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問/古典

다산 실학의 西學的 배경 / 나일수

경호... 2013. 1. 25. 02:26

다산 실학의 西學的 배경

 

 나일수(서울대)


1. 서론

다산 사상은 성리학과 비교해 볼 때 분명하게 근대성을 띠고 있다. 다산의 성리학적 세계관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과 전면적인 비판은 바로 성리학의 중세적 관념체계를 넘어서서 근대의 징후를 드러내고 있다. 다산은 여타 다른 실학자들과는 달리 경학經學을 학문의 축으로 삼았기 때문에 성리학과의 대립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북학파 실학자를 위시하여 당시의 실학은 경학적 기반의 부재로 인하여 경세經世의 혁신革新과 실용實用의 개량改良을 축으로 삼아 전개되었을 뿐 인간과 세계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성리학의 구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며 성리학과 분명한 차이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산은 경학의 토대 위에서 성리학의 틀을 과감히 벗어버리고 성리학에 전면적 도전을 감행한다. 특히 다산의 실학론實學論에는 성리학의 이기론理氣論과는 다른 새로운 세계관과 그에 따른 학문관學問觀이 제시된다.

그렇다면 성리학과 다른 다산의 새로운 사상은 어떻게 가능했던 것인가? 아무리 독창적이고 위대한 사상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한 위대한 천재 사상가의 혼자 힘으로 구축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다산의 사상 역시 그 시대의 지적인 풍토와 사회적 현실과의 만남에서 가능했다고 보아야 한다.

다산에게는 성리학과는 체제를 전면적으로 달리하는 새로운 사상과의 접촉이 있었을 것이고, 또한 조선 후기의 피폐한 현실을 타개해 나가는 데 있어서 당시의 사회적 지도 이념인 성리학으로는 역부족이라는 다산의 학문적 자각自覺이 있었을 것이다. 탈성리학적인 다산 사상(보다 구체적으로는 茶山 實學)의 근원을 규명해 보려는 선행의 연구들은 다음과 같은 순서를 밟아오면서 점차 선명화鮮明化되고 있다.

여기에는 첫째로, 다산 사상의 출현을 송대宋代를 거치면서 관념적인 노불老佛 사상의 영향을 받아 실천 지향의 원시유학原始儒學을 대신하게 된 성리학과는 다른, 노불사상의 영향을 받기 이전의 순수 유학 곧 ?공맹孔孟 본래의 유학(이른바 洙泗學)으로의 복귀復歸?1)에서 찾고자 하는 관점이다.

둘째로는, 다산 사상을 ?유학 내의 자기 발전?으로 규정하는 것으로서 ?수기修己 지향의 유학에서 실천實踐 지향의 유학(이른바 實學)으로 전환?2)한 것으로 파악한다. 사회의 현실적 문제 해결에 미흡했던 성리학의 공소성空疎性을 극복하고자 등장했던 조선 후기 실학의 체계 안에 다산 사상을 동류로서 포함시키려는 것이다.

셋째로는, 다산 사상의 독특성을 그 당시 사상계에 풍미했던 ?서학?3)의 수용에서 찾고자 한다. 다산을 실학자이면서 동시에 서학자로 규정한다. 기존의 유학적풍토에서 자란 다산이 새로 유입된 ?서학사상을 수용함으로써 유학을 극복?4)하였거나, 혹은 다산이 ?경학의 유신론적有神論的인 천관天觀의 바탕 위에서 천주교 교리에 공명共鳴?5)하게 되었거나, 또는 다산이 ?천주교 사상이 지닌 종교적 사유思惟를 유학의 체계 안에서 철학화哲學化?6)한 것으로 파악한다.

넷째로는, 다산 사상이 성리학과 구분될 수 있는 가장 큰 차이를 성리학 일변도의 지적인 풍토 아래서 실학또한 정당한 학문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새로운 학문관의 수립에서 찾는다. 다산 사상을 포함하는 실학은 그 이전의 성리학적 학문관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학문관의 정립?7)에서 가능했다는 것이다. 율곡栗谷과 같은 실학 이전以前의 학자들이 단순히 시무책時務策의 차원에서 사회의 여러 가지 모순점을 지적하고 사회 개혁적인 주장들을 제시하는 것과는 달리, 다산은 사회 현실에 관한 연구와 그 개혁을 위한 주장들(이른바 實學)을 하나의 ?정당한 학문?으로서 취급하였다는 점이다. 실학 이전의 학자들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이러한 새로운 학문관은 물론 성리학과는 다른 새로운 세계관의 수용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을 것이며, 따라서 다산 사상을 포함하는 실학은 ?성리학의 역사적 변용變容으로 파악할 수 없다?8)는 것이다.

1) 李乙浩, 『茶山經學思想硏究』, 乙酉文化社, 1966.
2) 尹絲淳, 『韓國儒學論究』, 玄岩社, 169쪽., 1980.
3) 西學이란 용어는 明淸代에 中國에서 활동했던 천주교 선교사들이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李元淳, 『朝鮮西學史硏究』, 一志社, 1986, 36쪽.). 實學이란 용어가 후대 연구자들에 의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는 사실과 비교하여 볼 때, 서학이란 용어는 邪學, 天學, 天主學등으로 다산 당시의 문헌에 나타난다. 서학 사상을 담은 ?西學書?란 명칭은 다산의 학문적 활동 이전부터 일반화되어 있었다.
4) 崔奭祐, 『韓國敎會史의 探究』, 敎會史硏究所, 1982.
5) 李元淳, 앞의 책, 106쪽.
6) 琴章泰, 『東西交涉과 近代韓國思想』, 成均館大學校出版部, 1984.
崔東熙, 『西學에 對한 韓國實學의 反應』, 高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1988.,
7) 李昌國, 「燕巖 朴趾源의 敎育思想 硏究」,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 1987.
8) 丁淳佑, 「茶山의 形而上學」, 『茶山學報』(제5집), 茶山學硏究院,,1983, .39-40쪽. 다산의 이기설의 배경에는 西學이 자리잡고 있고 그의 이기설은 기존의 이기설을 西學的으로 해석한 것으로서, 다산 사상을 포함하는 실학을 성리학의 역사적 변용으로 파악하는 논리에는 異論이 있다고 한다.


앞의 두 관점은 모두, 다산 사상이 출현하게된 일차적인 원인을 조선 후기의 불합리한 제도와 현실 문제에서 찾고 있다. 다산 사상은 당대의 사회적?제도적 모순과 이 모순을 해결하는데 성리학이 역부족이었다는 사실로부터 출현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뒤의 두 관점은, 조선 후기 사회의 현실적 모순만으로는 다산 사상이 출현할 수 없다고 한다.

먼저 셋째 관점은 서학 사상, 곧 성리학과는 전혀 다른 세계관과 사상 체계를 가진 서양 과학과 천주교 사상과의 접촉에서 다산 사상의 독창성이 가능했다고 한다. 또한 넷째 관점은 세계관의 변화가 수반된 학문관의 변화에서 다산을 포함한 여러 실학자들의 주장이 지닌 의미를 파악해야 할 것이며, 이러한 학문관의 변화는 시대적인 모순만 가지고서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처럼 실학을 새로운 학문관의 정립으로 보려는 시각은, 실학자로서의 다산의 사상을 ?원시유학으로의 복귀? 또는 ?유학내의 자기 발전?으로 보려는 관점과는 대립되면서도, 다산 사상의 출현을 서학의 수용에서 찾고자 하는 관점과는 양립兩立할 수 있다.

진산사건珍山事件(1791) 이전에 청년 다산이 접촉했던 서학사상이 바로 다산의 세계관과 학문관 변화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상정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정통사상인 성리학이 사회 현실과 부합할 수 없다는 다산 자신의 현실 인식의 바탕 위에서 서학 사상을 수용함으로써 새로운 세계관의 형성과 함께 그로 인해 새로운 학문관을 전개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다산 사상의 형성을 서학과 관련지어 파악하고자 할 때 여기에 가장 대립적인 위치에 있는 것은 다산 사상을 수사학洙泗學과 관련지으려는 관점이다. 그렇지만 성리학만이 배타적으로 통용되는 지적 풍토 아래서, 다산이 서학의 새로운 관점을 지니고서 공맹을 재해석한 후 서학의 관점에 동조하는 자신의 주장을 공맹을 가탁假託하여 제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산 사상과 서학과의 관련성이 확인된다면, 다산 실학의 근원을 원시유학과 관련지으려는 경향 및 유학 내의 자기 발전으로 보려는 관점은 재검토될 필요가 있으며, 다산 사상의 근원을 서학의 수용에서 또는 서학의 수용에 따른 새로운 학문관의 정립에서 찾고자 하는 관점은 보다 타당성을 얻게될 것이다.


2. 성리학에 대한 다산의 관점

다산 사상의 출현 배경을 당시의 사회 현실에 대한 다산의 비판적인 인식과 서학의 수용으로 모아볼 수 있다면, 조선 후기 사회의 학문적 기반이자 사회적 지도이념인 성리학에 의하여 규정된 현실 상황은 어떤 모습을 띠고 있었으며, 이에 대한 다산의 관점은 어떤 것이었을까? 성리학에 대한 다산의 관점을 탐색해 본다.

먼저, 성리학의 학문관 아래서는 인도人道의 확립(修身)은 자연적自然的으로 물리物理의 질서秩序(治事)를 가능케 한다고 보았다. 수신만 되면 우주宇宙의 만사萬事는 저절로 다스려지게 된다는 관점이다. 성리학의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의 관점에 의하면,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은 하나의 태극을 바탕으로 하여 하나의 ?리理?로 수렴될 수 있으며 또한 인간은 우주의 궁극자인 태극太極의 가장 빼어난 성질을 타고나기 때문에, 인간계와 사물계는 하나의 ?리?를 중심中心으로 상호관련성을 가질 뿐 아니라 인성의 확립確立은 물성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9).

성리학을 학문적으로 체계화시킨 송유들 가운데서 주자朱子는, ?성性이 곧 이理?(性卽理)다 하여 리와 기를 써서 인성과 물성을 설명한다. 그는 만물 속에 보편적으로 내재된 리를 모두 포괄하는 최상最上의 리를 태극太極이라고 한다(總天地萬物之理, 便是太極)10).

세상 만물은 모두 이 태극으로부터 리를 분수分殊받은 태극의 구현체이고 또 이 태극은 리로서 만물 속에 내재해 있다11). 이 태극太極(理)이 인성 안에 내재된 것을 명덕明德이라고 하였는데 이 명덕은 만물의 이치를 구비하고 있으며 만사萬事에 올바르게 대응對應할 수 있는 것이라 하였다12).

문제는 인욕人欲의 사사로움이 명덕을 가림으로써 잘못된 인식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지만 거경居敬을 통해 그러한 인욕이 발동하지 못하도록 한다면, 어떤 현상이나 사물의 모습이 명덕에 와서 닿게 되고 그렇게 되면 명덕의 작용에 의하여 현상이나 사물의 올바른 이법理法을 알게 되고 그에 대한 대응도 할 수 있으며, 그리고 이처럼 대응이 절도에 맞게 되면, 외인外人과 외물外物에도 감화感化를 주어 순종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13). 따라서 치인치사治人治事의 근본은 수신修身이고, 치인치사는 수신의 공효功效가 된다. 이른바 본말론적本末論的인 시각을 갖고 있다. 근본根本에 해당되는 인성의 확립은 말단末端이 되는 물성을 자연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다고 간주한다.

이러한 본말론에 규정받는 당시의 성리학적 학문관에 의하면, 본(修身)에 관계된 내용만 학문의 범주에 들어올 수 있었으며 수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으로 인식된 내용을 공부하는 것은 학문하는 것으로 볼 수 없었다. 이로 인해 말(農工商에 관한 내용인 治事의 學, 즉 實學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했던 내용)의 영역은 사대부의 학문 범위에서 탈락되고 중인中人이하층에서나 다뤄야 할 범위로 간주된다. 사대부의 학문범위를 축소내지 위축시키고 있었던 성리학의 본말론을 지탱해주는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 인물성동론에 의한 인도人道와 물리物理의 연계에 있다고 볼 때, 이러한 본말론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인성과 물성 사이의 분리가 필요하였다. 성리학의 관점은 인간과 사물 사이에 본연성은 동일하나 기질성의 차이로 인해 차이가 난다는 인물성동론과 이에 따른 인물성연계론이었다.

그러나 다산은 성삼품설性三品說을 제기함으로써14) 성리학에서 인간과 사물 사이에 동일하다고 보는 본연성이 아예 다르다고 하여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을 제시하며, 인간과 사물을 연속적으로 파악할 때는 주관을 떠난 객관의 세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하여 인물성이론人物性離論을 제시한다. 다산은 인성과 물성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라 하여 인성과 물성을 분리시키며 인도에 의한 물리物理의 자연적인 변화를 거부함으로써 본말론을 탈피한다. 그렇다면 다산으로 하여금 인성과 물성 간의 연계성을 분리하도록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다산이 서학사상을 수용했다면, 인물성 간의 동이同異와 분리分離 문제가 서학사상 속에서 확인되어야 할 부분이다.

9) 『中庸』22, ?오직 천하의 至誠이라야 그 타고난 본성을 다할 수 있으며, 그 타고난 본성을 다할 수 있어야, 人性[修己]을 다할 수 있다. 人性을 다할 수 있으면, 物性을 다할 수 있고, 물성을 다할 수 있으면 천지의 化育을 도와줄 수 있고, 천지의 화육을 도와줄 수 있다면 天地와 함께 설 수 있다.

?(唯天下至誠, 爲能盡其性, 能盡其性則能盡人之性, 能盡人之性則能盡物之性, 能盡物之性則可以贊天地之化育, 可以贊天地化育則可以與天地參矣) ;『中庸』25, ?

誠이란 자기 완성[修己]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만물이 완성[治事]될 수 있게 한다.?(誠者, 非自成而已也. 所以成物也)
10) 朱憙, 『朱子語類』1:1, ?太極只是天地萬物之理.?
11) 朱憙, 『朱子語類』1:1, ?在天地言, 則天地中有太極, 在萬物言, 則萬物中各有太極.?
12) 朱憙, 『大學章句』, 經一章註, ?明德者, 人之所得乎天, 而虛靈不昧, 而具衆理而應萬事也.?
13) 『中庸』1, ?中과 和를 지극히 하면 하늘과 땅이 바로 잡히고 만물이 자라난다?(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朱熹, 『朱子語類』 8:20, ?자신을 이루어야 비로소 外物을 이룰 수 있으니, 外物을 이루는 것은 자신을 이루는 것에 달려 있다?(成己方能成物, 成物在成己之中)
14) 『中庸講議』卷一, 46([이하 1:46]), ?性有三品, 草木之性有生而無覺, 禽獸之性而生而又覺, 吾人之性而生而覺又靈又善, 上中下三級截然不同."


둘째, 성리학에서는 수신의 방법을 실천적인 행사行事가 아닌 이론적인 도문학道問學의 공부에서 모색하고 있었다. 수신론에서 도문학의 공부를 강조한 것은 덕의 선천적인 내재론內在論에 근거하고 있다. 주자는 『대학大學』의 삼강령三綱領 중 제1강령인 ?명명덕明明德?에 대한 해석에서, 명덕을 태극과 동일시하여 인간의 마음에 내재하는 것으로 본다. 인성 안에 내재된 명덕은 바로 하늘(理)로부터 부여받은 인의예지仁義禮智의 4덕四德이다. 주자는 마음속에 인의예지의 덕이 태생적으로 구비具備되어 있다고 한다.

문제는 인간의 마음에 선천적으로 4덕이 내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질과 인욕의 방해로 인하여 내재된 덕이 밖으로 발현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때 명덕을 밝힌다는 것(明明德)은 경敬을 통해 마음을 바로 잡고(治心) 본체의 밝음을 회복함으로써(明心), 기질과 인욕을 제거하고 4덕德을 온전하게 발현시키려는 것이다. 성리학에서 수신의 요체는 치심治心과 명심明心에 있었으며, 치심과 명심을 통해 인성 안에 내재된 덕을 발현시키려는 것이다. 다산이 보기에15), 덕의 내재론과 발현론에 토대한 성리학의 입장은 수신의 요체를 도문학(格物致知)에서 찾고 있으며 이로 인해 『대학』의 8조목 안에서 성신誠身(誠意正心) 앞에 격물치지를 둔다. 도문학의 공부를 통해 성신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산은 수신함에 있어 성의정심誠意正心 앞에 격물치지를 두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물의 이치를 궁구窮究하는 격물치지 자체는 지리支離한 일이고 끝없는 탐구의 과정으로서 격물치지에 이른 후 일을 실행實行하는 것은 너무 늦다고 한다.

15) 『中庸講義補』2:44, 46, ?주자가 말하길, 誠身은 善에 밝다는(明善) 것이다. 格物致知를 통해 至善을 참으로 알지 못하면, 반드시 好色을 하듯 善을 좋아하고 악취를 싫어하듯 惡을 미워할 수 없다. … [기질의 방해를 극복하고 본연성을] 능히 극진히 한 사람은 知가 밝지 않음이 없으며, 처함에 마땅하지 않음이 없다?(朱子曰, 誠身在乎明善, 蓋不能格物致知, 以眞知至善之所在, 必不能如好好色如惡惡臭. … 能盡之者, 知之無不明, 而處之無不當也).


"만물을 헤아리고 이렇게 아는 것이 투철하게 되기를 기다린 후에 성의誠意하려 하고 수신修身하려 한다면 결국 늦어지고 말 것이다. … [그러므로] 어느 틈에 천하만물의 이치를 다 캐낼 수 있을 것인가. … 요즈음 학자들은 텅텅 비어 아무 것도 없는 곳에 돌연히 그의 뜻을 정성스럽게 한다 하기도 하고 텅텅 비어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그의 마음을 바르게 한다 하기도 한다. 깊고 넓어 눈이 아찔하고 휑하게 비어 있어 깊숙하기만 하니 머리도 찾을 길이 없거니와 꼬리도 붙잡을 길이 없는데 하물며 성의誠意 위에 또 다시 격물치지格物致知라는 이층二層을 덧붙여 놓으니 어지럽게 뒤섞여져서 그 단서를 찾을 길이 없다. 평생토록 공부를 한다고 하더라도 안다는 일이 오히려 부족할 것인데 하물며 실행實行할 수 있겠는가."16)
16) 『大學公議』2:20, ?故欲待此物之格此知之至以而后, 始乃誠意始乃修身, 則亦以晩矣. … 奚假窮天下萬物之理哉. … 今之學者於空蕩蕩地, 欲誠其意於空蕩蕩地, 欲正其心. 滉瀁眩 虛廓幽寂沒頭, 可模沒尾可捉, ?於誠意上面, 又加之以格物致知二層, ?然?亂莫知端緖. 一生用功, 而所知猶不足而. ?於行乎.?

그런데 수신의 방법을 격물치지에 부여할 때의 문제점은, 수신의 방법이 자연이 사사물물事事物物의 이치를 탐구하는 격물치지와 연계됨으로써, 결과적으로 도문학의 공부가 없이는 수신이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되는 점이다. 성리학에서 수신과 도문학의 공부가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은, 직접적으로는 성리학의 수신론에서 추구하는 제일 목표가 기질 제거와 본성 회복에 두었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간접적으로는 수신과 연관되었다고 여겨진 성리학만 학문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수신과 도문학의 공부가 연계되었다는 말은, 뒤집어 생각하면, 수신은 이론적인 도문학의 공부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며 아울러 도문학을 통하지 않고는 수신이 불충분한 것으로 간주된다는 말이다. 이때 수신과 도문학 공부의 연계 문제가 안고 있는 난점難點은 무엇이었을까?

성리학의 이기론에 기초한 인성관에 의하면, 상지上智와 중인中人에 비해 서민하우庶民下愚는 선천적으로 기질이 탁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인성관 아래서 서민하우는 태생적으로 탁하고 그릇된 기질을 부여받았다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그러한 기질을 변화시키는 데 필수적인 과정으로 여겨지는 도문학의 공부에서도 배제되어 있었다. 서민하우는 사회적으로 공정한 대우를 받기에는 불리한 기질과 탁한 성품을 갖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에 머물지 않고 교육 기회의 상실로 인하여 기질 개선의 가능성까지도 상실한 것이다. 이렇듯 도문학의 공부와 수신을 연계시킨 성리학의 수신론은, 서민하우로 하여금 성품에 있어서의 열악성을 주지시켰을 뿐만 아니라 교육 기회마저 주지 않음으로써, 어쩌면 그들의 도덕적 삶을 개선하는 일에 스스로 포기 상태에 빠지게 하거나 아니면 당시 사회적으로 주어진 규범과 관례에 묵종하게 하였을 것이다.

"[기질을] 맑게 품부받은 자는 현인이 되고 탁하게 품부받은 자는 하우가 된다"(稟之淸者爲賢, 稟之濁者爲愚)는 정자程子의 말과 같이 이러한 성리학적 구도 아래서, 개인의 선천적?유전적 요인인 기질氣質은 지적知的?도덕적道德的 능력과 필연적 관련을 맺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조선사회의 신분제를 정당화하고 구현하는 데에도 이 기질성의 논리가 사회적 이념으로 작용하였다고 보인다. 그러나 다산은 기질과 도덕적 능력 사이의 필연적 관련을 거부한다.


"사람의 선악善惡은 [타고난] 기품의 청탁淸濁과 관계가 없다. … 지금 여염의 비천한 백성들이 어리석고 우둔하기 소와 같으나 능히 효자의 행실을 이룩한 사람을 셀 수가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노래와 춤에 능하고 변설이 능란한 여인네 가운데 음淫하지 않는 사람이 드물고, 누렇게 뜨고 시커멓게 탄 얼굴에 어리석고 우둔한 사람들 가운데 오히려 열녀의 정절貞節을 힘쓰는 여인네들이 많으니, 선악이 기질의 청탁에 관계가 없음은 이와 같다."17)
17) 『孟子要義』2:23, ?人之善惡, 不係氣稟之淸濁. … 閭巷卑微之民, 椎齒如牛, 而能成孝子之行者, 不可勝數. 婦人淸歌妙舞, 辯慧機警者, 鮮不爲淫, 而黃首黑面, ??陋劣者, 多辯烈女之節. 善惡之不係乎淸濁也如此.?


인간의 지적 능력은 기질과 관련을 맺을 수 있으나 도덕적 능력은 기질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기질의 편차는 본성의 선악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선유先儒[宋儒]는 늘 기질의 청탁이 선악의 뿌리라고 여겼으니 틀리고 어그러진 것이다. … 산천山川 풍기風氣의 강유剛柔나 부모父母의 정혈精血의 청탁은 총명과 우둔을 결정할 수는 있으나 선악을 결정할 수는 없다."18)
18) 『論語古今註』9:12, 16, ?其于本性之善惡, 了無關焉. 先儒每以氣質淸濁爲善惡之本, 恐不無差舛也. … 若夫山川風氣之剛柔, 父母精血之淸濁, 所以爲慧鈍, 非所以爲善惡.?


기질은 지적 능력에는 영향을 줄 수 있어도 도덕적 능력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다산은 이러한 기질성의 논리가 결과적으로는 그릇된 방향으로 흘러 도덕적 결정론으로 변질될 것을 우려한다. 기질성의 논리는, 서민하우와 같이 척박한 기를 가지고 있는 계층에서는 도덕적 무기력과 자포자기로 나타나며, 청수淸粹한 기를 가지고 있으면서 학문적으로 뛰어난 계층에서는 근거 없는 도덕적 자만심이 만연한다는 점이다.


"상지는 태어나면서 선하고 하우는 태어나면서 악하다고 했으니, 이 설은 천하에 독毒을 뿌리며 만세에 화禍를 끼침이 홍수나 맹수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태어나면서 두뇌가 총명한 사람은 장차 스스로 거만하게 되어 성인인 체 하면서 죄악에 빠져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고, 태어나면서 우둔한 자는 장차 자포자기自暴自棄하여 자기 개선에 힘쓸 생각을 아예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19)
19) 『孟子要義』2:22, ?上智生而善, 下愚生而惡, 此其說有足以毒天下而禍萬世, 不但爲猛獸洪水而已. 生而聰慧者, 將自傲自聖, 不懼其陷於罪惡, 生而魯鈍者將自暴自棄, 不思其勉於遷改.?

또한 학자들의 공부론에 있어서도, 수신과 도문학의 공부가 연계될 때는, 현실적 문제 해결과 행사에는 소홀하고 사변적인 이론의 탐색에만 몰두하도록 할 것이다. 이에 대해 다산은 ?격물치지와 명선明善은 다른 것?20)이라 하여 수신(居敬)과 도문학의 공부(窮理)를 각각 별개의 것으로 보며 서로 다른 영역으로 구분한다. 다산이 수신과 도문학의 공부를 별개의 것으로 구분한다는 말은, 수신의 방법을 도문학의 공부 아닌 다른 방법을 통해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신의 요체를 도문학의 공부에 부여하는 방식은 덕의 선천적인 내재론과 연관되어 있었다.

이와는 달리 다산은 명덕을 내재된 덕이 아니라 ?효제자孝悌慈 또는 인륜人倫?이라고 하여 인간의 마음에 외재적外在的인 것으로 생각한다. 덕이 선천적으로 마음에 내재되어 있다는 성리학의 주장을 거부하면서, 반면에 원래 마음에 없던 덕을 행사와 실천을 통해 후천적으로 채워가야 한다고 하여 덕의 외재론을 주장한다. 다산으로 하여금 이렇듯 수신과 이론적인 도문학과의 연계성을 거부하고 덕의 내재론을 부정하면서 덕의 외재론을 주장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수신과 도문학 공부 사이의 불연계성과 덕의 외재론 여부도 서학사상 속에서 확인되어야 할 부분이다.

20) 『中庸講議』1:43, ?格物者格物有本末之物也, 致知者致知所先後之知也, 格致與明善不同. 明善者知隱之, 知微之顯, 知天之不可斯也."


셋째, 성리학에서의 천天은 인격신적人格神的인 관념이 아니라 자연론적自然論的, 자연신적自然神的 관념을 갖고 있었다. 성리학의 천 관념觀念에 의하면, 태극(理)은 인간의 본성 안에 내재하는 것이어서(性卽理) 천과 인간의 본성(本然之性)은 동일한 것으로 파악되었고, 또한 천(하늘)은 지각 능력이 없는 이법으로 간주되었다. ?쉬지 않고 돌고 돌아 그치지 않는 것이 하늘이다. 그런데 지금 저 하늘 속에 죄와 악을 판결하는 자가 있다고 해서는 안 된다?21)는 주자의 말과 같이, 성리학에서 우주의 궁극자로 파악된 태극(天)은 무의지적無意志的이고 자연적인 이법으로서, 신앙 안에서 숭배의 대상이었던 것이 아니라 도문학의 과정 속에서 다뤄지는 형이상학적인 탐구의 대상이었다.

성리학의 천은 모든 개별적 존재의 논리적 근거내지 그 변화과정을 주재主宰하는 원리로서 인식되는 것이었지 초월성超越性을 특징으로 하는 인격신은 아니었다. 이처럼 내성화內省化된 천 또는 우주의 자연법칙화自然法則化된 천은 도문학의 영역에서 다루어야할 것으로 인식되었고, 신앙적으로 하늘을 숭배하는 천에 대한 인격적 이해방식은 오히려 미숙한 인식의 단계로 평가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당시에, 상제上帝(天)에 대한 ?제의祭儀?는 천자天子만이 집행할 수 있는 특권이었고, 조선 사회의 군왕君王이하 모든 백성은 직접 천제天祭를 드릴 수 없는 것으로 제약받았다22). 조선후기 사회에서 천은 이기론 내의 보편적인 존재로만 인식되고 있어서, 도문학을 통한 천에 대한 접근 방식이 아니고서는 신앙의례信仰儀禮와 제사의식祭祀儀式을 통해서 천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관념적으로나 혹은 사회제도적으로나 봉쇄되어 있었다. 이로 인해 도문학의 기회를 상실한 서민하우는 천에 대한 접근마저 봉쇄된 처지에 놓여 있었고, 결국 天은 도문학에 관여하는 사람들만의 독점물이 된 셈이었다.

수신의 요체를 도문학의 공부에 두었던 사회적 풍토 아래서 하늘에 대한 접근마저 어려운 서민하우는, 성리학이 원래 의도했던 바가 그러한 것이 아니었으나, 현실적으로 도문학을 통한 수신의 가능성은 제약받았을 뿐 아니라 관념적으로도 인격적인 천(통칭으로 ?하느님?)과의 만남을 통한 수신의 가능성마저 상실했던 것이다. 도문학과 천(하늘)이 연계되어 있는 상황 아래서는 양자간의 연계성이 관념적으로 분리되어야 비로소, 도문학을 통하지 않고도 하늘에 대한 접근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다산은 이법아닌 인격신인 ?상제 천? 관념을 제시하면서 상제는 도문학을 통한 형이상학적인 탐구가 아닌 신앙적인 섬김의 태도로 다가가야 할 존재임23)을 주장함으로써, 도문학의 영역 속에 갇혀있던 천을 새롭게 신앙의 영역 속으로 분리해 내고 있다. 다산으로 하여금 초월적인 인격신과 형이상학적인 이법 간의 구분이 가능할 수 있도록 성리학과는 다른 천관을 제시해 준 것은 무엇일까? 다산의 천 관념 또한 서학 사상 속에 파악되어야 할 부분이다.

21) 朱熹, 『朱子語類』1:22, ?運轉周流不已, 便是那箇. 而今說天有箇人在那裏批判罪惡, 固不可.?
22) 琴章泰, 앞의 책, 220쪽.
23) 『中庸講議』1:20, ?故人實心事天實心事神 … 故其戒愼恐衢愼獨之功,眞?篤實以達天德. … 不睹不聞者鬼神之鑑臨也 … 天之鑑臨無間動靜."
『中庸自箴』1:4, ?天地靈明直通人心, 無隱不察, 無微不燭, 照臨此室曰監在玆, 人苟知次雖有大膽者不能不戒愼恐衢矣."



3. 마테오 리치의 西學

다산 사상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되는 성리학과 다른 서학의 새로운 관점을 살펴보자. 서학 사상은 16세기 말 이후 명청明淸에서 활약하였던 천주교 선교사의 저술인 ?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의 형식形式을 빌어 17세기 초반부터 지속적으로 조선 사회에 유입되었는데, 조선에서의 서학 연구는 18세기 후반에야 본격화되고 19세기 초반 이후 쇠퇴의 과정을 밟는다24).

조선사회에 유입된 한역서학서는 상당수 지식인들의 관심을 끌었고 사상계에 영향을 미쳤다. 다산은 ?서학서의 섭렵과 탐독이 그의 젊은 시절 당시 지식인들의 사회적 풍기?25)였다고 한다. 서학 연구가 본격화되었던 18세기 후반의 조선사회는 사상적 지도이념이라고 할 수 있는 성리학이 위기에 봉착하고 있었다. 위기를 초래한 원인은 내적 요인과 외적 요인으로 구분된다. 전자前者는 절박한 사회개혁의 필요를 성리학이 감당해낼 수 없었다는 점이고, 후자後者는 서학이라는 이질 사상체계의 유입으로 성리학에 대한 도전이 증폭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위기 의식은 지식인층(특히 在野)에서 보다 민감하였는데, 이들의 서학에 대처하는 양상은 성리학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성리학의 이념에 보다 철저하여 이단異端 사상체계로 파악된 서학을 전면적으로 배격하려는 입장으로서 지방 사족과 중앙 지배층을 들 수 있다.

둘째는 서학을 이원적二元的으로 파악하여 리적理的 측면(天主敎 思想)은 거부하고 기적器的 측면(西洋 科學)26)만을 선별하여 수용하려는 북학파 실학자이다.

셋째는 서학을 전면적으로 수용하려는 입장으로서 당시의 정통사상인 성리학에 가장 회의감을 노정하는 집단으로 이들은 이른바 ?초기 서학자?27)라 부를 수 있다.

조선 지식인층의 서학 연구는 전적으로 한역서학서에 의존하여 이루어진다. 한역서학서는 서양 중세의 스콜라(schola)학문과 문예부흥기의 서양과학의 저서들을 한문으로 번역?번안한 것이 많고, 순수한 저서로 볼 수 있는 것도 있다.

천주교 선교사들이 저술한 포교론적布敎論的인 한역서학서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저술은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가 쓴 『천주실의』이다. 『천주실의天主實義』는 중국은 물론 조선, 일본, 몽고 등 한자문화권漢字文化圈에 속하는 여러 나라에 커다란 사상적 영향을 주었으며, 서양인이 한자로 저술한 서적 가운데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진다. 서학의 리적理的 측면(天主敎思想)을 긍정적으로 수용한 초기 서학자들도 들도 실은 『천주실의天主實義』를 읽은 후 서학에 관한 자신들의 관점을 형성하게 되며28), 태학생太學生시절 청년 다산 역시 이 책을 읽고 서학에 관한 자신의 관점을 형성하는 것으로 밝혀진다29).

24) 西學의 전개, 발전 및 쇠퇴과정은 實學의 그것과 각각 동일한 시기에 나타난다. 李元淳교수는 조선 서학의 전개과정을 접촉 도입기(17c-18c전엽), 검토 연구기(18c중엽을 전후한 반세기), 실천기(18c 후반), 수난기(19c초반 이후)의 4단계로 구분한다(李元淳, 앞의 책, 14-18쪽).
25) 丁若鏞, ?自明疎?, 『正祖實錄』 券46, 21年 6月 康寅. 서학 비판가인 安鼎福은 서학서를 明卿碩儒로서 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하였으며(李晩采, 『闢衛編』1:4a, ?西學書, 自宣祖末年, 已來于東, 明卿碩儒, 無人不見?), 黃德吉도 온세상이 靡然하여 西學書를 따랐다고 말한 바 있다(『下慮先生文集』 14:24a, ?先時, 西學書, 自燕肆來胥, 一世靡然趨之?).
26) 서학을 理的 측면(?西理', 天主敎思想)과 器的 측면(?西器', 西洋科學)으로 나누는 것은 서학에 同調했던 중국선비 李之操, 徐光啓 등이 마테오 리치 등의 漢譯西學書를 天學初函으로 편집할 때, 理編(?西學凡'등 9種)과 器編(?泰西水法'등 10種)으로 나눈 것에서 기원한다(李元淳, 앞의 책, 37쪽). 서학의 理?器는 성리학의 理?氣 구분과는 다른 것이다.
27) 진산사건(1791)이후 유교문화권에서 일탈하여 천주교 신앙에 生을 건 지식인들은 ?후기 서학자?로, 진산사건 이전 유학과 서학을 共有한 채 천주교 신앙에 가담하였던 다산과 같은 유학자들은 ?初期 西學者?로 부를 수 있다.
28) 李元淳, 앞의 책, 107쪽.
29) 琴章泰, 『東西交涉과 近代 韓國思想』,1984, 254쪽.


젊은 시절 중국에 도착한 마테오 리치는 거의 완벽하게 한문을 구사하고 중국 고전을 소화해 낸다. 이로 인해 중국의 상고上古사상에 밝게된 그는 동양의 유교철학과 서양 스콜라 철학의 접촉을 기도하여, 동양을 대표하는 중사中士와 서양을 대표하는 서사西士 간의 대화라는 형식을 빌어 『천주실의』를 저술하였다. 이 책은 전통적 유교사회인 중국에 이질적異質的인 서구사회의 종교인 천주교 신앙을 부식扶植함에 있어, 유교 윤리와 그리스도 윤리의 충돌작용을 피하기 위하여 두 사상체계를 조화시킨 최초의 한역 천주교 교리서로서 평가된다30). 『천주실의』의 내용을 분석함으로써, 성리학과는 다른 서학의 새로운 관점을 탐색해 보자.

먼저, 『천주실의』에서 마테오 리치는 인성과 물성을 엄격하게 분리한다. 그는 3혼설三魂說(靈魂, 覺魂, 草魂)의 분류 방식31)에 따라 인간만이 가진 영혼의 독특성을 추출해 냄으로써 인간은 각혼을 가진 동물과 초혼을 가진 식물과는 결코 동일한 본성을 가졌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 점은 불교의 만물동일성론萬物同一性論32)(物我一體, 萬物一理)이나 성리학의 인물성동론과 크게 대비되는 부분이다. 또한 마테오 리치는 ?이른바 ?만물이 한 몸?이라는 것은 만물이 [천주라는] 하나의 근원에서 나왔음을 말할 뿐이다. 대개 사물들은 서로 이어져 있으면 같은 몸이며, 서로 끓어져 있으면 다른 몸이다?33)라 하여, 인물성이론人物性離論까지 주장한다. ?이일분수理一分殊?를 내세우는 성리학의 이기론理氣論에 의하면, 인간과 사물은 모두 동일한 본성을 가지나, 기질의 차이로만 오직 구분이 가능하다.

그러나 성리학의 인물성동론을 거부하는 마테오 리치는 오직 인간에게만 있는 영혼의 특성을 세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는 영혼의 불멸성34)이다. 식물의 초혼과 동물의 각혼은 육체의 소멸과 함께 소멸되나, 오직 영혼만은 혈육의 부모로부터 육체가 형성되는 동일시점에 천주로부터 각기 개별적으로 창조되는 것으로서, 다른 사물과는 달리 오직 인간은 몸이 죽는다하더라도 영혼은 죽지 않고 영원히 존재한다35)고 한다.

 

둘째는 오직 인간 영혼에만 부여된 도의道義의 가능성이다. 금수와는 달리 인간만큼은 선을 행하고자 하면 선을 행할 수도 있다고 한다.

30) 李元淳, 앞의 책, 60쪽.
31) 『天主實義』, 上卷, 3編([以下, 上:3]), ?彼世界之魂, 有三品. 下品名曰 生魂, 中品名曰 覺魂, 上品名曰 靈魂.?
32) 마테오 리치는 性理學이 佛敎사상을 빌어 定立된 것으로 파악한 후 『天主實義』에서 佛敎사상 비판에 최대의 역점을 두며, 불교의 비판에 가장 많은 分量을 할애한다.
33) 앞의 책, 上:4, ?所謂一體, 僅謂一原耳已. ... 蓋物相連則同體也, 相絶則異體也.?
34) 앞의 책, 上:3, ?人身雖死, 而魂非死."
35) 앞의 책, 上:3, ?兩者全而生焉, 死卽其魄化散歸土, 而靈魂常在不滅."

 


"형체가 있는 혼은 몸의 주재자主宰者가 될 수 없으며 항상 몸에 의해서 부림을 당하며 결국 몸처럼 떨어져 나가 소멸하게 된다. 동물의 일상적 행위는 정욕情欲이 이끄는 대로 좇아가는 것이기에, 스스로 자기 행위를 검속하지 못한다. 유독 사람의 혼만이 육신의 주재자가 되어 우리 인간의 [자유]의지가 선택하느냐 그만두느냐를 따를 수 있는 것이다"36)
36) 앞의 책, 上:3, ?有形之魂, 不能爲身之主, 而恒爲身之所役, 以就墮落. 是以禽獸常行, 本欲之役, 徇基情之所導, 而不能自檢. 獨人之魂能爲身主, 而隨吾志之所縱止.?


그러나 인간에게만 부여된 도의의 가능성은 선을 행할 수 있는 실체實體가 아니라 단지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기호嗜好이며, 마음속에 내재된 이가 아니라 단지 마음이 지닌 속성屬性에 불과하다.


"한 생명체는 오직 하나의 마음만을 갖는다. 사람은 두 마음을 겸하고 있다. 수심獸心과 인심人心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두 가지 본성을 가진 것이다. … 사물의 종류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항상 그 사물의 본성과 걸맞는다. … 사람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에는 비록 유형한 사물들이 있으나, 선을 덕德으로 여기고 악을 죄罪스러워 한다."37)
37) 앞의 책, 上:3, ?一物之性, 惟得一心. 若人則兼有二心. 獸心人心是也. 則亦有二性. … 物類之所好惡, 恒與其性相稱焉. … 若人之所喜惡, 雖亦有形之事, 然德善罪惡之事爲甚.?

셋째는, 추론推論의 능력이다. 오직 인간 영혼은 구체적인 현상의 너머에 존재하는 추상적인 개념을 추론할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은 사물에 관한 관찰과 지각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미처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을 미루어서 알아낸다?38), ?뚜렷한 리로서 뚜렷하지 못한 리를 실증實證한다?39)하여 물성物性과 다른 인성人性의 본질을 추론推論하는 능력에서 찾는다. ?오직 외면적外面的으로 뚜렷하고 쉽게 볼 수 있는 것으로써 내재內在하고 있는 은밀한 이理를 추측推測해 내는 것이다?40), ?처음 낳았을 때의 인간은 아무 것도 쓰지 않은 한 장의 종이와 같다41)"고 하여 인간은 사물에 관한 관찰과 지각을 통해 사물에 관한 개념을 갖게되는 것으로 본다. 즉 마테오 리치는 인간의 사물에 대한 인식을 경험론적經驗論的 시각에서 바라본다.

38) 앞의 책, 上:7, ?以其旣曉, 及其所未曉也."
39) 앞의 책, 下:7, ?以其前推明其後, 以其縣驗其隱."
40) 앞의 책, 上:4, ?因外顯以推內隱, 以其然驗其所以然."
41) 앞의 책, 下:7, ?人心者始生 如素簡無所書也."

다음으로, 마테오 리치는 덕의 외재론外在論을 제시한다. 성리학의 인성관에 의하면, 인간은 태생적으로 4성四性(즉 四德으로서의 仁義禮智)을 구비한 존재이다. 성리학에서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하는 것도 실은 인간이 마음 안에 이러한 덕을 가졌다는 사실에서 비롯한다. 성리학에서 인간의 심성 안에 본래 내재한 것으로 생각하는 덕에 대하여, 마테오 리치는 덕이란 홀로 실재實在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선한 행동을 본 후에 추론한 개념42)이라 하여 성리학과는 전혀 상반된 논리를 전개한다. 오히려 마테오 리치는 선한 행동을 하면 덕이 출현하는 것이고 선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덕은 출현할 수 없다고 한다. 그는 덕은 인간의 마음속에 원래는 없던 것이었으나 선한 행동을 반복하여 실시하다 보면 ?습관習慣의 형성形成?과도 같이 인간의 마음속에 덕이 쌓인다는 덕의 축적론43)을 제시한다. 아울러 마테오 리치는 선을 양선良善(性嗜好로서의 성향, 타고나는 것)과 습선習善(德行의 善, 선한 행동을 반복한 후에 習慣의 形成과도 같이 후천적으로 통해 길러지는 것)으로 구분한 후, 인간의 진정한 선을 습선이라고 규정한다. 그는 양선은 모든 인간이 공통적으로 가진 것으로서, 아무도 자신의 공적으로 내세울 수 없는 것이고, 오직 습선習善에서만 개인은 공적을 찾을 수 있다44)고 한다.

42) 앞의 책, 下:7, ?仁義禮智, 在推論之後也."
43) 앞의 책, 下:7, ?德加于善其用也, 在本善性體之上焉."
44) 앞의 책, 下:7, ?卽固須認二善之品矣, 性之善爲良善, 德之善爲習善, 夫良善者天主原化性命之德 而我無功焉, 我所爲功, 止在自習積德之善也."


마지막으로, 마테오 리치는 천주교 선교사로서 초월성을 지닌 인격신의 존재를 제시한다. 마테오 리치는 우주의 궁극자인 천주에게 영명靈明 곧 전지전능全知全能의 능력을 부여한다. 천주는 인간을 포함하여 만물을 창조한 창조주創造主45)이며, 희노애락喜怒愛樂의 감정感情을 가지고서 은밀하게 인간의 마음과 생각을 감찰하며46), 인간의 일에 간여하는 존재47)로 규정한다.

마테오 리치가 상정想定하는 우주의 궁극자는 인격신이다. 반면에 성리학에서 우주의 궁극적 존재인 태극(곧 理)은, 우주만물의 생성 근거일 수는 있으나 창조주는 될 수 없으며, 인간의 본성 안에 내제內在되어 있어서 선의 궁극적 근거일 수는 있으나 희노애락의 감정을 지니고서 인간의 행동을 감찰하거나 규제하는 인격신은 아니다. 주자가 생각하는 천은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오면서 성性이 되어 하나의 본연지성으로 남게되고 마음 밖에서는 천리天理라는 앎이 없는 이법理法으로만 남게되어 주재의 위력과 권능을 잃어버린다.

 

천이 성으로 수렴되면서 성만 남고 천은 감춰진다. 성이 주체가 되고 천리는 객체가 되며, 인간이 주체가 되고 천은 객체가 되어버린다. 마테오 리치가 천과 성을 분리시켜 놓고 성을 제쳐두고 천을 숭배하고 있었다면, 주자는 천과 성을 일치시켜 놓고 성을 통해 천을 탐구하고 있다. 이점에서 천을 중심에 둔 마테오 리치의 사고가 신앙적이라면, 성을 중심으로 한 주자의 사고는 형이상학적이다. 인격신을 내세우는 마테오 리치는 수신론에 있어서도, 온전한 수신은 인격신인 천주와의 만남 속에서만 가능하다48)고 한다.

마테오 리치는 선의 근원根源을 인간의 심성 안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심성 밖의 인격신에서 찾는다. ?사람은 의지意志가 약하고 쉽게 변하여 스스로 수신에 힘쓸 수가 없으며 오직 천주와의 관계 내에서만 덕을 이루게 된다?49)고 한다. 마테오 리치는 사람의 심성 안에는 선의 덩어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성기호性嗜好만 존재할 뿐이며, 선의 근원은 인격신인 천주에 있다고 한다. 온전한 수신은 인간 스스로만의 노력이나 집념만으로는 실현될 수 없는 것이다. 원래 덕이 없고 덕의 가능성만 지니면서 의지가 약한 인간은 오직 초월적인 인격신의 존재를 상정시켜 놓았을 때라야 비로소 선을 온전히 실현할 수 있고, 또한 온전한 수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마테오 리치가 생각하고 있는 인간은 신에 대하여 자주적인 존재가 아니라 신에 의존적인 존재이다.

이상 『천주실의』에 제시된 내용을 요약하면, 성리학과 다른 서학의 새로운 세계관과 인간관은 인물성이론과 인성과 물성의 분리, 덕의 내재성 부정과 덕의 후천적 축적론, 그리고 초월적인 인격신의 인정이다. 성리학과 다른 서학의 세계관이 다산 사상 내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있느냐를 검토해 보자.

45) 앞의 책, 上:4, ?天主造物, 卽以無而爲有, 一領而萬象卽出焉."
46) 앞의 책, 上:首, ?天主所無有, 然而不能稽其所爲全長也 … 欲言其來者, 但日無終也. 又推而意其體也. 無虛可以容載之. 而無所不盈充也."
47) 앞의 책, 서문, ?무릇 선을 행하는 사람은 반드시 最高의 尊者가 있어서 이 세상을 다스린다고 믿어야만 한다. 만약 이런 尊者가 없거나 혹은 존재해도 인간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면, 어찌 선을 실천하는 방도를 막아버리고 악을 저지르는 길을 크게 열어 놓는 것이 아니겠습니까??(凡爲善者必信: 有上尊者理世界. 若云:無是尊, 或有而不預人事, 豈不塞行善之門, 而大開行惡之路也乎)
48) 앞의 책, 上:4, ?夫德基于修身, 成于昭事."
49) 앞의 책, 下:7, ?不知人意易疲, 不能自勉而修, 又不知瞻仰天主, 以祈慈父之右, 成德者所以鮮見."



4. 다산 사상과 서학

『천주실의』에 제시된 서학의 세계관과 관련지어 다산의 세계관을 탐색해 보자.
먼저, 다산은 인?물의 구별없이 동일한 리(本然之性)를 구비하였다는 성리학의 인성론을 거부한다. 다산은 인간과 사물의 본성이 동일하다는 관점의 전제가 되었던 본연지성이 ?원래 불교에서 유래한 것이며 송유들이 이를 빌어다 쓴 것?50)이라 한다. 성리학의 본연지성에 입각한 인물성동론을 불교사상의 영향을 받아 나타난 것으로 보는 다산의 시각은 마테오 리치의 관점과 유사하다. 마테오 리치 역시 만물의 본성이 동일하다는 성리학의 논리는 ?불교사상이 스며들어 성립한 것?51)으로 규정한다. 나아가서 다산은 ?성삼품설?을 제시하면서 인간과 사물의 본성이 다르다고 한다. 그는 생물生物을 초목草木, 금수禽獸 및 인간人間의 셋으로 3분한 후 각각의 성을 초목지성草木之性, 금수지성禽獸之性, 영명지성靈明之性으로 구분한다. 이기론의 관점에서 볼 때, 다산은 인간과 사물의 차이를 기氣(氣質性)의 차원 아닌 리(本然性)의 차원에서 규정한다. 다산에 의하면, 초목과 금수에게는 영명이 없으나 인간만 영명의 능력을 지닌 존재로 보아, 인간과 만물간의 본질적인 차이를 영명靈明에 부여한다. 다산이 인간의 본질적 특성으로서 내세우고 있는 영명은 오직 인간에게만 있는 도덕적?지적 능력으로서의 ?도의道義의 가능성과 추론력推論力?52)이다.

50) 『大學講議』 2:27, 28, ?本然之義世多不曉據佛書本然者, 無所始生. … 佛氏謂本然之性無所稟命. … 先儒偶一借用.?
51) 앞의 책, 上:4, ?世人不禁佛氏狂經, 不覺染其毒語, 周公仲尼之論, 貴邦古經書, 孰有狎主宰而與之一者"
52) 『論語古今註』 9:11, ?人之大體旣生旣知, 復有靈明神妙之用, 故含萬物而不漏, 推萬理而盡悟 好德羞惡出於良知, 此其廻別於禽獸者也."



"하늘은 인간에게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는 권형權衡[自主權]을 부여하였지만 또한 선한 일이란 어렵고 악에 빠지기 쉬운 도구道具[肉體]를 주었고, 또한 다른 한편으로 선을 좋아하고 악을 수치로 여기는 성품性品[嗜好]을 주었다."53)
53) 『心經密驗』, ?天旣予人以可善可惡之權衡, 於是就其下面又予之以難善易惡之具, 施其上面又予之以樂善羞惡之性.?


인간은 본성적으로 선을 즐거워하고 악을 부끄럽게(樂善羞惡) 여기는 기호를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현실적으로는 선을 행하기는 어렵고 악을 행하기는 쉬운(難善易惡) 육체를 가지고 있다. 또한 인간은 영명의 두 번째 특성인 추론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현상을 통해서 추상적인 관념을 형성해 낼 수 있다. 추론력은 없고 지각능력만을 갖는 동물은 구체적인 현상을 벗어나서 사고할 수 없으나, 인간은 추론의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눈앞에 보이는 사물을 넘어서는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과 사물의 다른 점은, 동물은 육肉으로부터 육으로 전해지며 영명과 관계가 없다. 영명을 갖는 인간은 영명이 없는 사물과 본성적으로 구별된다. 이렇게 보면, 다산의 영명은 마테오 리치의 영혼과는 용어의 차이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마테오 리치의 영혼靈魂 역시 인간에게만 고유한 특성이었고, 마테오 리치가 영혼의 기능으로서 제시하고 있는 도의의 가능성과 추론력은 바로 다산의 영명이 갖는 기능과 동일하다. 양자가 모두 동일한 분류 기준과 특성을 제시하고 있는데, 단지 차이가 있다면 용어 선택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다산이 분류 기준을 ?성?에 놓고 성3품설性三品說을 제시하였다면, 마테오 리치는 ?혼?에 놓고 3혼설三魂說을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다산의 성3품설이 마테오 리치의 3혼설을 계승하였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다산은 왜 용어를 혼에서 성으로 바꾸었던 것인가?

그 이유는 마테오 리치가 규정하는 혼의 개념과 다산이 규정하는 혼의 개념이 달랐던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성리학에서 규정하는 혼개념은 기의 영역에 속한 하위개념이었으나, 스콜라 철학에서 규정하는 혼개념은 성리학의 리와 기의 모든 영역에 속하는 넓은 범위의 상위개념이었다. 이로 인해 마테오 리치가 기의 차원인 혼에 의한 인?물성간의 분류를 하였더라도 실상은 리의 차원인 성에 의한 분류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유학자인 다산의 시각으로 볼 때, 기의 차원과 혼동될 수 있는 혼에 의한 마테오 리치의 인?.물성 분류는 분류 자체가 틀린 것이 아니라, 용어의 부적합한 선택이었다. 이렇게 되면 일반 유학자의 시각에 들어올 때 문자 그대로의 혼에 의한 인?물 구별방식은 기의 차원에서 인?물을 구별하는 성리학의 분류방식과 별 차이가 없게 된다. 그러나 마테오 리치의 인물성 구별방식에 동조하는 다산은, 마테오 리치가 용어를 부적절하게 선택했음을 파악하고서는 용어를 바꾼다. 즉 다산은 마테오 리치가 채택한 용어를 바꾸어가면서까지 성리학의 인물성동론의 관점을 배격한다.

둘째, 다산은 덕의 내재론을 배격한다. 그는 인간의 마음에는 본래 덕이 없고 호선오악好善惡惡의 기호만 있을 뿐이라고 한다. 다산이 규정하고 있는 덕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행사가 있은 후에야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다산은 인간의 내면에는 본래 덕이 없기 때문에, 성리학에서와 같이 마음속에 이미 구비되어 있는 덕을 밖으로 끌어내려는 것이 아니라, 원래 없는 덕을 마음속에 쌓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펴게 된다.


"4덕德의 명名은 본래 우리들의 행사行事에서 생긴 것이지 심心의 현리玄理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천天에서 받은 것은 단지 이 영명으로서 그것은 인의예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성기호]만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상천上天이 인의예지의 네 알맹이를 인성의 가운데 부여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참된 말이 아니다."54)
54) 『中庸講議』1:2, ?仁義禮智名本起於吾人行事, 竝非在心之玄理, 人之受天只次靈明, 可仁可義可禮可智則有之矣. 上天以仁義禮智四顆賦之於人性之中, 則非其實矣."


그렇다면 원래 덕이 없는 인간은 어떻게 덕을 지닐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선행善行의 지속이 오래되면 증험이 있고 덕이 쌓이게 된다?55)고 덕의 획득을 지속적인 선의 실천에서 모색한다. 요약하면 인간은 본래 덕을 갖고 태어나지 않고 단지 성기호라는 덕의 가능성만을 가지고 태어날 뿐인데, 선행을 지속적으로 실천하게 될 때 마치 습관이 형성되는 것과 같이 마음속에 덕이 축적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원시유학 이래 유학사상의 전통은 도의道義는 본성의 자연발로自然發露 이외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유학의 수신론이 지닌 특징은 덕의 내재론에 기반을 둔 성선설이었다. 맹자의 4단四端(惻隱之心, 羞惡之心, 辭讓之心, 是非之心)도 이런 의미였다. 맹자에 의하면 심성 속에 본래 내재된 4덕(仁義禮智)으로부터 4단의 마음이 출현하는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단서설端緖說?이다.

반면에 다산은 인간 심성 안에 선의 가능성으로 부여받은 4단의 마음을 실천하면 4덕이 출현할 수 있다는 이른바 ?단시설端始說?을 주장함으로써, 맹자의 논리와 정면으로 벗어난다. 다산의 인성론은 수사학洙泗學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다. 수사학의 인성론과 대립되는 다산의 관점은 마테오 리치와 유사하다. 마테오 리치는 덕은 ?선한 행동 이후에 추론되는 것?이라 하여 덕의 실재론을 부정하였고, 덕은 ?새로운 앎(즉, 獲得하는 것)이지, 본래 있는 것의 회복(즉, 꺼내는 것)은 아니다?라 하여 덕의 내재론을 거부하였으며, ?선행善行을 반복하면 덕은 자라나서 한정 없는 경계에 들어간다?56)고 하여 덕의 축적론을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덕의 내재론을 부정하는 논리, 덕의 개념을 규정하는 방식 및 인간의 심성 안에 덕을 축적하는 방식의 세 가지 모든 측면에서 마테오 리치와 다산은 모두 동일한 입장 위에 서 있다.

55) 『中庸自箴』1:23, ?不息則久 久則徵 徵悠遠…悠遠則積德."
56) 앞의 책, 下:7, ?天主之善無限界, 則吾德可長無定界矣.?


셋째, 다산은 인격신을 인정한다. ?천天은 날마다 굽어살피고 항상 여기에 계 신고로 경계警戒하여 삼가하고 무서워하고 두려워해서 그 홀로 있을 때를 삼가고 …?57)라 하여 다산은 천의 본질적 의미를 주재지천主宰之天에서 찾는다. 인격신적 주재자로서의 상제를 절대자로 파악하며 인간의 행동과 생각을 늘 가까이 있으면서 감찰?규제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한다.

?천지天地의 귀신중 가장 존귀한 자는 상제이며, 상제의 체는 무형무질無形無質해서 귀신과 더불어 덕이 같다. 상제의 감격조림感格照臨함을 일러서 귀신이라 한다58)"고 하여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는 상제를 실재화實在化시킨다. 성리학에서 천은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오면 성이 되어 하나의 본연지심으로만 남게 되어 주재하는 위력과 권능을 상실한다.

그러나 다산의 천은 본연의 성으로 수렴되지 않으므로 밖의 상제가 되어 안의 마음씨도 살피면서 주재의 능력을 갖는다. 다산이 규정하는 천(上帝)은, 인간 심성 내부에 도덕적 행동을 위한 근거로서 작용하는 양심 내지 도덕률의 차원을 뛰어 넘어, 인간의 심성 밖에서 인간에게 작용하는 신앙적 대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성리학에서 본성으로 수렴된 천, 곧 내성화內省化된 천天은 인간의 심성을 규명하는 과정, 다시 말해 학문하는 과정 안에서 다뤄지는 존재였다. 그러나 인간의 심성 밖에서 인간을 감찰 규제하는 다산의 천 관념에서의 천은 신앙적 숭배의 대상이다. 나아가서 다산은 유학사상의 전통 안에서 우주만물의 생성 근거이자 우주현상의 근원적인 두 가지 구성 요소로 간주되어 온 음양陰陽의 실재성을 거부한다.

선진유학先秦儒學이래 유학사상은 음양의 교착交錯에서 만물이 생성되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다산은 ?음양은 체질이 없고 음양의 이름은 일광日光의 조암照庵에서 나온 것이다. 음양은 만물의 부모가 될 수 없다?59), ?만물物은 상천上天의 조화造化 가운데 있으며?60), ?5행五行은 만물 가운데 불과 5물五物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다같이 이 한가지 물질인 데, 이 다섯이 만 가지의 물질을 생성한다니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은가??61)라고 하여, 이제까지 우주만물의 창조자로서 음양이 누려온 권위를 인격신인 상제에게로 돌린다. 다산이 음양의 창조성創造性을 부정하고 상제의 창조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볼 때, 다산 사상을 ?수사학에로의 복귀?로 파악하려는 입장은 이론異論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다산 사상을 서학의 수용으로 악하는 것은 무리가 없을 것이다. 나아가서 다산은 도덕 수양의 근거를, 성리학에서와 같이 도문학의 공부에 두지 않고, 인격신인 상제의 임재성에 부여한다.

57) 『中庸講議』1:20, ?日監在玆, 故其戒愼恐衢愼獨 …."
58) 『中庸講義』2;22, ?天地鬼神昭布森列, 而其至尊者至大者上帝是也.?
『中庸自箴』2:15, ?上帝之體, 無形無質與鬼神同德, 固日鬼神也以其感格照臨而言之謂之鬼神.
59) 『中庸講議』1:1, ?陰陽之名, 起於日光之照庵, 日所隱曰陰, 日所映曰陽, 本無體質只有明暗, 原不可以爲萬物之父母."
60) 『中庸自箴』2:15, ?萬物之上天之造化之中."
61) 『中庸講議』2:2, ?況五行不過萬物中五物, 則同是物也, 而以五生萬不亦難乎."


"요즈음 사람들은 하늘을 리로 생각하고 그로써 귀신을 공용功用으로 여기며, 조화의 자취로 여기기도 하고 이기의 양능良能으로 여기기도 하니, 마음속으로는 리를 안다고 하지만 아득하고 답답하여 거의 아무 지각知覺도 없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어두운 방 속에서는 제 마음을 속여 기탄 없이 함부로 하며, 평생토록 도道를 배운다 하더라도 그와 함께 요순堯舜의 경지에 들어갈 수 없으니 이는 모두 귀신의 설이 분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62)
62) 『中庸講義』2:20, ?今人以天爲理以鬼神爲功用, 爲造化之跡, 爲二氣之良能, 心之知之杳杳冥冥, 一以無知覺者, ,然暗室斯心肆無忌憚, 終身學道而不可與人堯舜之域, 皆於鬼神之說, 有所不明故也."


"중용에서 삼가 조심한다는 것은 어찌 상제를 뚜렷이 섬기는 학문이 아니겠는가? 요즈음 사람들이 이 점(上帝의 實在性 여부)에 대하여 있느냐 없느냐의 사이에서 이를 의심하기도 하며, 아득하여 먼 곳에다 이를 내버려두기도 하기 때문에 군왕君王으로서 상제를 경외敬畏해야 하는 공부라거나 학자들이 스스로를 삼가야 하는 의미는 다 성실하지 못한 방향으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63)
63) 『中庸講義』2:22, ?中庸之戒愼恐衢, 豈非昭事之學乎. 今人於次疑之於有無之間, 置之於杳茫之地, 故人主敬畏之工, 學者愼獨之義, 皆歸於不誠."

다산은 당시 수양론이 잘못되고 성실하지 못한 까닭을 상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에 찾으며, 아울러 인격 수양의 요체를 상제의 실재성에 두고 있다. 인격신인 상제를 수용하는 측면, 도덕 수양의 근거를 인격신과 관련짓는 측면 등에서 모두 다산과 마테오 마테오 리치의 주장은 일치一致한다. 앞서 보았듯이 마테오 리치의 천주와 다산의 상제는 용어의 차이에 불과하다.

요약해 보면, 다산의 세계관은 인?물성이론, 덕의 외재론 및 축적론, 인격신의 인정으로 파악되며, 다산의 이러한 관점은 『천주실의』에 제시된 마테오 리치의 서학적인 관점과 부합符合한다.


5. 다산의 실학론

다산의 서학적인 세계관과 관련지어 다산의 실학론을 검토해 보자. 유학의 학문관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교육敎育 고전古典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을 주자와 다산이 각각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를 비교해 볼 때, 성리학과 다른 다산의 실학적 학문관이 드러날 수 있다.

성리학을 정립한 주자는 『대학』을 새롭게 해석하여 『대학장구大學章句』를 남겨 놓았다. 다산 역시 서학을 접했던 젊은 시절(28세, 1789년)에 『대학』을 해석한 『대학강의大學講議』와 강진의 유배시절(53세, 1814년)에 다시 해석한 『대학공의大學公議』를 남겨놓았다.

『대학大學』 경1장經1章에는, ?먼저 모든 일에는 근본과 말단, 먼저 할 것과 나중 할 것이 있으며, 근본과 먼저 할 것에 힘쓰면 나중 할 것은 저절로 다스려지게 되는데, 그 근본되고 먼저 할 것은 수신이다?라고 씌여 있다. 『대학장구』에서 주자는 이 명제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단지 그 명제가 옳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이러한 주자의 설명 논리는 인성과 물성을 동일한 것으로 보면서, 선천적인 덕의 내재론을 인정하는 관점 위에서 제시된다.

인물성동론과 물아일체론에 기초한 주자의 시각에 의하면, 오심吾心의 리와 사물事物의 리를 일치시킬 수 있기 때문에, 본(根本)이 되는 수신을 이룩하면 말(末端)이 되는 치사治事는 자연적으로 가능하다는 관점이 가능하다. 이 논리에 의하면 외물外物이나 타인他人을 다스리려는 일(治人治事)의 근본은 수신이고, 치인은 수신의 공효일 뿐이다. 따라서 선비들이 우선적으로 힘써야 할 것은 기질을 제거시키려는 수신이며, 치인치사에 관한 것(實學에서 중요한 영역)은 선비로서는 부차적인 것 내지 온전한 수신을 방해하는 것으로까지 생각된다. 이로 인해 사대부의 학문 범위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은 근본이되는 수신에 관한 내용뿐이었고, 말단으로 여겨지는 농공상農工商에 관한 학(즉 實學)은 선비로서 해야할 학문의 범위에 들어올 수 없다.

그러나 『대학강의』에서 다산은 인간의 본성과 사물의 본성이 다 같은 일리一理로서 동일하다는 성리학의 이기론이 불교에서 빌려온 것이라 하여 인물성동론의 관점을 거부한다. 성리학과 정반대로 인과 물은 기질지성은 동일하지만 본연지성이 다르다고 보아 본연지성의 차이로부터 인물성을 구분하고 인물성의 연계성을 분리하는 다산에 의하면, 인성과 물성은 자연스럽게 분리된다.

인간의 본성과 사물의 본성本性은 전혀 다른 것이어서, 내마음의 리와 사물의 리는 서로 별개의 차원에 있는 것이므로 상호간에 인과관계가 성립할 수 없다. 또한 ?물은 기질만 가지고 있으나 사람은 기질 이외에 도의의 성과 추론력까지 가지고 있으므로? 물은 인간보다 열등한 것이다. 물아일체와 인물성동론이 아니라 물은 이제 인에 대해서는 지배와 종속의 대상이다. 나아가 인도人道의 연구에만 한정되어서는 안되고 물도物道를 별도로 연구해야 한하는 것이다. 다산은 물도는 연구하지 단순히 마음을 경건히 함으로써 풍년을 가져오려는 성리학자의 태도, 곧 인도로서 물도를 대체하려는 시도를 힘을 주어 비판한다.


"[성리학자들은] 그저 순실 온후하며 혼륜 소박하여 청탁을 가릴 줄도 모르는 자를 덕이 있다고 한다. 그들의 생각으로는 이러한 기상氣象을 가지고 앉아서 천하를 다스림으로써 거의 만물이 저절로 귀화歸化하게 하도록 하고자 하는 데 있지만 실제로 일을 하게 되는 판국에는 어느 곳으로부터 착수着手해 하는지의 여부를 모르고 있으니 어찌 우둔하지 않는가? 여기에 온 세상이 날로 썩어 들어가지만 이를 새롭게 못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64)
64) 『論語古今註』1:22, ?第以淳厚渾朴不辯淸濁者爲有德, 意欲以此箇氣象, 坐理天下, 庶幾萬物自然歸化, 而當局臨事不知從何處著手, 豈不迂哉. 此天下所以日腐爛而莫之新也."


인도의 확립(修身)과 물리의 질서(治事)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 되어, 수신 그것 자체만으로는 사물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다. 수신에만 머물러서는 치인과 치사가 자연적으로 달성될 수 없기 때문에, 치인과 치사에 관한 내용은 수신에 관한 내용과 분리되어 따로 공부해야 할 영역으로 남게 된다. 즉 치인과 치사에 관한 학(즉 實學)이 성리학과 분리되어 학문으로서의 독자성獨自性이 가능하게 된다.

치인에 관한 것(法律과 醫療에 관한 내용)과 치사에 관한 것(農工商의 原理에 관한 내용)을 연구하는 것도 선비의 정당한 정당한 학문 범위로 인정된다. 실제로 지력知力이 뛰어나고 육체 노동에서 벗어난 양반층이 실학에 관한 내용을 정당한 학문으로 수용하지도 않았고 실학에 간여하지도 않았던 조선후기의 사회현실에서는, 여러 가지 사회제도를 개혁하는 것도 절박하였지만, 실질적으로 학문에 종사할 여유가 있었던 양반 사대부들의 학문범위를 축소시키고 학문의 폭을 제한하였던 성리학적 학문관을 새롭게 개혁해야 하는 일도 긴급히 요구되는 과제였다. 인성과 물성을 분리함으로써, 수신과 치사를 분리시킬 수 있고, 따라서 치사에 관한 내용을 다루는 일도 학문의 범위에 들어올 수 있다는 다산의 논리는, 실학도 정당한 학문의 자리에 들어올 수 있다는 새로운 학문관의 정립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학문관의 변화를 가능케 한 다산의 논리가 인물성을 근원적으로 분리하는 서학의 세계관과 맞물려 질 수 있다는 관점에서 볼 때, 다산 실학의 출현은 서학과 연관지을 수 있다.

서학의 새로운 세계관을 수용한 다산이 덕의 선천적인 내재론을 부인하며, 성리학의 이법신과 다른 서학적인 인격신을 수용했음은 이미 확인하였다. 인간의 도덕 수양의 문제와 관련지어 볼 때, 서학의 인격신과 성리학의 이법의 구별은 어떠한 차이점을 나타내게 될까?

즉 태극太極(理)과 같이 앎과 주재의 능력이 없는 자연법칙을 우주의 절대자로 상정하고 있는 성리학과, 지각과 희노애락의 감정을 지니고서 인간의 사유와 행동을 감찰하고 규제하는 인격신을 절대자로 인정하고 있는 다산은, 도덕 수양의 측면에서 각각 어떠한 차이를 드러낼 것인가?

먼저 마테오 리치는 반복적인 선행의 실천은 인격신인 천주와의 만남에서 가능하다고 보며, 천주와의 관계 속에서 선행을 반복적으로 실천할 때 덕성이 함양된다고 하였다. 즉 마테오 리치는 덕은 도문학의 공부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인격신인 천주의 섬김과 관련된 것으로 보는 것으로서, 덕성의 함양은 도문학의 영역에서 다룰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영역에서 다루어야 할 문제임을 제시하였다.

서학의 리적 측면(天主敎)의 주장에 의하면, 덕은 도문학의 공부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인격신인 천주와 관련된 것이다. 따라서 덕성 함양의 문제를 바라보는 다산의 관점이 서학적인 것이냐의 여부를 확인하려면, 다산이 덕성의 함양을 도문학(格物致知)의 공부와 관련짓느냐 아니면 상제에 대한 신앙(知天)에 관련짓느냐의 여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만약 다산이 덕성 함양을 도문학의 공부 아닌 인격신의 수용과 관련짓고 있다면, 다산의 관점은 마테오 리치의 관점과 부합될 것이다.

 

다산이 『대학』의 격물치지(道問學)와 성의정심(尊德性)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로부터 이 문제를 파악해 보자. ?격물이란 물에 본말이 있음을 아는 것이요, 치지란 사事의 선후할 바를 아는 것이니, 격치와 명선明善은 다른 것이다"라 하여 다산은 격치(道問學)와 명선(尊德性)을 서로 다른 영역으로 구분한다.

 

?수신은 성의誠意를 첫 공적으로 삼고 이로 쫓아 어가야 하여 이로 쫓아 손을 댈 것이니, 성의 앞에 어찌 2층의 공부가 있을 것인가"라 하여 성의의 앞에 격물치지가 올 수 없다고 한다. 도문학의 공부와 덕성 함양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의미이다. 도문학의 공부를 통해 덕성을 함양할 수 있다는 생각에 회의를 나타내는 다산은, 그러면 덕성은 어떤 방식으로 길러진다고 보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다산의 생각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속적인 선의 실천이 덕성의 함양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덕성 함양의 방법을 도문학의 공부 아닌 선행의 실천 곧 행사에 둔다. 그러나 다산이 생각하는 인간의 현실적 모습은 ?선을 행하기는 어렵고 악을 행하기는 쉬운(難善易惡) 존재?였다.

 

이처럼 인간의 심성을 성선설보다는 성악설에서 보려는 다산의 관점이 천주교 선교사들의 일반적인 인간관과 유사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면 난선이악難善易惡의 심성을 지닌 불완전한 인간이 어떻게 사욕私欲의 방해를 극복하고 선행을 지속적으로 실천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해 다산은 ?선에 밝다는 것은 감춰져있지만 뚜렷함을 알며, 미세하지만 나타나 있음을 알며, 하늘을 속일 수 없음을 안다는 것이다. 하늘을 안 연후에 선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니, 하늘을 모르는 자는 선을 선택할 수도 없을 것이다?65)고 하여 불완전한 인간이 사욕을 극복하고 선을 지속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지천知天에서 찾는다. 심성 밖에서 사람의 행위를 감찰하고 있는 인격천을 인식하고서 선을 지속적으로 실천할 때 비로소 심성 안에 원래 없던 덕이 후천적으로 축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수신의 과정을 도문학의 공부가 아니라 상제와의 만남에서 찾고 있는 다산에 있어서, 도덕 수양의 요체는 지천과 행사에 있다. 비록 도문학의 공부를 할 수 없는 처지에 있더라도, 상제를 섬기면서 선행을 실천하면 덕성이 길러질 수 있음을 밝힌다. 이때 다산에게 있어서 상제는, 성리학자들의 천리와 같이 도문학의 공부 안에서 탐구하는 존재가 아니라 신앙적으로 숭배해야 할 서학의 인격신이다.

65) 『中庸講議』1:43, ?明善者知隱之見, 知微之顯, 知天之不可斯也. 知天以後可以擇善, 不知天者不可以擇善."


5. 결어

다산 사상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되는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에 제시된 서학적 세계관의 특징은, 인물성이론과 인성과 물성의 분리分離, 덕의 내재성 부정과 덕의 후천적 축적론, 그리고 초월적인 인격신의 인정이다. 반면에 서학과 대비되는 성리학적 세계관의 특징은 인물성동론과 인성과 물성의 연계, 덕의 내재론 및 발현론, 인격신의 부정과 이법의 수용이다. 이에 대한 다산의 관점은 모두 성리학을 배격하고 서학의 관점을 따르고 있다. 인성과 물성의 이론異論을 제시하고 인성과 물성을 분리하는 점, 덕의 내재론을 부정하는 바탕 위에서 덕의 개념을 규정하는 방식 및 인간의 심성 안에 덕을 축적하는 방법에 대한 강조, 그리고 형이상학적 이법이 아닌 초월적인 인격신을 수용한 측면에서, 다산의 관점은 서학의 관점과 부합하고 있다. 다산의 관점이 서학의 세계관과 맞물린다는 점에서 다산 사상의 근원은 수사학으로의 복귀나 유학 내의 자기 발전이라기보다는 서학의 수용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다산이 서학의 관점이 실린 자신의 주장을 제기하면서도 공맹을 근거로 삼은 것은 성리학만이 통용되는 배타적인 사상적 배경 아래서 공맹의 권위를 빌어 자신의 관점을 정당화한 것으로 생각된다. 다산 실학의 단초는 서학에서 그 기원을 볼 수 있다. 다산은 서학의 관점을 수용함으로써 성리학을 넘어서는 새로운 세계관의 형성과 함께 실학적인 학문관을 정립한 것이라 사려된다.

 

 

자료출처 : 다산학술재단 [다산학] 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