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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祖堂集> 관련 연구에 대한 몇 가지 검토

경호... 2013. 2. 7. 03:03

<祖堂集> 관련 연구에 대한 몇 가지 검토

- 번역, 교주작업을 위하여 -

 

 

박영록 (충주대)*

* 신규탁(연세대 철학과), 임병권(상명대 연구교수) 공동 연구

 

 

I. 머리말

 

<祖堂集>을 주요 소재로 하는 기존 연구를 검토함으로서 향후 더욱 활발한 연구가 진행 되기를 기대함.1)

 

1) 애초에 <<祖堂集>>관련 국내 연구를 연구주제, 연구방법론 등의 관점에서 살펴보려 하였던 것이었으나, 향후 교주본 작업을 위하여 문헌, 번역 관련 작업에 대한 고찰을 진행하게 된 것입니다. 시간 관계상 논문목차를 재조정하지 못하여 구성에 다소 문제가 있습니다.

 

 

II. 기존연구 일별

 

1. 국내 연구 목록

 

어떤 국가의 학술적 연구 성과란 상당히 모호한 개념으로 보인다. 이의 판정에 있어서는 연구자의 국적, 발표 학술서의 국적, 사용 언어 등을 고려할 수 있을 듯하며,이들의 교집합이 가장 엄격한 개념일 것이고, 이들의 합집합이 가장 포괄적 개념일 것이나, 양자가 모두 비현실적인 면이 있다.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면, 국내의 연구 성과란 해당 국가의 자체 학문생산능력, 학문 차세대 혹은 비전공 인접 분야에서의 접근가능성 등이 결과적인 지표가 될 듯하다. 문제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연구 성과의 확산” 즉, 범세계적 범위에서의 영향력 요소를 동시에 고려해야 할 것인데, 이 것은 사용 언어 면에서 모순 되는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다.

국내의 연구 성과에 대한 정의는 차후로 남겨 두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원칙적으로 한국에서 발표된 논문을 국내의 연구성과라 하되, 한국인이 국외에서 발표한 논문을 포함하는 것으로 하였다. 주요 대상은 논문 제목에 <<祖堂集>>이 들어가는 것으로 하였으며, 그 외에 <<祖堂集>>이 비교적 주요하게 언급된 논문을 포함하였다.2)

2) 혹 빠진 것이 있으면 지적 부탁합니다. * 표시는 소장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1) 영인 및 번역

▶ 아래 중국 및 일본 교주류에 함께 다룸

 

(2) 학위논문

① 박영록, <<『祖堂集』意味虛化動詞硏究>>,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서울, 1996.
② 宋寅聖, <<『祖堂集』虛詞硏究>>, 中國文化大學 박사학위논문, 臺北, 1996.
③ 張皓得, <<『祖堂集』否定詞之邏輯與語義硏究>>, 國立政治大學 박사학위논문, 臺北, 1999.
④ 林永澤, <<『祖堂集』述補結構硏究>>, 北京大學 박사학위논문, 北京, 2002.
⑤ 정성임, <<『祖堂集』얼굴부위 동작 어휘 의미체계 연구>>, 한국외국어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4.

 

(3) 기간논문

① 1998. 송인성, <『祖堂集』所見唐五代新興處所方向介詞探究>, <<中語中文學>>, 한국중어중문학회.
② 1999. 임병권, <『祖堂集』접미사‘子’의 조어법 연구>, <<인문과학논문집>>제28집, 대전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③ 1999. 장호득, <『祖堂集』不定詞 패러다임(Paradigm)>, <<중국어문학>> 제33집, 영남중국어문학회.
④ 1999. 장호득, <선종 어록 『祖堂集』에 나타난 부정사 ‘未’의 용법 연구>,<<인문연구논집>> 제4집, 동의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⑤ 1999. 한기문, <『祖堂集』과 新羅?高麗 高僧의 行蹟>, <<한국중세사연구>> 제6호, 한국중세사연구회.
⑥ 2001(a). 송인성, <言語 측면에서의 ?祖堂集? 新羅?高麗 禪師 부분의 後代 編入 與否>, <<한국선학>> 제2호, 한국선학회.
⑦ 2001(b). 송인성, <『祖堂集』 우리말 飜譯 중 낱말 관련 몇 가지 誤謬>, <<중국어문학>> 제38집, 영남중국어문학회.
⑧ 2001. 임병권, <『祖堂集』代詞 ‘他’의 동격구조 연구>, <<中國文學硏究>> 제23집, 한국중문학회.
⑨ 2001. 장호득, <『祖堂集』을 통해 본 중국어 피동문의 변천 기제>, <<동양학>> 제31집,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⑩ 2002. 송인성, <唐宋 禪宗 語錄의 몇 가지 口語 助詞>, <<중국어문논총>> 제22집, 중국어문연구회.
⑪ 2002. 임영택, <『祖堂集』中的組合式述補結構>, <<중국학논총>>, 제13집,한국중국문화학회.
⑫ 2002. 정성임, <『祖堂集』내 의미장 [穿戴]에 관한 소고>, <<중국연구>> 제30권,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학종합연구센터 중국연구소.
⑬ 2003. 임병권, <『祖堂集』等에 보이는 ‘較’의 열등비교 구문 연구>, <<중국문학연구>> 제27집, 한국중문학회.
⑭ 2003. 장호득, <『祖堂集』‘V+O+X’의 통사적 특징에 내재된 언어변천의 방향성>, <<중어중문학>> 제33집, 한국중어중문학회.
⑮ 2004. 정성임, <『祖堂集』[說話動作/말하는 동작]의 반의관계 고찰>, <<중국연구>> 제33권,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학종합연구센터 중국연구소.

 

▲ 관련논문
①1998. 박영록, <白話語料로서의 禪語錄>, <<佛敎學論叢-월운스님고희기념->,동국역경원.
②1999. 송인성, <唐宋 禪宗 文獻에 나타난 몇 가지 입말(口語)>, <<영산논총>>제3집, 영산대학교 영산논총편집위원회.
③1999. 송인성, <唐宋 禪宗 語錄에 나타난 몇 가지 語氣 助詞>, <<중국어문학>> 제34집, 영남중국어문학회.
④2001. 임병권, <초기 선 어록에 나타난 신라?고려 선사>, <<한국선학>> 제2호, 한국선학회.

⑤2001. 최재영, <唐宋時期新興被動句>, <<중국언어연구>> 제13집, 한국중국언어연구회.
⑥2003. 정성임, <晩唐·五代 意味場 [穿戴]에 관한 小考>, <<중국인문과학>> 제26집, 중국인문과학연구회.*

 

2. 중국 및 일본 연구 일별

 

1) 원문보급 및 교주와 번역

 

(1) 영인과 번역

 

아래의 번호 1은 원본을 그대로 영인한 것이나 영인하기 전에 補筆한 흔적이 있으며, 이 때문에 글자가 선명한 반면 글자가 바뀌어 버린 것도 있다. 번호 2는 원문의 刻版을 반으로 나누어 영인한 것으로 글자가 크게 영인되어 보기 좋다는 장점은 있으나 원문의 판심과 각 목판 말미의 판각자 이름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한국에 유일판본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대다수 연구자들이 2번의 자료를 참고하고 있다는 것은 다소 안타까운 현실이다. 영인한 것이 있다.

 

▶ 국내

①영인본, <<祖堂集>>, <<曉城趙明基博士華甲紀念 佛敎史學論叢>> 부록, 東國大學校, 서울, 1965.
②영인본, <<祖堂集>>, 高麗大藏經 第45. K.no.1503. 동국대학교 동국역경원,233-361쪽. 1976.
③월운 번역, <<祖堂集>> I, 동국대학교 동국역경원, 서울, 1981.
④월운 번역, <<祖堂集>> II, 동국대학교 동국역경원, 서울, 1983.
⑤法藏 주해, <<祖堂集註解I>> (제1-5권), 동국대학교 동국역경원, 서울, 1999년 8월, 620쪽.

 

▶ 중국 (대만 포함)

①馮作民 역, <<祖堂集>>, 星光出版社, 臺灣, 1982.*3)

②활자본, <<祖堂集>>, <<佛光大藏經?禪藏>> 15?16. 1994년 12월. 佛光出版社, 臺灣. 992쪽. ▶ 楷化校點本
③영인본, <<祖堂集>>, <<佛藏要籍選刊>> 14권, 上海古籍出版社, 上海, 1994.
④吳福祥?顧之川 點校, <<祖堂集>>, 岳麓書社, 長沙, 1996년, 458쪽. ▶ 楷化校點本
⑤葛兆光 釋譯, <<祖堂集>>, <<佛光?典???中?佛??典?藏精? 白?版>> 22, 佛光出版社, 臺灣, 1996.
⑥張華 校點, <<祖堂集>>, <<中國禪宗典籍叢刊>>, 中州古籍出版社, 鄭州, 2001년 10월, 715쪽. ▶ 楷化校點本

 

▶ 일본

①영인본, <<祖堂集>>, 禪學叢書之四, 中文出版社, 1972. 385쪽. ▶ 日本花園大學圖書館藏高麗覆刻本影印.
②영인본, <<祖堂集>>, <<祖堂集索引(下)>> 부록, 京都大學 人文科學硏究所,1984.
③柳田聖山 역, <<祖堂集>>, <<禪語錄>>, 中央公論社, 東京, 1974. ▶부분번역
④柳田聖山 역, <<祖堂集>>, <<大乘佛典>> 13, 中央公論社, 東京, 1990. ▶부분번역
⑤古賀英彦, <<訓注祖堂集>>, 花園大學 國際禪學硏究所 연구보고 제8책, 2003년3월, 840쪽. ▶ 직역에 의한 완역

 

3) 柳田聖山 역, <<祖堂集>>, <<禪語錄>>, 中央公論社, 東京, 1974. 에 대한 중국어 번역이라 함. 송인성(2001. 136p) 참고.

 

 

(2) 旣刊行 校註에 대한 검토

 

<<조당집>>은 비교적 원판이 잘 보존되어 있으나, 약 80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아무래도 마모가 있어 일부 알아 보기 어렵거나 다른 글자로 오해하기 쉬운 글자들이 생겨나게 되었으며, 문장에 대한 해석의 차이 등이 있어 구두 및 點校에 있어 이론이 비교적 많은 편이며, 교주본들에 대한 재검토가 많이 발표되고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①詹?左, 何??, ?建?, <『祖堂集』校??札>, <<安??范?院??( 社?科?版)>>, 2006년 3월, 제25권 제2기.
②詹?左, <『祖堂集』校??>, <<安徽師範大??? (人文社?科?版)>>, 제34권 제1기, 2006년 1월
③譚偉, <『祖堂集』校點問題>, <<西昌學院學報 (社會科學版)>>, 2005년 3월,제17권 제1기.
④張美蘭, <高麗海印寺海東新開印版『祖堂集』校讀札記>, <<古漢語硏究>>, 2001년 제3기. 총제52기.
⑤鞠彩萍, <?籍点校匡?>, <<?言科?>>, 第4 卷 第3 期 (?第16 期) ▶ 위 5번 ?? 点校本,에 대한 교주오류 사례

 

 

2) 어법 연구

 

(1) 일반론

 

어학자들에 의한 <<祖堂集>>의 연구는 주로 특정 문형에 대한 통사적 고찰로 이루어지고 있다. 중국어사의 연구자들은 흔히 통시적 관점에서 고찰하고 있으므로, <<조당집>>을 연구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은 일일이 예를 들기 어려울 만큼 많지만,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연구서들에서 <<조당집>>의 어료적 가치를 강조하고 있거나 주요 예문으로 취재하고 있다.

 

① 宋紹年 <漢語結果補語式的起源再探討> <<古漢語硏究>> 1994年第2期(總第23期)
② 楊建國 <<近代漢語引論>> 黃山書社. 新華書店. 合肥. 1993.
③ 袁賓 <<近代漢語槪論>> 上海敎育出版社. 上海. 1992.
④ 袁賓 <<禪宗著作詞語匯釋>>. 江蘇古籍出版社.
⑤ 劉堅. 江藍生. 白維國. 趙廣順 <<近代漢語虛詞硏究>> 語文出版社 北京 1992.
⑥ 蔣紹愚 <<近代漢語硏究槪況>> 北京大學出版社 北京 1994.
⑦ 蔣紹愚 <近代漢語硏究槪述> <<古漢語硏究>> 1990年第2期(總第7期)
⑧ 張永綿 <<近代漢語槪要>> 沈陽出版社. 沈陽. 1989.
⑨ 趙克誠 <<近代漢語語法>> 陝西師範大學出版社.1987.
⑩ 太田辰夫 <<中國歷代口語文>> 江南書院 東京 1957

⑪ 太田辰夫 <<中國語歷史文法>> 原刊 1958. (京都 朋友書店 昭和56年:1981年版參考)
⑫ 太田辰夫 <<中國語史通考>> 白帝社 東京 1988
⑬ 太田辰夫 著 江藍生, 白維國 譯 <<中國語史通考>>, 重慶出版社, 重慶, 1991.
⑭ 太田辰夫 著 蔣紹愚, 徐昌華 譯 <<中國語歷史文法>>, 北京大學出版社, 北京,1987.
⑮ ?晏斌, <<近代漢語句法論考>>, 遼寧師範大學出版社, 大連, 2001.
? 蔣紹愚?曹廣順 主編, <<近代漢語語法史硏究綜述>>, 商務印書館, 北京, 2005.

 

 

(2) 전문 단행본

 

<<조당집>>을 주요 대상으로 하면서, 단행본의 성격을 지니는 연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張美蘭, <<『祖堂集』語法硏究>>, 商務印書館, 北京, 2003.
譚偉, <<『祖堂集』文獻語言硏究>>, 巴蜀書社, 成都, 2005.
林新平, <<『祖堂集』的動態助詞硏究>>, 上海三聯書店, 上海, 2006.

 

(3) 전문 소논문

 

<<조당집>> 자체의 언어 현상에 대한 고찰을 목표로 하는 소논문들에는 다음과 같은 예들이 있다. 제목에서 내용을 추정하기 어려운 일부 논문들에 대해서는 간략한 소개를 부가한다.

 

① 林新年, <『祖堂集』“著”的語法化等級>, <<福建?范大??? (哲?社?科?版)>>, 2004 年第3 期 (總第126 期)
  ▶ 어법화의 등급을 “??助? 〉??助? 〉方位介? 〉“到(도달)”의미를 나타내는 방향사 〉?果?? 〉????”의 순서로 배열하고, 《祖堂集》?代에는 “著”에 “在”의미를 나타내는 용법과 “到”의미를 나타내는 용법이 있었음을 보인 다음, 현대 중국어의 出完成貌와 持?貌助? “着”가 “到”의미를 나타내는 “著”에서 나왔음을 보이고 있다.

 

② 段觀宋, <禪籍中“得”的用法>, <<東莞理工學院學報>>, 2000년 12월 제7권 제2기.

  ▶ <<조당집>>과 <<경덕전등록>>에서 주로 자료를 취한 이 글에서는 고대 중국어와 현대중국어에서 모두 보이지 않으며 이들 선어록에서만 보이는 용법을 포함하여“득”의 여러 가지 용법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예컨대, 정도부사로서 “甚”의 의미를 나타낼 수 있으며, 어기부사로서 “?摩” 혹은 “恁摩”등의 부사 앞에서“竟”의 의미를 나타낼 수도 있다. 후자의 예를 보면,

 

師因見溪水, 云 : “此水得?摩流急!”僧曰 : “?.”(<<조당집>> 권20, <仙宗和尙>)
계곡물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말했다. “이 물이 어찌 이처럼 빨리 흐를까!” “예.”

 

③ ??, <『祖堂集』中“?”的?性及用法>, <<?蒙古?大?刊>> 2006 年 第3期 (?第79 期)
④ 王景丹, <『祖堂集』中“將”字句硏究>, <<殷都學刊>>, 2001년.
⑤ 林新年, <『祖堂集』“?(有) ? 也无”與?南方言“有无”疑?句式>,< 福建師範大??? (哲?社?科?版)>,

  ▶ 2006년 제2기 제12호 (총제 137호) 의문문형에 대하여는 기존에 논의된 바가 있지만, 唐五代 ?期의 “?(有) ? 也无”의 문형이 ?南方言 “有无” 의문문의 前身이 된다는 관점을 피력하는 것에 특징이 있다. 필자가 명확하게 말한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발전관계가 인정된다고 해서 <<조당집>>의 언어가 반드시 민남방언과 관련된다는 것은 아니다.

 

⑥ ??勤, <『祖堂集』總括副詞硏究>, <<學術硏究>>, 2004년 제2기.
⑦ ?美?, <『祖堂集』祈使句及其指令行?的?力?差>, <<??大???(哲?社?科?版)>>, 2003년 제2기 제18권 명령문에 대한 문형분류 등의 기초 위에서 의미론과 화용론적 특징을 분석하고 있으며, 그 결과로 <<조당집>>의 명령문은 용법상에 있어 현대중국어와 기본적으로 동일한 특징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⑧ 張美蘭, <從『祖堂集』問句看中古語法對其影響>, <<語言科學>>, 2003년 5월, 제2권 제3기 (총제 4기)
⑨ ?振?, <『祖堂集』中的助?“?”及其相??構>, <<湛江師範?院??>>,2006년 4월, 제27권 제2기. 원빈팀*
⑩ 于?, <『祖堂集』中的祈使???及其?法化>, <<雲南師範大???>>, 2005 년 7월, 제3권 제4기. 원빈팀. 명령 어기를 나타내는 어기사 “著”와 “好”의 용례를 중심으로 고찰하고 있다.

⑪ 向德珍, <『祖堂集』與唐五代前佛典特式判?句比??究>, <<海南大???(人文社?科?版)>>, 2005년 3월, 제23권 제1기. 원빈팀
⑫ 王景丹, <『祖堂集』的“何”及其語體色彩>, <<古漢語硏究>>, 2003년 제1기(총제 58기)
⑬ ??, <?代??“V一V”式和“VV”式的?源>, <<?言??與?究>>, 2000年第4期.
  ▶ 현대중국어 동사중첩형식인 “V 一 V”式과 “VV”式이 동사 뒤에 同種動量詞 (특히 동사가 양사로 차용되어 사용되는 것)가 오는 것에서 유래한다고 보고, 그 가장 早期의 출현례이자 비교적 대량으로 출현하는 용례를 <<祖堂集>>에서 찾고 있다.
⑭ 林新年, <談『祖堂集』“動1+了+動2”格式中“了”的性質>, <<古漢語硏究>>,2004년 제1기 (총제62기)
⑮ 鞠彩萍, <試析『祖堂集』中的“了”字句>, <<貴陽金築大學學報>>, 2002년12월 제4기 (총제48기)
? 王?栓, <?代??中的事?助?“去”>, <<?文?究>> 2003 年第2 期 (?第87期)
? 李思明 <『祖堂集』中“得”字的考察> <<古漢語硏究>> 1991年第3期(總第12期)
? 李崇興 <『祖堂集』中的助詞‘去’> <<中國語文>> 1990年 第1期 (총제214期)
? 曹廣順 <『祖堂集』中的“底(地)”“却(了)”“著”> <<中國語文>> 1986年 第3期常靑 <『祖堂集』副詞“也”亦“的共用現象> <<天津師大學報>> 1989年 第1期
? 劉利 <『祖堂集』動詞補語管窺> <<徐州師範學報(哲史版)>> 1992年 第3期

 

3) 어휘연구

 

근대한어 연구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어휘에 대한 考釋작업인만큼 <<조당집>> 어휘에 대한 고찰도 상당히 많이 발표되고 있다. 이들 중에는 “禪籍” 어휘등으로 취재 범위를 여러 선어록에서 두루 취하는 것이 많은데, <<조당집>>에서 취재범위를 취한 것으로는 다음과 같은 예가 있다. 이러한 논문들은 대개 <<한어대사전>>에 해당 어휘를 표제어로 첨가해야 한다거나, 해당 의미항목이 보충 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가진다.

 

① 太田辰夫, <<『祖堂集』口語語彙索引>>, 明友書店, 東京, 1981(再版)
② 太田辰夫, <<唐宋俗字譜: 『祖堂集』之部>>, 汲古書院, 東京, 1982.
③ 袁津琥, <『祖堂集』中的俗語源>, <<綿陽師範高等專科學校學報>>, 1999년 2월, 제18권 제1기.
④ 袁津琥, <『祖堂集』中的俗語源(續)>, <<綿陽師範高等專科學校學報>>, 1999년 12월, 제18권 제6기.
⑤ 袁津琥, <『祖堂集』釋詞>, <<古???究>>, 2001年 第4期. ‘祖祖’와 ‘黃巾’ 두 어휘에 대한 고석, 1페이지논문. <<한어대사전>>에 대한 의미항목 수정.
⑥ 譚偉, <『祖堂集』字詞考釋>, <<南京師範大學文學院學報>>, 2003년 3월 제1기
⑦ 蔣冀騁 <<近代漢語詞匯硏究>> 湖南敎育出版社. 1991.
⑧ 蔣紹愚 <『祖堂集』詞語試釋> <<中國語文>> 1985年 第2期 (총제185期)
⑨ 呂幼夫 <『祖堂集』詞語選釋> <<遼寧大學學報(哲史版)>> 1992年 第2期

 

4) 음운 연구

 

<<조당집>>에 대한 언어연구에서는 음운연구가 흔히 보이는 것은 아닌데, 다음과 같은 연구예가 있다.
① ??善, <『祖堂集』??止、蟹二?考>, <<甘??播??大???>>, 2004년6월, 제14권 제2기
② ??善, <『祖堂集』??考>, <<甘?高???>>, 2004년 第9卷 第3期

 

 

III. 문헌연구 검토

 

<<祖堂集>>은 우리나라의 해인사 팔만대장경의 목판으로 전해지는 것이 현재로서는 유일본이며, 기타 서지학적 사항에 대해 고찰할 별 다른 자료가 없는 형편이다.

그래서 <<祖堂集>> 문헌에 대한 연구는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중국에서도 대략 일본의 기존 연구 성과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한 각종 정리는 장화교점본 <<祖堂集>>의 楊曾文 <序文> 와 부록인 <『祖堂集』論考>, 그리고 張美蘭(2003) 및 譚偉(2005) 등에 잘 정리되어 있으며, 국내에서는 송인성(2001a, b)에서 비
교적 잘 정리되어 있다.

문헌연구와 관련하여 일반적으로는, ㉮ <<祖堂集>>은 南唐 保大 10년 (952년)에 완성되었으며, ㉯ 편찬자는 靜과 筠 두 스님으로, 이들은 雪峰義存계열이며4) ㉰ 고려 高宗32년 (1245년) 대장경 장외 보판으로 판각하였으며 ㉱ 고려에서 판각 할 당시 현행의 20권 체재로 개수하였다고 보고 있다. 이것이 일반적 인식이기는 하나, ㉮ 95
2년 이후 사적이 竄入되었는지의 여부 ㉯ 고려에서 판각할 때 얼마나 개수하였는지㉰ 편찬자와 文?의 관계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이론이 분분한 형편이다. 이들은 여타의 <<祖堂集>> 판본 등 새로운 문헌증거가 발견되지 않는 한 방증자료에 의한 추론이 가능할 뿐이다.

 

4) 편찬자 靜, 筠스님이 招慶寺에서 작업을 하였으며, 서문을 부탁하였다는 점에서 초경사 주지 文?의 제자이거나 叔姪관계 일 것으로 추측하여, 淨修(文?) → 保福從展 → 雪峰義存의 계보를 재구한 것일 뿐이다.

 

 

1) 952년 이후 事跡의 문제

 

譚偉(2005, 25p) 등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여러 논서에서 <<祖堂集>>에 952년 이후 事跡이 기록되어 있다고 하고 있으나, 실제로 年代가 제시될 수 있는 것은 지명인 “廣南” 뿐인 듯하며 여타의 예는 아직 보지 못하였다. <<祖堂集>>에는 “廣南”이라는 지명이 세 번 등장하는데, 이것이 송대에 설치된 행정구역명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송인성(2001.a. 31p)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英國의 Arthur Waley(1969)는 논문 Two Posthumous Articles(?Asia Major?14-2:242-253)에서 卷3의 “慧忠國師”부분의 地名(“廣南曺溪山“)이 宋初에 불리어진 地名으로 주장하여, 이것이 中國 學界에 의해 사실로 확인되었다." [자세한 것은 劉堅(1982.1985.1999)을 참조할 것 - 원문 각주]

 

“廣南”이라는 지명은 송대 淳化년간(990~994)에 설치된 路(송대의 행정단위)로서, 廣南東路와 廣南西路로 설치되었는데, 이들은 ‘廣東’, ‘廣西’의 유래가 된다. <<祖堂集>>에는 “廣南”이 모두 3회 나타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광주남쪽”으로 번역하여왔다. 사실 광주 남쪽은 바다이며, 曹溪山은 廣州의 동북방이므로 “광주 남쪽”이
타당하지 않음은 분명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반대 근거가 명확하지 않으므로 거의 정설처럼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여타 지명 예컨대, 山西는 “太行山의 서쪽”, 陝西는 西周시대에 陝?을 경계로 하여 동쪽 召公의 봉지를 陝東, 周公의 봉지를 陝西라 불렀던 것에서 유래하며, 河南, 河北, 江西, 湖南, 湖北은 물론 황하, 장강, 동정호 등의 남북에서 유래한 것 등과 같이 東西南北의 기준이 존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廣南’은 기준이 불분명하며, 특히 廣東路와 廣西路가 아니라 廣南東路와 廣南西路로 나누었다는 사실에서 기존에 ‘廣南’이라는 관습적 지명이 존재했던 것은 아닐지 추측해 볼 수 있다. 이처럼 기존 “廣南後世竄入說”에 비판적 견해를 피력한 것으로 張美蘭(2003. 9~12pp, 390~394pp)이 있다. 그 논의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嶺南지역의 당~송 사이 역사
627년 (唐 貞觀 원년) 嶺南道 설치
862년 (唐 咸通 3년) 嶺南道를 東西 양 道로 분리.
904년 (唐 天復 4년), 절도사 劉隱이 영남도를 점거.
917년 劉? (劉隱의 동생) - 광주에서 稱帝, 국호를 大越. “南漢”의 高祖.
918년 국호를 大越에서 南漢으로 고침
971년(송 開寶 4년) 南漢, 宋에 흡수됨
988년 (宋 端拱 원년) 廣南路 東部署 설치
994년 (宋 淳化 4년) 廣南路 설치
997년 (宋 至道 3년) (廣南路를 廣南西路와 廣南東路로 나눔) 廣南東路로 定名5)

 

5) 밑줄 부분은 이 글에서 보충한 것. * 廣南 동서로 설치와 관련하여, “988년 廣南路 東?西部暑 설치, 992년 廣南路 설치, 997년 廣南東?西路 분리설치”의 역사적 순서가 되지만, 公認여부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李孝聰(2004, 352p, 359p)은 988년에 광남 동?서로가 설치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 “嶺南”의 異稱

 

위와 같은 역사적 배경에서 “南漢”에서 유래된 “漢國”, “南漢”의 지리위치에 따라 “南朝”, 국명+도성명으로 “漢廣”, 그리고 “廣南” 등이 嶺南에 대한 이칭으로 사용되었고, 이들은 모두 <<祖堂集>>에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祖堂集>>과 에 중복되는 내용에 의해 상기 지명을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조당집 권-조            지명     여타 문헌                                     지명표기
권 19 靈樹和尙          漢國    <<五燈會元>>권4 靈樹如敏禪師       嶺表
″                             南朝       ″                                              廣主劉氏
권 7 夾山和尙            漢廣    <<五燈會元>>권5 夾山善會禪師       廣州
권13 招慶和尙           漢國    <<五燈會元>>권8 招慶道匡禪師       삭제
권11 雲門和尙           南朝    <<十國春秋>> 권66 僧如敏              嶺表

 

 

㉰ 宋 이전 嶺南을 ‘廣南’으로 기록한 문헌들

<<十國春秋>> 南越, 嶺南(11회), 嶺表(3회), 廣南(5회)
唐, 康騈 <<劇談錄>> <嚴使君遇終南山隱者> (895년) “鎭廣南”
五代, 孫光憲 <<北夢?言>> 권3, 권7, 권 10, “廣南”
五代, 王定保 <<唐?言>> 권9, 권10.
五代, 尉遲? <<中朝故事>>
唐, 劉恂 <<嶺表綠異>>* 嶺南에 대한 이칭으로 嶺表, 廣南 등을 사용함.6)

 

6) 이 글에서 보충한 자료. 인터넷에서 검색한 것이며 아직 원문은 확인하지 못하였음.

 

이상의 자료는 송대 이전 원문이 직접 전해지는 것이 아니며, <<십국춘추>>는 청대 五任臣 찬이므로 후세인의 改作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廣南”이 반드시 988년 이후 생겨난 지명이라고 확정할 수도 없는 것이다. 李孝聰(2004, 352p)에 따르면 嶺南지역은 송대 이전 秦漢이래로 이미 하나의 통합된 행정구역이었으며, 송대에 와서야 동서로 나뉘어지게 된 것이라 하고, 전통적인 통합행정구역은 “廣州, 嶺南道”라 불렸다는 언급을 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추정이지만, 이상의 여러 기록들과 함께 고려할 때 송대 이전에 관습명칭으로 廣州와 嶺南을 합쳐 ‘廣南’이라는 명칭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2) 신라?고려승 기록 문제

 

<<祖堂集>>에는 독립된 傳을 가진 동국선사가 모두 10명이 나타난다. 문제는 五冠順之의 경우 분량이 6120자에 달하여, 개인 傳으로는 <<祖堂集>> 전체에서 앙산 혜적 다음으로 분량이 많으며, 慧目山和尙, 通曉大師, 無染國師, 雙峰和尙 등 중국에서 귀국한 후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고, 문체가 아무래도 <<祖堂集>>의 여타 부분과 다르다는 점 등에서 고려에서 改作하였는지 문제가 되고 있다. 이에 관하여는 한기문(1999), 임병권(2001)과 송인성(2001)에서 비교적 잘 다루고 있다.

 

한기문(1999)은 여타의 두 편에 비해 신라, 고려승의 행적 자체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으면서, 고려에서 편입해 넣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별반 검토하지 않고 있는데, 당연히 고려에서 편입해 넣은 것으로 전제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게 보면, 세 편 모두 공히 고려에서 편입해 넣었을 가능성이 큰쪽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여타 두 논문은 동국승 관련 기록에 관한 고찰에 있어, 각기 장단점을 보이고 있는데 임병권(2001)은 여타 방증자료를 많이 취하지 않는 대신 <<祖堂集>> 관련 기록에서 언어표현을 엄밀히 분석하여 동국승 관련 기록태도가 여타 부분과 확실히 차이가 있음을 보이고 있다.

반면에 송인성(2001)은 <<三國遺事>>의 기록 및 해당 선사 碑銘의 내용을 제시하고 있어 자료는 많은 반면, 그 제목에서 추구하고 있는 바 “언어 측면에서의” 엄밀한 고찰이 없이 “한국 한문”이라는 결론만 제시하고 있다.

 

이 두 논문의 결론은 상식적으로 타당하다고 보이지만, 그러나 여전히 몇 가지 문제가 남아있다. 첫째로 비율의 문제와 둘째로 편집태도의 문제이다. 고려에서 편입해 넣었다면 어느 정도로 편입해 넣었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은데, 자칫 동국승 관련 기록이 모두 고려에서 편입한 것으로 유도될 수도 있다. 그리고 문체와 어휘선택이 다르다는 점은 고려에서 편입해 넣었을 가능성 외에도 정, 균 스님이 1차 자료를 그대로 편집하였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장호득(2001. 1p)은 “ ( <<祖堂集>>이 ) 여러 사람에 의해 집필된 것이 아니라 두 사람에 의해 집필된 선종어록으로 시대적 혹은 지역적으로 다양한 요소가 덜 가미되어” 있다고 하고 있는데, 이것은 좀 더 엄밀한 논증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다.

 

 

Ⅳ. 번역 및 교감검토

 

번역과 교감 중 어떤 것이 선행해야 한다는 필연성은 없겠지만, 특히 언어를 연구하는 관점에서는 번역 못지않게 校勘, 標點 작업이 중요하다. 아직 국내에서 活字,校註 본이 나오지 않고 있어 아쉽다. 교감본이 특히 필요한 이유는 기존 영인본 자체에 미심쩍은 면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월운스님이 번역의 저본으로 활용한 동국 대학본의 경우에는 영인상태가 선명하고, 더러는 인쇄글자를 붙여 넣는 등 補筆한 것이어서 그 과정에서 오류가 있을 수 있다.

 

1) 월운번역본의 특징

 

월운스님은 번역을 하면서 교감작업을 함께 진행하며 작업을 한 듯하다. 현행 영인본의 글자를 기준으로 할 때 원문과 동떨어진 번역이 나오기도 하는데, 많은 경우 그것이 나름대로 이유가 있거나 때로는 탁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교감작업의 경우, 그 교감이 옳으냐 그르냐의 결과 못지않게 판단 근거가 중요한 것인데 다만 번역에만 반영하고 있을 뿐 세세히 근거를 달지 않은 점이 아쉽다.

 

(1) 고려 광준스님의 <<조당집>> 新開 서문

 

고려 광준스님의 <<조당집>> 新開 서문에서 “一卷”을 “十卷”으로 옮긴 것은 중요한 성과라 할 수 있다.

 

已上序文幷祖堂集一卷先行此土, 爾後一卷齊到. 謹依具本, 爰欲新開印版, 廣施流傳, 分爲二十卷.

 

“一卷”은 뒤에 나오는 ‘齊’를 고려할 때 논리적으로 다소 부합되지 않는 면이 있으며, ‘具本’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도 영향을 끼친다. 張華교주본, 吳福祥교점본 외에 국외의 거의 모든 논서에서 “一卷”이라 표기하고 있는데, 일본학자 衣川賢次는 이 점에 의문을 느끼고 원본을 조사한 뒤 “十卷”이라 결론 내리고 있다.7) “十卷”이라 하면, “齊到 (동시에 다 들어오다)”가 논리적으로 해결되며, “具本”은 앞서 들어 온 ‘一卷’ 본에 대해 ‘갖추어진 판본’이라는 의미로 해석되며, 고려에서 新開할 때 십권본에 근거하였다는 의미가 된다.

7) 衣川賢次, <<禪文化硏究所紀要>> 제24호, 114~115pp. 1998. * 譚偉(2005. 25p) 재인용.

 

 

(2) 開와 關

 

師又?開①門了便東?西?,大衆一時走上. 師便?[開]②却門.

有((僧))問石門:“投子?③門意作摩生?”

門云:“?④門尙不((會)), 不?⑤門?向什摩處會?” (6권, 113p 상~하)
월운스님번역 :

투자가 잠시 문을 열고① 동쪽 서쪽을 두루 살피니, 대중이 일시에 몰려 올라오거늘, 투자가 얼른 문을 닫았다②. 이에 어떤 중이 석문에게 물었다. 투자가 문을 연③ 뜻이 무엇입니까?

투자ⓐ가 대답하였다. “문을 열어도④ 들어오지 못하였거늘 문을 닫으면⑤ 어떻게 들어가겠느냐?” 하였다.

 

설명 : [開]는 동국대본의 글자, 나머지는 화원대학본. “?”은 “關”의 속체자.

①‘開’의 경우 화원대학본은 글자가 마모되어 분명하지 않으나 동국대본은 확실히 ‘開’임.

②의 경우 화원대학본은 ‘?’에 가까우나 동국대본은 거의 확실히 ‘開’임. 화원대학본, 동국대학본 공히 ③, ⑤는 ‘?’에 가까우며,

④는 확실히 ‘?’임. 쌍괄호 (( ))는 마모되어 원문에는 글자가 없으나 추정이 가능한 것. 어떤 중의 질문에 대한 石門화상의 대답에서 ④와 ⑤는 서로 반대되는 동작이 와야 하므로, 원문 자체에 誤字가 있다고 볼 수 있음.

ⓐ는 ‘석문’의 오류.

 

번역문을 보면 월운스님은 원문의 ?(關), 開에 관계 없이 논리적으로 재구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③의 ‘?’을 開로 해석할 것인지 關으로 해석할 것인지는 이론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3) 在와 左

 

師問雲?:“作什摩?” 對曰:“擔水.”

師曰:“那?尼?” 對曰:“在.” 월운 상편 183p (4권 12,86 하)8)

“무엇을 하는가?” “물을 집니다.”

“어느 쪽에다 졌는가?” “왼쪽에다 졌습니다.”

 

8) 이 다음 구절에 ‘東西 (움직이다, 가다)’라는 동사가 사용되는데, 이에 대해 <<唐五代語言詞典>>(26p)에서는 이 예문의 출처를 “招提和尙”이라 했지만 “藥山惟儼”의 오류이다.

 

송인성(2001. 178~179pp)에서도 지적하고 있듯이, 법장스님의 번역에서도 ‘在’를 ‘左’로 보고 있는데, 이것은 단순히 글자를 잘 못 보았다기 보다는 ‘在’ 앞의 “那?尼” 를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관계되는 문제이다.

여기에서 “那?尼”는 선사들이 흔히 갑자기 내지르는 질문으로서 “그것은?”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며, 그 경우 “在”는 “있습니다”로 번역하면 된다.

이것을 “어느 쪽에?”라고 번역하였기 때문에 ‘在’를 ‘左’ 의 오자라 보게 된 듯하다.

 

 

(4) 生緣과 法緣

 

有僧問:“和尙生緣在什摩處?” 云:“日出東方,月落西山.” <19권 367·2>
“화상의 법연이 어디에 있습니까?” “해가 동쪽에서 뜨고, 달은 서쪽으로 지느니라.”

 

송인성(2001.b. 144~145pp)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生緣’은 ‘태어난 인연’으로서 ‘출생지, 고향’을 나타낸다. 월운스님의 번역은 오역으로 생각되지만, 특이한 점은 <<祖堂集>>에 “生緣”이 모두 6회 나타나는데, 이것을 “법연”이라 번역한 것은 위의 한 경우 뿐이며, 나머지는 “고향, 자란 곳” 등으로 번역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월운스님이 볼 때, 字面상으로는 ‘生緣’이지만, 이 선문답에서는 ‘法緣’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싶다.

 

 

(5) 許와 計

 

師題象骨山頌曰:“密密誰知要, 明明也無, 森蘿含本性, 山岳盡如如.” (조당집 10권 8p-좌,196p-하)
월운 상편 403p :밀밀하거니 누가 그의 긴요함을 알랴? 명명하여서 계략조차 없다

*‘허’를 ‘계’라 본 것. * 장화점교 346p ‘許’ ,

 

▶ <<훈주조당집>> 344~345pp 원문: 密密誰か要を知らむ, 明明許さむや.

아주 비밀스러우니 누가 그 요지를 알겠는가, 명백하다면 당연히 인정하지 않겠는가.

→ 해석 : 密密の要は誰が知ろうか, 明明たるところが正にそれだということもできない。
→ 풀이 : 密密とうう点からも、明明という点かふぁもアプロ?チできない。
-> 해석 : 극히 은밀한 요점은 누가 알 수 있겠는가. 명백하지 않다면 정확히 그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할 수가 없다. .

-> 풀이: 극히 은밀하다고 하는 점에서도, 분명한 점이 있지 않는 한 접근할 수 없다.

 

“許也無”를 “계략조차 없다”라고 번역하였는데, 원문의 ‘許’를 ‘計’로 본 것이다. 이 역시 단순히 글자를 잘 못 보았다기 보다는 ‘許’의 의미로 번역하기가 어렵고 ‘계교,계략’이 문맥상 타당하다고 본 듯하다. 그러나 원문대로 ‘許’로 본다면,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나 있어 그에 대한 접근을 허락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국내에서 唐宋 구어에 대한 연구가 별반 되지 않은 상황을 감안할 때 월운스님의 번역은 후인의 연구를 위해 상당히 탁월한 선행 작업으로서 <<祖堂集>> 연구에 지대한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번역은 오류나 異見, 潤文 등을 포함하여 항상 수정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이러한 세부적 관찰을 주제로 하는 논문을 중시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따라서 번역이나 교주에 대해 기존 성과에 대한 검토, 개선 작업이 그다지 진행되지 않는 것이 아쉬운 점이라 할 수 있다. 이 방면의 연구로는 송인성(2001. b)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월운스님 및 법장스님의 번역에 대해 어휘 관련 오류를 품사별로 나누어 지적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일부 예들의 경우 방증자료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예컨대, “鈍致”의 경우 월운스님은 “어리석다”라 본 것이고, 송인성(2001. b. 147p)은 “못살게 굴다, 괴롭히다, 학대라다”라고 본 것인데, 적어도 송인성(2001.b)에서 제시하고 있는 예문들로만 보아서는 ‘괴롭히다’ 보다는 오히려 ‘어리석다’ 쪽이 더 나아 보인다.

 

 

2) 학술번역과 작품번역

 

順德云:“打水魚頭痛.” (조당집 7권 16p-좌, 147p-하)
월운 상편 302p : 물을 치니 고기 머리가 아픕니다.

 

<<唐五代語言詞典>>에는 이 예문의 ‘打’에 대해 “각종 행위 동작에 대한 범칭”(78p)이라 설명하고 있다. 물을 긷거나 물을 받거나 하는 등, 물과 관련된 어떤 동작을 가리키는 것인데, 이 설명은 타당해 보인다.

이 경우 ‘打’를 ‘치다’로 해석하는 것은 오역인 셈이지만 그러나 이에 대한 우리말 해당 어휘는 어차피 없어 보인다. 한편, “打水魚頭痛.”는 불교문헌에서 “打水魚頭痛, 驚林鳥散忙”, “打水魚頭痛, 敲氷水亦動” 등으로 쓰이는데, ‘驚’, ‘敲’ 등과 상대해서 고려하면 ‘치다’ 역시 가능한 표현이 된다. 10권 (190-1)에서도 ‘打水’가 나오는데 여기에서는 ‘물을 긷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번역의 오류에 대한 검토에 있어서 흔히 나타나는 오류의 하나는 학술적 번역과 작품으로서의 번역을 혼동하는 것이다. 예컨대, 다음의 예들에서 송인성(2001.b)이 설명하는 내용은 옳지만 실제 번역에서 굳이 오류로 지적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如何是宗門的的意? (12권, 238-2)
월운 : 어떤 것이 종문의 적적한 뜻입니까?
수정안 : 어떤 것이 종문의 분명한 뜻입니까? [송인성 149~150pp]

* ‘적적’이 비록 한문투이기는 하지만 국어사전에 “분명하다”의 뜻으로 등재되어 있는 단어임을 몰랐던 것 같다.

 

師問黃蘗:“笠子太小生?” (16권 301-1)
월운 : “삿갓이 너무 작지 않은가?”
수정안 : “삿갓이 너무 작구만!” [송인성 150~151pp]

 

今日上堂喫些子飯. (6권 112-2)
월운 : 오늘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다.

*엄격히 말하면 ‘些子’ 해당 번역이 빠져있음.
수정안 : 오늘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다.

 [송인성 153p에 ‘수정안’이 빠져 있으며, 의도에 맞게 이 글에서 번역해 넣은 것임]

 

打鍾三下便告寂. (5권, 105-2)
월운 : 종 세 망치를 치자 …
수정안 : 종을 세 번 치자 … [송인성 155~156pp]

 

何妨看一轉乎? (10권, 189-1)
월운: 한 바퀴 돌아 봄이 어떨까?
수정안: 한 번 둘러 보고 오는 것이 어떨까? [송인성 156~157pp]

 

逢佛頭坐. (9권, 173-1)
월운 : 부처를 만나면 당장 머리에 앉느니라.
수정안 : 부처를 만나면 머리를 향해 앉느니라. [송인성 171p]
* 驀을 ‘당장’으로 해석한 것인 듯. <<조당집>>에 驀은 ‘당장에’와 ‘~에’ 두 용법이 다 있음. 그러나 번역만 보면 수정안의 생경한 직역보다 나아 보이며, 驀은 ‘~에’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을 것임.

 

 

3) 기타 예문

 

<<祖堂集>> 번역 중에서 어휘, 구조와 관련하여 재검토가 필요한 예들이다.9)

9) 현재 작업 중이라, 미완성인 상태입니다.

 

? : 師示衆云:“若是得意底人自解,作活計擧措悉皆索索底,時長恬恬底.”

觸[角/牛]物則傳意在傳處. 住則?住,去則?去. 須於欲去不去欲住不住處體會, 不執物不據物. (7권 7엽, 138p 상) 월운 상편 281p :

머무르면 머무름을 깎아버리고, 가면 감을 깍아버려 모름지기 가려해도 가지 못하고 머무르려 해도 머무르지 못하는 곳에서 체득해 알면... ; 당오대사전 52p : 光, 只 (부사)

 

 

* 그러나 조당집이 여타 부분에서 ?은 모두“깎다”의 의미임. 그렇다면 조당집에서는 월운스님처럼 번역하는 것이 타당할 수도있음. 여타의 선어록 찾아 볼 필요 있음.

刺頭 : 有僧到大?. 師指面前狗子云:“明明?,明明?.” 僧便問師,旣是明明?,爲什摩刺頭在裏許? 師云:“有什摩罪過?” 有人擧似雪峯. 雪峯云:“?山是古佛也.” (조당집, 권17 p,316-상) ; 당오대사전 - 埋頭, ? (70p)

 

從上 : 師曰:“不到且從 / 從上如許多佛法什摩處得來?” 對曰:“和尙還曾佛法?人不?”
(조당집 6권 11p -좌, 121p -하) ; 당오대사전 72p - 從前

 

 

* 그런데 이 경우에 ‘예전의 그 많은 불법’이라는 해석이 타당한 것일까?  ‘且從’의 문제.

打風顚 : 若有人邈得吾眞,呈似老僧看. 衆皆將寫眞,呈似和尙,師盡打. 時有一少師普化出來,云:“某甲邈得師眞.” 師云:“呈似老僧看.” 普化倒行而出. 師云:“我不可著汝. 這般底向後去別處,打風顚去也.”

(조당집 15권 4p-우, 283p-상) ; 당오대사전 78p (撒?, 말이나 행동이 황당하고 비정상적인 것을 비유함)

 

타수 : 峯云:“今生不著便共文遂?漢行數處被他帶累,今日共師兄到此,又只管打睡.”

師便喝云:“?也?眠去摩! 每日在長連床上恰似漆村裏土地相似. 他時後日魔魅人家男女去在.”

(조당집 7권 7p-좌, 138p-하)

 

 

* 그런데 문제는 “?也?眠去摩!” 월운번역 “그대는 눈을 감고 자는가?” (월운 상편 283p),

‘?chua?ng’ ‘먹을 당, 절제없이 먹고 마시다’, 그렇다면 “자네도 먹고 잠이나 자! (혹은, 자네도 되는대로 잠이나 자!)”정도가 될 듯하지만 ‘摩’를 감안하면 명령문으로 번역하기는 어려움. → 장화점교 ?也?眠去摩? (245p)

 

“??后恣?眠 ” (오가정종찬) 등과 같이 ‘밥 먹고 나서 ?眠하다’로 사용됨. 즉 ‘?眠’은 ‘잠자다’, 당오대사전 ‘?’에는 ‘吃 , 喝 , 폄의사’라고만 등재 되어 있음. 담위(270p)는 의미가 인신되어 ‘貪’의 의미가 생겼다고 함.
當揚 : 당오대사전 - 명백하다, 분명히 드러내다 (86p)

 

 

刀刀 :

僧云:“只如上上者還假斷送也無?” 師云:“家夫不喫爵飯.”

僧曰:“古人爲什摩道 ‘直得上上者亦須擊發’?”

云:“灼然?著便去, 誰有?刀刀?”

僧云:“?摩卽刀刀猶須斷送也?” 師云:“是也.”

(조당집 9권 13p 좌, 183p-하)

 

* 원문 자형은 “??”에 가까우며 <<祖堂集>>여타의 ‘刀’와는 모양이 조금 다름. 당오대사전87p, 장화점교 324p 는 모두 ‘刀刀’로 보며, ‘??’의 가차로 봄.

 

*월운 상편 375p : “뚜렷하게 흔들어 버리고 훌쩍 떠나면 누가 그대에게 칼을 겨누겠는가?”

“그렇다면 칼을 겨누는 이도 역시 이끌어 주어야 되겠군요?” “그러하니라.”

 

(당오대사전 : ▲출전오류 : 雲盖和尙 -> 九峯和尙 ▲ 구두 : 당오대 - 云:“灼然, ?著便去, 誰有?刀刀?”

▲ 의미 : 말이 많음(??), 현대의 “??”

▶ 문제점 : 그냥 ‘말이 많다’라고 볼 경우 2번째 ‘도도’가 해결하기 어려움. 두 번째 ‘도도’의 경우 ‘도도’자체가 상당히 높은 수준임이 전제 되어 있음. ※ 오복상점교 210p에서는 ‘??’라 함)

 

 [ # “家夫不喫飯.”에 대한 월운번역 :“집안의 가장은 밥을 씹어먹지 않느니라.” -> 박설: “씹은 밥 (다른 사람이 씹어서 먹여 주는 밥)을 먹지 않는다”가 옳을 듯, 즉 상상의 근기는 ‘斷送’이나 ‘擊發’이 필요 없다는 듯한 언급. 따라서 상대가 “그러면 왜 다음과 같은 말이 있느냐”고 반문하는 것)

 

*검사: 조당집의 ‘有’ 동사 용법 ** 당오대사전 103p “斷送” : (시간을) 보내다,허비하다 (度過, 消磨) // 선물을 주다, 보내다(? 贈送錢財打發, 發送 ***현대한어:(생명과 희망을)내버리다, 상실하다)

 

월운 상편, 421p “사자가 코끼를 잡을 때에는 그 힘을 다합니다. 이미 그렇게 힘을 다한다면...” → 번역이 빠졌음 : “사자는 코끼를 잡을 때도 힘을 다합니다만, 토끼를 잡을 때도 그 힘을 다합니다.”

원문 : 10권 17p-좌, 205p-하 ;

問:“師子捉象亦全其力,捉兎亦全其力. 旣是全力爲什摩救善星不得?”

 

不爲水而打水 ( 조당집 10권 2p-좌, 190p-하) 월운 상편 388p - 물을 위하지 않으면서 물을 깃는 것이니라, 훈주조당집 322p --> 물을 위하여 물을 긷는 것이 아니다

 

師又問:“朝陽已昇夜月未現時如何?” (조당집 9권 1p-좌, 171p-하) 월운 상편 351p :
아침 해가 아직 오르지 않고, 저녁 달이 돋지 않을 때가 어떠합니까? → 아침 해가 이미 떠오르매 지난 밤의 달이 드러나지 않는 때는 어떠합니까?

 

 

Ⅴ. 맺음말

 

<<祖堂集>>은 현재 중국에서 세 종류의 점교본, 한국과 일본의 완역본 및 부분 번역본 등이 나와 있지만 그 완성도에 있어 아직은 부족한 면이 많다. 특히 현재로서는 우리나라의 고려대장경판이 유일본임에도, 국내에 교주본이 하나 없다는 것은 아쉬운 현실이다. 국내에서는 어휘고증 관련 논문을 등한시 하는 경향이 있는데, 향후 어휘고증, 번역오류검토 등이 좀 더 활발히 진행되고 이러한 연구의 축적에 의해 좀 더 완전한 교주와 번역 작업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본문에 나온 것은 생략-
李孝聰, <<中國地域歷史地理>>, 北京大學出版社, 北京,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