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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대성(集大成)해 수시처중(隨時處中)하는 진정한 지도자는 없는가? ?

경호... 2012. 10. 17. 03:39

집대성(集大成)해 수시처중(隨時處中)하는 진정한 지도자는 없는가?

 

맑은 곳이 아니면 떠나는 순수한 사람, 백이

 

 

사서삼경(四書三經) 중 하나인 ‘맹자(孟子)’의 만장장구하(萬章章句下)에는 백이, 이윤, 유하혜, 그리고 공자를 비교하는 유명한 글이 있다.

맹자는 먼저 백이를 말한다.

 

“백이(伯夷)는 눈으로는 나쁜 빛을 보지 아니하며, 귀로는 나쁜 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섬길 만한 군주가 아니면 섬기지 아니하며, 그 백성이 아니면 부리지 아니하여, 세상이 다스려지면 나아가고 혼란하면 물러가서, 나쁜 정사가 나오는 곳과 나쁜 백성들이 거주하는 곳에서 차마 거처하지 못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백이는 그 유명한 ‘백이숙제’의 그 백이다. 중국 은나라 말, 주나라 초의 전설적인 사람으로 동생 숙제(叔齊)와 함께 고죽국(孤竹國)의 왕자였다. 그의 아버지가 죽을 때 아우 숙제에게 왕위를 물리겠다는 뜻을 남기자, 숙제는 형을 두고 왕이 될 수 없다고 형에게 사양하고 백이 또한 아버지의 말씀을 어길 수 없다고 서로 양보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두 형제는 고죽국을 떠나 주나라 문왕(文王)을 찾아가 신하가 되기로 약속했는데, 막상 찾아가 보니 문왕은 이미 죽었고 그의 아들 무왕(武王)이 은(殷)을 치려고 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두 형제는 무왕에게 도덕에 어긋나다고 충고했으나 듣지 않자 주나라에서 벼슬을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 해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어 먹고 살다가 그것조차 주나라 땅의 것이라 해 굶어 죽었다고 한다.

그는 오늘날까지 청빈하고 도덕적인 사람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그는 아마도 사람으로서 가장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사람이라 할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런 사람이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현실적으로 이렇게 살기란 지극히 어렵다.


 

 

공자의 수시처중은 오늘날의 상황적합이론과 흡사하다.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을 어느 하나로 고집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적절히 조정해 최적의 해법을 찾는 것이다.

 

 

훌륭한 지도자를 적극적으로 내세우는 이윤

 

맹자는 이어 말한다.

 

“이윤(伊尹)은 말하기를 ‘어느 사람을 섬기면 군주가 아니며, 어느 사람을 부리면 백성이 아니겠는가’하여 세상이 다스려져도 나아가며 혼란해도 나아가서, 말하기를 ‘하늘이 이 백성을 낸 것은 먼저 안 사람으로 하여금 뒤늦게 아는 사람을 깨우쳐주며, 선각자로 하여금 뒤늦게 깨닫는 자를 깨우치게 하신 것이니, 나는 하늘이 낸 백성 중에 선각자이니, 내 장차 이 도(道)로써 이 백성을 깨우치겠다’하였다.”

맹자가 두 번째로 든 인물 이윤은 하(夏)나라의 걸(桀)왕이 매희(妹喜)라는 미녀에 빠져 폭정을 일삼자 탕(湯)왕을 도와 걸을 몰아내고 혁명을 이루었던 어진 재상이었다. 이윤의 이러한 혁명에 대해 맹자는 그 유명한 ‘혁명론’을 편다.

덕이 없는 군주는 더 이상 왕일 수 없으므로 난폭한 군주를 제거하는 것은 ‘한 남자를 제거하는 것일 뿐’ 군주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는 논리로 혁명을 정당화했다. 이윤은 탕왕이 죽은 뒤에도 아들, 손자 대까지 계속 왕을 섬겼으며 탕왕의 손자인 태갑(太甲)을 섬길 때 태갑이 할아버지 탕왕이 세워놓은 법도를 외면하고 포악한 짓만 일삼자 그를 내쫓고 스스로 왕의 일을 맡았다가 3년 뒤에 태갑이 뉘우치자 다시 그에게 정권을 돌려주고 그를 보좌했다고 한다.

이처럼 이윤은 엘리트 지도자로서 자임하고 훌륭한 왕을 내세우고 보필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왕을 바꾸면서까지 선정을 이루고자 한 적극적인 참여파 인물로 평가된다. 역사 속에는 이윤처럼 혁명을 일으킨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이윤처럼 권력을 다시 되돌려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상황이 어떻든 항상 최선을 다하는 유하혜

 

맹자는 또 이어 말한다.

 

“유하혜(柳下惠)는 더러운 군주를 섬김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작은 벼슬을 사양하지 않으며, 나아가면 어짊을 숨기지 아니하여 반드시 그 도리대로 하며, (벼슬길에서) 버림을 받아도 원망하지 않고, 곤궁을 당해도 걱정하지 않으며, 향인들과 더불어 처하되 유유하게 차마 떠나지 못해서 말하기를 ‘너는 너이고 나는 나이니, (네가) 비록 내 옆에서 옷을 걷고 벗는다한들 네 어찌 나를 더럽히겠는가’ 하였다.”

맹자가 세 번째로 든 인물 유하혜는 중국 춘추시대 노(魯)나라 때의 현자다. 성은 전(展), 이름은 획(獲)으로 유하(柳下)에서 살았으므로 이것이 호가 됐으며, 혜(惠)는 시호다.

노나라의 대부 유하혜는 세 번이나 면직을 당했는데도 노나라를 떠나지 않았고, 오히려 그는 백성을 걱정하며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아 보려 했다. 그러자 그의 아내가 말했다.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군자에게는 두 가지 부끄러움이 있습니다.

나라에 옳은 도가 없는데도 귀한 자리에 있는 것이 부끄러움이요, 나라에 옳은 도가 있음에도 천하게 사는 것 또한 부끄러운 일입니다. 지금은 난세입니다. 세 번을 면직당하고도 떠나지 않는 것 역시 치욕에 가깝습니다.”

그러자 유하혜는 말한다.

“떠도는 백성들이 해악으로 빠지려 하는데 내가 어찌 떠날 수 있겠는가. 또 저들은 저들이고 나는 나요. 저들이 비록 백성을 괴롭히지만 어찌 나까지 더럽힐 수 있겠소.”

이렇게 말하며 유하혜는 끝까지 자신이 처해진 현실을 버리지 않았다. 유하혜와 관련된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유하혜가 밤에 성문 앞에서 유숙하는 집 없는 여자를 만나게 됐는데, 그 여인이 얼어 죽을까 걱정이 돼 그 여자를 안고 자신의 옷으로 감싼 채 하룻밤을 앉아 있었지만 예의에 어긋나는 일은 조금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처럼 그는 철저하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선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비굴해 보일 정도로 남의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여러 직을 맡았고, 남과 화합하고 남의 의견을 수용하고 풍속을 따랐으며 무리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결코 하지 않았다.

 

 

수시처중하고 집대성한 공자의 위대성

 

맹자는 앞의 세 사람의 예를 들고 나서 마지막으로 공자의 예를 들었다.

 

“공자(孔子)께서 제(齊)나라를 떠날 적에 (밥을 지으려고) 쌀을 담갔다가 (서둘러) 건져 가지고 떠나셨고, 노(魯)나라를 떠날 적에는 말씀하시기를 ‘더디고 더디다, 내 걸음이여’라고 하셨으니, 이는 부모국을 떠나는 도리다. 속히 떠날 만하면 속히 떠나고, 오래 머무를 만하면 오래 머물며, 은둔할 만하면 은둔하고, 벼슬할 만하면 벼슬한 것이 공자이시다.”

이렇게 말하면서 맹자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백이는 성인(聖人)의 맑은(淸) 자요, 이윤은 성인의 자임(自任)한 자요, 유하혜는 성인의 화(和)한 자요, 공자는 성인의 시중(時中)인 자이시다. 그래서 공자를 집대성(集大成)한 사람이라고 이르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앞의 세 사람 즉 백이나 이윤이나 유하혜는 모두 어떤 한 측면에서는 보통 사람들이 따르기 힘든 위대한 특성을 가진 사람이지만, 공자는 이러한 위인의 특성을 두루 갖추어 크게 이루었고(集大成), ‘때에 따라 그때그때(隨時) 중용의 처신을 하는(處中)’ 사람이라는 것이다. 공자의 위패를 모시는 성균관의 전각을 대성전(大成殿)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자의 이러한 수시처중(隨時處中)은 오늘날 상황적합이론(contingency theory)과 흡사하다고 하겠다.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이 어느 한 가지로 고착돼 있지 않고 상황에 따라 적절히 조정해 최적의 해법을 찾는다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도 훌륭한 지도자는 많다. 얼마 있지 않아 실시될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의 면면을 보라. 어느 사람은 청렴해 보이지만 국민 생각에 소극적인 듯해 보이고, 어느 사람은 스스로 자임해 적극적이지만 독단적인 면모가 보이고, 어떤 사람은 어떻게든 국민의 마음만 얻으려고 포퓰리즘에 빠져 있어 보인다.

앞에서 본 백이나 이윤이나 유하혜와 흡사하지는 않은가. 모두가 나름대로 좋은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모든 특성을 고루 갖추고, 때에 따라 적절하게 국민의 여망을 통합하고 조정하며 ‘집대성하고 수시처중’하는 위대한 지도자는 과연 없는 것일까.


일러스트 추덕영
전진문 영남대 경영학부 겸임교수

 

/ 한경

 

 

 

 

孟子 萬章下 1章

10-01.

孟子曰:

“伯夷,目不視惡色,耳不聽惡聲.

非其君不事,非其民不使.

治則進,亂則退.

橫政之所出,橫民之所止,不忍居也.

思與?人處,如以朝衣朝冠坐於塗炭也.

當紂之時,居北海之濱,以待天下之?也.

故聞伯夷之風者,頑夫廉,懦夫有立志.

맹자 가라사대,

백이는 눈으로 나쁜 빛을 보지 아니하며, 귀로 나쁜 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그 인군이 아니어든 섬기지 아니하며, 그 백성이 아니어든 부리지 아니하여,

다스리면 나아가고 어지러우면 물러가서,

횡정의 나오는 바와 횡민의 그치는 바에 차마 거하지 아니하며,

향인으로 더불어 처함을 생각호대 조의와 조관으로써 도탄에 앉은 것같이 여기더니,

주(紂)의 때를 당하야 북해의 물가에 거하여 써 천하가 맑아짐을 기다리니,

그러므로 백이의 풍도(風度)를 들은 자는, 욕심 많은 지아비가 청렴해지며, 나약한 지아비가 세운 뜻을 두니라.

 

(治,去聲,下同. 橫,去聲. 朝,音潮.)

橫,謂不循法度. 頑者,無知覺. 廉者,有分辨. 懦,柔弱也. 餘?見前篇.

횡은 법도를 따르지 않음을 이름이라. 완은 지각이 없음이오, 염은 분변이 있음이라. 나는 유약이라. 나머지는 모두 전편에 나타나니라.

 

 

伊尹曰:

‘何事非君? 何使非民?’

治亦進,亂亦進.

曰:‘天之生斯民也,使先知覺後知,使先覺覺後覺.

予,天民之先覺者也;予將以此道覺此民也.’

思天下之民匹夫匹婦有不與被堯舜之澤者,

若己推而內之溝中,其自任以天下之重也.

이윤이 가로대,

어찌 섬겨야 인군이 아니며 어찌 부려야 백성이 아니리오 하야,

다스려도 또 나아가며 어지러워도 또 나아가

가로대 하늘이 이 백성을 냄은 먼저 아는 이로 하여금 뒤에 알 이를 깨닫게 하며, 먼저 깨달은 이로 하여금 뒤에 깨달을 이를 깨닫게 하시니,

나는 하늘 백성의 먼저 깨달은 자이로니 내 장차 이 도로써 이 백성을 깨닫게 하리라 하며,

생각컨대 천하의 백성이 필부필부가 요순의 은택을 함께하여 입지 못한 자 있거든

마치 내가 밀어서 구덩이 가운데로 들어가게 함과 같이하니, 그 천하의 중함으로써 스스로 맡음이니라.

 

(與,音預.)

何事非君,言所事卽君. 何使非民,言所使?民.

無不可事之君,無不可使之民也. 餘見前篇.

何事非君’은 섬기는 바가 바로 인군임을 말함이오, ‘何使非民’은 부리는 바가 바로 백성임을 말함이니

가히 섬기지 못할 인군이 없으며 가히 부리지 못할 백성이 없음이라. 나머지는 전편에 나타나니라.

 

 

柳下惠,不羞?君,不辭小官. 進不隱賢,必以其道.

遺佚而不怨,?窮而不憫. 與?人處,由由然不忍去也.

‘爾爲爾,我爲我,雖袒?裸?於我側,爾焉能?我哉?’

故聞柳下惠之風者,鄙夫寬,薄夫敦.

유하혜는 더러운 인군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며, 작은 벼슬을 사양하지 아니하며, 나아감에 어짊을 숨기지 아니하야 반드시 그 도로써 하며,

버려져도 원망하지 아니하며, 곤궁하여도 근심하지 아니하며, 향인으로 더불어 처호대 유유히 차마 가지 아니하야,

너는 너이고 나는 나이니, 비록 내 옆에서 소매를 걷고 벌거벗은들 네 어찌 능히 나를 더럽히리오 하니,

그러므로 유하혜의 풍도를 들은 자는, 비루한 지아비가 너그러워지며, 박한 지아비가 후해지니라.

 

鄙,狹陋也. 敦,厚也. 餘見前篇.

비는 누추함과 같으니라. 돈은 두터움이라. 나머지는 전편에 나타나니라.

 

 

孔子之去齊,接淅而行;

去魯,曰:‘遲遲吾行也.’ 去父母國之道也.

可以速而速,可以久而久,可以處而處,可以仕而仕,孔子也.”

공자가 제나라를 떠나심에 쌀을 일어 건져 가시고,

노나라를 떠나심에 가라사대, 더디고 더딤이라, 내 감이여 하시니 부모의 나라를 떠나는 도리라.

가히 써 빠르게 하연즉 빠르게 하고, 가히 써 오래하연즉 오래하고,

가히 써 처(處)하연즉 처하고, 가히 써 벼슬하연즉 벼슬함은 공자시니라.

 

(淅,先歷反.)

接,猶承也. 淅,漬米水也. 漬米將炊,而欲去之速,故以手承水取米而行,不及炊也.

擧此一端,以見其久?速?仕?止,各當其可也.

접은 건짐과 같음이라. 석은 쌀을 물에 담금이니, 쌀을 담가 장차 불 때려다가 떠나고자 함이 급한 고로 손으로써 물에서 쌀을 취해 건져 가시니 미처 불 때지 못함이라.

이 한 끝을 들어서 써 그 오래하고, 빨리하고, 벼슬하고, 그만둠이 각각 그 가함에 마땅함을 나타냄이라.

 

 

或曰:“孔子去魯,不稅冕而行,豈得爲遲?”

楊氏曰:“孔子欲去之意久矣,不欲苟去,故遲遲其行也. ?肉不至,則得以微罪行矣,故不稅冕而行,非速也.”

혹자가 가로대 공자가 노나라를 떠남에 면류관을 벗지 아니하고 떠나시니 어찌 시러곰 더디리오 한대,

양씨 가로대 공자가 떠나고자 하는 뜻이 오래로되 구차히 떠나고자 아니한 고로 그 걸음을 더디고 더디게 하시니 제사지낸 고기가 이르지 아니하면 시러곰 작은 죄로써 감이라. 그러므로 면류관을 벗지 아니하고 가시니 빠름이 아니라.

 

孟子曰:“伯夷,聖之?者也;伊尹,聖之任者也;柳下惠,聖之和者也

孔子,聖之時者也.

맹자 가라사대 백이는 성인의(성인으로서) 깨끗한 사람이오, 이윤은 성인의 자임(自任)한 사람이오, 유하혜는 성인의 화한 사람이오,

공자는 성인의 시중(時中)한 사람이시니라.

 

張子曰:“無所雜者?之極,無所異者和之極.

勉而?,非聖人之?;勉而和,非聖人之和.

所謂聖者,不勉不思而至焉者也.”

장자 가라사대 잡된 바가 없는 것은 맑음의 극이오, 다른 바가 없는 것의 화함의 극이오,

힘써서 맑아짐은 성인의 맑음이 아니오, 힘써서 화함은 성인의 화함이 아니니라.

이른바 성인은 힘쓰지 아니하고 생각하지 아니하고도 (지극함에) 이른 사람이라.

 

孔氏曰:“任者,以天下爲己責也.”

愚謂孔子仕?止?久?速,各當其可,蓋兼三子之所以聖者而時出之,非如三子之可以一德名也.

或疑伊尹出處,合乎孔子,而不得爲聖之時,何也?

程子曰:“終是任底意思在.”

공씨(孔文仲, 北宋) 가로대 임은 천하로써 자기 책임을 삼느니라.

우(주자)는 이르기를, 공자가 벼슬함과 그만둠과 오래함과 빨리함은 각각 그 가함에 마땅하시니 대개 세 분이 함께 써 성인된 바는 때로써 나온 것이니, 세 분이 가히 한 덕으로써 이름함과는 같지 아니하니라.

혹자는 의심하시길, 이윤의 나온 곳이 공자와 합하거늘 시러곰 성인의 시중이 되지 못함은 어째서인고.

정자 가라사대 끝내 이 자임하는 의사가 있음이라.

 

 

孔子之謂集大成.

集大成也者,金聲而玉振之也.

金聲也者,始條理也;玉振之也者,終條理也.

始條理者,智之事也;終條理者,聖之事也.

공자의 모아서 크게 이루심(集大成)을 이르시니

모아서 크게 이루었다는 것은 쇠로 소리내고 옥으로 거둠이라.

쇠로 소리낸다는 것은 조리를 시작함(始條理)이오, 옥으로 거둔다는 것은 조리를 마침(終條理)이니,

조리를 시작하는 것은 智의 일이오, 조리를 마치는 것은 聖의 일이니라.

 

此言孔子集三聖之事,而爲一大聖之事;猶作樂者,集衆音之小成,而爲一大成也.

成者,樂之一終,書所謂“簫韶九成”是也.

金,鐘屬. 聲,宣也,如聲罪致討之聲.

玉,磬也. 振,收也,如振河海而不洩之振. 始,始之也.

終,終之也. 條理,猶言脈絡,指衆音而言也.

智者,知之所及;聖者,德之所就也.

蓋樂有八音:金?石?絲?竹?匏?土?革?木.

若獨奏一音,則其一音自爲始終,而爲一小成. 猶三子之所知偏於一,而其所就亦偏於一也.

八音之中,金石爲重,故特爲衆音之綱紀. 又金始震而玉終?然也,

故?奏八音,則於其未作,而先擊?鐘以宣其聲;俟其旣?,而後擊特磬以收其韻. 宣以始之,收以終之. 二者之間,脈絡通貫,無所不備,則合衆小成而爲一大成,猶孔子之知無不盡而德無不全也.

金聲玉振,始終條理,疑古樂經之言. 故兒寬云“惟天子建中和之極,兼總條貫,金聲而玉振之.” 亦此意也.

이는 공자가 세 성인의 일을 모아서 하나의 큰 성인(大聖)이 되신 일을 말함이니 음악을 짓는 자가 여러 음의 작은 이룸(小成)을 모아서 하나의 큰 이룸(大成)을 만드는 것과 같으니라.

성은 음악이 한 번 끝남이니 『서경』(虞書 益稷篇)에 이른바 음소 구성(아홉 가지 功이 차례로 펴졌기 때문에 아홉 번 다른 음조로 연주하였다고 보는데, 궁극적으로는 洛書 九宮數理를 따라 연주한 방식으로 볼 수 있다.)이 이것이라.

금은 종의 등속이오, 성은 폄(널리 퍼뜨림)이니 (『春秋左氏傳』의) ‘죄를 소리내어 다스린다’는 ‘聲’과 같으니라.

옥은 경이오, 진은 거둠이니 (『中庸』제26장의) ‘강과 바다를 거두어도 새지 않는다’는 ‘振’과 같음이라. 시는 그것을 시작함이오,

종은 그것을 마침이라. 조리는 맥락이라는 말과 같으니 여러 음을 가리켜 말함이라.

지는 앎의 미치는 바이오, 성은 덕의 나아가는 바라.

대개 풍류에는 여덟 음이 있으니 金 石 絲 竹 匏 土 革 木이라.

만약에 홀로 한 음을 연주하면 그 한 음이 스스로 처음과 마침이 되어 하나의 소성이 되니, 마치 세 분의 아는 바가 하나에 치우쳐 그 나아가는 바가 또한 하나에 치우침이라.

팔음의 가운데 금과 석이 중한 고로 특히 여러 음의 기강이 되고, 또한 금은 처음에 울리고 옥은 끝에 그치는 모양이라.

그러므로 아울러 팔음을 연주하면 그 시작하기 전에 먼저 박종을 쳐서 써 그 소리를 펴고, 그 이미 끝나기를 기다린 후에 특경을 쳐서 써 그 운을 거두나니 펴서 써 시작하고 거두어서 써 마쳐, 두 가지 사이에 맥락이 관통하여 갖추어지지 아니한 바가 없으면 여러 소성이 합하여 하나의 대성을 지으니, 마치 공자의 앎이 다하지 아니함이 없어서 덕이 온전하지 아니함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금성옥진과 시종조리(金聲玉振,始終條理)는 의심컨대 옛날 『악경』의 말인 고로 (漢나라 때의) 예관이 이르기를 ‘오직 천자만이 중화의 극을 세워 조관(조리의 관통함)을 아울러 묶어서 금으로 소리를 펴고 옥으로 거둔다’ 하니 또한 이 뜻이라.

 

智,譬則巧也;聖,譬則力也. 由射於百步之外也,其至,爾力也;其中,非爾力也.”

지를 비유하면 재주요, 성을 비유하면 힘이니, 백보의 밖에서 활을 쏨과 같으니, 그 이름은 네 힘이어니와 그 가운데를 맞춤은 네 힘이 아니니라.

 

(中,去聲.)

此復以射之巧力,發明智?聖二字之義.

見孔子巧力俱全,而聖智兼備,

三子則力有餘而巧不足,

是以一節雖至於聖,而智不足以及乎時中也.

이는 다시 활쏘기의 재주와 힘으로써 성과 지, 두 글자의 뜻을 펴 밝혀,

공자는 재주와 힘이 다 온전하여 성과 지를 갖추시고,

세 분은 곧 힘은 남음이 있으나 재주는 부족함을 나타냄이라.

이로써 한 부분이 비록 성인에 이르렀으나 지혜가 족히 시중에 미치지 못함이라.

 

○ 此章言三子之行,各極其一偏;孔子之道,兼全於衆理. 所以偏者,由其蔽於始,

是以缺於終;所以全者,由其知之至,是以行之盡.

三子猶春夏秋冬之各一其時,孔子則大和元氣之流行於四時也.
○이 장은 세 분의 행실은 각기 그 한쪽으로 치우침이 지극하고, 공자의 도는 여러 이치를 아울러 온전히 하셨으니 써한 바 치우침은 그 처음에 가려짐에서 비롯됨이라.

이로써 끝에 결함이 있고, 써한 바 온전함은 그 앎이 지극한데서 비롯됨이라. 이로써 행실이 다함이라.

 세 분이 춘하추동의 각각 하나의 그 때라면, 공자는 곧 태화원기가 사시에 유행함과 같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