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책]/하늘호수로 떠난여행

나마스카

경호... 2009. 2. 17. 17:10

서인도에 위치한 뭄바이는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도시들 중 하나다. 그냥 스쳐 지나가면 콘크리트 건물의 도시처럼 여겨지지만 며칠 동안 머물며 구경하다 보면 그 숨은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뭄바이가 변함없이 인도를 대표하는 도시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도에서 가장 비싼 황금색의 타지마할 호텔 뒤편에는 콜라바 거리가 있다. 배낭 여행자들을 위한 온갖 싸구려 여인숙과 식당이 늘어선 거리이다. 내가 일주일 동안 머문 렉스 여인숙도 바로 그곳에 있었다. 여인숙 맞은편 골목에는 음료수 가게가 하나 있었다. 아침에 내가 지나갈 때마다 그 가게 주인이 문 앞에 나와 있다가 물었다. “나마스카, 오늘은 어딜 갑니까?”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서서 내가 계획한 하루 일정을 설명하곤 했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당연히 유명한 인도문을 보러 가야죠. 그런 다음 해변로를 산책하면서 아라비아해를 감상할 겁니다. 뭄바이가 영화의 도시인만큼 저녁에는 영화라도 한 편 봐야겠지요.” 가게 주인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거 좋은 생각이오. 역시 여행을 제대로 하는군요.” 나는 기분이 우쭐해져서 발걸음도 가볍게 그 자리를 떠났다. 이튿날 나는 다시 가게 주인과 마주쳤다. 그는 또 물었다. “나마스카, 오늘은 어딜 갑니까?”


나는 또 걸음을 멈추고 서서 지도까지 꺼내 보이며 설명했다. “오전에는 자이나교 사원에 들렀다가 오후에는 화랑가를 구경할 겁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네루 공원에 가서 뭄바이 시내를 내려다보는 것도 좋겠지요. 어떻습니까. 내 계획이?” 그러자 아주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대단히 훌륭합니다. 역시 여행을 많이 해본 사람이라서 다르군요.” 아침부터 칭찬을 들은 나는 랄랄라 휘파람을 불며 자이나교 사원을 향해 출발했다. 그런데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들을 구경하느라 피곤한 나머지 저녁에 돌아와서는 세수도 제대로 못하고 스러졌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가게 주인은 아침마다 내게 어딜 갈 거냐고 물었고, 나는 더 많은 계획을 자랑했다. 다른 도시에서는 잘 가지도 않던 식물원고 동물원도 구경했으며, 썰물 때를 기다렸다가 바다를 지나 알리 무덤까지 참배했다. 그밖에도 가이드북이나 지도에 표시된 이름난 장소는 모두 구경했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몸살이 나 쓰러질 지경이었다.  닷새가 지나고 그 다음날 나는 또다시 여인숙 골목에서 그 가게 주인과 마주쳤다. 그는 어김없이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나마스카, 오늘은 또 어딜 갈 겁니까?” 나는 입술을 가리켜 보이며 말했다. “너무 돌아다녀서 입술이 다 부르텄어요. 이젠 볼 만큼 봤고 하니까 오늘은 그냥 인도문 앞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구경할래요.” 그러자 가게 주인이 말했다. “이제야 정말로 여행하는 법을 터득했군요. 좋습니다. 나도 함께 갑시다.” 그렇게 해서 그날 나는 그 가게 주인과 함께 아침 햇살을 받으며 인도문이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그리고는 인도문 앞 해변가에 걸터앉아 하루 종일 행인들을 구경했다. 피리를 불어대는 코브라 아저씨도 보았고, 시골에서 올라온 촌스런 인도인들도 보았다. 그리고 성지 참배 왔다면서 허리에 돈가방을 차고 인도문 앞을 기웃거리는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도 만났다.  오후에 날이 더워졌을 때 우리는 근처 리어카에서 코코넛 한 개을 사다가 사이좋게 나눠 마셨다. 그리고 아라비아해의 미풍을 받으며 저녁 거리를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이튿날 나는 뭄바이를 떠났다. 배낭을 지고 길을 나서는 내게 가게 주인이 말했다. “나마스카, 오늘은 어디로 갈 겁니까?” 나는 대답했다.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가야죠. 꼭 뭘 구경하러 온 건 아니니까요.” 가게 주인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어디로 가든지 너무 자신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지 마시오. 한 장소에 앉아서도 많은 걸 볼 수 있으니까요. 좋은 여행이 되길 빌겠소. 그럼 잘 가시오. 나마스카!” 나마스카는 인도인들의 인사말로 ‘당신 속의 신에게 절을 한다’는 뜻이다. 나는 가게 주인의 축복을 받으며, 한때 일곱 개의 섬이었으며 훗날 영국 왕 찰스 2세의 결혼 지참금으로 바쳐지기도 했던 아름다운 도시 뭄바이를 떠났다. 그 가게 주인처럼, 내 여행의 발길이 닿는 곳 어디에나 나를 인도하는 훌륭한 스승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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