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책]/마지막을위한이야기

나의 심장을 향하는 화살

경호... 2008. 12. 20. 00:16

세상살이에 있으면서도 수행은 가능합니다.그것은 남의 허물을 보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수행이라고 하면 가부좌를 틀고 조용히 앉아 있는 참선수행을 생각합니다. 물론 수행을 하는 이가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지 않는다면 이는 자성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므로 바른 수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의 몸은 움직이지 아니하나 입만 열면 사람들의 옳고 그름을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미혹한 사람으로서 도道와는 어긋나는 수행을 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입으로 다투기 시작하면 우리의 자성은 생사에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참다운 좌坐라는 것은 밖으로 모든 경계 위에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요, 禪선이라는 것은 안으로 본래 성품을 보아서 어지럽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좌선의 참다운 의미입니다. 그래도 몸뚱이 좌선을 고집하는 이들을 위해서 육조 스님은 다음과 같은 시를 남기셨습니다.

 

살아서는 앉아서 눕지 못하고

죽어서는 누워서 앉지 못하네.

한 덩어리 냄새나는 뼈 무더기로

어찌하여 공과를 세우겠는가.

 

이러한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다시 '도를 알고자 하거든 반드시 좌선하여 선정禪定을 익혀야 할 것이니, 만일 선정을 닦지 않는다면 해탈을 얻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에 대하여 육조 스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습니다.

 

"도는 마음으로 깨닫는 것인데 어찌 앉는  데 있겠는가? 경에 말씀하시기를 '만일 여래가 이렇게 앉고 이렇게 눕는다고 말하면 이것은 그릇된 도를 행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래는 어디로부터 오는 바가 없으며 또한 가는 바도 없기 때문이다.' 라고 하셨다.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는 것이 여래의 청정한 선禪이고, 모든 생각이 비어 고요함이 여래의 청정한 앉음(坐)이어서 마침내 깨달음 얻을 것조차 없거늘 하물며 앉을 것이 있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좌선을 하지 마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좌선을 하면서 진정으로 보아야 할 것은 나의 허물이요, 진정으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은 세상과 사람들의 허물인 것입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내가 세상 속으로 쏟아낸 수많은 언어들 가운데 혹여 다른 사람을 비방하거나 험담하는 내용은 없었는지 말입니다. 내가 쏟아낸 언어 화살은 언젠가 나로 향하는 화살입니다. 당신의 심장에 과녁을 그려놓지는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