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問/風水.命理

[돈버는 풍수] 물확. 대문.결록.지맥.

경호... 2015. 7. 13. 00:40

돈버는 풍수

 

점포 현관에 `물확` 놓은 이유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근무한 H씨는 희망퇴직을 한 뒤 커피전문점을 개업했다. 그만의 개성을 살려볼 요량으로 직영체제로 운영되는 브랜드 커피점이 아닌 독립 커피점을 도시 외곽의 번화하지 않는 곳에 차렸다.

 

50평 정도의 점포에 최신식 커피제조기를 들여놓고, 실내 인테리어에도 신경을 썼더니 종잣돈은 금방 바닥을 드러냈다. 몇 달간은 영업 수지만 맞아도 성공이라 생각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수입이 좋아 성공을 예감하고 가슴이 뿌듯했다. 큰 희망도 없이 시계추처럼 다녔던 회사생활이 바보 같은 세월로 느껴졌다.

 

그런데 개업한 지 5개월이 지나자 마치 융단폭격을 하듯 주변 건물마다 브랜드 커피점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손님들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매출도 덩달아 줄었다. 소총을 들고 탱크를 상대하는 것처럼 어찌해 볼 도리는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매달 돌아오는 임대료조차 내기가 힘들어졌다.

 

창업은 위험한 모험이다. 청년 창업의 경우 설령 실패해도 인생 전체에 먹구름이 덮이는 심한 타격은 입지 않는다. 젊음이란 자산이 남아 있으니 실패 경험도 미래의 성공 키워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제2 인생을 꿈꾸는 베이비부머들의 창업은 사정이 다르다. 감당할 수준의 리스크만 지고 창업하는 게 좋다. 무한 리스크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면 아무리 매력적인 사업이라도 무모하게 뛰어들지 않는 용단이 절실하다.

 

장사가 안 돼 폐업을 고민한다면 풍수적 처방으로 뜻밖의 효험을 볼 수 있다. 풍수는 물을 재물로 여긴다.

점포의 현관 옆에 놓인 석조(물확)는 지나가는 사람을 가게 안으로 끌어당기는 신비한 힘을 지닌다. 형태는 네모난 것, 둥근 것, 부정형 등이 있다. 금기(金氣·재물)를 지닌 둥근 것이 더 좋다.

맑은 물을 가득 담은 뒤 수련, 옥잠화, 수생식물을 키우면 마음의 안정도 가져다준다.

 

중국에서도 재물을 불러온다는 이유로 현관 안쪽에 금붕어를 키우는 수족관이 설치돼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재물은 금붕어가 아니라 물이고, 풍수의 소통은 한국과 중국이 별반 다르지 않다.

 

목에 철심 박고 어떻게든 퇴직 정년을 채우겠다는 전략도 타의에 의해 꺾이기 일쑤다. 샐러리맨의 약 75%는 하루하루 창업을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회사를 다닌다. 실물경기 침체가 깊어지면서 베이비부머들의 명예퇴직도 이전보다 더 많아질 것이란 우려감이 높다.

 

까먹지 않고 돈을 버는 것이 중요하니 ‘장사 안 돼 죽을 지경’이라면 물을 이용해 사람의 발길을 확 끌어당겨 보자.

 

 

 

 

 

`길흉화복 관문` 대문

 

 

 

‘하우스 푸어’는 주택 담보대출 이자 때문에 엄청난 골치를 앓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한때 집이 재산증식의 보증수표였던 시절이 있었지만 주택 경기가 몇 년째 침체된 요즘은 살고 있는 집이 오히려 무거운 짐이 돼 서민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특히 집값 상승을 기대하고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사람들은 속절없이 떨어지는 집값과 빚에 따른 이자 상환 압박에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다.

위기를 느낀 정부가 여러 대책을 내놓았으나 백약이 무효다. 가장 갑갑한 것은 집을 내놔도 보러오는 사람조차 없다는 점이다. 안 팔리는 집을 기적처럼 후딱 팔리게 하는 묘안은 없는 것일까?

 

두통이 있는 사람은 진통제를 먹어 통증을 치료한다. 소화 불량으로 배가 아프면 소화제를 먹어 몸을 진정시킨다. 집이 팔리기를 간절히 바란다면 집안에 ‘까치와 호랑이’ 그림을 걸어두든지 아니면 현관문에 ‘용(龍)·호(虎)’자를 한자로 써 붙여 보기를 권한다.

 

소나무 가지에 까치가 앉아 있고, 나무 아래에는 호랑이(사실은 표범)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 ‘까치와 호랑이’ 그림은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민화다. 웃음이 사라진 집에 기쁜 소식을 가져다주는 강한 기를 내뿜는다. 소나무는 신년(新年)을 뜻하고, 표범의 표(豹)자는 중국에서 보(報)로 발음하며, 까치는 기쁨을 뜻한다. ‘새해를 맞이해 기쁜 소식이 전해진다’는 ‘신년보희(新年報喜)’의 소망이 담겨 있다. 집안의 분위기가 침통할 경우 이 그림을 거실에 걸어두면 만사가 형통해진다.

 

중국에 복이 쏟아져 들어오길 바라면서 벽면에 ‘복(福)’자를 거꾸로 붙여놓는 풍습이 있듯이 현관문에 ‘용 · 호’자를 써 붙이는 것도 또 다른 비방책이다. 대문은 길흉화복을 부르거나 막는 건축물로서 우리의 삶에 중요한 의미가 있어 ‘가문(家門)’이라 부른다. 그곳에 붙여놓은 ‘호’자는 삼재(三災)를 막는다.

‘용’자는 ‘오복’을 불러들인다. 만약 어떤 효험도 주지 못한 미신에 불과했다면 어떻게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우리의 미풍양속으로 전해왔겠는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라면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즉시 실천해 보자. 손해 볼 것은 없다.

 

아울러 집을 보러오는 매수자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면 현관을 깨끗이 관리해야 한다. 현관문에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있다면 깨끗이 닦아내고 우유 주머니를 매달아 놓는 것은 금물이다. 현관이 밝을수록 집에 대한 호감이 커지니 현관 조명은 현재 것보다 밝은 것으로 교체하는 게 좋다.

시든 꽃이나 죽은 나뭇가지로 만든 꽃꽂이를 현관에 두지 않으며, 신발의 정돈에도 신경을 쓰면 효험은 배가 된다.

 

 

 

 

농촌의 氣 살릴 풍수자원

 

 

 

 

‘야생화도 보시고, 연못에서 다슬기 올챙이 도롱뇽과 함께 놀다보면 금세 주위가 어둑어둑해집니다. 어두워서 놀지 못한다고 서운해하지 마세요. 우리 마을은 밤이 더 신비로워요. 머리 위로 손을 올리면 잡힐 것만 같은 별을 한번 보세요.’

 

농촌건강장수마을로 선정된 충북 청원군 벌랏마을의 이장이 한 말이다. 농촌은 도시에 없는 특수한 것들이 있다. 전원에서 느끼는 여유와 편안함, 이웃과 나누는 정겨운 인정이 있다. 깨끗한 공기와 맑은 물, 비옥한 토양과 눈 안개 등과 같은 자연적 자원도 있다. 역사와 경관을 이루는 문화적 자원도 빼놓을 수 없다.

이처럼 농촌에만 존재하면서 사람이 정주할 심리적 가치를 줄 뿐 아니라 도시인에게는 관광할 가치를 제공하는 요소를 ‘농촌어메니티(rural amenity)’라 부른다.

 

현재 한국 농촌은 위기를 맞고 있다. 농촌의 가구 소득은 도시 근로자의 소득에 비해 현저히 낮고 농업 소득에만 의존한 상태에서 농촌의 경제적 자립은 매우 어려운 형편이다. 농촌 인구의 지속적 감소 역시 공동체적 삶의 터전으로서 농촌이 본연의 기능을 상실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농촌 발전에 대한 새로운 정책을 모색 중이다. 농촌 자원의 구체적 발현 형태인 농촌관광을 활성화시키는 농촌어메니티의 관광 상품화 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농촌만이 보유한 자원을 기초로 농촌의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방안이다. 농촌어메니티에는 고택, 능묘, 역사 인물의 묘와 같은 풍수적 자원도 있다. 이들은 신라 시대 이후 우리 민족의 기층적 삶에 깊은 영향을 끼쳐온 풍수지리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이 선생은 강릉의 오죽헌에서 태어났지만 잉태된 장소는 평창이다. 수운판관을 지낸 부친(이원수)이 살았다고 해 ‘판관대(판관이 살았던 집터)’라는 표석이 서 있다. 그곳은 조선 시대 강릉부에 속한 산자수명한 고장으로 흥정천이 ‘산태극 수태극’의 형세를 이뤄 동방의 성현이 잉태될 만한 장소이다.

해당 지자체는 판관대 터에다 이원수가 살던 옛 집을 복원할 예정이다. 향후 민간자본을 유치해 천재 명당임을 내세워 관광객을 유치하는 테마 관광지로 조성할 계획이다. 천재를 낳고 싶은 신혼부부라면 한번쯤 관심을 가질 파워스폿(기가 뭉친 장소)이다.

 

우리 농촌에는 역사 인물과 관련된 풍수적 자원이 다양하게 존재하니 이들을 적극 발굴해 관광자원화하면 지자체의 지역 특화뿐만 아니라 최근 트렌드로 떠오른 베이비부머들의 귀농·귀촌 행방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풍수에도 `품질보증서` 있다

 

 

옛 선현들은 명당을 찾기보다 먼저 어진 지사(풍수사)를 구하라고 한결같이 말했다. 길한 터를 구하려면 반드시 어진 지사를 만나야 한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길지를 얻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어진 지사와 인연을 맺기가 어렵다. 복 있는 사람은 지사를 잘 만나 덕을 간직한 땅을 쉽게 얻고, 지사의 눈을 빌리지 않고서는 비록 눈 아래에 좋은 땅이 있어도 알 수 없다. 혹 얻었다 해도 옳은 혈을 찾지 못하고 장법(葬法)을 어기기 쉬우니 득보다 해가 크다.

 

풍수의 법술에 능통한 사람을 보통 ‘지관(地官)’ 또는 ‘지관 양반’이라 부른다. 지관이란 조선 시대에 음양풍수학 과거 시험에 합격해 왕가의 능지(陵地)를 선정하는 일에 관여하던 관리다. 왕릉의 터를 찾을 필요가 있을 때만 임명된 임시직이었다. 풍수 실력은 있으나 지관 벼슬을 하지 못한 사람은 보통 ‘풍수’라고 불렀다.

 

조선 시대에 지관이 되려면 한문에 능통해야 하고, 선배 풍수사를 쫓아 명산대천을 답사해야 했다.

 

지관의 풍수 실력은 동일하지 않으며 4단계로 구분했다. 범안(凡眼), 법안(法眼), 도안(道眼), 신안(神眼)이 그들이다. 범안은 산천의 길흉을 상식적인 수준에서 판단하는 단계이고, 법안은 풍수 이론에 해박한 사람이다. 도안은 정법에만 의지하지 않고 기감을 통해 대지를 척척 잡는 수준이다.

 

문제는 신안이다. ‘도사’라고 스스로 칭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풍수 이론에 근거하지 않고 산매(山魅)나 귀신의 힘을 빌려 판단한다고 한다. 그들은 풍수적 논리보다 신비한 술수로 사람을 단숨에 제압한다. 일반인들이 혹하고 꾐에 넘어가기 십상이다. 신안을 자칭하던 S씨는 6가지에 도통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멀리서 산만 바라봐도 훈훈한 기운이 올라오는 것이 보여 대지를 잘 잡고, 풍수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어도 풍수 이론에 해박하고, 패철(풍수 나침반)을 소지하지 않고서도 좌향을 신묘하게 놓는다고 해 웃음거리가 된 바 있다.

 

어진 풍수사를 찾는 방법은 간단하다. 묘지를 선정하고 장례를 주관했으면 전 과정을 무슨 사고 원리로, 어떤 의도로, 어떤 상황에서 결정했는가를 글로 꼼꼼히 적은 결록(訣錄)을 발급해 주는가 여부를 살피면 된다. 이것은 풍수의 품질보증서로 몸이 아파 의사를 찾아가면 진찰 후에 처방전을 써주는 것과 같은 이치다.

풍수를 의뢰할 때는 반드시 풍수사에게 “결록을 써주십니까?” 하고 사전에 물어봐야 한다. 도안이니 신안이니 하며 도사 흉내를 내더라도 결록을 써주지 않으면 그 사람의 풍수 실력을 믿지 말아야 한다. 언제 말이 뒤바뀔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맥이 끊기면 땅값이…

 

 

 

 

분당~수서 간 고속화도로를 타고 경기 성남시 소재 경원대 앞에 이르면 두 개의 터널이 생뚱맞게 시야를 가로막는다. 그곳은 산이 없는 평지라서 터널이 있을 필요가 없다. 야생동물의 이동통로를 확보하기 위한 ‘에코브리지’도 아니다. 그럼에도 시멘트로 지어진 컴컴한 터널 안은 한 낮임에도 전등이 환히 켜져 있다.

 

두 터널 사이의 서쪽 산기슭에는 몇 기의 묘가 상하로 조성돼 있는데 조선시대 영의정에 추증된 N 선생의 것이다. 명당이라 소문이 난 묘는 남쪽의 영장산에서 서진한 지맥이 탄천을 만나 낮은 봉으로 솟고, 이 봉에서 동진한 지맥이 자기를 낳은 산을 다시 바라보는 회룡고조혈이다. 고속화도로를 건설하면서 청룡과 백호의 끝부분이 잘려나가자 당시 권세가인 후손의 입김에 의해 인위적으로 청룡과 백호를 보완하는 터널을 놓은 것이다.

 

국토 개발을 위해 도로를 건설할 때면 곳곳에서 반대하는 크고 작은 분쟁이 생긴다. 지맥이 끊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산은 지기가 저장된 생기 탱크다. 그곳의 지기는 지맥을 쫓아 상하 기복과 좌우 요동을 하며 활달한 기세로 들과 내 쪽으로 흘러간다.

 

지맥을 횡단해 도로가 뚫리면 마치 태풍으로 인해 나뭇가지가 부러진 것처럼 지기의 전달이 끊어지거나 약화된다. 부러진 나뭇가지에 달린 열매는 썩은 뒤 떨어지듯이 단맥이 된 터에 사는 사람도 성공하는 힘이 약해지던가 또는 피해를 당한다.

 

그렇다면 산줄기를 절토한 뒤 도로를 내면 지맥이 영영 끊어져 지기가 복원되지 않는 것일까? 아니다. 사람이 다쳐서 난 상처도 새 살이 돋아나 아문다. 절개면에 드러난 암반도 풍화작용으로 흙을 생성하고 그 위에 초목이 다시 자란다. 자연이 지기를 복원해 자기 치유 작용을 한 것이다.

 

지기는 흙을 따라 흐른다. 처음에는 지맥이 끊어져 흉하나 시간이 지나 절개면에 초목이 자라면 지맥이 복구되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일제강점기 때 끊어진 이화령의 복원 공사가 시작됐다. 이화령은 백두대간에 속하고 한강과 낙동강을 갈라놓는 분수령이다. 끊어진 대간을 터널로 연결하고 터널 위를 녹지대로 조성하는 방식이다.

 

이 방법은 산줄기를 ‘V’자 형으로 깊게 절토해 도로를 놓을 경우 지맥의 훼손을 최소화하는 비방책이다. 향후 민족정기를 바로세우는 일환으로 백두대간 중 13곳의 단맥 구간이 연차적으로 복원될 예정이라고 한다. 복원 사업이 완료돼 전국 구석구석에 그 힘찬 기운이 이어졌으면 한다.

 

 

 

 

고제희 < 대동풍수지리학회장 >

한국경제

 

 

[박인호의 전원별곡] 제4부 자연과사람⑫

고제희 대동풍수지리학회장

“저술·강의·컨설팅 등 마당발 활동…기업에서도 수시로 찾아요”

 

고제희(52) 대동풍수지리학회장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풍수 전문가 중 한 사람이다. 풍수 강의와 저술, 신문 및 방송 활동, 그리고 기업이나 개인을 대상으로 한 실제 풍수 컨설팅에 이르기까지 그 만큼 활동 폭이 넓은 풍수 전문가를 찾아보기 어렵다. 서울 강남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는 아예 풍수 강좌를 할 수 있는 교실까지 마련돼 있다.

 

아직도 ‘풍수는 미신’이라는 시각이 일부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미 풍수는 우리 생활 곳곳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또한 풍수가 세계적인 웰빙 코드로 떠오르면서 기(氣) 흐름을 고려한 주택이나 사무실 가구 배치와 실내장식이 인기를 끄는 등 풍수지리학은 미신에서 과학으로 빠르게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고 학회장은 과학으로서의 풍수지리학 정립에 애쓰고 있는 사람 중 하나다.

 

그의 이력은 조금 특이하다. 잘나가던 대기업(삼성테크윈, 호암미술관)에 다니던 그는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직장을 그만둔 뒤 풍수지리사로 변신했다. 직장을 다니면서 틈틈이 풍수를 공부한 게 그 밑바탕이 됐다.

 

“1990년대 삼성은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오후 4시에 퇴근하는 ‘7·4제’를 시행했는데, 이른 퇴근 후 남는 시간을 활용해 유명한 역사 인물의 묘를 찾아다녔어요. 모두 450여 기의 묘를 답사했는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풍수 공부를 하게 되었죠. 일정 기간이 지나니 풍수에 대한 눈이 확 뜨이더군요.”

 

이렇게 풍수 전문가로 변신한 그는 이후 자신의 풍수 내공을 더욱 심오한 단계로 끌어올리는 한편 홈페이지를 만들고 책을 쓰고 풍수 강의 및 컨설팅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자기를 알렸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지난 2003년 8월 노무현 정부 당시 충청권 수도 이전을 위한 ‘대통령정책실 신행정수도건설추진기획단 자문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유명세를 타면서 고 학회장은 일반 풍수 강의 뿐 아니라 기업의 사옥과 사업장의 입지 결정 등 기업의 경제활동에도 적지 않은 기여를 하고 있다. 실제 굴지의 국내 대기업이 해외 본부를 설립하면서 가장 좋은 입지에 대한 컨설팅을 그에게 의뢰하기도 했다.

 

“몇 개 대기업의 풍수 컨설팅은 거의 전담해주고 있어요. 오너 가족들의 묏자리는 물론 사옥과 사업장터, 최고경영자 집무실의 집기 위치까지 풍수지리학적으로 분석해 보고서를 작성해줍니다.”

 

최근 트렌드가 된 귀농·귀촌에 있어서도 풍수지리학의 역할은 크다.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758만2000명) 등이 전원에 터를 잡고 집을 짓고 초기 전원생활을 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풍수는 떼려야 뗄 수 없기 때문이다.

 

고 학회장은 이 대목에서 필자의 인터넷 카페(박인호의 전원별곡-청산에 살어리랏다: cafe.naver.com/rmnews) 회원들에게 그의 풍수 재능을 나누겠다는 뜻을 밝혔다. 일반적인 풍수 정보와 지식 나눔에서부터 인터넷 지도서비스를 활용한 개별 컨설팅을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것. 예비 귀농·귀촌인 들의 ‘풍수 멘토’를 자임한 것이다.

 

“요즘은 어떤 땅에 대한 지번만 있으면 인터넷 지도서비스를 통해 향(向) 등 기본적인 풍수 분석은 쉽게 할 수 있지요. 다만, 개별 땅(필지)이 워낙 다양하고 많은 데다 땅 자체를 놓고 이건 좋고 저건 나쁘다고 하게 되면 땅 주인과 매수자 간 분쟁의 소지도 있고 여러모로 부작용이 우려됩니다. 따라서 개별 땅에 대한 풍수해석 보다는 이미 정해진 땅을 놓고 어떻게 집을 지을지, 지어진 집이 있다면 어떤 보완이 필요한지 등에 대한 풍수 컨설팅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풍수 전문가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한 고 학회장은 제자들을 잘 가르쳐서 향후 로펌과 같은 풍수법인을 만들고 싶단다. 다방면에서 풍수 컨설팅을 필요로 하는 수요가 계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만큼 거기에 맞춰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풍수조직체계를 갖추겠다는 것. 그는 현재 15기까지 1500여명의 풍수지리사를 길러냈다. 오산대, 수원대, 대전대 사회교육원 풍수지리 겸임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고 학회장은 풍수 관련 많은 책을 저술한 작가이기도 하다. ‘풍수지리교과서(4권, 2009년)’, ‘부자생태학(2009년)’, ‘쉽게 하는 풍수공부(1998년)’, ‘실록소설 문화재비화(2권, 1996년)’, ‘한국의 묘지기행(3권, 1997년)’ 등 일일이 손꼽기 힘들 정도다. 가장 최근에는 역사 속 영웅들의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풀 스토리를 담은 ‘한국 명문가의 문화 유적(2권, 2012년)’을 펴냈다. 고 학회장은 고려대 생명환경과학대학원 환경생태공학과 ‘조경학’ 석사학위 취득했으며, ‘환경설계 및 조경학’ 박사과정 수료했다.

 

(헤럴드경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