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唯識講義

『唯識』- 육진(六塵)을 바람이라 하는가 (강의 - 3. 마음은 상속한다)

경호... 2011. 10. 9.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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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宗鏡錄의 冥樞會要의 唯識부분 - (원순 번역)
      육진(六塵)을 바람이라 하는가 (강의 - 3) : 이와 같은 칠식은 어느 곳에서 장식(藏識)에 들어와 일곱 가지 종류의 식(識)이 되어 끊임없이 흘러가고 움직이며 단절되는 때가 없는 것입니까. 여기서 칠식은 잘 아시다시피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의식, 잠재의식인 말나식, 이렇게 일곱 가지 마음이죠. 이 일곱 가지가 장식[아뢰야식]에 들어 왔다고 이렇게 보는 거네요. 들어와서 끊임없이 흘러가고 움직이며 왜 이렇게 단절되는 때가 없느냐, 이렇게 되어 있는데, 사실은 칠식이 어디서 온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그 얘기를 합니다. 아주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어요. : 이와 같이 전변하는 칠식은 안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바깥에서 오는 것도 아니며 중간에서 오는 것도 아니다. 오직 장식(藏識)의 바탕이 전변하여 칠식이 된 것이다. 비유하면 바닷물이 변하여 파도와 물결이 되는 것과 같다. 이것은 경에서 게송으로 말하는 것과 같다. 비유하면 바닷물이 변함으로서 여러 종류 파도 물결 일어나듯이 중생의 칠식도 이와 같아서 중생심에 섞이어 일어난다네. 이것은 장식이 있는 곳에서 모든 식이 일어남을 말하는 거며 나란 놈이 들어있는 의식으로서 사유하는 모든 이치 말함이라네. ‘이와 같이 전변하는 칠식은’ 전변(轉變)은 굴러가듯이 바뀌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안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바깥에서 오는 것도 아니며 중간에서 오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말인데, ‘안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라는 것은 안에서 본래 갖춰져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말이고 ‘바깥에서 오는 것도 아니며’ 이것은 밖에서 누가 갖다 주는 것이 아니다, ‘중간에서 오는 것도 아니다’ 라는 것은 안과 밖이 합작해서 생긴 것도 아니다 이런 얘기에요. 이런 논리는 어디든지 다 적용이 되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들 아이들은 어디서 왔습니까? 여러분 안에 아이가 원래 있었습니까? 안에 갖춰져 있는 게 아니죠. 여러분 아이를 누가 갖다 줬어요? 아니죠. 그럼 원인 없이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았습니까? 더더욱 아니죠. 그러면 어떻게 해서 그 아이들이 생긴 거죠? 결혼해서?ㅎㅎㅎ 예, 결혼해서 생긴 거죠. 결혼이 뭐에요, 결합이죠? 여기도 똑같은 얘기 나옵니다. ‘오직 장식(藏識)의 바탕이 전변하여 칠식이 된 것이다.’ 장식의 바탕이 변해서 칠식이 됐다면 이때 장식은 아뢰야식인데, 아뢰야식은 바닷물이죠. 전변, 굴러서 변했다는 것은 파도입니다. 그러니까 전변해서 칠식이 됐다는 것은 바다에 파도가 쳤다, 이런 말이에요. 그래서 ‘비유하면 바닷물이 변하여 파도와 물결이 되는 것과 같다. 이것은 경에서 게송으로 말하는 것과 같다. 비유하면 바닷물이 변함으로서 여러 종류 파도 물결 일어나듯이 중생의 칠식도 이와 같아서 중생심에 섞이어 일어난다네.’ 여기서 얘기할 게 있네요. ‘여러 종류 파도 물결 일어나듯이’ 여러 종류 마음이 아뢰야식이라는 장식에 근거해가지고 일어난다 이거죠. ‘중생의 칠식도 이와 같아서 중생심에 섞이어 일어난다네.’ 번역대로 하면 해석이 곤란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을 한문으로 얘기 하면 심구화합생(心俱和合生)이에요. 이 말은 마음에 다 화합해서 생긴 것이다, 화합이라는 것은 섞였다는 말인데 이걸 번역할 때 중생심으로 한 겁니다. 왜 중생심으로 했느냐 하면 「대승기신론」에서는 일심(一心)을 중생심으로 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여기에 ‘화합’이라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아뢰야식을 설명할 때 진망화합식(眞妄和合識)이라, 진(眞)과 망(妄)이 화합한 식이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그럼 진(眞)은 뭐고 망(妄)은 뭐냐 이거죠. 진(眞)은 진여(眞如) 또는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이라 하고 망(妄)이라 하는 것은 허망하잖아요. 망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칠식이 망에 속하죠. 이것을 망식(妄識)이라고 합니다. 이게 화합되어있다는 말인데 이게 아뢰야식입니다. 이런 식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우리가 말로 하자면 굉장히 어려운데 쉽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기본적으로 이해하실 게 하나 있어요. 우리가 눈으로 보면 이 세계가 보이듯이 눈과 형색이 만나면 안식이 생기고 시각이 일어나고, 귀와 소리가 만나면 이식이 생기고 청각이 일어나죠. 그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만나면서 만나는 것 마다 다 다르다는 겁니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육체와 바깥 경계와 마음이 화합을 하면 갖가지 경계가 일어나요. 그런데 제가 말씀드리는 요지는 뭔가 하면, 이 화합이라는 것은 화합하지 않는데 뭐가 생기게 되어 있어요. 남녀가 만나면 아이가 생기듯이 손으로 책상을 만지면 딱딱하다는 감각이 생깁니다. 차(茶)와 혀가 만나면 맛이 생기는 거예요. 이것을 이해 하셔야 됩니다. 만나면 뭔가 생긴다 이거죠. 남이 나를 칭찬하면 기쁨이라는 마음이 생기고 남이 나를 비난하면 내 마음에 화라는 것이 생긴다, 이런 것을 ‘만나면 일어난다’, ‘화합’이라 그래요. 이것을 기본적으로 생각을 해야 됩니다. 두 번째는, 장식이라는 바탕에서 일곱 가지 마음이 생긴다 이랬는데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마음이라는 것에서 주관의 마음과 객관의 마음이 나온 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관의 마음이 객관의 마음을 인식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주관이 안에 있고 객관이 밖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니고 마음 자체가 주객으로 나눠진다는 사실을 빨리 알아야 됩니다. 이런 주관을 견분(見分)이라 그러고 객관을 상분(相分)이라 그럽니다. 자세히 말씀드리면, 식(識)은 견분과 상분으로 나눠집니다. 이 식(識)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의식, 말나식, 아뢰야식 여덟 개 마음인데 이것을 8종식(八種識)이라 그럽니다. 이 식은 항상 주관과 객관으로 나눠진다는 겁니다. 주관이 객관을 인식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식에서 나오니까 주관이 객관을 인식해도 결국 마음이다 이거예요. 식이라는 것은 마음이죠. 그래서 「대승기신론」에서는 견분을 견식(見識), 상분은 상식(相識)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말은 주관도 객관도 같은 마음[識]이라는 거죠.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게, 주관의 마음이 객관의 마음을 인식한다는 게 뭡니까? 서로 화합하는 의미가 있는 거죠. 식(識)의 뜻이 그렇다 이겁니다. 또 하나 이해할 것은, 장식인 아뢰야식은 바다에 비유를 하죠. 바다는 물이에요. 여기에 시각에서부터 말나식까지 칠종식이 있는 거예요. 이놈이 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을 때는 종자, 씨앗으로 남아 있다가 발아가 되어서 튀어 나오면 칠종식이 되는 거죠. 종자생현행(種子生現行), 종자로 있다가 발현해서 나타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칠종식이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에요. 눈이라는 주관하고 형색이라는 객관이 서로 탁! 만나면 남녀가 결혼하면 아이가 생기듯이 시각이 탁! 생기는 거예요. 시각이라는 종자가 현행해서 나타나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의식이 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의식은 늘 있는 게 아니고 상속할 뿐이에요. 상속한다는 것은 매 순간순간 변한다는 말인데, 이렇게 의식은 항상 하지를 않아요. 그래서 자동차가 와서 받아버리면 그 충격으로 의식이 가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뇌사나 식물인간이 되고 그러는 겁니다. 이제 이해가 됩니까? 그래서 시각부터 아뢰야식까지 이런 마음이라는 게 상호 관계성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지 독립되어 있는 게 아니에요. 이런 것을 몇 번 얘기 했지만 의타기성(依他起性)이라 그럽니다. 타를 의지해서 일어나는 성품, 이게 마음입니다. 그래서 이 마음은 타를 의지해서 일어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시간적으로 변하는 거예요. 하나에 흐름을 얘기하는 겁니다. 흐름이라는 게 물이 쫙 흘러가면 파도도 치고 물결이 일잖아요. 파도치고 물결 일어나는 게 일곱 개 마음이고, 흘러가는 게 자체가 장식입니다. 여덟 종류의 마음이 전부 아뢰야식의 모습이란 말이에요. 전 우주 자체가 아뢰야식인데 그 아뢰야식을 세분해보니까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의식, 말나식이 들어 있더라는 거죠. 그래서 바닷물과 파도는 같은 물이지만 모양은 다르기 때문에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일곱 개의 마음은 항상 외부의 영향을 받아요. 시각으로 얘기하면, 어떤 사물을 보다가도 누가 옆을 쓱~ 지나가면 안 보이잖아요. 눈에 다래끼가 나면 시각 상에 문제가 생기는 거죠. 이렇게 일곱 개의 마음은, 육체의 영향과 바깥 경계의 영향을 받는 겁니다. 육체의 영향을 받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음식물에 영향을 받아요. 어떤 음식물을 섭취하느냐에 따라서 몸 기운이 달라져요. 몸 기운에 의해서 일어나는 게 마음이에요. 그래서 음식도 잘 가려 먹어야 된다고 그러는 겁니다. 술 먹지 말고 고기 먹지 말고 오신채 먹지마라, 이렇게 하는 이유가 그거에요. 『능엄경』에 오신채는 자꾸 음욕심을 일으킨다 했습니다. 이것을 즐기고 계속 섭취를 하면 몸 기운이 돌고, 몸 기운을 타고 일어나는 게 마음인데 그 마음이 음욕심이에요. 이렇게 되면 사람을 보더라도 남자는 여자만 보이고 여자는 남자만 보여요. 음욕심이 동하면 그것 밖에 안 보이는 거예요. 이게 수행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이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의타기성이라는 것을 잘 알아야 하고, 육체도 아뢰야식이고 보이는 이 세계도 전부다 아뢰야식, 아뢰야라고 하는 마음이에요. 그래서 여기 ‘중생심에 섞이어 일어난다네.’에서 중생심은 아뢰야식을 얘기 하는 겁니다. 본문 상에는 심구화합생(心俱和合生)이에요. 여기에 화합이라는 말은 이해 하셨죠? 주관 객관에 상대해서 일어난다. 다시 한 번 확인을 해보죠. 여덟 개의 마음은 주관 객관이 다 있죠. 인식하는 주관도 마음이고, 그 대상인 객관도 마음인데, 그 주관과 객관이 만나서 일어나는 것도 마음이라는 걸 아셔야 됩니다. 그래서 근본 마음인 아뢰야식에서 일곱 개의 마음이 일어났다 사라졌다 하는데, 이 일곱 개의 마음은 알고 보면 아뢰야식의 상분[객관]의 영향을 받아서 일어났다 사라졌다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여기 찻잔과 눈이 만나면 시각이 일어나죠. 두 번째는 이렇게 눈과 형색이 만나면 화합해서 마음이 생긴다고 했죠. 세 번째는 여기 찻잔이라는 것이 아뢰야식 상분[객관]이라는 거죠. 이게 아뢰야식의 상분을 영향 받아가지고 시각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주객, 객이라는 것은 아뢰야식의 객관이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일곱 개의 마음은 아뢰야식의 종자로 있다 이 말입니다. 일곱 개의 마음 중에서 시각에 대해서 얘기 하면, 시각이라는 마음이 아뢰야식의 종자로 있는데, 찻잔이라고 하는 아뢰야식의 상분을 보게 되면 우리 몸도 아뢰야식의 상분이거든요. 몸하고 경계하고 둘이 만나니까 시각이라는 종자가 발현을 해서 시각으로 나타나는 거예요. 그러다가 눈에 보이는 찻잔이 사라지면 찻잔을 보고 있는 시각이 사라집니다. 그러다가 다른 것을 보게 되면 아뢰야식 상분이 이것을 통해가지고 시각이라는 종자가 또 튀어 나오는 거예요. 매순간 그렇다 이거죠. 무엇인가 고정되어 있는 하나가 이리 보고 저리 보고 하는 게 아니에요. 그것을 아셔야 됩니다. 그래서 마음이라는 것은 상속한다, 연속체다 이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그 중에서 연속체라고 이름 부르는 게 의식을 두고 많이 얘기를 합니다. 아뢰야식의 연속체, 상속심(相續心)이라고 합니다. 의식은 상속식이라고 하는데 심(心)은 전체적인 의미가 있고, 식(識)은 주객이 상대해서 아는 마음을 식이라 보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