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영상시

시詩 1 / 홍윤숙( 시집 `그 소식` )

경호... 2012. 11. 5. 13:52

 

 

 

 

 

 

시 1 / 홍윤숙 

 

사는 일도 죽는 일도 내 뜻이 아닌
보이지 않는 절대자의 힘에 의해
살려지고 죽어가는 황폐한 지상의 돌밭에서
날마다 부질없는 노고의 집 짓느라
땀 흘리며
 
보이지 않는 무지개 쫓아
나만의 장미 한 송이 찾기 위해
지칠 줄 모르고 걷고 걸어 밤을 지새우던
무한세월 목말랐던 그 무상한
시는 나에게 무엇일까
오늘 나를 이 자리에 서 있게 하고
쓰러지면서도 다시 일어서 걷게 하는
내 살 속의 뼈 뼛 속의 골수
 
발 밑에 어둠 다가오고
생의 멀고 아득한 길도 끝나가는 시간
꿈이란 허망, 희망이란 짐 염치없어
모두 내려놓고
이제 가벼운 날개 되기 위해
날마다 허물벗기에 마음 다지고 다지면서도
아직 못다 버린 배냇병
슬픈 시 하나 내 목을 조여
살이 내린다

 

 

 

그 소식 / 홍윤숙

 

그날 아침 까치 한 마리

파란 사철나무 가지에서

유난히 싱그럽고 시끄럽게 우짖고

요란스레 새벽 창 흔드는 바람 소리 들리더니

그 소식 싱그러운 풋사과 향기처럼 날아왔다

아침 햇살에 수줍게 꽃내음 풍기며

목이 타게 기다리던 그 소식에선

첫 무대 개막하는 징 소리 울리고

먼 바다 출항하는 고동 소리 들렸다

지구를 돌아오는 아침 해의

진분홍빛 꽃노을 온몸에 묻히고

돌아온 소식엔

한 시대 흔드는 젊은 바람 서슬지고

어둠을 가르며 푸른 깃발 펄럭였다

이제 너희 길 무지개 열렸으니

그 길로 가면 된다 달리기만 하면 된다

날마다 가슴 죄며 기다리고 빌며

문밖에 서 있던 나도

그만 안으로 들어가

시린 발 녹여야겠다

 

싱그럽고 시끄럽게 우짖는

까치 한 마리 날아가는 저

겨울 숲 바라보며......

 

 

 『현대문학』2012. 1월호

 

 

 

얼굴 / 홍윤숙
 
얼을 담은 굴이다
들여다보면
낯설고 겁나는
겁이 나
고개 돌리고
돌리다 다시 보면
깊고 깊은 굴
그 끝 낭떠러지
소리 없이 추락하는
낙석 하나 보인다
떨어지는 창공
아득한 나락
그 끝에 허공
부서지는 꿈 몇 조각
휘날리고 있는

 

 
# “얼굴은 몸에서 가장 정보가 집약된 부분”이라는 도널드 시몬스(Donald Symons)의 말처럼 얼굴의 생김새는 유전자의 품질이나 교육의 수준을 나타내기도 하고, 성품이나 성격이 드러나는 단서가 될 수도 있어요.
 
‘남자나이 마흔이면 자기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옛말은 예로부터 사람의 얼굴을 중요시 해왔음을 알 수 있지요. 얼굴은 한 개인의 건강상태나 인격, 품격, 지적 능력이 드러나는 장소이며, 다양한 감정이 표출되는 통로로서 자신의 “얼을 담은 굴이”라 할 수 있지요.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매일 타인의 얼굴을 보아야하고, 내 얼굴도 타인에게 보여주어야 하지요. 타인에게 비추어질 나의 얼굴이 “낯설고 겁나는/겁이 나/고개 돌리고/돌리다 다시 보면/깊고 깊은 굴”같은 모습은 아닌지요. 단순히 눈에 보이는 외모만을 가꾸는데 들이는 시간과 돈보다는 내면의 세계를 가꾸어가는데 더 많은 심혈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요?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50여 년 시를 써왔으나 나 역시 삶이 완전무결하게 행복하고 충만되어 있었다면 시를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내부에서 일어나는 갈등, 비탄, 결핍, 욕망들이 붓을 들게 하였고, 그런 의미에서 나의 시는 마음의 역사, 자아 내면의 고통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한 성직자는 이렇게 말한다. “악(고통)이 존재하지 않는 우주를 원하는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고. 고통이 없고 고통을 알지 못한 다면 무엇을 원할 일도 없는 것이다.
결국 고통은 생의 알맹이, 핵심이며 인간을 존재케 하는 생명의 불이다. 따라서 문학의 중심 주제는 고통이며 그것을 밝히고 증언하면서 그 고통에서 희망 또는 해답을 끌어내는 고통의 미학이라고 말 할 수 있다.
― 시인의 산문 중에서


내 생애의 마지막 시집에 할말은
다가올 죽음 앞에 당당하고 의연하게
마주 설 것이다.

그것뿐이다.

- 시인의 말 중에서

 

 

 

 

 

원로문인 2인 손끝서 피어난 ‘천진난만’

 

홍윤숙 시집 ‘그 소식’

신경림 첫 동시집 ‘엄마는…’

 

기자 책상 위에 쌓인 신간 문학서적들 중 홍윤숙(87)씨의 시집 ‘그 소식’(서정시학)과 신경림(77)씨의 동시집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실천문학사)를 먼저 집어든 건 두 시인에 붙어다니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란 높다란 권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팔순을 훌쩍 넘긴 노시인은 “생애 마지막 시집이 될 것”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팔순을 바라보는 다른 노시인은 처음 동시란 분야에 도전하며 “앞으로 기회가 되면 또 동시를 쓸 것”이라고 밝혔다. 문단 원로들에게서 발견한 ‘비장함’과 ‘천진난만함’의 두 모습에 기분이 묘해졌다.

 

‘그 소식’은 광복 직후인 1947년 등단해 65년간 시를 써온 홍씨의 17번째 시집이다. 그는 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하는 문인 23명 중 최고령이다. 시집에 수록된 ‘인생의 오후에’라는 시에선 홍씨의 관록이 묻어난다.

 

“인생의 오후에 눈이 내린다고/

어느 젊은 시인은 노래하는데/

그 시인 오후는 언제쯤일까/

서른은 너무 일러 아닐 터이고/

지천명의 쉰은 좀 늦은 것 같고/

아마도 불혹의 나이 마흔쯤일까.”

 

시집 서두에 그는 “내 생애 마지막 시집에 할 말은 다가올 죽음 앞에 당당하고 의연하게 마주설 것이다. 그것뿐이다”라고 짧게 적었다. 노시인의 결연한 의지가 독자와 후배 문인들이 숙연해지게 만든다. 이제 죽음은 두렵기는커녕 오히려 탐미의 대상이라는 듯 그는 스스럼없이 ‘찬란한 죽음’을 노래한다.

 

 

“한껏 화려하게 만개한 꽃송이들/

바람에 져서 아낌없이 나부끼다/

흙에 묻히는 순간/

소리 없는 비명에 귀가 열린다/

아는 이 없는 한낮의 정사(情事)/

그 끝에 피 한 방울”

 

 

만약 홍씨에게 창작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어떤 시를 쓸까. 그동안 치열하고 냉철한 사회의식이 담긴 시를 주로 써온 그는 이제 한결 부드러워졌다. ‘내가 쓰고 싶은 시’에서 홍씨는 이렇게 노래한다.

 

“머리 꼿꼿이 세우고 세상과 맞서는/

은장도 서슬 푸른 시절은 이미 지났다/

이제부터는 연푸른 잎사귀에/

 이슬 맺혀 잠시 반짝이고 촉촉이 젖어/

아득한 먼 곳에 그리움 전하는/

연보라빛 가을 들국화 같은/

작고 애틋하고 따뜻한 시 쓰고 싶다.”

 

 

홍윤숙

 

 

‘신경림’ 하면 곧바로 ‘참여문학’부터 떠올리는 이가 많다. 그런 신씨가 ‘해맑은’ 동시를 쓴다는 것 자체가 문단의 화제일 수밖에 없다. 손자들이 자라는 것을 보며 ‘아이들이 읽을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는 신씨는 “시는 아이들에게 현실을 바르게 보게 만들어야 한다는 ‘벽창호’ 참여주의와 생각을 같이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밝혔다. 시를 정치나 운동의 수단으로 여기던 시대는 완전히 끝났다는 선언처럼 들린다.

 

지난해 서울대공원을 탈출해 청계산에 숨었다가 잡힌 곰을 소재로 한 동시 ‘달려라 꼬마’가 재미있다. 동심의 바다에 풍덩 빠졌다가 올라온 노시인의 눈길은 자상하기 그지없다.

 

“달려라 꼬마, 먼 남쪽 나라에서 온 아기 곰아/ 배고파도 참고/ 힘들어도 견디면서/ 네 고향 정글 같은/ 크고 깊은 숲 나올 때까지/ 달려라 꼬마, 나도 함께 달리고 싶은 아기 곰아”

 

김태훈 기자 /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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