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宗鏡錄의 冥樞會要의 唯識부분 - (원순 번역)
육진(六塵)을 바람이라 하는가 (강의 - 4)
그 다음에
이것은 장식이 있는 곳에서
모든 식이 일어남을 말하는 거며
나란 놈이 들어있는 의식으로서
사유하는 모든 이치 말함이라네.
‘이것은 장식이 있는 곳에서’
장식 자체가 주관 객관으로 나눠졌는데
장식의 객관계를 보면 일곱 개의 식의 종자가
일곱 개의 마음으로 변현되어서 나타나는 거예요.
그래서 ‘모든 식이 일어남을 말하는 거며’ 이랬어요.
‘나란 놈이 들어있는 의식으로서
사유하는 모든 이치 말함이라네.’
이것은 의역입니다.
원문에 보면 ‘위이피의식 사유제상의(謂以彼意識 思惟諸相義)’이거든요.
이것을 그대로 번역하면,
위이피의식(謂以彼意識), 저 의식으로서
사유제상의(思惟諸相義), 모든 상, 이미지의 뜻을 사유함을 말 한다네,
이렇게 번역을 하면 됩니다.
여기서 의식이라는 말이 왜 나오느냐 하면,
모든 일곱 개의 마음 중에서 의식을 딱 잡아서 얘기를 하는 거예요.
왜 의식을 잡아서 얘기를 하느냐 하면,
여기에 내용을 잘 알다시피
우리가 가장 많이 쓰는 마음이 의식입니다.
수행 주체도 의식이에요.
그래서 여기 보면,
‘저 의식으로서 제상(諸相), 모든 모양이 있는 그 뜻을 사유한다’ 그러는 겁니다.
뜻, 의미를 얘기하는 것은 의식이 하는 것이지
감각이나 말나식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의미부여하는 것은 의식이 하는 거예요.
그래서 찻잔에 뜻을 붙이고 색깔에 뜻을 붙여가지고 얘기 하는 것,
모든 이미지에서 의미부여하는 것은 의식이 한다 그 말이에요.
그래서 ‘모든 상, 이미지의 뜻을 사유함을 말 한다네’
이렇게 얘기 하는 겁니다.
결국 이 말은
감각이라든지 말나식이나 아뢰야식을 알 수 있는 것은
의식에 의해서 알 수가 있다는 겁니다.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도 의식이에요.
말나식이나 아뢰야식의 미세망념을 타파하는 것도 의식이 하는 거예요.
이렇게 타파를 하면 의식이 묘관찰지, 지혜로 바뀌어 집니다.
이런 의식이 수행의 주체라는 것을 잊어버리시면 안 됩니다.
어렵죠?
그럼 실험을 해봐야죠.
이게 찻잔이죠?
보고 있는 것은 시각이죠?
그럼 쿵쿵쿵~ 이렇게 책상을 두드리는 것은 소리죠?
그 소리를 듣는 것은 청각이죠?
그러면 여러분들이 조근 전에 찻잔이라고 보는 시각은 늘 존재합니까?
존재하지 않죠.
그럼 책상을 두드려서 소리를 듣는 순간
찻잔이라고 인식하는 시각은 어디 갔죠?
역시 마찬가지로 두드릴 때는 청각이 있는데
두드림을 그치면 청각이 없죠.
그러니까 마음이라는 것이 독립되어 있는 게 아니고
관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상으로 변하는 거고 늘 존재하는 게 아니죠.
그것을 비어 있는 공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마음의 본질은 공이다, 이런 얘기에요.
시각이나 청각은 확실하게 이해가 되는데
계속 내가 있다고 생각되게 하는 놈은 뭐냐 이거죠.
의식은 상속되는 게 특성이에요.
연속체다 그 말이죠.
그러니까 ‘내다’하는 생각이 한 번 일어나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이상은 ‘내다’하는 게 있다고 보는 거죠.
그렇게 착각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수행을 해가지고 의식의 흐름을 지켜봐야 되요.
이렇게 지켜보게 되면,
‘아, 이 의식이라는 것도 실체가 없구나.
매 순간 바뀌는구나.’ 이렇게 알게 되는 거예요.
매 순간 바뀌니까 이 의식이라는 것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그때 아는 거죠.
그래서 수행을 해가지고 반조(返照)하는 힘,
자기가 하고 있는 모든 일을 되비춰 볼 수 있는 거울이 안 생긴다는 거예요.
이것을 조견(照見)이라는 말을 쓰기도 하고
볼 관(觀)자 관이라고 하고, 간화선에서는 볼 간(看)자 간이라고 하는 겁니다.
이 보는 힘이 생기게 되는 거예요.
그래야 진실을 다 알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게 안 생기면 이런 진실을 모릅니다.
자 봅시다.
묻습니다.
문 : 이와 같은 현식(現識)과 칠전식(七轉識)의 여덟 가지 심식(心識)이
오직 생멸로 무상한 모습입니까, 아니면 실상으로 상주하는 모습입니까.
이게 본질적인 이야기죠.
시간상으로 계속 변하는 것인지 안 변하는 것인지 그것을 알고 싶다는 말이죠.
여기에 현식(現識)은 아뢰야식을 얘기하는 겁니다.
칠전식(七轉識)은 아뢰야식에서 나온 거죠.
그것을 다 합하면 여덟 가지 심식(心識)이 됩니다.
이때 심(心)은 아뢰야식이고, 식(識)은 일곱 개의 마음을 얘기 합니다.
다 합해서 여덟 개의 마음이 생멸, 생겼다 사라졌다하는
무상(無常), 항상 하지 않는 모습입니까,
아니면 진실한 모습으로 상주(常住), 항상 머물러 있는 모습니까, 이렇게 묻죠.
이런 것은 사마타 부분이 아니고 위빠사나 부분이에요.
본질에 대한 얘기는 다 지혜에 대한 얘기에요.
그래서 우리가 법문은 듣지도 않고
사마타 수행한다, 관상법을 한다, 주력을 한다, 절을 한다,
백날 이렇게 해본들 아무 소용이 없고 지혜가 계발이 안돼요.
무지가 타파되지를 않는다 이거예요.
그래서 무지가 타파될 수 있는 것은 법문을 들어야 됩니다.
법문을 들어서 지혜가 계발이 되어야 돼요.
물론 몸으로써 체득한 지혜가 아닌 이해로서의 지혜,
그것을 의지해서 사유를 하고,
실제적으로 수행을 해서 체험을 해야 되는 겁니다.
사유한다는 것을 망상으로 생각하면 안 되는 거예요.
대상 따라서 일어나는 것은 모두가 번뇌 망상이고,
이때 사유한다는 것은 반조하는 힘이 있는 거예요.
이런 번뇌 망상은 어디에서 왔을까,
주객이 상대해서 온 것이다,
주객이 상대하면 실체가 없지,
이런 식으로 사유해서 들어가는 것을 지혜라 그러지
번뇌 망상이라는 게 아니다 그 말입니다.
착각하시면 안 된다는 겁니다.
자,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생멸로 무상한 모습이 맞습니까, 실상으로 상주하는 모습이 맞습니까?
이때는 여기 볼 필요 없이 사유하면 됩니다.
우리가 사유하는 게 맞는지 안 맞는지 여기 확인해 보면 되죠.
아까 일곱 개의 마음이라는 것이 다 변한다는 것은 아셨죠?
아뢰야식도 주객이 나눠져서 상대하고 있는데, 그것도 변하는 존재입니다.
의식은 상속식이라 그러고 이런 아뢰야식을 상속심이라 그럽니다.
변한다, 바뀌어 간다는 것은 항상 하는 게 없으니까 무상한 게 맞죠?
무상은 생멸하는 거죠.
그렇다면 그게 진실이 맞는 겁니다.
간혹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무상이 변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상주하는 게 아니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하죠.
상주하지 않는 것 맞습니다.
그렇지만 실상으로서 상주하느냐 하면,
매 순간 변하는 이 마음의 진실한 모습은 뭘까요?
한 번 생각을 해봅시다.
찻잔을 사유하면,
흙에 물을 썩어서 모양을 만들어서 말려가지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리고 유약을 칠해서 불에 구워냈다 그러면
흙, 물, 불, 바람의 요소가 만나가지고 서로 어우러져서 모양이 됐죠?
그러면 이 화합된 찻잔은 변합니까, 안 변합니까?
변하죠.
던지면 부딪치는 조건에 의해서 멸해버리는 거예요.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버리는 거죠.
그게 무상이에요, 생멸하는 거예요.
그러면 지수화풍 4대에서는 변하지 않고 상주하는 것은 뭐가 있을까요?
형상으로서는 상주하는 것은 없죠.
이게 자아나 실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죠.
실체 없고 자아가 없는 것을 공이라 그러죠.
이렇게 매순간 변하는 속에는 고정 된 것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공이다 그러는 겁니다.
또 착각하시면 안 됩니다.
공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형상 있는 것은 변하고
변화 속에는 자아나 실체가 없기 때문에 공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형상 있는 그대로가 공이 되는 거죠.
그러면 공 가운데는 뭐가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죠.
그래서 『반야심경』에 제법공상(諸法空相), 모든 법에 비어 있는 모습은
불생불멸(不生不滅), 불구부정(不垢不淨), 부증불감(不增不減)이라 했죠.
그러면 시고공중(是故空中), 이런 까닭으로 비어있는 가운데는 뭐라 그랬습니까?
무수상행식(無受想行識)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
무색성향미촉법(無色聲香味觸法)......., 무(無) 무(無) 무(無)잖아요.
반야심경에 다 나와 있어요.
그래서 이런 것은 우리가 사유를 해 봐야 돼요.
그러면 ‘아, 그렇구나, 형상 그대로 비어있는 거구나.’ 알게 됩니다.
그렇다고 비어 있는 것을 실체화 시키면 안 됩니다.
그래서 ‘공 또한 공하다’ 이렇게 얘기 하는 거예요.
그런 이야기가 여기 나옵니다.
공을 다른 이름으로 없을 무(無)자, 모양 상(想)자 무상(無想)이에요.
그래서 상이 없는 것 또한 상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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