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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入四行의 構造와 그 傳承

경호... 2013. 2. 9. 02:50

二入四行의 構造와 그 傳承

 

 

김호귀*

 

 

목 차

 

Ⅰ. 서 언
Ⅱ. 二入四行의 構造
   1. 安心法門
   2. 理入의 性格 
   3. 行入의 形態 
Ⅲ. 二入四行의 傳承
   1. 初期禪宗과 二入四行
   2. 東山法門의 傳承
   3. 祖師禪에서의 受容
Ⅳ. 二入四行과 五位
   1. 曹洞五位
   2. 二入四行과 五位의 관계  
Ⅴ. 결 어

 

 

Ⅰ. 서 언

 

菩提達磨의 사상을 논하는 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二入四行에 대한 내용이다.1] 그런데 여기에서는 二入四行의 사상적인 측면을 접근하는 데 있어서 첫째 理入과 四行의 상호관계의 입장과, 둘째 그것이 후대에 어떤 모습으로 전승되었는가 하는 것을 살피면서 특히 曹洞宗 敎義와의 관계에 대하여 접근해 보고자 한다. 理入과 四行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理入의 性格과 四行의 形態에 대하여 고찰해 보고, 각각 그것이 달마에게 있어서 어떤 사상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는가 하는 점을 달마선법의 특색인 安心法門과 관련시켜 보고자 한다. 다음으로 二入四行의 전승에 대해서는 초기선종에 끼친 달마의 사상에 초점을 맞추어 보려 한다. 그 과정에서 달마의 理入과 四行의 관계가 回互?不回互의 관계에 있음을 曹洞宗의 교의인 五位와 관련시켜 살펴봄으로써 달마의 사상이 오위사상의 바탕에도 깔려 있음을 파악해 보고자 한다.

 

1]達摩의 四行의 근본은 소승의 五亭心觀에서 연유하였고, 또한 ?華嚴經? ?明法品?에서도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

 

 

Ⅱ. 二入四行의 構造

 

1. 安心法門

 

達磨의 사상을 살피는데는 우선 安心法門에 대한 의미를 들 수 있을 것이다. 達磨와 慧可의 安心問答은 후대 선문답의 原型이 되었다. 그 달마선의 시초는 바로 안심문답에 의한 바가 컸음을 부정할 수 없다. 혜가가 달마의 제자가 된 것도 바로 이 안심문답에 의한 것이었다. 거기에는 단순할 이만치 명쾌한 선의 이론이 생생하게 약동하고 있다. 선문답은 점차 복잡화되고 난해해져 간다. 의미를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을 흔히 선문답이라 하는 것은 이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살아있는 선문답은 매우 순일무잡하고 단순명쾌하였다. 그리하여 생생한 선문답에는 어떤 수식이나 갖가지 언설도 무용지물이다. 그처럼 소박하기 때문에 생생한 일상회화를 가능하게 만들었던 곳에는 달마를 조사로 하는 선의 실천적인 독자성이 있는 것이다. 자칫하면 달마의 어록인 ?二入四行論長卷子?는 차원이 낮은 대화의 기록으로 보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처럼 단순한 형태의 문답이 기록으로 남게 된 것은 한편으로는 불법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달마와 그 제자들의 단순명쾌한 언어를 반드시 환영한 것만은 아니었다. 나아가서 공공연하게 반대의 손을 뻗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도 달마의 언어가 단순명쾌하여 널리 일반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에 도리어 환영과 동시에 嫌疑도 받았던 것이다. 사실 달마의 어록은 이미 그와 같은 소지를 포함하고 있었다. 네 가지 실천으로서 報怨行과 隨緣行을 말한 것이 무엇보다도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無所求行도 稱法行도 일상생활과 구체적으로 관련된 점은 마찬가지이다.

 

例의 안심문답에 대해서는 달마와 혜가의 安心에 대한 문답 이후 慧可와 僧璨 사이에 이루어진 죄의 성품에 대한 문답2]과, 僧璨과 道信의 속박과 해탈에 대한 문답3]과, 혜가와 한 승려와의 문답 등 여러 가지로 인용 내지 응용되어 가는 것을 볼 수가 있다. 혜가와 한 승려의 예를 들면 截縫職人이 비단을 절단하는데 있어서 우선 상대방에게 비단을 내밀 것을 요구하는 다음의 비유가 있다.

2]?傳燈錄? 卷3, (大正藏51, p.220下)

3]?傳燈錄? 卷3, (大正藏51, p.221下)

 

 

"또 묻는다. “저를 안심시켜 주십시오”

답한다. “그대의 마음을 가지고 오너라. 안심시켜 주리라”

또 말한다. “어떻게 저를 안심시켜 주십시오”

답한다. “비유하자면 재봉사에게 옷을 재단해 줄 것을 요청하는 것과 같다. 재봉사는 그대의 비단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가위를 댈 수 있다. 그런데 본래 비단을 보지 않고서 어떻게 허공을 재단해 줄 수 있겠는가.

그대가 이미 마음을 나에게 가지고 올 수 없는 이상 나는 그대에게 어떤 마음을 안심시켜 줄 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실로 허공을 안심시켜 줄 수는 없다네” "4]

4]柳田聖山, ?達摩の語錄? ?二入四行論?, (築摩書房. 1996年) pp.294-298.

“又問 敎弟子安心

答 將汝心來 與汝安 但與弟子安心

答 譬如請巧人裁衣 巧人得汝絹帛 始得下刀 本不見絹帛 寧得與汝裁割虛空 汝旣不能將心與我 我知爲汝安心何物心 我實不能安虛空”

 

 

혜가가 한 승에게 그대의 마음을 가져오너라 하는 그러한 단적인 언어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은 분명히 후대에 나온 傳燈史書에서 부가된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서 혜가는 허공을 절단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앞의 안심문답에 있어서 처음에 이 비유는 생생하게 살아 있다. 살아 있는 언행이 새삼스럽게 비유된 것에 불과하다. 비단의 비유는 참신하다. 비단상인이 왕래하는 당시의 일상생활에 卽해 있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비유는 결국 비유에 불과하다. 허공의 비유는 理에 떨어지고 만다. 이미 달마에 있어서 안심은 달마 앞에 있는 혜가 자신의 당면문제였다. 그것이 혜가와 한 승과의 문답에서 한 승의 당면문제로 안심이 등장하고 있지만, 그 비유가 비단의 비유로 상승하고 있는 것은 달마와 혜가의 안심법문의 성격이 벌써 卽今의 당체에서 약간 벗어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른바 그만큼 달마의 어록은 이미 여러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변질 내지는 널리 선포되어 갔음을 말해주고 있다.

 

보리달마의 여러 가지 가르침 가운데 ?二入四行論? 만큼은 異論의 여지없이 달마의 친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二入은 理入과 行入을 가리키는 말로서 여기 理入의 理法은 眞如의 理法이다. 人爲를 버리고 분별을 잊고 스스로 眞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妄을 버리고 眞으로 돌아가는 것인데, 나아가서는 眞과 妄이 서로 은밀하게 부합하는 것을 말한다. 行入은 理入의 구체적인 실천을 의미한다. 그러나 단순히 理入의 실천적인 측면만이 드러나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의 ‘入’이라는 말은 깨달음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理入은 行入의 원리이고 行入은 理入의 실천일 수가 있다. 그러나 달마의 가르침은 단순히 理入과 行入이라는 각자의 입장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형이상학적인 이법으로서의 理入은 곧 철저하게 행위로 드러나는 行入과 혼동되지 않고, 그 자체가 뚜렷한 영역을 지니면서 그것이 동시에 깨달음의 원리로서 확대되어 행입의 하나하나에 理入의 실상이 자리하고 있다. 곧 理入 없는 行入은 무모한 행위이기 쉽상이고, 行入 없는 理入은 空理空論에 빠지기 쉽다. 이러한 의미에서 달마는 行入이라는 구체적인 실천성을 理入이라는 원리성으로 재정립한 것이다.

 

왜냐하면 달마의 行入은 이전에 벌써 소승불교의 실천인 五亭心觀에서 드러나 있었으며,5] ?華嚴經? 속에서도 그 상세한 실천이 나타나 있었기 때문이다.6] 달마는 실천적인 수행을 그 자신이 理入이라는 원리성에 입각하여 서로의 불가분리적인 回互性을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달마가 행입의 원천으로 내세운 理入의 발상은 안심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앞서 언급한 ?華嚴經?의 내용도 그 한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理入과 四行의 구체적인 성격과 형태를 살펴 그것이 이후의 선종사에서 어떻게 전승되어 가고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5]한편 소승불교 선정의 특징으로는 (1) 그 이원적인 실재관에 의하여 형식적으로 고정화 되었고, (2) 八正道의 앞 七枝를 正定의 방편으로 삼아 이것을 목적시 하였으며, (3) 修定의 효과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려고 단계를 중요시하였고, (4) 그 단계설을 욕계?색계?무색계의 삼계설에 결부시켜 선관의 항목이 조직적이 아닌 蒐集的인 경향을 취하였으며, (5) 그 禪數의 어떤 하나를 취하여 닦아도 그 최후는 心地가 구경적인 것이 되어 대승으로 변화하고, (6) 소승의 法數를 선관으로 삼아 닦은 瑜伽師와 이외에 미친 영향은 절대적인 것이 되었다는 점 등을 들 수가 있다.

6]?華嚴經? 卷18 ?明法品?, (大正藏10, p.97)

“佛子 菩薩 云何於諸衆生 隨其所應 而爲說法 所謂知其所作 知其因緣 知其心行 知其欲樂 貪欲多者 爲說不淨 瞋?多者 爲說大慈 愚癡多者 敎勤觀察 三毒等者 爲說成就勝智法門 樂生死者 爲說三苦 若着處所 說處空寂 心懈怠者 說大精進 懷我慢者 說法平等 多諂?者 爲說菩薩 其心質直 樂寂靜者 廣爲說法 令其成就 菩薩 如是隨其所應 而爲說法”

 

 

2. 理入의 性格

 

달마는 이입의 성격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기르치고 있다.

 

"대저 道를 깨닫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것을 요약해서 말하면 두 가지 종류 밖에 되지 않는다. 하나는 理入이고 또 하나는 行入이다.

理入이란 敎에 의지하여 종지를 깨닫는 것이다. 그것은 곧 중생은 부처와 같은 眞性은 지니고 있음을 깊이 믿는 것이다. 단지 객진번뇌의 망상에 뒤덮여 있어 그 진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만약 妄을 버리고 眞으로 돌아가 壁觀을 凝住하면 자타가 없고 범성이 평등하여 굳건히 머물러 움직이지 않게 된다. 이리하여 다시는 文敎에 따르지 않으면 그것이 진리에 그윽하게 합치되어 분별이 없어 적연무위하게 되는 것이 곧 理入이다."7]

7]?傳燈錄? 卷30, (大正藏51, p.458中)

“夫入道多途 要而言之 不出二種 一是理入 二是行入

理入者 謂藉敎悟宗 深信含生同一眞性 但爲客塵妄想所覆 不能顯了

若也捨妄歸眞 凝住壁觀 無自無他 凡聖等一 堅住不移 更不隨於文敎 此卽與理冥符 無有分別 寂然無爲 名之理入”

 

이 말에는 진리에 대한 달마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藉敎悟宗이라는 말은 그대로 敎에 의지하여 宗旨를 깨닫는다는 뜻이다. 그 敎라는 것은 다름 아닌 부처님의 一大示敎를 말한다. 그 가르침을 深信함으로써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이 深信은 곧 一切衆生悉有佛性을 自覺하는 것이다. 그 자각의 한 가운데는 중생과 부처의 자타가 없고 성인과 범부의 구분이 없다. 그 활용태가 곧 壁觀8]이다. 그러기에 壁觀은 文敎의 형태이고 文敎는 壁觀의 내용이다. 文敎와 壁觀이 다른 것이 아니다. 객진번뇌는 단지 자각하지 못하는 상태일 뿐이지 달리 번뇌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 번뇌는 보리의 중생적인 형태이고, 보리는 번뇌의 부처적인 내용일 뿐이다. 이와 같은 확신에 가득 차 있는 입장이 곧 달마 理入의 성격이다.

 

8]壁이란 밖으로부터 客塵과 作爲的 妄念이 침입하지 않는 것으로 心의 비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벽을 관찰한다든지 벽이 되어 관찰한다든지 하는 것은 바로 벽을 마주 한다든가 벽을 등진다든가 하는 의미와 동일하다. 벽을 등지지 않고서는 벽을 마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3. 行入의 形態

 

달마가 말하는 行入의 구체적인 형태는 壁觀이다. 벽관은 달마의 安心이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기도 하면서 곧 安心의 내용이기도 하다. 안심이 이입으로 터득된 것이라면, 그 안심은 벽관을 통하여 바로 그 벽관의 모습으로 완성되어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벽관은 좌선의 모습이면서 안심의 내용일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좌선은 안심의 방편이 아니라 안심 그 자체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曇琳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 때 도육과 혜가 두 사람이 있었는데 오직 이 두 사문만큼은 비록 나이는 적었지만 그 뜻이 高遠하여 달마법사 만난 것을 무척 다행으로 여기면서 수 년 동안 모시면서 경건하게 물어 스승의 뜻을 잘 터득하였다. 달마법사도 이에 그 정성에 감탄하면서 眞道로써 다음과 같이 가르쳐 주었다.

?이와 같이 安心하고, 이와 같이 發行하며, 이와 같이 順物하고, 이와 같이 方便을 써라. 이것이 곧 대승의 안심법이니, 잘못됨이 없이 행하라?

여기에서 ‘이와 같이 안심하라’는 것은 壁觀이고, ‘이와 같이 發行하라’는 것은 四行이며, ‘이와 같이 順物하라’는 것은 譏嫌을 防護하는 것이고, ‘이와 같이 방편을 행하라’는 것은 그것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9]

 

9]?傳燈錄? 卷30, (大正藏51, p.458中)

“于時唯有道育惠可 此二沙門 年雖後生 俊志高遠 幸逢法師 事之數載 虔恭諮啓 善蒙師意

法師感其精誠 誨以眞道

如是安心 如是發行 如是順物 如是方便 此是大乘安心之法 令無錯謬

如是安心者壁觀 如是發行者四行 如是順物者防護譏嫌 如是方便者遣其不著”

 

 

曇琳은 벽관이 되기 위해서는 안심이 이루어져야 함을 말하면서 아울러 四行과 譏嫌을 방호할 것과 방편으로 행하라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이 네 가지는 바로 四行의 근거이기도 하다. 壁觀이라는 것은 달마선법의 특색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말이다. 특히 安心을 벽관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안심에 대한 달마의 견해가 드러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 安心에서 心은 ?金剛經?에서 수보리가 세존에 대하여 질문한 세 가지 곧, 云何應住?云何修行?云何降伏其心 10]가운데 첫째의 云何應住의 구체적인 내용인 自性淸淨心에 어떻게 住해야 하는가의 心 바로 그것이다. 그 자성청정심에 住하되 집착을 내지 말아야 한다는 방법이 曇琳의 如是方便의 내용이기도 하다.

10]菩提流支 譯, ?金剛般若波羅蜜經?, (大正藏8, p.752下)

 

 

이처럼 自性淸淨心에 安住한다는 것은 진리의 자각을 통한 壁觀일 때에야 비로소 如是安心일 수 있는 것이다. 慧可와 菩提達磨의 대화 가운데 등장하는 安心法門에 있어서도 그 내용은 곧 혜가의 안심 바로 그것이었다.11] 곧 혜가가 자기의 불안한 마음을 찾아보았으나 결국은 찾을 수 없었다[覓心了不可得]고 말하자 달마가 그대는 이미 안심이 되었다[我與汝安心竟]고 말하였다.

여기에서 혜가가 불안한 마음을 찾아보는 행위는 곧 벽관의 행위이다. 그 벽관의 행위를 거쳐 결국은 불안한 마음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불안한 마음을 찾아보았으나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존재하는 불안한 마음을 찾을 수 없다는 포기 내지는 절망의 뜻이 아니다. 혜가가 벽관을 통하여 관찰해 보니 불안한 마음이라는 것은 애당초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훤히 꿰뚫어 보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불안한 마음에 대한 철저한 자각을 말한다. 그래서 달마가 굳이 혜가를 향하여 그대의 불안한 마음을 이미 안심시켜 주었다고 인가하기 이전에 혜가는 벌써 자성청정심에 안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곧 벽관이라는 달마의 가르침이 혜가를 통하여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혜가는 또한 자신이 깨달은 안심의 원리를 다른 제자의 질문에 그대로 적용하여 가르쳐 주고 있다.12] 이것은 바로 혜가가 달마로부터 배운 四行의 구체적인 형태인 報怨行?隨緣行?無所求行?稱法行의 전개원리이기도 하다.

 

11]?傳燈錄? 卷30, (大正藏30, p.219中)

12] ?祖堂集? 卷2, (高麗大藏經45, p.246上)

“有一居士 不說年幾 後有四十 及至禮師 不稱姓名 云 弟子身患風疾 請和尙懺悔

師云 汝將罪來 爲與汝懺悔

居士曰 覓罪不可見

師云 我令爲汝懺悔竟 汝今宜依佛法僧寶

居士問 但見和尙則知是僧 未審世間何者是佛 云何爲法

師云 是心是佛 是心是法 法佛無二 汝知之乎

居士曰 今日始知 罪性不在內外中間 如其心然 佛法無二也”

 

 

이 네 가지 실천수행은 모두 그 바탕에 大乘의 空觀思想이 깔려 있다. 이것은 달마의 理法에서 안심수행으로 완성된 바탕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형태이지 안심의 이법에서 터득하지 못한 것을 네 가지 실천으로 완성해 나아간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법의 원리는 이미 이법 그대로 완성되어 있다. 다만 이법의 원리가 네 가지 실천수행으로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드러나고 있는 것이 四行이라는 형태의 전개이다. 곧 보살의 현실생활은 理入을 떠나지 않는 行入의 실천이고, 行入의 실천은 곧 理入의 자기완성이기도 하다.

 

곧 달마에게 있어서 안심의 理法은 벽관의 四行으로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理入은 철저하게 행위와 혼동됨이 없이 그 자체의 뚜렷한 영역을 지니면서 더불어 깨달음의 원리로서 항상 行入으로 확대되어 낱낱의 행위에 理入의 실상을 부여하고 있다. 이와 같은 理入과 行入의 상호관계가 달마 이후에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되어가고 있는가 살펴보고자 한다.

 

 

Ⅲ. 二入四行의 傳承

 

1. 初期禪宗과 二入四行

 

달마와 梁 武帝와의 대화에 나타난 달마의 입장은 바로 理入의 입장을 잘 보여주고 있다. 達磨가 추구한 것은 寺塔의 조성?經典의 유포?度僧?求福信仰과 같은 유형적인 功德이 아니었다. 사람마다 제각기 含有하고 있는 佛性의 顯現이었다. 달마는 그것을 ?二種入?13] 속에서 잘 드러내고 있다. 곧 모든 중생이 同一眞性을 지니고 있음을 깊이 믿고,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달리 言語文敎를 방편삼아 宗旨를 깨치는 것일 뿐 그것에 끄달리지 말며, 壁觀을 통해 진리에 계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菩提達磨의 태도는 한결같이 簡潔直指 그것이었다. 그 까닭은 마음의 깊은 深淵을 直指하는 방법으로 達磨가 선택한 최선의 방법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혜가는 철저한 心法의 소유자로서 空의 실천에 힘썼다. 단지 達磨로부터 전수 받은 四卷 ?楞伽經?을 鑑智僧璨에게 전했을 뿐이다.14] 慧可에게서 嗣法한 僧璨은 唐代에 아직 禪宗이 본격적인 형태를 갖추기 이전에 나타난 韻文形態의 최초의 저술이라 할 수 있는 ?信心銘?을 남기고 있다. 이 속에는 佛法의 要道 및 佛祖의 信心을 명료하게 압축하고 있다. 특히 '信心'이라는 두 글자는 이 ?信心銘?의 綱領으로서 初心에 大機를 發하여 不二의 大道를 체득함으로써 信心不二 不二信心의 宗旨를 꿰뚫게 하는 내용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에서 ?信心銘?에서는 一切의 二見을 단절하는 내용으로서 止와 動?一과 二?一과 一切?大와 小?有와 無, 그리고 能과 境 등의 回互를 一心의 原理로 전개하고 있다.15]

 

13] ?少室六門?, (大正藏48, p.369下)

14]혜가의 사상은 달마 二入四行의 근본취지에 徹悟하고, 楞伽經을 의용하여 萬法唯心의 一心에 입각하였다. 그리하여 二見의 對待를 무릇 自心에서 나타난 妄心으로 간주하였는데, 이것은 달마보다도 적극적인 표현으로 볼 수 있다.

15]?信心銘?, (大正藏48, pp.376中-377上)

 

信心이 여기에서는 相卽相在 互攝互融이라는 一心의 原理로 전개되고 있다. 그 일심이 바로 다름아닌 信이고 一切로서 달마의 理入에 나타난 중생의 同一眞性을 信하는 입장이다. 그리고 冒頭의 ?至道無難 唯嫌揀擇?과 末尾의 ?信心不二 不二信心?이라는 구절은 ?信心銘?의 綱要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본 편은 一心不生으로 일체를 포용하여 有卽無 無卽有로서 一卽一切 一切卽一의 無?自在한 실천을 노래하고 있다. 우리는 이 ?信心銘? 속에 華嚴思想과 如來藏思想이 들어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곧 信心不二의 心은 곧 우리들이 본래부터 구족한 심성이고 개개인에게 圓成되어 있는 불심을 가리킨다. 그래서 身心을 포괄한 能統一의 일심으로서 소위 自性淸淨心?如來藏 내지 佛性을 의미한다. 이것은 바로 달마의 二入四行 가운데 理入으로서 四行 속의 稱法行의 취지도 또한 이 입장과 같다. 왜냐하면 달마의 信은 바로 本覺的인 입장에서의 信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田中良昭는 달마의 信에 대하여 달마의 二入四行說에 설해진 信은 철저하게 本覺位에 기초하고 있는 ?金剛大乘?이라는 밀교의 信과 지극히 유사성이 깊다고 말하면서 金岡秀友의 說을 인용하여 信의 두 가지 입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밀교에서 특히 중점이 되는 信을 ?raddh?(深信)와 adhimukti(信解)의 두 가지가 있다고 하여 이 信에 대하여

(1) 信解(adhimukti)는 理를 見하여 信하는 것이다. 곧 반야에 의거하는 信이다.

(2) 深信(?raddh?)은 事에 依하고 人에 依하는 信이다. 곧 佛性 내지는 心淸淨에 대한 信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지금 달마선에 있어서 信도 理入의 含生同一眞性의 深信과 行入의 稱法行에 있어서 性淨之理의 信解가 밀교의 그것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16]

16]田中良昭, ?達磨禪における信について? (?宗學硏究?7. 駒澤大學. 1965)

 

 

달마선은 송대 이후 本覺門의 信에 대한 근거의 반성으로부터 始覺門的인 看話禪의 疑團으로 전환되어 간 것이다.17] 달마선이 대승을 표방하고 달마선을 계승한 중국선이 대승불교의 一派로서 本覺門에 입각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上上根機의 선을 中下根機에까지 확대하는 과정에 있어서는 始覺門的인 요소가 표면화되어 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始覺門的인 看話를 향한 계기가 달마선의 ?指事問義?와 같은 가르침 속에 이미 포함되어 있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만 ?指事問義?라 해도 그것이 本覺門을 떠난 것이 아니라 달마에 있어서는 本覺頓悟의 動的인 妙用의 그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始覺門的인 계기가 점차로 표면화되어 本覺門에 입각하고 있으면서도 始覺門的인 看話의 측면이 강조되어 대두된 것이 소위 송대 및 그 이후의 看話禪이다. 이 始覺門的인 송대 看話禪의 입장에 대하여 달마선 본래의 本覺門的인 입장을 正傳하고 다시 그것을 현성시켜 本證自覺의 틀을 갖춘 것이 宏智正覺의 ?照禪의 입장이었다.

17]柳田聖山, ?看話禪における信と疑の問題? (?日本佛敎學會年報? 28) p.128.

 

한편 道信에 있어서 打坐의 本旨는 任運無作으로서 一心의 明淨을 期하는 데 있다. 그 淨心은 百千의 妙門으로서 恒沙의 功德이 내는 근원이다. 了了하게 常知하는 一心은 일체의 作爲를 끊고 任運하는 곳에 현현한다. 또한 달마의 가르침인 대승의 正理에 入하는 긴요한 것으로 ?楞伽師資記?에서는 (1) 知心體, (2) 知心用, (3) 常覺不亭, (4) 常觀心空寂, (5) 守一不移 등을 언급하고 있다.

 

 

"무량수경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제불의 법신이 일체중생의 心想에 드니 그 心이 곧 부처를 이룬다’ 그러니 마땅히 알라. 부처는 곧 이 마음이요, 마음 밖에 달리 부처가 없다는 것을. 그것을 간략히 말하자면 무릇 다섯 가지가 된다.

첫째는 마음의 體를 아는 것이다. 마음의 체성은 청정하여 부처와 같다.

둘째는 마음의 用을 아는 것이다. 마음의 작용이 法寶를 내고 열반을 짓나니 모든 번뇌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셋째는 깨달음은 영원하다. 깨달음은 멀리 있지 않으나 각각의 법은 相이 없다.

넷째는 항상 身이 공적함을 觀한다. 안과 밖이 다름이 없어 몸이 법계에 드니 일찍이 걸림이 없다.

다섯째는 一을 굳게 지킨다. 動과 靜이 항상 함께 하여 수행자로 하여금 분명히 불성을 보아 곧 선정에 들게 한다. 여러 경전에는 많은 종류의 관법이 있으나 傅大士가 설한 바 守一不移가 가장 뛰어나다."18]

18]?楞伽師資記?, (大正藏85, p.1288上).

“無量壽經云

諸佛法身 入一切衆生心想 是心作佛 當知 佛卽是心 心外更無別佛也 略而言之 凡有五種

一者 知心體 體性淸淨 體如佛同

二者 知心用 用生法寶 起作恒寂 萬惑皆如

三者 常覺不停 覺心在前 各法無相

四者 常觀身空寂 內外通同 入身於法界之中 未曾有?

五者 守一不移 動靜常住能令學者 明見佛性 早入定門 諸經觀法 備有多種 傅大師所說 獨擧守一不移

 

 

즉 마음의 체를 알고, 마음의 작용을 알며, 항상 부지런히 깨어 있고, 항상 몸이 공적함을 관찰하며, 하나를 지켜 변함이 없게 하는 것[知心體?知心用?常覺不停?常觀身空寂?守一不移]을 綱要로 하면서 그 원리는 坐禪觀心에 두고 있어서 달마의 壁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여기에서 僧璨의 信心이 守一, 즉 守一心眞如의 원리로 바뀌어 있을 뿐이다. 心의 本體가 佛性임을 알아 佛性이 動과 靜의 二邊에 흔들리지 않는 平等一味임을 觀한다. 이 一心의 眞如(佛性)를 지킨다는 것은 저 ?金剛三昧經?의 骨子이기도 하다.19] 한편 달마 이입사행의 사상적인 원천이 바로 ?金剛三昧經?에 있다는 종래의 견해에 대하여 오히려 柳田聖山의 주장20]이 있는가 하면, 水野弘元의 주장도 제기되어 있다.21] 이러한 사실은 달마의 이입사행설이 초기선종사상에 얼마나 보편적으로 권위를 지니고 있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19]?金剛三昧經?, (大正藏9, p,370上)에 다음과 같은 말에서 엿볼 수 있다.

“大力菩薩言 何謂存三守一 入如來禪 佛言 存三者 存三解脫 守一者 守一心如 入如來禪者理觀心淨如 入如是心地 卽入實際”

20]柳田聖山, ?ダルマ?, (講談社. 1998年) p.142.

“달마의 이입사행설과 그 佛說에 의한 근거라고 하는 금강삼매경의 관계는 크게 주목할 가치가 있다. 종래는 금강삼매경에 의하여 달마가 이입사행설을 설했다고 생각하였다. 사실은 오히려 그 반대이다. 달마의 이입사행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하여 금강삼매경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근대의 연구에 의하여 확인되었다”

21]水野弘元, ?菩提達摩の‘二入四行說’と金剛三昧經?, (?駒澤大學佛敎學部硏究紀要?13. 1955年)

“금강삼매경과 보리달마 이입사행설의 관계는 이입사행설이 금강삼매경으로부터 채용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달마설이 금강삼매경에 의용된 것 같다”

 

 

2. 東山法門의 傳承

 

四祖道信을 중심으로 하여 五祖弘忍을 거쳐 南能北秀로 일컬어지는 南宗과 北宗의 시기에 가장 널리 세력을 지니고 있었던 일군의 선종사상을 東山法門이라 한다. 여기에서 南宗과 北宗의 명칭은 이후 南宗禪과 北宗禪의 명칭과는 맥을 달리한다. 여기에서의 남북 양종의 명칭은 곧 지역적인 구분으로서 일찍이 수도 長安과 洛陽에 진출해 있던 귀족을 중심으로 하는 선종의 일군과 慧能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가고 있던 남방의 서민층을 중심으로 하는 일군의 선종을 일컫는 말이다. 사실 혜능이 시적한 이후 그의 제자들로부터 번영한 南宗禪과 北宗禪의 의미는 이와 같은 지역적인 계층적인 측면에다 頓漸의 사상적인 측면이 가미되어 일컬어지는 명칭이었다.

 

이 가운데 당시 南宗과 北宗의 직접적인 계보의 중심에 있었던 弘忍은 ?金剛般若經?을 受持하면서 心性의 本源에 徹底함을 本旨로 삼아 守心, 즉 守本眞心의 參學을 강조하였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州忍大師導凡趣聖悟解脫宗修心要論?을 저술하였다.22]

慧能은 ?修心要論?을 忍大師가 凡人을 깨달음으로 인도하기 위해 修心의 道를 보여준 要論이라 正義하고, 그 근본사상은 ‘守心’에 있다고 설명하였다.23] 弘忍은 이 守本眞心은 慧能의 見性으로 이어진다.

慧能은 후에 無相戒의 受戒를 중심으로 한 ?摩訶般若波羅蜜法?을 설하여 ?六祖壇經?이 편집된다. 그 핵심적인 禪法은 ?見性成佛?이다. 弘忍은 ?修心要論?에서 ?우선 眞心을 지킨 후 成佛을 얻는다? 라고 했는데, 이것은 慧能의 見性成佛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양자가 ?自性圓滿淸淨之心?을 守心으로 지켜갈 것인가, 아니면 ?自性淸淨圓滿之心?을 그 자체로 인정할 것인가의 차이이다.

慧能의 見性은 弘忍의 守心에 의해 開華했으며, 慧能은 弘忍의 守心?守眞心?守本淨心을 高陽한 것이라 할 수 있다.24] 즉 心의 종교적 개념을 性으로 완성한 것이다. 그 일례는 ?壇經?의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선 慧能이 弘忍을 처음 親見하는 곳에서 주고받은 이야기도 바로 佛性의 문제였다. 이 불성이 후에 혜능에게는 청정자성을 의미하는 중요한 개념으로 사용되어 간다.

 

22]略하여 ?修心要論?이라 하며, 달리 ?最上乘論???一乘顯自心論?이라고도 한다. 한편 ?修心要論?은 그의 제자 慧能이 스승인 弘忍의 이름을 假託하여 저술했다는 說도 있다. 中川孝, ?楞伽宗と東山法門?, (?講座敦煌?8. ?敦煌佛典と禪? pp.159-160)

23]위의 책, p.161

24]위의 책, p.160.

 

 

여기에서는 이전과 같은 心의 추구라든가 看心의 문제가 아니라 本來性品의 顯現이 이야기되고 있다.25] 누구나 이미 具足하고 있다는 佛性의 開顯은 바로 그의 悟道頌에 잘 나타나 있다. 이미 見性은 修禪의 의미를 넘어 絶對境의 次元으로 나타나 있다. 神秀와 慧能의 悟道頌26]의 대비는 바로 이 점을 더욱 극명하게 상징하고 있다. 그래서 홍인의 선은 자성청정심에 契?하는 것을 主로 삼아 定心을 중시하고 卽心卽佛의 理를 고조시킨 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단지 홍인은 그의 저술보다는 자신의 인격에 그 정신을 구현한 사람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楞伽師資記?에는 홍인에게 특수한 선법이 있었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27]

 

25] 心을 고요하게 단지 無念으로만 삼는 看心的인 坐禪은 배제하고 있다. 즉 志誠과의 대화(?壇經? 大正藏48, p.358中)에서, “ ···· 師(慧能)曰 汝從玉泉來 應是細作 對曰 不是 師曰 何得不是 對曰 未說卽是 說了不是 師曰 汝師若爲示衆 對曰 常指誨大衆 住心觀靜 長坐不臥 師曰 住心觀靜是病非禪 長坐拘身 於理何益” 이라 말하는 것은 그 일례이다.

26] ?壇經?, (大正藏48, pp.348中-349上)

27]大正藏85, p.1289中.

 

또한 도신의 법을 이은 法融(594-657)은 처음 牛頭禪을 別立하였다. 법융에게는 ?心銘?이라는 저술이 있으며, 또한 ?絶觀論?도 그의 저술로 알려지고 있다.28] 그가 주안점으로 삼은 것은 ?菩提本有 煩惱本無?를 강조하여 일체의 作爲를 떠나 일심을 全現시키는 것이었다. 우두의 일심은 본래부터 구족해 있는 본각에 입각한 일심으로서, 이 일심은 곧 達磨安心의 心인 자성청정심이다.29]

이러한 내용은 ?절관론?에 잘 나타나 있다. ?絶觀論?은 우선 그 도입부분에서 ?大道는 沖虛幽寂하여 心으로는 알 수 없고, 말로도 나타낼 수 없다. 그렇지만 이제 짐짓 二人의 인물을 설정하여 서로 진실을 말하게 하는 것이다? 라고 하고, 이하 入理라는 선생과 緣門이라는 제자 사이에 이루어지고 있는 문답에 따라 全編이 구성되어 있다. 그 劈頭에서 緣門의 ?心이란 어떤 것이며 어떻게 心을 안정시키는가? 라는 물음에 대하여 ?無心?의 至理를 설하고 이 ?絶觀의 無心?이 心을 안정시키는 ?大道? 바로 그것이다고 말하는데, 이것이 全篇의 주제가 되어 있다. 이리하여 우두는 일심의 근본을 확신한 바탕위에 空觀에 철저하여 不空의 妙性을 현현시키려고 노력하였음을 알 수 있다.

 

28] ?絶觀論?은 달마의 저술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후 ?矢吹慶輝博士追悼號?, (?大正大學報? 제30?31집. 1940년)에서 關口眞大氏는 ?絶觀論?은 牛頭禪 초조의 우두법융의 찬술이라 발표하였다. 이 추론은 후에 ?天台敎學硏究所敎學大會紀要? (제1집. 1951년)에 ?敦煌出土?絶觀論?小考?를 통해 세상의 학자들에게 주목되어 왔다. ?絶觀論?을 자세히 검토해 보면 그 사상에 남종선의 특색이 현저하다는 학자들의 견해는 거의 일치한다. 혜능 혹은 신회보다 앞에 결국 남종선의 성립하기 이전의 사상과 선풍이 강남의 땅에 선포되었음을 알 수 있다.

 

29]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논증으로는 平井俊榮氏는 ?敦煌佛典と禪?(?講座敦煌? 8. p.204)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현존하는 ?絶觀論?이 달마의 ?二入四行論?을 전제로 하여 그 뜻을 계승하여 찬술되었다고 하는 것은 학자의 본문연구에서도 밝혀져 있다. 이것은 달마찬술설을 완전히 부인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牛頭法融 혹은 牛頭宗의 사람들이 얼마나 달마의 傳燈說을 충실히 서술하려고 했는가 하는 그 증거가 바로 ?絶觀論?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종전의 전등설이 말하고 있듯이 우두선이 분명 달마선의 분파라는 증거를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絶觀論?의 내용이 극히 반야적 경향이 풍부한 작품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삼론의 영향을 크게 받아 그 반야적 경향이 강한 우두종의 사람들이 달마선의 전등을 주장하려고 쓴 것이 이 ?絶觀論?이었다고 보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慧能은 般若空觀에 의하여 道에 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반야공관의 사상은 大梵寺에서 행한 摩訶般若波羅蜜法이 그 좋은 예이다. 이 법은 몸을 가지고 직접 念念에 행해야 할 것으로서 이것을 般若三昧라 칭한다. 그리고 定慧는 一體로서 不二이다. 확실히 定은 慧이 體이고, 慧는 定의 用이어서 慧에 卽했을 때 定은 慧에 있고, 定에 卽했을 때 慧는 定에 있다. 혜능은 불성의 유무에 의하여 홍인에게 인정받고 그 문하에 들어간 바와 같이 그의 생애를 통하여 同一眞性의 徹見을 강조하였다.30]

그러면서도 그것은 敎家와 같이 心性을 대상으로 하여 知覺하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심성 그 자체를 契當하여 그 자신이 되고 그것을 전체적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심성에 철견하는 行이 곧 좌선이다.

그리고 坐라는 것은 일체에 있어서 걸림이 없고 망념이 사라지는 것을 말하고, 禪이란 본성을 철견하여 혼란스럽지 않는 것을 말한다. 또한 밖으로 相을 여윈 것을 禪이라 하고, 안으로 산란하지 않는 것을 定이라 한다. 本覺眞性이 서로 融卽하여 慧와 定이 발현되는 것이야말로 바로 혜능의 禪이다. 이러한 법문을 곧 頓敎라 칭한다. 여기에 철견하는 것이 바로 頓悟이다. 돈오는 곧 자기의 妙心에 입각하여 煩惱妄念이 본래 空한 것을 증득하는 것이다. 혜능의 悟後保任 16년 동안의 수행은 頓悟妙修를 증득하기에 충분하다.

일상의 四威儀가 모두 直心으로 擴充되고 일체법에 있어서 집착이 없는 실천을 一行三昧라 한다. 혜능은 단순한 打坐에만 머문 것이 아니라 선정의 참된 정신을 그 생활 전체 속에서 구현하였다. 나아가서 薛簡에게도 ?道는 心을 말미암아 깨닫는 것이다. 어찌 坐에 있겠는가?라고 말한다. 그리고 直心이 곧 道場이기 때문에 淨土는 반드시 直心을 떠나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며, 만약 無生頓法을 깨달으면 西方을 보는 것도 단지 찰나에 있을 것이다고 말한다. 이처럼 돈교의 법문은 출가와 재가의 차별이 없이 일체에 타당하게 적용되고 있다.

 

30] 慧能과 弘忍의 첫 대면부터가 佛性 곧 衆生의 同一眞性에 대한 문답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후 그의 법어집인 ?壇經?의 전체에 걸쳐 등장하는 自性法門은 곧 이러한 사실을 傍證해 주는 좋은 예이다.

 

 

3. 祖師禪에서의 受容

 

한편 혜능의 제자인 南嶽懷讓의 사상과 그 실천은 남종선의 특색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修와 證을 대립시켜서 좌선하면서 깨달음을 구하거나 作佛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로 本證妙修?修證一如의 좌선이야말로 不染汚의 行이었다. 또한 회양은 一切가 一心法界에 다름 아니기 때문에 학인은 有無의 대립을 包越하여 無二의 眞心으로 귀착해야 할 것을 강조한다. 또한 회양은 ?그대의 지금 그 마음이 곧 佛이다. 때문에 달마가 西來하여 오직 一心을 전했을 뿐이다. 三界唯心이란 삼라와 만상이 一法에 印하는 것이어서 무릇 所見하는 色은 모두 自心일 뿐이다? 라고 설하여 卽心卽佛?三界唯心의 입장을 개시하였다. 이 一法은 곧 一心을 말하는 것으로 ?華嚴經?의 一切唯心造의 心이기도 하다. 여기 一切唯心造에서의 心은 중생심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心과 佛과 衆生에 차이가 없는 것으로서 수행의 입장에서는 자성 청정심의 志向이다. 이 心 역시 일심으로서 달마의 안심이고 벽관이다.

 

荷澤神會의 ?顯宗記?에는 ?無念을 宗으로 삼고 無作을 本으로 삼으며 眞空을 체로 삼고 妙用을 用으로 삼는다. 대저 眞如는 無念으로서 想念으로 알 수 있는 바가 아니고, 實相은 無生으로서 어찌 色心으로 볼 수 있으랴?31] 라고 서술하고 있듯이 신회는 寂知를 體로 삼고 無念을 宗으로 삼고 있다. 그 禪은 頓悟漸修를 입장으로 내세우고 있다. 漸修를 내세우는 것은 아직 남종의 頓悟妙修에까지는 이르지 못한 까닭이다. 그러나 북종의 實修漸悟와는 크게 다르다.

 

?宋高僧傳? 無業傳에 있는 馬祖와 無業의 문답에 의하면 馬祖道一은 是心是佛을 설하여 法身實相의 本自具足를 주장하였다.32] 이것은 중생 외에 달리 佛이 없다는 萬法唯心觀에 입각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선이 철저하게 頓이고 적극적이었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31] ?神會和尙禪語錄?, (?中國佛敎典籍選刊? 楊曾文 編校) p.52.

“無念爲宗 無作爲本 眞空爲體 妙有爲用 夫眞如無念 非想念而能知 實相無生 豈色心而能見”

32] ?宋高僧傳? 卷11, (大正藏50, p.772)

“(無)業言下豁然開悟 涕淚悲泣向大寂曰 本謂佛道長遠 勤苦曠劫方始得成 今日始知 法身實相本自具足 一切萬法從心所生 但有名字無有實者 大寂曰 如是如是 一切法性不生不滅 一切諸法本自空寂”

 

 

한편 ?宋高僧傳?의 기록에 의하면 석두의 답변은 지극히 簡速하다. 그 사상에는 僧肇의 영향이 엿보인다. 곧 만물을 會하여 자기로 삼는 점은 피차에 서로 일치하고 있다. 그의 저술로 ?參同契?와 ?草庵歌? 등이 있다. ?宗鏡錄? 卷98과 ?傳燈錄? 卷14에 의하면 석두는 행사와 마찬가지로 卽心是佛을 역설하였다. 또한 석두는 ?參同契?에 의하여 靈源과 支派의 回互와 不回互를 밝혔으며, 나아가서 南北兩宗의 조화를 도모하였다. 이것은 이후 曹洞宗의 주요한 敎義 가운데 하나인 五位의 기초가 되는 것으로서 달마의 二入과 四行이 서로간에 回互와 不回互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그대로 증명해 주는 좋은 사상적 증거이기도 하다.

 

百丈懷海의 사상으로는 ?古尊宿語錄?에 수록되어 있는 上堂語에 ?靈光이 獨輝하여 아득히 根塵을 벗어난다. 體露眞常하여 문자에 구속되지 않는다. 心性은 無染하여 본래 圓成하다. 단지 忘緣을 여의기만 하면 곧 그것이 如如佛이다?33] 라는 말에서 간략하게 그 宗要를 엿볼 수 있다.

대중에게 入道하는 돈오의 법요를 설함에 不著을 宗으로 삼고 無求를 心要로 삼았다. 南泉普願과 西堂智藏은 모두 馬祖道一의 법을 얻고 禪機가 縱橫하여 교화의 문을 크게 열어 종풍을 선양하는데 힘썼다.

특히 南泉은 不是心?不是佛?不是物의 三句를 提言하여 卽心卽佛의 병폐를 지적하였다. 趙州가 어느 날 ?어떤 것이 道입니까?라고 묻자 ?평상심이 곧 도이다?라고 답한 것은 특히 유명하다.

또한 黃檗希運의 중심사상은 本源淸淨한 一心이 곧 佛이라는 것이기 때문에 밖을 향하여 도를 구하지 않고 오로지 일심에 계합할 것을 설하는 데에 있다. 확실히 佛心을 悟修하여 無求無著하게 될 때 사람은 비로소 선에 철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백장과 남전과 황벽의 기본사상은 모두 특별히 구할 것이 없이 일상 평소의 마음을 지니고서 집착을 내지 말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 역시 달마의 四行 가운데 특히 일상생활의 수행을 강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無所求行과 稱法行에 일심으로 계합할 것을 강조하는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33] ?古尊宿語錄? 卷2, (卍續藏118, p.163上)

“靈光獨耀廻脫根塵 體露眞常不拘文字 心性無染本自圓成 但離妄緣卽如如佛”

 

 

Ⅳ. 二入四行과 五位

 

1. 曹洞五位

 

五位思想의 원류는 石頭希遷의 ?參同契?의 回互思想에서 찾아볼 수 있다. 石頭希遷은 ?參同契?에서 理?事 그리고 明?暗이라는 대립의 초극으로 승화하고 있다. 石頭는 心과 佛과 衆生과 菩提와 煩惱의 體는 같지만 이름만 다를 뿐이며, 靈妙한 마음의 體는 究竟圓滿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현상의 세계도 모두 자기 마음의 모습이라고 한다. ?傳燈錄?에서는 그의 종풍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의 법문은 先代부터 부처님께서 전해 주신 것으로서 선정과 정진을 논하지 않는다. 다만 부처님의 지견을 통달하면 곧 마음이 부처이다. 마음과 부처와 중생 그리고 보리와 번뇌는 명칭은 다르나 본체는 같다.

자기 마음의 신령한 체성은 斷常을 떠나 있어서 곧 성품은 더럽고 깨끗함이 없고, 담연하고 원만하여 성인과 범부가 같으며, 應함에 方所가 없어 心과 意와 識을 여의었다. 三界와 六道가 오직 마음에서 나타난 것이다. 그러니 어찌 물 속의 달과 거울 속의 그림자에 생멸이 있으랴. 그대들이 그것을 인식만 한다면 두루 갖추지 않은 바가 없는 것이다"34]

 

34] ?傳燈錄? 卷14, (大正藏51, p.309中-下)

“吾之法門先佛傳授 不論禪定精進 達佛之知見卽心卽佛 心佛衆生菩提煩惱名異體一

汝等當知 自己心靈體 離斷常性非垢淨 湛然圓滿凡聖濟洞 應用無方離心意識 三界六道唯自心現

水月鏡像豈有生滅 汝能知之無所不備”

 

 

?參同契?는 그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差別現象[參]과 平等一如[同]의 실제가 相卽圓融함을 말한 것이다. 여기에 나타난 相卽과 回互의 원리는 曹洞五位35]의 사상적인 기초가 되어 있다.

 

35] 曹洞五位라는 말은 조동종파에서 내세우는 수행의 실천원리를 다섯 가지 측면에서 파악한 것이다. 특히 그 기본원리는 가령 물과 파도에 비유하면 不回互는 물은 물이고 파도는 파도이다고 보는 입장이다. 곧 물과 파도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으로서 서로가 뒤섞이지 않고 각각이 존재하는 입장이다.

回互는 물과 파도가 각각 물과 파도만으로 존재하는것이 아니라 물이 곧 파도이고 파도가 곧 물이라는 입장이다. 물과 파도가 뒤섞여 있어 구분이 없다. 이와 같은 회호와 불회호의 입장의 관계를 正과 偏을 가지고 다섯 측면으로 수행의 원리를 파악한 것이다. 正은 원리를 偏은 현상을 상징한다. 그래서 正中偏은 원리속에서 현상이 드러나는 입장이고, 偏中正은 현상속에 원리가 작용하는 입장이며, 正中來는 순수한 원리만의 입장이고, 偏中至는 순수한 현상만의 입장이며, 兼中到는 원리와 현상이 상호간에 각각의 位를 지키면서 동시에 그 位를 고집하지 않고 한 차원 승화된 입장이다.

 

"신령스런 근원은 밝고 맑으며 枝末은 그윽하게 흐른다.

事에 집착하는 것은 본래 미혹이고 이치에 계합하더라도 그것은 깨침이 아니다.

육근의 일체경계는 회호도 하고 또 불회호도 한다.

회호하면 다시 涉하고 그렇지 않으면 제자리에 머문다. ···

밝음 속에는 본래 어둠이 있으니 어둠이라는 相으로 헤아리지 말라.

어둠 속에도 또한 본래 밝음이 있으므로 밝음이라는 相으로 찾으려 하지 말라.

밝음과 어둠의 관계는 마치 걸음걸이와 같아서 서로 앞뒤가 없다." 36]

 

36] ?參同契?, (?傳燈錄? 卷30, 大正藏51, p.459中. ?明覺禪師語錄? 卷4, 大正藏47, p.697上-中)

“靈源明皎潔 枝派暗流注

執事元是迷 契理亦非悟

門門一切境 回互不回互

回而更相涉 不爾依位住

 ··· ··· 暗合上中言 明明淸濁句 ··· ···

當明中有暗 勿以暗相遇

當暗中有明 勿以明明覩

明暗各相對 比如前後步”

 

靈源과 枝派?理와 事?本과 末?明과 暗 등이 각각 일체의 경계에서 回互와 不回互를 이룬다. 그러면서도 한 차원 높게 이원적인 대립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回互의 논리를 통하고 있다. 마치 그것은 걸음을 걸을 때의 왼발과 오른발처럼 서로 전후가 없이 앞선 듯 뒤선 듯 함께 진행해 나아간다. 이러한 원리가 그냥 논리에 그치지 않고 주체적으로 실천적인 계기로 나아갈 것을 요구한다. 이와 같은 石頭의 回互와 不回互의 실천논리는 그의 제자 藥山惟儼에게 전해져 簡潔直截한 一句에 의한 단적인 접화방법으로 나타나고 있다.37]

즉 藥山의 선풍은 좌선에 있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無思量의 좌선이 아니라 사량분별을 초월한 非思量의 입장에서 절대진리를 드러내고 있다. 또한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 간결하게 一句로 답변하고 있는 것도 바로 非思量의 입장으로 이끌어 들이려는 접화방법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바야흐로 당시의 禪界에 만연해 있던 敎義를 실천적인 입장에서 제자를 접화하려는 새로운 지도원리의 출현을 암시해 주고 있다.38]

석두와 약산으로 이어지는 사상적인 계보는 운암담성을 거쳐 동산양개에 이르러 그의 ?寶鏡三昧?에서 마침내 회호와 불회호의 원리가 완성된다. 그것이 소위 五位思想이다.

 

37] ?傳燈錄? 卷14, (大正藏51, p.312上-中)

38]당시 臨濟義玄의 喝?德山宣鑒의 棒?雲門文偃의 一字關으로 대표되는 선종의 독특한 지도원리도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따라서 ?仰宗의 圓相과 洞山良价의 五位 및 그에 대한 후학들의 五位에 대한 圖解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원류는 달마의 理入과 行入의 서로간의 回互的인 관점에서 이해하면 더욱 명확하다.

 

五位는 雲巖曇晟이 석두의 사상을 기본으로 하여 기초를 세운 뒤 洞山良价가 ?寶鏡三昧?에서 그 회호와 불회호의 원리를 밝히고 마침내 ?五位顯訣?에서 偏正五位의 교의를 완성시킨 조동종파의 철학적 실천적 원리이다. 그 다섯 가지에 대한 각각의 비유는 正과 偏의 다섯 가지 位相을 암시하는 바로서 ?寶鏡三昧? 내에서 가장 흔히 언급되고 있다. 正과 偏에서 正은 主觀?主體?理를, 그리고 偏은 客觀?客體?事를 상징하고 있다. 그래서 正을 黑圓(●)으로 나타내는 것에 상대하여 偏을 白圓(○)으로 나타내어 도시하기도 한다.

 

 

2. 二入四行과 五位의 관계

 

달마의 이입사행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理入은 모든 중생이 同一眞性을 구비하고 있다는 이치를 깊이 믿음으로서 깨달음을 얻는 입장이고, 行入은 理入을 깨달음의 원리로 파악하여 그 실천수행이라 간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달마선법에서 말하는 깨달음은 이치 따로 실천 따로의 구분이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달마의 壁觀은 面壁 그대로의 坐禪行爲가 바로 깨달음의 현성이다. 달마의 깨달음은 壁觀이라는 좌선수행 이외에 달리 그 결과로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달마는 인도에서 이미 깨달음을 완성하고 당시의 여섯 종파의 견해를 타파하였다.39] 그리고 불조의 혜명을 전승하기 위하여 중국에 건너와서 시절인연을 기다리면서 한 행위가 벽관이었다. 이 벽관은 달마가 수행이 부족해서 加行한 것이 아니라 이미 완성되어 있는 깨달음의 현성 그대로의 행위였다.

 

39]이것을 六宗對破라 하는데 ?傳燈錄? 卷3, (大正藏51, p.217中)에 의하면, 六宗이란 소위 (1) 有相宗 : 유물론으로 진리의 相인 實相을 말하는 종파. (2) 無相宗 : 一切를 부정하는 虛無論者의 禪定三昧에 투철한 종파. (3) 定慧宗 : 唯物論者의 바른 理智를 나타낸 종파. (4) 無得宗 : 회의론자의 진실한 입장에서 無得에 대한 깨달음을 인정하는 종파. (5) 寂靜宗 : 唯心論者의 禪宗의 입장에서 적정을 알도록 하는 종파. (6) 戒行宗 : 계행론자의 청정한 戒를 가르치는 종파 등을 말한다. 이것은 모두 外道를 바른 진실의 正法에 귀의하도록 한 달마의 正眼을 보여주고 있다.

 

달마에 있어서 理入은 이미 이입 그 자체로 깨달음의 현성이고, 行入은 행입 그 자체로 깨달음의 현성이었다. 그래서 굳이 理入을 통한 수행의 실천인 行入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行入의 원리를 실상적인 차원에서 보증받기 위한 理入이 아니었다. 이입은 그대로 이입이고 행입은 그대로 행입일 뿐이었다. 이것은 달마가 오직 벽관을 통한 불립문자만을 고집한 것이 아니라 그의 어록에서 극명하게 나타나 있는 藉敎悟宗의 입장에 잘 나타나 있다.

藉敎悟宗에서의 ?敎?는 곧 正法眼藏을 담고 있는 부처님의 一大示敎이고, ?宗?은 一大示敎에 함장되어 있는 正法眼藏이다. 그래서 一大示敎와 正法眼藏의 관계는 서로간에 不卽不離의 관계이다. 달리 回互?不回互의 상관성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서 理入을 一大示敎로 보고 行入을 正法眼藏으로 본다면 일대시교 자체에 본래부터 모든 깨달음의 원리와 깨달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고, 정법안장도 일대시교가 부처님에 의해서 설해지건 설해지지 않건 간에 관계없이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었다. 다만 그것을 자각하는 몫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 자각이 달마에게 있어서는 벽관의 좌선이었고, 혜가에게 있어서는 안심의 터득이었다. 그래서 이입과 행입의 관계는 곧 안심과 벽관의 관계처럼 안심 그대로 깨달음의 현성이고 벽관 그대로 깨달음의 완성을 나타낸다. 바로 이러한 관계가 이후 洞山과 曹山에 의하여 하나의 교의로써 완성된 五位의 기초원리이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이입과 행입을 각각 理와 行으로 표현하여 오위의 구조 속에 달마의 二入四行의 구조를 대비시켜 보고자 한다.

 

오위의 기본 구조가 正과 偏의 回互와 不回互의 相遮相關의 구조라는 것은 이미 언급한 바와 있다. 바로 이러한 구조속에 달마의 이입사행을 대입하여 달마사상의 구조를 살펴서 달마사상이 후대 오위의 기본적인 틀이 되었음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달마의 理行(이입과 사행)이 지니고 있는 성격이 선법의 실천적인 표현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입과 행입이 모두 수행자의 입장에서 깨달음을 자각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理行은 달마선법의 이론이면서 修證의 형태임을 감안한다면 洞上의 五位 또한 수행의 단계가 아니라 실천의 다섯 측면에서 이루어진 것40]과 극히 유사한 行態임을 알 수 있다. 우선 오위에서

第一位 正中偏은 正의 本體로부터 偏의 現象으로의 전개로서 正과 偏의 回互이다.

第二位 偏中正은 偏의 現象으로부터 正의 本體에로의 전개로서 偏과 正의 回互이다.

第三位 正中來는 순수한 正인 本體만의 전개로서 不回互이다.

第四位 偏中至는 순수한 偏인 現象만의 전개로서 不回互이다.

第五位 兼中到는 正과 偏인 本體와 現象을 잃지 않으면서 正과 偏을 초월하여 수행이 완성된 실천적 昇華이다.

 

40]拙論, ?洞山良价의 寶鏡三昧 考? (?未來佛敎의 向方?. 彌天 목정배 박사 화갑기념논총. 1997)

“?寶鏡三昧?는 그 명칭과 비유 속에 한결같이 五位思想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五比喩를 통하여 正과 偏이 五位의 行態로 전개되는 원리를 나타낸 것이다. ?寶鏡三昧?는 洞山良价의 다른 게송인 ?新豊吟???玄中銘???五位顯訣???綱要頌???功勳五位頌? 등과 함께 그의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사상을 이론적인 사상에 그친 것이 아니라 그 저변에는 반드시 수행의 실천적인 측면을 강조하였다. 단순한 언어유희나 깨침의 기쁨을 토로하는 데에 그치는 게송이라면 그것은 하나의 문학작품 내지 철학시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洞山의 게송이 당시에 哲學詩, 修道偈의 금과옥조로서 제자들에 대한 접화 및 수행의 지침으로 부촉된 바로 자신이 깨친 오묘한 禪理를 비유를 통하여 표현하면서 그것을 실천수행으로 나아가게 겨냥했다는 점에서 洞山思想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이것은 달마의 理行에 대해서도 적용시켜 볼 수가 있다. 달마는 불립문자 교외별전을 표방하는 선종의 기치를 그 이면적인 측면에서 파악하여 藉敎悟宗이라 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것은 곧 달마의 벽관이 단순한 좌선의 형태가 아니라 안심의 현성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藉敎悟宗의 敎가 入格의 敎가 아니라 出格의 敎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달마의 理行의 회호관계로 말하자면 理入은 그 속에 行이 완성되어 있는 理入이고, 行入은 그 속에 理가 현성되어 있는 行入임을 인정할 수 있다. 따라서 곧 壁觀은 理中行이고, 安心은 行中理의 구조가 된다. 그리고 理行의 不回互관계로 말하자면 벽관과 안심의 相關性은 벽관이 坐禪의 표현이라는 측면에서 벽관 그 자체인 理中來이고, 안심은 중생의 同一眞性의 내용이라는 측면에서 안심 그 자체인 行中至이다. 그러나 벽관은 안심을 내용으로 한 안심의 벽관이고, 안심은 벽관을 형식으로 한 벽관의 안심이다. 이와 같은 理行의 相遮相關 구조가 곧 回互?不回互의 관계인 兼中到로서 달마의 藉敎悟宗의 다른 표현이다.

 

이러한 구조는 달리 四行의 구체적인 내용에 잘 나타나 있다. 곧 第一位 理中行은 稱法行으로서 자성청정의 이치에 철저한 자리이타이고, 第二位 行中理는 報怨行으로서 현세의 행위 속에서 깨달음에 어긋나지 않는 도리를 깨우쳐 가는 것이며, 第三位 理中來는 隨緣行으로서 일체의 도리는 서로서로 無碍한 이법의 관계로 형성되어 있는 것이고, 第四位 行中至는 無所求行으로서 일체행이 無爲行으로 드러나 있는 것이며, 第五位 兼中到는 四行으로서 일체의 修證이 갈무리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第五位의 四行은 네 가지 실천적인 행위의 의미만이 아니라 달마선법의 理行을 모두 포함한 四行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다섯 계위는 수행 순서상의 階次的인 의미가 아니라 각각의 수행 속에 보살행이 현현되어 다섯 측면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에서 理와 行의 관계를 각각의 相離과 相卽의 狀態로 보아서는 어느 것도 온전한 성립을 이룰 수 없다. 왜냐하면 양자는 각각 그 자체의 本質上으로 보면 他者이면서 동시에 自己인 回互와 不回互의 관계에 서 있다. 다시 말해 서로 合一關係에 있으면서 동시에 肯定과 否定이라는 限定的인 관계이다. 바로 이 合一關係이면서 限定關係야말로 眞理를 顯現시키는 중요한 실천적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 理와 行의 관계에서 ‘中’이라는 용어는 理와 行에 대한 動的인 매개체이면서 전체를 具體化시켜가는 合一體의 역할을 하고 있다. 즉 動用中의 理를 限定하여 行으로 나아가게 하고, 現象의 行을 理에 合一시켜 回互와 不回互로 이끌어간다. 이리하여 ‘理와 行과 中’이라는 三者에 의하여 言語道斷 言詮不及의 同一眞性이라는 안심을 藉敎悟宗으로 象徵化하는 契機를 마련해 주고 있다.

 

 

Ⅴ. 결 어

 

후대 중국선종의 선사상의 근거는 모두 달마로부터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달마의 가르침은 그것이 역사적인 진위를 떠나서 달마에게 부여된 권위가 대단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이입사행은 가장 달마의 친설에 가까운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여기에서는 그 二入四行의 구조와 그 전승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二入四行은 二入과 行入이라는 이론적인 방법과 실천적인 방법이라는 구조로 파악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근본에 있어서 이입과 행입의 전개는 이입을 바탕으로 한 행입의 전개이면서 동시에 이입과 행입이 각각 완전한 하나의 修證形態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달마에게 있어서 그 사상적 성격과 형태는 安心法門과 壁觀이 보여주고 있듯이 안심은 달마가 逮得한 깨달음의 원리에서 파악한 것이라면 벽관은 그 깨달음의 행태적인 모습에서 파악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자의 구조는 이입을 통한 행입도 아니고 행입을 뒷받침하는 이입도 아니다. 그 관계는 이입은 이입대로 행입은 행입대로 완전한 修證의 형태로서 상호 회호와 불회호의 相遮相關에 서 있는 구조이다. 이것은 달마가 사용한 藉敎悟宗이라는 말의 의미에 대한 재평가를 필요로 한다. 달마의 제자에 대한 접화방식이 형태로는 소승적인 모습을 띠고 있지만 달마가 추구한 것은 유루적인 복덕 내지 수행의 점진적인 방식이 아니었다. 오히려 무루공덕을 강조한 본각적인 입장에 서 있었기 때문에 四行의 원리로서 理入에 접근한 것이 아니라 이입의 행위로서 사행에 접근해 나아갔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이입과 행입이라는 방법은 아직 선법이 성숙하지 못한 중국에 와서 달마가 轉迷開悟케 하는 방편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입과 행입을 통해서 달마가 진정 말하고자 했던 것은 안심과 벽관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혜가는 이것을 터득하여 달마로부터 嗣法한 제자가 된 것이다.

 

이러한 이입과 행입의 구조는 이후 초기선종사상의 기본적인 토대가 되었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나아가서 조사선의 접화방식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曹洞宗의 기본적 교의인 오위의 구조적인 토대를 제공하였다. 따라서 역으로 달마의 이입과 행입의 성격과 형태를 살펴보는데 있어서 후대의 五位의 구조를 배대한 결과 理入과 行入의 관계는 달마가 전하려 했던 般若空觀에 근거한 大乘壁觀의 실천적인 형태가 잘 드러날 수 있었다. 곧 이입과 행입의 관계는 달마가 터득한 깨달음의 구조 곧 안심과 벽관의 입장을 현실 속에서 네 가지 행위의 각각으로 드러내려 했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不立文字와 敎外別傳의 出格的 형태인 藉敎悟宗이라는 의미를 통하여 이입은 그냥 이입이 아니라 행입과의 兼中到의 관계 속에서 보다 잘 표현될 수 있었다.

 

이 이입과 행입의 구조는 선종의 수증방식에 있어서 이입과 행입의 어떤 입장을 강조하는가에 따라서 때로는 看話禪으로 때로는 ?照禪으로 등장하는 遠流이기도 하다. 해동에 전래된 선사상에 있어서 소위 선종의 종지로서 不立文字 敎外別傳 直旨人心 見性成佛이라는 입장은 결코 단순한 敎의 부정 내지 배제가 아니었다. 역대로 언설문자를 구사하지 않은 선사는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 문자에 顚倒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言詮의 妙를 터득했기 때문이다. 그 言詮의 妙란 다름 아닌 언설과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 언설에 몰입하지도 않고 초탈하지도 않은 回互?不回互의 관계를 터득한 결과였다. 그래서 소위 선종의 종지라고 표방하는 것은 반드시 敎를 통하여 敎를 타고 넘은 불립문자이지 않으면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 敎라는 入格을 거친 불립문자의 出格이어야지, 그렇지 않은 直指人心이란 無明行에 떨어지기 쉽상이다. 달마는 바로 이와 같은 선법의 맹점을 타파하기 위한 방법으로 理入과 行入을 통한 安心과 壁觀을 藉敎悟宗으로 회통한 것이다.

 

 

 

 

 

대각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