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問/人文學

기탄잘리 Gitanjali / 타고르 Tagore

경호... 2015. 7. 14. 07:34

 

 

 

 

기탄잘리 Gitanjali / 타고르 Rabindranath Tagore, 1861-1941

 

 

1.

님은 나를 영원케 하셨으니, 그것이 님의 기쁨입니다.

이 연약한 그릇을 님은 수없이 비우시곤 또 항시 신선한 생명으로 채우십니다.

 

이 작은 갈피리를 님은 언덕과 골짜기 너머로 나르셨습니다. 그리고 님은 그것을 통해 항시 새로운 선율을 불어 내셨습니다.

님의 불멸의 손길에 닿아 내 어린 심장은 기쁨에 녹아들어 형언키 어려운 말을 외칩니다.

남의 무한한 선물을 나는 이 작은 두 손으로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세월은 가도, 님은 여전히 부우시니, 채울 자리는 여전히 있습니다.

 

 

2.

님이 내게 노래하라 하실 때엔 나의 가슴은 자랑으로 터질 것 같사오며,

님의 얼굴을 우러러 뵈올 때엔 절로 눈물이 두 눈에 솟습니다.

내 생활 속의 온갖 거칠고 거슬리는 것들은 한 감미한 조화에로 녹아들어 - 나의 동경은 바다를 지나 나는 새처럼 날개를 폅니다.

 

나는 님이 나의 노래를 즐기심을 압니다. 나는 오직 가수로서만 님이 계신 앞에 나타남을 압니다.

나의 노래의 멀리 펼쳐진 날개 끝으로 나는 감히 바랄 수도 없었던 님의 발에 닿습니다. 노래하는 기쁨에 취해 나는 나 자신을 잊고 주이신 님을 벗이라 부릅니다.

 

 

3.

스승이시여! 나는 님이 어떻게 노래하시는지 알지 못합니다. 항시 고요한 놀라움으로 귀기울이지요.

님의 음악이 지니는 빛은 세계를 밝힙니다. 님의 음악의 생명의 입김은 하늘에서 하늘로 퍼지어 가고, 님의 음악의 거룩한 흐름은 온갖 돌무더기 장애물을 꿰뚫고 줄달음칩니다.

나의 마음은 님과 더불어 노래하길 열망하나, 소리를 내려고 헛되이 애태울 뿐, 말하고 싶어도, 말은 노래로 화할 줄을 모르고, 당황한 나머지 나는 울지요.

아, 님의 음악의 끝없는 올가미로 님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군요.

 

 

4.

나의 생명의 생명이시여,

나는 항시 이 몸을 깨끗이 지키도록 해야겠습니다.

님의 산 촉수가 나의 사지에 미치어 있음을 아니까요.

 

나는 항시 나의 생각에서 온갖 거짓을 물리치도록 애써야겠습니다.

님이야 말로 나의 마음속에 이성의 불을 켜신 진리임을 아니까요.

 

나는 항시 나의 가슴에서 온갖 죄악을 몰아내고, 사랑이 꽃피도록 애써야겠습니다.

나의 가장 속 깊은 마음의 사당 안에 자리 잡고 계심을 아니까요.

 

그리하여 님을 나의 행동 속에 나타내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내게 행동할 힘을 주는 것은 님의 권능임을 아니까요.

 

 

5.

님의 곁에 잠시 앉아 있을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손대었던 일은 나중에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님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고서는 나의 마음은 안정도 휴식도 모르거니와, 나의 일은 가없는 고해의 끝없는 수고로 변하지요.

오늘 여름은 그의 한숨과 속삭임을 더불어 내 창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벌들은 꽃 핀 수풀의 안마당에서 그들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지금은 님과 얼굴을 마주 보고 조용히 앉아, 이 고요하고 충족된 한가로움 속에 삶의 헌사를 노래할 때입니다.

 

 

6.

이 작은 꽃을 따십시오, 지체하지 마십시오!

나는 그것이 시들어 땅에 떨어질 까봐 걱정입니다.

님의 화환엔 끼어 들 자리가 없을지 모르지만, 님이 손수 따 주신다면 영광이겠지요.

나는 어느덧 날이 저물어 봉헌의 때가 지나갈까봐 걱정입니다. 비록 그 빛깔은 짙지 않고 향기도 미미한 것이긴 하나, 님의 예배 시에 이 꽃을 쓰시도록 늦기 전에 따십시오.

 

 

7.

나의 노래는 스스로의 장식을 버렸습니다. 그녀는 이제 의상과 치장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장식품들은 우리의 결합을 상하게 합니다. 그것들은 나와 님 사이를 떼어 놓는 것입니다. 그 짤랑거림은 님의 속삭임을 지우고 말지요.

님을 뵈올 땐 시인의 허영도 스스로워서 꼬리를 감춥니다. 오, 최고의 시인이시여,

나는 님의 발 가에 앉아 있습니다. 나의 생명이 단순하고도 똑바르도록만 하게 하옵소서, 님을 위해서 음악으로 채워질 갈피리처럼.

 

 

8.

왕자의 옷으로 치장이 되고 목에는 보석이 박힌 고리줄을 늘인 아이는 도무지 즐겁게 놀 수가 없습니다.

걸음을 떼어 놓을 때마다 옷이 그를 방해하지요. 그 옷이 닳을까봐, 혹은 먼지로 더럽혀질까봐 그는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킵니다. 움직이는 것조차 두려워하게 되고.

어머니, 당신의 옷치장에의 집념, 그런 것은 전혀 무익한 것입니다. 만약 그것이 이 대지의 건강에 찬 먼지로부터 사람을 차단해 버리는 것이라면, 만약 그것이 사람에게서 저 평범한 인간 생활의 크나큰 시장에로 들어갈 권리를 빼앗는 것이라면.

 

 

9.

오 멍텅구리, 자신의 어깨 위에 자신을 지고 나르려 하다니!

오 비렁뱅이, 자신의 집 문전에서 구걸을 하다니!

그대의 온갖 짐을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는 그 분의 손에 맡기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미련을 떨치지 못해 뒤돌아보는 일은 마십시오.

그대의 욕망과 입김이 닿으면 등불의 빛은 즉시 꺼집니다.

그것은 부정한 짓 - 욕망의 불결한 두 손으로 그대의 선물을 받지는 마십시오. 오직 신성한 사랑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만을 받으십시오.

 

 

10.

거기 님의 발판이 있습니다.

가장 가난하고, 가장 비천한, 길 잃은 자가 사는 곳에 님은 발을 쉬고 계십니다.

님에게 무릎을 꿇으려 해도, 나의 예배는 가장 가난하고, 가장 비천한, 길 잃은 자들 속에 님이 발을 쉬고 계신 그 깊은 곳에는 미칠 수가 없습니다.

오만심으로는 가장 가난하고, 가장 비천한, 길 잃은 자들 속에 수수한 옷을 입고 님이 거니시는 그러한 곳에 결코 갈 수가 없습니다.

나의 마음은 가장 가난하고, 가장 비천한 길 잃은 자들 사이에 섞여 님이 고독한 사람의 벗이 되는 그러한 곳에 다다를 길을 도무지 찾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11.

이 찬송과 노래와 기도 따윈 그만 두시지요!

문들은 모두 닫힌 이 사원의 쓸쓸하고도 어두운 구석에서 당신은 누구를 예배하는 것입니까?

눈을 뜨고 보십시오. 신은 당신 앞에 없다는 것을!

그분은 농부가 팍팍한 땅을 갈고 있는 곳과 길 닦는 이가 돌을 깨고 있는 곳에 계십니다. 볕이 들거나 소나기가 퍼붓거나 그분은 그들과 더불어 계십니다. 그분의 옷은 먼지로 뒤덮여 있습니다. 당신은 신성한 망토를 벗고 그분처럼 당신도 먼지투성이의 저 흙 위로 내려가십시오.

해탈이라고요? 해탈이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우리의 주는 창조의 속박을 스스로 기꺼이 떠맡고 계십니다. 그분은 영원히 우리들 전체와 맺어져 있습니다.

명상에서 빠져나와 꽃도 향도 내버려 두시지오!

당신의 옷이 더럽혀지고 갈갈이 찢긴들 무슨 해로움이 있겠습니까? 당신의 이마의 땀과 노역 속에 그분을 만나서 그분 곁에 서십시오.

 

 

12.

나의 여행 시간은 오래고 그 도정은 길기도 합니다.

나는 최초의 빛살의 수레를 타고 나왔지요. 그리하여 적막 천지를 뚫고 내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많은 항성과 유성에 내 발자취를 남기면서. 님에게 가장 가까이 가는 것이 가장 먼 도정이거니와, 가락의 온전한 단순성에로 이끄는 수련이 또한 가장 복잡한 것이었습니다.

나그네는 자신의 집에 당도하기까지 모든 낯선 문을 두드려야 할 것이며, 막다른 곳에 있는 가장 깊은 안의 사원에 이르자면 모든 바깥 세계를 방황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내 눈은 멀리 두루 해맨 끝에 비로소 눈 감고 말했지요.

“님은 여기 계시구나!”

“오, 어디에?”란 질문과 외침은 천(千)의 흐름의 눈물로 녹아들어 “나는 있다!”는 확신의 홍수로 세계를 휩씁니다.

 

 

13.

내가 부르려고 작정했던 노래는 아직 이 날까지 불러지지 않았지요.

나는 악기의 줄을 당기거나 늦추거나 하며 소일해 왔습니다. 때는 아직 무르익지 않았고, 말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습니다. 나의 가슴 속엔 다만 바램의 고통이 있을 따름.

꽃은 피지 않았고, 바람만 한숨쉬며 스쳐 갈 뿐입니다.

나는 아직 그분의 얼굴을 못 보았거니와, 그분의 목소리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다만 내 집 앞 한길에서 그분의 부드러운 발소리를 들었을 뿐.

마루 위에 그분의 자리를 펴느라고 긴 하루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등불은 켜지지 않았으니 나는 그분을 집으로 모실 수도 없습니다.

나는 그분과 만난다는 바램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허나 이 만남은 아직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14.

나의 욕망은 허다하고 나의 외침은 애절합니다만, 님은 항시 굳은 거절로써 나를 구하여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이 엄한 자비는 아주 속속들이 나의 생명 속에 스미어 들었지요.

날마다 님은, 청하지도 않았건만 나에게 베푸신 이 단순하고도 위대한 선물 - 이 하늘과 빛, 이 육신과 생명과 마음 - 에 내가 걸맞도록 만들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지나친 욕망의 위험에서 나를 건져 주십니다.

내가 노곤하여 머뭇거리는 때, 내가 깨어나서 목적지를 찾아 서두르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만은 무정히 님은 내 앞에서 그 모습을 숨기시지요.

날마다 님은 나를 시시때때로 거절함으로써 나를 님의 온전한 수용에 알맞도록 만들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그 약하고 불안한 욕망의 위험에서 나를 건져 주십니다.

 

 

15.

나는 님을 위해 노래를 부르려고 이곳에 있지요. 님이 이 회당 안 한구석에 나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님의 세계에선 나는 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나의 보람 없는 생명은 다만 부질없는 곡조로 용솟음칠 뿐.

한밤중 어두운 사원에서 님의 침묵의 예배를 알리는 종이 울릴 때엔, 주여, 나에게 님의 앞에 서서 노래를 부르기를 명하여 주십시오.

아침의 대기 속에 황금의 하아프가 울릴 때엔, 나를 영광되게, 님의 곁에 있도록 명하여 주십시오.

 

 

16.

나는 이 세상의 축제에 오라는 초대를 받았어요. 이리하여 내 생은 축복을 받았지요. 눈으론 보았고 또한 귀로는 들어 온 것입니다.

이 축제에선 악기를 타는 일이 내 구실이었기에, 나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지요.

이제, 나는 묻노니,

내 들어가 님의 얼굴을 뵈어도 좋을 때, 그리고 님에게 말 없는 인사를 드려도 좋을 때가 드디어 왔는지요?

 

 

17.

나는 다만 그분의 두 손에 마침내 이 몸을 내맡길 사랑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이렇게 늦었고, 그러한 태만의 죄를 저질러 온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법과 규약으로 나를 꼭 묶으려고 옵니다만, 나는 항시 그들을 피합니다. 왜냐면 나는 그분의 두 손에 마침내 이 몸을 내맡길 사랑만을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사람들은 나를 나무라며 얼빠진 사람이라 부릅니다. 나는 그들의 비난이 옳은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장날은 기울고 바쁜 이들의 일은 모두 끝이 났습니다. 나를 헛되이 부르러 왔던 사람들은 노해서 되돌아갔습니다. 나는 다만 그분의 두 손에 마침내 이 몸을 내맡길 사랑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18.

구름 위에 또 쌓이는 구름으로 날은 어두운데, 아, 사랑이여, 왜 님은 나를 문 밖에서 이렇게 혼자 기다리게 하십니까?

낮일의 한창 바쁜 시각엔 나는 군중과 함께 있지만 이 어둡고 쓸쓸한 날에 내가 바라는 건 오로지 님 뿐.

만약 님이 내게 얼굴을 안 보이신다면, 만약 님이 나를 온통 내버려 두신다면, 나를 어떻게 이 지리한 비 오는 시간을 보내야 할는지 알지 못합니다.

나는 멀리 아득한 저편 하늘의 어둠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마음은 쉴 줄 모르는 바람과 더불어 흐느껴 울면서 떠돌고 있습니다.

 

 

19.

만약 님이 말하지 않으시면 나는 이 마음을 님의 침묵으로 채우렵니다. 그리고 그것을 견디겠어요. 나는 저 별들이 밤샘하는, 그리고 참을성 있게 머리를 드리운 밤과 같이 조용히 하며 기다릴 것입니다.

아침은 기필코 올 것이니, 어둠이 사라지면 님의 목소리는 하늘을 꿰뚫는 금빛 흐름으로 쏟아져 내리겠죠.

그러면 님의 말은 노래가 되어 나의 모든 새들의 둥지에서 날아오를 것입니다. 님의 선율은 나의 모든 숲의 나무마다 꽃이 되어 피어날 것입니다.

 

 

20.

연꽃이 핀 날에, 아아, 나의 마음은 헤매고 있었으니, 나는 꽃이 핀 것도 알지 못했지요. 내 바구니는 빈 채였고, 꽃에는 눈도 주지 않았어요. 다만 때때로 내게 슬픔이 떨어져 오면, 나는 문득 꿈에서 깨어나 남쪽 바람 속에 한 이상한 향기의 감미한 흔적을 느꼈지요.

그 막연한 감미함은 나의 가슴을 그리움으로 아프게 했거니와 그것은 그 완숙을 지향하는 여름의 간절한 입김인가 싶었어요.

나는 그 때엔 그것이 그렇듯 가까이에 있었음을, 바로 나 자신의 것이었음을, 이 온전한 감미함이 나의 가슴 속 깊이에 피었던 것임을 몰랐지요.

 

 

21.

나는 배를 타고 떠나야 되겠다. 맥없는 시간을 기슭에서 보냈으니 - 슬프다 이 내 신세!

봄은 꽃을 피우더니 이내 가 버렸고. 지금은 시들어 쓰잘 데 없는 꽃 더미와 더불어 나는 기다리며 망설이노니. 물결은 이제 소란해졌고, 그늘진 골목의 제방 위엔 노오란 잎들이 펄펄 지고 있다.

어느 허공을 그대는 보는가! 저 다른 기슭에선 먼 아득한 노래의 가락이 흘러들어 미풍 속에 전율하고 있는 걸 못 느끼나?

 

 

22.

비 오는 칠월의 깊숙한 그늘 속을, 은밀한 걸음으로, 밤처럼 조용히 님은 모든 보는 이를 피하여 거닐고 계십니다.

오늘, 아침은 두 눈을 감았어요. 그 사나운 동녘 바람의 줄기찬 부름에도 아랑곳 않고, 두꺼운 베일이 항시 깨어있는 푸른 하늘을 가리어 버렸지요. 숲들은 그들의 노래를 억눌렀고, 그리고 집집마다 문들이 닫혔는데. 님은 이 삭막한 거리의 외로운 나그네이십니다.

오, 나의 유일한 벗, 나의 가장 사랑하는 이여, 내 집의 문들은 열려 있사오니 - 그렇게 꿈처럼 지나지는 마십시오.

 

 

23.

벗이여, 이렇게 비바람 치는 밤에 님은 사라의 여정을 떠나시다니? 하늘은 마치 절망한 사람처럼 신음하고 있습니다.

나는 오늘밤 잠이 안 옵니다. 이따금 나는 문을 열고는 어둠을 내다보죠, 벗이여!

눈 앞에 아무것도 뵈지가 않습니다. 님의 길은 어디에 놓여 있는 것일까요!

저 먹빛 강의 어느 희미한 기슭을 따라, 저 험한 숲의 어느 먼 변두릴 따라, 저 어둠의 어느 혼미한 구렁을 통해 님은 내게 오는 도정을 더듬고 계시는지요?

 

 

24.

날은 저물고, 새들도 더는 울지를 않거든, 바람은 피곤해 늘어져 버렸거든, 내 위에 짙게 저 어둠의 베일을 치십시오. 마치 님께서 이 대지를 잠의 이불로 감쌌듯이, 그리고 부드러이 황혼에 수그린 연꽃의 꽃잎들을 닫았듯이 말입니다.

항해가 미처 끝나기 전에 식량 부대는 바닥이 드러나고, 옷은 찢겨서 먼지에 절어, 힘을 탕진한 나그네에게서 부끄러움과 가난을 치우고, 그의 생명을 소생케 하십시오, 님의 정다운 밤의 이불 아래 꽃처럼 말입니다.

 

 

25.

고달픈 밤엔 날 편안히, 내 믿음을 님에게 내맡긴 채 잠들게 하옵소서.

내 늘어진 정신으로 하여금 님에의 예배를 위해 빈약한 준비로 허덕이게 하옵소서.

이 하루의 피곤한 눈 위에 밤의 베일을 치신 건 님입니다. 깨어남의 보다 더 신선한 기쁨 속에 그 시력을 새로이 하기 위해.

 

 

26.

그분은 오셔서 내 곁에 앉았으나 나는 깨지를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얼마나 저주받은 잠이었겠습니까,

오 참으로 불행한 이 몸이여!

그분은 밤이 이슥한 때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손에 하아프를 들고 계셨으니, 내 꿈은 그 선율에 따라 울리게 되었지요. 아아, 어찌하여 나의 밤들은 모두 잃어지는 것입니까?

아아, 어찌하여 나는 항시 그분의 모습을 놓쳐야 합니까, 그분의 숨결은 나의 잠에 닿는데도?

 

 

27.

빛, 오 빛은 어디에 있습니까? 욕망의 타는 불로 그것을 켜십시오!

등불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꽃은 일지 않는, - 가슴아, 그것이 그대의 숙명! 아아, 그대에겐 차라리 죽음이 훨씬 낫습니다.

비참이 그대의 문을 두드리며, 이렇게 전한다, 그대의 주인은 잠깨어 있어, 그분은 밤의 어둠을 통해 사랑의 밀회에로 그대를 부른다고.

하늘은 온통 구름에 덮이었고 비는 그칠 줄 모르고 있습니다. 나는 내 안에 들끓는 이것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합니다, - 나는 그 뜻을 알지 못합니다.

번쩍하는 순간의 번갯불은 내 시야에 좀더 짙은 어둠을 끌어내려, 나의 마음은 밤의 음악이 이 몸을 부르는 곳을 찾아서 더듬고 있습니다.

빛, 오 빛은 어디에 있습니까! 욕망의 타는 불로 그것을 켜십시오!

번개가 치고 바람은 허공을 소리쳐 달립니다. 흑요석처럼 밤은 시커멓고, 어둠 속에서 헛되이 시간을 보내지 마십시오. 그대의 생명으로 이 사랑의 등불을 켜십시오.

 

 

28.

질곡은 완고하나, 내가 그것을 깨려고 할 때엔 마음이 아픕니다. 자유야말로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지만 그것을 바라기란 부끄러워요.

님 안엔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재보가 있고, 님은 내 최선의 벗이라 확신하나, 내 방을 채운 저 번쩍거리는 값싼 물건들을 쓸어버릴 용기는 없습니다.

나를 싼 수의는 먼지와 죽음의 수의올시다. 나는 그것을 미워하면서도, 여전히 사랑하여 끌어안고 있습니다.

나의 부채는 크고, 실패는 엄청나며, 부끄러움은 깊고 무겁지요.

하지만 내가 자신의 행복을 청하게 될 땐, 나는 내 기원이 받아들여질까 봐 덜덜 떤답니다.

 

 

29.

나의 이름으로 에워싸인 그는 이 감옥 안에서 울고 있습니다. 나는 그 둘레에 벽을 쌓느라고 항시 바쁩니다. 그런데 이 벽이 나날이 하늘로 치올라 갈수록 나는 그 어두운 그늘 속에 내 참 모습을 잃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 크나큰 벽에 자랑을 갖습니다. 그리하여 그것을 모래와 티끌로 더덕더덕 바르지요. 이 이름에는 아무리 하찮은 구멍일지라도 남겨져선 안 되니까.

그런데 내가 드린 정성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참 모습을 잃고 있는 것입니다.

 

 

30.

나는 혼자서 밀회의 길을 나섰습니다. 그러나 이 은밀한 어둠 속에 나를 뒤쫓는 사람은 누굽니까?

나는 그를 피하려고 옆으로 비키지만 그에게서 달아날 도리가 없습니다.

그는 그의 오연한 걸음으로 땅에 먼지를 일게 하고, 내가 말하는 말끝마다 그의 높은 음성을 보탭니다.

그는 내 조그만 자아인 것입니다. 주여, 그는 수치를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그와 더불어 님의 문전에 가기는 창피해요.

 

 

31.

“죄수여, 말해다오. 누가 그대를 가두었는가?”

“나의 주인이었어요.” 하고 죄인은 말했습니다.

“나는 재물과 권력에 있어서는 세상의 누구보다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보고에 왕에나 걸맞을 돈을 모았지요. 졸음이 나를 엄습해 오자 나는 주인의 침대에 누웠어요. 그런데 깨어보니 나는 내 보고 속에 죄인이 되어 있더군요.”

“죄인아, 말해다오, 누가 이 끈기지 않는 사슬을 만들었나?”

“그것은 나였지요.” 하고 죄인은 말했습니다.

“이 사슬을 매우 정성스럽게 만든 자는, 나는 내 무적의 권력이, 내가 온전한 자유를 누리도록, 세계를 사로잡을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 밤낮으로 치열한 불과 무서운 타격으로 사슬을 단련했죠. 드디어 일은 끝나 고리가 완벽하게 끈기지 않게 되자, 보니 어느덧 이 몸이 사슬에 묶이어 있더군요.”

 

 

32.

이 세상에서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보다 더욱 큰 님의 사랑은 다르니, 님은 나를 자유롭게 내버려 두십니다.

내가 그들을 잊을까 저어하여 그들은 결코 나를 혼자 내버려 두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루하루 날은 지나가도 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기도할 때 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더라도, 이 나를 위해 사랑은 여전히 내 사랑을 기다릴 것입니다.

 

 

33.

대낮이었을 때 그들은 내 집에 들어와서 말하기를,

“우리는 이곳에서 가장 작은 방을 차지할 뿐입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우리는 당신의 신에의 예배를 돕겠으며, 신의 은총의 우리들 몫만을 겸손히 받으면 되지요.”

그러자 그들은 구석에 자리 잡고 조용히 온순하게 않았습니다.

하지만 밤의 어둠을 타서 나는 그들이 매우 난폭하게 내 신성한 사당으로 쳐들어가, 부정한 탐욕으로 신의 제단에서 제물을 강탈해 가는 것을 봅니다.

 

 

34.

나라는 존재의 그저 조금만은 남겨 두십시오, 그것에 의하여 님을 나의 전부라 부를 수 있도록.

나의 의지의 그저 조금만은 남겨 두십시오, 그것에 의하여 나는 도처에 님을 느끼고, 모든 것 속에 님과 만나, 모든 순간마다 님에게 사랑을 바칠 수 있도록.

나라는 존재의 그저 조금만은 남겨 두십시오, 그것에 의하여 내가 결코 님을 숨기는 일이 없도록.

나의 기반의 그저 조금만은 남겨 두십시오, 그것에 의하여 나는 님의 뜻과 맺어져 있거니와 님의 목적은 나의 목숨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 그리고 그것이 님의 사랑의 기반이지요.

 

 

35.

그곳은 마음의 공포가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려 있는 곳,

그곳은 인식이 자유로운 곳,

그곳은 세계가 좁은 가정의 담벼락으로 조각나지 않은 곳,

그곳은 말이 진리의 밑바닥에서 우러나오는 곳,

그곳은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이 완성을 향하여 그 팔을 활짝 펴는 곳,

그곳은 이성의 맑은 냇물이 죽은 습관의 쓸쓸한 사막으로 잦아들진 않는 곳,

그곳은 마음이 님에 인도되어 늘 열려가는 사상과 행동으로 나아가는 곳 -

저 자유의 천계에로, 주여, 이 나라를 깨우쳐 주옵소서.

 

 

36.

주여, 이것이 님에게 드리는 내 기도입니다. - 이 가슴 속 가난의 뿌리를 치고 또 치십시오.

내 기쁨과 슬픔을 조용히 참고 견딜 힘을 주십시오.

내 사랑이 님을 섬김에 풍성하게 열매 맺도록 힘을 주십시오.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기거나 오만한 권력 앞에 결코 무릎을 꿇는 일이 없도록 힘을 주십시오.

이 마음을 나날의 하찮은 일들 위로 높이 초연케 할 힘을 주십시오.

그리고 내 힘이 애정을 지니고 님의 뜻에 복종하도록 힘을 주십시오.

 

 

37.

나는 생각했습니다.

드디어 나의 힘은 바닥이 드러나서 나의 항해는 끝난 것이라고, - 앞길은 막혔고, 양식은 떨어졌고, 하여 이젠 조용하고 은밀한 데로 가서 숨어버릴 시간이 되었다고.

 

그러나 나는 발견했습니다.

님의 의지는 내 안에서 끝을 알지 못함을. 하여 낡은 말이 혓바닥에서 숨질 때엔, 새로운 선율이 가슴에서 치솟고, 낡은 발자취가 스러진 곳엔 새로운 나라가 경이에 차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38.

난 님을 원합니다.

오로지 님을 - 하고 내 마음이 언제까지나 되풀이하여 외치도록 하옵소서. 낮이나 밤이나, 나를 혼란케 하는 모든 욕망은 철저하게 거짓된 것이며 허무한 것입니다.

밤이 어둠 속에 빛에의 기원을 숨기어 두듯이, 꼭 그처럼 나의 무의식의 심저에서 울리는 외침은 - 난 님을 원합니다, 오로지 님을.

폭풍우가 평온을 거역하여 극성을 부릴 때도 역시 평온 속에 종말을 찾듯이, 꼭 그처럼 나의 반항은 님의 사랑을 거역하면서도 그 외침은 - 난 님을 원합니다, 오로지 님을.

 

 

39.

가슴이 굳어 바싹 마를 때엔, 자비의 소나기와 더불어 오십시오.

우아함이 생활에서 잃어질 때엔, 드높은 노랫소리 더불어 오십시오.

시끄러운 일이 사방에서 극성떨며 나를 가둬 버릴 때엔, 말없는 주여, 님의 평화와 휴식을 가지고 내게 오십시오.

구석에 갇히어서, 내 거지 같은 마음이 웅크리고 앉아 있을 때엔, 왕이여, 이 문을 부수어 여시고는 왕의 위의를 갖추고 오십시오.

욕망이 마음을 망상과 먼지로 눈멀게 할 땐, 오 거룩한 이여, 깨어있는 자여, 님의 빛과 우뢰를 가지고 오십시오.

 

 

 

40.

불모의 가슴 속에, 신이여, 비는 여러 날을 두루 안 오고 있습니다. 지평은 호되게 드러났으니, - 부드러운 구름의 얇디얇은 덮개 하나, 먼 시원한 소나기가 올 듯한 지극히 희미한 기색도 없습니다.

님이 원하신다면, 죽음을 지니어서 어두운, 성난 폭풍우를 보내세요. 번개의 채찍질로 이 하늘의 끝에서 끝까지를 놀라게 하세요.

그러나 주여, 불러들이세요. 이 가득 찬 침묵의 열기를.

무서운 절망으로 마음을 태우는, 침묵의 날카로운 잔혹한 열기를.

위로부터 자비의 구름을 드리우게 하세요. 아버지가 몹시 노하신 날에 어머니의 눈물어린 모습과 같이.

 

 

41.

나의 애인이여, 님은 사람들 뒤의 언 그늘에 숨어서 계십니까?

그들은 님을 업신여겨, 먼지투성이 길 위에 님을 밀고 지나갔죠. 나는 님에게 드릴 내 봉헌물을 이곳에 펼쳐 놓고 지루한 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행인들은 와서 나의 꽃을 하나씩 가져가서, 내 바구니는 거의 비다시피 되고 말지요.

아침이 지나가고 정오도 지나가고 저녁의 그늘 속에 내 눈은 졸음으로 나른해집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은 나를 흘긋 바라보곤 빙그레 웃으며 나를 치욕으로 떨게 하지요. 나는 거지 계집애처럼 앉아, 내 치마로 얼굴을 가립니다. 그리고 무엇을 원하느냐고 그들이 물을 때엔, 나는 내 두 눈을 떨구고 대답을 안하지요.

오, 참으로 어떻게 내가 말할 수 있겠어요,

나는 님을 기다린다는 것을, 그리고 님은 꼭 오시겠다고 언약했다는 것을. 이 가난을 나의 결혼지참금으로 지킨다는 것을 부끄러워서 어떻게 내가 말할 수 있겠어요.

아, 나의 은밀한 가슴 속 깊이 나는 이 긍지를 품고 있습니다.

 

풀밭 위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곤 나는 님이 나타나는 불시의 광휘를 꿈꾸는 것입니다. - 빛은 모두 타오르고 님의 수레 위엔 금빛 깃발들이 나부끼지요, 사람들은 님이 자리에서 내려와서 티끌로부터 나를 일으키시고는, 여름의 미풍 속 덩굴풀인 양 부끄러움과 자랑으로 떨고 있는 누더기 옷의 거지 계집애를 님의 곁에 두시는 것을 보고 어안이 벙벙하여 길가에 서 있고.

그러나 시간이 지나가도 님의 수레바퀴 소리는 아직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많은 행렬이 요란하게 떠들면서 호사스럽게 지나고 있습니다. 사람들 뒤, 묵묵히 그늘 속에 서 계신 이는 오직 님뿐인지요? 그리고 헛된 갈망으로 마음을 닳게 하고 울며 기다리는 사람은 오직 나뿐인지요?

 

 

42.

아침 일찍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님과 나 둘이서만 작은 배를 타고 떠나야 한다고. 이 정처도 끝도 없는 우리의 순례를 아는 이는 이 세상 아무데도 없을 것입니다.

가없는 바다에서, 님이 조용히 미소하며 귀 기울여 주신다면 나의 노래는 물결처럼 자유롭게, 모든 언어의 구속을 벗어나서, 풍요한 선율로 울릴 것입니다.

그 때는 아직도 멀었는지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있습니까? 보십시오, 저녁은 기슭 위에 내려왔고 희미한 빛 속에 바닷새들이 그들의 둥질 찾아 날아오르고 있음을.

누가 이 사슬에 풀어져서, 작은 배가, 저 지는 해의 마지막 미광처럼, 밤 속으로 사라질 때를 알겠습니까?

 

 

43.

그 무렵, 내겐 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나의 왕이여, 님은 초대도 받지 않았지만, 일반 대중 속에 섞여, 슬쩍 나의 심중에 들어와선 내 생이 많은 덧없는 순간에 영원이란 옥새를 찍으셨죠.

그런데 오늘 우연히 님의 각인이 생각나서, 보니 내 잊혀진 하찮은 시절의 기쁨과 슬픔의 기억과 뒤섞인 티끌 속에 그것들이 흩어져 있더군요.

님은 티끌 속에 내 철없는 장난을 보시고도 경멸하여 외면하지 않으셨죠. 내가 놀이방에서 들었던 발소리는 별에서 별로 메아리치고 있는 소리와 같습니다.

 

 

44.

이것이 나의 기쁨, 그늘은 빛을 쫓고, 여름을 뒤따라 비가 오는 길가에서 이렇게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는 것이. 사자들은 미지의 천공에서 소식을 가지고 와 내게 인사하고는 바삐 길을 가버린다. 내 가슴은 속속들이 기쁨에 차고, 지나가는 미풍의 입김도 감미롭다.

새벽에서 황혼까지 나는 내 문 앞에 앉아 있거니, 갑자기 행복의 순간이 찾아와서 만나게 되리란 걸 알고 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미소하여 혼자서 노래한다. 그러는 동안 대기는 기약의 향기로 차 있다.

 

 

45.

당신은 그분의 조용한 발소리를 못 들었습니까? 그분은 옵니다, 옵니다, 항시 옵니다.

순간마다 시대마다, 낮이나 밤이나 그분은 옵니다, 옵니다, 항시 옵니다.

나는 가지가지 기분에 따라 가지가지 노래를 불렀습니다만, 그 모든 곡조는 언제나 선언하길,

“그분은 옵니다, 옵니다, 항시 옵니다.”

양지바른 사월의 향기로운 날에 숲 사이 길을 통해 그분은 옵니다, 옵니다, 항시 옵니다.

비 내리는 칠월 밤의 어둠 속에 번개 치는 구름의 수레를 타고 그분은 옵니다, 옵니다, 항시 옵니다.

연이은 슬픔 속에 나의 가슴을 누르는 것은 그분의 발소리고, 나의 기쁨을 빛나게 하는 것은 그분의 발길의 금빛 감촉이죠.

 

 

46.

나는 님이 얼마나 먼 옛날부터 나를 만나려고 항시 가까이 오시고 있는가를 알지 못합니다. 해와 별들은 내게서 영원히 님을 결코 숨겨 둘 순 없습니다.

수많은 조석으로 님의 발소리가 들려 왔거니와 님의 사자가 내 가슴 속에 와서 은밀히 나를 불렀던 것입니다. 나는 어째서 오늘은 나의 생명이 온통 활기를 띠고, 온몸이 들썩이는 기쁨의 느낌이 나의 가슴을 꿰뚫고 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마치 일을 그만둘 시간이라도 온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산들바람 속에 님의 감미로운 모습의 희미한 향기를 느낍니다.

 

 

47.

헛되이 그분을 기다리느라고 밤은 거의 다 지새었습니다.

나는 아침에 갑자기 그분이 내 집 문에 오실까봐 두렵습니다. 내가 노곤하여 잠들었을 때, 오 벗들이여, 그분에게 길을 내주기를 - 그분을 막진 마십시오.

만약 그분의 발소리가 나를 깨우지 않거든, 비노니, 나를 눈뜨게 하지는 마십시오.

나는 새들의 시끄러운 합창으로, 또는 아침빛의 축제 때에 바람의 소동으로 잠에서 깨어나길 원하지 않습니다. 설사 주께서 갑자기 내 집 문에 오신다 할지라도 나를 그대로 잠자게 하십시오.

 

아 나의 잠이여, 소중한 잠이여, 다만 그분의 촉수만을 기다리는, 아, 나의 감긴 눈은 그분의 미소가 발하는 빛을 받아야만 비로소 그 눈꺼풀을 열 것입니다.

잠의 어둠에서 나타나는 꿈처럼 내 앞에 그분이 설 때.

온갖 빛과 형태 중에서도 최초의 것으로서 그분을 내 눈 앞에 나타나게 하십시오. 나의 이 각성한 영혼에게 그분의 눈짓에서 환희의 최초의 전율이 오도록. 그리고 나 자신에의 돌아감이 곧 그분에의 돌아감으로 되게 하십시오.

 

 

48.

침묵의 아침 바다는 갑자기 새들 지저귐의 잔물결로 화했고, 길가의 꽃들은 모두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구름의 틈 사이로는 꽃들은 모두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서둘러 갈 길을 가느라고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즐거운 노래도 안 불렀고 놀지도 않았지요. 우리는 물건을 사고팔러 마을에 들르지도 않았거니와 말도 안 했고 웃지도 않았어요. 우리는 도중에서 지체하지 않았어요. 시간이 갈수록 우리는 더욱 더 발걸음을 재촉했던 것입니다.

 

태양이 중천에 떠올랐습니다. 그늘에서는 비둘기들이 꾸르르 울어댔고, 시들은 잎들은 대낮의 더운 공중에서 빙빙 돌아가며 춤을 추었지요. 목동은 꾸벅꾸벅 졸더니만 보리수 그늘에서 꿈을 꾸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물가에 누워 내 피곤한 사지를 풀밭 위에 뻗어 버렸습니다.

 

벗들은 나를 경멸하여 비웃었지요. 그들은 똑바로 고개를 들고는 서두러 갔습니다. 그들은 결코 뒤를 돌아다보지도 않았고 쉬지도 않았지요. 그들은 먼 푸른 안개 속에 사라져 버렸어요. 그들은 많은 초원과 언덕을 넘었고, 이상하고도 머나먼 나라들을 지나갔습니다. 모든 영광은 이 끝없는 길의 용감한 주인인 그대들에게! 조롱과 비난은 나를 분기하도록 뜨끔히 찔렀으나, 내 안엔 아무런 반응이 없었어요. 나는 즐거운 굴욕의 심연 속에 - 한 어슴푸레한 기쁨의 그늘 속에, 나 자신을 구제불능으로 단념했습니다.

 

햇빛을 수놓은 초록빛 어둠의 안식이 서서 나의 가슴 위로 퍼졌어요. 나는 내가 무엇 때문에 여행을 했었는지도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 마음을 아무런 저항 없이 그림자와 노래의 미궁에로 내맡겼지요.

드디어, 내가 잠에서 깨어나 두 눈을 뜨자, 나는 님이 미소로써 나의 잠을 감싸시며, 내 곁에 서 계신 걸 보았던 것입니다. 길은 멀고 지루하다고, 그리고 님에게 이르기 위한 고투는 가혹한 것이리라고 나는 얼마나 두려워했던 것이었습니까!

 

 

49.

님은 님의 옥좌에서 내려오셔서 내 시골집 문가에 서셨어요. 나는 구석에서 혼자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그 선율이 님의 귀에 들어간 것입니다. 님은 내려오셔서 내 시골집 문가에 서셨어요.

님의 넓은 방엔 명인이 많이 있고, 또 거기선 항시 노래가 불려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풋내기와 소박한 축가가 님의 사랑을 건드린 것이지요. 한 구슬픈 조그만 가락이 이 천지의 위대한 음악과 섞이었거니, 님은 상으로 작은 꽃을 갖고 내려오셔서 내 시골집 문가에 서셨어요.

 

 

50.

나는 마을길로 이집 저집 구걸을 하러 갔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님의 황금마차가 멀리 화려한 꿈처럼 나타나자 나는 이 왕 중의 왕이 누구일까 궁금했습니다.

나의 희망은 부풀어 올랐고, 나는 생각하길 나의 불운은 끝난 것이라고, 그리하여 나는 구걸을 안 해도 주어질 시물과 티끌 속 도처에 흩어질 재화를 기대하며 서 있었습니다.

마차는 내가 서 있는 곳에 멈추었습니다. 님의 시선이 나에게 떨어지자 님은 미소를 지으시면서 내려오셨습니다. 나는 드디어 내 생의 행운이 왔다고 느꼈지요. 그러자 느닷없이 님은 오른손을 내미시고는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내게 줄 무엇을 가졌는가?”

아, 거지에게 구걸을 하시려고 님은 님의 손바닥을 펴시다니 그건 또 얼마나 왕자다운 농이었겠습니까?

나는 얼떨떨해 멍하니 서 있다가, 그제서야 내 전대에서 한 작디작은 곡식의 낱알을 미적미적 꺼내어선 님에게 드렸지요.

그러나 그날도 저물어 내가 마루 위에 자루를 털었더니 그 초라한 무더기 가운데 한 작디작은 황금의 낱알을 발견하게 될 줄이야, 그 때 내 놀라움은 얼마나 컸겠어요. 나는 몹시 울었지요. 님에게 나의 전부를 바칠 마음을 내가 내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51.

밤은 어두워졌고, 우리의 하루 일은 벌써 끝났지요. 밤에 오실 마지막 손님도 도착했거니와 마을의 문들은 모두 닫혔다고 우리는 생각했죠. 다만 어떤 이들은 왕이 오실 것이란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천만에, 그럴 리가 없지!”하고 웃었습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 듯하자 우리는 말했지요, 그것은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고. 등불을 끄고 우리는 자려고 누웠습니다. 다만 어떤 이들은 “사자(使者)야!”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천만에, 틀림없이 바람이야!” 하고 웃었습니다.

 

한밤중 어떤 소리가 났습니다. 우리는 졸린 듯이 그것은 먼 우뢰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땅은 진동하고 벽은 흔들려서, 그것은 잠든 우리를 괴롭혔죠. 다만 어떤 이들은 그것을 수레바퀴 소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조는 목소리로 “천만에, 틀림없이 천둥이야!” 하고 중얼거렸지요.

북소리가 울렸을 땐 밤은 아직도 캄캄했습니다. 한 소리가 들려오되 “깨어나라! 지체하지 말고!” 우리는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두려움에 떨었지요. “보라, 저기 왕의 깃발이 있다!” 하고 어떤 이들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벌떡 일어나서는 이렇게 외쳤지요, “이제 지체할 시간이 없다!”

 

왕이 오셨다. - 그러나 등불은 어디에 있고, 화환은 어디 있나? 그를 앉게 할 옥좌는 어디에?

오, 창피해라, 이 무슨 치욕인고! 모실 방은 어디 있고, 장식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어떤 이가 말하기를, “헛되어라, 이 외침! 빈손으로 그를 영접하여, 텅 빈 그대의 방으로 모시어라!”

 

문을 여십시오, 소라나팔이 울리도록! 한밤중 우리의 어둡고 쓸쓸한 집의 왕이 오셨어요. 하늘에선 우뢰가 울부짖고, 어둠은 번갯불로 떨고 있습니다. 그대의 헌 돗자리 조각을 가지고 나와 이 안마당에 그것을 펴십시오. 폭풍우와 함께 갑자기 우리의 왕이 오셨어요, 이 무서운 밤의 왕이.

 

 

52.

님이 목에 거시던 장미의 화환을 나는 청하고 싶었습니다만 - 감히 입이 열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나는 님이 떠나시면, 침대 위의 부스러기라도 주으려고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리하여 새벽에 거지와도 같이 떨어진 한두 개의 꽃잎이나마 하고 찾았던 것입니다.

 

아 그런데, 내가 찾은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님의 사랑은 무슨 징표를 남기셨는지요? 꽃도 아니요, 향료도 아니며, 향수병도 아닙니다. 그것은 님의 크나큰 칼, 불길처럼 번뜩이며, 우뢰처럼 무거운 칼이었습니다.

신선한 아침빛이 창으로 들어와서 님의 침대 위에 퍼지는군요. 아침 새는 지저귀며 이렇게 묻습니다. “여자여, 그대는 무엇을 찾았는가?” 아니요, 그것은 꽃도 아니며, 향료도 아니고, 향수병도 아닙니다. - 그것은 님의 무서운 칼이었죠.

 

님의 이 선물은 무엇일까, 나는 의아하여 앉아서 생각에 잠기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디에 감춰야 할지 알 길이 없습니다. 연약한 이 몸이라 그것은 차기는 쑥스럽고, 가슴에 안으면 그것은 나를 다치게 합니다. 하지만 이 님이 주신 선물, 이 고통스러운 짐의 영광을 나는 내 가슴 속에 지녀야겠습니다.

 

이제부턴 이 세상의 어떠한 공포도 나에겐 없습니다. 그리하여 님은 나의 모든 싸움에 있어서 이기실 것입니다. 님은 죽음을 나의 반려로 남기셨으니, 나는 내 목숨으로 그에게 관을 씌우렵니다. 나의 기반을 산산조각으로 자르기 위해 님의 칼은 나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의 어떠한 공포도 나에겐 없습니다.

이제부턴 나는 일체의 하찮은 장식을 벗습니다.

마음의 주여, 이젠 더 구석에서 기다리거나 우는 일이 나에겐 없어야겠습니다, 이젠 더 수줍어하거나 아리따운 태도를 보이는 일도, 님은 장식으로서 님의 칼을 나에게 주셨어요. 인형과 같은 장식은 이제 나에겐 없습니다.

 

 

53.

별들로 장식되고, 수없이 많은 빛깔의 보석들로 교묘히 만들어진 님의 팔찌는 아름답기도 하다. 그러나 비슈누 신이 타는 거룩한 새가 붉은 노을 속에 유유히 날개를 편 것 같은 번갯불의 굴곡을 가진 님의 칼이 나에겐 좀더 아름답다.

죽음의 최후의 일격을 받고 고통의 황활 속에 생이 마지막 반응을 나타내듯 그것은 떨고 있다. 한 매서운 섬광으로 속세의 감관을 태워 버리는 순수한 불길처럼 그것은 반짝인다.

별의 보석들로 장식된, 님의 팔찌는 아름답기도 하다. 그러나 님의 칼은, 오, 우뢰의 주여, 보기만 해도 혹은 생각만 해도 두려운, 극치의 미로 만들어졌다.

 

 

54.

나는 님에게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어요. 나는 님의 귀에 내 이름을 속삭이지 않았지요. 님이 작별하셨을 때 나는 말없이 서 있었습니다. 나무 그늘이 비스듬히 떨어져 있는 우물가에 나는 혼자였고, 아낙네들은 갈색의 질그릇 물주전자를 가득히 채우고는 집으로 돌아갔죠. 그들은 나를 불러 소리치기를, “함께 가십시다, 아침이 기울어 한낮이 되어가니.” 그러나 잠시 나는 막연한 명상에 잠겨 맥없이 시간만 보내었지요.

 

님이 오셨을 때 내게는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어요. 님이 나를 보셨을 때 님의 시선은 슬펐고, 님이 나직이 말씀하셨을 때 그 목소리는 피로해 있었어요. - “아, 나는 목마른 나그네올시다.” 나는 내 백일몽에서 소스라쳐 깨어서는 님의 합장한 손에 내 항아리의 물을 부었지요. 나뭇잎들은 머리 위에 살랑댔고, 어느 안 보이는 은밀한 곳에서 뻐꾸기 울음이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한길의 모퉁이에선 바브라 꽃의 향기가 불어왔죠.

 

님이 내 이름을 물으셨을 때 나는 부끄러워서 말을 잃고 서 있었습니다. 참으로, 님이 나를 기억해 둘 만한 나는 무엇을 하였단 말입니까? 그러나 님의 목마름이 가시도록 님에게 물을 드릴 수 있었다는 기억이 나의 마음에 남아, 이 마음을 감미롭게 싸안을 것입니다. 아침은 기울어 새들은 고단한 가락으로 울고 있고, 니임 나뭇잎들은 머리 위에 살랑대고 나는 앉아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55.

그대의 마음엔 권태가 도사리고 그대의 두 눈엔 아직도 졸음이 머물러 있다.

꽃은 지금 가시나무 사이에서 한창 영화롭게 피어 있다는 소식이 그대에겐 이르지 못했는가?

깨어나라, 오, 자리에서 일어나라!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

순박하고 쓸쓸한 시골 자갈길 끝에 나의 벗은 단 혼자 앉아 있다. 그를 속이지 말라.

깨어나라, 오, 자리에서 일어나라!

 

만약 하늘이 한낮의 태양열로 떨며 숨이 차서 헐떡인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 만약 저 불타는 모래가 그 갈증의 망토를 펼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

그대의 마음의 심저에는 아무런 기쁨도 없단 말인가?

그대가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에 한 길의 하아프는 아픔의 달콤한 곡조로 소리를 내지 않겠는가?

 

 

56.

이와 같이 내 안에 님의 기쁨은 충만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님은 내게로 내려오셨습니다. 오, 모든 천계의 주여, 만약 내가 없다고 하면 님의 사랑은 어디에 있겠어요?

님은 나를 이 모든 행복의 반려로 삼으셨습니다. 나의 마음속에 님의 기쁨의 끝없는 놀이가 있지요. 나의 생명 속에 님의 의지는 끊임없이 형성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왕 중의 왕이신 님은 내 마음을 사로잡고자 님을 아름답게 꾸미셨지요. 그리고 이 때문에 님의 사랑은 님의 애인의 사랑으로 녹아들어, 님은 거기 두 사람의 온전한 합치 속에 나타나 있습니다.

 

 

57.

빛이여, 나의 빛, 세상을 채우는 빛, 눈에 입 맞추는 빛, 마음을 부드럽게 해 주는 빛이여!

아, 빛은 춤춥니다, 사랑하는 사람아, 나의 목숨 한가운데에. 빛은 뜯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아, 나의 사랑의 거문고 줄을. 하늘은 열려, 바람은 치닫고, 웃음이 대지를 스쳐 가는군요.

빛의 바다 위에 나비는 그의 돛을 펼치고, 백합과 소형은 빛의 물마루를 타고 넘실거립니다.

빛은 구름마다 황금으로 부서져서, 사랑하는 사람아, 무수한 보석을 흩뿌립니다.

즐거움은 퍼져서 잎에서 잎으로, 사랑하는 사람아, 그리고 기쁨엔 한이 없습니다. 하늘의 강물이 둑을 적시더니 환희의 홍수로 넘치는 것입니다.

 

 

58.

온갖 기쁨의 곡조로 하여금 내 마지막 노래 속으로 섞여 들게 하소서.

- 풀밭의 분방한 퍼짐에로 대지를 넘쳐흐르게 하는 기쁨,

목숨과 죽음이란 쌍둥이로 하여금 광막한 세계 위를 춤추게 하는 기쁨,

모든 생명을 웃음으로 일깨우고 뒤흔들면서, 폭풍우로 휩쓸어오는 기쁨,

활짝 피어난, 아픔의 연꽃 위에 눈물을 흘리며 조용히 앉는 기쁨,

그리고 티끌 위에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내던지고도, 한 마디 말도 모르는 기쁨.

 

 

59.

예, 나는 이것이 바로 님의 사랑임을 압니다, 오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여,

나뭇잎 우에 춤추는 이 금빛 햇살과 하늘을 떠다니는 게으른 구름들과, 나의 이마 위에 그 서느러움을 남겨두고 지나는 실바람이.

아침 햇살은 내 두 눈에 넘쳐흘렀어요. - 이것은 나의 마음에 보내는 님의 전갈이죠. 님의 얼굴은 위로부터 수그러지고, 님의 두 눈은 내 두 눈을 내려다보시니, 나의 마음이 님의 발에 닿았어요.

 

 

60.

끝없는 세계의 바닷가에 아이들이 모여든다. 무한한 하늘은 머리 위에서 꼼짝도 않고 쉴 줄 모르는 물결은 시끄럽다. 끝없는 세계의 바닷가에 아이들이 소리치며 춤추며 모여든다.

그들은 모래로 집을 짓고 빈 조개를 가지고 논다. 가랑잎으로 그들은 배를 엮곤 방긋 웃으며 허허망망한 바다에 띄운다. 아이들이 세계의 바닷가에서 놀고 있다.

그들은 헤엄을 칠 줄 모른다. 그들은 그물을 던질 줄 모른다. 진주 캐는 이는 진주를 캐러 물 속에 뛰어들고, 상인은 그들의 배를 타고 항해하나, 아이들은 조약돌을 모아서는 또다시 흩뜨린다. 그들은 숨은 보물을 안 찾는다. 그들은 그물을 던질 줄 모른다.

 

바다는 웃으며 일렁이고, 그리고 창백하게 바다 기슭의 미소는 반짝인다. 죽음을 거래하는 물결은 아이들에게 의미 없는 노래를 불러준다, 마치 애기의 요람을 흔들 때의 어머니처럼. 바다는 아이들과 더불어 논다. 그리고 창백하게 바다 기슭의 미소는 반짝인다.

끝없는 세계의 바닷가에 아이들이 모여든다. 폭풍우는 길 없는 하늘을 헤매고, 배는 길 없는 바다에 난파하여, 죽음이 넘치는데 아이들은 장난한다. 끝없는 세계의 바닷가에 아이들의 크나큰 모임이 있다.

 

 

61.

애기의 눈에 오락가락 하는 잠 - 그것이 어디서 오는 지를 누가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예, 이런 소문이 있습니다, 반딧불로 희미하게 켜진 숲 그늘 사이 요정의 마을에 잠은 그 보금자리를 가지고 있어, 거기엔 마법의 두 수줍은 봉오리가 달렸다고, 거기서 잠은 애기의 눈에 입 맞추러 온답니다.

 

잠잘 때에 애기의 입술에 떠도는 미소 - 그것이 어디서 생겼는지를 누가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예, 이런 소문이 있습니다, 초생달의 어린 창백한 빛이 사라져 가는 가을 구름의 언저리에 닿았더니, 거기서 미소가 이슬에 씻긴 아침의 꿈속에 처음으로 생겼대요, - 잠잘 때의 애기의 입술에 떠도는 미소는.

 

애기의 팔다리에 꽃피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신선미 - 그것이 어디에 이렇게 오래 숨어 있었던가를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예, 어머니가 젊은 처녀였을 때, 그것은 부드럽고 말없는 사랑의 신비로서 그녀의 가슴에 가득 차 있었지요. - 애기의 팔다리에 꽃핀 달콤하고 부드러운 신선미는.

 

 

62.

내가 너에게 채색된 장난감을 가져다 줄 땐, 아가야, 나는 구름이나 물 위에 왜 그런 빛깔의 희롱이 있는가를, 왜 꽃은 빛깔로 칠해져 있는가를 깨닫는 것이다. - 내가아가야, 너에게 채색된 장난감을 줄 때엔.

 

내가 너를 춤추게 하려고 노래할 때엔, 나는 진실로 왜 나뭇잎엔 음악이 있는가를, 왜 물결은 혼성합창을 귀 기울이는 대지의 심장에 보내는가를 아는 것이다. - 내가 너를 춤추게 하려고 노래할 때엔.

 

내가 너의 탐내는 손에 달콤한 것을 가져다 줄 땐, 나는 왜 꽃의 잔 속에 꿀이 있는가를, 왜 과실은 달콤한 과즙으로 남몰래 차있는가를 아는 것이다. - 내가 너의 탐내는 손에 달콤한 것을 가져다 줄 땐.

 

내가 너를 방긋 웃기려고 너의 얼굴에 입 맞출 때엔, 아가야, 나는 아침의 빛을 타고 하늘에서 흘러내리는 즐거움이 어떠한 것인가를, 또한 여름의 실바람이 내 몸에 가져오는 기쁨이 어떠한 것인가를 확실히 깨닫는다. - 내가 너를 방긋 웃기려고 입 맞출 때엔.

 

 

63.

님은 내가 알지도 못했던 벗들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내 집도 아닌 집에서 님은 내게 자리를 베푸셨어요. 님은 먼 것을 가까이 가져오고, 낯선 이를 형제로 삼게 해 주셨어요.

내가 정들은 오두막에서 떠나야 할 땐 불안해집니다. 나는 새 것 속에 낡은 것이 깃들어 있고 또한 거기에 님도 머물러 계시다는 것을 잊은 것이지요.

 

탄생과 죽음을 통해, 이승이건 저승이건, 어디로 나를 인도하시든지, 항시 이 마음을 기쁨의 올가미로 미지의 것에 맺어지게 하는 이 내 끝없는 생명의 유일한 반려, 언제나 변함없는 님이신 것입니다.

님을 아는 한, 타자(他者)라곤 없습니다. 닫혀진 문도 없는 것이지요. 오, 나의 기도를 허락해 주시기를, 많은 것들의 활동 속에 있는 유일자와의 접촉의 축복을 내가 결코 잃어서는 안 된다는.

 

 

64.

무성한 풀섶 사이 쓸쓸한 강둑에서 나는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처녀여, 당신은 당신의 망토로 등불을 가리고 어디로 가십니까? 내 집은 캄캄하고 적적하니, - 당신의 등불 좀 빌려 주십시오!” 그녀는 잠시 검은 눈을 들고 황혼 속에서 내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햇빛이 서쪽으로 기울 때” 하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내 등불을 흐름 위에 띄우려고 강으로 나왔어요.” 나는 무성한 풀섶 사이에 혼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질없이 조류에 떠다니는 그녀의 등불의 머뭇거리는 불길을 보았지요.

 

깊어가는 밤의 고요 속에서 나는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처녀여, 당신의 등불은 모두 켜졌군요. - 그런데 당신은 등불을 가지고 어디로 가십니까? 내 집은 캄캄하고 적적하니, - 당신의 등불 좀 빌려 주십시오.”

그녀는 나의 얼굴을 향해 검은 눈을 들곤 잠시 의아한 듯 서 있었습니다.

“나는 저 하늘에, ”

드디어 그녀는 말했습니다, “내 등불을 비치려고 나왔어요.”

나는 서서 부질없이 허공 속에 타오르는 그녀의 등불을 지켜보았지요.

 

한밤중 달도 없는 어두움 속에서 나는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처녀여, 당신의 가슴 가까이에 등불을 들고 당신이 찾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 집은 캄캄하고 적적하니, - 당신의 등불 좀 빌려 주십시오.”

그녀는 잠시 멈추어서 생각을 하고는 어둠 속에서 내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내 등불을” 하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등불의 축제에 한 몫 끼우려고 가지고 나왔어요.”

나는 서서 뭇 등불 사이에 부질없이 사라진 그녀의 작은 등불을 보았지요.

 

 

65.

나의 생명의 이 넘쳐흐르는 잔에서, 신이여, 님은 무슨 거룩한 음료를 드시렵니까?

나의 시인이여, 나의 눈을 통해 님의 창조를 보시는 것이, 그리고 조용히 나의 귀의 입구에 서서 님 자신의 영원한 조화에 귀 기울이는 그것이 님의 기쁨입니까?

님의 세계는 나의 마음속에 말을 짜고 있고 님의 기쁨은 그것들에 음악을 보태고 있습니다. 님은 사랑으로 님 자신을 나에게 내주시고는 나의 안에서 님 자신의 온전한 감미함을 느끼시지요.

 

 

66.

그녀는 항시 내 존재의 심저에 남아 있었습니다. 어슴푸레한 황혼이 깃든 속에. 그녀는 새벽빛이 비쳐 와도 결코 베일을 벗은 적이 없었어요. 신이여, 나는 그녀를 나의 마지막 노래로 싸서, 님에게 드리는 최후의 선물로 삼으렵니다.

온갖 청혼의 말이 몰렸으나 그녀를 얻는 데엔 실패에 돌아갔고, 온갖 설복이 헛되이 그녀에게 그 열렬한 팔을 뻗었지요. 나는 그녀를 내 가슴 속 깊이에 간직한 채 나라에서 나라로 떠돌아 다녔어요, 그리하여 그녀의 둘레에서 내 생명의 성장과 조락이 번갈아 일었지요.

그녀는 나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나의 잠과 꿈을 다스렸지만 혼자 떨어져서 살았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 문을 두드리고 그녀를 찾다가는 절망하여 되돌아갔습니다.

일찍이 그녀의 얼굴을 마주본 사람이라고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었어요. 그리하여 그녀는 님의 인지(認知)만을 기다리면서 그녀의 고독 속에 남았던 것입니다.

 

 

67.

님은 하늘이며 또한 보금자리이기도 합니다.

오, 아름다우에 차 있는 님이여, 그 보금자리 속에 가지가지 빛깔과 소리와 향기로영혼을 감싸는 것은 님의 사랑입니다.

아침은 오른손에 미의 화환이 든 금빛 바구니를 가지고 와서, 조용히 대지의 머리 위에 씌웁니다.

그리고 저녁은 발자국 없는 오솔길 따라 목장에 옵니다만 거기엔 이미 양떼도 없습니다, 저녁은 잔잔한 서녘 대양에서 금빛 주전자로 평화의 청량수를 날라 온 것입니다.

그러나 저기, 영혼이 비상하는 무한한 하늘이 펼쳐진 곳엔, 흰 무구한 광채만이 충만해 있습니다. 거기엔 낮도 없고 밤도 없고, 형상도 빛깔도 없거니와, 결코, 결코 말이 없습니다.

 

 

68.

님의 햇빛이 두 팔을 펴고 나의 대지 위에 이르러서는 내 문가에 온 종일 서 있어요, 내 눈물과 한숨과 노래로 만들어진 구름들을 님의 발치에 가지고 가려고. 님은 기꺼이 안개 자욱한 구름과 망토를 님의 별 많은 가슴에 두르시곤, 그것을 수 없는 모양으로 바꾸시며, 주름을 내시지요, 그리고 끊임없이 바뀌는 빛깔로 그것을 채색하십니다.

그것은 너무도 가볍고, 너무도 덧없으며, 부드럽고, 슬프고, 어두운 것이어서, 그것이 님이 구름을 사랑하는 까닭이지요. 오, 무구하고 청정한 님이시여. 그리고 그것이 구름이 그 서글픈 그림자로 님의 엄숙한 새한얀 빛을 가리기도 하는 까닭인 것입니다.

 

 

69.

낮이나 밤이나 나의 혈관을 꿰뚫고 달리는 그 똑같은 생명의 흐름이 이 세계를 꿰뚫고 달리며 율동적 박자로 춤추고 있습니다.

똑같은 생명이 기꺼이 대지의 티끌을 꿰뚫고 무수한 풀잎으로 싹트거나 나뭇잎과 꽃들의 소란한 물결로 화하는 것이지요.

똑같은 생명이 탄생과 죽음의 대양의 요람 속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밀물 썰물 따라. 나는 나의 사지가 이 생명에 차 있는 세계의 촉수에 의하여 영광스럽게 만들어졌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여 나의 자랑이란 이 순간 나의 핏속에 춤추는 뭇 세대의 생명의 고동에서 연유하는 것입니다.

 

 

70.

이 율동의 기쁨과 더불어 즐거워하는 것이 그대의 힘 밖인가? 이 무서운 기쁨의 선풍 속에 내던져져서 자취를 잃고 깨지고 마는 것이.

모든 것은 돌진하고 있다, 멈추지 않는다, 그들은 뒤돌아보지도 않거니와 어떠한 힘도 그들을 제지하지 못한다, 그들은 돌진한다.

그 쉴 새 없는 빠른 음악에 걸음을 맞추어, 계절은 춤추면서 왔다간 가 버린다. - 빛깔과, 소리와, 그리고 향기는 시시각각으로 흩어졌다간 단념하고 죽어 가는 그 풍성한 기쁨 속에 끝없는 폭포로 쏟아진다.

 

 

71.

내가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어선 그것을 사방팔방으로 돌려, 님의 광휘에 빛깔진 그림자를 던져야 한다는 것 - 그것이 님의 <마아야>올시다.

님은 님 자신이ㅡ 존재 안에 울타리를 치시고는 무수한 곡조로 님의 분신을 부르십니다. 이 님의 자아분리가 내 안에 구현이 되었어요.

그 매서운 노래는 온 하늘을 통해 가지가지 빛깔 진 눈물과 미소와 놀라움과 희망으로 메아리치죠. 물결은 일었다간 다시 가라앉고, 꿈은 깨었다간 다시 이룩되고, 님 자신의 자아의 패배가 내 안에 있습니다.

이 님이 세우신 막(幕)에는 낮과 밤의 화필로써 무수한 형상이 그려지는 것입니다. 그 막 뒤엔 님의 자리가 모든 불모의 직선은 제쳐 놓고, 놀라운 신비의 곡선으로 짜지어 있습니다.

님과 나의 이 위대한 장관은 온 하늘에 퍼지어 갔습니다. 님과 나의 곡조로 온 대기는 진동하고, 그리하여 모든 세대를 통해 님과 내가 숨바꼭질을 합니다.

 

 

72.

깊고 신비로운 접촉으로 나의 존재를 일깨우는 건 가장 깊은 안에 계시는 그분.

이 두 눈에 영묘한 힘을 주고, 즐겁게 이 마음 하아프의 줄을 울려 기쁨과 아픔의 가지가지 곡조를 내는 건 그분.

금빛과 은빛, 쪽빛과 초록빛의 속절없는 색조로 <마아야>의 비단을 짜서, 그 옷주름 사이로 발을 슬쩍 엿보이게 하는 건 그분. 그 발을 닿으면 나는 실신한다.

날은 가고 세월은 흘러가도, 언제나 변함없이 가지가지 이름으로, 가지가지 변장으로 기쁨과 슬픔의 가지가지 황홀 속에 이 마음을 감동케 하는 것은 언제나 그분.

 

 

73.

나에게 있어 해탈이란 현실을 버려둔 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없이 많은 기쁨의 속박 속에 나는 자유의 포옹을 느낍니다.

님은 항시 나를 위하여 그 신선한 님의 여러 가지 빛깔과 향기의 술을 따르시니, 이 질그릇 잔을 가득히 채우십니다.

나의 세계는 님의 불길로써 그 수없는 가지가지 등불을 밝힐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님의 사원의 제단 앞에 놓을 것입니다.

아니, 나는 결코 내 뭇 감각의 문을 닫지는 않으렵니다. 보고 듣고 그리고 만지는 기쁨은 님의 기쁨을 전하게 되겠지요.

그렇습니다, 나의 모든 환상은 환희와 광휘에로 타들어 갈 것이며, 나의 모든 욕망은 사랑의 과실에로 익어 갈 것입니다.

 

 

74.

날은 저물고, 땅거미 대지에 끼었습니다. 지금은 냇가에 가서 내 물주전자를 채울 때올시다.

저녁 공기는 물의 슬픈 곡조를 엿듣고 있는데. 아, 그것이 나를 황혼 속으로 불러내는군요. 행인도 끊인 쓸쓸한 골목에는 바람이 일고, 내에는 잔물결이 뛰놀고 있습니다. 나는 내가 집으로 돌아가게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문득 누구를 만나게 될는지도 모를 일이죠. 저기 나루터의 작은 배 속에는 낯선 사람이 그의 거문고를 타고 있구먼요.

 

 

75.

님의 선물은 우리들 인간의 모든 필요를 충족시키고 줄어드는 일이 없이 님에게로 돌아간다.

냇물은 나날이 할 일이 있어 들과 촌락들을 가로질러 달려가나, 그 끊임없는 흐름은 님의 발을 씻고자 굽이쳐 돌아간다.

꽃은 향기로 대지를 달콤하게 만들지만, 그 최후의 봉사는 님에게 그 자신을 바치는 일이다.

님에의 예배는 세계를 가난하게 하지는 않는다.

시인의 말에서 사람들은 그들을 흡족케 하는 의미를 빼내지만, 그러나 그 말의 최후의 의미는 님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76.

날이면 날마다, 오, 이 내 생명의 주여, 나는 님 앞에 얼굴을 마주보며 서야 할까요?

합창을 하고, 오, 온갖 세계의 주여, 나는 님 앞에 얼굴을 마주보며 서야 할까요?

고독과 침묵 속에 잠겨 있는 님의 그 위대한 하늘 아래, 겸허한 마음으로 나는 님 앞에 얼굴을 마주보며 서야 할까요?

고역과 투쟁으로 소란한 이 님의 힘 드는 세상에서, 바쁜 군중 틈에 끼어 나는 님 앞에 얼굴을 마주보며 서야 할까요?

그리고 나의 일이 이 세상에서 끝나게 될 땐, 오, 왕 중의 왕이여, 혼자 말없이 나는 님 앞에 서야 할까요?

 

 

77.

나는 님을 나의 신으로 알고 떨어져 있습니다. - 님을 나 자신의 것이라고는 알지 못하고 가까이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나는 님을 내 아버지로 알고 님의 발 앞에 머리를 숙입니다. - 친구의 손인 양 님의 손을 잡지는 않습니다.

님이 내려오셔서 님 자신을 나의 것이라 고하시는 곳에 서서, 님을 내 가슴에 껴안고, 님을 내 벗으로서 받아들이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님은 나의 형제들 중의 형제인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자신의 형제들을 돌보지 않습니다. 그들과 더불어 나의 소득을 나누진 않고, 님과 더불어 나의 전부를 나누는 것입니다.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나는 사람들 편에는 안 서고, 님 곁에 선답니다. 나는 내 생명을 버릴 것을 주저하여, 크나큰 생명의 바다에는 투신하지 않습니다.

 

 

78.

만물의 창조가 아직 새로워 모든 별들이 그 처음의 휘황함으로 찬란하였을 때, 제신은 하늘에서 회합을 갖고 일하게 노래 불렀습니다. “오, 완전한 그림이어라! 순수한 희열이여!”

그러나 갑자기 한 신이 외치기를 - “어딘가 빛의 사슬이 끊어져서 별이 하나 잃어진 것 같군요.”

제신의 하아프의 금줄은 끊어지고, 노래는 그쳐, 그들은 낙심해 소리쳤습니다. - “그렇지요, 그 잃어진 별은 가장 좋은 것이었습니다. 온 하늘의 영광이었는데!”

그날부터 수색은 끊임이 없었어요, 그리하여 세계는 그 기쁨의 하나를 잃었다는 외침은 차례로 퍼져 갔습니다!

밤의 그지없이 고요한 때에만 별들은 미소하며 서로 중얼거리기를 - “이 수색은 헛된 것이어라! 깨이지 않은 완전이 도처에 가득 차 있거늘!”

 

 

79.

내가 이번 세상에서 님을 만날 운명이 못 된다면 내가 님을 뵙지 못해 아쉬워함을 항시 느끼게 하옵소서. - 나로 하여금 잠시도 잊지 않게, 꿈에서나 깨어서나 이 슬픔의 고통을 간직하게 하옵소서.

 

나의 나날이 이 세상의 혼잡한 저자 속에 지나가고 나의 두 손이 나날의 이득으로 가득 차지면, 나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음을 항시 느끼게 하옵소서. - 나로 하여금 잠시도 잊지 않게, 꿈에서나 깨어서나 이 슬픔의 고통을 간직하게 하옵소서.

 

내가 기진하여 헐떡이면서, 길가에 앉을 때엔, 내가 풀이 죽어서 티끌 속에다 자리를 펼 때엔, 내 앞에 갈 길은 아직도 멀었음을 항시 느끼게 하옵소서. - 나로 하여금 잠시도 잊지 않게, 꿈에서나 깨어서나 이 슬픔의 고통을 간직하게 하옵소서.

 

나의 방들이 치장이 되고, 피리 소리 나고, 웃음이 요란할 땐, 나는 님을 내 집에 초대하지 않았음을 항시 깨닫게 하옵소서. - 나로 하여금 잠시도 잊지 않게, 꿈에서나 깨어서나 이 슬픔의 고통을 간직하게 하옵소서.

 

 

80.

나는 부질없이 하늘을 떠도는 가을의 조각구름과 같습니다. 오, 항시 휘황한 태양이여! 님의 촉수는 아직도 나의 증기를 녹여서 님이 빛과 하나이게 안 했고, 그리하여 나는 님에게서 분리된 세월을 헤아리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것이 님의 소원이며 놀이일진대, 나의 덧없는 허망을 붙잡아, 채색을 하고, 금박을 입혀, 그것을 변덕스런 바람에 떠돌게 그리고 그것을 가지가지 경이로 퍼지게 하옵소서.

그리고 또다시 이 놀이를 밤에 끝내는 게 님의 소원일 땐, 나는 녹아서 어둠 속으로 사라질 것입니다. 혹은 흰 새벽의 미소 속이나, 투명하고 청정한 서느러움 속으로 사라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81.

헛되이 보낸 많은 날을 두고 나는 잃어진 시간을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여, 그것은 결코 잃어진 게 아닙니다. 님은 내 생명의 모든 순간을 친히 님이 손으로 잡으셨죠.

사물의 핵심 속에 숨으셔서, 님의 씨앗을 길러 싹트게, 봉오리를 꽃으로 피우시고,그리고 꽃은 열매로 무르익게 하십니다.

나는 피곤하여 게으른 침대에 잠들면서 생각했습니다. 모든 일은 끝나 버렸다고. 아침에 일어나자 나는 내 정원이 꽃의 기적으로 차 있는 걸 보았어요.

 

 

82.

주여, 님의 손 안에 시간은 무한한 것입니다. 님의 분초를 헤아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낮과 밤이 지나가고 세대는 꽃처럼 피었다간 시듭니다. 님은 기다릴 줄을 알고 계십니다.

님은 몇백년의 시간을 들여 한 송이 작은 들꽃을 피우십니다.

 

우리에겐 시간의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서로 기회를 빼앗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궁색하여 지체할 수 없습니다. 시간을 요구하여 투덜거리는 모든 사람에게 내가 그것을 내주는 동안 시간이 가버리죠. 그리하여 님의 제단에는 끝내 제물이 놓이지 않고 빈 채입니다.

하루가 다할 때엔 나는 님의 문이 닫힐까 보아 서두릅니다만, 그러나 시간은 아직도 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83.

어머니, 나는 내 슬픔의 눈물로 당신의 목에 걸 진주 목걸이를 엮겠습니다.

별들은 당신의 발을 치장하기 위해 빛의 발목 장식을 만들었죠. 그러나 내 것은 당신의 가슴에 걸릴 것입니다.

부귀와 명예는 당신에게서 나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베풀거나 베풀지 않는 것은 당신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이 슬픔은 온전히 내 것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내가 그것을 제물로서 당신에게 가져갈 땐 당신은 당신의 자비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84.

세계의 구석구석 퍼지어서, 무한한 하늘에 무수한 형상을 낳는 것은 바로 격리의 고통인 것입니다.

한밤 내 침묵 속에 별에서 별을 응시한다든가 비 내리는 칠월의 어둠 속에 살랑거리는 나뭇잎 사이에서 서정적으로 됨은 바로 이 격리의 슬픔인 것입니다.

인간의 가정에서 사랑과 욕망으로 깊어지고, 또는 괴로움과 기쁨으로 깊어지는 것은 이 넘쳐 퍼지는 아픔인 것입니다. 그리고 시인으로서의 나의 마음속에서 항시 노래로 녹아 흐르는 것은 바로 이 아픔인 것입니다.

 

 

85.

무사들이 그들의 주인 집에서 처음 나왔을 때, 그들은 어디에 그들의 힘을 숨겼을까요? 갑옷과 무기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그들은 초라하고 무력해 보였고, 그들이 주인 집에서 나왔던 날 그들 위엔 화살이 빗발치듯 쏟아졌죠.

 

무사들이 다시 주인 집으로 되돌아갔을 때 그들은 어디에 그들의 힘을 숨겼을까요?

그들은 칼을 떨어뜨렸고 활과 화살을 떨어뜨렸습니다. 그들의 이마엔 평화가 깃들었고, 생명의 열매를 남겨두고 갔습니다. 그들이 다시 주인 집으로 되돌아갔던 날.

 

 

86.

님의 하인인, 죽임이 나의 문가에 있습니다. 그는 미지의 바다를 지나 내 집에 님이 부름심을 전해 온 것입니다. 밤은 어둡고 나의 마음은 떨고 있습니다-마는 나는 등불을 들고 문을 열겠어요. 그리고 그에게 환영의 인사를 드리렵니다.

 

내 문가에 서 있는 분은 님의 사자입니다.

나는 합장하고 눈물을 흘리며, 그를 예배하렵니다.

나는 그의 발 가에 내 마음의 보배를 갖다 놓고 예배하렵니다.

아침에 어두운 그림자를 남겨 두고, 소임을 다한 그는 돌아갈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의 쓸쓸한 집엔 오직 나의 버림받은 자아만이 님에게 바치는 내 마지막 제물로서 남게 될 것입니다.

 

 

87.

거의 절망적인 희망을 품고 나는 내 방의 구석구석 그녀를 찾지만, 찾아내지 못합니다. 내 집은 작은데다 한번 잃어버린 것은 되찾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여, 님의 저택은 한량이 없으니, 그녀를 찾다가 님의 문가에 와버렸군요.

 

나는 님의 저녁 하늘의 황금빛 천개 아래 서있습니다. 그리고 님의 얼굴을 찾아 안타깝게 우러르고 있습니다. 나는 영원의 가장자리에 이르른 것입니다. 거기서는 아무것도 사라질 수가 없죠. - 희망도, 행복도, 눈물을 통해 본 환상의 얼굴도.

 

오, 나의 공허한 생명을 저 대양 속에 담그시어, 가장 깊숙한 충족 속에 빠지게 하옵소서. 나로 하여금 이 우주의 총체 속에서 그 잃어버린 감미한 감촉을 한번만이라도 느끼게 하옵소서.

 

 

88.

황폐한 사원의 신이여! 칠현금의 끊어진 줄은 이젠 더 당신을 찬미하지 않습니다. 저녁 종은 당신을 위한 예배의 시간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당신 둘레의 대기는 조용하고 고요합니다.

 

당신의 쓸쓸한 거처에 정처 없이 떠도는 봄의 미풍이 불고 있습니다. 그것은 꽃소식을 가지고 옵니다만 - 그 꽃을 당신에의 예배를 위해 바치는 자는 이제 없습니다.

당신의 예부터의 봉사자는 거절을 당하고도 여전히 은혜를 갈망하고 떠돌고 있지만, 저녁이 되어 불과 그림자가 지상의 어둠과 뒤섞일 즈음엔 그는 마음에 기갈을 지닌 채 지치어서 황폐한 사원에로 되돌아옵니다.

 

많은 축제의 날이 소리도 없이 당신에게 다가옵니다. 황폐한 사원의 신이여. 많은 예배의 밤이 등불도 안 밝히고 가 버립니다. 많은 새로운 조상들이 교묘한 솜씨의 대가들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때가 오면 신성한 망각의 흐름에로 휩쓸리고 맙니다.

오직 황폐한 사원의 신만이 영원한 무시 속에 예배도 못 받고 남아있는 것입니다.

 

 

89.

이젠 더 시끄럽고 요란한 소리를 내지 말라. - 그것이 내 주인이 뜻입니다. 나는 이제부턴 나직한 목소리로 거래하렵니다. 내 마음의 발언은 노래하는 듯한 속삭임으로 전해질 것입니다.

사람들은 왕의 시장으로 서둘러 갑니다. 사는 이도 파는 이도 모두 거기 모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일이 쌓여 있는 한낮에 때 아닌 휴식을 취합니다. 그러니 내 뜰에 때 아닌 꽃들이 피어나게 하십시오. 그리고 한낮의 벌들로 하여금 그 게으른 윙윙거림을 내게 하십시오.

 

많은 시간을 나는 선과 악의 싸움으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공허한 날들의 내 놀이 친구와의 쾌락이 나의 마음을 당깁니다. 그런데 나는 이 쓰잘 데 없는 모순된 것에의 갑작스런 부르심의 이유를 모릅니다!

 

 

90.

죽음이 당신의 문을 두드릴 때, 당신은 무엇을 바치렵니까?

오, 나는 손님 앞에 내 생명이 가득 찬 그릇을 올리겠어요. - 나는 결코 빈손으로 그를 돌아가게 하지는 않으렵니다.

나의 모든 가을날 여름밤의 모든 달콤한 포도의 수확을, 내 바쁜 생애의 모든 소득과 주워 모은 이삭들을 나는 그 앞에 내놓겠어요, 나의 날은 끝나 죽음이 내 문을 두드릴 때엔.

 

 

91.

오, 생의 마지막 성취인 당신, 죽음이여, 나의 죽음이여, 오셔서 나에게 속삭이십시오!

날마다 나는 당신이 오시는가 지켜보고 있었어요.

당신을 기다려 생의 기쁨과 고통을 나는 견디어 왔습니다.

나의 온 존재, 내가 가진 모든 것, 나의 희망과 사랑의 전부는 언제나 당신을 향해 은밀히 흘렀지요. 당신의 마지막 눈짓 하나로 나의 생은 영원히 당신 것이 될 겁니다.

꽃들은 엮어졌고 신랑을 위해 화환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혼례가 끝나면 신부는 자기의 집을 떠나서 밤의 고적 속에 홀로 그녀의 낭군을 만날 것입니다.

 

 

92.

이 대지를 보는 나의 시력이 상실될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압니다, 그리하여 생은 이 두 눈 위에 그 마지막 휘장을 치면서, 말없이 하직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밤이면 별들이 지킬 게고, 새벽은 여전히 트일 테지요, 그리고 시간은 바다의 물결처럼 일렁이며 즐거움과 고통을 가져 올 것입니다.

 

내가 나의 이 임종을 생각하면, 시간의 장벽은 무너지고 나는 죽음의 불빛으로 하여 그 무심한 보물로 차 있는 님의 세계를 엿보게 됩니다. 거기서는 비천한 자리도 없거니와 생의 비굴함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내가 헛되이 열망했던 것들과 얻은 것들을 - 버리게 하십시오. 내가 일찍이 물리쳤던 것, 못 보고 넘어갔던 것들만을 갖게 하십시오.

 

 

93.

나는 작별하게 되었습니다. 형제들이여, 내게 잘 가라는 말을 하십시요! 나는 당신들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는 떠나갈 것입니다.

여기 내 문의 열쇠를 돌려 드립니다. - 나는 내 집에 대한 일체의 권리를 포기합니다. 나는 다만 당신들한테서 최후의 친절한 말 듣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웃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줄 수 있었던 것보다도 더 많은 것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제 날은 밝았고 내 어두운 구석을 비추었던 등불은 꺼졌어요, 부르심이 왔습니다. 나는 길을 떠날 준비가 돼 있어요.

 

 

94.

내 떠날 시간이 되었으니, 친구들이여! 나를 축복해 다오.

동이 트느라고 하늘은 홍조를 띠웠거니와 나의 갈 길은 아름답게 놓여 있다.

 

그곳에 가기 위해 내가 무엇을 가지고 가느냐고 묻지 말라.

기대하는 마음과 빈손으로 나는 내 여정을 떠난다.

 

나는 내 혼례 때의 화환을 걸치리라.

나의 차림은 나그네의 붉은 갈색 옷이 아니다. 비록 도중에 위험이 있더라도 나는 마음에 두려울 것이 없다.

 

나의 여정이 끝나는 때엔 저녁별이 솟아날 것이다.

그리고 왕의 대문으로부터 황혼의 선율의 구슬픈 가락이 울려 올 것이다.

 

 

95.

내가 처음 이 생명의 문지방을 건넜을 때의 순간을 나는 알지 못했지요.

한밤 중 숲 속의 꽃봉오리와도 같이 나를 이 광대한 신비의 품속에 피어나게 한 것은 무슨 힘이었겠습니까?

아침에 내가 빛을 우러렀을 때 나는 그 순간 내가 이 세상의 낯선 사람이 아님을 느꼈던 것입니다. 이름도 형태도 없는 불가해한 것이 나의 어머니 모습이 되어 나를 그 두 팔로 안았던 것이지요.

꼭 그처럼, 죽음에 있어서도 그 똑같은 미지의 것이 일찍이 내게 그랬었던 것처럼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 생명을 사랑하는 까닭에, 죽음도 또한 사랑하게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그 오른편 젖에서 애기를 뗄 때 애기는 웁니다만, 바로 그 다음 순간에는 왼편 젖에서 그 위안을 찾아내게 마련이죠.

 

 

96.

이곳에서 내가 물러갈 때엔 이것을 내 작별의 말로 삼게 하십시오,

내가 본 것은 더없이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빛의 대양에 펼쳐져 있는 이 연꽃의 숨겨진 꿀을 맛보았지요, 그리하여 이렇듯 축복되었다는

- 이것을 내 작별의 말로 삼게 하십시오.

 

이 무량의 형태를 갖춘 극장에서 나는 나의 연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나는 형상 없는 그분을 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닿을 길 없는 그분에 닿아 나의 온 몸뚱이와 손발이 떨렸지요. 그러니 이곳에 종말이 오려거든, 와도 좋다는 - 이것을 내 작별의 말로 삼게 하십시오.

 

 

97.

내가 님과 놀았을 무렵 나는 님이 누구인가를 묻은 적이 없었어요. 나는 부끄러움도 두려움도 몰랐고, 나의 생활은 떠들썩했습니다.

이른 아침이면 님은 나의 친구처럼 나를 잠에서 불러 깨우는 것이었고, 나를 데리고 숲 사이 빈 터에서 빈 터에로 달렸던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님이 내게 불러 주신 노래의 뜻을 나는 도무지 알려고도 안 했어요. 그저 나의 목소리만이 그 곡조를 취했을 뿐이며, 그 음률 따라 나의 가슴은 춤추었지요.

그런데 지금 그 놀이 시간이 끝나자, 나에게 닥쳐온 이 느닷없는 광경은 무엇입니까? 뭇 그윽한 별들과 더불어 세계는 경건히 님의 발치에 시선을 돌린 채 미동도 않고 서있는 것입니다.

 

 

98.

나는 내 패배의 뭇 기념품과 화환으로써 님을 장식하렵니다. 정복을 안 당하고 달아난다는 것은 도저히 나로선 불가능한 일입니다.

나의 자만심은 벽에 부딪치게 되리란 것을 나는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나의 생명은 심한 고통에 견디다 못해 터지고 말 것이며, 내 빈 가슴은 속 빈 갈대처럼 음악을 이루며 흐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돌은 녹아서 눈물로 변하게 되겠지요.

한 연꽃의 일백 꽃잎이 언제까지나 닫힌 채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 비밀의 꿀집도 드러나고 말 것임을 나는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창공에서 한 눈이 나를 주시할 것이며, 말없이 나를 소환할 것입니다. 내게는 아무것도 남겨지지 않겠지요, 정말 아무것도. 그리하여 나는 님의 발치에서 온전한 죽음을 받게 될 것입니다.

 

 

99.

내가 키에서 손을 뗄 때엔 님이 그것을 잡으실 때가 온 것으로 압니다. 해야 할 일은 즉시 행해지게 되겠지요. 이 다툼은 헛된 것입니다.

그러니 가슴아, 너의 손을 떼고 말없이 너의 패배를 견디어라. 그리고 네가 놓여진 곳에 온전히 조용하게 앉아 있는 것을 행운으로 생각하라.

나의 이 등불들은 한 가닥 작은 바람결에도 꺼지고 맙니다. 그리하여 그것들에 불 켜려고 애쓰다가 그 밖의 다른 일은 모두 언제나 잊고 만답니다.

그러나 이번에 쓸 데 없는 짓은 안하렵니다. 내 돗자리를 마루에 펴고 어둠 속에서 기다려야겠습니다. 주여, 언제이건 마음이 내키실 때, 묵묵히 오셔서 여기 앉아 주십시오.

 

 

100.

형태 없는 완전한 진주를 얻고자 나는 형태 있는 바닷속으로 뛰어듭니다.

나의 풍파에 시달린 배로 항구에서 항구로 이젠 더 항해하지 말 일입니다. 물결에 흔들려서 놀던 때는 이미 지난 지 오래지요.

그리하여 지금은 죽어서 영생에 도달하고자 열망하고 있습니다.

소리 없는 현의 음악이 드높이 연주되는 그곳 깊이 모를 심연가의 회당 안으로 나는 내 생의 하아프를 가져갈 것입니다.

나는 그 하아프를 영원의 가락에 맞추렵니다. 그리하여 그것이 그 마지막 소리를 흐느껴 끝낼 즈음엔 말없는 님의 발치에다 내 소리없는 하아프를 내려놓으렵니다.

 

 

101.

나는 한평생 나의 노래로 님을 찾아 왔습니다. 문에서 문에로 나를 인도한 건 노래였습니다. 그리고 노래로써 나의 세계를 찾고 더듬으며 자신을 확신해 왔던 것입니다.

내가 일찍이 배운 모든 교훈을 가르쳐 준 것은 나의 노래였습니다. 노래는 나에게 비밀의 오솔길을 보여주었고, 내 마음의 지평선 위에 수많은 별을 보여 주었습니다.

나의 노래는 온종일 걸려 나를 즐거음과 고통의 나라의 신비에로 인도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나의 여정의 끝판에 이르른 이 저녁엔 어떤 대궐의 문에로 나를 데려 온 것입니까?

 

 

102.

나는 내가 당신을 알았다는 것을 사람들 사이에서 자랑했습니다.

그들은 나의 모든 작품 속에 당신의 초상을 보는 것입니다.

그들은 와서 나에게 묻기를, “그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모릅니다.

나는 말하지요, “정말, 나는 말할 수가 없구료.”

그들은 나를 나무라고는 경멸하며 가 버립니다. 그런데 당신은 거기 미소를 띠우시면서 앉아 계시지요.

 

나는 당신에 관한 나의 이야기를 뭇 영속하는 노래 속으로 불어 넣었습니다.

나의 가슴에선 비밀이 용솟음쳐 흘러나오지요.

그들은 와서 나에게 묻기를, “당신의 뜻한 바를 전부 말해보라.” 나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모릅니다.

나는 말하지요, “아, 누가 그것들을 의미하는 바를 알겠습니까?”

그들은 비웃고는 몹시 경멸하며 가 버립니다. 그런데 당신은 거기 미소를 띠시면서 앉아 계시지요.

 

 

103.

오직 일심으로 님에게 귀명하옵나니,

신이여, 나의 온 감각을 펴서 님의 발 가에 이 세계를 감촉케 하옵소서.

 

칠월의 비구름이 아직 쏟지 않은 소나기를 품고 있어 낮게 드리워 있는 것처럼,

오직 일심으로 님에 귀명하옵나니, 나의 온 마음을 님의 문가에 수그리게 하옵소서.

 

오직 일심으로 님에 귀명하옵나니, 나의 모든 노래로 하여금 갖가지 다른 곡조를 하나의 흐름 속으로 모으게 하여 침묵의 바다에로 흐르게 하옵소서.

 

오직 일심으로 님에 귀명하옵나니, 낮이나 밤이나 고향이 그리워 산속의 옛 둥지에로 날아 돌아가는 학의 떼처럼 나의 온 생명으로 하여금 그 영원한 안식처에의 향로를 취하게 하옵소서.

 

 

..

 

 

 

 

 

기탄잘리 저자: 타고르(Rabindranath Tagore, 1861-1941)

 

어느 가을날, 노을진 하늘을 바라보며 음미하고 싶은 한 권의 시집으로, 동양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 타고르의 노벨문학상 수상작. 인도의 시성으로 일컬어지는 타고르가 1909년에 벵골 어로 출판한 기탄잘리(한 묶음의 노래) 는 제목 없이 번호만 붙인 103편의 종교적인 서정시 모음이다. 시인 자신이 영역하고, 예이츠가 서문을 썼다. 출간과 동시에 선풍을 일으켜 1913년에 노벨상을 받게 되었고, 김억의 번역본(1923)으로 우리 나라에도 소개되었다. 영혼의 영원한 자유는 사랑 속에, 위대함은 작은 것 속에, 무한은 형태의 구속 속에 있음을 노래한다.

 

생애와 작품활동

 

인도의 시인. 사상가. 교육가. 음악가. 화가. 사회운동가 등 실로 다방면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20세기의 기적적 인물이다.

 

인도 벵골의 천 년을 헤아리는 오랜 바라문 계급의 명문 타고르가의 14번째 아들로 캘커타에서 태어났다. 대대로 그의 가계에선 많은 철학자나 예술가들이 배출되었는데, 특히 그의 부친 데벤드라나트는 평생을 종교개혁에 바쳐, 근대 인도의 정신적 부흥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부친을 따라서 히말라야 산맥 또는 아름다운 명승지를 다니면서 자연에의 신비를 엿볼 수 있었던 그는 이러한 정신적. 예술적. 학문적 분위기, 아름다운 인도의 자연 속에서 성장했다. 11세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그는 15세 때 형들과 함께 잡지를 편집, 17세 때 런던에 유학, 법률을 전공했으나, 1년도 못 채우고 귀국했다.

 

19세 때 첫 시집을 완성하였고, 1901년 부친이 명상의 장소로서 구도자에게 개방했던 볼푸르 숲 속의 샨티니케탄(평화의 집)을 물려받아, 청소년의 교육을 위한 학원을 설립, 오랜 전통에 기초하여 개성을 일깨우는 교육사업에 전념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타고르의 동서문화의 새로운 종합 을 이념으로 하는 비슈바바라티대학으로 발전, 인도 지성의 요람으로 수많은 지식인을 배출한 국립 종합대학이 되었다.

 

인간과 자연의 동화를 통한 전인교육의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 설립한 이 산타니케탄의 생활에서, 청소년들과 함께 공부하고 유희하면서 이 학원의 성장은 곧 나의 성장 이라고 그들의 인간완성을 위해 노력했다.

 

타고르로 하여금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게 한 시집 기탄잘리 와 생명의 실철 이란 유명한 철학서도 바로 이 샨티니케탄에서 이루어졌다. 1913년 기탄잘리 로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그의 예술적 재능은 연극. 음악에까지 발휘되어 인도의 국가도 그의 작품이며, 그 자신이 출연, 작곡하여 인도에 이른바 샨티니케 풍의 가무연극을 발달시켰다.

 

제1차대전시에는 매우 상심하였고, 대전이 끝남과 동시에 세계는 열광적으로 이 시성을 추앙하여, 그의 시와 사상 속에서 새로운 복음을 찾고자 하였다. 그는 여러 차례 일본을 방문하여 열광적인 환대를 받았다. 소련도 방문했지만 결코 유물론에 흔들리지 않았다.

 

제2차대전이 일어나자 간디와 손잡고 직접 반영운동을 하다가, 간디의 양해하에 그는 문화운동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두 사람은 서로 인도 근대사의 위대한 영혼으로 서로 존경을 아끼지 않았다. 간디의 교육정신은 타고르에게서 오고, 타고르의 평화이념은 간디의 철학과 공통된 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 사람은 정치적 현실운동의 지도자요, 한 사람은 문화적 정신운동의 영원한 영도자였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타고르는 1941년 80세를 이승의 고비로, 숭고한 이상이 무모한 전쟁과 유혈 속에서 무참히 무너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눈을 감았다.

 

주요작품으로는 기탄잘리 의 어린이판이라 할 수 있는 초승달 , 지상에 바치는 전원적인 사랑의 시라 할 수 있는 정원사 , 신에게 올리는 사랑의 기원을 담은 열매 모으기 , 희곡집인 우체국 등이 있다.

 

 

시대적 상황과 그의 작품세계

 

타고르가 생존했던 인도는 정치적으로 영국의 식민지하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인도인들은 창조력을 잃고 민족적 자유의 상실을 거의 자각하지 못하고, 문화적으로는 소수의 비타협자들을 제외하고는 서양의 모방자와, 과거의 전통과 교리에서만 위안을 찾고자 하는 보수파들이 득세하는 상태였다.

 

종교적으로는 힌두교가 오랜 인습에 얽매여 낡은 봉건의 탈을 못 벗고 있었고, 한편에서는 바라문 교 가 새롭게 등장하여, 오래된 인습을 깨뜨리고 새 시대를 열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사회적으로는 신분제가 여전히 존속하여, 국민들 사이의 동질감과 일체감이 형성되지 못한 상태였는데, 이 4성의 구별은 불교의 평등주의에도 불구하고 계속 심화되고 있었다.

 

이러한 암흑의 세계에 드디어 한 줄기 서광이 비추기 시작했다. 타고르의 탄생이 그것이다. 자신의 말을 빌면 자기의 삶 속에 세가지 흐름이 합류하였다고 한다.

 

첫째는 숭고한 지성인인 로이(Roy)에 의해 도입된 종교적인 흐름이다.

이는 매우 개혁적인 것으로, 과거의 인습과 구태의연한 형식에서 벗어나면서, 한편으로 과거의 가시덤불 속에서 이상의 싹을 찾으려는 르네상스적인 시도였다.

 

둘째는 벵골 문학의 개척운동이다.

그는 당시 문학이 창조력을 잃었다고 진단하고, 문학을 오랜 잠에서 깨워야 하며 문학이 새로운 힘과 운치로 넘칠 때, 그것은 아름다움의 비전을 제시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셋째는 국민운동이다.

이것은 정치적으로 영국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것으로, 그들 스스로의 사상과 전신의 힘으로 세계를 세우려는 광범위한 민족운동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하에서 그가 고민하고 열렬히 추구하고 염원한 것은 오직 인도의 자유와 민족의 해방, 동양의 발전, 나아가서 동서양의 융합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보낸 그의 작품생활은 대개 4시기로 나누어진다.

 

제1기

15세에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여 벵골의 셸리(Shelley)라고 일컬어진 시대다. 최초의 시집은 바누 신하 로, 익명으로 출간했으나 고전 스타일을 벗어나지 못했고, 저녁의 노래 아침의 노래 를 거쳐 초기 서정시의 절정을 이루는 장조와 단조 를 낸다.

 

제2기

부친에게서 영지인 셀리다 관리의 위임을 받아, 자연과 가난한 농민생활과 접촉하며, 사회악과 인습에 도전하는 한편, 갠지스 강 유역의 대자연의 품에 안겨 명상을 일삼았다. 이 시기를 사다나 시기라고 하는데, 여기서 내던 잡지인 <사다나>에서 유래했다. 이 시기에 희곡 제물 치트라 등이 나오는데 초기의 서정세계에서 벗어나, 인생의 현실과 사회고발, 신에 대한 관심이 엿보인다.

 

제3기

1901년부터 벵골 평론 을 내면서부터 시작된다. 1905년에 영국의 벵골 분리정책에 항의하여, 펜을 휘둘러 국민의 자각을 촉구한다.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고라 와 힌두교의 가정생활을 비판한 운명의 난파 , 시집 교차로 등이 있다. 그러나 그의 본령은 시인인지라, 간디와 함께 하던 정치활동을 중단하고 샨티니케탄으로 가서 숲속에서 고독한 명상을 하며 삶의 심층을 더듬는다.

편협한 국수주의를 지양하여 영혼을 보편의 세계로 유도하고, 삶의 다양 속에서 영원한 하나됨을 추구하는 경건한 종교시인으로서의 예술가의 길을 지향한다. 사랑과 평화의 국제주의적 이상에 입각한 교육가로서의 사업에 헌신한다.

 

제4기

1908년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두 아들 역시 계속해서 잃는다. 실의와 무상과 고독 속에서, 그는 기탄잘리 암실의 왕 우체국 등으로 대표되는 샨티니케타 시대 가 열린다. 1912년 2차 영국방문을 계기로 그는 동방의 시성 으로 세계에 알려지고, 다음해에 노벨상, 또 다음해에 영국왕실에서 작위를 받는다. 그러나 1919년 암리차르에서의 대학살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반납했다. 그후 샨티니케탄에 세운 작은 학교를 사랑과 평화의 국제적인 문화의 중심이 도는 대학으로 키우는 데 헌신한다.

 

 

기탄잘리 의 내용

 

벵골 인의 정서로 아름다운 영혼을 노래한 이 작품집은 1909년에 발표된 벵골 어판에는 157편이 수록되었고, 1912년 작자가 직접 영역한 영어판에는 103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 영역판에는 예이츠가 서문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에서는 1923년 김소월의 스승인 김억에 의해 읽으라, 그러나 씹어서 읽으라 라는 역자의 말과 함께 번역. 소개되어 만해 한용운 등에게 영향을 주었다.

 

기탄잘리 라는 제목은 평화의 노래 로 번역되었지만, 기트 는 노래 란 뜻이고, 안잘리 는 합장 의 뜻으로 인간과 신, 혹은 자연과의 합일의 경지를 노래하고 있다. 기탄잘리 는 수록된 시마다 제목 대신 번호가 붙어 있는 것이 독특하다. 한편으로서의 독립된 뜻도 있지만, 일종의 연작시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생과 사의 문제, 그리고 인간의 시에 대한 경건한 마음과 인간의 종교적인 면의 불가피성을 노래하고 있다. 위대한 사상은 죄악의 인간으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여기 수록된 시편들을 통해서 감지할 수 있다.

 

이 시는 애인을 그리는 사랑의 순정으로, 신을 사모하고 신을 존경하는 감동의 서정시요, 종교적인 기도시다. 또한 영국의 속박에서 시달리는 조국 인도의 참상과 영광을 노래한 애국시요, 민족적 정열의 시다. 또 생사고뇌의 천태만상을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 너무나도 가슴 아프게 표현한 서사적인 시요, 동시에 죽음에 임하는 마음의 자세와 그 뜻을 나름대로 풀이하는 종교적인 철학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신앙인은 자기 신앙의 뛰어난 표현을 여기서 본받을 수 잇고, 또 모든 문화 관계자는 시상의 극치를, 일반인은 생활의 목표와 행동의 지침 및 이념을 여기서 찾을 수 있으며, 전문연구가는 동양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시각을 얻을 수 있다.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기탄잘리에 서문을 썼고, 또 감히 옥스포드 앤솔러지에 식민지 시인의 시를 넣어 편집한 예이츠의 말처럼, 타고르의 문학은 누구나 읽지 않을 수 없는 마력을 지니고 있으며, 읽으면 읽을수록 그의 세계를 깊이 파헤치고 들어가, 우리 개인의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실로 인간존재의 핵심에서 우러나오는 음악이요, 이미지라 할 수 있다.

 

근대시인에게서 보기 드문 조화와 성숙에 이르는 길잡이로서, 그의 말 하나 움직임 하나가 모두 시요, 아름다움이요, 지혜다. 그의 시혼은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인도의 지혜의 정수에서 흘러나와, 유럽의 근대문명의 정신과 부딪쳐 일어나는 불꽃이며, 동양과 서양을 오묘하게 조화시킨 찬란한 꽃이라 할 수 있다.

 

최대의 자유와 무한한 개성, 나름의 철학, 또 온 세계와도 대결할 불굴의 용기와 저항의식의 호수에서 흘러나온 사상의 결정인 사리가 그의 시라 하겠다. 따라서 신비에 찬 바탕과 오묘한 음악과 뛰어난 철학에 넘치는 그의 시는 소박한 표현 속에서 가장 깊은 세계를 보이고 있다.

 

그가 사용한 언어에 접하면, 그의 천재적 활력은 눈부시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가 창조한 문학의 다양성과 아름다움, 박력은 실로 놀라운 감명의 샘이 된다. 몇 세기에 걸쳐도 제대로 이루지 못할 일을 그는 불과 한 생애에 이룩하여 국민에게 개화와 발전의 힘을 주었다.

 

그는 사상가 감정의 가장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언어를 창출하여 동서 어느 대학에서 가르쳐도 손색없는 문학을 생산하였다. 그가 과감하게 개척하여 결실을 가져오지 못할 분야는 없었다. 그는 벵골이라는 예술의 처녀지에 세계적인 문화의 생명을 불어넣은 도화선이 되었다. 그의 작품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무리 위대한 문학의 시금석에도 저항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