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問/古典

퇴계학파의 남명학 비판 / 조남호

경호... 2015. 7. 19. 04:41

퇴계학파의 남명학 비판

 

-曺好益, 李玄逸, 李萬敷를 중심으로-

 

조남호* *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연구원

 

〈목 차〉

1. 서론
2. 본론
  1) 미발이발-존양성찰 논쟁

  2) 인심도심논쟁
3. 맺음말

 

 

1. 서 론

 

조식과 이황은 대립적인 관계에 있었다.1] 학문상이나 기질상으로도 그렇다. 이언적을 둘러싼 관계에서도 그점은 분명히 드러난다. 조식은 이언적과 사이가 좋지 않았으나, 이황은 이언적을 높이 평가하였다. 이언적이 ?關西問答?을 짓자, 조식은 ?解關西問答?을 지어 ?관서문답?에 대하여 비판을 한다. 이것을 정인홍이 간행하고, ‘회퇴변척문’을 쓰자, 퇴계학파는 이를 다시 비판한다.2]

 

이황은 조식에 대해서 비판적이었지만, 대부분의 퇴계학파는 조식과 남명학파에 호의적이었다.(金聖鐸,3] 李象靖,4] 崔興遠,5] 鄭宗魯,6] 李源祚,7] 李瀷8]) 서인-노론이 일당 지배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영남이 분열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식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학자들은 소수에 불과하였다. 曺好益(1545-1609, 자는 士友 호는 芝山), 李玄逸(1627-1704, 자는 翊昇 호는 葛庵), 李萬敷(1664-1732, 자는 仲舒 호는 息山)가 그들이다.

 

2]조식은 자신의 족인인 조윤손과 이언적 사이에 관비 석씨가 낳은 전인을 두고서 혈통시비가 벌어지면서 이언적의 사생활을 자세히 알게 되었고, 그에 대한 불만과 함께 을사사화 당시 친구인 곽순과 송인수 등이 처벌을 당할 때, 이언적이 추관의 한사람으로 있으면서 그들을 구제하지 못했다는 것 등에 대한 불만이 쌓여 마침내 전인의 출생을 둘러싼 사정, 이언적 부자의 문답 내용에 관한 문제점 및 이언적의 출처와 거관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조식의 태도는 이언적의 사후 전인이 주도한 이언적의 시원 및 현양 사업에 적극 협력하는 동시에 이언적의 유고 교정과 행장의 찬술 등에 심혈을 기울였던 이황의 경우와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 하겠다. 이후 정인홍이 편찬하여 간행한 남명집에 이글이 실려 세상에 반포되자 이언적과 이황의 학통을 계승한 경상 좌도의 사림은 이에 대해 매우 분개하는 사태가 일어나게 된다. (?남명집??관서문답?해제참조)

3]?霽山集?권13 河謙齋先生文集序 6ㄴ. 退陶南冥兩先生, 幷生一時, 爲儒林宗主, 如天之有南北斗, 地之有垈華焉, 然兩賢資稟德器, 學問工程, 不無少異者. 故至今誦其詩讀其書者, 間或有軒?之論, 此非末學所敢輕議. 要其遺風餘韻, 歷屢世而不衰, 使學者, 想像興慕而頑夫以廉, 懦夫以立, 則曹先生, 豈不亦孟子所謂百世之師者哉.

4] ?대산집?, 권45 書權上舍季周游智異錄後 24ㄴ 每誦南冥千?峯頭冠一玉之句, 未嘗不神馳夢오欲一往遊而不可得.

5] ?百弗菴集? 권14 31ㄴ退溪南冥兩先生?生一世. 其規模氣象自不同. 退溪先生渾然純粹, 南冥先生壁立直截. 是故流風遺韻之在於人者, 只今亦可驗得左右道人品俗習逈然都別. 學問之士, 左道較多. 節義之士, 右道較多. 世級漸變, 雖不免各有弊, 然尙論者, 須當知所辨矣

6] ?입재집? 권26 无悶堂集序 15ㄱㄴ南冥曹文貞公?起方丈之下, 壁立千?, 芥視萬鐘, 其英姿偉論高風峻節, 足以使百世之士, 亦莫不慕而興起, ?於去當時爲不遠者乎. 以故山海之間, 往往有豪邁傑特之賢出, 薄功利而敦學問, 重名義而輕爵祿, 以幾及其踵武焉.

7] ?응와집? 山房寓物錄 권11 10ㄱ 南冥先生反躬造約斂煩就簡, 不以著述自居, 又不喜爲講論辨析之言, 學紀類編所?集, 皆先賢格言, 只爲觀省之資, 而後人分類編入於諸圖之下, 不無枝梧處, 故桐溪跋文已言之.

8] ?성호사설? 권1 동방인문조. 中世以後 退溪生於小白之下, 南冥生於頭流之東, 皆嶺南之地, 上道尙仁, 下道主義, 儒化氣節, 如海?山高, 於是乎文明之極矣.

 

 

조호익은 조식을 비판하고 이언적을 옹호한다. 그는 조식을 이언적이 비판한 曺漢輔와 같다고 비판한다.

 

 

"조식은 일찍이 선생을 기롱하고 배척한 것이 많았으나, 이언적 선생은 듣지 못한 것 같이 하였다. 이를 일러 ‘범하지만 계교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언적 선생은 일찍이 조한보가 이단으로 돌아간다고 배척하였으나, 조식의 학문이 조한보의 학문과 같다.……저 같은 구구한 뜬 비난의 말이 어찌 선생의 큰 도에 무슨 해가 되겠는가? "9]

 

9]?남명집?권5 14ㄴ-15ㄱ. 南冥嘗譏斥先生者多, 而先生若不聞焉. 此所謂犯而不較者也. 先生嘗斥忘機堂歸之異端, 而南冥之學, 與忘機同. ……先生之學, 槪自得於心, 而爲吾東始有之大賢矣, 彼區區浮파之說, 何損於先生之大道哉

 

조한보는 이언적과 태극논쟁을 벌이는데, 조한보는 ‘무극’‘허무’적멸‘등의 표현을 씀으로써, 이언적으로부터 선불교라는 비판을 받는다. 조호익은 조한보가 이러한 개념들을 사용하는 것이, 곧 조식과 같다고 지적하는 것이다.10]

 

조호익은 조식이 “위로 천리에 통하는 측면에서는 유학과 불교가 같다”고 한 것은, 유학과 불교의 차이점을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반박한다.11]

 

아울러 조호익은 이언적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언적은 주희의 ?大學章句?를 개정한다. 주희가 만든 ‘격물치지장’을 인정하지 않고, 經에 있던 “物有本末, 事有始終, 知所先後則近道矣.”와 “知止而后有定, 定而後能靜, 靜而後能安, 安而後能慮, 慮而後能得.” 두 구절을 떼어 내어 格物致知를 해석하는 傳으로 삼는다.12] 이에 대해 조호익은 그렇게 되면 격물치지장이 소략하게 된다고 비판한다. 13]

 

10]조한보의 이러한 개념은 도가나 불가의 그것과는 달리 매우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다. 그가 이러한 개념을 쓴 것은 도덕률의 객관성 보다는 자유로운 주체를 확립하고자 한 것이다. 장원목, ?조선 전기 성리학 전통에서 리와 기?, ?한국유학과 리기철학?, 예문서원, 109쪽.

11]?지산집? 권5 題南冥曺先生乙卯辭職疏後 13ㄴ 先生其爲上達天理, 則儒釋一也之說, 恐未瑩也. 釋氏雖曰有上達之功, 而但見冷冷灑灑. 一塵不着. 以爲如鑑則姸?不分, 以爲如水則茶飯失性, 豈如吾儒湛然虛明之中, 萬理畢具, 而動必中節者乎.

12]그리고 傳 4章에 있던 “子曰, 聽訟, 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 無情者, 不得盡其辭, 大畏民志, 此謂知本.”의 구절을 經 끝 부분에 놓음으로써, 전체 10장을 9장으로 줄인다.

13]같은 책, 같은 곳. 先生以太學物有本末云云一節, 移置格物致知章之首, 甚切當. 所見極高, 到前賢所未到處. 但格物致知者, 大學敎人最初地頭. 其論用功處, 未必不如誠意正心修身章之爲者, 此節上二句, 泛言事物之有本末終始, 下知所先後四字, 方言工夫, 知止一節. 專言物格知至以後之事, 其論用功處太略, 恐又有缺文, 恨吾生太晩, 未及稟質.

 

 

이현일은 이황이 정통이고, 나머지 학자들은 문제가 있음을 지적함으로써, 퇴계학파의 선봉장임을 자처하였다. 따라서 그가 보기에 조식과 이언적 모두 문제가 있다. 그는 이언적과 조식을 비교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조식을 비판한다. 그는 이황과 조식의 시를 비교하고 있다.

 

 

이황의 시-野池(들판의 못)

 

이슬 머금은 풀이 아스라이 물가에 둘렀고 露草夭夭繞水涯

작은 못 맑고 맑아 모래 한 점 없구나 小塘淸活淨無沙

날아가는 구름 지나가는 새는 원래 상관없는 것 雲飛鳥過元相管,

다만 때때로 제비가 물결 찰까 두려워라14] 只?時時燕蹴波

 

 

조식의 시- 江亭偶吟(강가 정자에서 우연히 ?음)

 

병으로 산속 집에 누웠으니 낮 꿈이 번거로운데 病臥山齋晝夢煩

구름 속의 나무 도화원을 몇 겹이나 격해 있는가? 幾重雲樹15]隔桃源

새 물 푸른 옥보다 더 깨끗한데, 新水淨於靑玉面

미워라, 제비가 차서 물결 생긴 흔적이! 16] 爲憎飛燕蹴生痕

 

 

두 시에 대해 이현일은 다음과 같이 평한다.

 

"두 시는 모두 자연을 자득한 취향이 있다. 다만 이황의 시는 고요할 때는 보존하고, 움직일 때는 살펴서, 외물이 오면 순응하는 기상이고(유가적), 조식의 시는 텅비고 고요함을 주장하여 비추어 어떠한 것도 없는 것을 구하는 생각이다(도가적)." 17]

 

이현일은 이황은 유가적인 사고인데 비하여 조식은 도가적인 사고라고 비교하고 있다.18] 조식을 도가라고 비판하는 것은 이미 이황에게서 시작되고 있다.19] 그러나 원래 이 두 시는 주희의 시20]를 모방하여 지은 시이다. 주희는 미발의 본성에 초점이 있다면, 이황이나 조식은 모두 미발의 본성에서 흘러 나오는 인간의 감정이 욕망에 의해서 흐려지는 것을 경계한다.

 

14]?퇴계집 속집? 권1

15]?갈암집?에는 水로 되어 있다.

16]?남명집?권1 11

17] ?갈암집?권19 25ㄱ 兩詩皆有天然自得之趣. 但退陶詩有靜存動察, 物來順應底氣象, 南冥詩便有主張空寂, 求照無物底意思.

18]정동화는 조식의 시가 이황의 시에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정동화, ?도학적 시세계의 한 국면?, ?민족문화? 22집, 민족문화추진회, 1999. 185쪽) 그러나 이 둘의 시는 동시에 쓰여진 것 같다.

19] ?퇴계집? 권19, 답황중거 此等人多是老莊爲崇, 用功於吾學, 例不深邃, 何怪其未透也. 要當取所長耳.

20]?朱子文集大全? 2-61 ?觀書有感? 半畝方塘一鑑開, 天光雲影共徘徊. 問渠那得淸如許? 爲有源頭活水來. (반이랑 네모난 못 한 거울 처럼 열리니, 하늘 빛 구름 그림자 함께 감돈다. 어찌 이리도 맑을 수 있을까, 원두에서 살아 있는 물이 흘러 오기 때문일세)

 

 

이만부는 특이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道東編?에서 이황의 호발설과 이이의 일도설을 병존시켜 퇴계학파로부터 갈등을 빚었다.21] 아울러 그는 1721년에 덕천서원에 원장에 취임한다.22] 그는 덕천서원 원장 추대에 “나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그와 교류했던 남명학파 학자는 河大應과 金聖運이다.23] 그래서 그는 퇴계학파의 다른 학자들과 달리 남명학파에 대해서 그렇게 부정적이지 않다.

 

이만부는 조식의 “요즘 공부하는 자들을 보건데 손으로 물 뿌리고 비로 쓰는 예절도 모르면서 입으로는 천리를 이야기하여 이름을 도둑질하고 남을 속이려한다”는 주장은 “입이나 귀로 학문을 경계할 뿐이고”, 학문의 큰 근본에 관해서는 반드시 이황을 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24] 이만부는 조호익이나 이현일처럼 조식의 학문 경향성을 문제삼지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황을 정통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조호익 이현일 이만부는 조식과 남명학파 ‘전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지만, ‘개인’들에 대해서는 문집의 서문을 쓰는 등 관계를 맺고 있다. 조호익은 조식의 문하에 입문하지 못하여, 질문을 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25]. 이현일은 河弘度의 행장을 쓰고 있고26], 이만부는 ?무민당집?의 서문을 쓰면서 조식과 남명학파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27]. 남명학파를 비판하면서도, 여전히 부정할 수 없는 것이 퇴계학자들의 고민이었던 것이다.

 

조호익은?지산집?권5?題南冥關西問答辨後?에서?관서문답?에 관련된 4조목, 이언적의 대학장구에 대한 1조목 , 그리고 ?題南冥曺先生乙卯辭職疏後?에서 을묘사직소와 관련된 1조목을 논의하고 있다. 이현일은 ?갈암집? 권19 ?愁州管窺錄?에서 ?관서문답?에 관련된 3조목. 이황과 조식의 시에 관련된 1조목을 논의하고 있다. 이만부는 ?關西問答記疑?를 저술하고 있는데 그중 조식의 ?해관서문답?과 관련된 11조목, 조식과 관련없는 6조목을 논하고 있다.

그 중에서 조호익, 이현일, 이만부가 함께 논의하고 있는 조목은 2 이다.

하나는 미발이발-존양성찰논쟁이고 다른 하나는 인심도심논쟁이다.

 

이 글은 조호인 이현일 이만부가 함께 논의하고 있는 두 조목을 고찰해보기로 한다. 이러한 고찰은 남명학에 대한 정체성 규명과 연결이 되어 있다. 기존의 연구는 남명학을 주자학인가 아니면 육왕학인가 하는 남명학의 정체성을 구명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러한 연구는 주로 각자의 주자학이나 육왕학에 대한 틀을 가지고 설명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필자는 이러한 연구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퇴계학파가 남명학을 어떻게 규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8]

 

21]금장태, ?밀암 이재의 성리학?, ?조선후기의 유학사상?, 서울대 출판부, 180쪽.

22]?덕천서원 원임록?, 辛丑 景宗元年 十月十七日 院長 閔點, 是月 二十五日 來謁廟 院長 李萬敷. 院任 河世龜, 權大一.

23]권태을, ?식산이만부문학연구?, 문창사, 1998, 51쪽.

24]?식산집?권6 17ㄴ. 冥老之敎, 槪警口耳爲學之輩而已, 若學問門路大本, 則必循退老, 然後可無滯泥之患, 此亦不可不知也.

25]?도산급문제현집? 권3 556-557참조

26]?갈암집?권28 6ㄱ 外大父竹閣李公曾遊南冥曹氏之門, 與鄭寒岡崔守愚堂, 結道義交, 得講磨切磋之益, 蓋先生學問來歷所淵源,

27] ?식산집? 권17 22ㄱㄴ. 昔曺南冥先生, 肥遯頭流之下, 得幽貞之吉, 고儒碩賢之及門者?矣. 其世差後, 未及親炙而聞其風而興者, 有无悶堂先生朴公焉, 公少而羅難失學, 稍長自奮絶意進趣, 委己向善, 嘗曰出處正, 見到明, 南冥爲吾東一人而已, 蓋以學者步趣心術, 多從名利路頭壞了. 苟不如南冥之標立自伸 於利義辨得早, 則欠爲已第一義. 其志可見.

28]?관서문답?과 관련된 논쟁은 남명학파와 퇴계학파 사이에서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퇴계학파와 회재학파 사이에서도 일어났다. 이 문제는 이미 이수건과 이수환에 의해서 지적이 되었지만, 후일에 좀 더 자세한 연구를 필요로 한다.

 

 

2. 본 론

 

1) 미발이발-존양성찰 논쟁.

 

주희는 마음의 발동 이후와 이전으로 나누어, 그것의 공부를 둘로 나눈다. 발동이전은 未發의 공부로, 戒愼恐懼의 공부이고, 발동이후는 已發의 공부로, 愼獨의 공부이다. 미발공부는 마음이 발동하기 이전에 주체성(또는 선의지)을 기르는 공부(存養)이고, 이발공부는 마음이 발동한 뒤, 의식을 살피는 공부(省察)이다.

 

후대 학자들은 대학에서는 성찰공부가, 중용에서는 존양 성찰공부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대학에서는 성찰 공부만 있고, 존양 공부가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에 나흠순을 비롯한 명대 학자들은 대학의 正心공부가 미발 이발공부를 둘 다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29] 이언적도 이러한 구분을 따른다.

 

 

"이전인이 대학을 읽고 있었다.

이언적이 물었다; “대학은 성찰을 이야기하고 존양을 말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전인이 말하였다; 자세히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언적이 말했다; ‘마음을 보존하지 않으면’이라는 한 단락이 존양하는 곳이다. 비록 존양하는 방법을 말하지 않았더라도, 주희의 ‘경으로써 마음을 바르게 한다’30]는 말이 이것이다.31]"

 

 

이언적은대학?정심장?의 ‘마음을 보존하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 는 구절에서, 존양의 공부의 의미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조식은 이언적의 미발과 이발 공부의 구분 자체를 문제 삼는다.

 

 

"이언적이?대학?에는 존양의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틀림없이 이전인이 잘못 적은 것이라 하겠다. “대학의 도는 명덕을 밝히고, 지극한 선에 머무르는데 있다”는 것은 ?대학?의 첫머리에서 존양하는 곳임을 밝힌 것이다. 이는 초학자라도 누구나 이해해야 하는 것인데, 이언적이 모를 리가 있겠는가?"32]

 

 

조식은대학에서도 존양 공부가 있다고 한다. 그는 대학의 정심장 ‘마음을 보존하지 않으면’을 존양과 성찰이 함께하는 공부로 간주한다.33] 그는 여기서 한걸음 더나아가 대학 첫머리 즉 明明德에서부터 존양공부를 해야한다고 한다. 조식의 이러한 주장은 존양과 성찰 이 분리되지 않아야 한다고 하는 입장에서 나온 것이다.

 

이에 대해 조호익은 대학에서 존양을 결하고 있다는 주장은 유독 이언적의 주장만이 아니라고 하고,34] 대학의 공부는 대부분 성찰에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중용?의)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때 계신공구한다’는 단락은 대학에서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35]

 

29]곤지기 속상 41.

身有所忿?, 則不得其正. 有所恐懼, 則不得其正. 有所好樂, 則不得其正. 有所憂患, 則不得其正.

每嘗玩味此章, 所謂不得其正者, 似只指心體而言. 章句以爲用之所行,

不能不失其正, 乃第二節事, 似於心體上欠却數語. 蓋心不在焉以下, 方是說應用之失, 視聽飮食一切當面蹉過, 則喜怒憂懼之發, 鮮能中節也可知, 故欲修其身者, 必先正其心, 其義明矣. 又詳有所二字, 只是說人情偏處. 蓋人之常情有多喜者, 有多怒者, 有多懼者, 有多憂者, 但一處偏重, 便常有此一物橫在胸中, 未免?却正當道理, 此存養省察之功, 所以不可須臾忽也.

30]?대학장구?心有不存, 則無以檢其身, 是以君子必察乎此而敬以直之, 然後此心常存而身無不脩也.

31]?관서문답록?6ㄴ. 仁讀大學, 大人問大學言省察而不言存養, 何如, 仁曰未詳知矣. 曰心不在焉一節, 乃存養也, 雖不言存養之方, 朱子釋以敬以直之之言是也.

32]?남명집?권2 36ㄴ. 大學不言存養, 此必全仁之誤記. 大學明明德止至善, 乃開卷第一存養地也. 初學之士亦當理會?復古乎

33]?남명집 학기유편?誠圖, “正心의 단계에 이르러, 존양 성찰을 이야기하니, ···· 마음이 아직 발하지 않은 상태에서 본체는 치우치지 아니하고, 마음이 드러난 상태에서 본체의 신묘한 작용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집착하지 않는다)” (到正心言存省, ···· 本體不偏於未發, 妙用不留於已發)

34]이 주장은 송대 饒魯에 의해서 처음 제기되었다.?중용?1장 雙峰饒氏曰 戒懼存養之事, 愼獨省察之事, 中庸始言戒懼愼獨而終之以篤恭, 皆敬也. ·······大學只言愼獨, 不言戒懼. 初學之士, 且令於動處做工夫.

35] ?지산집?권5 14ㄱㄴ. 大學欠存養之說, 非獨先生之說爲然, 先儒亦有言之者, 大學工夫, 多在省察上, 如戒愼不睹, 恐懼不聞一節, 則未嘗言也

 

 

이현일도 조호익과 마찬가지로 ?대학?에서 존양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언적의 독창적인 말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조식이 말한 “대학 삼강령이 존양의 첫 번째 뜻이라고 하는 것은. 비록 처음 배우는 초학자라도 누구나 이해해야 하는 것인데, 이언적이 모를 리가 있겠는가?”라고 하고 이를 “이전인이 잘못 적은 것”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그는 유가 경전의 대부분이 이발의 동(動) 공부라고 주장한다. 그는 그 예로 ?서경 우서?에서 ‘유정유일’과 ?논어?에서 ‘박문약례’와 ?대학?의 ‘격물·치지·성의·정심’과 ?맹자?의 ‘시조리·종조리’를 들고 있다.

그는 ?중용?에 와서야 비로소 정-미발-계신공구, 동-이발-신독이 구분되었고, 따라서 유학의 경전은 “본말을 두루 겸하고, 동정이 상호작용한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또한 대학의 경과 전에서 어떤 것을 이야기하는데, 존양의 뜻으로 이야기 하니, 자세히 살펴보아야 하니, 초학자라도 마땅히 알아야한다.”고 함으로써 존양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36]

 

이만부는 ?대학?과 ?중용?의 공부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서로 의미를 밝혀 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37] 그러나 이언적이 주장하듯이 ?대학?의 “마음을 보존하지 않으면”의 구절은 존양공부의 뜻도 있지만, 존양공부라고 해석할 수 없다고 한다.

 

 

"아마도 반드시 ‘마음을 보존하지 않으면’ 한 구절을 기다린 뒤에 비로서 존양의 공부가 있다고 할 필요가 없다. ‘마음이 있지 않다’는 실제로 존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장의 의미는 마음을 보존하지 않는 병통을 말하여, 치우친 마음을 바로잡지 않으면 안된다를 명확히 했을 뿐이지, 처음부터 존양을 밝히는 공부에 뜻을 두지 않았다."38]

38]같은 책, 같은 곳. 恐不必待心不在焉一節, 然後方有存養之工也. 心不在焉者, 實由於不能存養, 而本章之義, 則蓋言不存心之病. 以明不可不正心之意而已. 初不有意於明存養之工.

 

그리고 이만부는 조식이 “대학 첫머리는 존양할 곳이다”고 주장한 것도 분명하지 않다고 한다. 왜냐하면 ‘명덕을 밝히는 것’과 ‘지선에 머무른다는 것’ 가운데 진실로 존양공부가 밑받침되어야 하지만, 그 자체가 존양공부는 아니기 때문이다.39]

39]같은 책, 같은 곳. 南冥之以爲第一存養地者, 似亦未瑩, 夫明明德止至善之中, 固當有存養之地, 而立言之地, 則有異焉矣.

 

36]?갈암집?권19 7ㄴ. 愚謂大學只言謹獨. 不言存養. 至中庸始言之者, 乃是先儒所言. 非晦齋創說也. 曹氏以爲大學三綱領, 乃存養第一義. 雖初學之士, 亦當理會. ?復古乎. ?以全仁誤記而遽加譏?, 殊不可曉. 從古聖賢授受之際, 每令從動處做工夫. 若虞書精一之傳, 魯論博約之誨, 大學格致誠正修之工, 孟子始條理終條理之論. 皆從動處言之. 至中庸始分言戒懼謹獨之工. 戒懼是存養也. 謹獨是省察也. 於是本末兼該. 動靜交須. 子思之功, 於是爲大. 然堯之一言, 舜又益之以三言. 孔子所未言, 至孟子始發之(如性善之說)時有古今言有詳略故也. 且道大學經文傳義中甚處, 道得存養底意思來, 仔細尋繹. 雖初學之士, 亦當知之矣.

37] ?식산집?권13 5ㄴ. 大學總論爲學之序. 故其工始自格致誠正, 以至於天下平. 中庸專言性情德行之則. 故其工始自戒懼謹獨, 以至於位育之極, 是以下工之處所論之言. 似不同而實則未嘗不一也. 以此通變而觀之, 則中庸大學之言語工夫, 可以交相明互相資矣.

 

 

 

이상에서 논의된 주장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언적의 논점은 대학에서는 ‘존양’에 대한 언급(심부재언)은 있으나 ‘존양의 방법’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조식은 존양의 방법이 있다고 단언한다. 존양의 방법을 나타내는 구절로 대학의 첫조목을 ‘명명덕’을 들고 있다.

 

이에 반해 퇴계학파에서는 양쪽을 모두 비판한다. 이들의 입장에서 대학은 철저하게 ‘성찰’의 논의이지 ‘존양’의 논의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이언적이 ‘존양’을 말하고 있다는 ‘심부재언’은 존양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조식의 ‘명명덕’은 모두 이발의 논의에 불과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주자학에서 대학에 ‘심부재언’이나 ‘명명덕’은 모두 이발공부에 해당한다. 이런 점에서 대학에 미발공부를 도입하려는 이언적이나 조식은 주자학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러나 주희는 미발과 이발에 대한 구분보다는 어떻게 하면 도덕적인 주체가 될 수 있는 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주희는 한편으로는 미발과 이발공부를 엄격히 구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미발과 이발에 모두 적용시키는 공부로 계신공구를 들고 있다.40] 이는 미발과 이발 공부로 포괄하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끊임없이 두려워함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미발과 이발로 나누는 도식으로는 적절하지 못하다.

오히려 퇴계학파야 말로 주희의 미발과 이발의 형식적인 구분론에 빠져있는 것이고, 이언적과 특히 조식은 이러한 구분에 빠지기보다는 생동하는 인간과 세계에 관심을 나타낸다.

 

40]?주자대전? 권53 21ㄴ 與胡季隨書. 戒謹乎其所不覩, 恐懼乎其所不聞, 乃是徹頭徹尾, 無時無處不下工夫. 欲其無須臾而離乎道也. …不覩不聞, 與獨字不同. 乃是言戒懼之至, 無適不然. 雖是此等耳目所不及無要緊處, 亦加照管. 如云聽於無聲, 視於無形, 非謂所聞見處却可略. 而特然於此加功也.

 

 

2) 인심도심논쟁

 

인심도심론은 주희 말년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논의이다. 주희는 중년에 호남학과의 상관성 속에서 미발이발론을 정립했다. 그러나 미발론은 불교와 마찬가지로 공허한 이론으로 빠지기 쉬운 속성을 갖게 되어 있다. 현상에서 검증되지 않는 의식이전을 요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희는 "중용장구 서"에서 미발이발론 보다는 인심도심론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것이다.41] 인간은 누구나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그 욕망을 제어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끊임없이 두려워하는 마음(계신공구)으로, 도덕적인 주체를 완성하여, 인심을 제어해야 하는 것이다. 제어하지 못하면 동물(인욕)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주희는 인심과 인욕을 동일시하였지만, 나중에 이를 비판한다.

41]蓋嘗論之: 心之虛靈知覺, 一而已矣, 而以爲有人心? 道心之異者, 則以其或生於形氣之私, 或原於性命之正, 而所以爲知覺者不同, 是以或危殆而不安, 或微妙而難見耳. 然人莫不有是形, 故雖上智不能無人心, 亦莫不有是性, 故雖下愚不能無道心. 二者雜於方寸之間, 而不知所以治之, 則危者愈危, 微者愈微, 而天理之公卒無以勝夫人欲之私矣. 精則察夫二者之間而不雜也, 一則守其本心之正而不離也. 從事於斯, 無少閒斷, 必使道心常爲一身之主, 而人心每聽命焉, 則危者安? 微者著, 而動靜云爲自無過不及之差矣.

 

 

이언적은 인심과 도심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언적이 물었다; 인심과 도심의 구별은 어떠한가?

이전인이 대답하였다; 인심은 감각기관(이목구비)의 욕망이다. 도심은 인의예지의 발동입니다.

(이언적이 말하였다); 감각기관의 욕망은 사욕인가?

이전인이 대답하였다; 인심은 원래 없앨 수 없습니다. 다만 도심이 항상 한 몸의 주인이 되어, 인심이 매번 명령을 따른다면 감각기관의 욕망은 천리에 합치합니다." 42]

42] ?관서문답록?10ㄴ. 大人曰人心道心之別, 何如, 仁對曰人心耳目口鼻之欲也. 道心仁義禮智之發也, 曰耳目口鼻之欲是私欲乎, 仁對曰人心固不可無, 但道心常爲一身之主而人心每聽命焉, 則耳目口鼻之欲, 合乎天理者也.

 

 

이언적(이전인)은 인심과 도심, 감각기관의 욕망과 천리라는 구분법을 통해 사유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그리고 전자(인심과 감각기관의 욕망)는 존재론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것이고, 가치론적으로는 그 자체로는 선악을 결정할 수 없는 것이다. 단지 주체의 수준에서 만약 인심이 도심의 명령을 들으면 그 결과 객관적으로 감각기관의 욕망이 천리에 부합하게 된다는 점만을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해 조식은 이언적이 감각기관의 욕망과 발동이란 문제를 혼동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감각기관의 욕망은 사욕이다”43]라고 한 것도 잘못이다. 감각기관의 욕망이 촉발(發)하는 것은 성인이라도 보통 사람과 다를 바가 없으니, 이는 누구에게나 똑 같은 천리이다. 그것이 선하지 않는 쪽으로 기울고 난 뒤에야 비로소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인심과 도심의 구별이 있는 것은 개체적인 계기(형기)와 공적인 계기(의리)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인욕이라 하지 않고, 인심이라 부르는 것이다.44]

 

43]이언적은 “사욕인가?”라고 했지 “사욕이다”라고 하지 않았다.

44]?남명집?권2 37ㄱ. 其曰耳目口鼻之欲是私欲者, 亦非也. 耳目口鼻之發, 雖聖人亦同, 同一天理也. 流於不善而後, 方可謂之欲也. 但有人心道心之別者, 有形氣義理之間已, 故不曰人欲曰人心.

 

 

조식은 감각기관의 촉발함(發)은 그 자체로 객관적으로 모든 이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천리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조식은 독특한 욕망의 정의를 내리고 있다. 다시 말해 이 감각기관의 촉발함(發)이 선하지 않음이라는 규정에 걸릴 때, 이 ‘선하지 않는 감각기관의 촉발함’이 바로 ‘욕망(欲)’이라는 것이다. 이 점에서 조식은 ‘욕망’이란 감각기관의 ‘사적인’ 촉발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간단히 말해서 조식에게 있어 ‘촉발’(發)은 그 자체로 긍정되어야 할 것이고, 오직 ‘욕망’(欲)만이 불선으로 부정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조식의 천리라는 개념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감각기관과 대상의 관계에서 촉발되는 관계를 긍정하는 것 즉 인간종의 보편성을 지시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조식의 천리는 리보다는 천(자연스러움)쪽에 무게 중심이 있다.

 

이어서 조식은 인심과 도심의 구별은 단지 개체적 계기(形氣)냐 공적인 계기(義理)이냐의 구별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주희의 주장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주희는 인심과 도심을 사적인 개체적인 계기(形氣之私)와 공적인 계기(性命之正)로 보고 있는데, 여기서 ‘사’라고 하는 표현은 부정적인 뜻이 아니라, 개인의 신체성, 고유성을 의미한다.45]

그런데 이러한 신체의 고유성은 선악으로 흐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가능성이 타자와 관계를 맺기 이전에는 선과 악을 적용할 수 없지만, 타자와 관계를 맺고 난 뒤에는 선과 악으로 나뉜다. 주희는 인심을 긍정적으로 파악하지만, 여전히 인심은 선악으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미발 상태에서 함양공부를 하거나 이발 상태에서 선의 가능성을 살피는 찰식 공부를 함으로써, 악으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고자 하였다. 이는 천리에서 리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러한 점이 조식과 주희가 다르다.

이에 대해 퇴계학파인 조호익은 감각기관의 욕망이 불선과 연결된다고 주장한다.

 

“감각기관의 욕망은 사욕이다 운운”라고 한 조목은 이언적도 선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말한 것이다. 이 주장은 중용집주에 있으니46], 처음 배우는 자가 알 수 있는 것이니, 이언적이 알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47]

 

그런데 조호익은 주희의 말에서 감각기관이 악으로 흐를 가능성만을 보고 있지, 타인이 관여하지 않는 고유한 것임을 간과하고 있다. 이러한 사고는 인심의 긍정적인 관계보다는 부정적인 관계에 초점을 두는 것이다.

 

45]?중용장구? 소주. 如飢飽寒煖之類, 皆生於吾身血氣形體, 而他人無與, 所謂私也. 亦未能便是不好, 但不可一向?之耳

46]?중용장구? 소주. 問形氣是口耳鼻目四肢之屬. 未可便謂之私. 朱子曰: 但此數件物事屬自家體段上, 便是私有底物; 不比道, 便公共. 故上面便有箇私底根本.

47] ?지산집?권5 14ㄴ. 耳目口鼻之欲是私欲云云, 先生亦指於不善者言之, 此說在中庸集註中, 初學所得知者, 曾謂先生不知乎

 

 

이현일은 이언적을 옹호하는 수동적인 자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조식을 호남학이라고 단정한다.

 

 

"내가 보기에 ?호자지언?에 따르면 ‘천리와 인욕은 체는 같지만 용은 다르다’고 하였다. 주희는 그것을 비판하였다. “천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고, 인욕은 형기에 국한되어 나중에 생기는 것이다. 지금 천리와 인욕을 뒤섞어 하나로 하면 아마도 타당하지 않다.” 48]

또한 “인심과 도심의 구별은 대개 그 근본이 이미 그러한 것이지, 기의 작용에 과불급이 있고 난 뒤에 인욕으로 흐르는 것은 아니다” 49]이로 말미암아 본다면, 조식이 이른바 “감각기관의 촉발은 누구에게나 똑 같은 천리이지만, 선하지 않은 쪽으로 기울고 난 뒤에 인욕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바로 호굉의 주장과 합치하고 주희의 뜻이 아니다.50]"

 

48]이현일은 주희의 글을 생략하고 있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知言疑義?2. 蓋天理,莫知其所始,其在人,則生而有之矣,人欲者,梏於形,雜於氣,?於習,亂於情,而後有者也. 然旣有而人莫之辨也,於是乎有同事而異行者焉,有同行而異情者焉.君子不可以不察也.然非有以立乎其本,則二者之幾微曖萬變,夫孰能別之? 今以天理人欲混爲一區,恐未允當.

49]?주자대전?권44 答蔡季通 2ㄱ

50]?갈암집?권19 8ㄱㄴ. 愚按胡子知言曰, 天理人欲, 同體而異用. 朱子非之曰. 天理則生而有之矣. 人欲者, 梏於形氣而後有者也. 今以天理人欲, 混爲一區, 恐未允當. 又曰人心道心之別, 蓋自其根本而已然. 非爲氣之所爲有過不及而後流於人欲也. 由此觀之, 曹氏所謂耳目口鼻之發, 同一天理, 流於不善而後, 方可謂之人欲也者. 正合胡子之見, 而殊失朱子之旨也.

 

 

호남학에서는 본성이 초월적인 것이 아니라, 好惡와 같은 심리적인 경향성(性不可以善惡名)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래서 본성은 이러한 경향성 때문에 가치의 기준이 될 수 없고, 외부적 기준(道)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 기준에 따라 절도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가 판가름난다.

따라서 ‘천리와 인욕은 처음부터 다른 것이 아니라, 나중에 달라지는 것이다.’ 이러한 점이 처음에는 감각기관의 촉발은 다 천리이지만 나중에는 천리와 인욕이 달라진다고 하는 조식의 주장과 같다고 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조식은 천리와 인욕을 엄격히 구별하고 있다. 주희도 호남학이 천리속에서 인욕을 구별하고, 인욕속에서 천리를 구별한다면 옳지만, 천리와 인욕을 혼동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51]

 

이현일은 인심을 인욕으로 간주한다52]. 이러한 주장은 도심은 리, 인심은 기라고 하는 도식에서 나온 것이다. 인심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곧 리와 기의 구분을 무시하는 것이고, 그,것은 천리와 인욕의 구분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현일이 볼 때, 조식이 욕망을 부정적인 것으로 파악했다고 하는 것은 중요하지 하지 않다. 욕망뿐만이 아니라 인심도 부정적이다. 그리하여 이현일은 조식을 호남학이라고 비판을 하는 것이다.53]

 

51]?지언의의? 熹再詳此論,胡子之言蓋欲人於天理中揀別得人欲,又於人欲中便見得天理.其意甚切,然不免有病者,蓋旣謂之,‘同體’ 則上面便著‘人欲’兩字不得.此是義理本原極精微處,不可少差.試更子細玩索,當見本體實然只一天理,更無人欲.

52] ?갈암집?권13 3ㄴ-4ㄱ 答申明仲別紙. 來諭又以淺陋引程夫子人心人欲之說爲非, 以爲將起爭端, 是爲可懼. 然其亦有說矣. 朱子嘗疑程夫子人心人欲之說, 而其尊信, 引用處亦多有之. 或問程子曰人心人欲也. 恐未便是人欲. 答曰人欲也. 未便是不好. 謂之危者, 只是欲墜未墜之間, 又曰程子曰人心人欲故危, 道心天理故微. 惟精以致之, 惟一以守之. 如此方能執中, 此言盡之矣. 至他稱道援引處, 非一非再, 豈皆初年未定之論, 由此言之, 恐不至有爭端也.

53] 이현일은 이이도 호남학이라고 간주한다. 이현일에 따르면 이이는 리의 역할보다는 기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리의 역할이 기에 종속된다고 주장한다. 기가 리보다 중요하다면, 그것은 곧 천리와 인욕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되고, 따라서 호남학이라고 비판한다. 한편, 손영식은 인심도심론이 아니라 경공부를 통한 강력한 주체로 조식과 호굉을 연결하고 있다.

 

 

이만부는 이현일처럼 조식을 호남학이라고 밀어붙이지 않는다.

 

"감각기관과 감각대상의 관계는 형기의 사사로움이다. 그러므로 인욕이라고 말하지 않고, 인심이라고 말한다. 오직 네가지(이목구비)의 흐름이 반드시 욕망에 빠지기 때문에 그러므로 ‘위태롭다’고 말하지 ‘없애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심 인욕의 구분이 이와 같은데, 기록중에 그 구분을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다. 정말로 감각기관의 욕망을 인심이라고 생각하는 경우, 진실로 그 의미를 다할 수 없다."54]

 

"조식이 비판한 것은 마땅하다. 그러나 이언적이 질문에 “사욕인가?”라고 하였으니, 이언적의 뜻을 알 수 있다. 또한 도심을 위주로 한다면 앞에서 말한 ‘욕’은 두루 말한 것 같다. 그러므로 이언적은 다시 바로 잡는 것이 없었도다. 조식이 말하기를 “감각기관의 촉발은 누구에게나 똑 같은 천리이다”라고 하였으니, 주희의 형기 성명의 말과 이미 옳지 않을 뿐만 아니라, (조식이) “인심과 도심의 구별은 형기와 의리 차이이다"라고 말했으니, 감각기관의 발동은 바로 형기이니, 어찌 똑 같은 천리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 또한 저절로 차이가 나니, 후학의 의심이 없을 수 없다."55]

 

54] 이만부는 欲이란 표현이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發이라는 표현을 쓴다.

55] ?식산집?권13 8ㄴ. 夫耳目口鼻之於聲色味臭, 乃形氣之私. 故不曰人欲, 而曰人心. 惟四者之流, 必陷於欲. 故曰危. 而不曰滅. 蓋人心人欲之分如此, 而錄中不明言其分. 眞以耳目口鼻之欲爲人心者, 固爲未盡. 南冥之非之. 宜矣. 然先生卽問是私欲乎, 則先生之意, 蓋可見矣. 又對以道心爲主之義, 則上言欲者, 似是汎言. 故先生更無所正之乎. 至於南冥說曰, 耳目口鼻之發, 同一天理, 則與朱子形氣性命之言, 旣左矣, 又曰人道之別形氣義理之間云, 則耳目口鼻之發, 正是形氣, 豈可曰同一天理乎. 此又自相徑庭, 能無後學之疑哉.

 

 

이만부는 먼저 이언적이 감각기관의 욕망에 대한 설명이 적절치 않다고 지적한다. 그렇지만 이언적이 인심을 인욕으로 간주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또한 조식이 형기와 천리를 동일시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한다.

 

이상의 논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언적(이전인)의 ‘욕망’이라는 개념은 결코 ‘악’이라고 정의내려질 수 없는 반면, 조식의 ‘욕망’ 개념은 ‘악’이라고 정의내려진다.56] 조식은 이언적인 욕망과 촉발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그에게 있어서 인심과 도심은 자연스런 보편성(天理)을 가진 것이다.

 

이에 대해 퇴계학파인 조호익, 이현일, 이만부가 보기에 이언적과 조식의 인심의 욕망이나 촉발이론은 모두 미리 미발이나 이발의 리에 의해서 규정되지 않는 점이 있고 그것은 곧 천리와 욕망을 동일시하는 측면으로 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이들은 공통적으로 욕망과 천리, 인심과 도심을 엄격하게 구별한다. 이는 퇴계학파의 조식과 이언적에 대한 비판의 논점이 천리 인욕론을 제외한 모든 보편성을 부정하는데서 정립되었다는 점을 뜻한다.

 

특히 이현일이 인심을 부정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주자학의 기본 이념과 맞지 않다. 인심이 인욕이 되는 부정적인 계기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타자에 다가갈 수 있는 현실적인 발판을 마련하려는 긍정적인 점도 있다. 인심이 긍정과 부정의 계기를 모두 가지고 있는 독특한 지위를 무시한 채 오로지 부정적으로 고찰하는 것은 오히려 반주자학적인 고찰인 것이다.

 

56]이언적의 ‘욕망’ 개념은 사실상 조식이 쓰고 있는 ‘촉발’(發)의 개념과 외연이 같다. 이언적에게 있어 인심이 도심의 명령을 들으면 감각기관의 욕망이 항상 천리에 부합한다는 식으로 연계해서 ‘욕망과 천리’의 논의와 ‘인심과 도심’의 논의를 해결하고 있는 반면, 조식은 ‘촉발과 욕망’의 논의와 ‘인심과 도심’의 논의를 범주적으로 구별해서 쓴다. 양자가 공히 정통 주자학과는 다른 의미에서의 ‘ 보편성’을 긍정한다. 이언적에게 있어 그것은 ‘욕망’이고 조식에게 있어 그것은 ‘촉발’이다.

 

 

3. 맺음말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퇴계학파는 남명학을 이황의 예에 따라 도가적인 경향을 지닌 것을 파악한다. 이현일은 한걸음 더 나아가 남명학을 호남학(나중에 육왕학 계열로 이어짐)이라고 규정한다. 이는 모두 남명학을 정통 주자학으로 인정하지 않는데서 나온 것이다. 이들에게는 호남학이든 도가든 모두 마찬가지인 것이다.

 

퇴계학파는 남명학이 미발과 이발, 도심과 인심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에 주자학적인 사고로 간주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주자학적인 사고란 명백히 이원론적인 사고이다. 사실 리기론 심성론에서 주자학과 육왕학을 비교하면, 전자가 이원론적인 사고라면 후자는 일원론적이다. 그렇다면 일원론적인 사고 경향성을 지닌 남명학은 육왕학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주자학은 이원론, 육왕학은 일원론적인 사고라는 전제를 인정할 수 있는가는 문제이다.

어떤 이론을 리기론 심성론적인 측면에서 이원론적 혹은 일원론적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타당할 수 있다. 그러나 공부론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않고, 이론적인 논리적 무모순성만을 고집한다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주희는 이원론에 서있으면서도, 일원론적인 사고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한 모습을 보지 못하고, 이원론적 ‘체계’만을 강조하는 것은 주자학자라고 볼 수 없다. 남명학은 이론적인 ‘체계’를 강조하지 않는 점에서 최소한 이러한 함정에는 빠지지 않는다. 남명학은 주자학의 이원론적인 체계를 염두에 두고 있었고, 그것의 문제점을 알고 있기에, 일원적인 모습을 강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