형이 하루 종일 그대들을 위해(사승들에게) 어떤 법을 말씀하시던가?} (86a3-4)

 

 

(44)는 [爲+NP+V+NP]의 구조로 위의 예문과는 달리 주요동사 뒤에 다시 명사구가 추가되어 '위하여'라는 의미소를 가진 '개사(介詞)'로 쓰인 예문들이다. 이상의 (42)에서 (44)까지를 통해 볼 때 '위하여'의 의미를 가진 '爲'는 완전히 '개사'로 변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래 예문을 보자.

 

(45) 「我爲什摩不聞?」僧無對,師打之

{그런데 나는 어찌하여 듣지 못하는가?} 중이 대답이 없으니 선사께서 때렸다. (290b4-5)

 

(46) 大德云:「某甲爲什摩不聞?」

대덕이 물었다. {저는 어째서 듣지 못합니까?} (328b11 -12)

 

(47) 師曰:「不喫 」進曰:「爲什摩不喫?」

선사께서 말씀하셨다. {안 먹겠다.} 또 가로되:{어째서 드시지 않으시겠습니까?} (90b13)

 

 

(45)에서 (47)까지는 [爲什摩+VP]의 구조로 문맥의 의미로 볼 때 [爲什摩]는 전체가 하나의 의문사로써 '왜', '어째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며 통사적으로 분석하면 성분의 한 부분으로써 '위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즉 이것은 현대 중국어에서 의문사로 쓰이는 '爲甚 '와 똑같은 기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래의 예문을 보면 형태론적인 분석을 통한 이런 설명이 '爲'의 용법에 대한 완전한 통사적인 해석이 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48) 入嶺參師,擧前話進問:「爲什摩故不道?」

{민령에 들어가 스승께 뵙고 앞의 이야기를 들어 물었다. {어째서 대답치 않으십니까?}(365a13-14)

 

(49) 師云:「爲什摩故不住?」對曰:「目前無寺 」

선사께서 가로되:{어째서 머무르지 않는가?} 대답하여 가로되:{눈 앞에 절이 없습니다.} (102b14-103a)

 

(50) 先師曰:『爲什摩故如此?』某甲對云:『目前無寺 』

선사께서 가로되:[어째서 그런가?] 하시기에 제가 대답하기를:[눈앞에 절이라곤 없습니다] 하였느니라.(134b12 -13)

 

(51) 爲什摩故?忠言不避截舌,利刀則血 梵天

어째서입니까? 충성스러운 말은 혀가 끊이는 것을 피하지 않거니와 날카로운 칼은 죄가 범천에까지 뿌리기 때문이니라.(239a3)

 

 

(48)에서 (50)까지는 [爲什摩故+VP]의 구조로 분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의 '爲什摩'는 하나의 낱말로 볼 수 없으며 형태론의 구조가 아니라 통사상의 구조로 보아야 할 것이다. 위 (45)에서 (47)처럼 '爲什摩'가 '왜'나 '어째서'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하나의 낱말이라면 (48)에서 (51)까지는 왜 '故'라는 글자가 추가되었어야 할까? 그러므로 당시의 '爲什摩'는 현대 중국어처럼 의문사, 하나의 낱말로 발전했다고는 보기 힘들다. 아래 예문을 보자.

 

(52) 故知釋迦如來無量劫前,已成行滿大覺,而爲衆生故,示顯始成正覺

이것으로써 석가여래께서는 이미 한량없는 겁 전에 행이 원만한 대각을 이루셨으나 중생을 위하는 까닭에 비로소 정각을 이루시는 모습을 나타내어 보이신 것을 알 수 있느니라.(375b14 -376a2)

 

(53) 時太子被囚深宮, 不得食,乃云:「我爲法故,今此饑渴,如何存濟?」

그 때에 태자가 깊은 궁에 갇히어 음식을 얻지 못하게 되자 말했다. {나는 법을 위해서 이런 고통을 당하는데 어찌하여야 구제를 받겠는가?}(30b13-14)

 

(54) 師曰:「爲有妄故,將眞對妄 推窮妄性,本來空寂,眞亦何曾更有實體?故知眞妄總是假名 」

조사께서 가로되:{망(妄)이 있다하는 까닭으로 참(眞)을 가져 망(妄)에 상대하게 되는데 망(妄)의 성품을 추궁하여 보면 본래 공적(空寂)한 것입니다. 참(眞) 또한 그러하여 어찌 일찍이 다시 실체가 있다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진(眞)과 망(妄)이 모두 거짓 이름임을 알 수 있습니다.}(69a2-4)

 

 

(52)와 (53)은 [爲+N+故]의 구조로 되어 있으며 (54)는 [爲+V+N+故]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 통해보면 '爲'는 아직 '동사'의 기능이 그대로 살아 있음을 알 수 있다. (52)와 (53)의 [爲+N+故] 구조는 통사적인 구조로 본다면 위의 (48)-(51)과 완전히 같음을 알 수 있다. 단지 'N'에 해당되는 낱말이 전자는 명사이며 후자는 의문대사일 뿐이다. 이를 (54)와 비교하여 종합해보면 '爲什摩'를 의문사, 즉 하나의 낱말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51)처럼 '爲什摩故'는 단독으로 문장을 형성하는 예가 있지만 '爲什摩'는 반드시 뒤에 다른 성분이 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당집}에 출현하는 '爲什摩' 가운데 유일하게 뒤에 다른 성분이 오지 않는 예문은 "問:「和尙向上曾爲什摩?」{화상의 지난날은 어떠하셨습니까?}(90b6-7)"이다. 그러나 이 예문의 통사적 구조를 분석해보면 '爲'는 주요동사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오대시기에는 아직 완전한 '개사'로 변화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爲什摩'도 완전한 하나의 낱말로 굳어진 '의문사'로까지 발전하지 못하고 그 변천 과정 속의 과도기적 형태로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래 예문들은 이런 논지에 대한 더 확실한 증거들이다.

 

 

(55) 師云:「汝道我在這裡爲個什摩?」

선사께서 대답했다. {그대는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은 무엇을 위함이라고 여기는가?} (221b1)

 

(56) 又問:「來這裏爲個什摩事?」

또 물었다. {여기까지 오신 것은 무슨 일을 위하심입니까?}(272b3)

 

(57) 祖師曰:「實說, 是什摩處人?」子曰:「浙中人 」祖曰:「遠來到這裏爲什摩事?」

조사께서 가로되:{사실을 말하라. 그대는 어느 곳 사람인가?} 아들이 대답하기를:{예, 절강성(浙中) 사람입니다.} 조사께서 가로되:{멀리 예까지 옴은 무슨 일을 위함입니까?} (58a2-3)

 

(58) 大德!本離歸中,抛 父母出家爲什摩事?

대덕들이여! 본래 고향을 떠나고 부모를 하직하여 출가한 뜻은 무엇을 위해서였던가? (358a6-7)

 

(59) 藥山問:「去什摩處?」對曰:「欲去?山師兄處 」師曰:「爲什摩事?」對曰:「某甲與?山在百丈時有一願 」

약산께서 묻기를:{어디로 가려는가?} 대답하여 가로되:{위산에게로 가겠습니다.} 선사께서 가로되:{무슨 일을 위함입니까?} 대답하여 가로되:{제가 위산과 함께 백장에 있을 때에 서로 서원한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89b3-4)

 

 

(55)와 (56)은 '個'라는 量詞가 들어간 통사구조로써 [V+Q+N]의 구조이다. 또한 이 예문에 나온 '爲'를 '위하다'라는 동사의 의미로 해석했지만 문맥상으로 볼 때 '어째서인가'라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45)-(51)처럼 하나의 낱말로 보아 '어째서'로 해석할 수 있을까? 이것은 분명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55)와 (56)이 하나의 성분으로 형성된 통사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45)-(51)은 (58)과 (59)와 같이 '爲'도 '위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하나의 동사로 보아야 한다. 아래 예문은 이러한 설명을 더욱 분명히 해준다.

 

(60) 僧云:「爲什摩人?」

스님이 가로되:{누구를 위함입니까?} (255b1-2)

 

(61) 師曰:「 來去爲阿誰?」

조사께서 가로되:{그대가 왔다 갔다 함은 누구를 위해서인가?}(86b7)

 

(62) 進曰:「終不道和尙不爲人 」

또 가로되:{화상께서 사람을 위하지 않는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습니다.}(245b14-246a1)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爲'가 '爲什摩'의 형태로 독자적으로 출현하는 경우는 단 1회였다. 그리고 이 때도 '爲'는 문장에서 주요동사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았다.

(60)은 [[爲什摩]Adv[人]N]?로 분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爲]V[[什摩]Adj[人]N]NP]VP로 분석되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爲'가 동사로 쓰이고 있음은 더욱 분명해진다. (61)과 (62)의 '爲'도 동사로 보지 않고 '개사'와 같은 기능사로 본다면 그 뒤에 주요동사가 따라와야 한다. 그러나 이들 예문은 그렇지 않다. 이것은 '爲'가 주요동사로 쓰이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이상의 분석을 종합해 볼 때 '爲'는 당말오대 시기에는 아직 '때문에'라는 의미로 완전히 넘어가지 않고 있으며 '위하다'라는 의미가 주요 의미기능을 담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45)-(47)은 '爲什摩'가 '어째서'라는 의미를 지닌 하나의 '의문사'로 발전해갈 가능성을 예견해주고 있으며 (48)-(51)은 이런 발전 가능성에 대한 방증으로써 과도기적 형태임을 증명해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42)-(44)를 통하여 보면 '위하여'라는 의미를 지닌 '개사'로도 쓰이고 있으며 이 용법이 점차 보편화될 가능성을 시사해주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42) 계열은 그 이후 '위하여'라는 의미소를 가진 '개사'로 발전하여 갔으며 (45) 계열은 '때문에'라는 의미소를 지닌 '의문사'로 발전하여 현대 중국어에 이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위하다'의 의미로 동사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爲'는 {조당집}에서 총 477회 출현하고 있다. 그 가운데 나중에 '의문사'로 발전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예문은 232회 출현하고 있으며 '개사'로 발전할 가능성을 가진 예문은 총 245회 출현하여 비슷한 분포도를 나타내고 있다. 총 477회라는 출현 빈도를 보더라도 이 용법은 당시 보편적인 용법으로 쓰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이런 '量'의 증가는 완전한 '의문사' 혹은 '개사'로의 '質'적인 변화를 잉태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63) 本是金龍尊佛,今如來化,建立法幢,度六萬衆,高懸佛日,大照迷徒,博達總持,多聞第一

전생에는 금룡존불이더니 금생에 여래에게 제도되어 법당을 세우고 6만 대중을 교화하였으며 부처의 해를 높이 달아 미혹한 무리를 널리 비추고 총명과 지혜가 높아 많이 아는 이 중에서 제일이었다. (17b5-7)

 

(64) 若能一生心如木石相似, 不陰界五欲八風之所漂溺,則生死因斷,去住自由,不爲一切有爲因果所縛,他時還與無縛身同利物,以無縛心應一切,以無縛慧解一切縛,亦能應病與藥

만일 한 평생 동안 마음이 목석과 같아서 오음.십팔계.오욕.팔풍에 흔들리지 않으면 생사의 원인이 끊어져서 가고 옴에 자유로와 일체 유위의 인과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며 다른 날엔 도리어 속박 없는 몸과 같아서 중생을 이롭게 하되 속박없는 마음으로 할 것이며 일체 사물에 응하되 속박 없는 지혜로써 할 것이며 일체 속박을 풀되 역시 병에 맞추어 약을 주게 되리라.}(275a3-7)

 

(65) 便去彼所,化導群生,得三十四年 或在城市,隨處任緣,或爲人所使,事畢 還

훌쩍 그곳을 떠나 중생을 교화한 지 34년 동안이나 되었다. 혹은 저자 거리에서 인연에 따르고 혹은 다른 사람에게 부림을 당하되(남의 심부름을 하되) 일이 끝나면 곧 돌아갔다.(40a14-40b1)

 

 

(63)-(65)는 [爲…所…]의 구조로 된 '피동문'이다. 屈承熹에 따르면 '爲'가 피동문으로 쓰인 시기는 기원전 500 년에서 서기 900 년경이다. 바꾸어 말하면 공자가 살았던 시기부터 당나라 말기까지이다.

 

또한 [爲…所…]의 피동문도 비슷한 시기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의 분석을 통해 볼 때 '被'를 사용한 피동문은 81회 출현하는 반면 '爲'를 사용한 피동문은 단지 3회 밖에 출현하지 않고 있으며 그것도 [爲…所…]의 구조로만 출현하고 있다. 이로 볼 때 {조당집} 시대의 피동문의 보편적인 용법은 이미 '被'로 바뀌었으며 '爲'를 사용한 피동문의 거의 소실 단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조당집}의 언어분포로 본다면 屈承熹의 관점은 충분한 사실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래 표는 {조당집}에 나오는 '爲'에 대한 용법을 종합한 것이다.

이 도표를 통해 보면 당시 '爲'의 대표적인 용법은 동사였음을 알 수 있다. 본래의 의미인 '하다'.'만들다'와 이에서 파생된 의미 '되다', '삼다' 등을 포함한 '하다'류의 동사 용법이 대표적인 용법의 하나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本義인 '하다' 혹은 '만들다'의 의미보다 '되다'.'삼다' 등의 의미가 훨씬 많이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당집}에 출현하는 '爲'의 용법 중 주의할 만한 것은 '위하다'류의 동사 용법과 '의문문'으로 쓰인 용법이다. 전자는 현대 중국어의 '의문사(왜)'와 '개사(위하여)'로 발전할 가능성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으며 후자는 현대 중국어의 '선택의문문'의 변천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리고 '爲'의 피동 용법은 소실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3. '見'의 용법

 

{조당집}에 출현하는 '見'자는 총 950개이다. 그 중 대표적인 용법은 '보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이다. 먼저 명사 용법으로 쓰인 예문을 살펴보자.

(66) 行者 請張日用:「與我書偈,某甲有一個拙見 」

행자가 다시 장일용에게 청했다. {나를 대신해서 게송 하나를 받아 써 주시오. 나에게도 하나의 졸작이 있습니다.}(43a2-3)

 

(67) 對云:「唯有這個見解 」

대답하여 가로되:{아직도 이러한 견해가 남았습니다.}(251a13)

 

 

(66)과 (67)은 '見'이 '졸작'.'견해'라는 명사적인 용법으로 쓰인 예문이다. 이렇게 '見'이 이런 명사로 쓰인 예문은 총 94회 출현한다.

 

 

(68) 其舍父母見子言異,則令出家 師爲度脫,領詣古寺而爲受戒,名曰伽耶舍多

그 집 부모는 자기의 아들의 말이 특이함을 보고 곧 출가하게 하니 조사께서 거두어 어느 묵은 절로 데리고 가서 계를 받게 하시고 가야사다라 이름하였다.(26a12)

 

(69) 長慶云:「若向兩頭會,盡不見趙州意 」

장경이 가로되:{만일 두 끝에서 알려면 끝내 조주의 뜻을 보지 못하느니라.}(335a7)

 

(70) 師云:「吾滅度後一百六年有小難,父子相連,亦當不久,作一二三五歲,當此事過,以有人見其意,吾不能明 」

선사께서 가로되:{내가 죽은 지 일백육 년에 조그마한 난리가 일어나 부자의 대를 이을 것이나 역시 길지 않아 1.2.3.5년 동안이리라. 이 일이 지나고서야 누군가가 그의 뜻을 알 것이나 내 이제 밝힐 수 없노라.}(32b12-33a1)

 

 

(70)처럼 '見'을 '알다'라는 의미소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예문도 있지만 이는 1개에 불과하다. 또한 이 예문도 '보다'라는 의미에서 파생되었다고 본다면 '보다'라는 의미소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으므로 크게 '보다'라는 분류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68)과 (69)처럼 '見'이 '보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의 용법으로 쓰인 예문은 총 817회 출현하여 {조당집}에 나타나는 용법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71) 師云:「不見道:高原陸地 」

선사께서 가로되:{듣지 못했는가? 높은 언덕을 육지라 했느니라.}(183b2)

 

(72) 道吾曰:「特爲長老來,見說來日開堂,還是摩?」

도오가 말했다. {특히 장로를 보러 왔습니다. 듣건대 내일 개당을 한다는데 사실입니까?}(102b2-3)

 

(73) 弟子見問,恰稱本意,爲說百丈大師指援禪門心要:「靈光洞耀,逈脫根塵 體露眞常,不拘文字 心性無染,本自圓明 離 妄緣,則如如佛 」

제자는 이 물음을 받자 때가 왔다는 듯이 백장 대사께서 말씀하신 禪門心要를 다음과 같이 들려주었다. :{신령스런 광채가 훤하게 빛나니 根과 塵을 멀리 벗어났다. 본체에 진상이 드러났으니 문자와 말씀에는 구애됨이 없노라. 마음의 성품은 물들음이 없어서 본래부터 뚜렷하고 밝으니 허망한 인연을 여의기만 하면 곧 여여한 부처이니라.} (312b9-12)

 

 

(71)-(73)은 '듣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또한 '피동'이라는 의미소도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는 문장이다. {조당집}에 출현하는 이런 예문은 대부분 [見+V(道, 說, 問…)]의 형태로 '見' 뒤에 출현하는 동사가 거의 대부분 '말소리'와 관련이 있는 동사들이다. 그러므로 이를 '피동문'의 형태로 간주한다 하더라도 고대한어에서 존재하는 피동문의 구조로는 볼 수 없다. 屈承熹도 '見'이 피동문으로 쓰인 시대를 공자시대부터 한나라 말기(기원전 500 년 전 - 서기 200 년 전후)까지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은 왜 일어난 것일까?

아마도 {조당집}에서만 나타나는 특수구문의 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불교, 특히 선종언어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출현한 특수 구문이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조당집}에서는 [見+V(道, 說, 問…)]의 형식 외에는 고대한어에서처럼 일반동사가 와서 피동문으로 쓰인 예문이 출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런 예문이 {조당집}에서 총 38회나 출현하지만 {조당집} 시대의 일상언어의 보편적인 용법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74) 師云:「未出門,便見笑具 」

선사께서 가로되:{문 밖에 나서기 전에 벌써 웃음거리가 되었구나.}(201a13)

 

(74)는 의미 해석에서 볼 때는 '피동'으로 볼 수 있지만 전통적인 고대한어의 피동문 형태는 아니다. 게다가 이런 용법으로 사용된 예문은 {조당집}에서 단 1회 밖에 출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見'을 사용한 피동문은 {조당집} 시대에는 이미 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아래 표는 '見'의 용법과 각 용법의 출현빈도를 도표화한 것이다.

위 도표를 통해 볼 때 {조당집} 시대에는 '見'의 피동 용법이 거의 완전히 사라지고 원래 의미인 '보다'의 동사 용법이 주류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Ⅲ. '着'과 '穿'의 용법에 대한 분석

 

1. '着'의 용법에 대한 분석

 

'着'은 총 238회 출현하는데, 동사와 조사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75) 無着和尙到五臺山,見文殊化寺,共喫茶次,文殊提起茶 子云:『南方還有這個不?』

무착화상이 오대산에 갔는데 문수화사를 보고 문수와 차를 마시는데 문수가 차 종지를 들어올리면서 물었다. {남방에도 이런 것이 있는가?}(212a6-7)

 

 

{조당집}에 출현하는 '着'자 중 (75)처럼 '스님의 법호' 등 명사 용법으로 쓰인 예문은 모두 7회 출현한다.

 

(76) 羅山云:「如大蟲着角 」

나산이 가로되:{마치 범에게 뿔이 붙은 것과 같으니라.}(141a13-14)

 

(77) 師曰:「土上着一是王字,是什摩一字?」

국사께서 가로되:{흙(土) 위에 일(一)을 붙이면(더하면) 왕(王) 자가 되지 무슨 일 자이냐?}(60b3-4)

 

(78) 師到三日後,來云:「前日着賊

선사께서 삼 일이 지난 후에 와서 가로되:{어제는 도적을 맞았었다.}(382a11-12)

 

(79) 師云:「不出戶不着事 」

선사께서 가로되:{문 밖을 나서지 않으면 일을 만나지(부딪치지) 않느니라.}(153b11)

 

(80) 同光帝問師:「朕昨來河南,取得一個寶珠,無人着價 」

동광제가 선사에게 묻기를:{짐이 지난날 하남에서 보배 구슬 하나를 얻었는데 아무도 값을 놓지(두지, 매기기) 못하는군요.}(383b8-9)

 

(81) 僧擧似師,師云:「不可一個棺裡着兩個死屍 」

중이 선사께 와서 이 사실을 이야기하니 선사께서 말했다. {하나의 관 안에 두 시체를 둘(담을) 수 없느니라.} (287a10-11)

 

(82) 師曰:「設使有與,汝向什摩處着?」

선사께서 가로되:{설사 (그런 일이) 있다한들 너는 어느 곳으로 붙겠는가(그대에게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56a14-56b1)

 

 

(76)-(82)는 모두 '붙다' 혹은 '붙다'의 의미와 연계된 의미인 '맞다', '놓다', '두다' 등의 의미를 지닌 동사 용법으로 쓰인 예문이다. 이런 용법으로 쓰인 예문은 총 38회 출현한다.

 

(83) 旣無所住着,何論處所 階位?同年同月二日,沙門宗密謹對

이미 집착한 바가 없거늘 어찌 처소와 계급을 논하랴. 같은 해 같은 달 2일 사문 종밀은 삼가 답하노라.}(116a11-12)

 

(84) 師曰:「不着佛求 」

선사께서 가로되:{부처를 구하는 일에 집착하지 말지니라.}(60a7)

 

(83)과 (84)는 모두 '붙다'와 비슷한 유의어인 '집착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용법으로 쓰인 예문이다. 모두 10회 출현한다.

 

(85) 秀才如前對,石頭便點頭曰:「着槽廠去 」

수재가 전처럼 대꾸하니 석두가 곧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반찬간으로 보내라.} (79b6-7)

 

(85)는 '到(도달하다, ∼까지, ∼으로)'의 의미를 가지고 일종의 개사로 쓰인 예문이다. 이것도 '붙다'라는 의미에서 파생되었다고 할 수 있다. {조당집}에서는 1회 출현한다.

 

(86) 又問:「來這裏爲個什摩事?」對曰:「着疏 」

또 묻기를:{여기에 옴은 무슨 일을 위함입니까?} 대답하여 가로되:{소를 지으려합니다.}(272b3-4)

 

(86)은 '짓다, 만들다'의 의미소를 지니고 있은 예문으로 총 3회 출현한다. 이 예문을 통해 볼 때 '疏'라는 것은 '추가하여 보태는 것' 즉 '붙이는 것'이므로 '붙다'와 의미의 유화에 의해 생성된 용법이라고 할 수 있다.

 

(87) 急着力,勤咬齧,無常到來救不徹

급하게 힘 쓰라. 이를 악물라. 무상(無常=죽음)이 닥쳐오면 구제할 길 없다.(355b13-14)

 

(88) 師曰:「非但僧,佛來亦不着 」

선사께서 가로되:{중 뿐 아니라 부처가 왔더라도 쓸 데 없느니라.}(53b5)

 

 

(87)과 (88)은 '쓰다'라는 의미로 쓰인 예문으로 총 31회 출현한다.

 

 

(89) 着鞋履,執座具,上法堂禮拜,一切了,侍立,石頭云:「什摩處來?」

그리고는 신을 신은 채 방석을 들고 법당으로 올라가서 예배하고 문안한 뒤에 모시고 섰으니 석두가 말하길:{어디에서 왔는가?}(284b13-14)

 

(90) 居士臨遷化時,令女備湯水沐浴,着衣於床,端然趺坐,付囑女已,告曰:「 看日午則報來 」

거사가 떠나려 할 때 딸을 시켜 물을 데우게 하여 목욕을 하고 옷을 입고는 평상에 단정히 앉아서 딸에게 뒷일을 당부한 뒤에 이렇게 말했다. {네가 나가 보아서 해가 한나절에 닿거든 와서 이야기하라.} (296b7-8)

 

(91) 相公便抛 劍,着公衣服便禮拜

상공이 문득 칼을 버리고 관복을 차려입고서 절을 했다. (270a14-270b1)

 

 

(89)-(91)은 '몸에 붙이다'라는 의미의 '신다', '입다'의 용법으로 쓰인 예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조당집} 시대에 '입다'라는 의미로 쓰인 낱말은 '被'와 '着' 두 개이다.

그러나 '被'는 단지 '입다'라는 뜻으로 쓰여 뒤에 오는 낱말이 '옷'으로 제한되어 있으며 '着'은 '입다'는 뜻 외에 '신다'라는 뜻으로 그 의미가 넓게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師項十人,恰到界首,十人?,不敢進,師猶自入界內,軍人見師來便捉,着枷送上 군인들이 선사께서 오는 것을 보자 붙들어다가 칼을 씌워서 올려보냈다. (270a8-9)"처럼 현재 한국어의 한자어에서 사용되고 있는 '着帽'의 '着'인 '쓰다'의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다. 이런 의미로 사용된 예문은 총 27회 출현하고 있다.

 

 

(92) 師喚沙彌:「?出這個死屍着!」

선사께서 사미를 불러 가로되:{이 송장을 끌어내다 버려라!}(313b3-4)

 

(93) 師云:「苦殺人!老漢未造人在,適來忽然憶着菩提涅槃,所以與摩唾 」

선사께서 가로되:{사람을 몹시도 괴롭히는구나! 내가 사람이 되지 못해서 조금 전에 갑자기 보리와 열반이

생각이 났었느니라. 그래서 이렇게 침을 뱉었느니라.}(273a11-14)

(94) 師有時謂衆曰:「有個人家兒子,問着無有道不得底 」

선사께서 언제가 대중에게 말했다. :{누구든지 묻기만 하면 대답치 못 할 것이 없노라.}(97a9-10)

 

(95) 云:「莫屈着曹溪摩?」

가로되:{조계를 욕되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259a13 -259b1)

 

(92)-(95)는 모두 실질적인 어휘의미보다는 기능적인 의미소를 지닌 '조사'로 쓰인 예문이다. 모두 121회 출현하고 있으며 {조당집}에 나오는 '着'의 용법 중 출현빈도가 가장 높다. 현대 중국어에서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는 '着'의 '조사' 용법은 {조당집} 시대에 이미 '조사'로 변천되어 상당히 보편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2. '穿'의 용법에 대한 분석

 

'穿'으로 쓰인 예문은 총 6개인데 모두 '뚫다'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96) 師曰:「汝若學我看經,牛皮也須穿過 」

선사께서 가로되:{그대가 나를 따라서 경을 본다면 쇠가죽도 뚫을 것이니라.}(92b8)

 

(97) 問:「經首第一喚作何字?」師曰:「穿耳胡僧笑點頭 」

묻기를:{경 첫머리의 첫 글자를 무엇이라 합니까?} 선사께서 대답하기를:{귀고리를 꿴 호승(胡僧=달마 조사)이 빙그레 고개를 끄덕인다.}(196a8-9)

 

(98) 辭石霜,臨發時便問:「一毫穿衆穴時如何?」

석상에게 하직을 고하면서 떠날 때 묻기를:{한 개의 터럭에 여러 구멍을 뚫을 때는 어떠합니까?}(360b12-13)

 

 

(96)-(98)은 모두 '뚫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용법으로 쓰이고 있는 예문이다. {조당집}에서는 총 6회 출현하고 있으며 모두 '뚫다'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현대 중국어에서 '입다'라는 동사가 '穿'으로 쓰이고 있지만 {조당집} 시대에는 아직까지 '입다'라는 뜻으로 전이되거나 파생되지 않고 있으며 단지 본래의 의미인 '뚫다'라는 의미로만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위 도표를 통해 볼 때 '着'의 대표적인 용법은 동사와 조사로 쓰인 경우이다. 그 중 특이할만한 것은 '조사'의 용법이 과반수를 넘고 있다는 점이며, 현대 중국어와는 달리 동사 용법 중에서 '입다'.'신다' 등의 의미가 동사로 쓰이고 있으며 '穿'은 아직 현대 중국어의 '입다'라는 뜻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Ⅳ. {祖堂集} 피동문 어휘-의미틀 및 변천 기제

 

앞에서 분석한 '被'·'爲'·'見'·'着'·'穿'인 의미를 도표로 표시하여 의미의 상호관계에 따른 의미틀을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아래 도표를 통해 보면 언어형식과 언어내용이 어떻게 생성되어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면서 변화되어 가는가를 알 수 있다. 가장 공통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피동'과 '입다'라는 의미를 표시하는 낱말의 분포상황과 변천과정을 통하여 그 속에 들어있는 변천 원리, 즉 변천기제를 도출해 보고자 한다.

먼저 '피동'의 개념을 살펴보자. '被動'이란 개념은 우리 인류의 사유개념 속에서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지역의 말이든 어느 시대의 말이든 '피동'에 대한 표현법은 존재해 왔었다. 중국어도 이처럼 '피동'에 대한 표현법이 늘 있어 왔다. 그러나 그 언어형식은 똑같은 형태를 유지하면서 지속되어 온 것이 아니었다.

 

중국어에서 피동을 표현하는 언어형식을 역사적으로 살펴본다면 술어 뒤에 개사 '于/乎'를 사용하던 시기, 동사 앞에 '見'을 사용하던 시기, '爲'를 사용하던 시기, '被'를 사용하던 시기로 변천되어 왔으며 현대 중국어에서는 '叫'.'讓' 등도 함께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見', '爲', '被' 등은 처음에는 분명한 어휘의미를 가지고 실사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런 낱말이 어느 시기부터 다른 기능을 동시에 담당하기 시작하면서 본래의 기능에도 변화가 생기게 된다.

예를 들면 '爲'는 본래 '하다'.'만들다'의 의미로 쓰였으나 후에 '피동'의 기능을 겸하게 되면서 본래의 어휘의미가 많이 약화되었다. 그리고 {조당집} 시대에는 '爲'가 '피동'의 기능은 담당하지 않게 되었지만 여전히 '개사'.'의문사'.'의문문을 만드는 기능사' 등의 역할을 맡으면서 본래의 의미 사용이 지속적으로 약화되어 현대 중국어에서는 본래의 의미인 '하다'.'만들다'는 거의 쓰이지 않고 '보어'로 쓰일 때의 '되다'라는 의미만 살아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被'를 살펴보면 원래 '이불'.'입다' 등의 어휘의미를 지니고 있었으나 {조당집} 시대에는 그 주요 기능이 '피동문'을 만드는 역할로 바뀌면서 원래의 의미인 '이불'이라는 뜻의 사용은 점차 약해져, 그 대신 '着'과 같은 낱말이 '입다'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으며 심지어 '신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현대 중국어를 살펴보면 '입다'라는 의미를 표현하는 낱말은 '被'도 아니요 '着'도 아니며 '穿'이다.

그런데 {조당집}에 나오는 '穿'은 '입다'라는 용법은 전혀 쓰이지 않고 원래 의미인 '뚫다'는 뜻만 쓰이고 있다. {조당집}에 나오는 '穿'과 현대 중국어에서의 '穿'의 용법을 살펴보더라도 {조당집} 시기 이후에 '입다'라는 용법이 추가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조당집} 시대에 '입다'의 용법으로 쓰인 '被'.'着'과 같은 낱말이 다른 역할의 담당에 대한 부하로 인해 그 의미가 '穿'으로 전이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상에서 언어변천에 있어서의 몇 가지 원리를 찾을 수 있다. 첫째, 언어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둘째, 그 변화 속에서 '轉移'가 새로운 '誕生'보다 우선한다. 셋째, 새로운 전이는 '異化'보다는 '同化'나 '類化'가 우선한다.

 

 

Ⅴ. 결 론

 

중국어의 피동문은 아래 그림처럼 '見' → '爲' → '被' (?)→ '讓/叫'의 과정으로 변천되어 왔다. 그런 과정 속에서도 그 낱말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의미를 잃지 않고 스스로의 방향과 규율을 찾아 변화되어 갔다. 다시 말하자면 언어의 통사적 구조의 변천과 어휘 및 의미 사이에는 서로 밀접한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 왕력(1980:428)도 새로 생겨난 통사적 구조는 그것과 적응할 수 있는 어휘형식을 취하여 이를 표현한다고 말하고 있다. 즉 언어에는 언어 내부의 변천 機制가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낱말이든 처음에는 자신의 本意를 가지고 있다.

중국어 피동문의 변천 機制 도표

 

이런 본의는 모두 실질적 의미, 즉 어휘의미를 가리킨다. 그러나 통사적 구조의 변천으로 통사적 구조 내부에서 어떤 역할, 즉 기능적 역할을 담당하는 어휘가 필요하게 된다. 이런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언어의 내부에서는 새로운 변화에 적응시킬 낱말을 찾게 되는데, 이 때 새로운 어휘를 만들기보다는 언어구조 안에서는 기존의 어휘를 빌려쓰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런 가차의 과정이 지속되어 그 어휘의 낱말이 보편적인 용법으로 사용되면 그 어휘는 본래의 기능, 즉 본의의 기능이 많이 약화되어지게 된다. 그러나 그 본의는 전체적인 의미의 틀 속에서 계속 유지되어야 하므로 새로운 낱말을 찾아 이 본의의 역할을 담당하게 한다. 이 때도 아무 관련성이 없는 어휘보다는 통사.형태.음운.의미의 유사성에서 선택을 하려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렇듯 언어의 구조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런 변화과정 속에서 어떤 법칙성을 지닌 틀을 깨뜨리게 되면 이런 일그러진 틀의 모순을 보완하려고 새로운 기제들이 생성된다. 즉 언어는 끊임없이 변하지만 이런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또한 끊임없이 새로운 원리들을 자체적으로 찾아 방향을 잡고 끊임없이 생명을 유지해 가는 것이다. 이런 언어의 변천 機制를 '言語의 自淨原理(self-purification of language)'라고 명명한 바 있다. 위에서 {조당집}을 통해 살펴본 결과 중국어 '피동문' 구조의 변천에서도 이러한 언어 내부적 변천기제가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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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祖堂集》被動句的演變機制

張 皓 得

本文分析《祖堂集》的被動句探討唐末五代時被動句的特點,幷且透過《祖堂集》被動句的分佈情況和漢語被動句的演變過程擬出漢語被動句的演變機制 在《祖堂集》裡出現的詞彙當中,只有三個詞當被動功能用,卽'被' '爲'和'所'
就被字而說, 的用法大體分爲三種,就是'名詞' '動詞'和當被動用的'標志' 其中最普遍的用法之一就是'被動用法'
就爲字而說, 的用法可分爲'名詞' '用作疑問句功能的標志' '動詞' '介詞'和用作被動功能的'標志' 其中普遍的用法是'動詞'和'用作疑問句功能的標志',可是被動用法寥寥無幾
就見字而說, 的用法可分爲名詞 動詞和和用作被動功能的標志  的主要用法就是'動詞', 古代漢語的被動用法已經到消滅階段.
此外還分析了'着'和'穿'的用法 '着'字具有名詞 動詞和助詞等用法 '穿'字只有一個用法,就是具有'穿孔'意的動詞用法,可知當時還沒有産生現代漢語的'穿衣服'意的用法

漢語被動句的演變機制
◇ ① 字形的大小表該用法的産生 發展和消滅
② 粗體表示該時期最典型的用法
由此看來,我們可知'見'字和'爲'字的被動用法當時已經進入到消失階段,而'被字句'已成爲最典型的被動句 這種漢語被動句的變化破壞了語法結構和語義網的完整性 爲了彌補這種矛盾,通過語義和語彙之間的'遞給' '同化' '類化等手段',漢語自己 自己的變化方向和規律,一直到現在維持自己的語言生命 由此可窺見漢語被動句的演變機制之一斑,就是我們以前命名的'語言的自淨公理(Self-purification of language)'
關鍵詞 : {祖堂集}, 被動句, 演變, 被, 爲, 見, 着, 穿, 語言的自淨公理, 機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