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唯識講義

『唯識』- 근본(根本)과 지말(枝末)을 알기 어렵다 (강의)

경호... 2011. 12. 4. 05:45

- 宗鏡錄의 冥樞會要의 唯識부분 - (원순 번역)


    근본(根本)과 지말(枝末)을 알기 어렵다 (강의)

    : 종경은 깊은 종지를 찾는 것인데 무엇 때문에 식(識)을 설하는 것입니까.

    식(識), 의(意), 심(心) 이게 다 마음인데
    왜 하필 식(識)을 들어서 얘기하느냐.
    주관과 객관이 상대했을 때 나타나는 게 앎이라 그랬죠.
    그래서 그 앎이라는 마음을 알 식(識)자로 표현 하는 겁니다.
    이 식이라는 것은 주관과 객관이 나눠져서
    주관의 식이 객관의 식을 보는 거예요.
    주객이 다 같이 마음이죠.
    그래서 주관 과 객관을 들어서 앎을 표현할 때는
    마음 심(心)자보다 알 식(識)자를 쓴다는 것을 아십시오.
    식(識)이라 해서 모두 오염된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고
    진실한 식의 앎, 진실식지(眞實識知)라는 말도 씁니다.

    종경이라는 것은 마루 종(宗)자에 거울 경(鏡)자에요.
    거울 경자를 쓰는 것은 비춰보는 걸 얘기합니다.
    자기 자신을 보려면 거울을 봐야 되는데,
    거울을 보지 않고 자기를 알려면 마음 거울이 생겨야 되죠.
    수행을 하게 되면 자기가 하고 있는 것을 다 알게 되는데
    그게 깊어지면 존재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힘이 거기서 나오는 거죠.
    또 거울이라는 것은 비친 영상들이 가고 옴이 없고 허망하듯이
    내 마음이 거울이 되어서 이 세상을 볼 수 있으면
    이 세상은 본래 가고 옴이 없는 그런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는 거죠.
    경(鏡)자는 비유지만 그런 뜻이 있습니다.

    종경(宗鏡)은 최고의 가르침, 최고의 종지, 이런 의미가 있죠.
    그래서 여기 얘기가 깊은 종지를 찾는 데서 식이 뭐가 필요 하냐,
    이렇게 질문자가 묻는 거죠.

    답을 합니다.
    : 다만 식(識)의 성품이 그윽하고 깊어서
    근본과 지말을 알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오직 부처님만 요지할 수 있고 밑의 중생은 알 수가 없다.
    자취와 형태가 없는 것으로서 만유의 근본이 된다.
    오로지 깊고 미묘한 것으로서 뭇 성인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식(識)의 성품을 안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모든 존재의 본질을 안다’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만유의 근본이 된다’, 또 ‘성인의 근원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식(識)이 여덟 개가 있죠.
    다섯 개의 감각하고 의식하고 말나식하고 아뢰야식이죠.
    시각을 안식, 청각을 이식, 후각을 비식, 미각을 설식, 촉각을 신식,
    이렇게 다섯 개의 감각을 식으로 보는 거죠.
    식(識)이라는 것이 아까도 얘기 했지만
    주관이 객관을 보고 인식하는 마음을 식이라고 표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객관계도 자기 마음이고 주관도 마음이다,
    그래서 주관과 객관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그러기 때문에 객관계로 보이는 이 우주만물이
    객관계로 존재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것도 자기 마음이다 이거죠.
    그래서 이 식을 알면 모든 것을 다 아는 겁니다.

    그것은 어떻게 해서 그러냐 하면,
    우리가 인식하는 대상이라는 것은 늘 고정되어 있고
    스스로 존재하고 불변으로 보이지만
    그렇게 보이는 것은 자기 마음이 그렇게 만들어서 보는 거죠.
    내 마음이 객관화되어서 보이는 세계입니다.
    그런데 실재의 세계는 일정한 모양과 색깔이 없는 끊임없이 변하는 거죠.
    그래서 매 순간 변하는 세계를 모양과 색깔을 입혀서 보는 것이 마음이에요.
    마음을 알면 모든 것을 안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겁니다.

    종경에서 왜 하필 이 식(識)을 논하느냐 하면,
    종경은 가장 근원적인 것을 얘기하는데
    식이 바로 그와 같다는 것을 얘기 합니다.

    다음 얘기가 굉장히 재미 있어요.
    읽어보면 어떻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게 됩니다.

    이것은 『보살처태경』 「오도심식품」에서 말하는 것과 같다.

    그때 세존께서는 식이 가고자 하는 곳을 드러내 보이고자 하였다.
    도를 닦아야 할 식과 중생으로 살아가야 할 식, 유위법의 식과 무위법의 식,
    번뇌가 있는 식과 번뇌가 없는 식,
    화려한 결과를 가져올 식과 결과로 나타나는 식,
    과보로 받는 식과 과보가 없는 식, 사천왕의 식과 용의 식,
    귀신과 아수라와 가루라와 긴나라와 마후라가와 사람과 사람이 아닌 식,
    위로는 천상에 있는 이십팔천의 식과
    아래로는 구제할 수 없는 지옥의 식까지 드러내 보이고자 하였다.


    식(識)하면 세속에서는 영혼이라는 말을 많이 쓰죠.
    영혼, 영식, 신식,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도를 닦아야 할 식’을 얘기 하는 것은
    성향이 경제적인 문제, 애정적인 문제,
    이런 것은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도를 닦아야 할 식이에요.
    그래서 명상을 좋아하고 수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죠.

    또 ‘중생으로 살아가야 할 식’은
    도 닦을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죠.
    세속의 재물을 구하는 게 좋고,
    여자는 남자 좋아하고 남자는 여자 좋아하는 거,
    이런 것으로서 자기 인생의 가치를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다 중생으로 살아가야 할 식이에요.

    ‘유위법의 식과 무위법의 식’
    유위(有爲)는 ‘함이 있다’, ‘다 함이 있다’, 형상적인 거고
    법(法)이라는 것은 원인과 조건에 의해서 형성 된 것은 다 법이고
    원인과 조건에 의해서 형성 된 것이 소멸하는 게 다 법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죠.
    ‘유위법의 식’이라는 것은 내도록 분별하는 마음이에요.
    대상에 이끌려서 왔다 갔다 하는 마음이죠.
    그래서 이런 마음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자꾸 바뀌는 거예요.
    그럼 유의법의 식이 되는 겁니다.

    ‘무위법의 식’은 함이 없기 때문에 바뀌지 않는 식이에요.
    마음이 텅 빈 자리에 늘 고요하게 있는 거죠.
    동중일여, 몽중일여 하듯이 마음이 동요가 없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선정 상에 나타나 거죠.
    그렇지만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명확하게 꿰뚫어가지고
    실체 없고 자아 없음을 보게 되면 역시 무의법의 식이 된다 이 말입니다.

    그 다음에 ‘번뇌가 있는 식’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을 번뇌가 있는 식이라 하고
    ‘번뇌가 없는 식’은 형상에 대한 집착이 없기 때문에 화를 내지 않는 거죠.
    욕심 부리고 화를 내지 않는 것은 모든 진리가 하나인 줄 안다 이거죠.
    그렇게 되면 번뇌가 없는 식[마음]이 되는 거죠.

    ‘결과를 가져올 식’은 콩 심으면 콩 나고 팥 심으면 팥 나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사람을 대할 때 부드럽게 대하는것하고 거칠게 대하는 게
    반응이 다르죠.
    그처럼 다른 사람을 위해서 많은 복덕을 짓고 이러면
    그 복덕 때문에 화려한 결과를 가져오는 식이 되는 거죠.
    만일에 수행을 한다면 열심히 내적 관찰을 해가지고
    존재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수행을 계속하면
    그 결과는 큰 스님이 된다든지, 화려한 결과를 가져오겠죠.

    또 ‘결과로 나타나는 식’이라고 하는 것은
    좋은 마음을 내면 좋은 결과,
    나쁜 마음을 내면 나쁜 결과로 오는데,
    그런 결과가 바로 자기 마음 상태일 수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결과로 나타나는 식이다 그러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상대에게 비난을 했다,
    그러니까 그 상대는 내게 몇 배 더 비난을 했다면
    가슴이 아프잖아요.
    자기가 말한 것 때문에 가슴 아픈 결과가 왔죠.
    그게 결과로 나타나는 식이에요.
    그래서 이 식이라는 것은 원인도 되고 결과도 된다 이런 얘깁니다.

    그 다음에,
    ‘과보로 받는 식과 과보가 없는 식’
    과보(果報)는 육도 윤회하는 것이 과보죠.
    과보가 없는 식은 육도윤회에서 벗어났다는 말이죠.
    이 세상에 살지만 성문, 연각, 보살, 부처로 가버리면 과보가 없는 식이 됩니다.

    ‘사천왕의 식’은 신(神)이 될 수 있는 식이고,
    ‘용의 식’은 용이 될 수 있는 식이죠.
    ‘귀신과 아수라와 가루라와 긴나라와 마후라가와 사람과 사람이 아닌 식,
    위로는 천상에 있는 이십팔천의 식과
    아래로는 구제할 수 없는 지옥의 식까지 드러내 보이고자 하였다.’
    식도 많죠.

    ‘지옥의 식’
    화를 자주내면 지옥중생식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 보면 ‘귀신 식’이 나오는데
    욕심을 많이 차리면 귀신 될 확률이 많아요.
    아귀의 세계가 귀신의 세계입니다.
    남이 좋은 거 가지고 있으면 빼앗고, 남이 좋은 거 달라면 주지도 않고,
    이런 것을 간탐(慳貪)이라 그래요.
    이러면 귀신의 식이 되는 겁니다.

    그럼 여러분의 식은 뭐냐하면,
    ‘유식강의를 듣는 식’,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때 세존께서는 태(胎) 가운데에서 뼈부스러기 해골을 나타내어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가득 차도록 하였다.

    그리고 아기타에게 질문 하셨다.

    세존 : 너는 이 해골의 식을 구별할 수 있겠는가.
    아기타 : 세존이시여, 구별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신통력을 확실하게 얻지 못하여 수행력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미륵보살에게 물어보셨다)
    세존 : 미륵보살이여, 이 하늘에서 신통력을 얻지 못한 자가 있는가.
    미륵 : 성취한 이도 있으며 성취하지 못한 이도 있습니다.

    세존 : 그렇다면 너는 이 뼈부스러기 해골을 관찰하여
    일체중생에게 이 해골의 식이 간 곳을 알도록 하라.
    그들이 분별하고 결정하여 의심이 없게 하라.


    여기서 ‘그들’은 일체 중생을 얘기 합니다.
    그래서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해골에 대해서 감식을 하는 겁니다.

    요즘에는 사람이 사고로 죽어서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때는
    DNA를 채취해서 판결하죠.
    여기서 미륵보살이 하는 방법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고 식이라는 마음이죠.
    그렇지만 죽은 모습과 뼈를 보면
    이 사람이 어떤 식(識)이고 어디로 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죠.

    (그때에 미륵보살은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금강칠보신의 지팡이를 잡고 뼈부스러기 해골을 휘저으며
    해골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부처님께 사뢰었다)

    미륵 : 이 사람은 목숨이 끊어질 때에
    성내는 것이 많이 맺혀 그 식이 용이 될 곳에 떨어졌습니다.
    (또 다른 해골을 휘저으면서)
    이 사람은 전생에 열 가지 선한 행을 갖추었기 때문에 천상에 태어났습니다.
    (또 다른 해골을 휘저으면서)
    이 사람의 전생은 계율을 파괴하고 범했기 때문에 지옥 가운데에 태어났습니다.


    여러분들 보살계는 자주 받는 게 좋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살았지만 알게 모르게 짓는 죄업도 있을 거고
    남의 마음에 상채기도 좀 내고, 그랬을 거예요.
    그러면 다시 계를 받아야 됩니다.
    한 번 받았다고 안 받는 게 아니고 계율은 자주 받는 게 좋습니다.
    계를 받아도 어느 순간 계를 파할 수도 있고 하기 때문에
    자주 받아야 만이 죄를 소멸할 수 있는 겁니다.
    계를 받으면 좋은 점이 참 많아요.
    예를 들면 꿈자리가 시끄러운 사람은 계를 받으면 편안해 집니다.
    또 뒤에서 누가 따라오는 거 같고 불안하고 귀신에 쫒기는 것 같은 사람은
    계를 받으면 그런 증세가 없어져요.
    밖에서 들어오는 마장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계를 파하면 지옥 가운데 태어난다,
    계율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집안의 법도도 계율입니다.
    습관도 계에 속해요.
    자의(自意)의 행위가 계가 되는 거예요.
    습관이니 법도로 바꿔서 썼을 뿐이에요.
    하지만 불교에서의 계율은 다른 거죠.
    살생하지 말고, 도둑질하지 마라 이러는 거죠.
    보살계 수계살림 한다는 것은
    과거의 지은 죄업을 소멸하는 겁니다.

    (이와 같이 뼈 부스러기 해골을 휘저으며
    그 소리를 듣고서 번뇌가 있는 곳과 없는 곳, 유위의 법과 무위의 법이 있는 곳,
    위로는 이십팔천으로부터 아래로는 구제할 수 없는 지옥까지
    식(識)이 간 곳이 선악의 과보거나 흑백의 과보인지를 알았다.


    ‘이십팔천’은
    우리 세계를 셋으로 나누면 욕계, 색계, 무색계입니다.
    욕심의 세계인 욕계(欲界)는 하늘이 여섯 개가 있고,
    색계(色界)라는 물질이 청정한 세계는 하늘이 열여덟 개가 있고,
    정신만 남아 있는 세계를 무색계(無色界)라 하는데,
    거기에는 천당이 네 개가 있습니다.
    그래서 욕계, 색계, 무색계 합해서 천당이 스물여덟 개나 되는 거예요.

    이렇게 미륵보살이 해골을 탁탁 쳐서 그 소리를 듣고
    어디로 갔다는 것을 다 아는 거예요.

    그러다 하나도 상한 데가 없는 한 구의 전신사리가 있게 되었다.
    그때에도 미륵보살은 지팡이로 이를 휘저어서 소리를 듣고
    이 식이 간 곳을 알려고 하였으나 간 곳을 알 수가 없었다.
    앞에와 같이 세 번을 휘젓고 나서 부처님 앞에 나아가 사뢰었다)


    ‘한 구의 전신사리(全身舍利)가 있게 되었다’
    실제로 이런 사리에 대한 얘기가 많이 전해져 오는데,
    ‘새끼를 치는 사리’ 아시죠?
    저도 봤는데 사리가 분가를 해서 자꾸 많아지는 거죠.
    사리는 부처님 진신사리도 있지만 수행자들에게도 있는데,
    대개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의 결정체가 사리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여러분들도 죽어서 화장을 하면 사리가 나오기는 나오는데
    불이 아주 세고 그러면 녹아버리죠.
    이렇게 녹는 사리는 계정혜가 약해서 그런 거라 별 볼일 없는 사리고,
    엄청난 온도나 압력에도 녹거나 부서지지 않는 게 사리에요.
    어느 의사는 그 사리를 몸속에 결석이라고 얘기를 하는데
    아주 무식한 사람이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죠.

    이렇게 전신사리가 하나 나온 거예요.
    ‘그때에도 미륵보살은 지팡이로 이를 휘저어서 소리를 듣고
    이 식이 간 곳을 알려고 하였으나 간 곳을 알 수가 없었다.
    앞에와 같이 세 번을 휘젓고 나서 부처님 앞에 나아가 사뢰었다’

    이제 미륵보살이 얘기를 합니다.
    미륵 : 이 사람의 신령한 식은 간 곳을 알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아마 여래께서 열반에 드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존 : 너는 부처님의 자리를 이어 미래의 세상에서 부처가 되어 무상도를 성취할 것이다.
    무엇 때문에 사리의 소리를 듣고도 그 사리의 식이 간 곳을 알지 못하는가.


    미얀마에 다녀온 스님한테 들은 얘긴데,
    노스님이 한 분 계셨대요.
    이 스님은 이름도 없고 아무도 알아주는 이가 없는데
    늘 정진을 하시다가 어느 날 나무 밑에서 결가부좌하고 돌아 가셨답니다.
    그래서 화장을 했는데
    뼈 속마다 영롱한 사리로 꽉 차있더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리고 인도 다람살라 옆에 가면 사리탑이 있는데 지명이 생각이 안 나네요.
    한 노스님이 돌아가셔서 화장을 했는데
    뼈도 아닌 눈, 혀, 심장, 세 군데가 타지를 않았대요.
    그것을 그대로 탑을 조성해서 모셨다고 얘기를 들었습니다.

    아, 걱정 되네.
    나도 수행 좀 했는데 사리가 나오려나 안 나오려나.ㅎㅎㅎ
    이런 생각에는 어떤 심리가 있는 줄 알아요?
    여기는 교만한 심리가 들어가 있고,ㅎㅎㅎ
    지가 깨달았는지 안 깨달았는지 잘 모르면서. ㅎㅎㅎ
    두 번째는 걱정하는 심리가 들어가 있는 거예요.
    수행 했다면서 사리 안 나오면 이게 무슨 망신인가, 이런 심리.ㅎㅎㅎ
    그게 그런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들도 사리가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되요.

    그 다음에 미륵보살이 얘기 합니다.
    미륵 : 부처님의 부사의(不思議)는
    중생들의 한정된 생각으로 헤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경계로 판단하여 알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지금 간절한 의심이 있사오니,
    바라옵건대 세존이시여, 의심을 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오도(五道)에 들어간 영혼의 식은 남김없이 알 수가 있습니다.
    그 식이 선악의 과보로 간 곳에 대하여 여래의 앞에서 조금도 의심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사리는 조금도 상한 데나 결함이 없습니다.
    바라옵건대 이 식이 간 곳을 설명하시어 저희들이 알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부처님의 부사의(不思議)는
    중생들의 한정된 생각으로 헤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부사의(不思議)’는 중생들의 심리로는 알 수가 없다 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경계로 판단하여 알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지금 간절한 의심이 있사오니,
    바라옵건대 세존이시여, 의심을 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오도(五道)에 들어간 영혼의 식은 남김없이 알 수가 있습니다.’
    ‘오도(五道)’는 육도(六道)에서 아귀를 뺀 지옥,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이에요.
    길 도(道)자는 갈래를 얘기하죠.

    ‘그 식이 선악의 과보로 간 곳에 대하여 여래의 앞에서 조금도 의심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사리는 조금도 상한 데나 결함이 없습니다.
    바라옵건대 이 식이 간 곳을 설명하시어 저희들이 알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전신사리다 보니 상한 데가 없어서 식이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이거죠.

    과거를 아는 것을 숙명통(宿命通)이라 그럽니다.
    그래서 지금 미륵보살이 뼈를 두드리고 헤쳐보고
    뼈의 임자, 식이 어디로 갔는지 다 알아 맞혔는데 전신사리만 모르겠다 이런 얘기죠.

    부처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세존 :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의 사리가 유포되는 것은
    너희들의 경계로 분별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사리는 나의 사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희가 어찌 여래의 신령스런 식을 찾을 수가 있겠는가.
    지금 너희에게 여래의 신령스런 식을 분별하여 주겠다.
    그러나 상과 중과 하의 경계에 머물러 있는 보살들은
    망연하여 제각기 받아들이는 내용이 다를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얘기가 뭐냐 하면,
    ‘종경에서 불필요하게 식을 들먹거리고 있습니까?’ 이러니까
    부처님 하시는 말씀이
    ‘식이야말로 모든 존재에 근원이다.
    우주 삼라만상의 근원이고 생명의 근원이다’
    그리고 ‘아주 불가사의 하고 형상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그러면서 보여준 것이 삼천대천세계에 수많은 해골들을
    미륵보살에게 보여주고 이 식이 어디로 갔는지 알아보라 하시죠.
    그래서 다 알아보고 식이 어디 있는지 다 아는데,
    부처님 전신사리 하나만은 식이 어디 갔는지 알지를 못한 거죠.
    결국 이것은 무엇을 얘기하느냐 하면,
    우리에게 죽지 않는 게 있다는 거죠.
    어떤 실체나 자아가 있어서 죽지 않는 것은 아니죠.
    실체나 자아가 없는데도 죽지 않는 것은 비어 있기 때문에 그런 거죠.
    이게 우리한테 있다는 겁니다.

    부처님께서 재미있는 말씀을 또 하십니다.
    초주 보살이 자기의 근기와 공덕의 힘을 다 갖추어서
    세워 놓지 못해 신통력을 얻었다 하더라도
    이주 보살은 천안으로 관하여 초주 보살의 식이 간 곳에서 물러났거나
    물러나지 않은 가를 알 수가 있다.


    자기보다 높은 경지에 있는 이들은
    낮은 경지에 식이 어디 갔는지 안다 이 말이에요.

    또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에 갔는지를 관찰하여 본다.
    동방의 헤아릴 수 없는 항하사 부처님 국토에서 태어나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고 계율을 받들어 걸림이 없는지를 살펴본다.
    또 초주 보살이 부처가 된다고 수기 받은 겁수(劫數)가
    일 겁이나 이 겁인지 나아가 백천억 겁인 줄을 안다.
    혹 어떤 보살이 삼주지(三住地)에 있다면 이주 보살의 사리를 살펴보고
    그의 식이 유여열반이나 무여열반에 간 곳을 살펴 볼 수 있다.
    그러나 삼주 보살은 사주 보살이 수행하는 곳과
    그의 식이 향해 가는 곳을 볼 수가 없다.


    밑에 수준에 있는 사람은 위에 수준에 있는 이의 식이 간 곳을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자기보다 낮은 밑에 식은 어디로 갔는지 안다는 말이죠.
    초등학교 수준은 중학교 수준을 모르고
    중학교 수준은 고등학교 수준을 모르고
    고등학교는 대학교 수준을 모르듯이 똑같은 겁니다.
    다도(茶道)하시는 분 중에 이런 분을 봤어요.
    삼매를 얘기하면,
    ‘삼매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저는 차를 들고 놓고 마시고 하는 순간순간 늘 고요합니다.’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 있어요.
    그러면 ‘몸이라는 것이 사라졌는가?’ 이렇게 물어보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니, 몸이 사라지다뇨?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러는 거예요.
    그러면 이 사람은 삼매에 대해서 모른다는 거죠.
    삼매에 들어가려면 적어도 몸이 사라지는 것을 체험해 봐야 되요.
    그렇게 되면 그게 욕계, 색계, 무색계 중에 제일 낮은 욕계삼매인데,
    몸 사라짐 체험도 못하고 선정을 얘기하면 곤란하다는 겁니다.
    이 몸 사라짐 삼매도 초선정에 들어가기 전에
    미도지정(未到地定), 예비선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삼매의 기준을 어디다 두고 얘기하느냐 하면
    몸이 사라졌느냐 안 사라졌느냐 가지고 논할 수 있는 거죠.
    그 이전에 몸도 안 사라지고 내 마음이 고요하다는 것은
    삼매 축에 안 드는 거예요.
    그런 것을 가지고 삼매를 얘기하면 대화가 안 되죠.
    몸 사라지는 현상은 삼매에 가장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가장 초보자들이 체험할 수 있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초보도 안 된 사람이 자기는 선정에 곧 잘 든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사람은
    알고 그런 소리한다면 아주 나쁜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을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서 이미 얻은 것처럼 교만하게 우쭐 대는
    증상만(增上慢)이라 그럽니다.

    반대로 사주 보살은 초주 보살과 이주 보살과 삼주 보살의 식이 어떻게 하는 지를 본다.
    그러나 오주 보살의 사리에서 나온 식이 가는 곳은 보지 못한다.
    나아가 오직 부처님만이 부처님의 신령스런 식이 생각하는 바를 아는 것이다.

    또 게송으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마음은 형상이 없는 법인데
    지수화풍 공으로 집을 삼으니
    선과 악을 나누어 분별하면서
    온갖 행에 참과 거짓 갈라진다네.


    지수화풍으로 집을 산 것은 맞잖아요.
    육체가 영혼[識]의 집입니다.
    이 육체는 흙, 물, 불, 바람, 허공 5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런 육체를 가지고 이것을 근거로 선악을 나누고 온갖 분별을 다 낸다 이거죠.

    마음이 좋은 길을 보이는 곳에
    영원히 편안한 삶 도달하리니
    신령한 식 여섯 요소 으뜸이 되어
    공이나 지수화풍 이만 못하네.


    ‘신령한 식 여섯 요소 으뜸’이란 말은
    지, 수, 화, 풍, 공 다음에 식이 들어서 6대가 됩니다.
    이 6대 중에서 식대(識大)가 제일 으뜸이다 이 말이죠.
    그래서 ‘공이나 지수화풍 이만 못하네.’이 말은
    5대는 이 식대(識大)만 못하다는 거죠.

    이해가 되시는지 모르겠네.
    여러분들이 식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모르는데
    예를 들면, 화를 잘 내고, 살생을 많이 하고, 난폭한 행동을 자주하면
    지옥의 심리가 형성되고 그 식은 지옥으로 갑니다.
    심리라는 것은 식의 작용입니다.

    또 욕심 많이 부리고 남의 것은 빼앗고 자기 것은 남 안 주고 그러면
    이런 사람은 아귀계의 심리가 형성 됩니다.
    그러면 아귀로 가는 거예요.
    싸움 좋아하고 남이 잘되는 것은 못보고 하는 사람은
    아수라계의 심리 현상이 생겨서 아수라로 갑니다.
    그리고 고집스럽고 자기중심적이고
    이런 사람은 인간계의 심리가 형성 됩니다.
    또 자아관념이 별로 없고 남 잘 도와주고 이런 사람은
    천상계의 심리가 형성 됩니다.
    이 천상계의 심리현상은 허공의 요소에서 나오는 거예요.

    결국 무엇인가 하면,
    해골의 껍데기만 두드려보면 이 식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다는 거죠.
    『금강경』에 보면 부처님은 실지실견(悉知悉見), 다 알고 다 본다 이랬어요.
    중생들의 심리를 다 아는 거예요.
    앉아가지고 삼천대천세계의 수많은 중생들의 일어나는 심리를
    다 아시는 게 부처님이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럼 여러분은 도대체 식이 뭐에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쉽게 얘기하면 결정이 안 되어 있는 거죠.
    결정이 안 되어 있는 식은 매 순간 변하는 거죠.
    식이라는 이름은 하나지만 식 내용은 다르잖아요.
    자기가 지은바 업에 다라서 가는 겁니다.
    그래서 이걸 알 필요가 있습니다.

    식(識)은 연속체입니다.
    상속한다는 거죠.
    두 번째, 연속하기 때문에 유(有)도 아니고 무(無)도 아니다.
    그러면 변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믿고 예수님 믿으면 일률적으로 다 천국 간다,
    하지만 하나님에 선택을 받지 못하면 일률적으로 다 똑같이 지옥 간다,
    이렇게 얘기 합니다.
    그러면 지옥도 못 벗어나고 천국도 못 벗어나는 겁니다.
    이게 기독교인들의 생각입니다.
    그네들은 식을 보통 영혼이라 그러는데, 이것을 고정불변[불멸]으로 봅니다.
    하지만 불교에서 보는 식은 연속체이기 때문에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니고 변하는 거예요.

    세 번째는 매 순간 변하기 때문에 무상으로 보는 거죠.
    언제든지 바뀔 수가 있는 가능체이기 때문에
    진보할 수도 있고 퇴보할 수도 있는 겁니다.
    언제든지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고 얼마든지 참회해서 깨달을 수도 있는 거죠.
    그래서 지옥 심리가 형성되어 있으면 지옥으로 가고,
    그 죄업이 다하면 벗어나는 거죠.
    천국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더 갈 곳이 없지만
    극락세계는 가면 타방세계와 왕래가 자유롭다 이렇게 얘기 합니다.
    극락세계 하나만 있는 걸로 착각하면 안돼요.
    서방만 있는 게 아니라, 동방, 북방, 남방, 상, 하 다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사바세계에 가장 친숙하니까 서방극락정토를 많이 얘기하는 겁니다.
    그래서 육도(六道)를 윤회하는 건데
    이렇게 윤회하는 것은 식이 매 순간 바뀌어서 그렇다는 말입니다.

    네 번째는 식은 장식(藏識)입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저장한다, 이때는 의식이라고 보기 힘들겠죠.
    세포는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 복제가 가능하듯이
    이 마음은 모든 정보,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역사를
    다 담고 있는 게 우리 식입니다.

    결국 이 식(識)을 종경(宗鏡)이라고 얘기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