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問/古典

황제내경, 활인심방,여씨춘추의 지혜 [고전이 건강에 답하다]

경호... 2015. 7. 14. 03:32

[고전이 건강에 답하다] 

 

오래 살려거든 여름에 성내지 말라

 

‘황제내경’의 지혜

 

 

 

 

대지를 태울 듯한 불볕더위와 장마가 번갈아 찾아오는 여름에는 인체 역시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변화무쌍한 기온에 적응하느라 인체 면역력이 저하되고 신진대사 능력도 떨어지기 십상이다. 이럴 때 사람들은 “입맛이 없다”는 표현으로 신진대사 능력이 떨어진 자신의 상태를 느끼고,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기자는 이런 경우 밤에 억지로 잠을 청하기보다 고전을 펼쳐든다. 그것도 동양의학의 최고(最古) 경전이라 일컫는 ‘황제내경(黃帝內經)’을 말이다. 고전 읽기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은 물론, 여름철 지친 심신을 달래줄 묘안이라도 찾아내면 보너스일 것이라는 계산에서다.

 

‘황제내경’은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황제(黃帝)가 그의 신하이자 명의인 기백(岐伯)과 나눈 의술 토론서라고 하나, 중국 진한(秦漢)시대 이후 황제 이름을 가탁해 저작된 책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전체 18권으로 구성된 ‘황제내경’은 전반 9권을 소문(素問), 후반 9권을 영추(靈樞)로 구분하는데, 이 중 ‘소문’은 의학서라기보다 음양오행설을 기저에 깐 동양의 자연관이자 철학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동양의 음양오행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책으로 ‘황제내경-소문’을 꼽는다.

 

이쯤에서 ‘황제내경-소문’의 ‘사기조신대론(四氣調神大論)’을 음미해보자. 특별히 여름철 양생(養生) 비법을 소상히 설명해준다.

 

“여름철 석 달은 번수(蕃秀·1년을 24절기로 나눌 때 입하부터 입추 전까지 3개월)라 한다. 하강하는 하늘의 기운과 상승하는 땅의 기운이 활발하게 교류해 만물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튼실히 맺으려 한다.

사람도 이러한 변화에 순응해 해가 길어지는 만큼 밤에 잠자리에 드는 시간을 조금씩 늦춰가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는 것이 좋다.

낮 동안 햇볕을 쬐며 활동하는 것을 멈추지 말고, 자칫 마음에 분노와 같은 성냄이 생기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만물이 화려하게 꽃 피고 수려하게 자라나는 것처럼 우리 몸 안을 흐르는 기운도 우주의 기운과 잘 소통해서 편안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 여름의 기운에 상응해 몸과 마음을 닦아 장수하기를 꾀하는 양장(養長)의 도리다.”

 

‘황제내경’은 사람이 여름의 기운과 어긋나 성내거나 해서 마음을 상하면, 여름을 상징하는 화(火) 장부에 해당하는 심장과 소장 같은 장기에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수면 수련학 전문가이자 인문기학연구소장인 최상용 박사는 마음이 상해 불안하거나 분노하면 오장육부 중에서도 특히 심장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또 머리 쪽으로 화기(열기)가 올라가는 상기(上氣)증이 발현해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럴 땐 상기된 열을 몸의 끝인 발 쪽으로 유도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한다. 즉 잠자리에 들기 전 발목까지 오는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 머리 쪽으로 몰린 열기가 하부 쪽으로 내려와 차츰 말초 부위로 유도되고 상기증이 해소되면서 숙면에 들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여름철이라고 무조건 늦게 자는 것이 좋은 걸까. 당연히 아니다. 여름철 피로 해소와 원기 보충을 위해선 최소한 밤 11시 이전엔 취침하는 것이 좋다. 숙면을 유도하는 멜라토닌이 밤 11시에서 새벽 2시 사이에 가장 활발하게 분비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멜라토닌이 왕성하게 발현하는 때가 바로 동양의 12지 시간대로 자시(子時)라는 것이다. 계절로 치면 동지 즈음에 해당하는 이 시각에는 사람은 물론 만물이 잠들어야 한다는 게 동양의 자연관이다. 멜라토닌 분비라는 서구의 과학과 동양의 지혜가 이렇게 또 만나는가 보다.

 

 

 

 

얼굴 자주 만지면 일이 술술 풀려

 

퇴계 이황의 건강지침서 ‘활인심방’

 

퇴계 이황을 기리는 경북 안동의 도산서원.

 

세속 용어로 ‘골골 백년’이라는 말이 있다. 병이 오래되거나 몸이 약해 시름시름 앓아도 나이가 백수에 이를 만큼 장수한다는 뜻이다. 평소 몸이 약한 사람은 건강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을 테니 오히려 건강함을 자랑하던 사람보다 오래 살게 된다는 ‘반전의 묘미’가 함축된 말이다.

 

기자는 ‘골골 백년’하면 대표적으로 퇴계 이황(1501~1570년) 선생이 떠오른다. 조선의 대표적 유학자인 퇴계는 침식을 거의 잊고 학문에 매진하다가 20세에 ‘영췌지질’(悴之疾·몸이 점점 야위는 병)에 걸린 이후 평생 건강 문제로 고생한 학자다. 질병 때문에 몇 차례나 관직을 그만둬야 했으니 그야말로 ‘골골’하면서 평생을 살아왔던 것. 그런 퇴계이지만 아내와 자식을 먼저 보내고 당시로서는 가히 장수라고 할 수 있는 70세까지 살았다.

 

병약한 몸 때문에 퇴계 선생은 건강에 비상한 관심을 기울여 스스로 ‘활인심방(活人心方)’이란 유명한 건강서를 남겼다. 이 책은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의 16째 아들 주권(朱權)이 편찬한 ‘활인심’이라는 책을 필사하면서 자신이 생각한 내용을 덧붙여 후대에 남긴 것이다.

 

‘활인심방’의 내용은 현대인이 지금이라도 실천하면 썩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실제로 퇴계선생을 기리는 안동의 도산서원 부설 선비문화수련원에서는 후손인 이동한(78·전 충북대 교수) 옹이 ‘활인심방’을 일반인에게 보급하고 있다. ‘퇴계선생 건강법 활인심방’이라는 책까지 펴낸 이동한 옹이 매일 아침 일어나 시행하는 건강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고요히 앉아 눈을 감고 배안의 탁기를 날숨을 통하여 깊이 토해내기를 아홉 번 한다.

 

△ 아랫니와 윗니를 딱딱 마주친다.

 

△ 마음을 한 곳으로 완전히 모은 다음에 엄지손가락 등으로 눈 닦기를 대소 아홉 번 정도 한다.

 

△ 다음에 코 좌우를 같은 방법으로 일곱 번 이상 약간 세게 비벼준다.

 

△ 두 손을 비벼 아주 뜨겁게 한다.

 

△ 숨을 멈추고 횟수에 관계없이 얼굴을 문지른다.

 

△ 혀를 잇몸에 붙여가면서 입 안과 밖을 고르게 양치질한다. 진액이 입에 가득하게 고이면 이것을 세 번에 나누어 삼켜 내려 위로 내려보낸다. 이렇게 하면 위신(胃神)이 이것을 받아 전신에 전달해준다.

 

△ 이렇게 하기를 세 차례 아홉 번 침을 삼키게 된다. 이것은 오장에 깊이 물을 대어주는 격이 돼 얼굴에 윤기가 나며 정력이 더욱 세어진다. 경솔히 하지 말고 정성을 들여서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진인(眞人)의 건강법이다.

 

 

총체적으로 보면 퇴계는 얼굴을 자주 만져주라고 했다. 한의학적 개념에서 보면 얼굴은 여섯 개의 주요 경락(經絡)이 흐르며, 우리 몸의 기(氣)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오감(五感)이 자리잡은 곳이며, 오장육부의 상태를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부위다. 이렇게 중요한 얼굴을 도인술(導引術)로 마사지해주면 얼굴에 빛이 나고 건강해 보이게 된다. 또 다른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얻어 일도 잘 풀리게 된다.

 

사실 퇴계의 건강 실천법은 어찌 보면 시시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양생법을 중국 청나라 황제인 건륭제도 철저히 지켜 중국 황제로는 이례적으로 60년이나 용상을 지켰고, 89세까지 장수를 누렸다.

 

 

 

 

 

한여름엔 정(精)을 남용하지 말라

 

춘추전국시대 사론서 ‘여씨춘추’

 

 

 

여름 더위를 잊고자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다 취흥이 돋으면 비아그라나 씨알리스 같은 약물을 사용해 밤 문화를 즐긴다는 20대 청춘 얘기가 소개된 적이 있다. 힘이 뻗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야 할 한창 젊은 나이의 남자가 발기부전치료제를 사용해야 할 만큼 우리는 정(精)이 고갈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발기부전치료제를 두고 ‘정자를 확 비웠그라’‘씨알을 말려버려(less)’라고 하는 은유성 우스갯소리가 단지 우습게만 들리지 않는다. 정작 이런 약물을 과다 사용한 젊은이들이 나중에 아이를 원할 때면 ‘정’이 말라버려 불임으로 고통받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중국 고전의학서‘황제내경 소문-상고진인편’에서는 오늘날 세태를 예견이라도 하듯이 이렇게 경고한다.

 

“술로 음료를 삼고 망령되게 취한 상태로 방사(房事)를 하면 정(精)을 마르게 하고 진기(眞氣)를 소모시켜 나이 50세에 이르러 몸이 쇠약해진다.”

 

정이 말라버리고 쇠약해진 남성은 여성으로부터는 물론 사회생활에서도 별로 대접받지 못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모름지기 남성은 자신의 정(혹은 정력)을 방사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아껴서 사회적 성취 혹은 유용한 일에 써야 한다는 선인(先人)의 경구는 부지기수다.

 

고대 중국의 거상(巨商)이자 진(秦)나라의 재상 여불위(呂不韋, 기원전 292~235년)가 편찬한 ‘여씨춘추(呂氏春秋)’가 생각난다. 중국을 천하통일한 시황제를 키워낸 여불위는 이 책이 완성되자 당시 진의 수도 함양 저잣거리에 전시해놓고 “이 책에서 한 글자라도 고칠 수 있다면 천금을 주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이 때문에 일자천금(一字千金)이라는 고사가 생겼을 정도로 이 책에 대한 그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실제 총 26권에 달하는 이 책은 당시 전국의 내로라하는 논객과 식객을 모아 춘추전국시대의 모든 사상을 절충, 통합했고 당대의 시사까지도 다뤄 중요한 사론서(史論書) 성격을 띠고 있다.

 

일종의 백과사전인 이 책은 연감에 해당하는 ‘기(紀)’ 12권, 보고서에 해당하는 ‘람(覽)’ 8권, 논문에 해당하는 ‘론(論)’ 6권으로 구성돼 있다. 재미있는 것은 기 12권은 춘하추동 4계절에 배정해 내용을 전개하는데, 이 중 봄에 배속된 ‘본생(本生)’ ‘중기(重氣)’ ‘귀생(貴生)’ ‘정욕(情欲)’편은 모두 양생 방법을 논한다는 점이다. 건강을 논하는 양생론 중‘정욕’편에 이렇게 씌어 있다.

 

“도를 체득한 고인(古人)들은 장수를 하면서도 상쾌한 소리와 아름다운 색깔과 좋은 맛과 향기를 오랫동안 즐길 수 있었으니 이는 어찌 된 연고인가? 그들은 일찌감치 과하게 소모하지 않는 법을 터득하였으므로 정기(精氣)가 고갈되지 않았다.”

 

절도 있게 적절히 즐기라고 조언하는 이 대목에 대한 부연 풀이는 ‘본생’편에 있다.

 

“어떤 소리가 있어 귀로 들으면 상쾌하긴 한데 집착하여 귀먹게 할 정도면 결코 듣지 않으며, 어떤 색깔이 있어 눈으로 보면 반드시 즐거운데, 집착하여 눈멀게 할 정도면 절대 보지 않는다…. 아름다운 성색(聲色)과 맛에 대한 성인의 태도는 본성에 이로우면 취하고 해로우면 버리는 것인바, 이것이 바로 본성에 순응하고 본성을 온전히 보전하는 도리다.”

 

중국 한나라 때 명의(名醫) 장중경은 도를 넘어선 방사를 몹쓸 병의 근원으로 봤다.

간사한 소리와 아리따운 여자는 뼈를 찍는 도끼와 같다”고 몰아붙일 정도로 경계를 늦추지 말라고 한 것이다. 남성들이여, 장수하고 싶다면 부디 적절히 성을 조절하고 볼 일이다. 특히 한여름엔 ‘정’이 손상되기 쉬우므로 더욱더 본성을 지키는 데 집중해야 한다.

 

 

/ 주간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