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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沈藏)과 양념(藥念).한글(韓글).親舊(친구) [박대종의 어원 이야기]

경호... 2012. 11. 13. 02:34

[박대종의 어원 이야기]

 

김장(沈藏)과 양념(藥念)

 

 

 

 

어느덧 입동(立冬), 김장철이다. 예년에 비해 흉년과 불황 탓인지 김장물가가 너무 올라 주재료인 배추는 물론 고춧가루와 마늘 등의 양념을 구하는 일도 버거운 형편이다. 김장과 관련된 용어를 조사해보면 정음(正音)이 아니라 변음이 굳어진 말들이 많다.

 

김장은 침장(沈藏)의 변음으로 이때의 ‘김(沈)’은 ‘담그다’를 뜻한다. 그러니 겨우내 먹기 위하여 늦가을에 각종 양념에 버무린 김치(沈菜)를 담가 저장(貯藏)하는 일이 곧 김장이다. 흰색의 배추는 본래 ‘아래아’ 모음을 쓰는 백채(白菜)가 변한 말이다.

김치는 침채(沈菜)의 변음인데, 침채 또한 더 거슬러 올라가면 ‘딤채’가 본말이다.

 

김치의 초보적 형태는 양념 없이 소금에 절인 단순한 절임채소였다. 그런 절임채소는 고대 중국에도 있었으니 이른바 ‘菹(저)’가 그것이다. 菹에서의 艸(초)는 채소를 나타내고, 沮(저)는 ‘무너지다, 꺾이다’를 뜻한다. 沮를 쓴 이유는 소금에 절인 채소의 모양이 마치 기세가 꺾인 듯 풀이 죽은 모습이어서다.

 

양념은 약념(藥念)을 소리 나는 대로 쓴 말로, 조선 중종 때 최세진이 엮은 <번역박통사>(1515) 등에서는 ‘념’자가 없는 ‘약’이었다. 후대로 내려오면서 ‘념’자가 덧붙어 ‘약념’이 되었는데, 이때의 ‘약’은 藥(약)으로 藥자가 나타내는 여러 의미 중 ‘조미(調味)하다, 간을 맞추다’의 뜻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약’ 뒤의 ‘념’은 왜 훗날 덧붙었을까?

‘調味(조미)’에 ‘料(료)’자가 덧붙은 ‘조미료’라는 말이 의문의 열쇠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양념을 調味料라 하는데, ‘조미’는 ‘약’과 같은 뜻이고 ‘料(생각할 료)’는 ‘念(생각할 념)’과 동의어이다. 즉, ‘조미료’라는 말에 맞춰 ‘약’을 보다 구체화한 말이 우리만의 토종한자어인 ‘약념’이다. 물론, 조미료에서의 ‘料(료)’는 ‘생각하다’가 아닌 ‘재료, 식품’을 뜻하니, ‘양념’에서의 ‘념’ 또한 ‘식품’을 의미한다.

 

조선말 공인이었던 지규식(池圭植)은 1895년 음력 9월 17일자 <하재일기(荷齋日記)>에서 “배추와 무를 한 포기도 캐지 못했는데 밤새 내린 눈에 파묻혀버려 엄청 속상하다.”라 하였다. 그래서인지 그는 김장을 ‘긴급할 긴(緊)’자를 써서 ‘緊藏(긴장)’이라 적었다. 혹한의 겨울이 다가 오기 전 서둘러 김장을 하는 우리네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글(韓글)

 

올해 566돌 한글날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1446년을 기점으로 산정한 것이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한글날'이라 하지 않고 '조선글날'이라 부른다. 국명이 '朝鮮(조선)'이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은 훈민정음을 창제한 1443년 음력 12월을 기점으로 삼기 때문에 돌의 수치와 기념일도 우리와는 달라 괴리가 존재한다. 세종대왕이 지으신 명칭은 訓民正音(훈민정음)이므로 '훈민정음날'이어야 할 텐데 왜 '한글날'이라 부를까?

 

조선의 제26대 왕 고종 이전까지 조선의 정식 국문(나랏글)은 한문이었는데 고종은 국문의 개념과 방식에 대한 일대 개혁을 단행한다. 1894년 11월 21일 그는 "법률과 칙령은 모두 국문으로써 근본을 삼고, 한역을 붙이거나 국한문을 혼용한다(法律勅令 總 以國文爲本 漢文附譯 或混用國漢文)"는 칙령 1호를 공포한다.

보다시피 이 칙령에서의 '국문'은 국한혼용문을 일컫는 말이다. 그 후 1897년 고종은 국호를 大韓帝國(대한제국)으로 바꾼다.

 

'한글'이란 명칭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제국신문>을 창간한 묵암(默菴) 이종일(李鍾一)이다. 1898년 7월 4일자 그의 비망록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나는 사실 지금 세상을 따지고 보면 대한제국의 시대인 까닭에 내 의견으로는 제호를 제국신문이라고 붙이면 어떨까 한다고 말했다. 청중이 숙의 끝에 모두 좋은 명칭이라고 말하여 이에 제국신문으로 결정하였고, 제호를 한글로 하면 어떻겠냐고 하였더니 역시 모두 좋다고 하였다. 그런즉 한글전용의 신문을 발간키로 결정하였다.(然則한글專用爲主發刊決定也矣)."

 

이처럼 이종일에서 비롯된 '한글' 명칭은 '대한제국글'의 준말이다. 최남선과 주시경은 이종일보다 나중의 언급자들이고... 또한 '한글'의 '한'이 '크다, 바르다, 하나'를 뜻한다는 설은 최남선과 주시경 등에 의해 비롯된 것으로 사실이 아니다. <동국정운> 이래로 '韓(한~)'과 '한~글'의 '한'은 장음임에 비해 '한입', '한가운데', '한번'에서의 '한'은 모두 단음으로 맞지 않는다.

 

지금의 한글은 훈민정음에 비해 명칭은 물론, 그 구조와 활용 철자법 등에서 많이 다르다. 일제 때 28자가 24자로 왜곡된 것을 한글학자들은 간편해졌다고 합리화하는데 이는 진실을 제대로 얘기한 것이 아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한글맞춤법'은 나와 있어도 그 전신인 일제의 '언문철자법'은 검색이 봉쇄되어 있다. 이는 과거행적을 감추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親舊(친구)

 

동양에서의 親舊(친구)와 서양의 friend는 서로 개념이 약간 다르다. friend가 '사랑하다'를 뜻하는 고대영어 fr?ogan에서 비롯된 말이라면, 親舊는 親(친애할 친)에 기간을 나타내는 舊(오랠 구)자가 덧붙은 말이다. 즉, friend는 '연인'에서 '친구'로 그 의미가 발전된 말이며, 親舊는 오랫동안 친한 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사이를 나타낸다.

 

이처럼 friend에는 기간 조건이 없기 때문에, 만난 지 얼마 안되었어도 의기가 상통하면 "우리는 friend"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親舊라는 말에는 '오랫동안'이라는 조건이 걸려 있다. 그래서 사귄 기간이 얼마 안되거나 오래됐어도 교분 횟수가 드물 경우 "우리는 친구다"라고 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親舊'란 용어는 진(晉)나라의 진수(陳壽: 233∼297)가 편찬한 <삼국지(三國志)>에 처음 등장한다. 그보다 앞선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는 '舊(구)'가 동의어 '故(고)'로 기재된 '親故(친고)'로 나타난다. 그런데 주의할 점이 親故에서는 의미가 둘로 나뉘어져, 親은 '친척'을 뜻하고 故만 요즘의 '친구'를 뜻했다. 따라서 친구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故'자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의 故(옛 고)는 '아주 먼 과거'에서 나아가 '오랜 교분 → 친구'를 의미한다.

 

친구와 비슷한 말로 '朋友(붕우)'가 있다. 友(벗 우)자의 갑골문을 보면 손을 그린 又(우)자 두 개가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있는 모습이다. 손을 나란히 함은 곧 어깨동무를 뜻한다. 그리고 朋(벗 붕)자는 鵬(붕새 붕)과 관련이 있다. 붕새는 한 번에 구만리를 난다는 상상의 새다. 붕새가 한 번 뜨면 그 주변에 새카맣게 뭇새들이 함께 떼 지어 난다. 그래서 '떼, 무리→(함께 어울려 다니는) 벗'의 뜻이 나왔다.

 

'벗'의 본말은 ㄷ 받침의 '벋'이었다. 팔을 기꺼이 '뻗(벋)을=내밀 수 있는' 이가 곧 벗이다. 하지만 오랜 사이라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내민 손을 뿌리칠 수 있으니 그 때는 이미 친구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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