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덕의 新줌마병법]
百戰百勝?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
며느리 휘어잡는 비책? 道 닦듯이, 政治 하듯이
하나 주고 둘 얻으려면 속을 다 보여줘선 안 돼
욕심과 집착 버리면 돈·학식 없어도 백전백승
김윤덕 기획취재부 차장
그리 순순히 손목을 내어주는 게 아니었다. 핏빛 단풍에 홀려 정읍 가는 기차에 냉큼 올라탈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앞길 창창한 스무 살에 덜컥 새 생명을 잉태하였으니, 정숙씨 고생은 그때가 시작이었다.
공룡이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어렵다는 취업바라지 3수(修) 끝에 외아들을 백수 탈출시켜 놓고 이제 좀 팔자가 펴나 했더니, 나이 오십둘에 며느리를 보게 될 줄 누가 알았느냐 말이지.
'지 애비 아들 아니랄까 봐' 하고 혀를 찬들 이미 엎질러진 물이어서, 기왕 이리된 거 세상 제일의 시어미가 되어보자 하고, 팔순 연치(年齒)에 새삼 한문공부에 재미를 붙인 호호백발 시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한 수 가르쳐주시지요.
"이빨 빠진 호랑이한테 한 수는 무슨."
―퉁기지 말고 한 말씀 주시지요.
"화이부동(和而不同). 사이좋게 지내기는 하나 무턱대고 어울리진 말아야지."
―기왕이면 친딸처럼 아끼고 사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선무당 송편 뜯어 먹는 소리. 병법(兵法)을 연구해도 모자랄 판에."
―며느리와 싸우란 말입니까.
"자네와 내가 전쟁한 지 어언 40년이네."
―어찌 싸워야 합니까.
"맨입으로 어찌…."
―백화점에 찜해두셨다는 닭스 투피스 한 벌 뽑아드리지요.
"싸우지 않고 이겨야지. 백전백승(百戰百勝)보다 부전이승(不戰而勝)이 아름답다 하였으니."
―학벌이 달려도 너무 달리니 전장에 나서기도 전에 주눅이….
"중졸이라고 국졸인 시어미를 우습게 여기더니 쌤통이로고."
―무식하다고 구박한 쪽은 어머니였지요.
"속성(速成)으로 유식해지는 법이 있긴 하네만."
―바바리코트는 어림없습니다.
"낼모레 저승 갈 내가 뒷방에 앉아서도 천리 밖을 내다보는 비법, 신문에 있나니."
―문자 몇자로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매귀추마(買鬼推磨·귀신을 사서 맷돌을 갈게 하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리나니."
―재산이라곤 달랑 이 집 한 채뿐이외다.
"돈 없고 학식 없으면 며느리보다 월등히 잘하는 한 가지가 있어야지."
―쩜당 백 고스톱은 자신 있습니다만.
"자네가 동치미 하난 맛깔 나게 담그지. 그것이 박사학위보다 위력적임을 알게 되리니."
―초반에 기선을 제압하라 하더이다.
"속을 다 보여줘선 안 되지. 아무리 기뻐도 박장대소 말고, 슬퍼도 대성통곡 말며, 화가 나도 불을 뿜어선 안 되느니."
―도(道)를 닦으라!
"아들 생일은 잊어도 며느리 생일은 잊지 마시게. 둘이 다투면 고까워도 며느리 편들고, 며느리 티끌만 한 장점도 대들보인 양 칭찬하시게."
―정치를 하라십니까.
"자네의 패도 꺼내야지. 아침밥은 거르지 말 것, 삼일에 한 번 문안전화 드릴 것, 부모의 생신과 기일을 엄수할 것."
―그거야 기본이지요.
"기본이 전부이고, 그래서 어려운 법. 또 하나, 집안 대사(大事)는 반드시 며느리와 상의하시게."
―아예 곳간 열쇠를 내어주라 하시지요.
"여기가 내 집이란 주인의식을 며느리가 느끼는 순간 자네의 승리!"
―손자를 봐달라 하면 어찌합니까.
"월급통장을 내놓으라 하시게."
―며느리 하는 짓이 눈꼴 사나우면 어찌합니까.
"모기를 보고 칼을 빼어들 수야 없지."
―그래도 아들이 아까워 죽겠습니다.
"나는 얼마나 아까웠겠는가."
―며늘아기 관상에 후덕한 데라고는 없으니.
"구부러진 쑥도 삼밭에 나면 꼿꼿이 자라는 법. 어진 이와 함께 있으면 어질어지고 악한 이와 있으면 악해지나니."
―차라리 성인군자가 되라 하소서.
"결혼과 동시에 아들은 며느리의 것. 아들에 대한 눈곱만 한 연민까지도 칼같이 거둬들이면 이 땅에 더 이상 고부갈등이 없으리니."
―모자지간의 숭고한 사랑을 끊으라니요.
"사랑이 아니라 집착. 자네 아들한테 쏟아부은 정성의 10분의 1만 내 아들에게 나눠줬으면 우리 아들 몰골이 저리되었겠나."
―그래도 싫습니다. 꼴리는 대로 살랍니다.
"우공이산(愚公移山), 어리석은 사람이 산을 옮기는 법. 천 번을 흔들리면 뭐하노. 바로잡는 결단이 있어야지."
―근데 말입니다. 저는 이토록 위대한 시어머니를 모신 기억이 없으니 어찌 된 일입니까.
"1루·2루·3루를 밟아야 홈에 들어가는 법. 이생과 작별할 날 닥치니 깨달음이 폭죽처럼 터지는 것을.
근데 말이야. 미운 정 옴팡지게 들어야 진짜 정이라더니, 그토록 밉상이던 자네가 요즘 예뻐 보이는 것은 나의 망령인가, 도통(道通)인가."
/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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