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책]/하늘호수로 떠난여행

굿모닝 인디아

경호... 2009. 2. 23. 21:24

한 대학 교수가 있었다. 그는 미국인이었다. 캘리포니아의 UCLA대학 사회학과 교수였다던가. 어느 날 그는 동료 교수들과 함께 네팔로 관광 여행을 떠났다. 도중에 그는 여행 경유지인 인도 북부의 바라나시에서 하루를 머물게 되었는데............................

여기서 그의 이야기는 갑자기 끝이 난다. 왜냐하면 존 아무개라는 그 교수는 그곳 바라나시에서 평생을 보내게 되었으니까. 그는 네팔로도 가지 않았고, 미국으로도 돌아가지 않았다. 생에서 그런 순간을 조심해야 하리라, 저기 어딘가에서 인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꽃과 태양과 비의 나라, 사막과 해변과 만년설의 나라, 영원한 지혜를 축복하는 신들의 나라가!

어느 순간엔가 우리는 이 평범한 일상을 탈출해 그곳으로 영원히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인도.

‘인도인들은 정말로 손으로 음식을 먹을까요? 거리에선 요가수행자들이 물구나무를 서 있을까요? 소를 숭배하는 나라라서 도심지 한복판에 소떼가 어슬렁거릴까요? 그들에게선 카레 냄새가 날까요? 갠지스 강에 시체와 꽃을 버리고, 또 그 물을 성수라고 마실까요?’


이 모든 물음에 대한 대답은 ‘예스’다. 인도는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서구 문명과 만났지만, 여전히 가상천외하고 파격적인 나라다. 마케도니아의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은 인도가 페르시아 건너편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인도를 정복하면 곧 세계를 제패하는 것’이라 믿고 역사적인 동방원정 길에 올랐다.  기원전 331년, 티그리스 강가에서 페르시아인을 결정적으로 물리친 아렉산더는 군사를 동쪽으로 몰아 마침내 인도땅에 도착했다. 그의 군대는 별다른 저항없이 인도 북서부 지역을 점령했다. 그때가 기원전 326년의 일이었다. 그리하여 인도는 영원히 희랍정복자의 손에 넘어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두 해가 채 가기 전에 알렉산더는 도망치듯이 인도를 떠났고,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인도를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득한 서쪽 땅 바빌론에서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생을 마쳤다. 역사가들은 세계 정복을 꿈꾸었던 한 위대한 인간을 파멸로 이끈 것은 다름아닌 아대륙 인도였다고 주장한다. 알렉산더는 인도를 작은 반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더스 강을 건너 조금만 전진하면 반대편 해안에 도착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인더스 강을 건넜을 때 막상 그의 앞에는 광활하기 그지 없는 마지의 들판이 나타났다. 기원전 326년 그해, 인도를 정복하고 인더스 강가에서 쉬고 있던 알렉산더의 눈에 몇 명의 탁발승 모습이 비쳤다. 탁발승들은 나체의 몸으로 햇볕을 쬐며 명상에 잠겨 있거나 한가롭게 졸고 있었다. 그들은 도무지 주위 사건에는 무관심한 듯했다. 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문하생이기도 했던 알렉산더는 문득 그들이 소문으로만 듣던 동방의 현자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젊고 현명한 부하 오네시크리토스를 불러 그들이 뭐하는 자들인가를 묻게 했다. 오네시크리토스는 그 탁발승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당신들은 뭣한는 자들인가?”  탁발승 하나가 조용히 그를 올려다보더니 이렇게 반문했다. “그렇게 묻는 그대는 누구인가?” 오네시크리토스는 자신을 설명했다. “나는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의 명을 받들어 당신들이 누구이며 무엇을 추구하는 자들인가를 묻고 있는 중이다. 당신들은 누구인가?” 그러자 탁발승은 말했다. “왜 그대의 대왕이란 자는 직접 찾아와서 묻지 않는 것인가? 중개인을 통해 우리가 누구인가를 알고자 한다면, 이는 진흙탕에서 맑은 물을 구하려는 것과 같다.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를 진정으로 알고자 한다면 그 역시 우리처럼 옷을 모두 벗어 던지고 겸허하게 이 태양 아래 앉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알렉산더처럼 대군을 이끌고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인도에 가진 않는다. 이제는 인도 여행이 별로 특별한 것이 아닌 세상이 되었다. 책방의 진열장에는 각종 인도 여행기가 즐비하다. <<인도 기행>> <<인도 방랑>> <<인도 여정>> <<인도 성지 순례>>...어디 책뿐이랴. <인도로 가는 길> <시티 오브 조이> <리틀 부다> 등의 인도 배경 영화가 수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다. 거리에는 인도치마를 입은 처녀들이 오가고, 인도 액세서리를 파는 가게도 성업중이다. 바야흐로 인도 열풍이다. 인도는 더 이상 멀고 신비한 나라가 아니다. 신문을 펼쳐보라 그러면 그곳에 인도 여행을 권유하는 항공사의 광고문이 “인도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은 모두 붓다의 얼굴을 닮아 있어요” 하면서 유혹해 온다.  그러나 인도는 결코 다가가기 쉬운 나라가 아니다. 열 번을 여행했지만 인도는 여전히 내게 불가사의하고 신비한 나라다. 더럽고, 익살맞고, 황당하고, 고귀하고, 기발하고, 화려하다. 인간의 모든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것들이 뒤범벅되어 마술처럼 펼쳐진다. 인도뿐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가 그러하지 않은가. 또한 인도인들은 못났고, 가난하고 마구 밀쳐대고 불구자 투성이다. 고집 세고, 낙천적이고, 기품 있고, 성스럽고, 때로는 슬플만치 삶에 대해 열정적이고, 동시에 베짱이보다 더 게으르다.


도시든 마을이든 어디에나 즐비한 신전의 신들은 수천 년 전에 탄생한 것들인 반면에, 인도인들은 여분의 신장이나 안구를 팔아서 냉장고와 전기밥통을 사들이기도 한다. 그들은 먹을 것도 없으면서 아침마다 신에게 바친다며 강물에 우유를 붓고 푸웅푸웅 소라고동을 불어댄다. 가장 오래된 사원 전체가 남녀의 현란한 성행위 장면으로 조각돼 있는가 하면, 현대식 건물 벽에다 소똥을 말린다고 덕지덕지 발라놓기 일쑤다. 거지들은 초현대 건물 옆에 비스듬히 누더기 천막을 걸쳐놓고 살면서 아예 닭과 염소까지 친다. 오래된 성벽을 훔쳐가 집을 짓는 바람에 자이푸르의 유명한 성은 일곱 개의 문만 남고 성벽 대부분이 사라져버렸다. 물건값을 계속해서 깎으면 “그렇게 물건값을 깎으니까 넌 행복하냐?”고 상인들은 반문한다. 절제와 금욕의 도롤 실천한다며 거리에서 자신의 머리카락을 마구 쥐어뜯거나 볼따구니를 쥐어박는다. 아예 땅속에 들어가 얼굴만 내놓고 몇 년을 사는 요가 수행자도 있다.  서인도 뭄바이 해변로에선 보석 같은 아라비아 해를 감상할 수 있고 남인도 마드라스의 해변에서는 성난 노도처럼 파도쳐오는 벵골만을 마주할 수 있는 나라!  그리고 북쪽 캐시미르 지방에선 신비의 설국들이 우뚝 다가서는 나라.........................


인구는 9억을 넘었고, 2백만 명의 박사와 1천만 명의 성자가 사는 나라! 탁발승들은 마음의 평화를 찾아 인도 전역을 방랑한다. 그들이 교리에 따르면 인간은 8천4백만 번의 윤회를 거쳐 비로소 해탈에 이른다. 거지들은 돈을 줘도 절대로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선행을 베풂으로써 자신의 악업을 씻으니,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바로 우리들이라는 것이 거지들의 관점이다. 그리고 가난은 극복해야 할 불행이 아니라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업보다. 그런가하면 그들은 입만 열면 인생의 목적이 지혜의 획득과 마음의 평화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수천 년 전부터 소를 숭상하여, 우주의 창조주인 신 크리쉬나는 소와 소물이꾼 사이에서 자라났다. 현대식 건물이 늘어선 도심지 거리에는 소떼와 자동차와 자전거와 염소, 닭, 돼지들이 행렬을 이룬다. 서양 역사에서 1000년이라고 하면 긴 시간이다.  로마 제국의 발흉, 쇠퇴, 멸망은 모두 이 기간 사이에 일어났다. 고대 그리스는 그 절반이 채 못되는 동안에 융성하고 붕괴했다. 그런데 힌두교는 그 기초를 구축하는 데만 꼬박 1000년(기원전 1500년경부터 500년경까지)의 세월이 걸렸다. 그러나 여전히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인구의 9할이 화장실을 이용하지 않는다.


1492년 콜럼버스는 황금을 찾아 인도를 향해 돛을 올렸다. 그리고 그는 엉뚱한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해서 그곳을 인도라 부르고, 그곳 사람들을 인디언(인도인)이라고 부르는 인류사 최고의 코미디를 행했다. 신라의 승려 혜초와 당나라의 현장은 몇 년을 뚜벅뚜벅 걸어서 서역국 인도에 도착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다시는 오지 않겠다며 떠나지만 1년도 안되어 다시 찾게 되는 나라!  자신과 다른 이들을 개선하고자 나라를 떠나는 자는 철학자이지만, 호기심이라 불리는 무목의 충동에 의해 이 나라 저 나라를 찾는 자는 방랑자에 불과하다고 고울드는 말했다. 나는 그런 방랑자가 되고자 노력했다. 인더스 강가에서 탁발승들이 오네시크리토스에게 반문했듯이, ‘타인이 누구인가를 묻기전에 나 자신이 누구인가’를 반문해보는 장소가 나에게는 다름아닌 인도였다. 모든 가주말나무 아래가 곧 인도였다. 삐걱대며 지나가는 수레 리따가 인도였다.


그곳에서 나는 때로 당혹스러웠고, 어지러웠으며, 시기를 당하기도 했고, 무서워 도망치기도 했다. 허무하거나. 존재 밑바닥까지 행복하기도 했다. 눈을 똑바로 뜨고서 나 자신과 마주서본 적이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인도였다. 어떤 이들은 인도는  자기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이라고도 단언한다. 그러니 우리는 곧이 어디로 떠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형이상학적 관념의 비약을 꾀하기 전에, 허름한 여인숙의 창문을 열어젖히고 아침의 인도와 마주하는 것이 나는 좋았다. 아열대의 공기, 이상한 새들, 꽃과 차의 향기, 신전의 인상적인 지붕들, 사리를 휘감고 광활한 들판 너머로 신기루처럼 사라져가던 여인들, 그러한 것이 나는 좋았다.  내 인생의 황금기는 여행에 있었으며, 특히 인도 여행은 그 황금기의 열매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삶을 배웠고, 세상을 알았다. 밤을 지나보내고, 여인숙 문을 나서면 어디나 인도였다. 벌써부터 경적을 울려대는 릭샤와 소떼와 해변으로 똥누러가는 인도인들에게 나는 큰소리로 아침 인사를 하곤 했다. “굿모닝 인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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