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世上萬事

부적(符籍) / 윤열수의 문화재 이야기

경호... 2012. 11. 13. 02:30

윤열수의 문화재 이야기

도둑부터 귀신까지 모두 쫓아내는 符籍

 

⊙ 민간신앙과 전통공예가 어우러진 符籍木版

⊙ 부적 통해 불교신앙의 토착화 현상도 볼 수 있어

⊙ 三災符籍 가운데 조형적으로 아름다운 것 많아

 

 

가정평안부.

 

 

흔히 인간의 소원은 끝이 없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소원을 이루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그 노력만으로 부족할 때 또는 보다 빨리 소원을 이루고자 할 때 ‘부적(符籍)’의 힘을 빌리게 된다. 
  
조선시대 후기 우리 조상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모든 것을 부적에 의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를 낳을 때, 집을 지을 때, 심지어 나무하러 갈 때도 부적을 사용했다. 부적은 미학적(美學的)으로 아름다울 뿐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우리 조상들의 시선과 염원이 담겨 있다. 그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오랜 삶의 경험에서 탄생한 부적은 곧 인간이 만들고 인간이 믿는 예술품이다.
  
부적은 종이에 글씨, 그림, 주술적 기호 등을 그리거나 목판으로 찍어 낸 주술적 도구로, 집 안에 붙이거나 몸에 지녀 액운(厄運)을 물리치고 복(福)을 불러들이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즉, 주술적 방법으로 인간사의 복잡다단한 길흉(吉凶)을 관장하려는 의도가 짙었다. 생활 속에 신앙과 예술이 공존하고 있는 부적은 평범하면서도 주술적 신비가 있어 인간의 길흉화복을 바꾸는 불가사의한 힘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재앙을 물리치고 福을 부르는 符籍

부적에는 종이부적뿐 아니라 기석(奇石)·나무·곤충·동물·뼈·청동·조개 등을 이용하여 만든 물건도 포함된다. 이러한 종이 또는 입체부적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지만, 통일신라 때 처용(處容)의 얼굴을 그린 것을 대문에 붙여 역신(疫神)을 쫓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우리의 역사와 공존해 온 부적은 그 형태와 크기가 매우 다양하다. 부적 목판 가운데 가장 큰 것은 관(棺)을 덮었던 탑다라니 부적으로 크게는 길이가 2m 넘는 경우도 있다. 작게는 2~3㎝에 달하는 호신부적(護身符籍), 선추부적(扇錘符籍), 호패부적(號牌符籍) 등이 있다.
  
부적은 사용목적과 기능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주력(呪力)의 힘을 빌려 좋은 것을 더욱 증가시키는 소원성취(所願成就) 부적이다. 다른 하나는 사(邪)·귀(鬼)·액(厄)을 물리치거나 질병 등을 방어하는 벽사용(用)의 액막이(厄防止) 부적이다. 
  
부적은 재앙을 막고 복을 누리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주술물로 인류가 생겨나고 원시종교가 발생했을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선사(先史)시대에는 다산(多産)과 풍요(豊饒)를 기원하기 위해 주로 바위·동굴·짐승의 뼈·돌·조개·머리카락·나무뿌리·보석 등 자연물을 그대로 이용하다 시대가 내려오면서 점차 조형성이 가미되며 일정한 목적을 두고 그에 따른 상징성을 부여하게 되었다. 또한 생산활동이 활발해지고 인구가 증가하여 부적의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빠른 시간에 만들 수 있는 대량생산용 부적판의 사용이 활발해졌다.
 
 
《동의보감》에도 부적 소개
  
조선시대 후기 우리 조상들의 큰 바람은 현실에 맞는 실용주의적 사고력으로 수복강녕(壽福康寧), 부귀다남(富貴多男), 즉 오래 살고 자식을 많이 낳고 복을 많이 받아 행복해지기를 기원했다.
  
때문에 조선시대가 되면 부적의 사용이 일반화하는데, 전통 의학서인 허준의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아기를 빨리 낳을 수 있도록 하는 최생부(催生符)가 실려 있고, 19세기 중엽 홍석모가 지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궁중이나 사대부 집안에 정월 초하룻날, 세화(歲畵)를 벽에 걸거나 문을 지키는 신장을 그린 문배도(門排圖)를 그려 붙여 액(厄)이 물러가기를 빌었다고 하여 여러 형태의 주술행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부적을 집 안에 붙이거나 몸에 지녀 백운(百運)을 수호하려는 인간의 믿음은 시공을 초월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부적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주문이다. 부적은 단순히 그리거나 찍는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정갈하고 청정한 마음으로 주문을 외우고 일정한 의식을 행한 후에야 그 주술적 기능을 다하여 효험이 생긴다고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조상들은 목욕을 하고 제물을 마련하는 등 지극한 정성을 다하여 부적을 제작했다. 부적은 보통 승려나 역술가, 무당이 만드는데, 부적을 만들 때는 택일하여 목욕재계한 후 동쪽을 향하여 정수(淨水)를 올리고 분향한다. 그리고 이(齒)를 딱딱딱 3번 마주치고 주문을 외운 후에 부적을 그린다고 한다.
  
부적을 쓸 때 사용하는 글씨는 붉은 빛이 나는 경면주사(鏡面朱砂)나 영사(靈砂)를 곱게 갈아 기름이나 설탕물에 개어서 쓴다. 경면주사는 유화수은(流化水銀)의 일종으로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이나 《포박자》 선인편에서 신약의 약재 일종으로 다루고 있다. 부적을 대체로 붉은색으로 쓰는 이유는 붉은색이 양색(陽色)이라 음귀(陰鬼)를 쫓는 데 효과가 있다고 여겼고 붉은색 자체를 귀물(鬼物)이 공포를 느끼게 하는 위력과 힘을 가진 색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색소를 구하기 어려웠던 옛날에는 동물을 죽여 그 피를 사용하기도 했다. 특히 닭의 피는 어둠을 물리치고 귀신을 쫓는다고 믿어 그 효험이 큰 부적의 재료로 사용됐다.
  
종이는 회화나무 열매로 물들인 괴황지(槐黃紙)를 쓰는 것이 원칙이나 치자(梔子)물을 들인 창호지를 쓰기도 한다. 또한 입체부적은 재료에 따라 짐승의 뼈·뿔·이빨·발톱·조개·대나무·돌 등으로 만들기도 한다.
 

 

삼재팔난 부적 목판.

 

 

부적 목판으로 사용하는 나무들

 

집 안에 복숭아나무를 심으면 귀신이 침범하지 못한다 하여 후미진 뒷뜰이나 사립문 밖 골목길에서는 오래된 복숭아나무를 볼 수 있다. 복숭아나무는 오목(五木)의 정(精)으로 사기압복(邪氣壓伏) 백귀불침(百鬼不侵)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복숭아나무가 춘양의 정(精)이기 때문에 늦봄 잎이 돋아나기 전에 화사한 꽃을 피워 다른 어떤 나무보다도 생기가 충만해 있고 구마(驅魔)의 힘도 매우 왕성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특히 동남향으로 곧게 뻗은 가지, 도동지(桃東枝)는 나무의 모든 양기(陽氣)를 가장 많이 받기 때문에 음(陰)에 해당되는 귀신이 제일 무서워하는 나무로 여겨졌다.

 

그렇기 때문에 부적 목판에 쓰는 나무로는 복숭아나무·대추나무를 주로 이용했고, 이밖에도 박달나무·엄나무·느티나무·은행나무·피나무·소나무·회양목·단풍나무·감나무 등 다양한 소재로 부적 목판을 만들었다.

 

나무의 선택은 대체로 부적판의 크기에 따라 결정되는데 가로 40㎝, 세로 50㎝ 이상의 크기에서는 소나무·피나무·은행나무·회양목·단풍나무·감나무 등의 다양한 소재로 만들어진 부적 목판이 남아 있다. 크기가 작은 판일수록 단단하고 야무진 목재를 사용해 복숭아나무·살구나무·대추나무 등으로 만든 부적 목판이 많다. 또한 이처럼 크고 작은 부적판은 한국의 목판인쇄문화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부적방망이’, 또는 ‘대추나무 방망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대추나무가 단단하다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부적 목판 가운데 벼락 맞은 대추나무(벽조목·霹棗木)가 귀하여 이를 으뜸으로 치기 때문이다. 단단하고 결이 고르게 자란 대추나무는 떡살·도장·봉인·능화판·화전지판 등에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나, 벽조목은 매우 희귀한 목재로 몸에 지니고만 있어도 잡귀가 침범하지 못한다고 하며, 닭장 속에 넣어 두면 닭이 울지 못할 만큼 기(氣)가 충전된 신비한 힘이 있다고 한다. 부적 목판으로 효험이 있는 나무는 역시 복숭아나무·벽조목·엄나무·뽕나무 등인데, 조각에 사용하는 목재는 원통형을 4등분하여 다듬어 낸 심재(深材)로, 기(氣)를 많이 받은 나무라고 한다.

 

 

부적으로 길운을 비는 사람들(所願成就符籍)

 

 

소원성취 부적.

 

 

소원성취 부적은 개인의 바람을 담아 부적 목판에 새기거나 종이에 그렸다. 특히 매년 봄이 되면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고 쓴 종이를 집 대문에 붙이는 풍습은 조선시대의 기록에서 살펴볼 수 있다. 정월 입춘 때 궁중에서는 춘첩자(春帖子)를 만들어 각 대전과 궁에 붙여 사용했다.

 

소원성취 부적의 종류에는 옥추영부(玉樞靈符)·통천보인부(通天寶印符)·소원성취부(所願成就符)·가택안녕태평부(家宅安寧太平符)·칠성부(七星符)·재수대길부(財數大吉符)·관직부(官職符)·합격부(合格符)·만사대길부(萬事大吉符)·정토왕생부(淨土往生符)·탈지옥부(脫地獄符) 등이 있다.

 

부적의 내용을 살펴보면, 대체로 남성은 학문을 이루어 과거에 급제하고 고귀한 신분이 되는 데 중점을 두었고, 여성은 부부가 화합하여 가정의 평화를 이루고 아들을 낳아 잘 기르기를 염원했다. 그 예로 조개부적을 들 수 있는데 조개의 모양이 여성을 상징하여 풍요와 다산(多産)을 의미한다.

 

그 다음이 현세에서의 물질적 풍요와 사후 세계를 걱정하는 내용으로 일상적 삶에서 추구하는 본질적인 것들이다. 보다 나은 생활을 영위하고 참된 인간으로서 삼강오륜(三綱五倫)을 지키려는 인간의 욕망은 신분의 높낮이와 무관하게 모든 사람들에게 도덕적 가치로 부여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매년 정초가 되면 수(壽), 복(福) 자를 대문이나 기둥에 거꾸로 써 붙이거나 길상부적(吉祥符籍)을 찍어 나누어 가졌다는 기록이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잘 나타나 있으며, 장님을 보름날 전부터 불러다가 <안택경(安宅經)>을 읽히며 밤을 지새우면서 액을 막고 복을 빌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유형(有形)의 부적뿐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삶 자체가 부적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모든 일을 관통하는 소원성취 부적은 인간의 원초적인 소망이 담겨 있다. 또한 장수의 비결을 담은 도교적(道敎的) 영향과 사후세계를 연결하는 불교적(佛敎的) 영향 등이 민간신앙(民間信仰)과 결합되어 형성된 소원성취 부적은 인간에게 교훈적·계몽적·암시적 기능을 부여하는 주력(呪力)을 지니고 있다. 주력의 힘을 빌려 평탄하고 안락한 삶을 추구하려는 믿음은, 민간신앙 깊숙한 곳에 크게 자리 잡아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지켜주고 막아주는 부적(厄防止符籍)

 

눈병을 낫게 해 주는 부적(일목삼신어).

 

 

일명 벽사부적이라고도 부르는 액막이부적은 종류가 가장 많고 쓰이는 용도 또한 생활전반에 걸쳐 다채롭다. 민간신앙 가운데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무서움, 질병이나 재화 등을 막기 위해 부적을 제작하여 액운이나 사귀(邪鬼)를 예방하고 퇴치하고자 했다. 또한 살(煞)이 끼어서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공교롭게 큰 탈이 날 때 귀신 때문이라고 믿었는데, 이 모든 것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할 때 사용했다.

 

사람의 욕심만큼이나 벽사부적 또한 다양하다. 액막이부적의 종류로는 각종 질병퇴치부(疾病退治符)·재앙퇴치부(災殃退治符)·귀신불침부(鬼神不侵符)·야수불침부(野獸不侵符)·호신부(護身符)·악몽퇴치부(惡夢退治符)·도적불입부(盜賊不入符)·삼재예방부(三災豫防符) 등이 있고, 이 밖에도 부정에 관한 부적, 오래 살 부적, 농축산물 보호 부적, 전쟁 피하는 부적(避兵符) 등으로 나누어진다.

 

이 중에서도 질병과 귀신퇴치에 관한 부적이 가장 많다. 질병에는 눈병(眼疾)·학질()과 같은 돌림병, 즉 전염병을 비롯하여 난산부(難産符)와 같이 출산할 때 사용하는 부적까지 다양한 치료법과 부적이 있다. 액막이부적은 글씨나 추상적 형상, 상상의 동물, 문양 등을 붉은 경면주사로 쓰거나 목판에 새겨 찍어 내어 출입구의 기둥이나 몸속에 숨기고 다니면 액운을 예방할 수 있다고 믿었다. 경면주사의 붉은색은 귀신을 내쫓는 힘을 가졌고, 피(血)·불(火)과 대등한 성질을 지니고 있어 생명과 감정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귀신이 싫어하는 복숭아 나무에 판각하여 귀신이 공포를 느끼는 붉은색 또는 황토색으로 만든 부적에는 신비스런 효험이 있다고 믿었다.

 

 

삼재로부터의 보호(三災符籍)

 

 

삼두일족응 삼재부.

 

 

액막이부적 중에서 회화성·예술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삼재부적(三災符籍)이다. 삼재란 사람이 살면서 겪게 되는 세 가지 재난으로 도병재(刀兵災)·질역재(疾疫災)·기근재(饑饉災) 또는 수재(水災)·화재(火災)·풍재(風災)를 말한다. 사람은 9년마다 주기적으로 삼재를 맞이하게 되는데 삼재운이 든 첫해를 ‘들삼재’, 둘째 해를 ‘누울삼재’, 셋째 해를 ‘날삼재’라 부른다. 이 가운데 가장 운이 나쁜 것이 ‘들삼재’이고 그 다음이 ‘누울삼재’, ‘날삼재’의 순으로 액운이 따른다고 한다. 생활 속에서도 삼재팔난(三災八難)이란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여덟 가지 재난으로 배고픔· 목마름·추위·더위·물·불·칼·병난을 말한다.

 

사람들은 삼재 액운이 든 해에 이를 막기 위해 문자화한 부적이나 머리 셋 달린 매를 경면주사로 그리거나 목판으로 찍어 내어 출입하는 방문 위에 붙였다. 목판에 새겨진 삼재부적은 그 종류가 다양한데 문자로 형상화한 부적은 삼재소멸부·옥추삼재부·자연원리삼재부·입삼재부·중삼재부·출삼재부 등으로 구분한다. 매의 머리가 셋이고 몸뚱이와 발이 하나로 되어 있는 삼재 부적의 목판 역시 매우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 사용했는데 부적 가운데 가장 예술적인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매의 사나운 주둥이와 날카로운 발톱을 유난히 강조했고 큰 날개와 힘 있는 꼬리가 위협적으로 무서움을 주는데, 이러한 모습이 사람에게 찾아오는 악귀를 막아 준다고 믿었다. 또한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액운을 높은 곳에서 찾아내 세 개의 부리로 삼재를 쪼아 없애 준다고 믿었던 것이 삼두일족응삼재부(三頭一足鷹三災符)이다.

 

불교가 전래하는 과정에서 토착신앙과 결합하여 불교화한 신앙을 꼽자면 대표적인 것이 산신신앙(山神信仰)일 것이다. 산신신앙에는 무속(巫俗)과 주술적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불교 본연의 구도행 가운데 중생구제는 사바세계의 액운을 막아 주고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정신세계를 열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찰의 동지(冬至) 행사 중에 각종 부적을 신도들에게 나누어 주며 가정의 행복과 풍요를 기원하는 것이 바로 그 예이다. 고등 종교 차원의 교리에 나타나 있는 차원 높은 중생구제보다는 현실세계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는 부적의 현혹은 민중 속에 쉽게 뿌리 내렸을 것이다.

 

불교 전통 부적을 내용별로 살펴보면, 부처의 지혜로 정신이 통일되고 성불의 목적이 있는 다라니(陀羅尼) 부적을 비롯하여 불교와 직접 관련이 깊은 구도부(求道符)·멸죄성불부(滅罪成佛符)·당득견불부(當得見佛符)·위인염불부(爲人念佛符)·왕생정토부(往生淨土符)·금강부(金剛符)·준제부(準提符)·관음부(觀音符)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원래 불교적 소재만 있었던 부적 속에 점차 길상적 의미와 벽사적 내용이 조금씩 더해져 근래에는 종합적, 다목적 부적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부적을 망라하여 종합적으로 수록하므로 부적판의 이름도 만사형통부(萬事亨通符)·백사대길부(百事大吉符)라 칭한 것도 있다. 이 역시 불교의 대승적 차원에서 중생이 기원하는 모든 바람을 폭넓게 수용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사원에서 사용하는 대형화한 부적 목판들은 대체로 먹이나 붉은색을 사용하고 있는데, 값비싼 경면주사로 찍어 내기가 힘들어 수비한 붉은 황토에다 치자물을 섞어 사용하기도 했다.

 

 

호랑이 부적에 깃든 주술적 힘

 

벽사용 부적을 보면 호랑이를 소재로 하거나 호랑이와 관련된 글자의 파자(破字) 구성으로 만들어진 부적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어느 종류의 벽사부적보다도 많이 남아 있다.

 

호랑이는 우리 문화 속에서의 다양한 상징성만큼 다변화하여 그림 또는 부적 등으로 사용되면서 벽사적 역할은 물론 신앙의 대상, 믿음과 기원의 상징물로 큰 역할을 했다. 대개의 부적이 문자나 알 수 없는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음에 반해, 호랑이 부적은 호랑이의 용맹성을 부적 속에 도입하여 부적의 효능을 확대시키고 있다. 또한 산신(山神)으로도 일컬어지는 호랑이의 수염·발톱·이빨 등을 몸에 지니고 다니면 액운을 막아 준다고 믿었으며, 조선 말기까지 정초에 닭 그림과 함께 호랑이 그림을 대문에 붙여 사용하기도 했다.

 

호랑이와 관련된 글자로 만든 부적은 호랑이가 침범하지 못하도록 막는 백호부(白虎符)나 호불입부(虎不入符)같이 호환(虎患) 등의 재난을 막는 부적이 있는가 하면 호랑이를 이용하여 잡귀나 질병을 막는 용도의 부적들이 있다. 부적에 사용하는 기호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백호부의 경우 흰 호랑이를 백공(白公)으로 중앙에 정중히 모시고 진칠 시 또는 주검 시(尸) 자를 상하에 배치하여 아래쪽의 사냥할 전(田) 자에 꼬리를 달아 백호를 가두어 두고 경계선을 넘어서면 사냥꾼에게 잡힌다는 뜻을 담고 있다.

주술적 힘이 강한 부적에 나타난 글자로는 활 궁(弓), 지게 호 또는 막을 호(戶), 베어죽일 참(斬), 귀신머리 불(), 나가지못할 계(屆) 자 등이 있다. 호랑이를 소재로 그리거나 판화로 찍어 낸 부적을 보면 민화 속 호랑이 그림과 유사한 도상이 등장한다. 민화에서와 마찬가지로 부적에 등장하는 호랑이 역시 무섭기보다는 친근하고 해학적으로 표현됐다. 특히 평안대길부(平安大吉符) 속 호랑이는 팔다리를 구부려 작은 상자 안에 넣어 놓은 듯 익살스럽게 표현되었다. 정면을 바라보는 얼굴이 아니라면 호랑이임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추상적이다. 무서운 호랑이지만 추상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문양화했으며 이에 여러 글자를 더해 다양한 의미를 함축했다. 등 쪽에 출세를 기원하는 관재부적, 머리 쪽에 가내평안부와 재물부, 앞쪽에 가정불화를 금지하는 부적, 몸 가운데는 집안의 재앙을 쫓는 부적이 있어 호랑이를 중심으로 한 종합 부적으로 볼 수 있다. 목판 부적 가운데 매와 호랑이를 양각한 삼재부적, 까치호랑이를 양각한 길상부적 등도 있다.

 

 

호랑이 이빨 등도 부적으로 널리 사용

 

 

호랑이 발톱.

 

 

어린이 돌잔치에 사용했던 돌띠나 머리에 쓰는 굴레의 자수 장식문양 속에도 호랑이가 등장한다. 돌띠나 굴레의 자수문양에는 아름다운 꽃이나 귀여운 동물들을 주로 사용했지만 호랑이까지도 귀여운 모습으로 수놓아 눈에 잘 띄지 않게 숨겨 놓은 그림처럼 장식했다. 어린이가 자라면서 호랑이의 씩씩한 기질을 닮고 질병이나 악귀가 침범하지 못하도록 한땀 한땀 정성들여 수놓아 부적과 같은 역할을 하도록 했다.

 

실제 호랑이의 수염, 발톱, 이빨도 장식을 달아 벽사용 부적으로 지녔다. 여자들의 노리개 장식에도 호랑이가 벽사용으로 등장한다. 호랑이를 장식한 노리개는 호랑이 발톱이나 이빨 자체를 세공하여 패용하거나 호랑이를 자수로 장식해 패용하는 경우가 있다. 방형의 고체 향을 금·은사로 만든 향집이나 자수로 만든 향집에 넣어 패용한 장신구인 각향노리개에도 호랑이의 형태가 등장하는데, 각향 자체에 제액(除厄) 기능이 있다고 믿었지만 여기에 호랑이를 장식함으로써 재액의 효과가 더욱 크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호랑이 가죽인 호피는 정이품(正二品) 이상 벼슬아치들의 품계에 따라 호피방석으로 사용했는데, 무관들의 호흉배(虎胸背)와 같은 맥락으로 벽사적 상징을 담고 있다.

 

이렇듯 조상들은 무서움과 두려움의 대상인 호랑이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쫓아내거나 방어하면서, 한편으로는 호랑이를 신격화해 모시거나 사악한 모든 것들을 이 무서운 호랑이를 이용하여 물리치려 하기도 했다. 호랑이를 비롯하여 다양한 벽사적 상징들을 이용하여 질병이나 재화, 나쁜 살(煞)을 막기 위해 부적을 만들어 이를 극복하고자 했다. 해학적인 까치호랑이에서부터 악귀를 물리치는 호랑이 벽사부적에 이르기까지 호랑이를 모델로 한 우리 조상들의 상상력은 무한한 예술적 경지에 이른다.

 

부적의 현대적 의미

 

인간뿐 아니라 모든 현상에 과학적인 증명이 가능하고 의학이 발달한 지금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부적을 찾고 있다.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물질적 풍요 속에 살고 있지만 동시에 그 어느 때보다도 정신적·심리적으로 각박하고 불안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믿음, 다른 한편에서는 미신(迷信)으로 부르기도 하는 부적의 영향력은 현재에도 우리의 생활 곳곳에 미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부적을 통해 모든 불안을 해소하고 복을 빌고자 했던 조상들의 지혜와 염원이며, 그 속에 담겨 있는 부적의 상징성, 독특한 조형성 등과 같은 부적의 가치가 아닐까 싶다.⊙

 

 

 

尹烈秀
⊙ 65세. 원광대 영어교육학과 졸업. 동국대 문학박사(미술사학).
⊙ 에밀레박물관 학예관, 삼성출판박물관·가천박물관 부관장,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
    민학회 회장 역임. 現 가회민화박물관장.
⊙ 저서 : 《민화의 즐거움》 《꿈꾸는 우리민화》 《민화이야기》 《한국 호랑이》 등.

 

 

/ 월간조선

 

 

 

 

귀신아 물러가라~ ‘부적’이 나가신다

 

‘입춘대길’ 입춘첩도 부적의 하나…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상징적 의미

 

◆‘강시’ 잡는 부적(符籍)

 

 

부적

 

 

양손을 앞으로 뻗고 두 다리로 콩~콩 뛰면서 사람들을 쫓아다니는 좀비(귀신) ‘강시’를 기억하는가. 1980년대 여름이면 무서운 얼굴을 한 강시가 브라운관을 강타하고, 아이들은 저마다 강시 흉내를 내며 교실이나 운동장을 콩콩거리기 일쑤였다. 몸이 굳어 콩콩거릴 수밖에 없는 불쌍한 귀신 강시(?屍)는 원래 얼어 죽은 시체를 이르는 말이다. 그러던 것이 중국 명나라 중엽부터 얼어 죽은 시체에 죽은 자들의 원혼이 깃들어 사람들을 해치는 좀비로 그려지게 된다. 이런 강시 전설은 청나라에 들어 성행해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강시의 복장이 대체로 청나라 시대의 복식을 하고 있다.

 

힘이 강해 물건을 산산조각 내고 사람들을 해치는 강시를 물리치는 방법이 있는데 그 하나가 바로 ‘부적’을 이마에 붙이는 것이다. 이 부적을 강시의 이마에 붙이는 순간 강시는 그 자리에 멈춰 서게 된다. 그런 후에 강시를 잡는 도사가 흔드는 방울소리를 따라 움직이게 된다.

무서운 귀신 강시를 잡고, 집안의 액운을 없애준다는 ‘부적’에는 과연 우리가 모르는 무슨 힘이 있는 것인가. 우리네 문화 속에 녹아있는 부적과 그 안에 담긴 종교적인 의미에 대해 알아보자.

 

◆‘처용 화상’에서 시작

 

‘부적’은 악귀를 쫓거나 복을 가져오기 위해 몸에 지니는 주술도구를 일컫는다. 보통 종이 위에 글씨·그림·기호 등을 쓰거나 그린 것으로 한국에서 부적의 기원으로 대표적인 예는 ‘처용(處容)의 화상’을 들 수 있다.

<삼국유사>에는 처용이 자신의 아내를 범한 역귀(疫鬼)를 죽이는 대신 노래와 춤으로 감복시킨 이야기가 나온다. 처용의 태도에 감복을 받은 역귀가 앞으로는 처용의 화상이 그려져 있는 곳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에서 부적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흔히 부적이라고 하면 불교나 민간신앙에서 많이 쓰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네 풍습에서도 이런 부적 문화에 대한 것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봄이 오면 집집마다 대문에 붙이는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는 글귀가 쓰인 입춘첩(立春帖)이다. 한 해의 행운과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붙이는 입춘첩 또한 부적의 하나로 볼 수 있다.

 

◆귀신 쫓고 행운·생명기원

 

부적에는 보통 황색·주색(朱色)·적색(赤色)이 사용되는데 각각 그 의미가 있다. 특히 황색은 광명을 뜻하는 것으로 악귀가 가장 싫어하는 빛이라고 한다. 성경에도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한다(요 1:5)’는 말씀이 있다. 대체로 어두움은 악마, 귀신, 마귀 등을 상징한다. 이들 귀신들은 훤한 대낮이 아닌 칠흑 같은 밤에 활동하며, 그 속에 생명이 아닌 사망과 거짓과 속임이 가득하기 때문에 어두움으로 표현된다. 주색은 중앙아시아 샤머니즘에서 귀신을 쫓는 힘을 지닌 것으로 여겨지며 적색은 생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정화하는 힘을 지녔다고 본다. 즉 부적은 그 색(色)만으로도 귀신을 쫓아내고, 부적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행운이나 생명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현재 민간에서 무당이 쓰는 부적과 절에서 승려가 그리는 부적 등이 있는데 부적을 만들 때는 택일을 하고 목욕재계를 해야 하며 주문을 외우게 되어 있다. 부적을 사용하는 방법은 아픈 곳에 붙이거나 불태워 마시기도 하고, 벽이나 문 등에 붙이거나 몸에 지닌다. 역모를 꾀하는 역사드라마나 귀신이 등장하는 <전설의고향>과 같은 납량특집극에 자주 등장하는 부적 중에는 베개 속에 넣어 상대방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있는데 이렇게 남을 해하는 부적은 사용하는 사람이나 당하는 사람에게나 좋지 않는 영향을 끼쳐 잘 그리지 않는다고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아무리 좋은 부적, 비싼 부적을 그린다고 해도 당사자의 마음이 간절하지 않으면 안 된다. 행운이 오기를 바란다면 신의 마음을 감동시켜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경건하고 성실한 삶, 남을 위한 삶을 사는 마음가짐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나서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뜻의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게 보면 부적은 하나의 상징적인 의미라 할 수 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신을 향한 간절함과 신의 뜻대로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복은 절로 오지 않을까 한다.

 

/ 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