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唯識講義

『唯識』- 마음으로 사물의 이치를 (본문, 강의)

경호... 2012. 1. 17. 01:10

  - 宗鏡錄의 冥樞會要의 唯識부분 - (원순 번역)


    마음으로 사물의 이치를

    (본문)


    62-3-212
    非唯佛敎以心爲宗 三敎所歸 皆云反己爲上. 如孔子家語 衛靈公問於孔子曰.
    有語寡人爲國家者 謹之於廟堂之上 則政治矣. 何如.
    子曰 其可也. 愛人者 則人愛之 惡人者 則人惡之.
    所謂 不出圜堵之室 而知天下者 知反己之謂也.
    是知 若匹己以徇物 則無事而不歸. 自然取捨忘懷 美惡齊旨.

    오직 불교에서만 마음을 종지로 삼는 것이 아니다.
    불교와 유교와 도교의 세 가지의 가르침이
    돌아가고자 하는 곳이 모두 자기를 돌이키는 것을 가장 으뜸으로 삼는다고 한다.
    이것은 『공자가어(孔子家語)』에서 위령공이 공자에게 질문한 내용과 같다.

    영공 : 제가 국가를 위한다는 것은
    나라의 일을 논하는 자리에서 몸과 마음을 삼가하는 게
    나라를 바르게 다스리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공자님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공자 : 옳은 말씀입니다.
    백성을 사랑하는 자는 백성이 그를 사랑하고,
    백성을 미워하는 자는 백성이 그를 미워합니다.
    이른바 담으로 둘러싸인 방을 벗어나지 않고도 천하를 안다는 것은
    자기를 돌이켜 아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알아야 할 것이니 자기의 마음으로 사물의 이치를 쫓는다면
    어떠한 일도 제 자리로 돌아가지 않는 게 없다.
    자연히 취하고 버리는 마음이 사라져서,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종지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강의)

    여러분들은 마음이 하나로 통일 되어 있어서
    사물도 마음이 만들었다니까 이해가 잘 안되실 텐데,
    마음으로 사물의 이치를 논한다면
    진실한 무엇인가 와 닿는 게 있지 않겠어요?

    오직 불교에서만 마음을 종지로 삼는 것이 아니다.
    불교와 유교와 도교의 세 가지의 가르침이
    돌아가고자 하는 곳이 모두 자기를 돌이키는 것을 가장 으뜸으로 삼는다고 한다.
    이것은 『공자가어(孔子家語)』에서 위령공이 공자에게 질문한 내용과 같다.

    영공 : 제가 국가를 위한다는 것은
    나라의 일을 논하는 자리에서 몸과 마음을 삼가하는 게
    나라를 바르게 다스리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공자님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몸과 마음을 삼간다'는 것은
    마음을 바깥에 빼앗기는 게 아니고 안으로 돌이키는 거죠.

    공자 : 옳은 말씀입니다.
    백성을 사랑하는 자는 백성이 그를 사랑하고,
    백성을 미워하는 자는 백성이 그를 미워합니다.
    이른바 담으로 둘러싸인 방을 벗어나지 않고도 천하를 안다는 것은
    자기를 돌이켜 아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담으로 둘러싸인 방을 벗어나지 않고도 천하를 안다’는 것은
    자기 마음을 돌이키면 알 수가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서 백성을 사랑하거나 미워한다는 것은 자기 마음이거든요.
    그래서 담으로 둘러싸인 방안에 있더라도
    항상 자기 마음을 바르게 쓰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천하를 다 안다는 거죠.
    여기서 얘기하는 것은 결국 상호 소통, 네트워크를 얘기하는데
    상호 소통의 주체가 마음이라는 겁니다.
    사랑으로 사람이든 사물을 대하면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미움이 가득 차 있으면 그 대상과의 교류는 미움으로 점철되는 거죠.

    ‘백성을 사랑하는 자는 백성이 그를 사랑하고,
    백성을 미워하는 자는 백성이 그를 미워합니다.’
    이 말은 결국 사랑하는 감정이라든지 미워하는 이런 감정에 의해서
    세상에 교류가 이루어진다는 얘기죠.

    이것으로 알아야 할 것이니 자기의 마음으로 사물의 이치를 쫓는다면
    어떠한 일도 제 자리로 돌아가지 않는 게 없다.
    자연히 취하고 버리는 마음이 사라져서,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종지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마음으로 사물의 이치를 쫓는다’는 것은
    내 마음을 제대로 닦았을 때 사물의 이치가 드러난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자기 마음을 모르고 사물의 이치를 궁구한다면 전혀 모르는 겁니다.
    실제로 마음이 바깥으로 반영되어서 나타나는 것이 수행의 경계입니다.
    마음의 상태가 그대로 바깥 현상으로 나타나는 거예요.

    ‘자연히 취하고 버리는 마음이 사라져서,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종지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종지’는 텅 빈 마음이죠.
    취사선택하는 마음만 사라져 버리면 된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