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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宗鏡錄의 冥樞會要의 唯識부분 - (원순 번역)
모든 것이 마음이다 (본문)
56-9-188
又 華嚴論云.
世尊 於南海中楞伽山說法. 其山高峻 下瞰大海 傍無門戶 得神通者 堪能昇往.
乃表心地法門 無修無證者 方能昇也.
下瞰大海 表其心海本自淸淨 因境風所轉 識浪波動.
欲明達境心空 海亦自寂. 心境俱寂 事無不照.
猶如大海無風 日月森羅 煥然明白.
此經意 直爲根熟 頓說種子業識爲如來藏.
또 『화엄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화엄경』에서 “세존이 남해 바다의 능가산에서 설법하시었다.
그 산은 높고 험준하면서 큰 바다가 밑으로 내려다 보였으나
산으로 들어가는 출구가 없었다.
신통을 얻은 자만이 올라 갈 수 있었다”고 하였다.
이것은 마음의 근본에 대한 법문을 표방한 것으로
닦거나 증득할 것이 없는 자라야 올라 갈 수 있는 것이다.
큰 바다를 내려다 본다는 것은
커다란 마음이 본래 청정하다는 것을 표방한 것이다.
마음이라는 청정한 바다가 경계의 바람으로 인하여 움직여져
식(識)의 파도와 물결이 일렁인다는 것이다.
이것은 경계와 마음이 공하다는 것을 통달하면
마음이라는 청정한 바다가 또한 스스로 공적한 것임을 밝히려는 것이다.
마음과 경계가 모두 공적하면 어떠한 일도 비추지 않는 것이 없다.
이것은 마치 큰바다에 바람이 없으면
해와 달과 모든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과 같다.
이 화엄경의 뜻은 바로 근기가 익은 사람을 위하여
종자의 업식(業識)이 여래장이 되는 것을 단번에 설파하는 것이다.
異彼二乘滅識 趣寂者故 亦爲異彼般若修空菩薩 空增勝者故.
直明識體 本性全眞. 便明識體 卽成智用. 如彼大海無風 卽境像便明.
心海法門 亦復如是 了眞卽識成智. 此經異彼深密經意.
別立九識 接引初根 漸令留惑 長大菩提故.
不令其心植種於空 亦不令心猶如敗種. 解深密經乃是入惑之初門.
楞伽維摩直示惑之本實. 楞伽卽明八識爲如來藏. 淨名卽觀身實相 觀佛亦然.
이것은 이승이 식(識)을 멸하고 적멸한 곳에 가려는 것과 다르기 때문이며,
또한 반야의 지혜로 공관(空觀)을 닦는 보살이 공(空)의 이치를
더욱 수승하게 하려는 것과도 다르기 때문이다.
바로 식의 바탕이 본래 성품으로 온전하게 진여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식의 바탕을 밝히는 것이 곧 지혜의 작용을 이루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큰 바다에 바람이 없으면
경계의 모든 모습이 바로 명백해지는 것과도 같다.
마음이 청정한 바다에 대한 법문도 이와 같아
진여를 요달하면 곧 식이 지혜를 이루는 것이다.
이 『화엄경』의 뜻은 『해심밀경』의 뜻과는 다르다.
『해심밀경』은 따로 아홉 가지 식을 세워 점차적으로 초심자를 이끌어
남아 있는 번뇌를 보리심으로 기르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 『화엄경』의 뜻은 마음을 공(空)에다 심기 위한 것도 아니며
또한 마음을 적멸한 공에 떨어뜨려 깨달음의 종자가 사라지도록 하는 것도 아니다.
『해심밀경』의 뜻은 번뇌에 젖어 있는 초심자가 들어가는 문이다.
『능가경』이나 『유마경』은 바로 번뇌가 갖고 있는 본래의 진실을 직시한 것이다.
『능가경』은 팔식이 여래장이 되는 것을 밝힌 것이다.
『유마경』은 몸의 실상을 관하는 것과 같이
부처님을 관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음을 밝힌 것이다.
淨名與楞伽同. 深密經文 與此二部少別.
當知 入胎出胎 少年老年 乃至 資生住處 若色若空 若性若相 皆是自識 唯佛能知.
그러므로 『유마경』과 『능가경』에서 하는 소리가 같다.
그러나 『해심밀경』의 뜻은 이 두 가지 경에서 말하는 내용과는 조금 다르다.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니
어머니 태 속에 들어가거나 나오거나, 늙거나 젊거나,
삶을 도와 어느 곳에 머무르나,
색(色)이든 공(空)이든, 성(性)이든 상(相)이든 간에,
이 모든 것은 자기의 마음이다.
이것은 오직 부처님만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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