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책]/하늘호수로 떠난여행

빈배

경호... 2009. 2. 14. 07:47

작은 배를 타고 그를 만나러 가곤 했다.  그는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에 지붕이 있는 배 한 척을 띄워놓고 그 위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모우니 사두, 곧 침묵의 성자였다. 여행자들이  갖다주는 음식으로 생활하면서 그는 그렇게 30년이 넘도록 침묵 수행 중이었다. 배를 노 저어 그의 배로 가면 일렁이는 물결 위에 긴 머리를 한 그가 앉아 있었다. 그는 말없이 내 눈을 바라보았다. 고요한 신이 내 영혼 구석구석 파고들어서 어떤 때는 똑바로 그를 쳐다보고 앉아 있기가 어려웠다. 우리는 그렇게 연인처럼 몇 시간이나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어떤 사람의 눈을 그토록 오랫동안 바라보고 앉아 있었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의 눈을 바라보고 앉아 있으면 마치 큰 산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유유히 흘러가는 긴 강을 보고 있는것 같기도 했다. 두 영혼의 만남엔 말이 필요없음을 그는 가르쳐주었다.


우리가 그렇게 앉아 있는 사이에도 강둑에선 아수라장이 벌어지고 있었다. 시체 태우는 연기, 물을 공중에 흩뿌리며 요가 목욕을 하는 사람, 뭘 사라고 소리 지르는 사람, 집단으로 몰려와 강물에 뛰어드는 순례자들,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관광객들.............

모우니 사두가 탄 배는 그 모든 소음을 초월해 있었다. 그의 눈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눈물이 나기도 하고, 춤을 추고 싶기도 하고, 나 자신이 물거품이 되어 아득히 사라져버리기도 했다. 인도에 와서 여러 명상법을 배우러 돌아다녔지만 그의 눈을 바라고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명상에 빠져드는 것을 경험했다. 인도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누군가를 만나면 오래도록 그 사람의 눈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침묵하는 모우니 사두에게서 전염된 것이다. 이듬해 나는 다시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을 찾아갔다. 모우니 사두가 아직도 묵언 수행중인 채로 배 위에서 살고 있었다. 서늘한 눈빛도 여전한 채로, 나는 또다시 그의 눈을 바라보며 몇 시간씩 앉아 있곤 했다.


그러나 몇 해가 지나 네팔을 거쳐 다시 바라나시로 갔을 때는 사두는 떠나고 없었다. 사람들에게 물어도 그가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했다. 강 위에 빈 배만이 떠 있었다. 나는 그 빈 배로 가서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호텔로 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그 모우니 사두는 사실은 어디로도 가지 않았다. 그는 내 안에 그대로 살아 있다. 지금도 나는 명상을 하려고 눈을 감으면 지붕이 달린 작은 거룻배 위에서 그 모우니 사두와 함께 마주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 하루 일을 마치면 나는 그의 배를 타고서 그와 함께 저 먼 세계로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곤 한다. 그의 배는 산과 지붕들을 넘기도 하고, 우주 공간을 날아 외계로도 넘나든다.

신나지 않은가!

나는 그와 함께 내 안과 밖 어디든지 갈 수 있다. 많은 스승들이 내게 있었다. 그러나 말 한마디 없이 가장 중요한 것, ‘침묵’을 가르쳐준 스승은 그 모우니 사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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