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唯識講義

『唯識』- 아름답고 추한 것이 마음에 (본문, 강의)

경호... 2012. 1. 17. 01:18

- 宗鏡錄의 冥樞會要의 唯識부분 - (원순 번역)


    아름답고 추한 것이 마음에 (본문)

    65-4-221
    問 聖人見實相之妙色 惑情還見否.
    答 唯見不實 不見不實之實.
    如見杌爲賊 不見杌也.
    又 如一眞空理 見成二諦.
    若世人知者 名爲世俗諦 出世人知 名第一義.
    其所知處 未必懸殊 其所知境 各從心現.
    如瞖目見明珠有纇. 淨眼觀螢淨無瑕.
    美惡唯自見殊 珠體本末如一.

    : 성인은 실상의 미묘한 색을 보는데,
    미혹한 중생도 볼 수가 있는 것입니까.

    : 중생은 오로지 진실하지 않은 것을 볼 것이며,
    진실하지 않은 것의 실상을 보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말뚝을 도적으로 삼고, 말뚝을 보지 않는 것과 같다.
    또 이것은 하나의 참된 공(空)의 이치에서 두 가지 이치를 만들어 보는 것과 같다.
    이것으로 세간 사람이 아는 것은 세속의 이치라 하나,
    출세간에서 아는 것은 제일의 이치라 한다.
    알아지는 곳에 반드시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나,
    알아지는 경계가 각자의 마음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은 백태가 낀 눈으로 맑은 구슬을 보면 흠이 나거나 어그러진 것과 같다.
    깨끗한 눈으로 보면 영롱하고 깨끗하여 티가 없는 것이다.
    아름답고 추한 것이 오직 스스로 보는 데에 따라서 달라지나,
    구슬 자체의 바탕은 처음부터 끝까지 맑고 깨끗한 하나의 모습이다.



    (강의)

    아름답고 추한 것은 마음에 있다는 말인데, 봅시다.

    묻습니다.
    : 성인은 실상의 미묘한 색을 보는데,
    미혹한 중생도 볼 수가 있는 것입니까.


    미묘한 색,
    물질의 본질은 지혜라고 「대승기신론」에서 얘기 합니다.

    답을 합니다.
    : 중생은 오로지 진실하지 않은 것을 볼 것이며,
    진실하지 않은 것의 실상을 보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말뚝을 도적으로 삼고, 말뚝을 보지 않는 것과 같다.
    또 이것은 하나의 참된 공(空)의 이치에서 두 가지 이치를 만들어 보는 것과 같다.


    진실하지 않은 실상을 보는 것이 중생이에요.
    그 말은 말뚝을 도적으로 착각해서 보는 거예요.
    새끼줄을 뱀으로 보는 것과 같은 겁니다.

    그리고 ‘참된 공(空)의 이치에서 두 가지 이치를 만들어 본다’ 이랬는데,
    이것도 마찬가지로 텅 비어 있는데
    무엇인가 있다고 생각하거나 없다고 생각해서 유무를 만들어 보는 거죠.

    이것으로 세간 사람이 아는 것은 세속의 이치라 하나,
    출세간에서 아는 것은 제일의 이치라 한다.
    알아지는 곳에 반드시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나,
    알아지는 경계가 각자의 마음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수행을 하면 경계가 나타납니다.
    자기가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한 경험을 근거로
    사물을 인식하기 때문에 왜곡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수행을 하게 되면 드러나는 겁니다.

    ‘이것으로 세간 사람이 아는 것은 세속의 이치라 하나,
    출세간에서 아는 것은 제일의 이치라 한다.’
    공의 이치에도 세간 사람이 보는 공과
    출세간 사람이 보는 공, 두 가지 이치다 그랬죠.

    ‘알아지는 곳에 반드시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나,
    알아지는 경계가 각자의 마음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대상은 똑같지만 그 대상을 보고 마음에 나타나는 게 다르다 이거죠.

    이것은 백태가 낀 눈으로 맑은 구슬을 보면 흠이 나거나 어그러진 것과 같다.
    깨끗한 눈으로 보면 영롱하고 깨끗하여 티가 없는 것이다.
    아름답고 추한 것이 오직 스스로 보는 데에 따라서 달라지나,
    구슬 자체의 바탕은 처음부터 끝까지 맑고 깨끗한 하나의 모습이다.


    ‘이것은 백태가 낀 눈으로 맑은 구슬을 보면 흠이 나거나 어그러진 것과 같다.
    깨끗한 눈으로 보면 영롱하고 깨끗하여 티가 없는 것이다.’
    때 묻은 안경을 끼고 사물을 보면 잘 안 보이죠.
    그럴 때는 닦아서 보면 잘 보이듯이 마찬가지로 마음도 닦아야 되는 거죠.

    ‘아름답고 추한 것이 오직 스스로 보는 데에 따라서 달라지나,
    구슬 자체의 바탕은 처음부터 끝까지 맑고 깨끗한 하나의 모습이다.’
    얘기 하자면, 우리 부처의 성품은 맑고 투명한 수정과 같은 것인데,
    보고 듣고 한 것들이 덮어 씌워져 있기 때문에 제대로 비출 리가 없죠.
    그래서 사물을 보더라도 마치 백태가 낀 것 같이 보니까 제대로 못 보는 거죠.
    아름답고 추한 것이 마음에 있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하는 얘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