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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두선(一指頭禪) .기관선(機關禪) / 윤창화

경호... 2012. 12. 5. 23:21

22. 일지두선(一指頭禪)

 

구지선사가 손가락 하나 세운데서 유래

이 한 손가락은 진여자성과 불이를 뜻함

 

구지선사(俱?禪師)는 누가 “무엇이 부처인가” 또는 ‘본래면목’에 대하여 물으면 한 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그의 한 손가락은 번뇌 망념을 차단하여 본연의 자기 모습, 그리고 불성을 보게 하는 손가락이다.


이와 같이 구지화상은 손가락 하나로 깨달음을 성취하고자 하는 수행자들을 지도했는데, 이것을 일지두선(一指頭禪)이라고 한다. ‘구지수지(俱?竪指, 구지선사가 손가락을 세우다)’ ‘구지일지(俱?一指, 구지선사의 한 손가락)’라고도 한다.


일지두선과 구지선사에 대해서는 선종사서(史書)인 ‘전등록’ 11권과 ‘벽암록’, ‘무문관’, ‘종용록’, ‘선문염송’(552칙) 등 이름 있는 공안집 대부분에 수록되어 있다.

‘전등록’과 원오극근의 ‘벽암록’ 19칙에 있는 평창을 바탕으로 그 전말을 소개하고자 한다.


구지화상이 처음 암자에 머물 때였다. 어느 날 실제(實際)라는 비구니가 암자에 이르러 곧바로 구지화상 처소에 와서는 삿갓도 벗지 않은 채 주장자를 흔들면서, 좌선하고 있는 선상(禪床)을 세 번 돌고 나서 말하였다.

“무엇이 본래면목인지 한마디 일러보시오. 그러면 삿갓을 벗겠소.”

그렇게 세 번을 반복해도 구지화상은 한마디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비구니는 그대로 가려고 했다. 이때 구지화상이 말했다.

“이미 날이 어두웠는데 지금 어떻게 가겠소. 하룻밤 묵어가시지요.”

비구니가 다시 구지화상을 향하여 말했다.

“한마디 일러보시오. 무엇이 본래면목인지? 그러면 묵어가겠소.”

그러나 구지화상은 여전히 한마디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


결국 비구니는 암자를 떠났는데, 비구니가 떠난 다음 구지화상이 말하였다.

“내 비록 대장부 모양을 하고 있으나 장부의 기백이 전혀 없도다.”

이렇게 탄식하고는 제방 선원에 선지식을 참방하고자 암자를 떠나려했다. 그런데 그날 밤 산신이 꿈에 나타나서 말하였다.

“절대 이 산을 떠나지 마시오. 머지않아 대보살이 와서 화상을 위하여 법을 설해주실 것이오.”


다음날 과연 천룡(天龍)선사가 암자에 이르자, 구지화상은 예를 갖추고는 전날의 일을 모두 이야기했다. 천룡(天龍)선사는 아무 말 없이 잠시 있더니 느닷없이 한 손가락을 세워서 구지에게 보였다. 그 순간 구지화상은 활연히 깨달았다. 그 후 구지선사는 수행자들이 도(道)를 물으러 찾아오면 오직 한 손가락을 들어 보였을 뿐, 다른 가르침은 없었다.


구지화상이 부재중일 때 사람들이 찾아와서 구지화상의 법에 대하여 물으면 시자(侍者)인 동자승은 얼른 한 손가락을 세워서 흉내를 내자 구지화상은 그 손가락을 잘라 버렸다고 한다.

입적에 즈음하여 구지화상은 대중들에게 “내가 천룡선사로부터 일지두선을 터득한 뒤로 일생동안 써도 다 쓰지 못했다”라는 말을 남기고 입적했다고 한다.


실제(實際)라는 비구니는 대단한 기백을 지녔다. 구지화상의 경지를 시험해보려고 짐짓 무례하게 삿갓도 벗지 않은 채 행동한 것인데, 선지(禪旨)가 없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 경지와 기백은 시원찮은 비구도 엄두 못 낼 일이다. 두문불출, 쭈그리고 앉아서 본래면목에 대하여 참구했으므로 한마디 말해보라는 것이다. 이 사건 이후 일지두선은 중국 천하에 유명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일지두선의 스토리인데 구지화상의 손가락은 단순한 손가락이 아니다.

구지선사의 한 손가락(一指)은 진여자성, 곧 유마거사가 말하는 불이(不二)를 뜻한다. 하나(一)를 뜻하고, 무분별, 만법일여의 세계를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구지일지의 일지두선에 대하여 원오극근은 다음과 같이 평한다. “달마조사의 서래의(西來意)를 갚았네. 구지선사의 일지두(一指頭). 노대종사(老大宗師)가 손가락을 세웠네. 일평생 쓸 수 있는 가장 뛰어난 선풍이네”라고 극찬하였다.

 

 

 

23. 기관선(機關禪)

 

공안이나 화두를 기관이라고 말하며

기관 참구해 깨달음 얻는 게 기관선

 

‘기관(機關)’, ‘기관선(機關禪)’이란 스승이나 방장이 수행자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 각자 근기에 맞게 그때그때 제시하는 문제나 과제 혹은 투과(透過)해 보라고 내 놓는 관문을 뜻한다.

즉 화두나 공안(公案)을 ‘기관’이라고 하고, 기관(공안)을 참구하여 깨달음을 얻는 선풍(禪風)을 ‘기관선’이라고 한다. 공안선(公案禪), 간화선(看話禪)이 여기에 속한다.


화두나 공안참구를 ‘기관(機關)’, ‘기관선’이라고 하는 까닭은 뭘까?

인형사가 수십 가닥의 실로 만든 장치나 기계를 이용하여 인형을 조종하는 것처럼 어떤 물체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나 핵심적인 장치 혹은 중요한 기능을 ‘기관’이라고 한다.


선불교에서 말하는 기관의 고전적인 뜻도 이와 같아서 목인(木人) 즉 나무(木) 인형을 조종하고 통제하는 장치, 또는 그 기능을 가리킨다. 간화선, 공안선에서 참선자로 하여금 미혹으로부터 벗어나 깨닫게 하는 중요한 역할과 기능을 하는 것은 화두와 공안이다. 깨달음을 성취하는데 있어서 화두와 공안의 기능과 역할이 기관과 같기 때문에 간화선, 공안선을 기관선이라고 하는 것이다.


선어록에는 허수아비를 가리키는 의미로 ‘기관목인(機關木人)’이라고 하는 말이 종종 나온다. ‘기관의 조종에 의하여 움직이는 나무로 만든 인형(木人形)’이라는 뜻인데, 허수아비나 꼭두각시, 목(木)인형은 기관에 의하여 움직일 뿐, 스스로는 움직이거나 묘기를 부릴 수 없다. 그와 같이 우리 인간도 지수화풍 4대와 색수상행식의 오온의 가(假)화합으로 이루어진 존재일 뿐 그 속에는 주인공이나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인(木人)이나 허수아비를 ‘본래의 자기’라고 착각하지 말고 그 존재를 움직이는 실제적인 존재 즉 본래면목, 주인공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송고(頌古)의 대가 설두중현(雪竇重顯, 980~1052)은 공안 가운데서도 방거사(龐居士, ?∼808)의 공안(기관)을 매우 높이 평하고 있다. ‘벽암록’ 42칙 방거사 호설편편(龐居士 好雪片片) 공안이다.


방거사가 약산선사를 방문하여 여러 날 선문답을 나누었다. 떠나기 위하여 하직 인사를 드리자 약산선사는 못내 아쉬워 10여명의 납자로 하여금 산문 밖까지 배웅하게 했다. 산문에 이르렀을 때 마침 하늘에서 눈송이가 펄펄 내리고 있었다. 방거사가 말했다.

“멋진 눈이로다. 송이 송이마다 다른 곳에 떨어지지 않네(好雪片片 不落別處).”라고 하자, 배웅하러 나온 납자들이 동시에 물었다.

“어느 곳에 떨어집니까.”

방거사가 손바닥을 한번 ‘탁’ 치자 납자들이 말했다.

“거사는 지나친 행동을 하지 마시오” 방거사가 말했다.

“그대들이 이 정도의 안목을 가지고 선객이라고 한다면 훗날 임종시에 염라대왕이 용서해 주지 않을 것이오.”


방거사가 마침 내리는 눈을 보고 “호설편편 불낙별처”라고 한 것은 법이자연(法爾自然)함을 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곳에 떨어집니까.”라고 묻기보다는 ‘낙낙진여(落落眞如)’ 등 그에 상응하는 답을 했어야 하는데, 모두들 본분사를 망각하고 순진하게 물었으니 염라대왕이 녹록하게 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설두중현은 다음과 같이 평했다. “방거사의 기관(공안)은 도무지 포착할 수가 없네. 천상 인간도 모르리. 눈 속 귀 속이 모두 깨끗하니, 벽안의 달마도 판별하기 어려우리”라고 하였다.

화두나 공안은 깨달음의 빗장을 열게 하는 유일한 열쇠이다. 이걸 수행자들에게 제시하여 깨닫게 하는 선풍(禪風, 지도방법)이 기관선이다. 

 

 

윤창화

 

/ 법보신문

 

 

 

碧巖錄

[第042則]握雪團打 눈덩이로 쳤어야.

 

[垂示]

垂示云.

單提獨弄帶. 水拖泥

敲唱俱行. 銀山鐵壁.

擬議則??前見鬼. 尋思則黑山下打坐.

明明?日麗天. 颯颯淸風?地.

且道古人還有?訛處?. 試擧看.

 

[수시]

혼자서 제창하고 홀로 희롱하여도 흙탕물을 끼얹는 것이요,

북치고 노래하기를 혼자서 모두 하더라도 은산철벽이다.

이리저리 궁리했다가는 해골 앞에서 귀신을 볼 것이며, 찾으며 생각하면 캄캄한 산 아래 떨어지리라.

밝고 빛나는 태양은 하늘에 솟아 있고, 소슬한 맑은 바람은 온 누리에 가득하다.

말해 보아라, 옛사람에게도 잘못된 곳이 있었는가를...

 

 

[本則]

擧. 龐居士辭藥山. 山命十人禪客. 相送至門首.

居士指空中雪云.

好雪片片不落別處.

時有全禪客云.

落在什?處.

士打一掌. 全云.

居士也不得草草.

士云. 汝恁?稱禪客. 閻老子未放汝在.

全云. 居士作?生.

士又打一掌. 云眼見如盲. 口說如啞.

雪竇別云. 初問處但握雪團便打.

 

[본칙]

방거사가 약산스님을 하직하자, 약산이 열 명의 선객에게 문 앞까지 전송하도록 하였다.

거사는 허공에 날리는 눈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잘도 내린다. 송이송이 딴 곳으로 떨어지지 않는구나.”

그러자 곁에 있던 선객이 말하였다.

어느 곳으로 떨어집니까?”

거사가 따귀를 한 차례 치자 선객들이 말하였다.

"거사께서는 어찌 거친 행동을 하십니까.”

그대가 그래 가지고서도 선객이라 한다면 염라대왕이 용서해 주지 않을 것이다.”

"거사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거사가 또다시 따귀를 친 후에 말하였다.

"눈은 떴어도 장님 같으며 입을 벌려도 벙어리 같다.”

(설두스님은 다르게 논평하였다.처음 물었을 때 눈덩이를 뭉쳐서 바로 쳤어야지.”)

 

 

[頌]

雪團打雪團打.

龐老機關沒可把.

天上人間不自知.

眼裏耳裏絶瀟灑.

瀟灑絶.

碧眼胡僧難辨別.

 

 

[송]

눈덩이로 쳐라, 눈덩이로 쳐라

방노인의 기관은 잡을 수 없어라

천상, 인간도 전혀 모르나니

눈 속, 귓속까지 끊긴 듯 맑고 시원해라

씻은 듯 끊김이여,

파란 눈 달마라도 알아채기 어려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