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책]/하늘호수로 떠난여행

성자와 나비

경호... 2009. 1. 16. 11:11

인생에서 때로 자신이 바람의 방향을 잘못 탄 거미 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 자기가 걷고 있는 길이 진정으로 자신에게 맞는 길인가 의심이 들 때가 있다. 20대 중반이 넘었을 때 나는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소위 영적인 추구라는 것을 시작했다. 그런 끝에 결국 인도까지 오게 됐으나, 나는 점점 아무것에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내가 찾는 진리는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그 결과 아열대의 태양 아래서 나는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생각한 적도 여러 번이었지만, 인도에 오기까지 기다린 세월과 투자한 여비가 아까웠다. 그냥 포기할 순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으로 힌두교의 대표적인 성지라 일컬어지는 히말라야 기슭의 유서 깊은 도시 리시케시를 여행하기로 했다. 리시케시는 1960년대에 비틀즈 멤버가 그들의 영적 스승인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를 만나러 옴으로써 일약 서구세계에 유명해진 곳이다. 리시케시는 ‘현자의 도시’라는 지명답게 히말라야 동굴에서 내려온 많은 성자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고 나는 들었다. 그 성자들은 수백 년 동안 인간 육체 속에 머물면서 늘 젊은 자태로 제자들 앞에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성자들을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그들로부터 명쾌한 인생의 해답을 듣고 싶었다. 리시케시에 도착했을 때는 시월도 다 지난 석양 무렵이었다. 더 북쪽의 히말라야로 올라가는 길은 이미 두절되어 있었다. 폭설 때문에 그 길은 여름철에만 왕래가 가능했다. 숙소에 배낭을 내려놓고 나는 근처 강가로 걸어 나갔다. 리시케시를 흐르는 갠지스 강은 근원지 히말라야와 가까워서 물이 얼음처럼 차고 맑았다. 강물은 해 저무는 모퉁이를 향해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누가 말했었다. 가슴에서 마음을 떼어 강에 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러면 고통도 그리움도 추억도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나는 모래사장에 가부좌를 하고 앉아 갠지스 강물에 내 마음을 비추려고 노력했다. 그때였다. 누군가  나를 소리쳐 불렀다. “헬로우, 스와미!” 스와미는 명상 수행자를 부르는 말이다. 나는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힌두 탁발승 하나가 저만치 강가에 담요를 걸치고 앉아 있었다. 구다리 바바였다. 구다리는 헝겊이란 뜻이고, 바바는 종교적인 아버지란 뜻이다. 누더기를 걸친 탁발승을 인도에선 그렇게 부른다. 통계에 따르면 인도에는 저런 구다리 바바가 어림잡아 백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나를 부른 그 탁발승은 전형적인 구다리 바바답게 누더기 옷에 누더기 담요를 두르고 있었다. 지저분한 머리에 새카맣게 벌어진 앞니를 멀리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그를 외면하고 다시 명상에 들려고 노력했다. “나 좀 보시오. 스와미! 이리 좀 오시오!” 구다리 바바가 또다시 나를 소리쳐 불렀다. 쇳소리를 내며 꽥꽥대는 거지 탁발승 때문에 나는 도무지 명상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얼른 가서 한푼 적선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도대체 이 힌두 탁발승들은 어떻게 생겨 먹은 자들일까. 그들은 막무가내로 잘난 체하고, 적선에 의존하면서도 신이 자신들을 먹여 살린다고 큰소릴 친다. 세수 따위는 하지도 않은 채 평생 깎지 않는 머리카락에 소똥을 묻히고 다닌다. 왜 떠돌아다니는 거냐고 물으면 마음의 평화를 찾아서라고 당당하게 소리친다. 내가 아무 반응도 없자 구다리 바바는 더욱 큰소리로 나를 못살게 굴었다. “어이, 스와미! 잠깐 나 좀 봅시다!” 이제는 강가에 있던 다른 인도인들과 외국인 여행자들까지도 호기심에 차서 그 구다리 바바와 나를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창피해서 더 이상 모른 체하고 있을 수만도 없었다.


나는 모래를 털고 일어나 구다리 바바에게로 걸어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그는 몰골이 더 형편없었다. 헝겊 쪼가리 옷은 다해졌고. 올올이 때가 꼈다. 간쨔(대마)를 너무 피워대서 눈동자도 흐릿했다. 지금도 그는 어디서 주워모았는지 실뭉치를 한 주먹 꺼내놓고 담요에다 헝겊 쪼가리를 이어 붙이고 있는 중이었다. 전생에 아마도 삯바느질꾼으로 산 모양이었다. 나는 경멸의 시선을 담아 주머니에서 5루피를 꺼내 구다리 바바에게 내밀었다. 하룻밤 숙박료가 15루피(450원)였으니 5루피라 해도 결코 작은 돈이 아니였다. 구다리 바바는 히!하고 웃으며 얼른 돈을 받아 챙겼다. 그런 그를 바라보니 슬픔이 밀려왔다. 삶이란 것이 너무도 초라해 보였다. 히말라야의 성자들이라는 것 역시 커다란 환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한때 진리를 깨우치기 위해 나는 인도로의 여행을 꿈꾸었었다. 그런데 이 무슨 희극이란 말인가. 나는 어두운 얼굴을 하고 돌아서서 모래사장을 걷기 시작했다. 강의 수면에는 노을이 슬픔처럼 번지고 있었다. 나는 아무리 해도 가슴에서 허무나 번뇌 같은 이파리들을 떼어 강에 버릴 수 없는 걸까. 그때 또다시 구다리 바바가 날 불러세웠다. “스와미, 잠깐만 봅시다!” 나는 뒤돌아보기도 싫었다. 이제 자비니 적선이니 하는 감정의 사치에도 시달리고 싶지 않았다. 구다리 바바는 더 큰소리로 나를 불렀다.  “헬로우, 스와미! 잠깐만 다시 와보시오. 내가 보여줄 게 있소!” 고개를 돌려 바로보자 그는 자기 앞의 모래를 가리키며 그곳에 와서 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나는 어서 빨리 그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이상한 마력 같은 걸 갖고 있었다. 왠지 그의 명령을 거부하기 어려웠다. 어떤 힘에 이끌려 내가 앞에 가서 앉자, 구다리 바바는 바느질하던 담요를 옆으로 치우고 뚫어져라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생각보다 투명했다.


그 순간이었을까, 나는 갑자기 현기증 같은 것을 느꼈다. 마치 병의 주둥이로 훅 하고 흰 연기가 들어온 것처럼 뜨거운 바람 같은 것이 머릿속으로 불어 들어왔다. 구다리 바바가 내게 최면을 건 게 틀림없었다. 인도의 마법사들은 곧잘 사람에게 최면을 걸어 환상을 연출한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최면에 걸리지 않으려고 눈을 똑바로 뜨고 있었다. 구다리 바바는 내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바닥에서 모래 한 줌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손바닥을 폈다. 그런데 그의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은 모래가 아니었다. 모래는 사라지고, 나비 한 마리가 그의 손바닥에서 날아오르는 것이었다. 흰색 나비였다! 나비는 날개를 펄럭이며 허공을 향해 풀풀 날아 올라갔다. 내가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자니까 구다리 바바는 다시금 모래 한 줌을 집어들었다. 그가 손을 펴자 또다시 모래는 사라지고, 나비가 날아올랐다. 이것이 환상이라는 걸까. 아니면 정말로 나는 소문대로 마법사의 최면에 걸린 걸까.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순간, 내 가슴을 채웠던 생의 허무감 같은 것이 나비와 함께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 나는 눈이 휘둥그래져서 나비의 정체를 판독하느라 애를 썼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덧 구다리 바바는 담요를 집어들고 저만치 걸어가고 있었다. 내가 황급히 “바바지! 바바지!”하고 소리쳐 불렀지만,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냥 사라져 가버렸다.  그 후 일주일 동안 리시케시에 머물면서 구다리 바바를 찾아 강과 사원을 뒤지고 다녔지만 나는 끝내 그를 만날 수가 없었다. 사람들에게 행색을 설명하며 그가 간 곳을 물었으나 그를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앞니가 벌어진 탁발승이야 흔하다  해도, 모래를 집어 나비로 바꿔버렸다는 내 설명에 사람들은 오히려 이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구다리 바바는 겨울이 닥쳐오기 전에 설산의 동굴 속으로 떠나 버렸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담요를 깁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멀리 환영처럼 선 히말라야 설산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신비롭게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단 한번 만나고 다신 만날 수 없었지만 앞니가 벌어진 구다리 바바는 내게 무엇이 환상이고 무엇이 진실한 세계인가를 어렴풋이 알게 해준 소중한 스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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