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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와 은인.색유(色喩) [고전이 건강에 답하다]

경호... 2015. 7. 14. 05:04

 

[고전이 건강에 답하다]

복수의 칼날, 결국은 내 몸 겨눠

 

‘음부경(陰符經)’의 원수와 은인

 

 

중국 소주에 세워진 오자서 동상.

 

 

“삶이란 죽음을 근본으로 삼고 죽음은 삶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니,

은혜는 해로움에서 생겨나고 해로움은 은혜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生者死之根 死者生之根. 恩生于害 害生于恩).”

 

얼마 전 공직을 맡은 한 지인이 호의를 베푼 상대방으로부터 ‘뒤통수를 맞아’ 호되게 곤욕을 치른 일을 기자에게 들려줄 때 문득 떠오른 구절이다. 지인은 “해로움은 은혜에서 생겨난다”는 문구를 뼈저리게 체험한 셈이다. 그런데 그에 대구되는 “은혜는 해로움에서 생겨난다”는 것은 또 어떤 경우일까.

 

중국 도교 경전인 ‘음부경(陰符經)’에 기록된 이 말은 그 뜻을 알 듯 말 듯 사람을 헷갈리게 한다. 하기야 ‘음부경’ 자체가 최소한 당대(唐代)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만 확인될 뿐, 지은이가 누구인지 아리송하고, 도를 깊이 깨달은 사람이 아니면 이해하기도 힘든 아주 신비스러운 책이다. 기자가 도교 경전을 공부할 때 900자 한문에 불과한 이 책 때문에 애먹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지인은 뒤통수를 내려친 장본인이 ‘정 주고 마음 준’ 사람이라는 점에 더욱 가슴 아파했고 심지어 스트레스도 심하게 받았다. 가만히 있다가도 그 생각만 나면 울화가 치밀어 가슴이 두근두근 하는 증세도 생겼다는 것이다. 기자는 지인에게 ‘원수와 복수’의 아이콘인 ‘오자서(伍子胥)’ 얘기를 들려주면서 화병을 다독거렸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중국 전국시대 오자서는 비무기라는 간사스러운 자의 모함으로 아버지와 형이 초(楚)나라 왕에게 죽임을 당하자 복수를 벼르며 살아왔다. 어느덧 그는 오(吳)나라 왕 합려의 최측근으로 부상해 초나라를 치고 그 원한을 되갚을 힘을 길렀다. 때마침 초나라에서 백비라는 망명객이 찾아왔다. 그 역시 모함으로 아버지를 잃은 처지였다. 오자서는 그를 합려에게 천거해 대부(大夫)가 되게 했다. 그러자 관상을 잘 보는 피리라는 중신이 오자서에게 물었다.

 

“백비의 눈은 매와 같고 걸음걸이는 범을 닮았소. 살인을 저지를 잔인한 상(相)인데 그토록 신임하는 이유가 뭐요?”

 

오자서는 이렇게 답했다.

“그와 내가 같은 원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오. 하상가(何上歌)에서도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 가엾게 여기고(同病相憐), 같은 근심을 가진 사람끼리 서로 돌보아주네(同憂相救)’라고 하지 않았소.”

 

몇 년이 흐른 후 오자서와 백비는 합려를 도와 초나라를 무너뜨리고 공동의 원수를 갚았다. 그러나 그 뒤 피리가 본 대로 백비는 월나라에 매수됐고 오자서를 모함해 죽였다.

오자서는 삶 자체가 ‘복수의 화신’이었기에 결국 사람에 대한 이성적 판단을 그르쳐 화를 입었던 것이다.

 

그 반대로 해로움, 곧 원수가 은인이 되는 것은 어떤 경우일까. 원수때문에 복수심 같은 파괴적인 에너지를 키울 것이 아니라, 세상을 헤쳐나갈 지혜를 얻고 다시는 ‘당하지’ 않을 힘을 갖추는 일일 게다.

흔히 성공신화 주인공 뒤에는 악역(惡役)을 담당하는 ‘웬수 같은 존재’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들을 인생에 교훈을 주는 스승으로 삼아 뛰어넘을 때 주인공의 존재가치는 더욱 빛난다. 복수심을 부정적 에너지로 키우면 원수를 갚더라도 그 파괴적 에너지가 자신의 몸속에 쌓인다는 게 선인들의 가르침이다. 일종의 업보 작용이기 때문인데, 결국 작게는 건강을 망치고 크게는 목숨까지 잃게 한다.

 

그래서 지인의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는 부정적 말에 기자는 “밤 잔 원수 없고, 날 샌 은혜 없다”는 우리 속담으로 대응했다. 사람은 그때가 지나면 원수도 은혜도 망각하게 마련이다. 그래야만 인생살이가 편안하고 또 오래 살 수 있다.

 

 

 

 

여색(女色)에 빠지면 모든 걸 잃는다

 

‘동국이상국집’의 색론

 

시안(西安) 화청지에 있는 양귀비 조각상.

 

 

고려 문신이자 문학가인 이규보(1168~1241)는 ‘동국이상국집’이라는 불멸의 시문집을 후세에 남겼다. 그악스러운 최씨 무신정권 시대에 권력의 핵심 자리를 꿰차고 있으면서도 자유분방한 문장을 구사한 그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논란거리지만, 그의 작품이 13세기 한국문학사의 지평을 활짝 열어젖혔다는 점에서는 별 이의가 없다. 고맙게도 한국고전번역원에서 53권에 이르는 ‘동국이상국집’(전집과 후집으로 구별)을 완역해내, 기자는 고려 시절 민중 얘기가 그리울 때면 한 번씩 인터넷으로 찾아 읽곤 한다.

 

‘동국이상국집 전집(前集)’ 제20권 잡저(雜著)편에는 색으로 깨우친다는 뜻의 ‘색유(色喩)’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세상에는 색(色)에 혹하는 자가 있다. 색이라는 것은 붉은 것인가, 흰 것인가, 아니면 푸른 것인가. 해, 달, 별, 노을, 구름, 안개, 풀, 나무, 새, 짐승 등에 모두 색이 있는데, 이것이 사람을 미혹하는가. 아니다.

금과 옥의 아름다움, 의상의 기이함, 궁실의 사치스러움, 온갖 비단의 화사함은 더욱 잘 갖춘 색인데 이것이 사람을 미혹하는가. 그럴 듯하나 역시 아니다.”

 

이어서 이규보는 세상에 존재하는 색 가운데 남자를 가장 크게 미혹하는 것이 여색(女色)이라고 규정한다. 칠흑 같은 검은 머리, 곱디고운 흰 살결에 화장을 한 여인이 마음을 건네고 눈빛을 보내면, 그녀의 웃음 한 번에 나라가 기울어진다는 것이다. 보는 자는 모두 홀리고, 만나는 자는 모두 혹하는 게 바로 여색이다.

그런데 이규보는 “형제, 친척보다 더 사랑하고 귀여워하지만 이내 여색은 나를 배척하고 내 적이 된다”고 말한다.

 

이규보는 그렇게 적으로 돌변한 여인에 대해 이번에는 거침없는 인신공격을 가한다.

 

“요염한 눈은 칼날로 변해 나를 찌르고, 굽은 눈썹은 도끼가 돼 나를 찍어버리며, 오동통한 두 볼은 독약이라 나를 괴롭히고, 매끄러운 살결은 보이지 않는 좀이 돼 나를 쏠게 만든다. 이것이 어찌 혹독한 해로움이 아니겠으며, 그 해(害)가 적(敵)으로 변하니 어찌 이길 수 있겠는가. 그래서 적(賊)이라고도 하니 어찌 친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이규보는 여색의 아름다움을 들으면 곧 가산을 탕진하면서까지 서슴없이 구하고, 여색의 꾐에 빠지면 어떤 위험도 마다하지 않고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게 남자 속성이라고 봤다. 그래서 좋은 색(色)을 두면 남들이 시기하고 아름다운 색을 점유하면 공명(功名)이 타락하는데, 크게는 군왕에서부터 작게는 경사(卿士)에 이르기까지 나라를 망치고 집을 잃음이 색으로 말미암지 않음이 없다는 것이다.

 

술 없이는 시를 짓지 않을 정도로 주선(酒仙) 경지에 이르고 높은 벼슬자리를 누린 이규보였기에 그 주위에 어찌 아름다운 여인이 없었을까. 그런 그가 73세에 세상을 뜨기까지 장수를 누린 것은 여색(女色)만큼은 철저히 경계한 때문은 아닐까 싶다.

 

실제로 미인을 경계하는 그의 태도는 처절할 정도로 엄중했다. 이를테면 현명하나 못생긴 얼굴의 대명사인 모모와 돈흡(敦洽)의 얼굴 천만 개를 주조한 뒤 포사, 서자, 여화, 양귀비, 녹주 등 역사상 요염한 여성의 얼굴을 주조한 얼굴 틀에 모두 가둬버리고, 다음으로는 남의 아리따운 아내에게 눈짓을 한 화보(華父·춘추시대 인물)의 두 눈을 칼로 도려내 정직한 눈으로 바꾸며, 천성이 고결한 광평(廣平·당나라 재상)의 창자를 만들어 음란한 자의 배 속에 넣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렇게 되면 여인이 유혹할 때 쓰는 향수나 연지가 분뇨나 흙덩이로 여겨질 테고, 월나라의 모장과 서시(西施)의 아름다움도 돈흡이나 모모로 보일 것이니 미혹함이 있으려야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규보의 결기 가득한 다짐을 읽으면서 “남녀 사이 애정과 음식에는 사람의 큰 욕망이 존재하는데, 호색한 사람은 간한다고 해서 말릴 수 없고 좋은 음식은 근심 자체를 잊게 할 수 있다”는 ‘포박자’의 문장이 떠올랐다. 이규보가 그렇게 강하게 경고한들 보통 사람이 어찌 욕망의 그물망에서 쉽게 헤어날 수 있겠는가 싶어 썩은 미소가 절로 흘러나왔다.

 

/ 주간동아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 東國李相國全集卷第二十 > 雜著○韻語

 

色喩

 

世有惑於色者。所謂色者。紅耶白耶。靑耶?耶。日月星宿。煙霞雲務편001。草木鳥獸。皆有色也。玆能惑乎。曰。非也。曰。金玉之美者。衣裳之異者。宮室棟宇之泰侈者。錦繡羅?之纖靡者。皆色之尤備者也。玆亦能惑乎。曰。幾乎猶未也。

 

夫所謂色者。人之色也。?綠膚晳。飾以脂澤。心挑目逆。一笑傾國。見之者皆迷。遇之者皆惑。及其嬖愛。雖兄弟親戚莫若也。然其嬖之也乃斥。其愛之也乃戒。子不聞乎。

眼之嬌者斯曰刃。眉之曲者謂之斧。頰之?者毒藥也。肥之滑者隱?也。斧以伐之。刃以觸之。隱?以食之。毒藥以苦之。玆非害之酷者乎。害之作敵。其能克乎。故曰賊。遇賊而?。能復親乎。故曰斥。

 

之害旣如玆。外之害又甚斯。聞色之美。則破家?而求之不疑。被色之誘。則犯虎狼而赴之勿辭。畜好色則人猜衆妬。著美色則功落名?。大則君王。小焉卿士。覆邦喪家。靡不由此。周之褒?。吳之西子。陳後主之麗華。唐玄宗之楊氏。皆迷君眩主。滋育禍胎。周以之蹶。吳以之?。陳唐以之崩?。小則綠珠之嬌態敗石崇。孫壽之妖粧惑梁冀。若此之類。又何勝記。

 

嗚呼。吾將搖?扇炭。鑄?母,敢편002洽之貌千千萬萬。盡錮其姚?之面。然後刀華父之目。而易以正直之?。鐵作廣平之腸。而納之於淫奢者之腹。則雖有蘭澤脂粉之具。糞?也泥土也。雖有毛?,西施之秀。敦洽,?母也。又何惑之有。

 

[편-001]務 : 霧

[편-002]敢 : 敦

 

 

 

 

고전번역총서 > 동문선 > 동문선 제107권 > 잡저(雜著)

 

색유(色喩)

 

이규보(李奎報)

 

세상에서 색(色)에 혹하는 자가 있는데, 소위 색이란 것은 붉은가, 흰가, 푸른가, 빨간가. 해ㆍ달ㆍ별ㆍ놀ㆍ구름ㆍ안개ㆍ풀ㆍ나무ㆍ새ㆍ짐승이 모두 빛이 있으니, 이것이 능히 사람을 현혹하는가. 아니다. 그러면 금과 옥의 아름다운 것, 옷의 현란한 것, 궁실(宮室)과 집의 크고 사치한 것, 능라ㆍ금수의 화려한 것, 이것들이 모두 빛의 더욱 갖춘 것이라, 이것이 능히 사람을 현혹하는가. 그럴 듯하나 그렇지도 않다.

 

대개 이른바 색이란 것은 사람(여자)의 고운 빛이다. 푸른 머리, 흰 살결, 기름과 분을 바르고, 마음을 건네며 눈으로 맞으면, 한번 웃음에 나라를 기울이니, 보는 자는 모두 정신이 아찔하고, 만나는 자는 모두 마음에 혹하여, 몹시 귀애하고 사랑하기에 이르면 형제와 친척도 그만 못하여진다. 그러나 그것이 귀애함을 받고는 이에 배척하고 사랑을 받고는 이에 도둑질하나니, 그대는 듣지 못하였는가.

눈의 애교 있는 것은 이를 칼날이라 하고, 눈썹의 꼬부라진 것은 이를 도끼라 하며, 두 볼이 볼록한 것은 독약, 살이 매끄러운 것은 안 보이는 좀벌레이다. 도끼로 찍고 칼로 찌르며 안 보이는 좀으로 파먹고, 독약으로 괴롭히니, 이것이 해로움의 끔찍한 것이 아닌가. 해(害)가 적(敵)이 되면, 그 어찌 이길 수 있으랴. 그러므로 도둑이라고 하고, 도둑을 만나면 죽는데 어찌 다시 친할 수 있으리오. 그러므로 배척한다고 한다.

 

안으로의 해(害)가 이미 이와 같으나 밖으로의 해는 또 이보다 더 심하다. 색(色)의 아름다움을 들으면 곧 가산(家産)을 망치는데도 구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색의 꾐에 빠지면, 호랑(虎狼)을 범하면서도 뛰어들기를 사양하지 않는다. 좋은 색을 집안에 기르면 사람들이 시기하며 샘하고, 아름다운 색을 몸에 부딪치면 공명(功名)도 타락하고 만다. 크게는 임금, 작게는 경사(卿士)가 나라를 망치고 집을 잃음이 이에 말미암지 않음이 없다. 주(周) 나라의 포사(褒?)와 오(吳) 나라의 서자(西子)며, 진 후주(陳後主)의 여화(麗華), 당 현종(唐玄宗)의 양씨(楊氏)가 모두 임금께 아양떨고 임금을 현혹시켜 화태(禍胎)를 길러내어 주 나라가 그 때문에 넘어지고, 오 나라가 그 때문에 거꾸러졌으며, 진(陳) 나라 당(唐) 나라가 그 때문에 무너지며 쓰러지고 말았다. 작게는 녹주(綠珠)의 아양 부리는 태도가 석숭(石崇)을 망치고, 손수(孫壽)의 요망한 단장이 양기(梁冀)를 현혹하였으나, 이같은 유례(類例)를 어찌 모두 이루 적으랴.

 

아, 나는 장차 풀무를 흔들고 숯을 피워 막모(?母)ㆍ돈흡(敦洽 둘 다 추녀〈醜女〉의 이름)의 얼굴 천천(千千), 만만(萬萬)을 부어[鑄] 만들고, 그 요망스러운 얼굴들을 모조리 그 속에 가두어 버리려 한다. 그런 뒤에 칼로 화부(華父)의 눈을 후벼다가 정직한 눈알로 바꾸고, 쇠로 광평(廣平)의 창자를 만들어 음란한 자의 뱃속에 집어넣으려 한다. 그리하면 비록 난초의 향내나는 기름과 분[脂粉]의 연모가 있어도, 똥ㆍ오줌ㆍ진흙ㆍ흙덩이일 뿐이요, 모장(毛?) 서시(西施 미녀 이름)의 예쁨이 있어도 돈흡과 막모일 뿐, 또 제 어찌 혹함이 있으랴.

 

 

 한국고전번역원 / 한국고전종합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