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책]/하늘호수로 떠난여행

타고르 하우스 가는 길

경호... 2009. 1. 31. 08:59

타고르 하우스에 가려고 마음을 먹고 숙소인 구세군 회관 호텔을 나선 것은 오전 열 시경이었다. 타고를 하우스는 동인도 캘커타가 낳은 위대한 시인 라빈드라나드 타고르의 생가이자힌두 무용과 문학, 음악 등의 행사가 열리는 문회센터이다. 그런데 지도를 호텔방에 놓고 나오는 바람에 길에서 사람들에게 위치를 물어야만 했다. 거리엔 벌써부터 인도인들로 가득했다. 수레를 고정시키고 1루피짜리 차를 파는 사람, 재봉틀로 옷을 박는 사람, 코코넛 열매를 가득 싣고 이제 막 장사를 시작하는 남자...., 그는 많이 팔게 해달라고 코끼리 얼굴을 한 가네쉬 신에게 연신 향을 피워 올리며 코코넛에 대고 저을 하고 있었다. 그 옆을 맨발로 달려가는 인력거꾼과 길게 하품하는 눈꼽이 낀 여자 거지. 나는 어떤 큰 호텔 근처에서 길가에 하릴없이 서 있는 중년 남자에게 타고르 하우스로 가는 방향을 물었다. 그러자 그는 대뜸 내게 어디서 오는 길이냐고 물었다. 나는 뒤를 돌아보며 대충 구세군 회관 호텔 족을 가리켰다. 그러나 그는 그런 뜻이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내 국적을 묻는 것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고 다시금 타고르 하우스로 가는 길을 물었다. 남자는 “아, 타고르 하우스!”하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번에는 대뜸 내 나이를 물었다. 나는 할 수 없이 그에게 나이를 말했다. 그리고는 또다시 타고르 하우스의 위치를 물으려는 찰나, 그는 틈을 주지 않고 나의 직업과 월수입을 물었다. 오전이지만 벌써부터 태양이 뜨거웠다. 나는 약간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검은테 코안경을 쓴 그 인도인 남자는 마치 나에 대해 모든 사항을 알아야만 타고르 하우스로 가는 방향을 가르쳐주겠다는 태도였다. 그는 연거푸 “아, 타고르 하우스 말이요?” 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또다시 터무니없는 것들을 묻는 것이었다. 지금 신고 있는 신발은 얼마짜린가? 손목의 인도 팔찌는 어디서 샀는가? 그 파란색 바지는 한국의 전통 의상인가? 바라나시에도 가보았는가? 혹시 호텔이나 민박이 필요하진 않는가? 마치 그런 것들을 묻기 위해 그는 오랜 세월 동안 캘커타에서 나를 기다려온 사람 같았다. 마침내 그 인도인이 정말로 타고르 하우스의 위치를 가르쳐주려고 마음먹은 듯했을 때, 뜻밖에 방해꾼이 나타났다.


이 방해꾼은 약간 나이를 더 먹은 힌두 노인이었는데, 입안 가득 물었던 붉은 색 판(마약 성분의 씹는 담배) 을 탁! 하고 땅바닥에 내 뱉으며 우리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는 대뜸 무슨 일이냐고 우리에게 물었다. 위압적인 말투는 자신이 단순히 할 일이 없어서 묻는 게 아니라는 식이었다. 코안경을 쓴 인도인이 내가 지금 타고르 하우스를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자기는 오랫동안 바라나시에서 살다가 왔기 때문에 타고르 하우스가 어디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그제서야 실토하는 것이었다. 나는 기가 막혀서 그 인도인을 노려보았지만, 그는 뭐가 어떠냐는 식으로 태연한 표정이었다.  나는 이번에는 힌두 노인에게 타고르 하우스의 위치를 물었다. “타고르 하우스?” 힌두 노인은 매서운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대뜸 나더러 어디서 오는 길이냐고 물었다. 나는 구세군 회관 쪽을 가리켰다. 그러자 그는 엄숙하게 고개를 저었다. 나의 국적이 어디냐는 것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또다시 길고 긴 일련의 질문에 대답해야만 했다. 타고르 하우스는 아득히 멀어 보였다. 타고르는 일생을 다 보낸 다음에 자기가 태어난 그 장소로 돌아와서 생을 마쳤다고 한다.


인두 노인은 타고르 하우스를 정말로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해서 엉뚱한 질문을 퍼부어대고, 그사이에 자전거를 끌고 가던 또 다른 노인이 “무슨 일이야?” 하고 끼어들었다. 힌두 노인이 또다시 붉은색 침을 땅바닥에 뱉으며 나대신 설명하고 나섰다. 자전거의 남자는 대번에 “요런 궁금한 인간이 다 있나!” 하는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대뜸 나보고 어디서 오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머리가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내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그 참에 보따리를 들고 가던 터번 두른 시크교인도 참여했다. 맨발의 사내아이는 영어인지 힌두어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따고르, 따고르!” 하며 떠들었다. 그러는 사이에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덧 일곱 명이 넘는 인도인들이 내 주위에서 와글거리고 있었다. 지나가던 택시 운전사도 이때를 놓칠세라 차를 멈추고 대화에 끼여들었다. 어떤 사람은 타고르 하우스가 후글리 강 건너편에 있다고 주장했고, 손바닥을 탁탁치며 반대편 방향을 가리키는 사람도 있었다. 시크교인은 나더러 도대체 무슨 이유로 타고르 하우스에 가려고 이 난리냐고 따지고 들었다.


자전거를 타고 온 남자는 누가 자전거를 훔쳐 갈까봐 핸들을 꽉 움켜잡은 채, 타고르 하우스라면 자기가 맨날 지나치기 때문에 잘 알고 있는데 무슨 주장들이 이렇게 많으냐고 언성을 높였다. 내가 맨 처음에 길을 물었던 검은테 코걸이 안경 쓴 남자도 여전히 질세라, 자기는 바라나시에서 오래 살다가 와서 이곳 지리를 잘 모르긴 하지만 그래도 타고르 하우스는 북쪽에 있는 게 틀림없다며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 광경을 줄곧 지켜보고 있던 근처 힌두 식당의 문지기도 더 이상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논쟁에 합류했다. 그는 자기라면 골치 아프게 타고르 하우스에 가지 않고 시장에 가서 유명한 다르질링 차를 사겠다고 말하면서, 내가 원한다면 자기 삼촌이 운영하는 괜찮은 가게를 소개하겠다고 날 설득했다. 나는 뭐가 뭔지 알 수도 없고 머리가 어지러워서 그 자리를 떴다. 사람들은 이제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자기들끼리 열을 올리며 입씨름을 벌이느라 정작 주인공인 내가 떠나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동인도 캘커타.  아직도 지구상에 동화의 나라처럼 존재하는 인도의 가장 가난한 도시. 공중에서는 햇볕에 섞여 모래와도 같은 것들이 반짝이며 내려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공해 가루라고도 했고, 멀리 벵골만에서 날아온 항사가루라고도 했다. 하지만 내게는 그것이 아득히 먼 히말라야의 눈가루처럼 보였다. 그것들은 가난하지만 순박한 인간들의 삶 위로 형형색색의 만다라를 그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그날 나는 오후가 지나서 타고르 하우스에 도착했다. 더 많은 인도인들의 더 많은 질문에 답하고 나서야 제대로 길을 물을 수 있었다. 타고르가 <기탄잘리>에 쓴 시의 주인공이 곧 나 자신이었다. “내 여행의 시간은 길고 또 그 길은 멉니다. 나는 태양의 첫 햇살을 수레로 타고 출발하여 수많은 별들에게 자취를 남기며 광막한 우주로 항해를 계속했습니다. 당신에게 가장 가까이 가는 것이 가장 먼 길이며, 그 시련은 가장 단순한 음조를 따라가는 가장 복잡한 것입니다. 여행자는 자신의 문에 이르기 위해 낯선 문마다 두드려야 하고, 마지막 가장 깊은 성소에 다다르기 위해 온갖 바깥 세계를 방황해야 합니다. 눈을 감고 ‘여기 당신이 계십니다’ 하고 말하기까지 내 눈은 멀고도 광막하게 헤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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