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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쑥 너의 기억이 / 이정하

경호... 2012. 7. 1. 16:27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보다 먼저 당신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한다.

당신 자신은 불행한데 다른 누구를 위해 산다는 것은 참다운 희생이 아니다.

진정 자기 본위로 당신의 행복이 다른 사람에게 전파될 수 있도록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라.

그것이 결국은 당신 자신을 위하는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행복이란 큰 바다와 같다.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다함께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당신부터 먼저 행복해야 한다.

 

.

 

어두워야 눈을 뜬다.
혼자일 때, 때로 그 밝은 태양은 내게 얼마나 참혹한가.
나는 외로웠다.
어쩌다 외로운 게 아니라 한순간도 빠짐없이 외로웠다.
나는 외로웠다.
바람속에 온몸을 맡긴 한 잎 나뭇잎.
때로 무참히 흔들릴 때, 구겨지고 찢겨지는 아픔보다 나를 더 못 견디게 하는 것은

나 혼자만 이렇게 흔들리고 있다는 외로움이었다.
 


 
같이 걸어 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것처럼 우리 삶에 따스한 것은 없다.
돌이켜 보면, 나는 늘 혼자였다.
사람들은 많았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언제나 혼자였다.
기대고 싶을 때 그의 어깨는 비어 있지 않았으며, 잡아 줄 손이 절실히 필요했을 때

그는 저만치서 다른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래, 산다는 건 결국 내 곁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다.
비틀거리고 더듬거리더라도 혼자서 걸어가야 하는 길임을.
들어선 이상 멈출 수도 가지 않을 수도 없는 그 외길…….

 
날마다 확인했다. 텅 빈 나의 주위를.
내가 외로움을 느낄 때 주변의 사물들은 더 선명히 드러났다.
날마다 외로웠다.

외롭지 않은 적이 없었다.
사람들 속을 걸어가고 있을 때 나는 더 외로웠다.
나 혼자서 어딜 가고 있는가.
무얼 그리 부여잡으려고 나는 빈 허공 중 손을 내밀고 있는가.
있는 힘을 다해 껴안아보면 어김없이 외로움 뿐이었다.

 . 

 

그대여, 아는가.
네가 있어 내가 외롭다는 것을.
네가 있었기에 나의 외로움은 훨씬 구체적인 모습으로 절박해진다는 것을.
이제 곧, 할 말을 못하고 머뭇거리는 수줍은 소년처럼 어둠은 밀려갈 것이다.
그러면 나는 사라져가는 어둠을 아쉬워해야 할까.
아니면 빨리 가라고 등을 떠밀어야 하는 걸까.
왜 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 않는 걸까.
 

.. 
 

나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참 힘들다
사랑한다는 그 말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사랑해, 하는 말에 싸늘하게 피가 식어버리는 것만 같아서,
그러면서도 간지러운 그 단어에 웃음짓다가,
다시금 마음이 무거워져서 당신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사랑은 뭐야? 라고-.
그냥 좋고 좋고 좋은 거, 많이 좋은 거,라며 맑게 웃는 당신 웃음에,
그럼 나도 당신을 사랑하나봐, 하며 꼭 끌어안고 마주 웃었지만,
역시 나는 아직 사랑이 힘들다
지난 기억에 힘든 것이 아니라,
내 소중한 당신이 '지난 기억'이 될까 무서워서,
그 무서움을 벌써부터 견디지 못하는거다
바보같다고 웃으며 안아줄 당신이라서,
차마 말하지 못하고,
그저 가슴 떨리는 이 설렘에 행복하게 웃고만 있지만,
가끔씩 나는 정말로 무섭다
혼자 잠들지 못하고 있는 이런 밤에는 특히나 더-.
당신을 나중에 이렇게 가슴에 묻고 살아야 할까봐
당신이 없는 내가, 과연 살 수 있을까?
이토록 가슴 떨리고 생각만 해도 너무 행복해서 눈물 날 것 같이 아리는 이 감정이,
사라져버릴까?

 

.. 

 

 

‘이별은 한 번이었는데 그리움은 왜 그렇게 숱한 것인지.

잊지 못한다는 것은 잊을 수 없을 때까지의 병이다.

그 병엔 약도 없다. 오로지 가슴이 문드러지는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가기도 한다.

알약 한 알로 나을 수 있는 병이라면,

주사 한 대로 나을 수 있는 병이라면,

세상은 아마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잊어야 한다는 것,

냉정하게 말하면 그것은 그 사람과 내가 다시 만날 가능성이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그 사람이 다시 나를 사랑할 가능성이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혹시나, 하고 기다려서 될 일이 아니다.

그 명백한 결론을 왜 인정하려 들지 않을까.‘

 

..

 

 

지하철 2호선을 타면 네가 있는 곳을 지나친다.
너와 함께 보던 영화관도 지나치고, 네가 즐겨 가던 커피숍도 지나치고,
네가 기웃거리던 옷가게도 지나치고, 값은 싸면서도 푸짐했던 갈비집도 지나친다.
 
너를 잊겠다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는데
이렇게 너에 대한 기억은 복병처럼 불쑥 튀어나와
내가 어디에 있건 무엇을 하건 너를 떠올리게 해 한참을 서성거리게 한다.
 
그렇다고 내가 지하철을 타지 않을 수 없지 않느냐.
너에 대한 기억의 빌미는 세상 도처에 깔려 있는데 그걸 다 피해 다닐 순 없지 않느냐.
불쑥 너의 기억이 떠오르면 나는 세상 모든 것이 다 원망스럽다.
 


가끔 나는 생각해본다.
어쩌면 나는, 떠나보낼 때 너를 가장 사랑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이별은 내게 있어 사랑의 절정이었다.
가장 사랑하는 그 순간, 나는 너를 놓았으므로.
내 사랑이 가장 부풀어 오르던 그 순간, 나는 외려 풍선처럼 터져버렸다.
 
잘 가라, 나는 이제 그만 살게.
손을 흔들어 주진 못했지만 그 순간, 너를 향한 마음이 절정이었음을.
절정이 지난 다음엔 모든 게 다 내리막이었다.

 

..

 

 

잘 지낸다고 했다. 사는 게 다 그런거라고, 특별한 일 없다고,

그대는 또 내게 잘 지내라고 했다. 그러겠노라고

덤덤히 대답은 했지만 나는 곧 쓴웃음을 지었다.

당신이야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내가 어찌 당신없이 잘 지내겠느냐고.

 

..

 

 

감히 말하면, 세상의 모든 종교는 우리 인간을 더욱 현실에 충실 하게 하자는데 그 목적이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절대자를 향한 가장 간절한 기도가 아닐까?

밀레의 <만종>, 그 그림을 보고 있으면 참으로 그윽한 감동으로 내 가슴은 따뜻해진다.

누가 그려도 쉽게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단순한 구도의 그림 한 폭이

이처럼 나에게 진한 감동의 폭으로 다가오는 것은 무엇일까?

 

해질 무렵, 멀리 교회에서 들려오는 종소리에 기도하는 부부의 모습,

그들의 손에는 일하다 만 농기구들이 그대로 들려 있다.

오늘 하루도 성실하게 일할 수 있게 해 주셨음에 감사하는 그 고개숙임에서 나는 위대한 소시민의 삶을

절감한다. 이른 아침부터 하루 종일 거친 밭일을 해왔으나 한마디 불평도 없고 오히려 감사해 하는

부부의 모습. 그런 부부였기에 하루를 마감하는 교회의 종소리는 신(神)의 포근한 음성이었을 것이다.

땅을 파서 곡식을 심고, 또 그 곡식을 키우고 거두면서 온몸으로 기도한 그들, 신이 축복을 내린다면

바로 그런 사람들이 아닐까?

 

왜냐하면 그 부부는 하루 종일 교회에서 찬양한 사람보다 더 큰 찬양을 신에게 올렸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에 충실한 그것이 신을 향한 가장 큰 찬양이기에.

그런 그림이기에 감동이 배어나오지 않을 수 없다.

 

..

 

 

'보물찾기'를 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거창하고 어마어마한 곳에 숨겨져 있으리라 생각했던 보물은

사실 근처 바위 틈새나 나무 구멍 같은 평범한 곳에 숨겨 있다는 것을.

깊숙한 곳에만 자꾸 신경을 쓰다 보면 정작 눈앞에 있는 보물은 볼 수 없다는 것을.

우리네 삶도 그러하지 않을까.

'세상'이라는 밑그림 속에 숨어 있는 무수한 보물들.

먼 곳을 기웃거리지 말고 자기 주변부터 살펴보자.

소중하고 훌륭한 보물은 언제나 가장 가까이에 있는 법이다.

 

..

 

 

이 세상에 완전함이란 없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좀 모자라고 좀 덜 다듬어진 채로 세상에 태어나기에 우리는 그 완전함을 향해 전력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갖추면 인간은 "오만" 이라는 죄를 짓기 십상이다

잘생긴 사람보다 어딘가 좀 못생긴 듯한 사람을 만나면 왠지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마치 빈터를 만난 것 같은 반가움 어딘가 모자라는 구석이 있음으로 해서 모자라는 점을 서로 감싸주고

보완해주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할 일이다

 

..

 

 

무엇이든 넘쳐나는 세상이다.

많은 장식품으로 현란하게 방을 꾸민 사람들.

온갖 물건들이 쌓이고 쌓여 우리가 머물 공간은 정작 비좁기만 하다.

그럴수록 우리 영혼의 방은 텅 비어 있게 마련이다.

 

19세기 후반, 평생을 극심한 가난 속에서 보낸 영국의 소설가 조지깃싱은 어느 날 고서점에서 꼭 읽고

싶은 한 권의 시집을 발견했다.가격은 6펜스, 비교적 헐값이었으나 그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돈은 그가 지니고 있던 전부였으므로.

그 책을 사고 나면 그는 꼼짝없이 며칠을 굶을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그 책을

사버리고 만다.며칠을 굶을지언정 마음에 드는 책을 놓치고 싶진 않았던 것이다.

그는 훗날 그때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돈이란 나에게는 마음을 번거롭게 할 만한 것이 못된다.

나에게는 맛있는 음식보다도 욕심이 더 나는 것이 바로 책이다.

물론 도서관에 가면 볼 수도 있으나 그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책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비록 다 해진 책일지라도 내 책을 읽는 것이 남의 책을 읽는 것보다 훨씬 좋다."

 

책을 좋아하는 마음은 곧 글을 아끼는 마음이다.

시간과 돈을 아껴서 사정이 허락할 때마다 책을 사고, 또 그 책을 자기만의 책장에 곶아두고 틈틈이

읽을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은 분명 누구보다도 마음이 풍요로운 사람일 것이다.

물론 지식의 양과 가지고 있는 책의 양이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권 한 권 사 모은 책이

쌓여갈 때 그것은 또 얼마나 가슴 뿌듯한 일이겠는가,

그것이 바로 우리 영혼의 방을 채워가는 길이기에.

 

 

 

 

 

잘 가라, 손을 흔들어 주진 못했지만
그 순간, 너를 향한 마음이 절정이었음을…

 

“그런 날이 있다.

아무도 보지 않는 데서 넋두리도 없이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해서 정갈하게 울고 싶은 때가.

그리하여 눈물에 흠씬 젖은 눈과 겸허한 가슴을 갖고 싶다.

그렇게 흘린 눈물은 나를 열어가는 정직한 자백과 뉘우침이 될 것이다.

그것은 가난하지만 새롭게 출발할 것을 다짐하는 내 기도의 첫 구절이 되리라.”

 

만지면 베일 듯 여리고 깊은 감수성으로 수백만 독자들을 뒤척이게 했던 이정하 시인이 오랜 침묵 끝에

포토에세이[불쑥 너의 기억이]를 들고 찾아왔다.

이 책에서 그는 이전보다 한층 섬세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볼펜 똥을 닦아가며 쓰던 첫사랑의 편지처럼, 정중히 눌러쓴 이야기들을 조심스럽게 펼쳐 보인다. 외롭고 슬프지만 우리가 왜 사랑을 외면할 수 없는지, 살아가는 내내 우리가 가슴속에 소중히 간직해야 할 것이 진정 무엇인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