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唯識講義

『唯識』- 원종(圓宗)은 정식(情識)으로 알지 못한다 (본문)

경호... 2012. 1. 6. 05:20

- 宗鏡錄의 冥樞會要의 唯識부분 - (원순 번역)


    원종(圓宗)은 정식(情識)으로 알지 못한다 (본문)

    61-7-206
    問 但云方便 說則無妨 若約正宗 有言傷旨.
    答 我此圓宗 情解不及. 豈同執方便敎人.
    空有不融通 體用兩分 理事成隔. 說常住則成常見 說無常則歸斷滅.
    斥邊則成邊執 存中則著中理.
    今此圓融之旨 無礙之宗 說常則無常之常 說無常則常之無常.
    言空則不空之空 言有則幻有之有. 談邊則卽中之邊 談中則不偏之中.
    立理則成事之理 立事則顯理之事. 是以 卷舒在我 隱顯同時.
    說不乖於無說 無說不乖於說.

    : 단지 방편에서 설한다면 무방하나
    바른 종지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종지를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나의 원종은 알음알이로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어찌 방편에 집착하여 가르치는 사람과 같겠는가.
    공(空)과 유(有)가 융통하지 못하면
    체(體)와 용(用)이 양분되어 이(理)와 사(事)가 간격이 생긴다.
    상주를 설하면서 상견이 생기고, 무상을 설하면서 단멸에 돌아가는 것이다.
    한쪽에 치우치는 견해를 배척하면서 한쪽에 치우치는 견해에 집착하는 것이 생기고,
    중도를 인정하면서 중도의 이치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원융한 종지는 걸림이 없는 최고의 것으로
    상주를 설하면 무상 속의 상주를 설하고,
    무상을 설하면 상주 속의 무상을 설한다.
    공(空)을 설하면 불공(不空)의 공을 설하고,
    유(有)를 설하면 환유(幻有)의 유를 설한다.
    변견을 말하면 중도 자체의 변견을 말하고,
    중도를 말하면 치우침이 없는 중도를 말한다.
    이치를 세우면 일을 성사시키는 이치며,
    일을 세우면 이치가 드러나는 일이다.
    이런 이유로서 일체법을 펼치고 거두는 것이 나에게 있으면서
    숨고 드러나는 것이 동시인 것이다.
    설하면서 설하지 않는 것과 어긋나지 않으며,
    설하지 않으면서 설하는 것과 괴리되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