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책]/하늘호수로 떠난여행

인디아 어록1

경호... 2009. 3. 3. 08:12

인디아 어록1


눈에 눈물이 없으면 그 영혼에는 무지개가 없다.

다음은 내가 지난 여러 해 동안 인도를 여행하면서 인도인들로부터 들은 인상적인 말들을 모은 것이다. 나는 수첩에 <인디아 어록>코너를 만들어 그것들을 기록해두곤 했다. 인도인들은 짤막한 말로 사물의 핵심을 잘 찌르는 것으로 유명하며, 나 역시 그 말들을 듣고 당황하거나 말문이 막힌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길에서, 기차 안에서, 또는 버스 지붕 위에서 대중 속의 현자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그 재치 있는 순발력과 번뜩이는 통찰력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여행길을 자꾸만 인도로 향하게 만든 것은 바로 인도 여행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이 어록들이었다.


60원 어치의 기억

“신이 나를 기억하는 한  신은 당신도 기억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내게 잘해주었고, 그것을 내 마음이 평생 동안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 남인도 케랄라 주의 코친에서 만난 한 늙은 거지에게 2루피, 약60원 정도를 적선하자 그는 완벽한 영어로 그렇게 말했다. 60원을 얻은 걸 갖고 뭘 그러느냐고 하자 그는 말했다. “그렇지 않다. 나는 지금까지 내게 적선한 사람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다. 만일 당신이 여기에 2루피를 더 얹어준다면 나는 다음 생에서도 당신의 은혜를 잊지 않고 꼭 기억할 것이다. 60원의 위력이 그 정도까지 된다는 걸 그때 나는 처음으로 알았다.


신발 두 켤레

“당신이 신발 두 켤레를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둘 다 신고 다닐 순 없지 않소. 그러니 나머지 한 켤레는 날 주시오.” 역시 케랄라 주의 트리반드룸에서 버스 지붕에 올라타고 여행할 때였는데, 내 배낭 속에 슬리퍼 한 켤레가 들어 있는 걸 목격하고는 맞은편 궤짝 위에 앉은 손톱 시커먼 인도인이 그렇게 말했다.


안 죽었지  않은가

뭄바이에 사는 깨달은 스승 유 지 크리슈나무르티를 만나기 위해 릭샤를 타고 갈 때였다. 속도를 줄이라는 내 거듭된 충고에도 불구하고 인도인 운전사는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결국 릭샤가 전복되고 말았다. 마침 길가 진흙밭으로 떨어져서 목숨을 건졌지만 난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그래서 운전사에게 다가가 죽을 뻔했지 않느냐고 소릴 지르자 운전사는 오히려 화내는 나를 나무랬다. “죽을 뻔했을 뿐이지, 죽지 않았는데 왜 화를 내는 거요? 일어나지 않은 일을 갖고서 분노의 감정으로 쓸데없이 자신을 괴롭히지 마시오.”


눈물과 무지개

“눈에 눈물이 없으면 그 영혼에는 무지개가 없다.”

올드 델리에서 만난 젊은 릭샤 운전사가 인생의 고통에 대해 얘기하던 중 나를 돌아보며 그렇게 말했다.


인연

“난 널 만나기 위해 이번 생에 태어났다. 그러니 내 생활비를 네가 전부 대줘야만 하겠다.” 북인도 바레일리에서 만난 얼굴 지저분한 수도승은 날 보자마자 계속 그렇게 주장했다. 결국 나는 거의 한 달치에 달하는 생활비를 그에게 헌납하고야 말았다.


저울을 준 신

동인도 캘커타 시내에서 둥근 저울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몸무게를 달아 주고 1루피(30원)를 받는 직업을 가진 인도인 남자는 인생이 행복한가를 묻는 내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행복의 양과 불행의 양은 같은 겁니다. 신이 내게 주지 않은 것보다 준 것들을 소중히 여겨야지요. 신은 내게 벌어먹고 살 저울을 주셨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난 얼마나 행운입니까. 이 저울을 주지 않았다면 우리 식구는 굶어 죽었을 거예요.


인도 점성술사

“그대는 내년에 부친을 잃을 것이고, 내후년에 결혼을 해서 5년 뒤 첫아들을 얻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만사형통이로다.”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고 사진 앨범까지 내보이며 자기 자랑을 하던 리시케시의 점성가 스리 쿤다리 바바는 기본 시간 3분에 50루피, 게다가 1분 추가시마다 30루피라는 거금의 복채를 받아 챙기고 나서 그렇게 예언을 했다. 하나도 맞지 않는 점괘였다. 왜냐하면 내 부친은 이미 10년 전에 돌아가셨고, 나도 진작에 결혼을 해서 첫아들 미륵이가 뛰어다닐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사기꾼이라고 소리치며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자 쿤다리 씨는 말했다. “내 점괘가 틀렸다면 그대는 지금까지 자신의 운명에 역행하는 삶을 살아온 것이다. 그러니 그걸 내가 어쩌란 말인가. 아바탐 수크라 사바레끼 랑그 라치! 그대는 돌아가서 이 문장이 무슨 뜻인가를 깊이 명상하라.” 하지만 아바탐 수크라 사바레끼 랑그 라치가 무슨 뜻인지, 실제로 그런 문장이 있기나 한 건지 난 도무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기다림

북인도 자이푸르에서 만난 한 노인은 나더러 자기를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까지 데려다달라고 하소연했다. 내가 이번에는 시간이 없다고 하자 그는 말했다. “그럼 여기서 기다리겠소. 내년에 당신이 다시 올 때까지 말이오. 내년에 다시 이곳으로 와서 나를 꼭 데려가주시오.


돌과 빵

“우리는 밤에 잘 때 배 위에 무거운 돌을 얹어놓고 잡니다. 공복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죠. 그런데 오늘은 이 빵을 뱃속에 넣고 잘 수 있게 돼서 기쁩니다.” 벵갈 지역의 어느 가난하고 배고픈 아저씨가 내가 준 빵덩어리를 들고 돌아가며 그렇게 말했다.


주는 행복

“때로는 주고 싶을 때 줄 수 있는 것도 큰 행복이다. 난 주고 싶어도 줄 게 없다.”  내가 한푼  줄까 말까 망설이고 있자 바라나시의 여자 거지가 그렇게 충고했다.


대단한 것

자정이 넘어 폭우가 퍼붓는 남인도 마드라스 공항에 내린 나는 릭샤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릭샤에 창문이 없었기 때문에 비가 안으로 들이쳐 나는 속옷까지 젖고 말았다. 인도 여행중에 그런 폭우를 만난 것도 처음이었다. 나는 릭샤를 운전하는 늙은 인도인에게, 정말 대단한 비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낫씽 스페셜! 인생에 대단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네.”


단순한 지혜

“단순한 지혜를 추구하라. 지혜에도 복잡한 지혜가 있고 단순한 지혜가 있는데, 무엇보다 단순한 지혜를 가져햐 한다. 예를 들어 어떻게 하면 깨달음에 이르는가를 연구하는 것은 복잡한 지혜이지만 자신이 이미 완전한 존재임을 믿는 것은 단순한 지혜다. 단순한 것이 최고의 것이다.” 북인도 럭나우 출신의 큰 스승 푼자 바바는 나를 포함한 일단의 서양인 여행자들에게 그렇게 충고했다.


순례자의 물병

“성지 순례자의 물병은 성지를 모두 순례했지만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물병으로 남아 있다. 세속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도 이와 같은 것이다.” 북인도의 대표적인 힌두교 성지 리시케시에서 만난 한 힌두 노인은 물병을 들고 걸어가는 내게 라마크리슈나의 말을 상기시켰다.


열다섯 살의 질문

“당신이 시를 쓴다니까 묻겠는데, 당신은 시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깨달았는가? 만일 깨달았다면 그것을 시로써 어떻게 표현하겠는가?” 서부 라자스탄 행 ‘초특급’ 열차 안에서 만난 열다섯 살의 당돌한 소년이 내게  던진 질문이다.


어느 장님의 자기 주장

“스무 살 때 난 스스로 결심했다. 진리를 깨닫기 전에는 결코 눈을 뜨지 않겠다고, 그래서 지난 40년 동안 한번도 눈을 뜨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진리를 깨달았다. 세상을 구경하라고 신이 내게 두 눈을 주셨음을 깨달을 것이다. 그래서 눈을 떴는데, 그 순간 햇빛 때문에 두 눈이 멀어버렸다. 그래서 이렇게 구걸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불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장소 보드카야에서 만난 한 거지는 자신이 장님이 된 사연을 그렇게 설명했다.


우문현답

인도의 물가와 생활비를 묻는 내게 남인도 마드라스의 타밀족 남자는 말했다. “나에게 1백 루피를 줘보시오. 그러면 내가 그 돈을 갖고 며칠을 생활할 수 있는지 보여줄 테니, 아무리 설명을 하면 뭐하겠소, 직접 봐야 제대로 이해가 가지.”


뇌물은 시바신보다 힘이 세다

“지금은 여행 시즌이라서 전혀 좌석이 없소. 내가 철도청 직원을 30년 동안 했지만 내 능력에다 역장의 힘을 합쳐도 도저히 표를 구할 수 없소. 설령 지금 시바신이 내려와 내 대신 이 일을 한다고 해도 당신이 요구하는 표를 만들어낼 수가 없소이다.” 럭나우 기차역의 매표원은 바라나시까지의 표를 원하는 내게 두 손을 내저으며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잠시 후 내가 50루피의 뇌물을 주자 당장에 컴퓨터로 인쇄된 좌석표 한 장을 내밀었다. 그러면서 그는 말했다. “당신은 정말 행운아요. 딱 한 자리가 남아 있었으니 말이오. 이런 걸 발견하는 재주는 아무에게나 있는 게 아니오.”


신년 파티에 참석한 기관사

바라나시행 기차는 다섯 시간이나 연착했다. 그 이유를 묻자 럭나우의 역무원은 말했다.

“기관사가 신년 파티에 참석하느라 잠시 기차를 세워두었기 때문이오. 신경 쓰지 마시오.”

뭘 신경 쓰지 말라는 건지 이해가 안 갔다.


원초적 본능

이른 아침에 호텔 밖으로 나갔더니 극장 앞에 예매표를 사려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무슨 영화이길래 이렇게 난리들인가 하고서 확인해보니 샤론 스톤의 <원초적 본능>이었다. 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인도인들이 이런 말초적인 영화를 보기 위해 장사진을 친다는 것은 약간 상식밖이었다 그래서 나는 줄에 서 있는 젊은이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종교적인 나라에 산다고 하면서 이따위 영화를 보려고 아침부터 난리들인가? 너희들이 존경하는 간디가 이런 광경을 보면 뭐라고 하겠는가?” 그러자 한 젊은이가 말했다.

“당신은 자기 생각에 따라 비판하기 위해 인도엘 온 거요. 아니면 인도인들이 어떻게 사는가를 보러 온거요?”


진정한 도움

캘커타 초링기 지역에서 구걸을 하는 인도인 청년에게,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라고 충고하자 그는 말했다. “지금 나한테 필요한 건 조언이 아니라 실질적인 도움이다. 당신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나한테 주려고 하지 말고 당신의 주머니 속에 있는 걸 조금만 주라.”


비판

뿌나에서 뭄바이로 가기 위해 나는 장거리 택시를 탔다. 택시 뒷좌석에는 인도인 두 명과 호주인 한 명, 그리고 앞좌석에는 운전사와 인도인과 내가 탔다. 뭄바이까지는 다섯 시간 동안 계속해서 들판 지대를 지나야만 했다. 그런데 날이 어찌나 더운지 다들 졸기 시작했다. 나도 잠깐 졸았는데, 꿈속에서 내가 탄 택시가 앞에서 오는 트럭과 충돌하고 말았다. 깜짝 놀라서 눈을 떠보니 실제로 택시 운전사가 졸면서 운전을 하고 있었다. 나는 얼른 핸들을 움켜 잡으면서 운전사 머리를 한 때 때렸다.  운전사는 곧 정신을 차리고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는 생각이 들어 운전사에게 계속해서 주의를 주었다. 그랬더니 그 운전사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 “ 당신은 죽지 않으려고 날 깨운 거요. 아니면 비판하려고 날 깨운 거요?”

'[좋은책] > 하늘호수로 떠난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디아 어록3  (0) 2009.03.03
인디아 어록 2  (0) 2009.03.03
굿모닝 인디아  (0) 2009.02.23
나마스카  (0) 2009.02.17
빈배  (0) 2009.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