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영상시

달, 달

경호... 2012. 11. 5. 13:56

 

 

 

 

 

 

 

 

 

 

 

 

 

 

 

 

 

 

 

 

 

 

  

 

 

 

 

 

달을 보며/한용운

 

 

 

 

 

 

 

 

달은 밝고 당신이 하도 기루웠습니다

자던 옷을 고쳐 입고 뜰에 나와 퍼지르고

앉아서 달을 한참 보았습니다

 

달은 차차차 당신의 얼굴이 되더니 넓은 이마 둥근 코

아름다운 수염이 역력히 보입니다

간 해에는 당신의 얼굴이 달로 보이더니

오늘 밤에는 달이 당신의 얼굴이 됩니다

 

당신의 얼굴이 달이기에 나의 얼굴도 달이 되었습니다

나의 얼굴은 그믐달이 된 줄을  당신이 아십니까

아아 당신의 얼굴이 달이기에 나의 얼굴도 달이 되었습니다

 

 

 

 

 

 

 

 

 

 

 

 

 

 

  

 

 

 

 

  

 

 

 

 

 

 

 

 

 

 

 

보름달 / 나호열

 

 

 

 

보름달이 가고 있어요
둥글어서
동그라미가 굴러가는 듯
한 줄기 직선이 남아 있어요
물 한 방울 적시지 않고 강을 건너고
울울한 숲의 나뭇가지들을 흔들지 않고
새들은 깊은 잠을 깨지 않아요
빛나면서도 뜨겁지 않아요
천 만개의 국화 송이가 일시에 피어오르면
그 향기가 저렇게 빛날까요
천 만개의 촛불을 한꺼번에 밝히면
깊은 우물 속에서 길어 올리는
이제 막 태어난 낱말 하나를
배울 수 있을까요 읽어낼 수 있을까요
보름달이 가고 있어요
둥글어서  동그라미가 굴러가는 듯
말없음표가 뚝뚝 세상으로
떨어지고 있어요
입을 다물고 침묵을 배우고 있어요

 

 

 

 

 

 

 

 

 

 

 

 

 

 

 

 

 

 

낮달/유치환

 

 

 

 

 

쉬이 잊으리라

그러나 잊히지 않으리라

가다 오다 돌아보는 어깨 너머로

그 날 밤 보다 남은 연정의 조각

지워도 지지 않는 마음의 어룽 

 

 

 

 

 

 

 


 

 

 

 

 

 

 

 

 

 

 

 

 

 

 

달이 죽은 날에도 희게 피는 꽃 

                                                                    

         조성심

 

 

 

 


누구였을까

새벽 동트기 전 처음으로

싸리꽃을 밟고 떠난 사람

섬돌 위에 놓여진

흰 고무신 한 켤레

수명을 다 했음인가

서둘러 달 속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어둠을 싸고있던

황토 빛 담벼락이 우르르 무너지며

검은 상위 동전 세 잎

사자 밥으로 목을 축이고

불길로 솟는 검은 혼줄

몇 살이었을까

 

 

 

 

 

 

 

 

 

 

 

 

 

 

 

 

 

 

달의 영토 

                                                   

 

 박현솔

 

 

 

 

 

 

 모두들 잠든 시간, 서늘하게 걸려 있는
 저 달은 우주로 귀환하지 못한
 영혼들의 오랜 영토가 아니었을까
 남겨진 이들이 죽은 자를 그리워하며
 갈라진 논바닥처럼 가슴이 타들어갈 때,
 달에 스민 영혼들이 안타까운 눈빛으로
 지상을 내려다본다, 저 영토에도
 개울이 흐르고 새가 날고
 창백한 영혼들이 밥상머리에 모여 앉아
 지상에서의 한때처럼 둥근 숟가락질을 하겠지
 먹구름이 달의 주위를 감싸고돈다
 사자死者들의 영토에 밤이 도래한다
 창가를 비추던 달빛이 싸늘하게 식어가고
 기억을 쓸던 달빛도 순간 사라지지만
 내 기억 속 한 사람이 상흔처럼 되살아난다
 그는 지금 저 영토를 지키는 파수꾼이 되었지만
 한때 그의 중심에 박아놓은 수많은 옹이들
 이젠 어떤 참회로도 지워지지 않는다
 내 안의 먹구름이 서서히 걷힐 때까지
 달의 안부를 오래도록 묻고 있다

 

 

 

 

 

 

 

 

 

 

 

 

 

 

 

 

 

 

 

 

 

 

 

 

달 밤

                                              

 

 이호우

                      

 

 

 

                   

낙동강 빈 나루에 달빛이 푸릅니다

무엔지 그리운 밤 지향 없이 가고파서

흐르는 금빛 노을에 배를 맡겨 봅니다

낯익은 풍경이 되 달 아래 고쳐 보니

돌아온 기약 없는 먼 길이나 온 듯

뒤지는 들과 산들이 돌아 돌아 뵙니다

아득히 드림 속에 정화된 초가집들

할머니 조웅전에 잠들던 그 날 밤도

할버진 율 지으시고 달이 밝았더니다

미움도 더러움도 아름다운 사랑으로

온 세상 쉬는 숨결 한 갈래로 맑습니다

차라리 외로울 망정 이 밤 더디 해소서

 

 

 

 

 

 

 

 

 

 

 

 

 

 

 

 

 

 

 

 

 

 

 

 

 

 

 

난설(蘭雪)의 달
                                       

 

신술래

 

 

 

 

 


지아비 몰래

마음 속 깊이

녹쓴 거울하나 감춰두었지만

그립다, 말하지는 않아요.

 

우물에 어린 달님

두레박으로 퍼 올리다

언뜻, 스치는 얼굴 있지만

 

그런 밤, 지아비가 주는 술잔을

천연스레 받아 마셔요

 

 

 

 

 

 

 

 

 

 

 

 

 

 

 

 


 

월식 / 안도현

 


 

 

 

 젊은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달을 따주겠다고 했겠지요

 

 달의 테두리를 오려 술잔을 만들고 자전거 바퀴를 만들고 달의 속을 파내

 

 복숭아 통조림을 만들어 먹여주겠노라 했겠지요

 

 오래 전 아버지 혼자 사다리를 타고 지붕에 올라간 밤이 있었지요

 

사춘기의 풀벌레가 몹시 삐걱거리며 울던 그 밤,

 

 그런데 누군가 달의 이마에다 천근이나 되는 못을 이미 박아 놓았던 거예요

 

 그 못에다 후줄근한 작업복 바지를 걸어 놓은 것은 달빛이었고요

 

 세월이 가도 늙지 못한 아버지는 포충망으로 밤마다 쓰라리게 우는

 

 별들의 울음소리 같은 것을 끌어 모았을 거예요

 

 아버지 그림자가 달을 가린 줄도 모르고 어머니, 그리하여 평생 캄캄한

 

이슬의 눈을 뜨고 살았겠지요


 

 

 

현대시학 (2007년 4월호)


 

 

 

 

 

 

 

 

 

 

 

달밤


김수영

 

 



언제부터인지 잠을 빨리 자는 습관이 생겼다
밤거리를 방활할 필요가 없고
착잡한 머리에 책을 집어들 필요가 없고
마지막으로 몽상을 거듭하기도 피곤해진 밤에는
시골에 사는 나는 --
달 밝은 밤을
언제부터인지 잠을 빨리 자는 습관이 생겼다

이제 꿈을 다시 꿀 필요가 없게 되었나 보다
나는 커단 서른아홉 살의 중턱에 서서
서슴지 않고 꿈을 버린다

피로를 알게되는 것은 과연 슬픈 일이다
밤이여 밤이여 피로한 밤이여

(1959)


* 김수영 전집(민음사, 1981)

 

 

 

 

 

 

 

 

 

 

 

 

 

 

 

 

 

 


 달밤

 

 황동규

 

 

 

 

  
누가 와서 나를 부른다면
 내 보여주리라
 저 얼은 들판 위에 내리는 달빛을
 얼은 들판을 걸어가는 한 그림자를
 지금까지 내 생각해 온 것은 모두 무엇인가
 친구 몇몇 친구 몇몇 그들에게는
 이게 내것 가운데 그 중 외로움이 아닌 길을
 보여주게 되리
 오랫동안 네 여며온 고의춤에 남은 것은 무
 엇인가
 두 팔 들고 얼음을 밟으며
 갑자기 구름 개인 들판을 걸어갈 때
 헐벗은 옷 가득히 받는 달빛 달빛.


 

 

 

 

 

 

 

 

 

 

 

 

 

 

 

 

 

 

 

 

 

 

 

 

 

 


Mischa Maisky, Cello / Daria Hovora, P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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