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책]/하늘호수로 떠난여행

미스터 씽

경호... 2009. 2. 4. 09:32

남인도 하이데라바드에서 북인도 고락푸르로 가는 3등석 기차 안에서의 일이다. 나는 옆좌석에 앉은 시크교인과 친구가 되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신의 존재를 믿습니까?” 그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는 검은 터번을 머리에 두른 중년 남자였다. 그의 이름은 인데르짓 씽이었다. 나는 그를 미스터 씽이라고 불렀다. “미스터 씽, 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미스터 씽이 대답했다. “신은 내 옆에 계십니다.” 깜짝 놀라는 척하며 내가 말했다.

“당신 옆에는 지금 내가 앉아 있는데요. 내가 신이란 말인가요?” 그랬더니 미스터 씽이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아, 그렇군요. 물론 신은 당신 속에도 계시고, 이 기차 안에도 계시고, 우리 집에도 계십니다.” “그럼 내가 당신이 사는 집에 가봐도 되겠습니까?”

“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섭니까?” “아닙니다. 미스터 씽, 난 다만 당신이 사는 집에 가보고 싶을 뿐입니다.” “좋습니다. 당신과 친구가 됐으니 우리 집에 초대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서 원래 고락푸르에서 내릴 예정이었던 나는 미스터 씽의 집에 초대받아 도중의 럭나우에서 기차를 내렸다. 하이데라바드에서 럭나우까지의 기차 여행은 38시간이 걸렸다. 미스터 씽의 집은 럭나우 시내에서 10분 거리인 알람바그 가에 있었다. 집의 이름은 반다리 빌라였지만, 단층에다 원룸 형태의 집이었다. 방이 곧 거실이고, 거실이 곧 방이었다.

“미스터 씽, 당신의 성소는 어디에 있습니까?” 시크교인의 집에는 신에게 기도를 드리는 밀실이 있다는 걸 들은 적이 있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미스터 씽은 두 손을 벌려 거실을 가리키며 말했다. “성소라니요? 나에겐 성소가 따로 있지 않습니다. 이 집 전체가 내 성소입니다.” 미스터 씽에게는 두 명의 아이가 있었고, 부인은 전형적인 인도 여인이었다. 미스터 씽은 전기회사에 다니기 때문에 집 안에서 사용하는 전기료는 면제 혜택을 받았다. 월급은 한 달에 4천 루피(12만원), 결코 적은 월급이 아니다. 미스터 씽은 휴가를 맞아 가족을 데리고 남인도 하리데라바드에 있는 시크교 성전을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두 아이는 외국인의 방문에 무척 들떠서 걸상을 들고 온다, 바나나를 가져온다 하며 야단이었다.


저녁을 기다리는 사이에 내가 물었다. “미스터 씽, 당신은 갠지스 강에서 목욕을 하지 않습니까? 인도인들은 흔히들 갠지스 강을 강이 아니라 어머니이자 생명의 여신이라고 하던데요.” 이웃집에서 빌려온 팔걸이 의자에 앉아서 미스터 씽이 말했다. “우리 시크교인들은 신분 차별 제도나 갠지스 강 순례에 반대합니다. 강에서 목욕을 하거나 그 물을 마신다고 해서 불결한 마음이 씻어지는 건 아닙니다.” 내가 또 물었다. “당신의 신은 당신에게 무엇을 가르칩니까?” “인내심을 갖고 생을 살아갈 것과, 타인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신은 우리에게 세속적인 것에 뜻을 두지 말고 영적인 길을 걸어가라고 가르치지만, 동시에 성실한 삶을 살라고 가르칩니다.” 저녁은 성찬이었다. 온갖 인도 음식과 과일이 좁은 테이블에 가득 올라왔다. 냉장고는 없었다. 다른 인도 가정처럼 음식은 모두 손으로 먹었다. 미스터 씽의 집에 전화나 전축은 없었다. 구닥다리 텔레비전이 유일한 전자제품이었다. 구식 카메라가 하나 있긴 했다. 50밀리 표준렌즈가 달린, 일회용 카메라처럼 생긴 인도제 카메라였다..


미스터 씽은 자기 집을 방문한 손님을 위해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말씨는 부드러웠고, 가식이 없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한번도 허풍을 떨거나 경박하게 웃지 않았다. 그의 부인 역시 기품이 있었다. 무엇을 물어도 미소짓는 게 전부였으며, 함부로 대화에 끼여들지 않았다. 원룸뿐인 집에서 전부 다 함께 잘 수는 없었다. 외국 손님을 위해 미스터 씽은 급히 잠자리를 마련했다. 집 근처에 있는 친구 소유의 건물 2층이 마침 비어 있었다. 미스터 씽은 매트리스와 담요를 끌어안고 가서 그곳에다 편안하게 자리를 깔아주었다. 어디서 모기향까지 구해왔다. 다음날 아침, 나는 미스터 씽의 가족과 함께 럭나우 박물관을 구경했다. 우리는 박물관 앞뜰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나 때문에 미스터 씽은 그날 아침 사원 예배에 불참했고, 회사도 결근했다. 미안한 표정을 짓는 나에게, 그는 자기 집에 귀한 손님이 왔는데 그것이 무슨 문제냐고 반문했다. “신은 나에게 우정과 사랑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니 신께서도 우리의 만남을 기뻐하실 겁니다.” 그러면서 미스터 씽은 덧붙였다. “나는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순 없습니다. 그리고 그건 내가 할 일이 아닙니다. 난 다만 신의 존재를 믿기에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할 분입니다. 신은 나의 목표가 아니라 나의 기준입니다.”


그날 밤 열 시 30분에 나는 럭나우 역에서 바라나시 행 기차를 타기로 되어 있었다. 미스터 씽은 직장 출퇴근을 위해 스쿠터 한 대를 갖고 있었다. 그는 뒷자리에 아내를 태우고 기차역까지 환송을 나왔다. 어두운 럭나우의 밤거리를 내가 탄 릭샤가 앞서 달리고, 뒤에서 미스터 씽의 스쿠터가 붕붕거리며 따라왔다. 럭나우 기차역은 인도의 기차역답게 인파로 가득했다. 수많은 여행자들이 야반도주를 하듯 기차역 바닥에 세간을 늘어놓고 잠들어 있었다. 기차 또한 인도의 기차답게 몇 시간이나 연착했다. 떠나는 걸 보겠다며 한 시가 넘도록 기차를 기다리다가, 미스터 씽과 아내는 마침내 아쉬운 작별을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역 앞까지 나가서, 스쿠터를 타고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스쿠터 뒤에 매달린 발간 등이 가물거리며 어둠 속으로 멀어져갔다. 자기 짚에 찾아온 이방인 친구를 위해 자신들에게 가장 중요한 종교 행사도 취소하고 회사까지 결근하는 미스터 씽이 있었기에, 기차역에서 몇  시간 정도 기다리는 건 그다지 힘든 일이 아니었다. 새벽 네 시경에 기차가 꽈앙  하고 경적을 울리며 미안한 기색도 없이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나는 인파를 헤치고 바라나시행 기차에 뛰어올랐다. 그때가 12월31일, 그해의 마지막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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