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보며/한용운
달은 밝고 당신이 하도 기루웠습니다 자던 옷을 고쳐 입고 뜰에 나와 퍼지르고 앉아서 달을 한참 보았습니다
달은 차차차 당신의 얼굴이 되더니 넓은 이마 둥근 코 아름다운 수염이 역력히 보입니다 간 해에는 당신의 얼굴이 달로 보이더니 오늘 밤에는 달이 당신의 얼굴이 됩니다
당신의 얼굴이 달이기에 나의 얼굴도 달이 되었습니다 나의 얼굴은 그믐달이 된 줄을 당신이 아십니까 아아 당신의 얼굴이 달이기에 나의 얼굴도 달이 되었습니다
보름달 / 나호열
보름달이 가고 있어요
낮달/유치환
쉬이 잊으리라 그러나 잊히지 않으리라 가다 오다 돌아보는 어깨 너머로 그 날 밤 보다 남은 연정의 조각 지워도 지지 않는 마음의 어룽
달이 죽은 날에도 희게 피는 꽃 조성심
새벽 동트기 전 처음으로 싸리꽃을 밟고 떠난 사람 섬돌 위에 놓여진 흰 고무신 한 켤레 수명을 다 했음인가 서둘러 달 속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어둠을 싸고있던 황토 빛 담벼락이 우르르 무너지며 검은 상위 동전 세 잎 사자 밥으로 목을 축이고 불길로 솟는 검은 혼줄 몇 살이었을까
달의 영토
박현솔
모두들 잠든 시간, 서늘하게 걸려 있는
달 밤
이호우
낙동강 빈 나루에 달빛이 푸릅니다 무엔지 그리운 밤 지향 없이 가고파서 흐르는 금빛 노을에 배를 맡겨 봅니다 낯익은 풍경이 되 달 아래 고쳐 보니 돌아온 기약 없는 먼 길이나 온 듯 뒤지는 들과 산들이 돌아 돌아 뵙니다 아득히 드림 속에 정화된 초가집들 할머니 조웅전에 잠들던 그 날 밤도 할버진 율 지으시고 달이 밝았더니다 미움도 더러움도 아름다운 사랑으로 온 세상 쉬는 숨결 한 갈래로 맑습니다 차라리 외로울 망정 이 밤 더디 해소서
난설(蘭雪)의 달
신술래
마음 속 깊이 녹쓴 거울하나 감춰두었지만 그립다, 말하지는 않아요.
우물에 어린 달님 두레박으로 퍼 올리다 언뜻, 스치는 얼굴 있지만
그런 밤, 지아비가 주는 술잔을 천연스레 받아 마셔요
월식 / 안도현
젊은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달을 따주겠다고 했겠지요
달의 테두리를 오려 술잔을 만들고 자전거 바퀴를 만들고 달의 속을 파내
복숭아 통조림을 만들어 먹여주겠노라 했겠지요
오래 전 아버지 혼자 사다리를 타고 지붕에 올라간 밤이 있었지요
사춘기의 풀벌레가 몹시 삐걱거리며 울던 그 밤,
그런데 누군가 달의 이마에다 천근이나 되는 못을 이미 박아 놓았던 거예요
그 못에다 후줄근한 작업복 바지를 걸어 놓은 것은 달빛이었고요
세월이 가도 늙지 못한 아버지는 포충망으로 밤마다 쓰라리게 우는
별들의 울음소리 같은 것을 끌어 모았을 거예요
아버지 그림자가 달을 가린 줄도 모르고 어머니, 그리하여 평생 캄캄한
이슬의 눈을 뜨고 살았겠지요
현대시학 (2007년 4월호)
달밤
황동규
Mischa Maisky, Cello / Daria Hovora, P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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