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책]/마지막을위한이야기

자력이든 타력이든 자각에만 이르면 됩니다.

경호... 2008. 12. 19. 23:58

불교는 '자각신양自覺信仰'입니다. 스스로 깨달아  부처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그래서 '불교'입니다. 그러므로 '불교'라는 말은 단순히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의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부처가 되는 가르침'의 의미까지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여타 종교에서 신앙의 목표로서 충실한 신의 '종' 혹은 '어린 양'이 되고자 하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불교만의 특색입니다. 대부분의 다른 종교에서는 결코 스스로 '신'이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신의 나라에 태어나 충실한 신의 '종'이 되는 것이 궁극적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교에는 이런 표현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부처님의 '종'이라거나 '어린 양'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부처님은 대자대비심으로 중생들을 '자식'처럼 사랑한다는 표현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끝까지 어린 '자식'으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성인(부처님)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자각신앙이 곧 그대로 자력신앙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자각이란 잠에서 깨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잠에서 깨어나는것도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스스로 깨어날 수도 있고, 남이 깨워주어서 깨어날 수도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정신력이 강한 사람은 스스로 깨어나는 반면, 어린 아니들이나 지친 이들은 시간 맞추어 깨워주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어쨌든 깨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등소평의 다음과 같은 비유를 즐겨 들곤 합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

이 표현을 불교에 대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자력이든 타력이든 자각에만 이르면 된다."

 

아직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삶에 자신이 있는 이들은 자력적 요소를 선택하면 되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타력적 요소를 선택하면 될 뿐입니다. 혹은 자력과 타력을 겸해서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부분을 택할 것인가는 온전히 스스로에게 달려있는 것이지요.

예컨대 참선수행의 경우는 자력적 경향이 강합니다. '마음이 곧 부처'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일체 외부에서 찾는 것을 배격하지요.

스스로의 본성을 돌이켜보고 스스로 부처됨을 강조할 뿐입니다. 반면에 정토신앙의 경우는 타력적 경향이 강합니다. 오직 '아미타불'에게 귀의하고 염불을 통해 정토에 태어나기를 희망하기 때문이지요. 부처님의 원력에 힘입어 서방정토에 태어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도 정토가 궁극적 목표는 아닙니다. 정토에서 다시 수행해서 궁극적으로는 우리도 '부처님' 같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자각에 이르면 '나'와 '남'이 사라지게 됩니다. 자력이니 타력이니 하는 것이 무의미해지는 것입니다. 일체가 '나'이고 '부처'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