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시집 가거든 게으르지 말아라
딸을 향한 친정아버지의 당부, 송시열의 <계녀서>
햇볕 좋고 바람 좋은 5, 6월. 부쩍 결혼 소식이 들려오는 요즘이다. 요즘에는 결혼하는 자식에게 부모는 어떤 당부를 할까? 예나 지금이나 늘 품 안에 있던 딸이 시집을 간다고 하면, 부모들은 아쉽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며 남편과 함께 잘 지내기를 바라기도 할 것이다. 특히 전통적으로 딸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우리네 아버지들은 한동안 ‘분리 장애’를 겪기도 한다.
딸과의 이별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해 몹시 허전해하거나, 심지어는 거부 반응까지 보이는 것이다. 결혼식장에서 아버지들이 남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 아닐까 한다. 조선후기 한 아버지는 그러한 시집가는 딸에게 당부하는 말을 글로 써서 전해주기도 했다. 바로 송시열의 <계녀서戒女書>가 그것이다.
부디 이 책을 몇 번이고 읽으며 잊지 말아라
송시열宋時烈1607~1689은 조선후기 대표적인 유학자이자 문신이었는데, 특히 북벌론의 중심 인물이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 청나라와 굴욕적인 강화를 맺자, 송시열은 관직의 뜻을 접고 충북 황간으로 내려가 북벌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효종이 즉위하자 병자호란의 치욕을 갚아야 한다며 완강하게 북벌론을 제시했다.
송시열은 자신의 큰딸이 권씨 집안에 출가하게 되자 시집가서 지켜야 할 도리들을 한글로 써서 전해주었다. 굳이 한글로 써서 준 것은 조선시대 한글을 주로 사용했던 여성들의 입장을 최대한 배려했기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송시열은 대체 왜 시집가는 딸에게 그러한 <계녀서>를 써서 주었을까? 우선 그는 딸이 어린 나이에 출가하게 되어 걱정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네가 미성未成하여 출가하니, 늙도록 내 곁에 두어 가르치지 못하고 남의 집에 보내니
행여 인사와 매사를 어찌할 줄 모르는 고로 내가 답답하고 민망하여 여러 가지 소견을 써서 구차하게 경계하여 이르나니,
부디부디 뼈에 새기고 마음에 적시어 이 책을 한 달에 두세 번씩 보고 잊지 말아라.
하지만 실제론 조선후기 가문주의 시대가 되면서 딸 교육이 매우 중요해졌기 때문이었다. 조선 전, 중기만 해도 우리나라는 남자가 여자 집으로 가서 혼례를 올리고 그대로 눌러 사는 장가와 처가살이를 했다. 다시 말해 딸이 사위와 함께 친정부모를 모시고 살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가족관계에서 아들과 딸을 가리지 않았고, 친족관계에서 본손과 외손을 구별하지 않았다. 또 재산을 아들과 딸이 균등하게 상속받았고, 조상의 제사도 서로 돌려가며 지내는 윤회봉사를 했다.
하지만 조선후기엔 혼인제도가 이전과는 정반대로 여자가 남자 집으로 가서 결혼하고 사는 친영과 시집살이로 바뀌고, 가족제도 역시 아들, 특히 큰아들 중심으로 바뀌었다. 또 재산상속도 남녀균분에서 큰아들 중심으로 바뀌어 버렸다.
세상이 이렇게 갑자기 바뀌게 된 것은 다른 무엇보다 집안의 지위를 최고로 여기는 ‘가문주의’ 때문이었다. 조선후기에 이르러 가문이 중요시되면서 자기 가문을 지키기 위해 그러한 남성 중심적인 혼인과 가족 제도를 적극 도입했던 것이다.
그와 함께 가문을 지키기 위한 여성들의 행실도 매우 중요해졌다. 실제로 송시열 역시 집안이 잘 되고 못 되는 것은 모두 가모家母, 즉 안주인에게 달려 있으니 항상 부지런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시부모와 남편 섬기기, 노비와 자식 거느리기가 모두 가모家母에게 달렸으니 재삼 삼가할 일이요,
제사와 방적, 장 담그기, 조석 양식의 출입과 백 가지 일이 모두 가모에게 달려 있으니,
어느 틈에 게으르고자 할 마음이 있으리오.
송시열 계녀서(필사본).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혼인하는 딸에게 지어준 교훈서이다. 출가하는 딸에게 아녀자가 지켜야할 여러 가지 덕목을 훈계하는 내용으로 부모를 섬기는 법, 형제간의 우애하는 법, 제사를 받드는 법, 손님을 접대하는 법, 하인을 다루는 법, 각종 예의 범절 등이 적혀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남에게 존경 받는 여인이 되거라
송시열의 <계녀서>는 여자가 시집가서 지켜야 할 규범들을 차례대로 일러준 것이다. 그는 먼저 부모와 남편, 시부모를 섬기는 도리, 형제와 친척 사이에 화목하는 도리, 자식을 가르치는 도리를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는 제사 지내기와 손님 접대하는 방법을 일러준 다음, 평소 투기하지 말고 말조심하며 근검절약 하도록 당부하고 있다. 끝으로 병구완과 의복 음식, 노비 부리기를 비롯해서 물자의 임대와 매매 방법, 여러 가지 생활수칙과 선행善行 등을 일러주고 있다.
그것들은 철저히 유교적 사고에 입각해 있으며, 또 대단히 강요하는 어투로 서술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2장. 남편 섬기는 도리라’의 일부를 살펴보자.
부부 사이는 지극히 친밀하고 공경하는 것이 도리이니,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나 일동일정에 마음을 놓지 말고 높은 손님을 대하듯이 하여라.
이렇게 하면 저도 똑같이 대접할 것이니 부디부디 뜻을 어기지 말라.
하지만 <계녀서>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당시의 가정생활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음을 은연중에 엿볼 수 있다. 특히 남편의 외도로 인한 부부싸움이 적지 않았던 듯한데, 그래서인지 송시열도 딸에게 투기하지 말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투기하지 말라는 말은 남편 섬기는 대목에서 이미 말했으나,
투기란 것은 부인의 제일가는 악행이니 다시 쓰노라.
투기를 하면 친밀하던 부부 사이도 서로 미워하고 속이고 질병에 관계치 아니하고,
분한 마음과 악정惡情을 내게 하고, 시부모 섬기는 마음이 약해지고,
자연 사랑하는 마음이 덜해져서 노비도 부질없이 때리고 가사도 잘 다스리지 못하고,
늘 악정된 말로 하고 얼굴빛을 늘 슬프게 하여 남 대하기를 싫어하니,
그런 한심한 일이 어디 있으리오.
끝으로 송시열이 시집가는 딸에게 궁극적으로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단지 시부모에게 효도하고 남편을 잘 섬기며 친척들과 화목하게 지내기만을 바랐을까? 그보다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다해야만 남들에게 존경 받을 수 있다는 유교적 가치를 깨우쳐주고 싶었던 듯하다.
또 매사를 규모 있고 조리 있게 해서 지혜롭고 현명한 여인이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물론 그것들은 지나치게 여성의 희생을 담보로 하고 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말이다.
글_ 정창권 | 고려대학교 교양교직부 교수
여성이나 장애인, 노숙인 등 사회적 약자층을 재조명하여 출판과 방송, 영화, 공연, 전시 등 각종 문화콘텐츠로 개발하고 있다주요 작품으로 『거상 김만덕, 꽃으로 피기보다 새가 되어 날아가리』,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향랑, 산유화로 지다』,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 『조선의 부부에게 사랑법을 묻다』 등이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웹진
송시열 계녀서
{송시열계녀서}는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혼인하는 딸에게 지어준 교훈서를 필사한 책이다. 이 책은 선장본으로 되어 있다. 표지는 푸른색 직물로 감쌌으며 본문은 27장으로 되어 있다.
{계녀서(戒女書)}는 시집가는 딸을 교훈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었다. 이 책에는 딸을 출가시키는 부모가 딸에게 아녀자가 지켜야할 여러 가지 덕목을 훈계하는 내용이 실려 있다.
구체적으로는 시대와 각 가정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부모를 섬기는 법, 형제간의 우애하는 법, 제사를 받드는 법, 손님을 접대하는 법, 하인을 다루는 법, 각종 예의 범절 등이 수록되어 있다.
대표적인 {계녀서}로는 송시열의 {계녀서}와 한진원의 {한씨부훈(韓氏婦訓)} 등이 있다. 송시열은 1607년(선조 40)에 태어나 1689년(숙종 15)에 죽었다. 본관은 은진(恩津), 아명은 성뢰(聖賚),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 또는 우재(尤齋)이다. 그는 김장생(金長生)과 그의 아들인 김집(金集) 문하에서 학업을 연마하였다. 벼슬은 좌의정에까지 이르렀으나 생애 대부분은 재야에 머물면서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는데 크게 두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그 자신이 찬술하거나 편집하여 간행한 것으로 {주자대전차의(朱子大全箚疑)}·{주자어류소분(朱子語類小分)}·{이정서분류(二程書分類)}·{논맹문의통고(論孟問義通攷)}·{경례의의(經禮疑義)}·{심경석의(心經釋義)}·{찬정소학언해(纂定小學諺解)}·{주문초선(朱文抄選)}·{계녀서} 등이 있다. 다른 하나는 사후에 수집되어 간행된 문집이 있는데 {우암집(尤庵集)}·{송자대전(宋子大全)}·{송서습유(宋書拾遺)}·{속습유(續拾遺)} 등이 있다.
<참고문헌> 생활문화와 옛문서-민속박물관 학술총서 10(국립민속박물관, 1991), 한국민족대백과사전-송시열-(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유사·관련용어> 교훈서, 한씨부훈, 계녀서, 송시열, 주자대전차의, 주자어류소분, 이정서분류, 논맹문의통고, 경례의의, 심경석의, 찬정소학언해, 주문초선, 문집, 우암집, 송자대전, 송서습유, 속습유
戒女書
一. 父母 섬기는 道理라
二. 男便 섬기는 道理라
三. 媤父母 섬기는 道理라
四. 兄弟와 和睦하는 道理라
五. 親戚와 和睦하는 道理라
六. 子息을 가르치는 道理라
七. 祭祀 받드는 道理라
八. 손님 待接하는 道理라
九. 妬忌하지 말라는 道理라
十. 말 操心하는 道理라
十一. 財物을 ?節히 쓰는 道理라
十二. 일을 부지런히 하는 道理라
十三. 病患 모시는 道理라
十四. 衣服 飮食하는 道理라
十五. 奴婢 부리는 道理라
十六. 꾸며(借) 받는(受) 道理라
十七. 팔고(賣) 사는(買) 道理라
十八. 비손하는 道理라
十九. 종요로운 경계라
二十. 옛 사람의 착한 行實 말이라
계녀서(戒女書) / 우암 송시열
권유(權惟:1625-1684)에 시집간 맏딸에게 명심해야 할 여러 행실들을 기록해준 책으로, 시집간 딸을 걱정하고 살피는 아버지로서의 자상함을 느낄 수 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남자가 갓을 쓰게 되면(어른이 됨) 아버지께 절을 하게 되고, 여자가 시집을 가게 되면 어머니께 절을 한다고 하였으니 여자의 행실을 아버지가 가르칠 일은 아니지만 네가 비녀를 꽂기에 이르러 행실이 높은 집으로 출가를 하니 마지못해 대강 적어 주는 것이니 늙은 아버지의 말이 앞뒤가 맞지 않고 간단히 줄인 말이라 생각 말고 힘써서 행하도록 하여라.
부모를 섬기는 도리
아버지가 낳으시고 어머니가 기르시니 부모가 없으면 이 몸이 어떻게 세상에 태어나며 포대기에 싸인 젖먹이 때부터 성장하도록 부지런히 애쓰신 은혜를 생각하면 하늘이 끝이 없거늘 어찌 이를 잊으리오
옛사람이 말씀하시길 사람은 자식을 낳아봐야 부모의 은혜를 안다고 하였으니 머지않아 너도 부모가 되어 이를 알게 될 것이다.
남편 섬기는 도리
부부사이는 극진히 친밀하고 공경하는 것이 지극한 도리이므로 말하는 것이나 일상 생활하는 것이나 나설 때와 조용히 할 때라도 마음을 놓지 말고 높은 손님 접대하는 듯하여라.
시부모 섬기는 도리
시부모 섬기는 것을 제 부모 섬기는 것 보다 중요하게 할지니 나서고 조용히 할 때와 말하고 행할 때 부디 무심히 하지 말고 극진히 섬기도록 하여라.
형제 화목 하는 도리
형제는 한 부모의 피와 기운을 나누어 받아 같은 젖을 먹고 한집에서 자라며 그러다가 결혼한 뒤에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게 되지 않아 자연히 공경함이 부족하고 심하게는 서로 미워하고 헐뜯는 일이 있게 되니 이 어찌 참혹한 일이 아닌가. 더구나 재물을 탐내고 욕심이 많아져 인연을 끊고 의리를 저버리는 사람이 많으니 부디 조심하여라.
친척 화목하는 도리
친(親)은 같은 성(姓)의 겨레요, 척(戚)은 다른성의 겨레이다. 그 중에 촌수(寸數)의 멀고 가까움이 있고 정(情)의 두터움과 얇음이 있기는 하지만 모두 돌아간 조상의 자손인 것이다
옛사람이 9대가 함께 살되 화목하는 법이 ‘참을 인(認)자 백개를 써 붙였다’고 한다. 화목하는 도리는 참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다.
자식 가르치는 도리
딸자식은 어머니가 가르치고, 아들자식은 아버지가 가르친다 하거니와
아들자식도 글을 배우기 전까지는 어머니한테 있으니 어릴 때부터 속이지 말고 너무 때리지 말고 글 배울 때도 순서없이 권하지 말고 하루 세 번씩 권하여 책을 읽히고
잡된 장난을 못하게 하고 보는 데서 드러눕지 말게 하고 세수를 일찍하게 하고 친구와 약속하였다고 하거든 시행하여 남과 실언치 말게 하고 잡된 사람과 사귀지 못하게 하고
일가 제사에 참례하게 하고 온갖 행실을 옛 사람의 일을 배우게 하고 15세가 넘거든 아버지에게 전하여 잘 가르치라 하고 모든 일을 한결같이 가르치면 자연히 단정하고 어진 선비가 되느니라.
딸자식도 가르치는 도리는 같으니 모두 다부지게 하여 가르치고 행여나 병이 날까 하여 놀게 하고 편하게 하는 것은 자식을 속이는 것이니 부디 잘 가르쳐라.
제사 받드는 도리
제사는 정성을 다하면서 정결(淨潔)히 하며 조심스럽게 하는 것이 으뜸이니 몸을 정결히 하여 제사를 잘 받들면 자손이 복을 받을 것이나 그렇지 않으면 좋지 않은 일들이 있을 것이다.
남의 제사를 차려 보내거나 아버지의 친구에게 제사 음식 등을 차려 보낼 때에도 다 내집 같이 하고 남에게 보내는 것이라 하여 불결하게 하면 덕을 쌓는데 해롭고 복이 상하게 되는 것이니 부디 조심하여라.
손님 접대하는 도리
부유하고 귀한 손님이 오면 조심하여 잘 대접하고 가난하고 천한 손님이 오면 대수롭지 않게 하여 대접하는데 이는 덕스럽지 못한 행실이다. 늙은 사람과 젊은 사람은 잘 구별하여 대접하더라도 귀하고 천한 것과 가난하고 부유한 것은 부디 구별해서는 안 되느니라.
투기(妬忌)하지 말라는 도리
투기란 것은 부인의 제일가는 악행이므로 다시 쓰는 것이다.
내 아무리 망령되나 너를 없이 여기며 네 남편이 얻지도 않은 첩을 위하여 투기 말라고는 하랴 마는 부인의 행실에 지극히 중대한 일인 까닭에 다시 써서 거듭 경계하는 바이다.
말씀을 조심하는 도리
옛 속담에 여자가 시집을 가면 “장님 3년,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이다”라는 말이 있다.
장님이란 말은 보고도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것이며, 귀머거리란 말은 듣고도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말이며, 벙어리란 말은 필요하지 않은 말은 함부로 하지 말라는 뜻이니. 말을 삼가는 것이 으뜸가는 행실인 것이다.
백가지 행실 가운데 말을 삼가는 것이 제일가는 공부이니 부디부디 조심해서 뉘우침이 없게 하여라.
재물 절약하는 도리
재물이라 하는 것은 한이 있고 쓰기는 무궁하니 알아서 쓰지 못하면 나중에는 지탱하지 못하고 자녀들 결혼도 못시켜 상인이 되는 이가 많으니 두려운 일인 것이다. 만승(萬乘)천자라도 재물을 아끼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거든 하물며 필부의 집이야 절약해 쓰지 아니하고 재물이 어디에서 날 것인가.
제사 지낼때도 지나치게 장만하지 말고, 부질없는 허비를 하지 말고 의복과 음식을 너무 사치하지 말고 허탕한 일을 일체 하지 않으면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집을 잘 다스리는 법은 절약해서 쓰는 일 밖에 없는 것이다.
일을 부지런히 하는 도리
어미가 부지런해야 그 집을 잘 보존하고 게으르면 배고픔과 추위에 떨게 되어 혼사를 못하면 남도 천하게 여기게 되고 내 몸이 궁(窮)하여 마음이 부끄러운 것이다. 부디 부지런하기를 위주로 하여라.
병환 모시는 도리
내 부모나 시부모나 남편이 병을 앓게 되거는 머리를 빗지 말고 말소리를 크게 하지 말고 소리 내어 크게 웃지 말고 병 구원하는 사람과 의원을 부디 잘 대접하여라.
의복과 음식하는 도리
의복과 음식을 사치하게 가르칠 일은 아니지만 부인의 맡은 바가 의식 밖에는 없으니 의식이 용렬하면 부인네를 업신여기나니 옛글에 이르기를 부인이 규중에 있으나 알아야 할 일이 있으니 손님이 오면 음식을 보고 남편이 나가면 의복을 본다고 하였으니 어찌 살피지 아니하겠는가.
부인이 능란하면 한 가지 음식과 한 가지 의복을 하여도 봄직하니. 부디 정(正)하고 다시 정하게 하여 남이 웃지 말게 하여라.
노비 부리는 도리
부디 불쌍해하고 꾸짖지 말고 매칠 일이 있어도 꾸중하며 심하게 치지 말아라.
노비의 어린자실이라도 어여쁘게 여기고 병이 들거든 부모와 자식과 동생이 있는 노비는 죽을 쓸 쌀을 주고
돌볼 사람이 없는 노비는 다른 사람을 시켜 병구완을 하게 하고 위엄과 은혜를 아울러 행하면 자연히 충성스러운 노비가 되는 것이다.
꾸며(대(貸) 받는(수(受)) 도리
어지간하여 꾸지 않아도 견딜만 하거든 꾸지를 말아라. 부질없이 꾸기와 빚내기를 즐기다가는 갚을 때 공한 것 같으며 집이 자연 가난해 질 것이다.
꾸어 줬는데도 안 갚는 사람이 있으니 세 번까지 재촉하고 그 후에도 갚지 않고 다시 꾸어달라고 하거나 빚을 내어달라고 하면 그 때는 주지 말고 약간 그냥 주어 보내고 부디 연락하여 받으려 하지 말고 잊어버리면 스스로 부끄러워할 것이다.
팔고(매(賣)) 사는(매(買)) 도리
물건을 살 때에는 마음속에 생각하기를 내가 팔면 얼마를 받겠다고 헤아려 보고 팔 때 생각하기를 내가 사게 되면 얼마를 줄 것이라고 값을 대충해서 사고 팔면 자연히 마땅한 값대로 되는 것이다.
비손(소원) 하는 도리
무당과 소경(장님)의 말을 듣고는 기도하지 말고 혹 동네에서 굿을 하면 부인들이 굿을 보려고 가는 사람이 있으니 그런 한심하고 꼴답지 않은 행실이 어디 있겠는가
내 자손 중에 그러한 자손이 있을까 두렵고 또 걱정하는 것이다. 절에 가서 시주 불공하는 것은 더욱 허무하니 마음먹지도 말아라.
중요로운 경계(중요하게 경계하는 말)
사람이 귀하고 천하고 가난하고 부유함은 모두 정해진 분수에 달려있으니 남이 귀하고 벼슬이 높으며 집이 부유한 것을 보고 부러워 하지 말고 사람이 모든 일에 만족할 줄 알면 마음이 자연히 평안해 질 것이다.
추워도 나만큼 못 입는 사람을 생각하고 배고파도 나만큼 못 먹는 사람을 생각하면 자연히 부족한 근심이 없을 것이다. 사람이 대체로 교만하지 않은 것이 큰 덕이니 미천한 사람을 보아도 업신여기지 말고 추워하고 굶는 사람을 보아도 업신여기지 말고 불쌍하게 여기고 남의 것을 나무라지 말고 내 것을 자랑하지 말면 자연히 시비(是非)가 없게 되느니라.
옛 사람과 착한 행실이라
왕상과 맹종은 부모님께서 병환이 있어 겨울에 죽순과 잉어를 구하고 있었는데 맹종은 대밭에 가서 울었더니 죽순이 눈속에서 자라나고 왕상은 물가에 가서 울었더니 얼음이 터지면서 잉어가 나온 것이다.
네가 아직 어른이 못되어 시집을 가니 늦도록 내 곁에 두어 가르치지 못하고 남의 집에 보내므로 행여 인사(人事)와 여러 가지 일을 어찌할 줄 모르는 까닭에 내가 답답하고 민망하여 여러 가지 소견으로 써서 세세하고 구차하게 경계하여 이르나니 부디부디 뼈에 새기고 마음에 적시어 이 책을 한 달에 두 세 번씩 보아 잊지 말아라.
남자의 소학(小學)과 같이 알아 이 책을 공경하고 시가에 가서 크고 작은 일에 네 허물로 말미암아 부모에게 시비가 없게 하는 것이 가장 큰 효도가 되니 이것을 마음 속 깊이 새겨두고 모든 일을 하면 세가 비록 내 곁을 떠나 있어도 나의 슬하에 있어 내 말을 듣는 듯 할 것이니라 부디부디 명심하여 경계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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