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책]/하늘호수로 떠난여행

바보와 현자

경호... 2009. 1. 20. 00:34

스와미 아난다는 바보였다. 누구나 그걸 알고 있다. 그의 얼굴에서 풍겨나는 것이 그가 바보라는 걸 잘 말해주었다. 발육이 정지된 저능아는 아니었지만, 왠지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게다가 성격 또한 농담을 모르고 심각해서 걸핏하면 화를 냈다. 그것 때문에 오히려 주위 사람들의 놀림감이 될 때가 많았다.  그는 내가 생활하고 있던 서인도 뭄바이 근처의 명상센터에서 문지기 노릇을 했다. 물론 누가 시켜서 그가 문지기를 한 건 아니고, 순전히 그가 자청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스스로 그런 결정을 한 데는 그 명상센터를 이끄는 스승이 바로 그의 친형이라는 점이 작용하고 있었다. 그의 형은 다름아닌 20세기 최고의 스승이라고 일컬어지는 오쇼 라즈니쉬였다. 오쇼 라즈니쉬는 그 얼굴에서 풍겨나는 아름다운 인상만으로도 전 세계의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물론 용모로써 내면의 경지를 평가할 순 없지만, 영혼을 꿰뚫는 듯한 빛나는 두 눈과 아름다운 수염은 현자라고 부르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출생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이번 생으로 내 인생을 완성하기 위해 신중하게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났다. 전생에서 죽은 뒤, 나는 영적 완성을 위해 5백년 만에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이때 나는 더없이 영적이고 순수한 심성을 가진 부모를 선택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런데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그의 동생은 생김새가 정반대였다. 물론 전체적인 모습은 닮았지만 얼굴에 약간 심술기가 있고 어수선한 수염 역시 웃음을 자아낼 뿐이었다. 그래서 곧잘 그는 우리들의 장난에 걸려들었다. 명상센터에 드나들기 위해선 입구에서 출입증을 제시해야만 했다. 그 출입증을 검사는 것이 스와미 아난다가 맡은 일이었다. 우리는 그를 놀리기 위해 일부러 출입증을 내보이지도 않고 명상센터 안으로 달아나곤 했다. 그러면 그는 버럭 화를 내며 뒤 쫒아왔다. 그가 우리를 붙잡아 마구 화를 낼라치면 우리는 이렇게 맞받아치곤 했다. “너의 형은 저렇게 위대한 인간이 되어 모두를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고 있다. 그런데 넌 동생이 되어서 고작 문지기 노릇만 하고 있단 말인가? 화를 낼 게 아니라 부끄러운 줄 알아라.” 이런 조롱을 받으면 스와미 아난다는 갑자기 시무룩해져서 화난 얼굴로 돌아가곤 했다. 그를 잘 놀려대는 일단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나는 단골손님이었다.  그는 내가 계속 짓궂게 놀려대자 멀찌감치서 내가 나타나면 아예 고개를 외면하고 출입증을 확인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우리가 그를 놀려댄 것은 그에게 특별한 감정을 품어서가 아니었다. 인도에서의 힘든 생활과 꽉 짜인 명상 프로그램들은 자칫 우리를 심각하고 날카롭게 만들 염려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기회만 있으면 장난을 쳤다. 특히 오쇼 라즈니쉬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 신참내기 외국인이 있으면 우리는 그를 오쇼의 동생인 스와미 아난다에게로 데려가기가 일쑤였다. 아무래도 한 형제인지라 얼굴이 닮았기 때문에 신참자들은 곧잘 그를 오쇼로 착각하고 감격에 떨며 큰 절을 올리곤 했다.


이런 우리들의 장난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면 우리도 시들해졌을  텐데, 그럴 때마다 스와미 아난다는 마구 화를 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점점 장난이 심해져 가고, 그와의 말썽도 잦아졌다. 그는 매일처럼 드나드는 사람들에게까지 너무도 엄격히 출입증 조사를 하려고 드는 사람에 곧잘 실랑이가 벌어졌다.  친형인 오쇼 라즈니쉬와는 모든 것이 대조적인 인물이었다. 우리는 모여 앉으면 곧잘 스와미 아난다에 대한 얘길 나눴다. 그리고 하루는 그 문제를 스승에게 직접 물어보기에 이르렀다. 어느 날 저녁에 열린 다르샨(스승과의 만남)시간에 우리는 오쇼에게 질문을 던졌다. “스승님은 자신의 완성을 회해 훌륭한 덕성을 갖춘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났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스승님 자신은 위대한 깨달음에 이르렀지만 동생인 스와미 아난다는 모든 것이 열등한 인간으로 태어났지 않습니까. 동생을 보면 우리는 스승님이 훌륭한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났다는 말이 사실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여기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오쇼 라즈니쉬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나는 내 동생에게 감사드린다. 그가 있었기에 내가 있을 수 있었다. 이 우주는 모든 것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산이 있으면 골짜기가 있고,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다. 내가 있기 위해서 동생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음과 양처럼 하나의 종합을 이루고 있다. 우주에는 ‘나’ 또는 ‘너’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주에 있는 모든 존재는 다만 한몸일 뿐이다.” 스승의 일갈에 우리 모두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스와미 아난다를 놀려댄 것이 부끄러웠다. 그것을 계기로 우리의 장난은 좀 수그러들었지만, 그 이후에도 스와미 아난다는 계속 명상센터의 문지기를 자청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을 쓰고 앉아서 출입증을 조사했다. 수염을 여전히 길렀으며, 허름하긴 하지만 그의 형처럼 털모자를 쓰고 나타나기도 했다. 이른 아침에 가보면 아열대의 축축한 안개 속에 스와미 아난다가 정문을 지키며 홀로 앉아 있곤 했다. 가끔 누군가 짓궂게 굴라치면 그는 여전히 화를 냈다.


그러나 스와미 아난다가 우리들 누구보다도 세상의 일에 초연해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오쇼 라즈니쉬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오쇼의 갑작스런 죽음은 우리들 모두에게 큰 슬픔과 충격으로 다가왔다. 스승과의 이별에 대한 슬픔도 컸지만,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명상센터의 장래가 걱정이었다. 스승이 없다면 명상센터 역시 지속되기가 어려울 뿐더러 자칫하면 하나의 단체로 전락할 염려가 있었다. 그런 사례를 우리는 너무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다른 명상센터로 떠나는 사람들까지 감지될 정도였다.  그런 우리의 염려와는 달리 스와미 아난다는 여전히 정문의 문지기를 고수했다. 그는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비가 오면 전처럼 우산을 쓰고 앉아 있었고, 안개 속에서도 늘 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우리들 중 누군가가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형이 죽었는데 이 명상센터의 앞날이 걱정되지 않는가? 다들 앞으로의 일을 염려하고 있고, 슬픔에 잠겨 있다. 그런데 당신은 왜 아무렇지도 않은가?” 그러자 스와미 아난다는 대답했다.

“내가 왜 걱정을 해야 하는가? 이 명상센터는 내 소유가 아니다. 그런데 왜 내가, 내 소유가 아닌 것을 놓고 미래를 염려해야 한단 말인가? 더구나 스승은 우리에게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 살라고 가르쳤지 않은가?”


그의 이 말은 우리 모두에게 큰 깨우침을 주었다. 이 세상에 진정으로 우리의 것이란 없음을 배우기 위해 우리는 명상센터에 오지 않았던가. 미래에 살기보다는 ‘지금 여기’에 살기 위해 온갖 명상 프로그램에 참가하지 않았던가. 다들 어리석은 사람으로 여겼던 스와미 아난다는 어느새 ‘진정으로 자신의 것’이 무엇인가를 구별하는 능력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스와미 아난다의 그 말은 나한테도 큰 지침이 되었다. 상황의 변화가 생기고 내 곁에 머물렀던 것이 떠나갈 때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자리 잡으려고 할 때마다, 나는 스승의 어떤 가르침보다도 스와미 아난다의 그 말을 깨우침의 거울로 삼았다. “그것은 내 소유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내가 왜 걱정해야 하는가? 스승은 우리에게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 충실하라고 가르쳤지 않은가?”

'[좋은책] > 하늘호수로 떠난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생  (0) 2009.01.21
오렌지 세알  (0) 2009.01.20
피리 부는 노인  (0) 2009.01.19
갠지스 식당  (0) 2009.01.19
영혼의 푸른 버스  (0) 2009.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