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 한 알의 세계 / 장석주
지난 8월 어느 날, 내 시가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글판에 올릴 작품으로 선정됐는데 동의하겠느냐는 전화를 받았다. ‘붉디붉은 호랑이’란 시집에 실린 ‘대추 한 알’이라는 시였다. 물론 기꺼이 동의했다.
그렇게 그 시의 첫 연이 9월1일부터 광화문 교보빌딩 글판에 붙었다.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본디는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였지만 제목이 따로 붙지 않기에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로 바뀌었다.
그 뒤로 이 시가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으며 인구에 회자되는 모습을 지켜봤다. 시가 품은 뜻이 단순하고 명쾌하기 때문일 터다. 글판에는 시인의 이름이 나오지 않은 탓에 인터넷에서 누구의 시인지를 검색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 시가 11월30일 글판에서 내려졌다. 감회가 없을 수 없어 몇 자 적는다.
시골집을 마련한 뒤 봄가을에는 나무를 심었다. 그 중의 하나가 대추나무다. 대추나무는 아직 가늘었지만 꽃을 피우고 젖꼭지만 한 열매를 매달았다. 풋대추들이 여름이 오기도 전에 비바람을 못 이기고 떨어진다. 떨어지고 남은 푸릇한 것들이 가지에서 붉고 단단하게 여물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애틋했다. 저녁 이내가 내린 푸른 울안에서 붉은 대추를 바라보는 가을 저녁들이 내 안으로 흘러왔다가 흘러갔다. 그 사이 개들은 새끼를 낳고 새끼들에게 제 젖을 물려 길렀다. 제 안에 생명을 기르고 다음 세대에게 그 생명을 전달하는 게 무릇 생명들의 유일하고도 숭고한 의무다. 매화가 피고 졌다. 감나무 가지마다 찢어질 듯 감들이 매달렸다. 그 감들은 서리를 맞으며 초겨울까지 가지에 남아 있었다. 더러는 산까치들이 몰려와 쪼아 먹고 더러는 덧없이 떨어졌다.
그 사이 아이들은 자라서 제각각 살 길을 찾아 멀리 떠나갔다. 내 삶은 살뜰하지 못했으나 아이들은 저마다 늠름하게 자랐다. 세 아이 중 두 아이가 외국에 나가 있다. 공자는 기린을 보고 울고, 항우는 명마 ‘오추’를 보고 울었다지만 아이들이 품에서 떠날 때도 울지 않았다. 이제 아이들과 멀리 떨어져 있으니 차마 보고 싶다는 말조차 하지 못한다. 누구나 향연을 꿈꾸지만 그 꿈은 아득하고 멀어서 그렇게 외로움의 장기 수배자가 되어 제 상처로 지은 집에 숨어 사는 것은 아닌가. 공자는 덕이 두터운 이는 외롭지 않다고 썼다. 나는 덕이 얇으므로 천지의 신령들과 소통하지 못한 채 외롭지 않은 날들이 없었다. 이때 외로움은 마음의 우생학에서 열성인자에 속하는 감정일 터다.
시골 사는 즐거움을 나무를 심고 기르는 것에서 찾으려 했다. 그것은 윤리적으로도 떳떳한 일에 속한다.
벽오동, 느티나무, 층층나무, 회화나무, 보리수, 두릅나무, 산벚나무, 반송, 금송, 단풍나무, 구상나무, 매화나무, 영산홍, 모란, 해당화, 배롱나무, 미선나무, 주목, 명자나무, 병꽃나무, 감나무, 앵두나무, 살구나무, 복숭아나무, 배나무들을 구해 마당과 텃밭 언덕에 심었다. 버드나무와 뽕나무는 내가 심지 않았는데 자라났다. 나무를 심으며 내 안에 아직도 일렁이며 삶을 갉아먹는 미움과 화, 불만과 억울함을 눅이고 잠재웠다. 나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용서하고, 아울러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이 나무들과 더불어 내 삶도 시골에 와서 식물적 만개(滿開)를 겪어냈다.
나무들은 저마다 운명이 있어서 다 잘 사는 것은 아니다. 오죽은 심었으나 추위를 견디지 못했는지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처음 심은 모란도 살지 못했다. 멀쩡하던 나무도 이듬해 시름시름 앓다가 죽기도 했다. 심는 나무가 열이면 죽은 나무가 서넛은 되었다. 나무와 사람 사이에도 에너지의 공명이 존재한다. 땅과 공기와 물과 식물들은 자연의 에너지를 품고 있으며, 사람은 그 자연 에너지 속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사는 존재다.
나는 나무에게 말을 걸고 나무가 내게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나무를 심고 기르며 그 나무에게서 인생을 배웠다. 나무들은 내게 여러 편의 시를 주었다. 흙을 파고 뿌리를 묻고 흙을 다진 뒤 물을 주어 살게 했으니 나무들도 그 수고에 보답을 한 것이다. 해마다 거르지 않고 열매를 맺는 대추나무를 곁에서 겪은 뒤 ‘대추 한 알’이라는 시는 어느 날 무심히 나왔다. ‘저게 저절로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그 시의 두 번째 연이다.
대추 한 알에는 세상의 어떤 책보다 더 심오한 철학이 들어 있다. 작고 하찮은 미물에 속하는 대추 한 알이 성숙해지는 데도 온갖 시련을 견디는 인고가 따른다.
대추 한 알의 둥글어짐에는 무서리와 땡볕과 초승달이 필요하다. 대추는 그 모든 비바람치는 세월을 품고 견딘 뒤에야 붉고 둥글어질 수 있다. 제가 선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수행자와 같이 이 시련들을 견디고 열매를 맺는 대추나무가 대견하다. 대추나무는 제 모든 것을 바쳐 열매를 얻는다. 그러니까 대추는 시련을 견딘 보람이자 결실인 것이다. 그게 대추나무가 따라야 할 단 하나의 소명이자 꿋꿋하게 세워야 할 도덕이다.
올해도 우리 집 대추나무에는 대추가 열렸다. 대추나무가 노동자라면 저 열매들은 그 노동의 수고에 대한 대가인 셈이다. 대추 한 알은 대추나무가 제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생명의 노래, 우주의 약동, 관능과 번영의 후렴구, 식물들의 정수(精髓)다. 사람들은 이 시를 읽고 고진감래(苦盡甘來)에 대해 얘기했다. 우리 삶에도 쓰디씀이 다하면 달콤함이 오지 않던가. 그러니 ‘아낌없이 바쳐라, 그리하면 그게 그대에게 되돌아오리라.’(데이비드 H 로런스, ‘우리는 전달자’) 대추 한 알이 그렇듯 우리에게도 삶이란 아낌없이 바쳐서 얻는 그 무엇이다. 그렇다면 모란 움 돋듯, 가을 매 하늘에 날듯 더욱 청신하게 살아보아야 하리.
2009.12.
사랑을 위한 여름 사냥 / 한승원.소설가
내 집 울안의 풀들은 비가 자주 내리는 여름철 들면서부터 그야말로 미친 듯이 자라곤 한다. 잔뜩 벼르고 있던 나는, 장마가 잠시 멈칫하자 그 풀을 깎기로 작정한다.
며칠 동안 계속해서, 아침이면 한 시간씩 예초기로 살림집과 토굴 마당의 풀을 깎는다. 연못 주변과 토굴 뒤란 언덕 위의 죽로차밭 고랑의 풀까지도. 여름철 들어 세 번째로 깎는 풀이다.
선비는 무장을 단단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팔다리와 얼굴과 목에 독풀이 스치지 않게 해야 하고, 벌레들에게 물리지 않아야 한다. 긴 바지에 장화를 신고 긴 팔 웃옷을 입고 장갑을 끼고 보안경을 끼고, 예초기를 짊어지고 나선다.
풋늙은이에게 예초기 운전은 쉬운 일이 아니다. 팔뚝과 손목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 30분쯤만 풀을 깎기로 작정하고 하는 일인데, 하다 보면 한 시간이 넘게 하기도 한다. 온몸이 땀에 젖고, 이마에서 흐르는 땀방울이 눈으로 스며들 때까지 한다. 나에게는 일 욕심이란 것이 있다. 이 부분만 깎고 나서 내일 하자, 아니 저 부분까지만 깎고 그만하자, 하면서 계속 하다가 지치기 마련이다.
일을 마치고는 여느 때 해오듯이, 욕실에 가서 멱을 감고 머리를 말리고 새 옷을 갈아입고 아침밥을 먹는다.
여기저기 풀을 다 깎은 지 이틀째 되는 날, 점심을 먹는데 오른쪽 팔뚝의 안쪽이 가려운 듯싶었다. 가려운 곳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흰 살갗에 검정 깨알만한 사마귀 같은 것이 생겨 있었다. 이게 언제 생겼을까, 하고 손톱으로 긁어보니, 뜻밖에 그 까만 딱지가 떨어져 나갔다. 그게 꼼지락거리더니 천천히 기어갔다. 진드기였다.
‘히야! 이 무엄한 놈 봐라!’
그놈을 당장 손톱으로 이겨 죽였다. 내가 당장에 잔인하게 압살시켜 버린 것은 그놈에게 당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두해 전, 그놈의 동족 한 놈이 오른발 엄지발가락과 검지발가락 사이에 기생한 일이 있었다. 그때도 그놈은 내가 풀을 깎는 틈에 내 몸으로 기어든 것이었다.
그놈은 내 피를 쉽게 빨아먹기 위해 소화 효소를 내 살 속에 주입해 놓았으므로, 그놈의 입이 닿았던 부분은 썩어들어갔다. 두달 석달 병원 치료를 받아도 낫지 않았다. 빨갛게 부어 있는 듯싶다가, 터져서 진물이 나왔다. 주사를 맞고 약을 발라도, 나은 듯하다가는 다시 도지고, 또 다시 도지곤 하기를 거의 반년 동안이나 거듭했다.
나는 내 살의 일부가 그놈의 밥이 됐다는 생각, 앞으로 고통에 시달려야 한다는 생각에 분노했다.
그놈이 기생했던 팔뚝에는 팥알만한 빨간 종기가 생겨났다. 그곳이 계속 가렵다. 어떤 때는 진물이 흐르기도 한다. 앞으로 반년쯤은 시달려야 할 터이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어차피 정글 속에서의 살아 배기기 싸움이다. 무더위와 습기와 찬바람과 뜨거운 햇빛이 공격한다. 내 몸은 거기에 적응하려고 애를 쓴다. 무좀 따위의 미생물들이 기생하려 들고, 내 살갗은 기를 쓰고 방어를 한다. 감기 바이러스가 침입해 앓게 되고, 침구에는 보이지 않은 벌레들이 생겨 맨살을 쏜다. 개미와 모기와 지네들도 공격한다. 박테리아들은 내 음식물을 상하게 하고, 그것을 먹으면 배탈이 난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나는 늘 물을 끓여 마셔야 한다.
얼마 동안 글을 쓰느라고 신경을 쓰지 않고 있으면 잡풀이 내 정원을 덮으려고 든다. 대나무 뿌리들이 마당으로 뻗어 나오고 죽순들이 원시인의 창처럼 웅긋쭝긋 솟아오른다.
세상이라는 정글 속에서 건강하게 살아 나가려면, 하루 한 차례씩은 반드시 땀을 흘리고 온몸에 물을 끼얹어 나의 몸을 건강하게 양생해야 한다.
무더위 속에서 나를 양생하는 즐거움을 나는 안다. 풀을 깎으면서 땀을 흘리거나, 오후 해질 녘에 운동을 하고 나서 샤워하는 맛은 여름을 사는 즐거움이다. 땀 흘리고 샤워를 한 다음에 빠져드는 혼곤한 낮잠의 맛도 꿀맛이다.
나에게 피서는 없다. 내 토굴 속에서 여름을 맞이하고 보낸다. 나는 피서지로의 여름 여행을 하지 않는다. 여름은 불장난을 일삼는 도깨비 같은 괴물일 수도 있고, 열정적으로 벗어던진 요녀일 수도 있고, 요조숙녀처럼 모시 치마저고리 입은 마녀일 수도 있다. 나는 여름을 사냥한다. 즐기면서 한다.
여름을 잘못 사냥하다가는 다친다. 무섭다고 냉방 속으로 뒷걸음질치기만 하면 허약해진다. 여름과 너무 진한 사랑을 나누다가는 몸을 망칠 수도 있다.
나의 여름 사냥은 나의 사업을 위해서다. 사업은 ‘주역’에서 “성인의 뜻(어질 인·仁)에 따라 알맞게 백성들에게 실천하는 것”이라고 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평생 사업을 했는데, 그것은 백성들에게 이익 되게 하는 저술하기였다.
끊임없이 사업에 몰두한다. 나의 사업도 글쓰기다. 사업에 몰입하기 위해 건강해야 한다. 건강을 위해 바닷물고기를 고아먹고 몸이 녹슬지 않게 운동을 하고, 영혼이 낡지 않게 책을 읽고 사유한다.
‘시경(詩經)’의 ‘동문 밖 연못’을 자주 암송한다.
‘그 아름다운 아가씨와 함께 노래하고… 그 아름다운 아가씨와 함께 이야기하고… 그 아름다운 아가씨와 함께 속삭이고 싶어라.’
나의 사업이 ‘그 아름다운 아가씨’다. 그 아가씨와 사랑하기 위해 보양식을 먹고, 운동을 해서 완력과 정력을 보강하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지성인이 책을 써서 전하는 것은 알아주는 오직 한 사람을 얻기 위해서다(君子著書傳唯求一人之知·군자저서전유구일인지지)’라고 했다.
나는 몇 천만인이 읽어주기를 바라며 글을 쓰지 않는다. 내 글을 깊이 읽고 깨달음을 얻는 단 한 사람을 위해서 쓴다. 그 아름다운 아가씨와 곡진한 사랑을 하기 위해 나는 여름 사냥을 실수 없이 해내야 한다.
2009년 08월
가난한 사랑 노래 / 김용택
‘달이 높다/ 추수 끝난 우리나라 들판 길을/ 홀로 걷는다./ 보리씨 한 알 얹힐 흙과/ 보리씨 한 알 덮을 흙을/ 그리워하며 나는 살았다.’ (졸시 ‘보리씨’ 전문)
들판을 누렇게 물들였던 벼들이 다 떠났습니다. ‘다 떠났다’가 맞다는 듯이 들판은 이제 텅 비었습니다. 논두렁에 억새들만 저무는 햇살을 받아 눈이 부신 손짓처럼 하늘거립니다. 들 끝에서 들 끝까지 쓸쓸하고 적막합니다.
이렇게 텅 비어가는 들에 서 보면 옛날이 절로 생각납니다.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닙니다. 내 나이 스무 살 무렵, 벼들이 베어져 누웠다가 들을 떠나면 농부들은 쟁기로 논을 갈아엎고 보리씨를 뿌리고 거름을 뿌리고 비료를 뿌리고 쟁기질로 뒤집어진 흙덩이를 쇠스랑이나 괭이로 텅텅 패 보리씨를 덮었지요.
소가 끄는 쟁기와 소를 따르는 농부의 굽은 등과 보리씨를 덮는 쇠스랑으로 흙을 텅텅 패던 농부들이 들판에 가득했지요. 보리씨는 대충 덮어도 싹이 잘 납니다. 보리씨는 자기 몸이 다 덮어지지 않아도 흙덩이에 기대 하얀 뿌리를 땅에 내리고 하늘로 싹이 어김없이 솟아납니다. 보리 싹은 외떡잎입니다. 외떡잎의 작고 여린 연두색 싹이 나오면 아침저녁으로 이슬이 내리고 서리가 내려 눈물처럼 반짝였답니다.
그렇게 보리 싹이 나고 하늘에 늦가을 달이 훤하게 떠오르면 우리들은 동네 아무 집이나 들어가 곶감서리를 해 가지고 빈 들을 지나 신작로 가에 있는 주막으로 술을 마시러 갔습니다. 텅 빈 들길에 하얗게 쏟아진 달빛, 산이 눈 뜨는 것 같은 산 아래 마을 불빛들, 신작로 가 술집의 불빛들은 따사롭고도 정다웠습니다. 그렇게 텅 빈 들 가에 배추나 무 잎은 어찌 그리 싱싱한지요.
가을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우리들은 주막에 앉아 술을 마시고 늦은 밤 다시 들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거나한 술기운과 서산으로 기울어가는 달, 달빛을 받은 보리 싹들의 반짝이는 모습은 때로 여린 시인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했습니다. 어느 날 밤 그렇게 보리 싹들을 보며 집으로 돌아와 뒤척이다가 벌떡 일어나 단번에 나는 시 한편을 썼습니다. 그 시가 바로 ‘보리씨’입니다. 나는 그때 그랬지요. 보리씨처럼 자기 몸 하나 덮을 흙과 자기 몸 하나 얹힐 흙을 그리워하며 살았었지요.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나는 가난한 한 마을의 외로운 청년의 그 도도한 시 정신을 떠올리곤 합니다. 아무런 부러움도 두려움도 없는 그 청춘 시절 달빛을 받은 푸른 어깨를 말입니다. 우리들 앞에는 달빛 외에 아무것도 거칠 것이 없었지요.
‘산 사이/ 작은 들과 작은 강과 마을이/ 겨울 달빛 속에 그만그만하게/가만히 있는 곳/ 사람들이 그렇게 거기 오래오래/ 논과 밭과 함께/ 가난하게 삽니다./ 겨울 논길을 지나며/ 맑은 피로 가만히 숨 멈추고 얼어 있는/시린 보릿잎에 얼굴을 대보면/ 따뜻한 피만이 얼 수 있고/ 따뜻한 가슴만이 진정 녹을 수 있음을/ 이 겨울에 믿습니다./ 달빛 산 빛을 머금으며/서리 낀 풀잎들을 스치며/ 강물에 이르면/ 잔물결 그대로 반짝이며/ 가만가만 어는/ 살 땅김의 잔잔한 끌림과 이 아픔/ 땅을 향한 겨울 풀들의/몸 다 뉘인 이 그리움/ 당신,/ 아, 맑은 피로 어느/ 겨울 달빛 속의 물풀/ 그/ 풀빛 같은 당신/ 당신을 사랑합니다.’
(졸시 ‘섬진강15-겨울 사랑의 편지’ 전문)
그 무렵, 그러니까 시 ‘보리씨’를 쓸 그 무렵 나는 월급날이 되면 전주로 나갔습니다. 책을 사기도 하고 전주에서 학교를 다니는 동생들을 만나기 위해서였지요. 나는 책에 목말라 했습니다. 나는 늘 책에 허덕였지요. 오죽 책에 목이 말랐으면, 내 소원 중의 하나가 돈을 생각하지 않고 마음대로 책을 사보는 것이었겠습니까. 월급을 탄 일요일이면 나는 살 수 없는 문학 잡지들의 시들을 책방에 서서 다 읽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읽은 글들은 내게 꿀처럼 다디달았지요. 물 묻은 바가지에 참깨가 달라붙듯 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내가 좋아하는 한 여인과 밤늦게까지 놀다가 막차를 타고 집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전주에서 우리 집까지 2시간 정도가 걸렸지요. 막차는 10시가 넘어서야 나를 신작로 ‘그 술집’에 떨어뜨려 놓았습니다. 어깨에는 책으로 가득 채운 가방이 메어져 있었습니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들판 가득 하얗게 달빛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내가 사는 집까지 30분쯤 걸었습니다.
마을의 불빛들은 거의 다 꺼지고 어두운 산 아래 먼 마을에서는 이따금 개 짖는 소리가 들의 적막을 깨우곤 했습니다. 다문다문 살아 있는 불빛들은 이슬 먹은 밤공기 속에 촉촉하게 젖어들고 있었습니다. 보리 싹들이 달빛 아래 반짝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 여인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를 써서 부치고 나서 편지 내용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편지 글이 너무나 시적이었습니다. 나는 바로 또 편지를 썼습니다. 방금 내가 보낸 편지를 다시 나에게 보내 달라고 했지요. 며칠 후에 그 편지가 되돌아왔습니다. 나는 그 편지글을 다시 고쳤습니다. 그 글이 바로 ‘겨울 사랑의 편지’가 되었습니다.
아! 가을 달빛 속에 빛나던 그 여린 보리 싹들을 이제는 볼 수가 없습니다. 그 달빛 아래 검은 산, 그 산 아래 반짝이던 마을 불빛들도, 들 끝에서 우리들을 기다리던 따사로운 주막의 불빛도 사라졌습니다. 달빛을 하얗게 받아 빛나던 그 구불구불한 길도 사라졌습니다. 겨울 강물 속에 얼어 있던 그 풀빛 같던 사랑도 사라졌습니다. 나의 가난한 사랑 노래도 이제는 오래 전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2009.10.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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