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問/風水.命理

거울.창고.자미원국(紫微垣局).`첫날밤` 장소[돈버는 풍수]

경호... 2015. 7. 13. 00:30

[돈버는 풍수]

 

거울 줄이면 男 바람기 잡는다

 

 

 

 

우리 조상들은 남자의 생식기와 비슷한 형태의 남근석을 대상으로 다산과 풍년 그리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다. 또한 남근석은 마을 여인네들의 바람기를 잠재우기 위한 용도로도 사용됐다. 마을의 지형이나 지세에 음기가 강하면 그것을 누르고자 설치했다고 한다. 이처럼 남근석은 마을의 풍기를 순화하기 위한 풍수비보물이다. 남근석과 여근석이 한 장소에 함께 있으면 음양의 기운을 한꺼번에 모은다. 부부가 이곳을 같이 찾으면 부부생활 또한 원만해진다고 한다.

 

민간에서 전승되어온 성 숭배 신앙물은 음양이 조화를 이뤄 청춘남녀가 순조롭게 결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원을 담고 있다.

 

현대에는 어떻게 이런 효험을 볼 수 있을까. 한 사람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옮겨 다니며 함부로 사귀는 사람을 ‘바람기가 있다’고 말한다. 적당한 바람기는 삶의 활력을 주는 순기능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자연의 바람이든 사람의 바람이든 한곳에 머물지 않고 이쪽저쪽으로 잽싸게 그것도 여러 곳을 옮겨 다닌다는 점이다. 부부는 닮는다는 말이 있다. 오래 사귀다 보면 동질화된다. 자기 짝꿍에 대한 애정지수가 점차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낚시꾼이 잡은 물고기에겐 더 이상 먹이를 주지 않는 것과 같은 심리다. 결국은 자기 배우자와 다른 외모나 성격을 가진 사람에게 호기심이 발동해 바람기로 발전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무엇이 바람기를 일으킬까. 색경(色鏡)이라 불리는 거울이다. 러브호텔에 가보면 벽면이나 천장에 대형 거울이 걸려 있다.

거울은 색기(色氣)와 관계 있고, 영악한 호텔 주인은 거울로 남녀의 바람기를 부추겨 장사를 한다.

 

마찬가지로 집안에 거울이 많으면 남자의 바람기도 커진다. 옛날 여자들은 화장할 때 경대를 썼다. 거울이 상자의 뚜껑 안쪽에 부착돼 있어 화장할 때만 볼 수 있다.

평상시는 거울이 감춰져 있으니 남자는 스스로 멋 내기가 어려웠고, 남자의 바람기는 잦아들었다.

 

현대 주택에서 현관 신발장 위에 걸린 큰 사각거울이나 전신거울은 남자의 바람기를 부추긴다. 큰 사각 거울의 좌우측에 화분 같은 것을 얹어놓아 거울의 넓은 화면을 좁게 하면 바람기를 막는 데 효험이 있다. 전신 거울의 경우 배꼽 아래쪽에 불투명 셀로판지로 도배를 해 바라보이는 면적을 좁게 하면 바람기가 잦아든다. 한마디로 집안의 거울을 살펴 거울이 좀 부족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비치하면 효과 만점이다.

 

내 남자의 바람기는 눈썹을 보고 알아차린다. 성격이 고집스럽고 잘 바꾸려하지 않고 융통성이 없는 사람을 ‘미련하다’고 말한다. 이때에 ‘미련(尾聯)’은 두 눈썹 사이가 가깝게 붙어 있음을 뜻한다. 미련하다면 바람을 잘 피우지 않는 사람이다. 두 눈썹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시류에 따라 잘 변하는 성격이니 조심해야 한다.

 

 

 

 

`추억의 창고`를 만들어라

 

 

 

 

조선시대 ‘성곽의 꽃’이라 불리는 수원성(화성)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다. 현재의 성은 1776년 정조 때 완성한 모습 그대로가 아니다.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상당한 부분이 훼손돼 1975년부터 4년에 걸쳐 복원됐다. 그렇다면 복원한 성곽이 어떻게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었을까. 기록을 중시한 우리 민족의 우수성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의 큰 행사가 있으면 그 내용을 자세히 기록해서 책자로 간행했다. 이것을 의궤(儀軌)라고 한다. 이런 의궤 제작의 전통에 따라 화성의 축성 공사 역시 전 과정이 ‘화성성역의궤’에 자세히 기록되었다. 그 결과 수원성을 본래의 모습대로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었고, 문화재적 가치까지 인정받았다.

 

한옥 또한 수장 공간이 많은 장점이 있다. 처마 밑을 이용하여 방 면적을 축소시키지 않으면서 집안의 유물이나 고서적들을 후손에게 고스란히 물려주었다. 하지만 현대의 아파트에는 한옥의 다락과 같은 수장 공간이 없다. 훗날 분명히 유품이 되고 추억이 될 만한 물건도 보관상의 문제로 내다버리기 십상이다. 이런 세태라면 우리의 손때 묻은 역사성 있는 물건들을 후손들이 한 점도 물려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역사의 단절을 의미한다. 따라서 발코니를 확장할 때면 벽장이나 다락 같은 수납공간을 별도로 만들 것을 권한다. 예전에 살던 집의 사진, 자식들의 손때가 묻은 MP3와 노트북, 아빠의 헌 구두, 엄마의 가계부, 아이들의 일기장, 키우던 개의 사진 등을 아무렇게나 넣어 두는 역사 창고로 삼으라는 얘기다.

 

서울 현대 계동사옥 본관과 별관(현대건설 본사) 사이 빈터에는 현대건설의 로고를 상징하는 피라미드 모양의 ‘현대건설 타임캡슐’이 있다. 현대건설은 1999년 5월25일 임직원 4500여명의 목표와 미래상을 적은 ‘꿈의 실현 계획서’를 타임캡슐에 담아 묻는 이벤트를 개최했다. 묻은 지 꼭 10년이 되는 2009년 5월25일 개봉키로 했다. 이 타임캡슐에는 개인의 10년 후 목표와 소망을 적은 글, 회사 직제표와 임직원 이름이 담긴 디스켓, 부서별 단체사진, 직원들의 가족사진 등 1999년 당시 회사 상황을 속속들이 보여주는 것들을 다양하게 넣었다고 한다.

 

특히 이 타임캡슐에는 2003년 8월 작고한 정몽헌 현대건설 회장의 10년 후 목표와 소망도 담겨 있다.

 

2009년 5월 타임캡슐을 개봉하는 행사는 10년 뒤로 미뤄졌다고 한다. 회사가 처한 환경 등을 고려해 지금보다는 10년은 더 있다가 여는 것이 낫다고 최고경영진이 판단한 결과로 보도되었다.

 

차라리 타임캡슐의 개봉 시한을 10년이 아니라 100년 혹은 500년 뒤로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꿈의 실현 계획서들은 현대건설이 아니라 훗날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양되어 역사적 사료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혹시 타임캡슐을 여는 행사가 끝나면 기록들이 곧바로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진 않을까 염려된다.

 

 

 

 

명당은 후손 100년에 영향 미쳐

 

 

 

 

 

몇 년 전 풍수의 신비를 벗기겠다는 의도로 TV에서 희한한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조상의 유골에서 나오는 생기가 후손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 풍수의 동기감응론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려는 시도였다.

한 교수가 세 명의 건장한 남자들에게서 정자를 추출해 각각의 시험관에 담았다. 추출된 정자는 시험관에 담긴 채 세 명의 남자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자리로 보내졌다. 그리고 카메라는 시험관과 그 시험관에서 추출된 정자의 주인을 양분하여 비추었다. 이윽고 교수가 A씨를 뒤에서 턱하고 쳤다. 그 순간 A씨에게서 추출한 정자가 심한 파문을 일며 떨었다. 계속해서 B씨를 쳤더니 B씨에게서 추출한 정자가 시험관 안에서 파문을 일으켰다. 교수는 컴퓨터 모니터를 보면서 실험 결과를 코멘트했다.

 

“사람과 정자가 서로 기(氣)로 감응하고 있다고 이 실험 결과는 말하고 있습니다.”

 

시신을 땅에 묻으면 피와 살은 곧 썩어 흙으로 돌아간다. 이를 풍수는 육탈(肉脫)이 되었다고 한다. 사람의 정기가 응결된 유골만 남아 서서히 산화한다. 뼈를 구성하는 원소는 생체 에너지와 독특한 진동 파장을 가지고 있다. 유골이 산화될 때에 고유의 에너지 파장(氣)을 공중으로 발산한다. 공간 속을 떠다니던 에너지 파장 즉 기가 동종의 기를 만나서 서로 감응을 일으키는 데 이것이 바로 동기감응론이라 한다.

 

이 감응은 기가 서로 잘 통하는 후손, 즉 가장 동일한 에너지 파장을 가진 후손에게 직접적이고 신속하게 영향을 미친다. 부모와 자식 간이 가장 강하고 다음은 조부모, 그 다음이 증조부모다. 혈육의 간격이 멀수록 약해지며 영향도 적다. 명당이라면 100년 동안 영향을 미치고 보통의 터라면 30년 안팎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무덤의 위치나 환경이 유골이 소골 되기에 최적의 조건이면 여기서 발생하는 좋은 기가 동질의 후손 기와 감응해 복을 준다. 물 속이거나 벌레나 나무 뿌리가 침범해서 나쁜 기가 발산되면 후손이 화를 당한다고 본다.

 

물론 동기감응론을 부정하는 사람도 만만치가 않다. 일부 사람들에게 풍수가 미신이나 잡술로 여겨지는 이유도 바로 풍수의 동기감응론이란 원리 때문이다.

그 중에서 실학자 정약용은 “살아계신 부모님이 자식 잘되라고 그 자식과 마주앉아 두 손 잡고 훈계해도 어긋나기가 쉬운데 하물며 죽은 사람이 어찌 살아있는 아들에게 복을 줄 수 있는가”라고 했다.

홍대용은 “죄수의 아들이 아비가 받는 악형 때문에 몸에 악질이 들었다는 말을 듣지 못했거늘 하물며 죽은 자의 혼백에 있어서랴. 어찌 죽은 아비가 산 아들에게 복을 내릴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이처럼 동기감응론의 초현실성은 학문적인 이론으로 체계가 잡혀 있지는 않다. 그것은 때론 자연과학도 명쾌하게 원인과 결과를 전부 객관성 있게 보여주지는 못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풍수에만 유독 합리성과 실증을 강요할 까닭이 있을까?

 

 

 

 

`자미원국` 과 이성계

 

 

 

 

 

제18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를 앞두고 유력한 3인의 후보가 각축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풍수와 관련된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다. 200억 원의 거금을 들여 제작한 이 드라마는 국운이 쇠한 고려 말 권력의 주변에 있던 풍수사들이 난세의 영웅인 이성계를 내세워 조선을 건국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초반부 시청자들 사이에 핫이슈로 떠오른 아리송한 단어가 자미원국(紫微垣局)이다. 고려 왕조의 사직을 보전하고 왕실의 무궁한 안녕을 가져다 줄 최고의 명당으로 그려진다. 그것을 찾아내 주인이 되면 누구든지 최고의 권력자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그 실체는 무엇일까.

 

동양의 천문학은 천상의 세계도 인간세계와 비슷하다고 믿는다. 임금과 관리, 백성이 사는 세 구획 즉 삼원(三垣)이 있고, 그들은 거대한 담인 원(垣)에 에워싸여 있다고 한다. 북극성을 상제라 생각하고 그 주변을 옥황상제가 사는 궁궐이란 뜻에서 자미원이라 부른다.

상제의 명을 받들고 집행하는 관리가 거처하는 관청을 태미원(太微垣), 백성이 모여 사는 마을을 천시원(天市垣)이라 부른다. 풍수에서 말하는 자미원국은 명당 중에서 북서방 즉 해방(亥方)에 큰 산이 우뚝 선 곳을 가리킨다.

 

오래 전에 작고한 풍수사 S씨는 자미원에 관한 명당 얘기로 세상을 들썩이게 했다. 그는 충청도 내포 일대에 자미원이 있다고 했다. 그는 “천하제일의 명당으로 세계 인구가 72억명이 되는 무렵에 통일된 세계를 다스릴 제왕이 이 혈의 발복으로 등극한다. 터럭만큼만 혈처를 잘못 잡아도 벼락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오래 전에 그 터를 찾아 표시해 두었고, 천기를 보아 불세출의 영웅을 낼 사람을 만나면 쓰게 한다고 했다. 그의 너스레는 대권을 꿈꾸는 요즘의 시대 상황과 맞물려 다시 관심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자미원국은 알라딘의 램프와도 같아 손에 넣기만 하면 그 주인이 곧바로 제왕이 될까. 풍수의 발복시스템 특히 묘지를 통한 음택 풍수 측면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명당에 응집된 기(氣)는 그곳에 묘를 쓰고 고인의 유골이 자연의 기와 감응해야 그 음덕이 동기감응론에 의해 후손에게 전해져 영향을 미친다. 공민왕이 고려왕실의 번영을 도모코자 자미원국에 희망을 걸었다면 그것은 그 자신의 물건이 아닌 부모나 조상의 묘지가 되어야 한다.

 

이성계 역시 천신만고 끝에 찾아낸 명당에 부모를 장사지내야만 ‘대왕의 꿈’을 이룰 수 있다. 마치 보물을 찾는 것처럼 자미원국이 남발되는 극을 시청하자니 만화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용산역세권개발 성공하려면…

 

 

조선 초기에 북악산 아래에 대궐을 지을 때였다. 무학대사는 천지신에게 지극정성으로 제사를 지낸 뒤 초주(礎柱)를 세웠다. 그런데 기둥이 곧 쓰러졌고 아무리 튼튼히 세워도 소용없었다. 원인을 알지 못해 고민할 때 어느 신인이 말했다.

 

“한양의 산천은 흡사 학이 날개를 편 모습이라 건물을 지으려면 반드시 학의 날개를 누른 후에 지어야 한다. 날개를 그대로 둔 채 그 등에 기둥을 세우려 하니 어찌 넘어지지 않겠는가”

 

남산에서 대궐의 뒷산을 보자 학이 날개를 편 형태와 비슷하자 깜짝 놀란 무학은 궁성(宮城)을 먼저 쌓은 뒤 기둥을 세웠다. 그러자 대궐을 짓는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됐다.

 

단군 이래 최대 개발 사업인 용산역세권개발 사업이 좀처럼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용산역 일대 36만㎡의 땅에 31조원 이상의 돈을 들여 100층 이상의 초고층 빌딩과 상업, 문화, 숙박, 거주시설 등을 갖춘 ‘서울의 맨해튼’을 만들겠다는 초매머드급 프로젝트다. 2006년 개발방침이 확정됐고 코레일, 롯데관광개발, 삼성물산 등 국내외 30여 사업주체가 주주로 참여해 2016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했다.

 

그러나 현재는 사업이 중단될 수 있다는 위기론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보상 지연에 따른 주민들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표면에 드러난 문제점은 부동산 경기 침체로 사업전망이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이주민에 대한 보상비 부담도 크고 사업 방식에 대한 최대 주주 간 견해차이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하지만 문제의 근본은 그게 아니다. 땅이 아직 사람을 위해 몸을 내놓을 준비가 되지 않았음에도 무리하게 개발을 강행하려는 사람들의 욕심 때문이다.

용산국제업무지구가 접한 한강변은 예전에 탄항(여울목)이라 부르던 곳으로 조선 초기에는 군사들의 연무장으로 사용됐다. 그리고 한양의 남쪽 한강변에 있다고 해 사남기(沙南基)로 불리다가 훗날 ‘새남터’로 바뀌었다. 그런데 새남터는 조선 시대에 국사범의 처형장이었다.

1456년 사육신이 이곳에서 목이 잘렸고, 1468년 남이 장군도 여기서 최후를 맞았다. 천주교 순교자들의 숱한 피가 새남터의 모래톱을 적시어 현재 ‘새남터 성당’이 세워져 있다. 이곳은 원혼이 많이 서려 있는 곳이고, 아직도 원통함이 풀리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보이고 느껴지는 살(殺)만 흉한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흉살도 피해야 한다. 사람이 분하고 억울하게 죽으면 저승에 쉽게 가지 못하고 원혼이 되어 죽은 장소에 머문다.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분풀이로 해코지를 한다. 옛 어른들은 사람들이 집단으로 사살된 곳이나 자살한 곳은 흉기(凶氣)가 머문다고 보아 아이들이 얼씬도 못하도록 했다.

 

용산역세권개발이 거친 풍랑을 잠재우고 순풍에 돛단 듯 성공하려면 우선 토지신을 위로하는 비보책을 써야 한다. 지구 내에 새남터의 원혼을 위로하는 위지령비를 세우거나 잡귀가 범접하지 못하도록 하는 비책으로 거북석상을 땅에 매설하면 큰 효험을 볼 것이다.

 

 

 

 

 

`첫날밤` 장소도 氣가 좋아야

 

 

 

 

사람은 산천의 기를 받고 태어난다. 산이 수려하면 귀인이 나고, 물이 좋으면 부자가 난다. 인걸은 지령이란 믿음은 잉태지와 생가가 좋아야 훌륭한 인재가 태어난다는 민간신앙으로 발전했다.

즉 똑똑하고 건강한 자식을 두려면 정자와 난자가 수태되는 순간 좋은 기를 받아야 하고 태어나 처음 마시는 우주의 기가 좋아야 한다며 합방할 시간과 장소는 물론 산방까지 가려왔던 풍습이다.

옛날에는 현대의 호텔 같은 숙박시설이 없었으니 잉태와 출생이 동일한 장소와 집에서 행해졌다. 그 결과 위대한 인물이 잉태되거나 태어난 방을 특별히 ‘태실(胎室)’ ‘산방(産房)’이라 부르며 문화재로 지정해 보호하는 경우도 많다.

 

조선 최고의 천재인 이이 선생은 평창의 판관대가 태실이고, 강릉의 오죽헌이 생가다. 모친이 동해에서 검은 용이 침실 쪽으로 날아드는 꿈을 꿔 산실을 ‘몽룡실’이라 부른다.

안동의 임청각에도 ‘영실(靈室)’이란 태실이 있는데 지기가 샘솟는 우물이 가까이 있어 그 방에서 삼정승에 버금가는 훌륭한 인물이 세 명이나 태어날 것이라 전해진다. 그렇지만 요즘의 아기는 어디가 태실이고 어디가 산실인지 도통 분명치가 않다. 뒤죽박죽이다. 대개 신혼여행을 떠나 첫날밤을 치르니 그곳의 어느 호텔이 태실로 생각되고, 출산은 모두 산부인과병원에서 낳으니 어느 병원이 산방일 테고, 아기를 집에서 키우니 생가는 집이다. 옛날에는 모두 한집에서 행해졌던 일이 현대에선 삼권 분립이 된 것처럼 제각각이다. 문제는 생기가 응집된 조용한 장소에서 건실한 관계를 통해 아이가 잉태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안동의 천전 마을에는 6부자가 나란히 과거에 급제했다는 현존하는 최고의 벼슬 명당이 있다. 의성 김씨 종가 댁(보물 제450호)으로 조선 중기에 김진이 처음으로 집을 짓고 살았는데, 명당의 조화인지 자식들이 모두 대과나 소과에 급제했다. 총 55칸의 단층 기와집으로 ‘口’자형 안채와 ‘一’자형 사랑채가 행랑채와 기타 부속채로 연결돼 전체적 배치는 ‘巳’자 평면을 이룬다.

 

이 집의 안채에도 ‘산방’이 별도로 있고, 급제한 다섯 아들은 모두 그 방에서 태어났다고 전한다. 그런데 지기의 훼손을 염려한 후손이 ‘가보’와도 같던 산방을 없애고 마루를 깔아 대청으로 만들었다. 이유는 영천으로 시집 간 딸이 첫째와 둘째 아들을 친정집의 산방에서 낳자, 예상대로 그들은 대과에 급제해 벼슬이 차츰 높아졌다. 그러자 후손은 자기 집의 정기를 시집 간 딸들이 모두 빼앗아 간다고 여겨 산방을 없앴으며 현대에 와서야 복원됐다.

 

이처럼 우리의 옛 선현들은 집에서 가장 깨끗하고 지기가 우수한 방을 택해 태실과 산방으로 삼았다. 세상을 경영할 훌륭한 아기를 낳으려면 좋은 터에 지어진 병원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좋은 기가 모인 잉태지를 선택해야 한다. 잉태지, 생가, 젖니를 갈 때까지 산 집이 같을 경우 가족력 질환이 생길 확률이 높다고 하니 이제는 병원과 생가뿐만 아니라 태실(잉태지)도 좋고 나쁨을 신중히 가리는 풍습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고제희 < 대동풍수지리학회장 > / 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