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책]/인생수업

5. 아직 죽지 않은 사람으로 살지 말라

경호... 2017. 12. 20. 12:05

5. 아직 죽지 않은 사람으로 살지 말라

 

죽음에 도달하는 순간 모두 제로가 된다. 삶의 끝에서 아무도 당신에게 당신이 얼마나 많은 학위를 가졌으며, 얼마나 큰 집을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좋은 고급차를 굴리고 있는지 묻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이것이 죽어가는 사람들이 당신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후천성 면역 결핍증 바이러스에 감염된 카를로스는 병이 깊어 감에 따라 자신이 가진 힘에 대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직장을 잃었어요. 그러고 나서 신체적인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더 이상 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게 되었어요. 너무 아파 일을 할 수 없어서 임시 보호소에서 생활했습니다. 삶이 악몽이 돼 버렸어요. 치료를 받으러 진료소에 갔더니 의사가 새롭게 진행 중인 의학 실험에 참가해 보지 않겠느냐고 권하더군요. 실험 참가 신청을 한 뒤 신체검사를 받고 기다렸어요. 하지만 5주가 지나도록 병원에서는 아무 연락이 없었어요. 병은 점점 더 악화되었지만, 언제나 다음 주에 결과가 나올 거라는 말만 들었어요. 집 전화도 끊겼기 때문에 결과를 확인하려면 진료소까지 직접 찾아가야만 했어요. 7주가 지나자, 진료소까지 걸어갈 힘조차 없었어요. 너무 지치고 숨이 차서 보도 위에 주저앉았어요. 길바닥을 내려다보며 이제는 끝이구나. 이렇게 끝나는 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것이 내 삶의 첫 고비는 아니었어요. 난 농사일을 하며 가난하게 자랐고, 열한 살이 될 때까지 제대로 된 신발조차 없었어요. 하지만 난 어린 시절의 역경들을 정말 잘 이겨 냈어요. 그때의 용기와 의지는 다 어디로 가 버린 걸까? 난 그저 그곳에 앉아 울음을 터뜨렸어요.

절대로 이렇게 죽을 순 없어. 난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아.’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힘들이 사라진 것 같아 한없이 슬펐어요. 영혼이 시들어 버린 느낌이었어요. 정신이 점점 혼미해졌어요. 여기서 이대로 죽어야 하나? 그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난 아직 살아 있어. 내가 가진 힘이 모두 사라진 건 아냐.’

간신히 몸을 일으켜 진료소까지 걸어갔어요. 그리고는 간호사를 붙들고 호소했어요. ‘난 지금 당장 치료를 받아야 해요.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어요. 새로운 치료제를 구할 다른 방법이 틀림없이 있을 거예요.’

아주 간절히 매달렸기 때문에, 간호사는 다른 곳에서 주관하는 치료 프로그램에 날 등록해 주었어요. 바로 그날부터 새롭게 처방된 약물로 치료를 받았습니다. 2년이 지난 지금, 내 몸은 다시 건강해졌어요. 난 이제 죽지 않아요. 모든 게 그날 길바닥에서 어린 시절 내게 있던 힘을 떠올린 덕분이에요. 내가 지닌 힘을 기억해내지 못했다면 난 오래전에 죽었을 거예요.”

우리의 진정한 힘은 사회적 지위나 넉넉한 은행 잔고, 번듯한 직업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하고 강인한, 그리고 고귀한 내면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들 각자는 우주의 근본적인 힘을 지니고 있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사람들은 힘으로 충만해 있고, 자연도 힘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씨앗은 꽃으로 피어나고, 날마다 태양은 하늘을 가로지릅니다. 우리 안에, 우리 자신으로부터 생명이 잉태되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스스로에 대해서는 이 모든 힘과 상관없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신은 이런 힘을 자연에게만 주고 인간은 나약하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데이비드 비스카운트 박사는 우리가 어떻게 힘을 찾고 또 사용해야 하는지 일깨우는 상징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당신의 사유지를 가로질러 지나다닌다면,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그 땅이 당신의 것임을 알리는 푯말을 세워 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푯말을 세우지 않으면 몇 년 지나지 않아 그 땅은 공유지가 되어 버릴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그 사유지와 같습니다. 가끔씩 이라도 우리는아뇨또는 그건 나한테 상처를 주는 일이야” “네가 날 마음대로 할 수는 없어라는 등의 말을 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경계선을 그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의도적이든 아니든 우리를 통제하려는 사람들에게 힘을 넘겨주게 될 것입니다. 힘을 되찾는 일은 바로 자신의 책임입니다.

한 유명한 풍자극에서 코미디언이 악명 높은 구두쇠 역을 연기 했습니다. 한 강도가 그에게 총을 겨누며 요구했습니다.

선택해 목숨이야. 돈이야?”

그 코미디언은 한참 동안 가만히 있다가 대답했습니다.

생각 좀 해봐야겠어. 정말로 생각해 볼 문제야.”

우리는 부와 힘을 동등한 것으로 여기고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돈을 갖게 되어도 전혀 행복하지 않다는 걸 깨닫고 나면 크게 실망합니다. 가난을 못 이겨 자살하는 사람들만큼 많은 수의 부자들이 자살을 합니다. 프로이트는 만일 자신에게 부유한 환자를 진찰할지 가난한 환자를 진찰할지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망설이지 않고 부유한 쪽을 택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부자들은 더 이상 자신의 문제를 돈으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많은 돈을 갖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돈이라는 것도 결국엔 경험에 불과합니다. 다른 경험들과 종류가 다르긴 하지만 별로 나을 것 없는 경험일 뿐입니다.

부와 행복을 모두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그것들에 대해 잘 아는 현명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경제적으로 힘들어졌을 때 누군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가난해진 기분이 어떤가?”

그는 말했습니다.

난 가난해진 게 아니라 재정적으로 파산한 거네. 가난이란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지, 그러나 한 결코 가난하지 않아.”

그의 말이 맞습니다. 부와 가난은 마음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부자라고 생각하는 가난한 이들이 있는 반면, 자신을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부자들도 있습니다. 가난하다는 것은 스스로 가난하다고 느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돈이 바닥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한 상태입니다. 돈이 호주머니를 드나드는 것과 상관없이 자신이 언제나 가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함으로써 스스로를 무가치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부유하게 생각하는 것은 가난하게 생각하는 것의 정반대입니다. 자신의 가치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진정한 부의 출발입니다. 어떤 이들은 물질을 가치 있게 여깁니다.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 우리가 손에 넣은 어떤 물질보다도 우리 자신이 더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우리는 흔히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돈은 자연히 따온다는 충고를 듣습니다. 때로 그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더 정확한 진실은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일을 하면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것보다 더 큰 삶의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수없이 많은 임종의 자리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뉘우칩니다.

난 한 번도 내 꿈을 추구해 본 적이 없어요.”, “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본 적이 없어.”, “난 돈의 노예였어.” 하고 말입니다. “사무실에 늦게까지 남아서 일할걸 그랬어.” 라거나 돈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훨씬 행복했을 거야.” 하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돈이 우리에게 힘을 줄 거라고 믿듯이, 다른 사람들과 상황을 지배할 수 있게 되면 힘을 얻을 거라고 흔히들 생각 합니다. 많이 지배할수록 더 많은 힘을 갖게 된다고 여깁니다. 자기가 앞장서서 모든 것을 통제하지 않으면 온통 혼란에 빠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일상생활을 해나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통제능력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정도를 벗어나 과도한 권력을 행사하려 들 때 생겨납니다. 그때 우리는 강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불행해집니다. 더 많은 통제력을 움켜쥘수록 그 힘을 통제 불가능한 것에까지 쏟아 붓기 때문에 삶의 질은 떨어집니다. 더 많은 돈을 소유하거나 더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외부 환경을 더 잘 통제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힘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타인에 대한 일시적인 영향력일 뿐입니다. 육체, 직장, , 아름다움 등 우리가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것들은 외면적인 힘의 상징입니다.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행동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방식이 항상 최선은 아닙니다. 왜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방식으로 행동해야 할까요? 왜 그들 나름의 독창성을 발휘해 행동하면 안 될까요? 다른 사람이나 물건들, 또는 사건들을 지배할 수 있다는 생각은 망상에 불과합니다. 이것을 깨닫고 남을 지배할려고 하는 마음을 버릴 때, 인간관계와 삶에서 더욱 강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통제하지 않는다고 해서 삶이 혼란스러워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자연스런 질서 속에 흐 르게 됩니다.

 

한번은 자연스런 질서가 내(엘리자베스 퀴블로 로스)앞에 완벽하게 펼쳐진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매우 특이한 형태로 내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날 나는 뉴욕에서 1,500명의 청중 앞에서 강연을 했습니다. 강연이 끝나자 수백 명이 내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습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싶었지만 공항으로 떠나야 할 시간이 가까워졌습니다. 몇 사람에게 더 사인을 해주고 나서 나는 서두러 출발했습니다.

허둥지둥 공항으로 달려가 청사 안으로 들어가니 비행기 출발이 15분 늦춰져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출발이 지연되어 화장실에 갈 시간을 벌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때까지 화장실에 가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있던 터였습니다. 화장실 변기에 앉아있는데 누군가가 밖에서 말을 걸었습니다.

로스 박사님 괜찮으시다면......”

나는 무슨 일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내가 쓴 책 한 권이 펜과 함께 화장실 틈 아래로 들어왔습니다. 나는 아뇨 안 괜찮은데요하며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화장실에서 나가기 전까지 시간을 더 끌 수도 있었지만,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밖으로 나가보니 뜻밖에도 수녀 한 명이 서 있었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별로 다정하지 않은 투로 당신을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하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화장실에서 볼일도 못 보게 방해할 수 있죠!’ 라는 말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무나 감사해요. 이건 하느님의 은총이에요.”

그녀는 내가 자신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걸 알아차리고는 다시 말했습니다.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설명 드릴게요.”

사실 나는 그 상황이 약간 싫었습니다. ‘도대체 이 여자는 왜 이런 식으로 나를 가로막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그녀의 순수함에는 엄청난 힘이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제 동료 수녀가 지금 병상에서 죽어가고 있어요. 그녀는 박사님의 강연 날을 손꼽아 기다렸어요. 너무나도 오고 싶어 했지만 몸이 아파서 올 수가 없었어요. 저는 그 수녀를 위해 무엇인가 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박사님의 강연을 대신 듣고, 녹음을 하고, 또 박사님이 친필로 사인하신 책을 선물하려고 했어요. 그것이 친구에게 얼마나 소중한 기념이 될지 알기 때문에 한 시간 넘게 줄을 서서 기다렸어요. 그런데 제 앞으로 몇 사람 남지 않았을 때, 박사님은 떠나셔야만 했어요. 박사님의 사인을 받기 위해 제 힘이 닿는 한도 내에서 온갖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안타깝게 기회를 놓치고 말았어요. 박사님이 이 화장실로 들어오시는 걸 본 순간, 제가 왜 이 순간을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생각했는지 이제 이해하시겠어요?” 이 우주가 박사님과 저를 같은 공항, 같은 비행기로 이끌었고, 같은 시각에 같은 화장실로 인도한 셈이잖아요?”

그녀는 내가 어디로 갈지, 이 도시를 벗어날지, 어느 공항으로 갈지, 심지어 비행기를 타고 갈지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나와 화장실에서 마주쳤을 때 그녀는 정말 너무도 놀랐을 것입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이미 일어나도록 예정된 일에 대해, 그것을 막거나 조종하려는 노력이 무의미한 행동임을 깨달았습니다. 세상에 우연이란 없으며, 모든 일은 신의 치밀한 계획에 따라 일어납니다. ‘진정한 힘이란 그런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는가에 신경 쓰면

정작 자신의 힘을 잃어버립니다. 이 힘을 회복하고자 한다면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삶은 바로 당신 자신의 삶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중요합니다. 당신에게는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줄 힘은 없지만,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 힘이 있습니다. 당신이 다른 사람의 생각을 지배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당신은 그들의 생각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10년 전에 당신이 즐겁게 해주려고 노력한 사람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그들은 이미 당신의 삶에서 사라져 버렸을 것입니다. 혹시 아직 있다 하더라도, 당신은 여전히 그들에게서 인정받기 위해 애쓰는 중일 것입니다. 그들에 대해서는 이제 잊어버리고, 당신의 힘을 되찾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의견을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종종 길을 잃고 헤맬 때가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과 결정을 되돌아보면서 이런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난 불행한 거야. 난 뭔가 잘못되어 있어 그러니 나 자신을 바꿔야만 해.” 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수나 무능력한 면들만 바라보면, 그 부분에 자신을 가두게 됩니다.

난 지금까지는 부족했어. 하지만 이제부턴 더 나은 사람이 될 거야.” 하고 스스로 말하면서 끝없이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위험한 게임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돈이 더 많다면, 직장에서 더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된다면, 더 많이 존경받게 된다면 더 행복해질 거라고 우리는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왜 오늘보다 내일 더 행복하고 강해질 거라고 생각합니까? ‘더 많은 것을 원하는 게임을 아무리 훌륭하게 치러 냈더라도 자신을 잊어버린다면 결국 힘을 잃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게임은 우리를 언제나 부족하다고 느끼는 결핍 상태에 머물게 합니다.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더라도 기분은 더 나빠집니다. 여전히 불행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조금만 더 갖는다면!’ 하고, 이 단순한 문제를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은 내일이 없으므로 더 이상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게임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오늘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전지전능한 신이 내일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겠어.” 하고 말하는 걸 상상할 수 있을까요? 신은,“당신이 행복해지면 좋겠어. 그런데, 어 이런, 당신은 직업이 별로 좋지 않으니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군.” 하고 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신은 우리가 이 삶과 스스로에게 설정해 놓은 한계를 보지 않습니다. 신은 우리에게 내일이 아닌 바로 오늘,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나쁜 날은 좋은날이 될 수 있고, 불행한 관계는 회복될 수 있으며, 여러 잘못들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레슬리와 그녀의 다섯 살 난 딸 멜리사는 어느 날 쇼핑가에서 길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길 저쪽에서부터 음악을 크게 틀고 달려오던 한 지프차가 정지 신호를 무시한 채 좌회전을 했습니다. 18세 밖에 안 된 그 운전자는 햇빛 때문에 레슬리와 멜리사를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레슬리는 그 지프를 봤고, 자신들이 곧 그 차에 치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녀는 딸을 꼭 껴안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운전자가 그들을 발견하고는 운전대를 꺾었습니다. 그 차는 주차되어 있는 차들을 몇 대 들이받고는 새파랗게 질려 있는 모녀의 겨우 몇 센티미터 앞에서 멈춰 섰습니다. 그 젊은 청년은 방금 일어난 일에 혼비백산했지만, 레슬리는 오직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그 일은 얼마든지 다른 식으로 끝날 수도 있었어요. 나와 멜리사가 길바닥에 죽어서 누워 있대도 이상할 게 없었어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녀는 말했습니다.

삶은 정말 수많은 방향으로 갈릴 수 있는 것 같아요. 난 그날 우리 목숨을 구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신에게 무릎 꿇고 기도했어요. 그날 이후 나는 그 어느 것도 당연하게 여기지 않게 되었어요. 어머니가 전화하셔서 유방 X선 검사 결과가 좋다고 얘기하셨을 때, 어머니가 검진을 받으신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어요. 어머니가 건강한 것도 감사드려요. 우리가 사는 삶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알고 나니, 비로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었어요. 그 감사하는 마음이 내 삶에 무한한 의미와 힘을 불어넣어 주었어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강한 사람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에서 힘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모든 여유로움은 우리가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부터 나옵니다.

진정한 힘과 행복은 감사하는 마음이 그리는 미술 작품 속에 있습니다. 자신이 현재 가진 것에 감사하는 일,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감사하고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갖고 나온 것에 감사하는 일. 자신의 독특함에 감사하는 일..... 백만 년이 흐른다 해도 당신과 똑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당신과 똑같은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반응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바로 곁에 있는 사람들과 물건들에 감사하지 못한다면, 나중에 더 많은 물건들과 더 많은 사람들, 더 많은 힘을 갖게 된다고 감사할 수 있을까요? 한 번도 감사의 근육을 사용해본 적이 없는 당신은 모든 것을 얻게 되어도 감사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당신은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이 정도의 아내, 이 정도의 돈, 이 정도의 집으로는 아직 충분치 않아. 좀 더 많은 것을 가져야해.’ 그렇게 당신은 계속 더 많은 것을 원하고, 모든 것들이 지금과는 달라지기를 바라면서, 자신이 가진 것들에 감사하는 대신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한 게임에 몰두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길에 집중해야 합니다. 돈이나 물질적인 부보다 훨씬 더 가치 있고 본질적인 것들로 우리를 데려가는 길에, 더 많은 것을 얻으려는 대신 이만하면 충분해.” 하고 만족해야 합니다. “이걸로 충분할까?” 하는 생각을 중단해야 합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면 그것으로 충분했음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삶이 충분할, 우리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날들이

충분할, 그 기분은 얼마나 좋을까요? 세상은 이대로 충분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런 기분이 드는 걸 막습니다. 항상 부족하다고 느끼며 살아왔기 때문에 충분하다는 느낌이 낯설기만 합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바꿀 수 있습니다. “이런 게 바로 삶이고, 난 더 이상은 필요 없어.” 하고 말할 수 있다면 큰 힘과 행운을 손에 넣은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많은 힘이 존재하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데는 너무도 무지합니다. 진정한 힘은 자신이 누구인가,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지 깨닫는 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더 많이 축적해야 한다고 느낀다면 자신이 누구인가를 완전히 잊은 것입니다. 모든 일이 잘 되어가고 모든 사람이 정해진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걸 깨달을 때 진정한 힘이 생겨난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스무 살의 산드라는 절친한 친구 세일라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뻤습니다. 세일라가 신부 들러리를 서 달라고 부탁했을 때는 자기가 결혼하는 것처럼 흥분되기까지 했습니다. 결혼식 날 산드라는 신부를 교회로 데려가기 위해 자진해서 자신의 새 차를 몰고 와서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하면 신부가 화려하게 등장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세일라의 아파트 앞에 차를 세웠을 때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신부를 도와 결혼 예복과 신혼여행 가방을 차로 옮기고 산드라가 막 운전석에 앉으려고 하자, 세일라는 자기가 운전하겠다며 나섰습니다. 산드라가 말했습니다.

자기 결혼식에 직접 운전해서 가는 사람이 어디 있어!”

하지만 세일라는 고집을 피웠습니다.

내가 하게 해줘. 내 결혼식 날 비가 내리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잡다한 생각들을 털어 내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래.”

산드라는 어쩔 수 없이 세일라에게 차 열쇠를 건네주었고, 그들은 출발했습니다. 교회까지 몇 킬로미터를 운전해 가면서 그들은 결혼식에 필요한 것들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점점 더 나빠지는 날씨와 세차게 내리는 비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차가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엉뚱한 방향으로 달려갔습니다. 차는 그대로 가로등을 들이받았고, 신부는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산드라는 몇 군데 뼈가 부러지긴 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습니다. 몸은 무사했어도 산드라의 마음은 심한 상처를 입었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녀는 그날의 일을 떠올리며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한탄하며 말했습니다. “내가운전을 했으면 세일라는 죽지 않았을 거예요.”

(데이비드 케슬러)는 산드라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만일 당신이 운전을 했더라면 세일라가 살았을 거라고 확신하나요? 당신은 차 사고가 나리라는 거 알고 있었나요? 그 친구가 죽으리라는 걸 마리 알고 있었나요? 당신은 살아남고 그녀는 죽으리라는 걸?”

그녀는 이 모든 질문에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뇨. 하지만 난 살았고 친구는 죽었다고요!”

산드라는 여전히 죄책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물었습니다.

만일 상황이 완전히 달라져서 둘이 상황이 바뀐다면, 세일라가 당신에게 무슨 말을 하길 바라나요? 그러니까, 만일 당신이 죽고 친구가 여기 이렇게 있다면, 그녀에게 어떤 말을 해줄 건가요? 당신 친구가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죄책감으로 고통받는 모습을 내려다보게 된다면, 그때의 사고에 대해 당신은 친구에게 뭐라고 할 건가요?”

산드라는 잠시 동안 자기가 그 친구라면 어떻게 했을지 진지하게 생각했습니다. “나라면, ‘운전을 한 건 나야. 내 결정에 대해선 내가 책임을 지는 거야. 아무도 나에게 운전하라고 강요하지 않았고 아무도 날 막지 못했어. 그날은 내 결혼식 날이었고, 아무리 운전하지 말라고 말렸어도 난 듣지 않았을 거야.’하고 말하겠어요.”

오래전의 비극을 떠올리는 산드라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습니다.

네 잘못이 아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야. 난 네가 죄책감을 느끼며 삶을 허비하지 말았으면 해.’하고 말할 거예요.”

가끔은 삶에서 예상치도 못한 비극적인 일들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왜 어떤 이는 살고 어떤 이는 죽는지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산드라는 자기가 운전하지 않은 것 때문에, 또 친구에게 운전을 맡겨 그녀를 죽게 만든 것 때문에 늘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그 당시 누가 운전할 것인가에 대한 둘의 결정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그녀가 몰랐다는 것, 아니 모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상기시켜야 했습니다.

그녀는 친구가 원하는 대로 새 차를 운전하게 해주어 결혼식 날을 더 기분 좋은 날로 만들어 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런 반응을 흔히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죄의식입니다. 이 개념은 2차 대전 후, 포로수용소의 생존자들이 왜 내가 아닌 그들이 죽었지?’ 하는 의문에 시달리며 정신적 고통을 호소함으로써 처음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폭탄 테러, 비행기 추락, 자동차 사고, 심지어 후천성 면역 결핍증 같은 비극적인 일을 겪었거나 목격한 사람들은 거의 어김없이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증상을 보입니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이 자연사한 경우에도 남겨진 사람들에게서 같은 증상이 나타납니다. 예상치 못한 비극을 겪은 사람이 왜 자신만 살아남았는지 묻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그것은 근본적으로 해답 없는 질문입니다.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무의식적으로 오만하다는 증거입니다. 죽을 사람과 살 사람을 결정하는 것은 신이나 우주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 우리의 질문에 해답은 있을 수 없지만, 그런 일이 일어난 이유는 있습니다. 살아남은 이들은 더 살도록 선택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만일 내가 더 살도록 선택 받았다면, 난 지금 과연 제대로 살고 있는가?’

죄의식을 느끼는 심리는 자신이 무언가 늘 잘못했다는 자기 비난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자기 내면을 향한 분노입니다. 많은 경우, 이 불행한 자기 비난은 어린 시절에서 비롯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비겁하게 길러졌기 때문입니다. 심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사실입니다. 나는 이비겁하다는 말을 통해 어린 시절 우리가 어떻게 자신을 팔아서 다른 이들의 사랑을 얻고자 했는지 상징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개 강한 자기 정체성을 이루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희망 사항에 신경을 쓰며,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고 배웁니다. 독립적이거나 사람들과 서로 의존하며 사는 것은 그다지 권장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서로 종속적인 관계를 맺도록 훈련 받습니다. 타인의 욕구와 삶은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자신의 욕구와 삶은 무시하도록 말입니다. 그것은 의식적인 선택이 아닙니다. 종종 우리는 행복에 대한 자신의 욕구를 어떻게 충족시켜야 하지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이런 종속 관계의 대표적인 증상은 아니오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요청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들을 기쁘게 해야 한다고 배웁니다. 많은 부모가 자녀로부터 거절당하면 불행해합니다. 사실 아이들이 적절한 시기에 아니오라고 말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멋진 일입니다. 우리 모두는 너무 늦기 전에 아니오라고 큰 소리로, 분명히 말하는 법을 배워야합니다.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해주고자 하는 욕망은 죄의식이 자라기에 비옥한 토양이 됩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죄의식을 길러 내는 전부는 아닙니다. 때로 우리는 자신의 독립성을 주장하면서도 죄의식을 느낍니다. 이런 현상은 특히 자기 정체성을 형성해 가는 시기에 상실의 고통을 겪는 아이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이런 죄의식을 극복하거나 차단하기 위해서는 현명한 부모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아홉 살 소년 스코트는 캠핑을 못 가게 하는 엄마 때문에 단단히 화가 나 있었습니다. 엄마 마지는 아들에게 숙제를 끝마치기 전 까지는 갈 수 없다고 단단히 일렀지만, 그녀에게 아들을 야단치는 일은 무척 힘들었습니다. 마흔 살인 그녀는 자궁경부암을 앓고 있었는데, 이미 간까지 전이된 상태였습니다. 그녀는 나(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에게 털어놓았습니다.

아들이 나와 함께 있으면서 불행해하는 걸 보고 싶진 않아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너무 적거든요.”

마지는 아들과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랐지만 숙제와 캠핑의 논쟁은 점점 악화되었습니다. 잔뜩 화가 난 스코트는 이렇게 내뱉고 말았습니다.

엄마가 차라리 죽어 버렸으면 좋겠어!”

그것은 마지에게 너무 잔인한 말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아마 걱정하지 마 곧 네 소원대로 될 테니까.”하고 맞받아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지는 아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아. 너 정말 화가 많이 났구나.”

그 후 10개월이 지난 뒤, 침대에 누워 움직이지 못하게 된 마지는 말했습니다.

난 스코트에게 좋은 기억을 남겨 주고 싶어요. 내가 죽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어린 시절에 깊은 상처를 입게 될 거예요. 그것만으로도 불행한데, 내 아들이 죄의식을 느끼며 살아가게 할 순 없어요. 그래서 아이와 그것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스코트, 네가 나한테 무척 화가 났을 때 엄마가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한 걸 기억하니? 그런데 내가 영원히 떠나 버리고 나면, 넌 그 일이 생각날 때마다 아주 속상할 거야. 하지만 아이들은 화가 많이 나면 자기 엄마가 밉다고 생각한단다. 네가 정말로 엄마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 속으로 아주 마음 아파한다는 것도, 난 절대로 네가 그런 일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길 바란다. 넌 내게 엄마가 되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가 알게 해줬어. 너와 함께한 것만으로도 인생을 살 가치가 있었어.’ 난 그렇게 말해 주었어요.”

우리들 대부분은 죄의식이나 자기 비난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마지만큼 잘 알지는 못합니다. 또한 우리가 자식들에게 심어 주는 죄의식이나 우리 자신이 갖고 있는 죄의식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그렇게 죄의식을 마음속에 품은 채로 우리는 성인이 됩니다. 그런 죄의식들은 대개 과장되고, 고통스러우며, 비생산적입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죄의식이 필요합니다. 죄의식이 없다면 사회는 혼란에 빠질 것이고, 그러면 사람들의 행동에 제동을 걸 경보등도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마치 돌 위의 유일한 운전자인 양 마구 운전할 것입니다.

죄의식은 인간으로서 경험하는 여러 가지 일들 중 하나입니다. 때로 죄의식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알려주는 안내자역할을 합니다. 자신의 가치관에서 벗어나는 일을 하고 있음을, 또는 본래의 모습에서 일탈했음을 일깨워 줍니다. 죄의식을 통과해 앞으로 나아가기위해서는 자신의 가치관과 행동을 일치시켜야 합니다.

 

헬렌과 미셸은 둘 다 50대 여성으로 20년 넘게 친구로 지내왔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로 헬렌은 미셸에게 화가 났고, 4년 전부터 서로 거의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헬렌은 미셸의 이름을 듣기만 해도 성을 냈습니다.

난 지난 4년간 친구에게 주려고 산 생일 선물들을 아직도 지하실에 보관하고 있어요. 미셸이 날 위해 시간을 낼 때까지 선물을 주지 않을 거예요.”

둘 다 재혼을 하고부터 그들은 지금까지 명목상으로만 친구로 남게 되었습니다. 미셸이 먼저 재혼을 했습니다. 헬렌은 진심으로 축하했지만, 자꾸만 자신이 미셸에게 보잘것없는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바로 그 즈음, 헬렌은 두 번째 남편을 만났고 두 친구는 이후 계속 소원하게 지냈습니다. 헬렌이 여러 차례 전화를 했지만, 그때마다 미셸은 시간을 내지 못했습니다. 헬렌은 미셸, 네 생일 선물을 준비했어. 우리한번 만나자.” 하고 말했지만, 두 사람은 결국 한 번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헬렌이 유방암에 걸렸습니다. 헬렌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때마다. 금이 가버린 미셸과의 우정이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습니다. 미셸을 위해 사 둔 그 생일 선물들을 모두 우편으로 보내 주면 어떻겠냐고 물어보았지만, 그녀는 펄쩍 뛰며 말했습니다. “우리가 다시 만나기 전까지는 안 돼요. 난 지난 여러 해 동안 노력해 왔어요. 난 앞으로도 계속 미셸에게 전화해서 멋진 선물을 준비해 두었다고 얘기할 거예요.”

친구와의 불화가 죄의식 때문은 아닌지, (데이비드 케슬러)는 화가 나 있는 헬렌에게 물었습니다. 그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죄의식 같은 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행동을 함으로써 친구에게 죄의식을 느끼게 하려는 건 아닌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녀는 당황하면서 되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죠?”

내가 말했습니다.

내 생각엔, 이유야 어찌 됐든 미셸은 당신을 만나지 않음으로써 당신과 친구 관계를 끝내거나, 아니면 최소한 방식을 바꾸려는 것 같군요. 하지만 당신은 이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는 대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해마다 더 비싼 생일 선물을 샀어요. 당신이 첫 해에 그런 행동을 한 건 이해가 가지만, 4년 동안 계속 그렇게 해온 이유가 뭐죠? 선물을 사 봤자 소용없으리란 걸 알았을 텐데요.”

난 그때마다 올해는 둘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녀가 산 선물들이 어떤 식으로든 달라진 점이 있느냐고 묻자, 그녀는 해가 바뀔 때마다 점점 더 좋은 선물을 샀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전혀 받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점점 더 멋진 선물을 주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헬렌은 당황하며, 자신의 행동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러더니 화난 투로 불쑥 쏘아붙였습니다.

당신은 이해 못해요. 나쁜 쪽은 미셸이에요. 만나려고 하지 않은 쪽이 바로 그 친구라구요.”

그 말을 받아 내가 말했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당신이 친구를 위해 산 선물들은 그녀에게 죄의식을 심어 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요? 당신은 점점 더 좋은 선물을 사면서, 미셸이 그 선물을 받았을 때 무엇을 느끼길 바랐나요?”

마침내 헬렌은 고개를 떨구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인정했습니다.

나를 만나 주지 않은 것에 대해 미셸이 죄의식을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그녀가 당신 목소리에서 당신의 그런 생각을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나요? 어쩌면 그래서 그 친구는 당신을 만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몰라요. 당신은 더 이상 진심으로 선물을 건네는 것이 아니에요. 모두가 죄의식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었어요.”

그녀가 말했습니다.

이제 그만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어요. 좀 더 좋은 쪽으로 해결하고 싶어요.”

그러면 선물을 우편으로 보내세요.“

헬렌이 고집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싫어요

그럼 자선단체에 보내세요.”

안 돼요. 그럴 순 없어요.”

마음이 가벼워지기를 바란다면, 그 죄의식을 버려야 해요. 당신이 갖고 있고, 또 미셸에게 심어 주려는 그 죄의식 말예요. 그 선물들에 집착하는 한, 당신은 죄의식에 붙들려 있게 돼요. 친구에게 죄의식을 느끼게 하려 했기 때문에 이제 당신이 죄의식을 느끼고 있는 거예요.”

생각해 볼게요.”

몇 주가 지나 헬렌은 미셸에게 용기를 내어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번에는 너에게 줄 선물이 있어.” 하고 말하는 대신, 그렇게 말한 걸 사과했습니다. 미셸은 헬렌에게 그 선물 때문에 정말로 자신이 인질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둘은 이제 다시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다시 우정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깨끗한상태에서 시작하기로 약속하고, 선물을 자선 단체에 기부했습니다.

죄의식은 우리를 가장 어두운 내면에 묶어 둡니다. 그것은 우리를 나약함, 수치심, 냉정함과 연결합니다. 우리의 부정적인 부분이 그 죄의식을 먹고 자랍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역시 죄의식을 키우는 영양분입니다. 죄의식을 느낄 때 우리의 마음은 좁아지고, 하찮은 생각들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수치심을 느낍니다. 이것을 치유하려면 활발히 행동하고, 그 감정을 다른 사람과 나눠야 합니다. 진정한 자아는 죄의식을 알지 못합니다. 진정한 자아는 이 세상의 죄의식을 초월해 있습니다.

 

수치심과 죄의식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수치심은 과거의 죄의식에서 생겨납니다. 죄의식은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가에 대한 것인 반면, 수치심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감정입니다. 의식 속에 자리 잡은 죄의식은 영혼을 공격하는 수치심으로 변합니다. 죄의식과 마찬가지로, 수치심도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기 전인 어린 시절에 뿌리를 내립니다. 자신의 실수를 책임질 만한 나이가 되기 전부터 그것은 자라기 시작합니다. 많은 실수를 저지르지만 그 실수들이 우리의 본 모습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전부터, 자신의 욕구와 부모의 의견이 충돌하면, 우리는 틀림없이 자기가 뭔가를 잘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다가 자신의 존재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믿게 됩니다. 상처와 분노와 마음을 가슴에 묻어 두다가, 이제는 자신에 대해서 나쁜 감정을 갖게 됩니다.

열여섯 살인 엘렌은 어머니가 되기엔 어렸지만, 임신하기엔 충분한 나이였습니다. 그녀의 가족은 그런 일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녀와 삶에 대해 대화를 나눠 본 적도 없었습니다. 엘렌은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에야 부모에게 임신 사실을 털어놓았습니다. 죄의식과 수치심에 사로잡힌 엘렌의 부모는 그녀를 먼 곳으로 보내 아이를 낳게 하고, 아이는 다른 집에 입양시키기로 했습니다. 엘렌은 아이를 한 번이라도 자세히 보고 싶어서 의사가 권유하는데도 출산할 때 진통제 쓰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덕분에 사람들이 아이를 데려가기 전에 작고 귀여운 딸아이를 볼 수는 있었지만 결국 안아 보지는 못했습니다.

55년도 더 지닌 지금 엘렌은 심장이 약해지고 전체적으로 건강이 나쁜 상태입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이제 삶을 마무리할 때가 왔군요. 난 삶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어요. 첫 출산한 딸아이를 제외하면요. 지금에 와서 난 그 애를 포기한 나 자신을 용서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 애를 임신했을 때는 나 역시 어린아이였어요. 내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예상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때의 일에 대한 수치심이 평생 나를 따라다녔어요. 그 애 생각을 참으로 많이 했어요.

나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 애를 찾기엔 너무 늦었을지도 몰라요. 그 애를 찾는다는 것 자체가 이기적인 생각일 수도 있고요. 그 애는 자기가 입양됐는지조차도 모를 수도 있으니까요. 당시 난 어렸고 철도 없었지만, 그 수치심을 극복하기 위해 내가 어떻게든 노력했다고 느끼며 이 세상을 떠나고 싶어요. 그래서 그 애한테 이렇게 편지를 썼어요.”

네가 이 편지를 읽을 때쯤이면, 난 아마도 이 세상에 없을 거야. 나는 꽤 행복한 삶을 살았지만, 그 안에 너는 없었구나, 난 많은 시간을 죄의식 속에서 보냈단다. 좀 더 빨리 해결했다면 좋았을 텐데. 내가 널 찾을 수 있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네가 원한다면 나를 쉽게 찾도록 할 수는 있었을 테지. 이제 내 삶이 다한 것 같으니, 한 가지 해야 할 일을 하고 떠나야겠구나. 그 일이란 바로 너에게 이 편지를 남기는 거란다. 삶이 아무리 불공평하게 생각되더라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면, 생을 마감할 때 삶의 진정한 가치를 느낄 수 있을 거야. 불공평함을 일찍 맛보았지만, 넌 태어난 순간부터 불공평함을 겪었지. 하지만 넌 분명 그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거야. 완벽한 삶이 아닌, 가치 있는 삶을 말이다., 넌 환영 받는 존재였고 난 절대로 널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단다. 어떤 면에서는 널 결코 버린 적이 없어. 부디 의미 있고 좋은 삶을 살기 바란다. 살아서 못했으니 죽은 후에라도 하늘에서 지켜보며 보호해 주마. 네 삶의 마지막 날, 너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그것이 나의 가장 큰 바람이야.

 

엘렌이 죽은 후, 그녀의 가족들은 침실을 정리하다 이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지역 라디오 방송에서 편지의 수신인을 찾기 위해 그녀의 이야기를 내보냈습니다. 몇 달이 지난 뒤, 한 여성이 자신이 엘렌의 딸인지 확인하고 싶다며 나타났습니다. 조사해 본 결과, 그녀가 바로 엘렌의 딸이었습니다.

엘렌의 경우처럼 어린 시절의 수치심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큰 책임감을 심어 줍니다. 학대를 당하면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느낍니다. 수치심을 느끼면서도 자기는 그런 수치를 당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을 받지 못하면 스스로를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식으로 자신에게 일어나는 안 좋은 상황들이 모두 자신의 잘못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진실은, 우리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자신의 행동 때문에 상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나쁜 사람들은 타인에게 상처를 입혔다고 해서 자책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기분이 든다면 우리가 그만큼 좋은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죄의식은 너무도 고통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처음에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 감정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 죄의식을 다른 누군가에게 떠넘기면서 그것을 떨쳐 버리려고 합니다.

죄의식과 자책감을 감당하는 건 너무 힘드니까, 이제부터는 네가 죄의식과 자책감을 느껴야 해.” 라는 식입니다. 다시 말해, “난 잘못하지 않았어. 그러니 네가 잘못한 거야.”라며 떠넘기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숨는다면 죄의식의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마음의 평화와 죄의식은 서로 반대편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의식과 마음의 평화를 동시에 느낄 수는 없습니다. 사랑과 평화를 받아들일 때 죄의식에서 벗어나며,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때 사랑과 평화로부터 멀어집니다.

다행히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사랑을 경험할 수 있고, 죄의식과 마음의 평화를 맞바꿀 수 있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두면 누구나 신이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며 우리의 잘못과 허물을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실수를 저지를 수밖에 없으며, 그것이 인간 경험의 일부입니다. 죄의식은 시간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죄의식은 언제나 과거의 일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과거는 계속해서 우리를 쫓아다닙니다. 자기 비난은 지금 이 순간의 실체를 회피하는 하나의 길이며, 과거를 미래로까지 끌고 갑니다. 과거의 자기 비난은 우리의 미래마저 자기 비난으로 채울 것입니다. 죄의식을 내려놓을 때에만 과거가 새로운 미래를 만들 수 있습니다.

죄의식은 분명히 치유되어야 합니다. 그룹 치료 방식을 통해 사람들에게 자신의 분노를 풀게 하는 것도 매우 좋은 방법 입니다. 그러고 나서 속에 죄책감도 털어놓게 해야 합니다. 좋은 의도로 마련된 자리에서 죄의식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의외로 쉽게 죄의식을 털어 버리며 때로는 눈물을 쏟기도 합니다. 이런 종류의 나눔은 가톨릭교의 고해 성사와 비슷합니다. 고해를 함으로써 우리는 비밀스런 짐들을 털어 내고, 자신보다 더 큰 힘으로부터 사랑받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또한 우리가 여전히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치유의 열쇠는 용서입니다. 용서란 과거를 인정하고 보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신이 했다고 여기는 잘못은 용서를 통해 깨끗이 정화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평생 동안 다른 이들에게 가혹했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가혹했습니다. 이제는 그 모든 것들을 떨쳐 버릴 시간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스스로를 용서할 때, 자기 비난은 더 이상 따라다니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기 비난이 아니라 용서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이 배움을 얻을 때 진정으로 자유로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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