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宗鏡錄의 冥樞會要의 唯識부분 - (원순 번역)
모든 것이 마음이다 (강의 - 2)
이것은 이승이 식(識)을 멸하고 적멸한 곳에 가려는 것과 다르기 때문이며,
또한 반야의 지혜로 공관(空觀)을 닦는 보살이 공(空)의 이치를
더욱 수승하게 하려는 것과도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승이 식(識)을 멸하고 적멸한 곳에 가려는 것과 다르기 때문이며,’
여기서 ‘이승(二乘)’은 성문(聲聞) 연각(緣覺)입니다.
‘식(識)을 멸하고’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의식 을 멸한다는 거죠.
이 식(識)에서 의식을 뺀 전오식(前五識)은
색계(色界) 이선정(二禪定)에만 가면 소멸해 버립니다.
그리고 의식은 색계에서 무색계(無色界)를 거쳐서
무색계의 마지막이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
그 다음 단계 멸진정(滅盡定)에서 소멸됩니다.
이것은 자성청정심을 깨닫는데 있어서
식을 멸하고 적멸한 곳에 가는 것 하고는 다르다,
이렇게 분명히 얘기 합니다.
‘또한 반야의 지혜로 공관(空觀)을 닦는 보살이 공(空)의 이치를
더욱 수승하게 하려는 것과도 다르기 때문이다.’
본문에 ‘공관(空觀)’이 아니고 ‘공(空)’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공관을 닦는 보살’이 아니고 ‘공을 닦는 보살’, 이렇게 해야 맞습니다.
여기서 공관은 반야의 지혜로 공을 닦는 것을 말합니다.
‘관(觀)’을 빼라는 이유가 그거에요.
그러면 공관에 대해서 알아봐야겠죠.
공관(空觀)에는 아공(我空)과 법공(法空), 이공관(二空觀)이 있습니다.
아(我)와 법(法)이 공(空)함을 관찰하는 거예요.
여기 이공관을 닦는 주체는 의식입니다.
수행주체는 의식이에요.
여기서 얘기하는 ‘이승이 식(識)을 멸하고 적멸한 곳에 간다’는 것은
대체적으로 초전법륜(初轉法輪)에서 많이 쓰는 방법이죠.
그런데 반야공(般若空)을 닦아가는 수행[공관]은 제2법륜이고
유식(唯識)은 제3법륜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이해해야만
이런 말이 나온 것을 알게 되는 거예요.
초전법륜(初轉法輪)은 고집멸도(苦集滅道) 사성제(四聖諦)입니다.
인생은 괴롭다,
괴로움의 원인은 탐진치(貪瞋痴)고,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이 완전히 소멸한 것은 멸(滅)이고,
그리고 괴로움을 소멸하는 방법은 팔정도(八正道)다, 이렇게 되죠.
이 고집멸도 중에서 멸(滅)은 예방을 얘기 합니다.
고통과 고통의 원인이 다 소멸했다고 해서 멸이라 하는데,
그것을 불생불멸, 열반을 얘기 합니다.
제2법륜은
고집멸도 중에서 열반을 공(空)으로 파악해 들어가는 방법이에요.
그래서 이것을 반야공(般若空)이라고 얘기 합니다.
제3법륜은
반야공(般若空)을 다시 더 깊이 파고들어가는 것인데
그것을 유식삼성(唯識三性) 또는 유식삼무성(唯識三無性)이라 합니다.
유식삼성은 잘 아시다시피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의타기성(依他起性),
원성실성(圓成實性)입니다.
변계소집성은 상(相)은 성품이 없다, 상무성(相無性)을 얘기하고,
의타기성은 저절로 생긴 게 아니다, 생무성(生無性)을 얘기하고,
원성실성은 승의무성(勝義無性)을 얘기 합니다.
수승한 법이 공이고 진여죠.
이때 무성(無性)이 바로 공(空)을 얘기 합니다.
그래서 쉽게 얘기하면 제2법륜에서 아주 중요시 여기는 게 공(空)이고
제3법륜 유식에서는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의타기성(依他起性),
원성실성(圓成實性)이 알고 보면 마음이기 때문에
마음을 중요시 여깁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얘기하는 게
성문 연각이 깨달은 사성제하고 다르고
공을 닦아서 반야지혜를 계발하는 반야공관하고 다르다,
유식은 자성청정심이 본래 공적함을 얘기 하는 거다, 마음이다,
이걸 얘기하는 겁니다.
그래서 ‘공(空)의 이치를 더욱 수승하게 하려는 것과도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거죠.
공(空)을 닦으려면 중요한 것은
매 순간 변하는 무상(無常)을 봐야 돼요.
공으로 들어가는 길이 무상입니다.
몸과 마음이 변하는 것을 봐야 만이 들어갈 수 있는 거죠.
또 하나의 방법은 사유(思惟)가 있습니다.
변하는 무상을 보면서 사유가 들어가야 돼요.
왜냐하면 공이라는 것은 눈으로 보이고 귀로 들리는 게 아니에요.
추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불필요한 것을 하나하나 제거해 들어가야 되는 거죠.
그렇게 되려면 매 순간 찰나찰나 변화를 봐야 됩니다.
그 변화를 보면 말과 생각이라는 불필요한 가지들을
하나하나 제거해 들어갈 수가 있어요.
그러면 공에 도달하는 거예요.
그 다음 보십시오.
바로 식의 바탕이 본래 성품으로 온전하게 진여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식의 바탕을 밝히는 것이 곧 지혜의 작용을 이루는 것이다.
모든 것은 식(識, 팔종식)인데, 식의 본질은 진여다 이거죠.
식의 본질이 진여라는 말은
유식삼성에서 의타기성, 타를 의지해서 일어나는 성품이 마음인데,
그 마음이 헤아려서 상을 집착하거든요.
그런데 그 마음속에 상을 쏙 빼버리면,
타를 의지해서 일어나는 마음[의타기성]이 원성실성으로 바뀝니다.
이것이 진여에요.
그래서 여기 얘기하는 게 그런 얘깁니다.
식을 멸해서 적멸을 구하는 것도 아니고
위빠사나를 통해서 공을 체득하는 반야공관도 아니다.
공관이 아니고 유식관(唯識觀)을 통해서 진여를 바로 체득하는 것을 얘기 합니다.
그런 게 식의 바탕인 본래성품이 진여라는 것을 밝히는 거죠.
식을 하나하나 멸해가는 게 아니고 식의 본질을 밝힌다 이 말이에요.
이것은 마치 큰 바다에 바람이 없으면
경계의 모든 모습이 바로 명백해지는 것과도 같다.
마음이 청정한 바다에 대한 법문도 이와 같아
진여를 요달하면 곧 식이 지혜를 이루는 것이다.
‘식이 지혜를 이루는 것’ 이 뭐냐.
모든 것이 마음이라는 이해가 전재되어야 되겠죠.
마음이라는 것은 매 순간 찰나찰나 변하는 의타기성이에요.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수행법이 신수심법(身受心法)입니다.
몸[身]은 아니 불(不)자 부정하는 것[不淨]으로 봐라.
이렇게 관찰하게 되면 깨끗하지 않고 더럽다는 것을 알게 돼요.
또 감각[受]을 관찰할 때는 고(苦)로 봐라.
통증은 전부 감각이기 때문에 감각은 고통이에요.
그리고 마음[心]은 무상(無常)으로 관찰해라.
이게 핵심인데, 이 무상은 바로 의타기성을 얘기 합니다.
타를 의지해서 일어나는 것은 전부다 변하는 겁니다.
그래서 마음이 무상함을 통해서 마음의 본질인 원성실성을 체득하는 것이
유식관에서 하는 얘기다 하는 겁니다.
그 다음에 법(法)을 관찰할 때는 무아(無我)로 봐라.
모든 현상은 원인과 조건에 의해서 일어나고 사라지기 때문에
그 원인과 조건 속에는 원인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
조건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자아가 없다 이런 얘기에요.
그래서 우리들 자신도 법이고 우주 삼라만상이 다 법인 거예요.
마음의 공한 자리에 들어가려면 무상을 봐야 된다 그랬죠.
몸의 무상이라든지 마음의 무상이라든지 항상 무상을 봐야 됩니다.
자비수관 수행을 하다보면 몸 사라짐 현상을 보게 되는데
이게 무상을 보는 겁니다.
사마타 수행만 하는 사람은
자기 몸이 무상하다는 것을 잘 못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몸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잘 관찰해야 된다는 거죠.
이렇게 무상을 통해서 몸이 사라지면
무아라는 지혜를 얻는 거예요.
그런데 수행을 하면서 일어나고 사라짐을 지켜보는 게 안 되는 사람은
몸이 사라져도 큰 감응을 못 얻습니다.
몸이 사라졌다는 특별한 체험만 하고 말지
지혜가 계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이 몸 사라짐은 거친 무아를 체득하는 단계, 욕계삼매입니다.
그때는 후각과 미각이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초선정에 들어가서 이선정에 들어갈 때
나머지 시각과 청각이 사라지고 마지막에 촉각이 사라져요.
몸이 사라져도 아직 감각이 있잖아요.
감각이 있으면 아직 선정에 제대로 들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초선정에 들어가면 의식이 가슴으로 내려온다는 것을
기본적으로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관찰대상을 알아차림 할 때 바른 앎이 동반되어야 돼요.
그러니까 정념(正念)과 정지(正知)가 동반될 때
초선정, 이선정, 삼선정 이렇게 들어갈 수가 있는 겁니다.
징표로 의식이 가슴으로 내려온다는 거,
수행을 하다보면 일부러 끄집어 내리는 게 아니고
저절로 내려오게 되어 있어요.
이것은 수식관, 호흡관찰을 한다든지,
아니면 몸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한다든지,
자비손을 쓰는 자비수관을 한다든지 이러면 몸이 사라지거든요.
그리고 화두를 참구해도 몸이 사라진다는 거는
선관책진(禪關策進)에도 나와 있습니다.
또 몸 사라지는 것은 『원각경』보안보살장에
적멸차제(寂滅次第) 다섯 단계에서 첫 번째 단계라고
분명히 못을 박고 얘길 한다는 거예요.
몸 사라짐을 얘기하는 것은 외도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분은 몸 사라지는 것을 잘 이해 못하는 사람이고
무식하다고 밖에 얘기할 수 없습니다.
몸이 사라지는 것은 삼매의 현상이라는 것을 빨리 알아야 됩니다.
처음에는 몸 사라지는 게 대단한 것 같이 생각하다가
며칠 지나고 한두 달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진짜 마음이 바뀌려면
몸 사라지는 게 마음 바뀌는 게 아니고 지혜에 의해서만 마음이 바뀐다,
그리고 이런 지혜는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잘 관찰 했을 때
계발 된다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안 그러면 안 됩니다.
자, 끝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