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책]/하늘호수로 떠난여행

갠지스 식당

경호... 2009. 1. 19. 12:08

나는 저녁마다 그 집에 가서 남인도 음식인 마실라 도사이와 차 한 잔을 사 먹었다. 바라나시 화장터로 가는 네거리에서 서쪽으로 20미터쯤 가면 대로변에 허름한 식당이 있었다. 간판도 없었다. 그냥 다들 그곳을 <갠지스 식당>이라고 불렀다. 테이블은 다섯 개뿐이고, 주방도 없이 노천에서 요리를 해다 바쳤지만 꽤 북적대는 식당이었다. 북인도에서 남인도 음식을 파는 식당들 중에 내가  판단하건대 마살라 도사이를 그 집만큼 잘하는 곳도 드물었다. 우리의 찹쌀 부꾸미처럼 생긴 마살라 도사이는 쌀가루 반죽을 손수건처럼 얇게 펴서 후라이팬에 지진 다음 감자와 양파 등 각종 양념 으깬 것을 한가운데 넣고 세 겹으로 접은 것이다. 그것을 인도 카레라고 할 수 있는 ‘달’에 묻혀 먹으면 더욱 맛이 난다. 남인도 마드라스를 여행할 때 처음 먹어보고는 그 맛에 반해 나는 가는 곳마다 마살라 도사이를 찾게 되었었다. 그것 말고도 저녁에 갠지스 식당에 가면 온갖 흥미있는 이야깃거리를 주워들을 수 있었다. 바라나시의 특산품인 실크 상점의 점원으로 일하는 크리슈난은 혼자 살기 때문에 늘 그곳에 와서 저녁을 먹었다. 어느 날 그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자신의 전생을 보게 된 어떤 음악가의 이야길 해드릴까요?”    내가 관심을 보이자 크리슈난은 의자를 잡아당겨 내 앞으로 화서 앉았다. 나는 마살라 도사이 하나를 해치우고 나서 오렌지 조각을 띄운 뜨거운 물에 손가락을 씻고 있던 중이었다. 인도는 대부분이 손으로 식사를 하기 때문에 식사 후에는 이런 식으로 오렌지 조각이 담긴 작은 물잔이 제공된다. 처음에는 그것이  손 씻는 용도인 줄 모르고 오렌지 차로 착각해 훌쩍거리며 마신 적도 있었다.


“이건 실화예요. 누가 꾸며낸 얘기가 아닙니다. 한번 들어보세요.” 크리슈난은 내 물병에 담겨 있는 물을 한 모금 입에 문 다음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 늙은 음악가가 있었는데, 남인도 하이데라바드에서 이곳까지 무려 천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걸어 순례를 왔어요. 차비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도보 여행을 하고 싶었던 거예요. 인도에서는 걷는 게  다반사니까요.” 그의 말에 따르면 그 음악가는 바라나시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성스런 강 갠지스로 가서 목욕을 했다. 그 순간 굉장한 기적이 일어났다. 강물로 눈을 씻는 순간 갑자기 그의 전생을 보게 된 것이다. 전생에 그는 힌두 고행승으로 북인도 스리나가르의 동굴에서 수행 중이었다. 그런데 평소에 힌두교에 원한을 품고 있던 회교 광신자 하나가 그를 증오하게 되었다. 어느 날 밤 광신자는 몰래 동굴에 침입해 명상에 잠겨 있는 그를 공격했다. 그는 광신자가 휘두른 칼에 찔려 그 자리서 숨을 거두었다. 과거 생을 볼 수 있게 된 음악가는 전생의 자신의 시체가 아직도 동굴 속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것까지  다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 길로 음악가는 스리나가르로 가서 천신만고 끝에 문제의 동굴을 찾았다고 한다. 과연 시체 한 구가 그곳에 놓여 있었다. 세월이 많이 지났을 텐데도 시체는 전혀 부패되지 않은 상태였다. 동굴이 해발 4천 미터가 넘는 고지대에 위치해 있는 탓이었다. 음악가는 전생의 자신의 시체를 수습해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다리뼈 하나를 남기고 모두 화장을 했다. 그 다리뼈로는 피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크리슈난은 말했다.


“그 사람은 오랫동안 바라나시에 남아 피리를 불었어요. 가끔 이 식당에도 오곤 했지요. 자신의 전생의 뼈로 만든 피리소리는 듣는 이들로 하여금 많은 걸 느끼게 했어요. 서양인들이 그 음악을 녹음해 가기도 했어요.” 내가 그것이 전부 사실이냐고 묻자 크리슈난은 정색을 하며 말했다. “물론이에요.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얘긴걸요. 당신이 원한다면 그 음악 테이프를 수소문해서 구해다 드릴 수도 있어요. 정말이라니까요.” 나는 진한 향의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그 다음은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다. “어느 날 사라졌어요. 그게 전부예요. 늙은 개 한 마리가 그를 따라다니며 밥을 얻어먹었는데 개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캘커타 후글리 강가에서 여전히 피릴 불고 있는 걸 봤다는 사람도 있고, 전생에서 수행을 하던 스리나가르의 동굴로 되돌아간다는 말을 들었다는 증인도 있지만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죠.”  그러면서 크리슈난은 덧붙였다. “피리소리가 들리지 않으니까 왠지 허전하더라구요. 참 이상한 일이죠. 그 피리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나 봐요. 그런데 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공짜로 들으면서도 마냥 혼자서 차를 마시긴가요?”


나는 얼른 크리슈난에게 사과를 하며 주인에게 차 한 잔을 더 시켰다. 차는 한 잔에 1루피(30원)밖에 하지 않았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면 화장터 인부 쿠마르가 일을 끝내고 늦은 저녁을 먹으러 갠지스 식다엘 왔다. 쿠마르는 쉰 살이 넘었는데 말수가 적었다. 언제나 똑같은 옷차림이었으며, 주문 음식도 밥과 알루 둠(감자 카레)이 전부였다. 인도인들이 삭사할 때 흔히 마시는 다히(요구르트의 일종)조차도 시키지 않았다. 하루는 크리슈난과 내가 낄낄거리며 잡담을 늘어놓고 있다가 쿠마르에게 맥주를 한 잔 사면서 그를 대화로 끌어들였다. 맥주는 워낙 비쌌기 때문에 아무나 마실 수 있는 음료가 아니었다. 내가 나가서 맥주를 사 갖고 들어오자, 어려서 천연두를 앓았는지 곰보딱지 얼굴을 한 식당 주인 미스터 티와리도 말참견을 하는 척하면서 기어코 한 잔을 얻어 마셨다. 화장터 인부 쿠마르는 손가락이 모두 합해 여섯  개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날 때부터 기형인 것도 아니었다. 화장터 인부는 사실인도 사회에서 가장 밑바닥에 속하는 계층이다. 하지만 쿠마르는 완벽한 영어를 구사했다. 그것은 그가 충분한 학교 교육을 받았다는 걸 증명했다.


쿠마르가 화장터 인부가 된 데는 그만한 사연이 있었다. 그날 맥주를 나눠 마시면서 우리는 처음으로 그 기막힌 사연을 듣게 되었다. 쿠마르는 원래 인도 국책 은행의 직원이었다. 영국 유학까지 마친 그는 누구보다도 유능한 직원이었고, 장래가 보장된 거나 다름없었다. 아내 역시 델리 대학 출신의 인텔리로 외국인 회사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었다. 그들은 주말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이나 사원으로 피크닉을 다녔다. 누구보다도 행복한 가정이었다. 그런데 모든 일이 그렇듯이 갑자기 불행이 닥쳐왔다. 서른다섯 살이 되었을 때 쿠마르는 얼굴에 부스럼이 나고 진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나병이라는 진단으로 이어졌다. 그는 즉시 은행에서 해고당했으며, 가족으로 부터도 이별을 당했다. 인도에서는 문둥병 환자가 마을에 나타나면 몰매를 때리는 게 관습이기 때문에 낮에는 숲속에서 숨고 밤에만 주로 이동했다. 그의 아내와 두 명의 자식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타 지역으로 옮겨갔다. 그가 문둥병을 치료하게 된 것은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에 도착해서였다. 그는 델리에서 바라나시까지 수백 킬로를 순전히 걸어서 왔다. 그 사이에 살이 짓무르고 손가락이 떨어져나갔다.  하지만 그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유일한 희망은 성스런 강 갠지스였다. 인도인들은 갠지스를 ‘강가 강’이라고 부른다. 강가는 어머니신의 이름이기도 하다. 어머니 신 강가가 병을 치유해줄 것이라고 그는 굳게 믿었다.


한밤중에 갠지스 강에 도착한 쿠마르는 곧장 신에게 바치는 기도문을 외며 목욕 의식을 거행했다. 그리고 며칠 뒤에 기적처럼 병이 나았다. 쿠마르의 살아온 얘기를 듣는 동안에 크리슈난은 자기 잔을 벌써 다 비우고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하지만 쿠마르는 맥주 한 컵을 마치 성스런 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무 천천히 마셨다. 곰보주인 미스터 티와리도 더 얻어 마시지 못해 흘끔거리며 우리 자리를 엿보았다.  쿠마르가 말했다.

“난 곧바로 화장터 인부로 취직을 했소. 은행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날 다시 받아들여 줄 리도 없고, 어쨌든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소. 아내와 자식이 어디로 갔는지 찾아서 생활비라도 보내야 했으니까 말이오.”  그런데 여섯 달쯤 일했을 때 델리의 사촌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델리를 떠나 알라하바드라는 도시로 간 그의 아내와 자식은 때마침 닥친 홍수에 휩쓸려 모두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쿠마르는 남은 잘을 비우며 얘기를 끝맺었다.

“그렇게 된 거요. 알라하바드는 바로 요 옆에 있는 도시가 아니오? 이곳으로 데려왔어야 하는 건데 난 그럴 용기가 없었던 거요. 난들 우리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겠소? 그냥 모든 일을 받아들일 뿐이오.” 그러면서 쿠마르는 한마디 덧붙였다.


“난 신이 인간을 만들 때는 목적이 있다고 믿소. 누구는 달리기를 잘하도록 만들었고, 누구는 장사를 잘하도록 만들었소. 반면에 내게는 문둥병을 주어 인생의 집착을 끊어버리도록 만든거요. 하루에도 수십 구의 시신을 장작에 얹고 태우면서 신이 내게 부여한 삶의 목적을 깨달으라고 말이오.” 쿠마르의 나지막한 목소리도 끊어지고, 어느덧 밤이 깊었다. 거리의 인적도 뜸해졌다. 노천에 피운 소똥 연료의 화덕만이 푸석거리며 타오를 뿐이었다. 이때쯤이면 꼭 나타나는 손님이 있었다. 다 깨어진 손풍금을 든 두 명의 계집아이 락수미와 비베크 자매였다. 그들은 마지막 구걸을 하기 위해 식당 입구에 쪼그리고 앉아 손풍금을 켰다. 그리고는 목젖을 내보이며 인도 시인 카비르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함사 카호 푸라탄 바트, 함사 카호 푸라탄 바트....백조여, 네 지난 이야기를 들려다오. 넌 어느 나라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저기 슬픔도 죽음도 없는  나라가 있다 백조여, 나와 함께 저기로 가지 않겠는가........” 머리 꼭지에서 터져나오는 듯한 높은 음정의 노래와 함께 밤이 문을 닫았다. 갠지스 식당도 문을 닫을 시간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도, 크리슈난도, 화장터 인부 쿠마르도, 그리고 식당 주인 미스터 티와리도 그냥 말없이 앉아 있었다. 끝없이 계속될 것만 같은 두 걸인 소녀의 노래에 귀를 기울인 채로......


아니면 우리 각자가 반쯤 졸면서 다른 어떤 상념에 잠겨 있었는지도 모른다. 팔다 남은 사브지(야채 카레)외 베간 바라타(삶은 가지로 만든 카레)가 무심히 놓여 있고, 이윽고 소똥도 떨어져 화덕의 불은 가물거렸다. 그 대신 엉킨 전선줄과, 길가에 새워둔 텅 빈 릭샤와, 간판 없는 갠지스 식당 위로 한 점 두 점 별들이 떨어져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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