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시인 열정문학강좌- 내가 사랑하는 사람
열두 편의 시와 이야기 그리고 여섯 편의 노래
1) 나팔꽃
한쪽 시력을 잃은 아버지
내가 무심코 식탁 위에 놓아둔
까만 나팔꽃 씨를
환약인줄 알고 드셨다
아침마다 창가에
나팔꽃으로 피어나
자꾸 웃으시는 아버지
몸이 불편하신 아버님을 모시고 살아가는(정확하게는 부모님 댁을 작업실로 사용하는, 하지만 아버님께서는 시인이 없으면 이발과 목욕을 혼자 하실 수 없을만큼 연로하시므로 시인의 보살핌은 필수!) 시인이 어느 날 검고 둥근 환약을 닮은 나팔꽃 씨앗을 식탁에 올려두었는데 아버님이 약인 줄 알고 드시려 했다는 에피소드.
‘수박씨를 먹으면 뱃속에서 수박이 자라고, 참외씨를 먹으면 참외가 열린다’는 어린 시절 어머님 말씀이 시상의 힘. 실제로 나팔꽃 씨앗을 드시지 않았으나 드셨다는 상상을 가정하고 아버지가 수박이나 참외처럼 나팔꽃으로 다시 피어나 웃으신다는 비약이 돋보인다.
‘인간에게 상상력이 없다면 천문대에 망원경이 없는 것’이라는 시인의 말.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어머니의 말씀이 빚어낸 상상력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시였다.
2) 어머니를 위한 자장가
잘자라 우리 엄마
할미꽃처럼
당신이 잠재우던 아들 품에 안겨
장독 위에 내리던
함박눈처럼
잘 자라 우리 엄마
산 그림자처럼
산 그림자 속에 잠든
산새들처럼
이 아들이 엄마 뒤를 따라갈 때까지
잘 자라 우리 엄마
아기처럼
엄마 품에 안겨 자던 예쁜 아기의
저절로 벗겨진
꽃신발처럼
아니, 아가를 위한 자장가가 아니라 어머니를 위한 자장가라고?
‘시인의 어머니는 이가 다 빠진 상태라고 한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마른 보리새우처럼 허리 굽어진 상태로 주무시고 계셨다. 틀니조차 뽑아 놓고 곤히 주무시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평화롭고 고요한 죽음의 기운을 느껴 어머니의 죽음을 위한 자장가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만만한 사람’, 하지만 ‘신의 사랑에는 모성적인 측면이 있다’ 할만큼 그 만만함의 바닥에는 진정한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할미꽃과 함박눈, 엄마품인 산그림자와 포대기에서 숨소리를 나누던 시절의 감각을 떠올리게 하는 산새, 발조차 귀여워 뽀뽀를 하고 싶은 예쁜 아기의 발.
시인의 말한, ‘상처를 꽃으로 보는 힘’이 이런 것이구나 싶다.
3) 소년 부처
경주박물관 앞마당
봉숭아도 맨드라미도 피어 있는 화단가
목 잘린 돌부처들 나란히 앉아
햇살에 눈부시다
여름방학을 맞은 초등학생들
조르르 관광버스에서 내려
머리 없는 돌부처들한테 다가가
자기 머리를 얹어본다
소년 부처다
누구나 일생에 한번씩은
부처가 되어보라고
부처님들 일찍이 자기 목을 잘랐구나
아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아들과 여행을 떠났다. 제주를 거쳐 외가인 경주에 도착. 경주 박물관에 들렀다. 뜨락에 놓이 수많은 목 없는 부처들. 왜 부처님들 목이 잘렸을까?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의 횡포? 어느 무지한 젊은이들의 힘 자랑? 아니면 불교를 억압해온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 이런 저런 상념에 젖어 있는데, 한 무리의 초등학생들이 버스에서 우르르 몰려 내려 사진을 찍는다. 목 잘린 부처 뒤에 서서 자기 머리를 부처의 육신 위에 얹고 사진을 찍는다. 순간, 아 소년부처다!
객관화된 시선으로 목 잘린 이유를 생각하지 않고, 부처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순간 비약이 일어난다. ‘누구나 일생에 한 번씩은 부처가 되어보라고 부처님들 일찍이 자기 목을 잘랐구나.’ 이 시는 1, 2연은 설명이다. 시가 되는 것은 3연의 사고의 비약을 통해서다.
아, 하고 감탄을 하게 되는 순간이 돋보이는 시다. 객관적 해석이 아닌 현장에서의 창조성!
4) 밥그릇
개가 밥을 다 먹고
빈 밥그릇의 밑바닥을 핥고 또 핥는다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몇 번 핥다가 그만둘까 싶었으나
혓바닥으로 씩씩하게 조금도 지치지 않고
수백 번은 더 핥는다
나는 언제 저토록 열심히
내 밥그릇을 핥아보았나
밥그릇의 밑바닥까지 먹어보았나
개는 내가 먹다 남긴 밥을
언제나 싫어하는 기색없이 다 먹었으나
나는 언제 개가 먹다 남긴 밥을
맛있게 먹어보았나
개가 핥던 밥그릇을 나도 핥는다
그릇에도 맛이 있다
햇살과 바람이 깊게 스민
그릇의 밑바닥이 가장 맛있다
인터넷에 이 시를 검색해보니 ‘개밥그릇’이라고 되어 있더라(^^) 시의 의미를 잘 모르는 사람이 내용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제목을 바꾸어놓았다. 인터넷의 폐해다. 집에 16년 키운 바둑이라는 개가 있다. 이름 하여 정바둑이.(^^) 최근 항문밑에 혹이 생겼는데 암이란다. 가여운 바둑이, 수술하기에는 너무 늙어 수술도 못하고 고통 속에 있는데, 최선을 다해 돌봐주고 있다. 이 시는 그 바둑이가 청년이던 시절 이야기다.
시인은 바둑이에게 사료를 먹이지 않고 사람과 같은 밥을 먹였다. 한 식구인데 같은 밥을 먹어야 바둑이가 불행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러다 보니 이 개는 파스퇴르 우유를 먹이던 시절 서울 우유는 안 먹더라(^^)
어느 날 집에 늦게 들어온 시인. 아무도 없는 집. 언제 돌아올 줄 모르는 아내를 기다릴 수 없어 혼자 밥을 먹는데···. 밥을 먹고 남은 것을 바둑이에게 주었더니 배가 몹시 고팠는지 밥그릇 바닥을 계속 핥는다. 처음에는 배가 고프다고만 생각했으나 나중에 보니 그 밥그릇에 햇살과 바람까지 스며있는 것이 아닌가.
개 뿐인가, 사람도 누구나 자기 밥그릇 하나를 가지고 살아가는데, 과연 내 삶의 밥그릇은 어떠한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개는 항상 밥을 맛나게 먹는데, 나는 저 개처럼 밥을 맛나게 먹었는가. 밥그릇의 바닥을 저리 열심히 핥는데, 나는 내 밥그릇의 바닥을 그렇게 열심히 핥아본 적 있는가. 내 인생의 그릇 바닥에는 과연 무엇이 들어 있나. 그 밥그릇 바닥이야말로 인격이고 품성인데, 나의 밥그릇 바닥은 어떠했는가....
비유보다도 진정성이 돋보이는 시다. 내 밥그릇을 돌아보고 성찰하게 만들어준다. 나는 늘 밥만 하늘인 줄 알았는데, 밥을 담아내는 그릇 또한 하늘인 줄 이제 알겠다···.
5)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우리는 삶 속에서 그늘과 눈물을 감추고 숨기려 하지만, 그늘과 눈물의 가치를 폄하하지 말자’고 시인은 말한다. 이어지는 시인의 말. ‘우리 인생에 햇살만 비추는 나날이 된다면 인생은 사막이 된다.’ ‘항상 날씨가 좋으면 곧 사막이 되어버린다’는 스페인 속담이 있다. 사막에서 잠을 잔 적이 있다. 사막에서 바라본 별···. 운주사 칠성바위 모양이 왜 둥근가 했다니 사막에 가보니 알 것 같다. 새벽별, 정말 가까이 손에 잡힐 듯 쏟아지는 둥근 별들. 반달이 떠오르고 여우도 나타나고. 일생에 다시 없을 황홀한 밤.
(하지만 누구도 하루 밤을 더 자자고 하지 않았다. 아침, 먹을 수 없던 모래밥과 밤이면 너무 추워 더 머무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아, 그런데 사막 이야기는 왜 하셨지? (그늘과 눈물이 없으면 인생은 사막이다에서^^)
김원중이 부르는 노래를 들었다. 조용히 시와 노래에 젖어들었다. 나는 누구를 사랑하는가·····. 내 삶의 그늘과 눈물은 무엇인가······.
6) 이별 노래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그대 떠나는 곳
내 먼저 떠나가서
그대의 뒷모습에 깔리는
노을이 되리니
옷깃을 여미고 어둠 속에서
사람의 집들이 어두워지면
내 그대 위해 노래하는
별이 되리니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누군가를 지독히 사랑하던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다. 아무리 사랑이 지극해도,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천 년을 함께 살아도 한 번은 이별을 한다’ 이 시는 이별 노래이지만 사랑 노래이다. 이 시를 통해, 잃어버린 사랑의 마음을 잃지 말고 간직하라는, 그 시절의 아픔과 사랑을 다시 추억하라는 심정이 담겨 있다.
지금은 정지용의 향수 노래로 더 알려진 가수 이동원씨가 찾아와 노래를 만든다 할 때, 아무 조건 없이 그러라 하였는데, 놀랍게도 백만 장이나 팔렸다! 아쉬워라^^ 내게 이 시는 가수 이동원의 노래로 아련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시다. 이 시에 얽힌 뒷이야기가 재미 있었다.
7) 풍경 달다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밑에
풍경 달고 돌아왔다
먼 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어느 비구니께서 암자에 한 번 놀라 오라 하시더라. 의례적인 인사인 줄 알고 그러마 하고 안 갔더니 독촉 전화 와더라. 갈 마음 별로였는데, 운주사 간다는 말에 ‘가겠다, 운주사 같이 가자’고 했더니 그러라고 했다.
운주사 와불이 일어서면 새 세상이 시작한다는 말처럼 내 인생도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대신 내려오는 길에 좋은 풍경을 두 개 구해오라 했다. 조계사에서 좋은 풍경 두 개를 구해갔더니 풍경도 잘 달지 못하는 비구니(수평 못질 아닌 수직 못질 하기 쉽지 않아서), 결국 나한테 달라달라네!
조심스럽게 못질하여 풍경을 달았는데,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오더라. 순간 풍경 소리에 넋이 나갔다. 깊고 그윽하고 맑은 소리에······ 그 비구니 덕분에 운주사 와불님을 처음 뵙고 왔다. 한 분인 줄 알았는데 부부부처님! 두 분 부처는 천년 동안 변함 없는 사랑을 나누고 계셨구나.
그날 밤 집에 돌아와 이 시를 썼다. 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에 실렸는데 그 스님께 이 시집을 보내기가 어려웠다. 마지막 구절 ‘먼 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때문에 오해하실까봐^^ 하지만 기우였다. 스님은 손수 덖은 녹차를 보내주셨다.
그 뒤 아파트 베란다에 풍경을 달았는데, 아쉽게도 바람이 불지 않아 그윽한 풍경 소리 들을 수 없어, 손으로 하릴 없이 풍경 소리 울리네(^^)
나는 지난 겨울 운주사를 다녀 왔다. 모처럼의 발길로 운주의 절정을 맛본 여행이었다. 가랑비 내리는 운주의 뜨락에서 풍경 소리 들었더라면, 아마 해탈하지 않았을까^^ 운주사 뒷산에서 맞은 바람의 힘 또한 풍경 소리 못지 않은 그리움을 자아낸다. 그리워라 운주사 풍경 소리, 운주 뒷산 바람의 느낌···.
8) 바닥에 대하여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은 말한다.
결국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고
바닥은 보이지 않지만
그냥 바닥까지 걸어가는 것이라고
바닥까지 걸어가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바닥을 딛고
굳세게 일어선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고
발이 닿지 않아도
그냥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바닥의 바닥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말한다.
더이상 바닥은 없다고
바닥은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관념이다(일체유심조)
바닥에 대한 고민을 적은 시다. 증권회사에 있는 친구 말, ‘증권사 직원들이 이 시를 책상 앞에 붙여놓고 참 좋다 하더라’(^^) 우리 인생은 바닥에서 시작한다. 바닥이 없다면 지금의 내가 존재할까.
내 인생의 바닥에 대한 상념 때문에 스쳐 들은 이야기만 기록한다. 내 삶의 바닥의 바닥은 어디일까, 아무 데도 없는···. 오래 전 바닥이라고 생각하던 시기 거기에서 떠올랐던 시절도 생각난다. 다시 걸어야 할까, 바닥을 위하여···.
9) 산산조각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서랍 속에 넣어 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 갈 수 있지
바닥에 대하여와 같은 맥락의 시인데, 써놓고 정말 스스로 커다란 위안을 받는 시다. 2000년에 불교 성지 순례(실은 여행) 하면서 룸비니에 갔다. 에덴 동산 같은 곳인 줄 알았는데 김제, 이리 같은 황토빛에 철조망이 쳐진 동네. 거기서 흙으로 빚은 부처님 조각상을 샀다.
내 인생이 산산조각 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산산조각 나면 그걸 얻은 거지, 그렇게 살아가면 돼 하는 부처님 음성이 들렸다. 보신각종도 깨어진 걸 83년에 새로 바꾸었다. 어느 책을 보니, ‘깨어진 종을 종메로 치면 소리가 안 좋은데, 완전히(?) 깨진 종을 종을 종메로 치면, 마편을 치면 맑은 종소리가 나다!’는 구절이 있어 놀랬다.
아직, 나는 산산조각 나 본 적이 없다. 산산조각이 아직 두렵다. 피할 수 없다면, 회복 불가능의 산산조각을 통해 거듭나고 싶다.
10) 수선화에게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 견디는 일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내리면 눈길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속을 걸어라
갈대 숲 속에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가끔씩 하느님도 눈물을 흘리신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산 그림자도 외로움에 겨워
한 번씩은 마을로 향하며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서 우는 것도
그대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그대 울지 마라.
50대 초반에 쓴 시. 어느 날 친구가 말했다. ‘나 요즘 외로워 죽겠어’라고. 시인의 대답. ‘너 50인데 그 동안 헛살았어. 외로움은 인간의 본질이야. 왜 배가 고프지? 밥을 안 먹었으니까! 왜 외롭지? 인간이니까! 인간이니까 외로운 거야!’
외로움과 고독은 좀 다르게 느껴지는데, 외로움이 상대적이고 사회적인 거라면 고독은 절대적이라고 할까.
하여, 외로움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다. 남편과 아들을 이어서 잃은 박완서 선생님께 기자가 물었다. “남편과 아들의 죽음에 대한 고통을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그걸 어떻게 극복해요? 견디는 거죠”
제목 수선화에게는 무엇이 되어도 상관 없다. 인간의 본질인 외로움을 노래하기 위한 소재로 무엇이든지 사용할 수 있으니. 노래로 먼저 만난 시다. 가끔 흥얼거리면 즐겨 부를만큼 귀에 익고. 외로움은 슬픔이기도 하고 평등이기도 한다. 그래서 외로움이 싫지만은 않다.
11) 햇살에게
이른 아침에
먼지를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내가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먼지가 된 나를
하루 종일
찬란하게 비춰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느 날 아침, 햇빛 사이로 본 먼지. 아 우리 인생은 먼지와 같은 것. 그럼에도 살게 해주시 감사. 그 먼지를 햇살로 비추어지시니 감사. 시인의 눈과 마음은 작고 낮고 밝은 것을 향한다. 먼지의 찬란함. 그 속에 우주가 있다는 말이 허언은 아닌 듯···.
12) 봄길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마지막 이 시를 여러분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었다. 사랑이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사랑이 싹튼다.
시의 꽃이 피고 자라다 멈춘 자리에 다시 시가 싹튼다. 나는 그동안 왜 나의 시에 물과 햇볕을 주지 못했던가 하는 반성이...
시의 마지막 구절, ‘한 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가 마치 내 별명 ‘애린’의 상징처럼 느껴져 좋았다. 나의 계절인 봄도 무언가 통하는 것 같고. 시인의 당부 대로 한없이 봄길을 걷는 것은 나의 숙명이자 보람······. 경기국어교사모임 열정문학강좌 자료. 2010.10.7
'#學問 > 人文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한민국 중년을 위한 인생 승리 공부법 (0) | 2015.07.13 |
---|---|
[박대종의 어원 이야기] 도낏자루. 거덜. 멍첨지. (0) | 2015.07.13 |
소설가 심상대 (0) | 2015.07.13 |
통일신라시대 ‘복불복 게임’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0) | 2015.07.13 |
무인(巫人), 혹은 무당. 갑골민주주의[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0) | 2015.07.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